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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속에 실린 책 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숫자였다. 그 중에서 몇 권은 열렬한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그 책들은 나의 구매목록에 올랐고, 몇 권은 구입했고, 그 중 몇 권은 읽었지만 나머지는 곱게 모셔만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당시 눈에 들어왔던 책들은 항상 구매목록에 올라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구매목록이 늘어났다.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주제가 보인다. 대학생 때 이후 인문학은 거의 읽지 않았다. 전문서적이나 흥미위주의 독서를 많이 했다. 관심 있는 몇 분야의 책들을 읽기는 했지만 체계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늘 새롭게 부딪히는 문제와 한계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곤 했다. 덕분에 최근 몇 년은 그 전과 다르게 비교적 많은 인문학을 읽게 되었지만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커져만 갔다. 체계적이지 않은 남독과 산만한 정신과 엉성한 번역과 독창적이지도 풍부한 사료도 부족한 책들이 이런 마음을 더 키워놓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문학은 요즘 조금 꺼린다.
이 책을 처음 펼쳐 읽으면서 즐거웠다. 이전에 읽은 책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반가움은 곧 낯선 책들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책읽기의 재미와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한 후 한 권의 책을 요약하고 해설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속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비판적 책읽기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 자신도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덧붙이거나 새로운 정보와 사실의 확인 등으로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다. 적지 않은 책들이 소개되지만 독서일기에 비해 그 양이 엄청 적고, 독후감이 더 전문적이고 깊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와는 다른 재미를 누렸다.
공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독후감 모음이라고 하기엔 잘 정리된 글들이다. 그 기본은 인문학이고, 그의 사유가 비판적으로 이어진다. 주제들이 한 곳으로 편협하게 쏠리지 않아서인지 지루함도 느끼지 못했다. 잘 정리되고 깔끔한 문장은 그가 생산해낸 평들과 함께 나로 하여금 도서목록을 작성하게 만든다. 실제는 이 중 몇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겠지만 벌써 손가락이 간지럽다. 학창 시절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대출하여 읽는다고 낑낑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생활에 치이는 직장인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보수 우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빨갱이를 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나와는 맞다. 나에겐 통쾌하고 사실적인 내용들이 그들에겐 불편한 진실이자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기분을 줄 것 같다. 이 책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박정희에 대한 비판은 특히 그렇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히틀러도 자주 등장한다. 이 인물들이 부정적이라면 조봉암은 긍정적이자 새로운 관심의 대상인 것 같다. 예전에도 나 자신이 조봉암에 대한 책을 구입해 읽으려고 했는데 이번 독서로 그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 그가 어떤 위치에 있었고, 그 시절을 아는데 많은 도움을 줄 인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놀라운 정보를 제공하여 주는데 두 가지가 강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친일 문제고, 하나는 이스라엘 시오니즘이다. 친일이야 지금도 문제고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인데 기존의 시각과 다른 글이 있어 눈길이 갔다. 우리들이 친일을 단죄하는 것이 민족주의 잣대인데 그 잣대가 무의식 중에 제국주의 전범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국가의 시점을 달리하면 제국주의 전범이 된다고 하니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친일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시각이 담긴 글인데 충분히 사유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시오니즘의 문제야 늘 듣고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잘 몰랐다. 그들이 홀로코스트를 자신들의 입지 강화에 많이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태인 절멸 정책에 직면하여 시오니스트들이 동족을 구하려고 하지 않은 명확한 사례가 허다하다는 말에 놀란다. 유럽 유태인들을 돕기 위한 영국과 미국이 이민법을 개정하려고 했을 때 조직적으로 그 법안을 저지했다거나 극도로 취약한 나치 경제를 돕기 위해 유태인의 금융 공격(저항)을 저지하고 나치 물자 보급원 역할을 자원하거나 나치 친위대의 고급 인사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초대하여 나치의 지지를 끌어내었다는 대목에선 기존에 알고 상식이 깨어진다. 지속적인 사실 왜곡과 홍보로 인해 기억 왜곡이 일어남을 경험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망각 속에 사실을 잊고 미화에 열중하는 언론과 정당이 있으니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