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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무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링컨 라임 시리즈로 너무나도 유명한 제프리 디버의 소설이다. 이 소설이 처음 나온 것이 1995년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게 번역된 셈이다. HBO TV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아직 보진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영화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배우들은 누구고, 어떤 느낌일지 상당히 궁금했다. 원작의 느낌을 어느 정도 살렸을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한 번 찾아봐야겠다.
소녀의 죽음(메이던스 그레이브)는 사실 중의적 표현이다. 소설 속 여주인공인 청각장애인 멜라니가 청력이 떨어지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잘못 알아들은 단어다. 하지만 인질극 초기에 한 소녀가 죽으면서 소녀의 무덤이 되고, 후반에 또 다른 경찰 희생자가 생기면서 장례식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으로 이용되는 현실과 결합한다. 희생자에 따라 그 단어가 달라지지만 그 죽음을 의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질극을 실시간으로 다룬 소설이다. 인질극을 다룬 영화를 볼 때면 언제나 긴장하게 된다. 인질범들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초반에 그냥 한 소녀를 죽임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인질협상가인 FBI 포터가 악당 핸디와 팽팽한 심리 대결을 펼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는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손에서 떼기가 어렵다. 미국 영화나 소설에서 늘 보아온 연방경찰과 주 경찰 두 집단 간의 내부 알력과 영웅 심리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게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여기에 인질범 핸디의 너무나도 차분한 심리와 농아 인질들의 상태는 그 긴장감을 더 높인다.
만약 단순한 인질극으로 끝났다면 소설은 약간은 심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디버는 자신의 장기인 반전을 심어놓았다. 그 반전은 약간 예상이 되지만 팽팽한 심리 대결 속에 불안감을 고조시켜 놓았고, 잔인한 악당 핸디의 행동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게 만든다. 밀고 땡기고 협박하고 애원하고 어떤 순간은 무모하게 움직이고 어떤 순간은 주저하는 그 순간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현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은 잘 살아있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
디버의 특징이 드러난 첫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의한다. 반전과 속임수,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멋진 악당의 존재와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여주인공은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자주 보던 것이다. 책 소개가 없었다면 인질극이 해결되는 그 순간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링컨 라임 시리즈에 익숙하다면 조금은 예측 가능한 결말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그만큼 그의 특징이 묻어난다는 뜻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열 받는 장면이 있다. 특종에 집착하는 기자들이다.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지만 특종이란 불치병에 걸린 그들에겐 인질이 구출되는 것보다 특종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이미 다른 수많은 장르와 현실에서 기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지만 이 소설 속에서 작전 현장을 몰래 중계하는 모습은 도를 넘어섰다. 덕분에 한 경찰이 죽었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방패 뒤에 숨은 비열한 자기만족이다. 진정으로 용기 내어 보도해야 할 것에는 몸을 사리는 현실을 너무 자주 본 나에겐 순간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디버의 멋진 연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