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 타이 생활기 - 쾌락의 도가니에서 살다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시공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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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히데유키의 책은 재미있다. 그를 우리에게 소개한 <와세다 1.5평 청춘기>로 관심을 끌었다면 그 다음 작품인 <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로 그 이미지를 굳혔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행동과 시각은 그의 별난 삶의 방식과 더불어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정형화된 일본인의 모습보다 어딘가 자유로운 행동과 상상력은 책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그 기발함과 자유로움에 여유를 느끼게 만든다. 그 때문에 항상 그의 책이 나왔다면 시선이 간다.

 

이 책도 나오기 전에 그의 다른 책에서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글 속에 많은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앞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불과 얼마 전에 첫 작품인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대단히 빠른 속도로 출간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 글에선 한국에서 먼저 출간된 책에 비해 재미가 조금 떨어진다. 전작들이 일본이란 나라를 다루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신명나게 펼쳐 보여준 반면에 여기선 타이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삶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 구성이나 서술 방식이 우리가 흔히 접했던 다른 나라 사람의 삶이나 생각 방식에 대해 쓴 글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개성이 많이 사라지다보니 그만의 특색이 많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아쉽다.

 

개인적으로 태국이란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자주 가거나 오랫동안 머문 것은 아니다. 처음엔 패키지로, 그 다음은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는데 굉장히 피상적이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가기 전 태국관련 사이트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갔지만 현지에서 부딪히는 일들은 또 달랐다. 여행객이다 보니 관광지나 번화가에 집중하게 되고, 태국사람과 삶에 밀접하게 부딪힐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런 피상적인 접촉에 비해 이 책에서 보여주는 태국은 분명 뛰어나고 재미난 시각을 닮고 있다. 첫 여행에서 가이드가 한 말과 여행 전 조사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도 많은 반면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타이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무난한 구성과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태국인의 삶이다 보니 많은 점에서 나의 시선과 겹치고, 엇갈리는 장면들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두 나라가 공유하거나 배타적인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같고 다른 시선으로 읽다 보면 재미나고 즐거운 추억이 떠오르고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아마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에 더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저자가 나처럼 단기간 스쳐지나간 사람이 아니라 비교적 장기간 머무르고, 자주 다녀간 사람인 것이나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인 점은 약간 평범한 구성의 이 책에 활기와 그만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지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저자도 후기에서 지적했듯이 급속하게 이 나라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불과 십 수 년 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과 비슷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태국 공포영화가 여름이면 들어와 상영되는데 책 속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두 가지가 연상된다. 하나는 잡지에 시체 사진이 많이 실리고 그 잡지를 보면서 밥을 먹는 여성의 모습과 삐라고 불리는 영의 존재를 둘러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삶과 문화의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인데 왠지 모르게 공포영화 강국으로 느껴지는 태국의 이미지와 이어진다. 타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이 책 속에 나온 많은 이야기를 좀더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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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캐서린 케첨 지음, 정준형 옮김 / 도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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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에 대한 상식이 깨어지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바뀌고, 자신의 기억보다 타인들의 암시에 유도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때 당연히 정확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나중에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 기억임을 알고 놀랐던 적도 있다. 너무나도 선명한 기억들도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각의 기억이 윤색된 것이다. 이것을 그냥 일반적인 현상으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나쁘게 이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놀라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기억이다. 과연 기억은 올바른 것이고 정확한 것일까?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몇 권의 심리학 서적에서 이 소재를 간략하게 다룬 것을 읽었다. 하지만 그 당시는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두 책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이 나온 1994년도 당시 미국 분위기와 최근의 미국 사회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억압이란 단어에서 시작한 기억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심리학 서적을 읽다보면 자주 부딪히는 내용이 있다. 어릴 때 기억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항상 방어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나쁜 기억을 빨리 잊고 싶어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을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게 된다. 뇌가 우리에게 베푸는 최고의 선물이다. 헌데 이 책 속에 나온 치료사들은 억압된 기억을 되살려내어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괴롭힌다. 물론 모든 심리치료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상당히 의도적인 행동이다. 근친상간이나 성추행이 어느 범위까지 인정되어야 하는지 문제부터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 정서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추행 당했다는 수십 년만의 기억 때문에 자신의 부모를 대상으로 거액의 소송을 거는 모습과 이를 부추기는 치료사 등은 정말 놀라운 사회 모습이다.

 

또 하나 놀라운 이야기는 잉그램 가족 사건이다. 딸로부터 시작한 고발이 과학적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엄청나게 큰 사건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한 편의 소설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한 사람 바보 만들기는 쉽다고 하면서 집단적으로 한 사람을 놀리는 놀이와 유사하게 느껴졌다. 폴 잉그램의 딸이 주장한 것들이 사실임을 확인하기보다 자백이란 편리한 방법과 조사하는 형사들의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이런 거대한 비극이 발생한 것을 보면 도시 괴담이 현실화되는 듯하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한 근친상간과 소아성애자와 성추행 때문일 것이다. 이것들은 너무 은밀하고 부끄러워 감히 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발생한 수많은 희생자와 피해자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에 그들은 믿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탄숭배나 끔직한 희생제의가 나왔을 때 의심하고 좀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성보다 감성이나 분위기에 휩싸인 사람들의 일상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책에서도 접한 단어지만 이제는 심리학이나 심리치료가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는 표현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각각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그들이 하는 말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서 막강한 힘을 얻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이런 치료사 등에 의해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거짓말도 여러 번 반복되다보면 진짜처럼 느껴진다는 말처럼 억압이란 단어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 성추행 등을 재구성한 사람들은 진짜로 확신했을 것이다. 환상이 사실의 뼈대 위에 자리를 잡는 경우는 더욱 강력할 것이다.

 

아직 사람의 뇌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다. 많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은 더욱 많다. 놀라운 기억력을 소유한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 우리는 부정확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 부정확한 사실에 약간의 암시와 단서를 제공하면 놀라운 세부 사항과 거짓 기억이 만들어진다. 이 책이 재미있으면서 놀라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원제인 ‘억압된 기억의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이 억압되었다고 말하며 재구성하는 그 시대의 신화를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몇 가지 사례들을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듯한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처럼 기억은 부정확하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몇 가지 단서나 암시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재미있으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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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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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재미가 가득하다. 처음 몇 쪽을 읽었을 때는 조금 밋밋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티베트 투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 바보로 불리고, 바보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여줘 어색함을 느꼈다. 하지만 주머니 속 송곳처럼 바보로 불리는 외피를 깨고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속도도 붙고 재미있었다. 끝까지 읽은 지금도 그의 몇 가지 바보스런 모습은 그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행운과 뛰어난 판단을 가진 바보로.

 

티베트 소설로는 처음이다. 투스라는 지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왕과 같은 권력을 누리지만 정확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왕과는 다르다. 부족장이라고 하기엔 그가 다스리는 지역이 너무 광범위하다. 그냥 티베트의 절대권력을 가진 투스라는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투스의 둘째 아들이 만약 똑똑하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형제간의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바보로 태어났다. 덕분에 그의 아버지와 형은 편안하게 그들 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능력을 보여주면서 고민과 갈등이 생긴다. 재미난 대목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시절은 세계가 격변하던 때다. 티베트 각 지역을 다스리던 투스들이 새로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던 시대다. 이때 주인공 아버지 마이치 투스가 보여준 발 빠른 대응은 그의 통치지역을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신식무기로 군대를 무장하고, 양귀비 재배로 부를 축적한다. 하지만 이 양귀비 재배는 언제나 부를 약속하지 않는다. 거대한 시장인 중국의 상황에 따라 그 가격이 변하기 때문이다. 곡식을 심어야할 곳에 양귀비를 재배한다면 식량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변화의 순간부터 바보는 행운인지 능력인지 알 수 없는 업적을 보여준다. 여기부터 몰입도도 높아지고 재미있어진다. 한 인간의 성장과 시대의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보가 보여주는 행동과 판단은 전혀 바보스럽지 않다. 고정된 사고에 묶여 있던 사람들에겐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독자에겐 탁월한 판단이자 능력이다. 물론 그는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만 보여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타나에게 빠져 정신을 잃고, 갑자기 감정에 휘둘린다. 인간적 약점이 곳곳에 드러난다.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했던 투스의 지위도 순식간의 판단 착오로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누린 지위에 대한 평가는 마지막에 나온다. 투스들의 투스. 그가 이룬 업적과 능력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 또한 시대의 변화 속에선 어쩔 수가 없다. 무지와 감정이 그를 평온하게 놓아주지 않는다.

 

‘색에 물들다’에서 색은 어떤 의미일까? 가장 먼저는 성(性)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성에 눈을 뜨고 미모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와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을 뜻하는 두 색, 흰색과 빨간색으로 이해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과도 같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냥 변화로 생각하고 싶다. 하나의 색이 아닌 시간과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꿈보다 해몽이란 말처럼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화려하지도 않고 정밀하게 계산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은 좋고 재미난 책을 읽었다는 포만감이 생긴다. 한 바보의 성장과 티베트의 몰락을 동시에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변하는 속에서 자신이 변하지 않거나 뒤처지는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와 곳곳에 담겨 있는 풍자는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주인공 바보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 나도 바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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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정끝별 해설, 권신아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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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외우고 있는 시는 거의 없다. 얼마 전 회사 워크샵 가는 중 차 안에서 누군가 외우는 시가 있느냐가 묻기에 머릿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처음에 학교 수업 때문에 읽었고, 나중엔 좋아서 읽었던 윤동주의 ‘서시’가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한동안 읽지 않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가슴속엔 그 시를 읽고 외우던 그 감정이 소록소록 되살아났다. 이 시선집의 제목처럼 가슴에 조그마한 꽃을 피운 것이다.

 

50편의 시가 담겨있다. 내가 읽었던 시는 몇 편 없다. 가슴을 울리는 시도 보이고, 시인의 감성이 나와 맞닿아 있지 않은 시도 있다. 학창시절 수업을 위해 열심히 읽은 시도 보이고, 어느 날 조용히 가슴으로 머리로 다가온 시도 눈에 띈다. 현대시의 처음부터 최근의 시까지 고루 실려 있는데 그 감성들이나 느낌이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다가온다. 전체를 이해하고 느끼지 못하는 시에선 한 문장과 표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한 문장보다 그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에 슬며시 빠져들기도 한다. 오래전 즐겁게 읽었고 외우려고 한 시는 옛 기억을 불러오고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시가 주는 즐거움이다.

 

한 편의 시마다 붙어 있는 해설은 내가 이해하고 느낀 것들과 평론가의 시각과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순히 그 시만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시인을 이야기함으로써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혀준다. 물론 이런 작업이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같이 자주 시를 읽지 않는 사람에겐 많은 도움을 준다. 많지는 않지만 한때 열심히 시집을 읽은 나지만 아직도 시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힘겨워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눈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전문

20대의 나에게 가장 큰 충격과 영향을 준 두 시인 중 한 명인 기형도의 시다. 이제는 그때와 감성이나 삶의 이해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하다. 이 시 선집이 그 시절의 느낌과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시처럼 곳곳에서 옛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시들이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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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고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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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강렬하다. 그 강렬함은 주인공 시점을 따라가면서 빠르고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빠른 장면 전환과 조금씩 밝혀지는 비밀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람을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읽다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기억을 잃은 남자의 행동에선 로버트 러들럼의 ‘잃어버린 얼굴’을, 잃은 기억으로 현실의 잘못을 좇고 파헤치려는 모습에선 영화 ‘토탈 리콜’이 떠올랐다. 그리고 몇몇 장면에선 명확하진 않지만 다른 작가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야기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 가장 중요한 축은 현재 기억을 잃은 나탕이 자신의 기억을 찾는 과정이고, 다른 축은 약 300년 전 일기 한 권의 내용을 둘러싼 해석이다. 이 둘은 처음부터 직접적인 연관성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누구나 두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탕이 어떻게 이 일기를 가져왔고, 이 일기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보통의 스릴러라면 이 일기를 둘러싼 수많은 일이 벌어질 텐데 이 소설에서 그런 장면이 없다. 약간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장 중요한 나탕의 활약은 대단하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면 잘 다듬어진 살인병기 같다. 그의 전력이 궁금해진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부 조직의 스파이 정도가 아닐까 정도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스파이. 하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세계 어느 정보조직도 그를 심각하게 뒤쫓지 않는다. 다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그를 미행하고 납치하려고 한다. 쉽게 그를 살해할 수 있는 적들이 어쩐 일인지 빈틈을 만들어준다. 그 덕분에 그는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왜 죽이지 않는 것일까? 이 의문은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시작은 한 아이가 부모들이 살해당하는 현장에서 공포에 떨면서부터다. 쉽게 이 아이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기억을 잃은 나탕의 과거를 풀어내는 중요한 단서다. 마지막까지 작가는 이 과거를 숨겨놓는다. 그보다 그가 발견한 사실과 그를 쫓는 무리 때문에 과거를 찾고자하는 열망이 가득하다. 여기서 그의 활동범위는 무척 넓다. 유럽 북단에서 아프리카까지 오가며 그는 현대사의 비극을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에야 알았던 수단이나 르완다의 종족 분쟁과 대학살이 여기선 생생하게 그려진다. 불편한 사실이다. 이 사실 속에 허구를 집어넣어 악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이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르포 작가였던 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만약 내가 앞에서 말한 작품들을 보지 않았거나 좀더 이전에 보았다면 놀라워했을 것이다. 같은 프랑스 스릴러 작가인 막심 샤탕이나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비교해도 그 속도감이나 재미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의 향기를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익숙한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다른 작가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다른 존재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거나 마지막에 너무 쉽게 악의 존재가 무너지는 장면은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현재 조금 아쉬운 점은 있지만 다음 작품에선 어떤 재미를 줄지 기대되는 작가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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