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1 - 저주의 만파식적
류호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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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상이다. 가끔 한국 장편 장르문학에서 예상하지 못한 수작을 만나지만 기대 이하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책들 속에서 이 소설은 다양한 장르소설을 복제하면서 자신만의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 후기에서 긴 연작의 도입부임을 알리는 대목에선 혹시 ‘퇴마록’처럼 연작 장편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하지만 작가의 현 직업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듯하다.

 

재미있다. 장르문학의 미덕은 재미다. 물론 완성도가 높으면 더 좋겠지만 대부분 재미라는 덫에 걸려 구성이나 완성도를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양산형 장르문학에서 자주 부딪히게 된다. 재미를 추구하다 재미의 근간이 되는 구성이나 완성도를 놓치는데 이 소설은 어느 정도 그것을 극복했다. 초반 도입부와 마지막 마무리까지 비교적 깔끔하게 이루어졌고, 재치 있고 감각적이고 안정적인 문장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기본 구조는 스릴러다. 하지만 주인공의 변신을 보면 무협의 기연이나 서양 영웅물에서 자주 보는 우연한 사고를 연상시킨다. 중반에 윤기준과 대립하는 버넷 이야기는 익숙한 부적절한 실험에서 도망 나오거나 생존한 도망자의 반격을 떠올린다. 무협을 먼저 떠올린 것은 이 소설이 연재된 사이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작용으로 폭주하는 장면이 무협에서 자주 본 연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무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으로 사람을 강하게 하고 지배한다는 생각도 역시 무협의 음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의 개인 취향이 너무 묻어 있은 것 같다.

 

사실 초반은 재미있지만 안정적이지 못했다. 샐러리맨의 일상과 분노와 현실을 그려내면서 폭발한 기회를 만들었지만 그 과격한 일탈은 도가 지나치기도 하다. 특히 악독한 사채업자를 살해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협의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수많은 장면이나 개인의 고뇌를 순식간에 뒤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악당들이지만 그렇게 참혹하게 살해한 그가 느끼는 감정의 불안이나 고통이 너무 쉽게 묻혀버림으로써 너무 그 장면이 돌출된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듣고 괴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부작용을 정신적인 것 외에 다른 육체적 부작용이 없는 것도 조금 아쉽다. 뇌가 신경에 명령을 내려도 육체가 그것을 받쳐주지 못하면 부작용이 따르게 되는데 그 과부하를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 든다. 또 마지막에 등장하는 창조자의 모습은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풀어버림으로써 전체적인 긴장감을 많이 약화시킨다.

 

이런 조그마한 아쉬움 속에 재미난 등장인물과 새롭게 이루어지는 모임은 작가의 거대한 구상을 이끌어갈 시발점인 것은 분명하다. 이 소설에서 연작 장편의 가능성을 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인 격투 장면은 굉장히 재미있다. 박투 무협의 장면 같은데 감각적이고 호쾌한 연출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음악을 듣고 일반인을 뛰어넘은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 차이가 각각의 악행에 의해 나타난다는 설정은 상당히 재미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평범한 한 샐러리맨에서 시작했다는 것과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와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면서 대리만족을 준다는 사실에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점점 해외 장르문학이 많이 번역되고 장르문학이 연재되는 공간이 많이 생기면서 변증법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90년대 초 한국 무협의 거장들이 현대물에 도전하였다가 그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눈 밖에 난 것과 비교하면 이 소설은 엄청난 진보다. 이우혁의 ‘퇴마록’처럼 이 소설도 하나의 지표이자 시발점이 될 지는 다음 작품에서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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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Re-Start Basic : 잉글리시 리스타트 베이직편 - 영어 한 달만 다시 해봐! English Re-Start
I.A. Richards & Christine Gibson 지음 / NEWRUN(뉴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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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영어책을 본다. 십 수 년 만에 영어책을 잡았다. 최근 영어공부가 필요해 단어와 몇 개의 문장 중심으로 간단히 외우는 중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접었던 영어가 단숨에 정상 궤도로 올라오지는 않는다. 뭐 그렇다고 예전에 영어 실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쓰지 않다보니 그렇게 좋지 않았던 실력도 점점 떨어졌다. 영어 학원에 한 번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꾸준히 다닐 자신도 사실 없다. 게으른 자신을 생각하면 약간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게으른 나 자신에게 이 책은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정말 한글은 한자도 없다. 기초 책이다 보니 어려운 단어도 없어 조용히 입으로 따라 읽다보면 과거 기억이 되살아난다. 굉장히 싫어했던 과목이지만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했고, 필요가 사라지면서 점점 멀리 했던 그 언어가 조금씩 다가왔다. 너무 기초적인 것이라 그냥 지나갈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새롭게 의미가 다가오기도 했다. 그냥 속으로 단어를 읽는 것과 입으로 발음하는 것의 차이를 느끼면서 읊조려본다. 어설픈 발음은 귀가 열리지 않아 더 어색하고, 간단한 문장은 익숙하게 느껴지고 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mp3 파일을 다운 받지 않아서 정확한 발음과 귀가 열리는 덕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전철 속에서 열심히 듣게 되면 조금은 더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림과 영어로만 이루어진 책이란 점은 분명 큰 장점이다. 영어 고수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글로 번역하려고 하지 말고 영어로 외우라는 것이다. 예전 학교 교육에서 늘 번역하던 습관이 붙은 나에게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단어가 나열되면 무의식적으로 번역부터 하려고 하니 조금만 길어져도 뒤는 놓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림과 영어를 연상시키다보니 예상외로 번역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 그렇다고 몸에 익은 그 습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끔은 예전 습관이 살아나면서 옛 문법과 비교하려는 생각도 불쑥 나타난다. 이럴 때면 상당히 괴롭다.

 

언어는 분명히 재능에 따라 차이가 난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히 성과는 있다. 흔히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말하라고 하는데 이 책은 만약 mp3까지 다운받아 듣게 되면 그 효과는 더 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을 알지만 실행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이란.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로 사물을 인식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하는데 그림으로 상황이나 장면을 설명해줌으로써 이 효과를 상당히 많이 누리게 된다. 이 책을 선택할 때 기준이 되었던 한글이 없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딱 부합된다. 만약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 나의 영어는 또 회화 책이나 어려운 어휘 책을 잡고 낑낑거리고 있을 것이다. 현재 나의 실력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단계를 넘어가게 되면 현재보다 분명히 실력이 좋아져 있을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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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 정태남의 유럽 문화 기행
정태남 글.사진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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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그렇게 고깝게 보지 않을 때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두 곳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다. 한창 서양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라 그 발상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는 것도 많아지면서 좀더 유연해졌지만 해외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은 곳임은 변함없다. 이 멋진 책에서 만난 로마의 과거와 현재는 일상의 힘겨움에 점점 사그라지는 로마에 대한 열정을 다시 되살려준다. 약간은 투박해 보이는 표지지만 그 내용은 결코 투박하지 않다.

 

모두 열여섯 곳이 나온다. 대부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곳들이다. 그 익숙함이 바로 로마의 유명세와 매력을 나타내는 징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가끔은 영화 속에서 상상에 의해 부풀려진 건축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적만으로도 충분히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찍어서 보여주는 사진들은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직업이 건축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로마에 있는 유적들이 너무나도 멋지기 때문일까? 저자는 대부분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상상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 로마에 살았고, 애정이 가득하기에 유적이나 건축물을 설명할 때 묻어나오는 애정과 부러움이 절절히 느껴진다. 제국의 거대한 유적이 주는 황폐함과 역사는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새롭게 인식되어지는 로마 황제들에 대한 이해와 관련 이야기들은 피상적인 지식이 아닌 경험과 삶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

 

이 책은 일반 여행서가 아니다. 어떻게 찾아가고, 그곳에서 맛있는 것이 무엇이고 등의 피상적인 관광지 감상기가 실려 있지 않다. 아마 그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면 짧은 여행 일정을 짜는데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로마가 지닌 매력을 알게 하는 데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문화기행이란 표현이 탁 맞는 책이다. 저자가 말한 곳 중 몇 곳은 영화나 전설 등으로 인해 유명해져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지만 실제로 와서 많은 이가 실망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게 되면 보이는 것 이상이 드러난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로마 관광지의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 덕분에 쉽게 빠르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차분하고 잘 정돈된 문장과 풍부한 사실과 역사가 담겨있다 보니 생각보다 더디게 진도가 나갔다.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보통의 여행서가 그냥 휙하고 한 번에 지나가는 것에 반해 이 책은 곱씹으면서 음미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매력과 마력의 도시라는 그 말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만약 멀지 않은 시간에 로마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나의 손엔 이 책이 들려있을 것이다. 맛있는 집 안내서나 약도도 같이 가지고 가겠지만 그 관광지와 유적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다른 각도에서 로마를 보게 만들어 줄 것이기에 손에서 놓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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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김이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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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편선을 읽고 난 후 첫 느낌은 한국 환상문학이 점점 좋아진다 였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장르문학 중 판타지는 대부분 대여점용으로 양산되면서 무협과 유사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몇몇 작가의 놀라운 작품이 외국의 판타지에 뒤지지 않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아직 그 층이 얇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단편선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그 불신감을 지웠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모두 10편이다. 판타지와 sf를 다루고 있는데 이 중 다른 작품을 읽어본 작가는 몇 없다. 최근 sf나 판타지를 잘 읽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시선을 끄는 작가가 없었던 것도 있다. 아직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지만 그의 장편에 대한 좋은 평을 들었던 김이환의 ‘미소녀 대통령’은 읽고 난 후 첫 느낌이 장편의 도입부 같다는 것이었다. 이계진입에 은근히 남자의 판타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단편선의 도입부에 적당한 소설이다. 장편으로 연재되고 있다고 하니 그 느낌은 나름대로 정확했던 모양이다.

김주영의 ‘크레바스 보험사’는 재미있게 읽히지만 개성이 없다. 시간의 틈새를 다니는 보험회사 직원들이란 설정이 이미 수많은 판타지 장르에서 본 것이기에 색다른 느낌도 없다. ‘마산 앞바다’는 림보를 다루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시선을 끈 것은 몇 년 전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은 마산을 글 속에 재현한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를 보게 되는 바다의 모습은 화자의 과거와 더불어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마지막 장면은 한 번 읽고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박애진의 ‘문신’은 상당히 흥미롭다. 죄를 지어면 얼굴부터 그 죄를 문신으로 새기는 도시 이야기다. 문신이 없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굉장히 역설적 표현이다. 앞으로 어떤 죄를 지을지 모른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이 기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나 ‘서로 가다’는 특별함이 없다. 요정이야기와 환상을 다루는데 그 마지막 장면들이 강한 인상을 주기보다 약간 식상한 느낌이다.

‘할머니 나무’는 글 중반에 그녀들의 걱정에 대한 답을 예상했다. 하지만 여자에게만 전해지는 나무가 되는 이야기가 저주가 아닌 축복처럼 다루어진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화려함은 없지만 잔잔하게 감정을 풀어내는 재미가 있다. 배명훈의 ‘초록연필’은 재미있다. 이야기를 하나의 시선으로 이끌고 나가지 않아 약간 혼란스럽지만 예언과 그 실현이란 그 결론을 보면서 역시 최근에 본 작가 중 최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초록연필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악마에 대한 예언으로 이어지면서 펼쳐지는 마지막 장면과 문장은 반전이자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이미 그의 단편을 다른 책에서 재미있게 보아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번 소설로 확실히 각인하게 되었다.

‘콘도르 날개’는 3류 영화에서 시작한 환상과 현실을 다루고 있다. 예전에 즐겨보던 영화들의 어색하고 조잡한 장면들이 연상되었다. 은근히 비판을 담고 있어 무난한 재미를 준다. 배명훈과 더불어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김보영의 ‘몽중몽’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보여주면서 꿈속을 헤매게 한다. 쉽게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지만 동시에 어지러운 느낌도 전해준다. 장자의 호접지몽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서로 가다’의 마지막과 비교해도 좋을 듯하다.

전체적으로 모두가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은 수십 년 동안 환상문학을 발전시켜온 외국 작품집을 보아도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들이 실리는 공간이 있고, 책으로 나오면서 발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작품선이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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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미궁
티타니아 하디 지음, 이원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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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팩션이란 사실에 빨리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고 덕분에 끝까지 읽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읽을 때면 그 매력적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긴박한 전개도, 살 떨리는 긴장감도, 천지를 뒤엎는 비밀도 없지만 놀라운 이야기 솜씨로 사람을 끌어당겼다. 모두 읽고 난 지금은 좀더 천천히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입부와 저자의 약력을 보면서 백마술과 관련된 팩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다. 그리고 당연히 주인공으로 생각한 윌이 죽으면서 당혹감마저 심어주었다. 이 대목에선 히치콕의 걸작 영화 ‘사이코’가 떠오르기도 했다. 윌은 죽었지만 그가 남긴 단서와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학문적으로 의문이 있는 세포기억을 다루면서 자신의 장점과 은밀하게 손을 잡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저자는 이성과 역사를 바탕으로 세밀하고 점차적인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과정이 너무 더딘 것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 어떻게 이 소설을 평가해야할지 조금은 난감하다. 매력 있는 이야기와 문장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풍부한 역사 자료와 신비한 수비학은 미스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루시와 알렉스의 로맨스는 약간 더딘 발걸음이지만 점점 더 강하게 이어지고, 이 둘을 둘러싼 음모와 협박은 뒤로 가면서 더욱 재미있어진다. 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빠른 장면 전환이나 긴박한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덕분에 약간 느슨한 느낌도 있지만 한 발자국 물러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단서와 사실과 전설의 인용은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약간 걸림돌이 된다. 몰입을 방해하고 이야기의 가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뭐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가끔은 생략되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처음부터 소설은 적들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중에 휴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때 전 세계에 휴거 열풍이 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약간은 생뚱맞다. 아직도 이 허황된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고.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수많은 근본주의자와 현 미국의 대통령이 강하게 이것을 믿고 있다고. 그리고 악당으로 등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대화는 끔찍한 부분이 있다. 잘못된 종교관과 광신이 어떤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얼마나 무서운 위험 속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다.

 

신화와 전설과 역사를 바탕으로 미스터리하고 환상적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문장은 잘 다듬어져 있고, 억지스런 긴장감과 속도를 위한 장면들을 배제함으로서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뭐 이 때문에 빠른 진행이 돋보이는 소설과 차별화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전설과 사실이 불과 하루 이틀 만에 풀리는 다른 팩션을 생각하면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과 비교해 단점도 몇몇 눈에 들어온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변하고, 복선처럼 깔아놓은 장면이 아무 설명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캘빈에게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악당들의 약간은 연약한 폭력과 더불어 긴장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는 상황들은 생략되거나 좀더 신비하게 만들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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