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보존법
다이라 아스코 지음, 박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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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 참 어렵다. 하는 것도 어렵고, 지키기는 더 어렵다. 그냥 쉽게 그게 뭐 어렵냐고 할지 모르지만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듯한 이 소설집에 나오는 6명의 사랑 이야기는 독특하고 재미있다. 개성 넘치고 기발하고 상식의 궤를 벗어난 사람들이지만 그 속엔 진한 인간미가 넘쳐난다.

다이라 아스코의 책으로 두 번째다. 그녀의 장편을 먼저 읽었는데 사실 단편이 더 마음에 든다. 장편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번 단편에서 더 큰 재미를 느꼈다. 독특하고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깊이 있게 묘사하기보단 이야기의 분량에 맞게 특징들을 멋지게 살려내면서 읽는 재미를 준다.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기보다 적은 인물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었다. 덕분에 등장인물들 누구 하나도 그냥 무시할 수 없다. 오랜만에 단편 읽는 재미를 톡톡히 누렸다.

 

6명의 남녀들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나와 비슷한 모습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렇지만 딱 맞는 인물은 없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성을 한 방향으로 밀어붙인 주인공들은 어찌 보면 괴팍하지만 어떻게 보면 기발하다. 같은 남자와 4번이나 결혼하는 여자, 멋진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를 빼앗긴 남자, 여자 친구 어머니 장례식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다 중에게 여자를 빼앗긴 남자, 소립자 과학에 빠져 지인들에게 빌붙어 사는 남자, 늘 새집 쇼핑과 이사에 빠져 사는 여자, 너무 착해서인지 많은 아내와 아이를 둔 남자 등. 그들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도 있겠지만 큰 흐름에서 본다면 다른 점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이 차이점을 작가는 감정 실린 문장이 아닌 담담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덕분에 약간 거리를 두면서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문장이 장편으로 이어진다면 조금은 지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편에선 핵심을 찌르는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한 사람을 멋지게 만들 수 있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낀 점도 바로 그런 점이다. 상황을 설명하는데 공을 들였다기보다 인간들의 특징을 포착하여 드려낸 것이 더 마음에 든다. 감정의 변화와 깊이, 상황의 반전, 현실과 이상, 자기합리화, 용기와 실천 등이 각각 이야기 속에서 표출된다. 이들의 연애 이야기가 잘 다듬어진 구성과 잘 만들어진 인물과 간결한 문장과 잘 어울린다.

 

여섯 명의 이야기 중 더 눈에 들어온 작품은 있다. 첫 작품 ‘사랑보존법’과 마지막 작품인 ‘너무나 친절한 노부미쓰 씨’다. 이 소설 속 두 남자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전작의 남편이 메마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후작의 노부미쓰 씨는 너무 다정하다. ‘사랑보존법’에서 한 여자가 한 남자가 4번 결혼한다면 ‘너무나 친절한 노부미쓰 씨’에선 서로 다른 여자 셋과 결혼하고 한 명은 자식만 두고 있다. 이렇게 다른 두 남자의 곁에 있는 여자들의 반응도 각각 다르다. 전작이 여자가 매달리는 형상이라면 후자는 그냥 보고만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다른 남자들에게 빠지지 않는 정도랄까? 이 외에도 개성 넘치고 특이한 등장인물과 주변사람들의 상황은 단편의 묘미를 살려내면서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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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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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다. 분명 앞에서 본 문장인데, 같은 등장인물이 또 나오네, 어! 시작하는 문장이 완전히 같네 등등. 그렇다. 이 소설은 같은 등장인물을 이용한 변주 같다. 영화로 치면 한 편의 시나리오를 이용한 다양한 각색이다. 과학적으로 풀어내면 평행우주론과 비슷하다. 뭐 좀 유식한 척 표현했지만 한 남자가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한 사항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줄여 말할 수 있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그래 결정했어! 라고 외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지만.

 

네 편 모두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같은 문장이 얼마나 나올까 세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마지막 문장도 셋은 같고 하나만 바뀌는데 그 변화가 절묘하다. 이처럼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나오지만 이야기는 다른 흐름으로 진행된다. 대학 새내기인 화자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이 참 경계가 보인다. 그가 선택한 네 곳 모두에서 그가 요괴라고 말하는 오즈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의 지보라고 말하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존재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이 동일한 문장에서 시작한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가 활기를 띄고, 흥미를 가지게 하고, 빠져들게 만든다. 그의 외모는 표현대로라면 요괴 같다고 하니 묘하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같은 문장에서 시작하지만 구성은 절묘하다. 앞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등장인물들을 설명하고, 의문스러운 것을 바닥에 깔아놓는다. 그러면 다음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면서 앞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의문스러웠던 것을 하나씩 풀어준다. 하지만 절대 그가 만들어놓은 가공할 세계인 다다미 넉 장 반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곳을 기점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이렇게 형성된 인간관계는 반복해서 등장하고, 앞에 나온 의문들을 풀어주면서 점층적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반전과 놀라운 오즈의 비밀들은 살포시 웃음을 짓게 한다.

 

재미있다. 기발하다. 같은 등장인물들과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다른 느낌을 주면서 비슷한 듯한 이야기를 멋지게 만들다니 대단하다. 그냥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읽다보면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다시 그 상황에 부딪히면서 이 책의 구조를 깨닫게 된다. 시작과 끝은 동일하지만 그 중간 과정이 모두 다른데 기발한 상상력과 재미난 문체로 즐거움을 계속 준다. 이 작품 하나로 작가를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대단한 재능임에는 틀림없다. 현재의 나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주는 교훈이 의도적이고 목적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이런 해석이 과연 이 소설에 맞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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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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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대는 끝없이 변한다.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은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 모든 것의 도구는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 이제는 사람들이 웹과 통신에 기반을 둔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어낸다. 책 속에 소개되는 변화들을 상징적인 부분과 지속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은 이미 우리 삶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을 모른다면 시대의 변화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제목만 보면 쉽게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목차를 보게 되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모두 세 파트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그 내용들은 익숙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거나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들이다. 변화의 신호탄에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대중이 나타나고 그 변화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려준다. 이 과정을 따라가면 자주 부딪히게 되는 도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이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인터넷은 소수의 점유물이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이 도구가 알려지면서 급속하게 성장하고 변하고 있다. 인터넷도 그 자체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영역이 점점 확대되면서 기존 사회의 관념들이나 상식들이 깨어지고 있다. 그 변화의 첫 발로 저자는 뉴욕에서 벌어진 핸드폰 분실 사고를 말하고 있다. 비록 고가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분실 후 그냥 잊고 사는 현실에서 벌어진 놀라운 정보교환은 사람들의 삶과 인식을 바꾸어놓기에 충분하다. 그 과정을 저자는 한 사람의 시선만이 아닌 각각의 시선도 담아내면서 그 변화를 더욱 현실화시킨다. 이어서 벌어지는 몇 가지 사례는 이미 알고 있던 것들도 있지만 그 의미를 저자가 풀어내면서 새롭게 다가왔다.

 

책 속 사례 중 몇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실현되었다. 촛불집회 당시 중고생들이 문자메시지로 정보를 교환하고, 블로그 운영자가 직접 현장으로 나오거나 UCC 사이트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 정보를 전송하였다. 그 반대편에선 그 정보로 보고, 다시 자신의 친구들에게 전송하여 새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어내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이전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변화는 바로 웹과 핸드폰이라는 도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엄마들이 유모차를 밀고 나와 정경들 앞에 나온 것을 보면 이 책에 나온 많은 변화가 하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현실화된 것이다. 외국에선 이 놀라운 변화가 어느 정도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우리의 현실에선 알아서 기고, 현실을 왜곡하고, 80년대로 시간을 돌리려는 무리들에 의해 끊임없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멈춘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 변화의 도구로 웹을 말하고 있다. 웹 기반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주목하고 그 속에 담긴 중요한 의미들을 풀어낸다. 단순히 검색만이 아닌 공유와 실천하는 커뮤니티의 등장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풀어내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기존 현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가지게 하고, 불과 십 수 년 전이면 그냥 개인들이 분노하고 넘어갔을 것들에 대한 조직적인 대응이 이루어진다.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에 대한 사례들은 이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려준다.

 

이 책은 변화하는 새로운 사회와 대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거대한 변화에 대한 근본적 분석은 날카롭고 흥미진진하다. 단순히 웹 기반을 도구만 말하지 않고 구조적 조직적 변화도 함께 보여주면서 깊은 통찰력도 지니고 있다. 빠르고 급속한 흐름 속에서 그냥 몸을 실고만 있는 현실인 나 자신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책을 읽다 만난 멋진 문장 하나로 마무리한다. “오픈소스 운동은 조직이 아니라, 실패에 대해 놀라운 관용을 보여 주는 하나의 살아 숨 쉬는 환경이다.”(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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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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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속에 실린 책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숫자였다. 그 중에서 몇 권은 열렬한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그 책들은 나의 구매목록에 올랐고, 몇 권은 구입했고, 그 중 몇 권은 읽었지만 나머지는 곱게 모셔만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당시 눈에 들어왔던 책들은 항상 구매목록에 올라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구매목록이 늘어났다.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주제가 보인다. 대학생 때 이후 인문학은 거의 읽지 않았다. 전문서적이나 흥미위주의 독서를 많이 했다. 관심 있는 몇 분야의 책들을 읽기는 했지만 체계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늘 새롭게 부딪히는 문제와 한계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곤 했다. 덕분에 최근 몇 년은 그 전과 다르게 비교적 많은 인문학을 읽게 되었지만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커져만 갔다. 체계적이지 않은 남독과 산만한 정신과 엉성한 번역과 독창적이지도 풍부한 사료도 부족한 책들이 이런 마음을 더 키워놓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문학은 요즘 조금 꺼린다.

 

이 책을 처음 펼쳐 읽으면서 즐거웠다. 이전에 읽은 책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반가움은 곧 낯선 책들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책읽기의 재미와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한 후 한 권의 책을 요약하고 해설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속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비판적 책읽기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 자신도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덧붙이거나 새로운 정보와 사실의 확인 등으로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다. 적지 않은 책들이 소개되지만 독서일기에 비해 그 양이 엄청 적고, 독후감이 더 전문적이고 깊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와는 다른 재미를 누렸다.

 

공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독후감 모음이라고 하기엔 잘 정리된 글들이다. 그 기본은 인문학이고, 그의 사유가 비판적으로 이어진다. 주제들이 한 곳으로 편협하게 쏠리지 않아서인지 지루함도 느끼지 못했다. 잘 정리되고 깔끔한 문장은 그가 생산해낸 평들과 함께 나로 하여금 도서목록을 작성하게 만든다. 실제는 이 중 몇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겠지만 벌써 손가락이 간지럽다. 학창 시절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대출하여 읽는다고 낑낑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생활에 치이는 직장인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보수 우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빨갱이를 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나와는 맞다. 나에겐 통쾌하고 사실적인 내용들이 그들에겐 불편한 진실이자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기분을 줄 것 같다. 이 책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박정희에 대한 비판은 특히 그렇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히틀러도 자주 등장한다. 이 인물들이 부정적이라면 조봉암은 긍정적이자 새로운 관심의 대상인 것 같다. 예전에도 나 자신이 조봉암에 대한 책을 구입해 읽으려고 했는데 이번 독서로 그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 그가 어떤 위치에 있었고, 그 시절을 아는데 많은 도움을 줄 인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놀라운 정보를 제공하여 주는데 두 가지가 강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친일 문제고, 하나는 이스라엘 시오니즘이다. 친일이야 지금도 문제고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인데 기존의 시각과 다른 글이 있어 눈길이 갔다. 우리들이 친일을 단죄하는 것이 민족주의 잣대인데 그 잣대가 무의식 중에 제국주의 전범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국가의 시점을 달리하면 제국주의 전범이 된다고 하니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친일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시각이 담긴 글인데 충분히 사유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시오니즘의 문제야 늘 듣고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잘 몰랐다. 그들이 홀로코스트를 자신들의 입지 강화에 많이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태인 절멸 정책에 직면하여 시오니스트들이 동족을 구하려고 하지 않은 명확한 사례가 허다하다는 말에 놀란다. 유럽 유태인들을 돕기 위한 영국과 미국이 이민법을 개정하려고 했을 때 조직적으로 그 법안을 저지했다거나 극도로 취약한 나치 경제를 돕기 위해 유태인의 금융 공격(저항)을 저지하고 나치 물자 보급원 역할을 자원하거나 나치 친위대의 고급 인사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초대하여 나치의 지지를 끌어내었다는 대목에선 기존에 알고 상식이 깨어진다. 지속적인 사실 왜곡과 홍보로 인해 기억 왜곡이 일어남을 경험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망각 속에 사실을 잊고 미화에 열중하는 언론과 정당이 있으니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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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Miracle 2
김재한 외 지음, 김봉석 해설 / 시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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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똑같은 제목의 책이 이미 나와 있다. 두 시기가 거의 차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작품의 성향은 조금 차이가 있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단편선이 웹진 거울 중심으로 sf를 많이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장편 판타지 소설을 출간한 작가들의 단편선이다. 물론 여기도 거울에 참여한 작가도 있지만 최소한 나에겐 장편 판타지 작가로 그들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판타지 중심이다.

 

요즘은 문피아 등에 잘 가지 않지만 이 작가들의 이름 대부분을 그곳에서 만났다. 이 중 몇 명은 즐겁게 읽은 작가들이고, 몇은 취향을 타는 작가고, 몇은 평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편으로 만나면서 그들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변하게 된다. 어떤 작가의 작품은 마음에 들고, 어떤 작가는 재탕처럼 느껴지면서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철곤의 ‘상아처녀’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차용했는데 그 긴장감이 고조되지 못하고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다. 정지원의 ‘카나리아’는 화자를 각자 두면서 다른 시선과 감정을 토로하지만 왠지 모르게 겉도는 느낌이다. 최지혜의 ‘용의 비늘’은 결말이 예상되는 전개와 초반 이야기를 이어가는 부분이 약하다. 방지나의 ‘윈드 드리머’는 비행기를 소재로 다루지만 그 진행이 너무 빨라 개연성 획득에 무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기대한 홍정훈의 ‘사육’은 작가의 장편 ‘월야환담’시리즈의 한 장면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시각으로 그려낸 것인데 그 긴장감이 시리즈에 실린 것보다 못해 조금 실망스러웠다. 류형석의 ‘목소리’는 요재지이 풍의 괴담인데 탄탄한 이야기가 무난하게 읽히지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엔 부족하다. 이성현의 ‘내가 바란 단 하나의 행복’은 마법사의 저주와 사랑과 질투를 짧은 글 속에 나름대로 잘 형성했지만 역시 보이는 결말은 아쉽다.

 

김재한의 ‘세계는 도둑맞았다’는 sf와 판타지의 결합인데 설정 자체는 상당히 신선하다. 오히려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개작하여 각 등장인물의 특징과 세부 이야기들을 더 살린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상민의 ‘과거로부터의 편지’는 ‘퇴마록’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전체적인 구성이 조금 약하다.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재미만을 생각하면 ‘목소리’와 ‘세계는 도둑맞았다’가 가장 다가오고, 완성도를 생각하면 ‘카나리아’와 ‘내가 바란 단 하나의 행복’이 눈에 들어온다. 시각을 달리한 ‘사육’은 강렬했던 장편의 영향 탓인지 재탕처럼 느껴지고, 다른 몇 작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이런 단편선이 계속해서 나와 주길 바란다. 양산형 판타지로 질적 저하가 많았던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단편선은 그들을 평가하고 믿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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