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 - 20세기를 뒤흔든 3대 혁명적 사상가
강영계 지음 / 멘토프레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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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가 꼽은 20세기를 뒤흔든 3대 혁명적 사상가들은 나에게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모두 내가 읽다 중단한 책의 저자들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의 일생에 대해서 다른 경로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은 것은 또 다른 공통점이다. 그런 덕분인지 이 책의 몇 곳에선 낯익은 대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덕분에 그들의 이론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이 셋 중 둘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20세기에 강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인 니체는 어떨까? 나의 짧은 학문적 지식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를 넣은 것에 무조건 동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것은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러나 니체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몇 가지 지식을 얻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은 조금 구성이 산만하다. 어떤 대목에선 같은 대목이 반복해서 나오고, 시간과 내용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연대기 순으로 서술한다고 느끼는 순간 앞 시대 이야기가 나오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쉽게 파악하는데 지장을 준다. 강한 집중력과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를 많이 이해한다면 다른 문제이겠지만 각 인물의 기록과 철학을 같이 다루다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뭐 이해는 다른 문제지만.

 

저자가 지적한 대목 중 하나는 자신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겠지만 껄거럽고, 하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전자는 머리말에서 “전통사상을 깡그리 뒤집고 전혀 새로운 사상을 제시함으로써”라는 문장이다. 뒤에 저자가 다시 일반적인 말인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철학이나 이론이 없다고 한 것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독창적인 사상과 철학 등으로 이전의 벽을 뛰어넘었다고 하여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구임에는 틀림없다. 후자는 “철학의 과제가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지 않고 세계를 개혁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셋의 생각이 같이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이 셋을 같은 반열에 놓고 평가하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다. 해석과 이해를 넘어 개혁이란 실천적이고 능동적 행위를 지향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3대 혁명적 사상가에 동의할 지는 뒤로 하고, 이 책은 이 세 인물의 입문서나 개론서로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연대기 순으로 다루면서 그들의 삶과 철학의 변천을 함께 볼 수 있고, 각 장 마지막에 요약한 그들의 철학은 기억을 되살려보게 만든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 책 읽기로 자신의 영역을 갈고 닦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수많은 물음표를 달고 책과 대화를 해야만 더 많이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 나는 많이 소화했는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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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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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반에 범인을 짐작했다. 비통한 절규와 충격적인 반전을 단서 삼아 범인을 추리했다. 하지만 작가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면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가슴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아픔을 느꼈다. 왜 이 소설의 제목이 통곡일 수밖에 없는지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두 개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마쓰모토라는 남자의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아 유괴살인사건을 좇는 형사들이다. 이 두 시점은 서로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교차하는 시점이 만나는 지점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하지만 작가는 교차하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 속에 함정을 파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함정을 간파할 시간을 주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는 속도감 있다. 단숨에 읽히다보니 숨을 돌리고 범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다. 앞뒤를 재면서 범인에 대해 추리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빨리 책을 덮으면서 그냥 감탄만 한다.

 

유아 유괴살인은 최악의 범죄 중 하나다. 세상의 범죄 중 나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단순히 어린 아이라는 것을 넘어 가장 연약하고 순수한 대상으로 벌어진 범죄이면서 한 가족을 가장 단단하게 이어주는 존재가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파급 효과가 나올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피해 부모자의 감정을 간단하게 처리하면서 감상적으로 흐르는 것을 차단한다. 다만 마쓰모토라는 남자를 통해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지 강하게 보여준다.

 

가슴에 구멍이 나고, 삶은 구원을 바라는 마쓰모토의 행적은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범인이다. 그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가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 알 게 된다. 그리고 왜 사이비 종교에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 자신도 분명히 사이비임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이성을 압도하는 감성과 구멍 난 가슴은 흉악한 범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른 하나의 시각인 형사들의 범인 추적은 정말 힘든 과정의 연속이다. 경시청 수사 1과장 사에키와 그를 경원하는 오카모토의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엔 탐정 소설에서 자주 보는 명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형사 소설에서 자주 보는 발로 뛰고, 토론하고, 힘겨워하는 현실만 담겨 있다. 특히 사에키라 과장은 대단한 배경 때문에 일선 형사들의 질시를 받는 존재다. 유력한 정치인의 사생아이자 경시청 장관의 데릴사위다. 이 인물은 냉정하고 빈틈이 없는 것 같다. 배경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올랐다. 하지만 배경이 화려하니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그를 본다. 질투도 많다. 그리고 그의 사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사랑으로 했다고 생각한 결혼이 정략결혼임을 알게 되면서 그의 감정은 싸늘하게 식게 된다. 아내의 불륜도 한 목을 한다. 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유아 유괴살인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소설은 단순히 서술 트릭만을 보여주기보단 일본 경찰의 모순과 매스컴의 과다한 경쟁과 보도의 윤리성도 다룬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가 어떤 식으로 전도를 하고, 종교가 얼마나 거대한 사업인가를 말하는 대목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익 금액을 이야기할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쓰모토란 인물의 내면을 파헤치면서 인간의 한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아마 이 소설이 강하게 가슴으로 파고드는 이유도 바로 마쓰모토의 변해가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서술 트릭을 다룬 소설 중 이 소설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책 속에 수많은 단서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읽기 과속을 하다 보니 이 단서를 충분히 취합할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다시 대충 복기를 하다 보니 놓치거나 그냥 지나간 확실한 단서들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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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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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교수의 열정적 책읽기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가 어떻게 독서라는 매력적인 일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매력을 하나씩 익히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가 살아온 길을 책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데 그의 길속에서 나의 삶의 흔적 일부도 얼핏 보인다. 아마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일반 독자들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래서 그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새로운 지식과 나의 독서법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책은 두 꼭지와 아홉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꼭지는 책과의 만남과 즐거움과 책 읽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른 꼭지는 책 읽기의 요령과 의미와 장르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독서의 다양한 모습과 책 읽기 방법 등을 배운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가다 보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어떻게 책을 읽었는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고민하게 된다. 이 점이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풀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추억을 불러오기에 딱 좋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이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소설을 읽다 선생님에게 걸려 혼난 사연이나 대여점을 들락거렸던 기억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새롭게 살아난다. 동시에 수 십 년의 나이 차이가 있는 분과 나의 경험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국 교육 환경을 되돌아보게 된다. 또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볼 때면 아쉬움을 느낀다. 그리고 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나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향하게 만든다.

 

속독과 숙독, 통독이니 삼단뛰기니 클로즈 리딩이니 하는 방법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에 따라 읽기를 달리 하라는 그의 주장은 점점 읽기에 힘겨워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점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의 책읽기 능력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가능할지 앞이 캄캄하다. 책에 대한 욕심이 과하다 보니 읽을 시간도 없는데 책을 사 모으고, 그 무게에 짓눌려 버벅 되고, 충분히 그 의미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욕심을 버리자고 마음먹지만 서점을 가거나 인터넷 서점을 접속하면 새로운 신간들이나 고전의 재번역으로 다시 그 결심은 무너진다.

 

작가가 재미있게,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아직 읽지 않은 책은 다시 위시리스트에 올라가고, 읽은 책은 새로운 접근법과 해석으로 인식의 폭이 깊어진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안정효의 ‘헐리우드키드의 생애’다. 한때 이 소설에서 느꼈던 열정과 애정과 대단함이 이 책에서 다시 느껴졌기 때문이다. 북키드라는 단어에 맞는 인생이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 단어가 부럽기만 하다. 한 노교수의 독서를 통해 본 인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고, 추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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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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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중편소설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중국소설을 읽다 보면 번역이나 문체 때문에 가끔 고생을 하기도 하고, 낯선 사회로 인한 어색함이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작가의 경우 감탄을 자아내면서 다른 작품을 찾게 만들기고 한다. 그러나 화려한 이름과는 달리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듯한 몇몇은 새로운 작가에게로 손이 쉽게 나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책을 보기 전 표지를 유심히 보았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입을 막은 사람들의 형체가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준다. 표제작인 ‘언어 없는 생활’의 등장인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표지만 보아서는 무서울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해학과 아픔과 비극으로 풍성한 감정을 전해준다. 이렇게 조금씩 신체적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데 중국 시골 풍경과 삶이 어우러져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언어 없는 생활’은 듣지 못하는 아들과 일하다 벌에 쏘여 눈을 잃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듣지 못하는 아들이 아버지의 외침을 듣지 못해 사고가 커진 것이다. 눈 먼 아버지가 아들에게 비누를 사 달라고 하는 대목은 소통의 부재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손짓으로 지시를 내리지만 오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가족에게 동네 사람들은 살가운 애정도 이웃으로의 따뜻한 관심도 없다. 아들의 사랑이 실패하고, 다른 오해가 생기는 와중에 한 벙어리 여자가 붓을 팔려고 온다. 이렇게 세 명의 장애인이 모였다. 처음부터 제대로 자신들끼리 대화가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그들은 삶의 지혜를 짜내어 각각의 단점을 덮고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이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그들의 삶이 세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곳에 한정되는 아픔을 준다.

 

표제작에서 느낀 이런 먹먹한 감정은 이어지는 작품들이 품어내는 해학과 즐거움과 비참함으로 재미를 준다. ‘느리게 성장하기’에서 다리가 불편한 주인공의 성공과 실패 과정은 사회의 시선과 자신의 결핍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빗나간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서 성석제의 소설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살인자 아들을 둔 한 어머니의 삶을 그려낸 ‘살인자의 동굴’은 왜 어머니인가를 보여준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려는 그녀의 처절한 노력은 옳고 그름을 넘어 모성애의 한 극단을 보여주면서 가슴 아프게 한다. ‘음란한 마을’은 창녀촌으로 변한 마을의 지식인의 이중적 삶의 모순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교육에 의한 윤리에 집착하기만 하지 제대로 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말만 앞세우는 식자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자신이 욕하고 배척하는 여자에게 비굴하게 목숨을 애걸하고, 다시 욕하고, 비난하는 그 과정은 또한 현실의 무거움이기도 하다. 마지막 작품인 ‘시선을 멀리 던지다’는 한 여자가 어머니로서의 삶과 아내로서의 삶을 통해 어떤 상실감을 가지게 되는지 보여준다. 남편은 술을 끼고 살면서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키우려고 보낸 아들은 고모가 팔아버린다. 비참한 현실에서 아들에게 나은 환경을 제공하려던 생각이 독으로 돌아온 것이다. 힘겹게 찾은 아들은 이제 도시 생활이 주는 풍족함으로 엄마를 버리게 되니 그 허탈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다섯 편의 소설은 모두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도시적 감성은 없다. 우리의 지나간 시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장애인과 사람들의 시선과 어머니와 실천 없는 지식인 등 이미 한국 문학에서 보아온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중국이란 환경 속에서 만난 이들은 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옛 향수를 일부 불러오면서 새로운 작가로 인한 반가움과 즐거움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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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 아일랜드
앤 브래셰어즈 지음, 변용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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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지금 표지를 유심히 쳐다본다. 가끔 책 읽기 전과 후에 그 느낌이 너무 달라지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는 낯설게 느껴진다. 현실의 공간이 아닌 환상처럼 보이고, 붉은 나비들은 바다 위에 있는 각각의 남녀들을 불안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왠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표지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이 세 명이 소설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와 두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흔한 삼각관계가 아닌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솔직하게 알게 되고, 사랑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시선은 앨리스에게 고정되는데 행동이나 대화보다 심리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 덕분인지 활기 넘치는 장면들보다 감정의 깊이나 흔들림을 다루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성장기를 함께 보내고, 너무 가까운 관계이다 보니 오히려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서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불행한 사고가 생겼을 때 마음에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심어준다. 이 모든 감정은 삼각형의 꼭지점에 자리한 앨리스가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앨리스와 라일리는 자매다. 라일리와 폴은 동갑내기다. 폴은 앨리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좋아했다. 여름 한 철을 보내는 별장들로 이루어진 파이어 아일랜드에서 만난 그들은 운명처럼 엮여진다. 라일리는 성장을 거부한 피터 팬 같다. 그녀가 느끼는 충동은 과거를 지키고, 미래를 은폐하고, 최대한 매사를 똑같이 유지하는 것으로 언제나 똑같다. 이런 그녀를 가운데 두고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두 남녀 앨리스와 폴이 불편한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앨리스의 경우 라일 리가 심장이 좋지 않아 긴급수송 될 당시 폴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은 죄책감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죄의식으로 바뀌는 그 순간 그 두 남녀에게 일어날 일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사랑의 감정은 미묘하다. 긴 세월을 알게 모르게 쌓아올렸지만 한 순간에 흔들려 무너지거나 잊고자 하지만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정들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보다는 남을 더 의식하면 더욱 힘들다. 일단 어느 정도 솔직함을 자신에게 허락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숨겨두고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솔직함을 허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지난 여름 한 번 솔직하게 허락하였지만 그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다. 그러니 강한 바람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소설은 잘 읽힌다. 눈에 보이는 비밀도 있고, 첫 사랑을 좀더 활기차고 아름답게 꾸밀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멈춰 선 그들이 다시 자신들을 돌아보는 그 과정은 너무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만 하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의도하지 않은 불행한 사고로 인한 시작이지만 그 결과는 결코 불행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느낌은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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