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무 양철북 청소년문학 1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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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무는 빗물이 필요하지 않는다. 멕시코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흘린 눈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가! 생존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어가는 멕시코 소년의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보면 남의 나라 일 같지 않다.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존재하는 현실이 우리나라의 동남아 등지의 불법 이민자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먼 바다를 거치거나 입국한 후 사라지는 것에 비해 미국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야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차이다.

 

미국 LA나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만약 중남미 사람들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해 다른 책에서 보았지만 이 책은 한 현상을 통해 보여준다. 청소부의 95%, 농장에서 법정 임금 이하로 일하는 인부들이나 가정부 대부분이 중남미인인 상황에서 그 결과는 놀라울 것이다. 거리와 빌딩은 지저분해지고, 넓은 대지에서 익은 과일과 야채는 썩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정신없는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불법 이민자다. 이민국 경찰의 불심검문에 조심해야 하는 존재다. 이 현실적 괴리가 모순으로 존재한다.

 

15세 소년 주인공 루카를 통해 가난과 불법 이민자의 삶을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다 강도들에게 아버지는 죽고, 미국에 안착한 가족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불안에 떨면서 살아간다. 이민국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예전 소련 영화나 소설에서 언제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자신을 끌고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루카의 이모부가 가족을 외치는 모습에서 이 불안을 넘고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가슴 아픈 장면과 놀라운 사실들을 보여준다. 점점 국경을 넘다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나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라도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멕시코에 존재하는 엄청난 빈부격차와 북미무역협정 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대량 실업 등은 미국 농장에서의 한 장면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미국 법정 임금보다 적은 시간당 3달러가 멕시코에선 하루 일당이라는 사실과 이런 일조차 없다는 사실이 목숨을 건 행동으로 옮기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참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루카가 로스엔젤리스에서 받은 첫 인상이다. 버스에서 내린 그가 만난 사람과 풍경이 멕시코와 너무나도 유사하다.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주변의 식당이나 건물의 풍경 등이 별 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에게 다가온 군 입대 모병자들은 미국이 그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단지 요즘에 생긴 것이 아니라 미국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지속된 행동임을 생각하면 많은 점을 시사한다.

 

현재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풍족한 나라들은 수많은 불법체류자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각 나라마다 사회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이 불법체류자들이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사회 밑바탕을 지탱하고 있다. 이들이 없다면 누가 저임금에 그런 노동을 할 것인가. 일자리가 없다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이들이 받은 급여 수준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들의 존재는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이것만으로 이 문제를 재는 측도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을 이용해서 본질적인 사회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문제다.

 

한 멕시코 소년과 그 가족을 통해 미국과 멕시코의 빈부격차와 외국인 노동문제와 인권을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단지 이 소년의 가족들에게 한정된 일이 아니기에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적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길지 않지만 삶과 생존 그리고 가족의 비극이 잘 어우러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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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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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책마을이란 단어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책마을 행사를 보여주면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나곤 했다. 그들의 언어를 전혀 모르고 실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설렘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책이란 것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유럽 책마을 24곳을 보여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평생 가보지 못할지 모르지만.

 

책마을이란 단어는 한 마을 전체가 전부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예상외로 이곳들의 모습은 단출하다. 예상보다 적은 서점들이 책마을을 이루고 있다. 불과 2-30곳 정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마을에 상주하는 인구를 생각하면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고,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다. 한창 성장하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조금씩 세가 기우는 마을도 있다. 정부나 시 등에서 지원을 받아 잘 운영되는 마을도 있는 반면 자력으로 힘겹게 성장하는 마을도 있어 무척 대조적이다. 또 책마을로 지정되어 실패한 마을도 있다고 하니 이 책에 실린 마을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책하면 두 곳이 먼저 떠오른다. 하나은 크고 작은 주변의 서점이고, 다른 하나는 헌책방이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함없이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근처 서점에서 보자고 많이 말한다. 이런 만남의 장소가 지금은 대부분 대형서점이지만 서로가 지루하게 기다리는 순간을 피하는데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신간에 대한 정보와 수많은 책들은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동시에 읽고 싶은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친구나 연인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을 볼 때면 온라인 시절에도 이 서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게 된다.

 

헌책방은 한때 나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곳이었다. 지금도 가끔 헌책방을 찾지만 예전처럼 자주 가지는 못한다.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헌책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예상외로 가벼웠다. 청계천이나 황학동에서 예상하지 못한 책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편하게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보다 몇 배의 기쁨을 주었다. 그때 모은 절판책들이 다시 출간되는 요즘을 보면 왠지 모르게 즐겁고 뿌듯하다. 이런 와중에 파주에 생긴 출판도시는 나의 환상을 자극하였다. 몇 번을 다녀왔지만 이곳은 특이하고 예쁜 건물이 있는 곳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행사 때나 기분 전환 등을 목적으로 일 년에 두세 번 찾아가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책마을이 아닌 출판사 마을이었다. 이젠 혹시 하는 기분에 찾아가서 역시 하는 기분을 가지고 오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이곳을 추천하는 나 자신을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닌 듯하다.

 

저자는 유럽 책마을 다니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마을뿐만 아니라 책에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를 말한다. 특히 북한에서 조선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해외에 알리고자 6.25 전쟁 직후 펴낸 화보집 내용이 일제 총독부에서 조사하고 촬영하고 제작한 도판을 거의 복제해 수록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부조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경찰 둘이서 초라한 동남아 사내를 난폭한 몸짓으로 몰아세우고 두들기는 광경은 그 나라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기차역이 깨끗해졌다고 좋아라 하는 여론이 있다. 인권보다 위생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 말하며 콩고에서 학살을 자행한 것보다 멸종 위기에 처한 유인원을 애틋하게 그린 이미지로 희석시켰다는 지적은 가슴에 쿵하고 와 닿는다. 인간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서점이나 헌책방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럽 책마을의 서점들은 조금 낯설다. 밖으로 보아서는 그냥 일반 주택처럼 보이는 곳이 대부분이다. 사진을 그런 곳만 찍어서 그런지 아니면 주택을 개량한 서점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상당히 특색 있다. 잘 찍힌 사진과 저자의 설명은 그곳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데 대체로 교통편이 불편하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기세가 꺽인다. 또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은 아직도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남았음을 알게 하고, 나의 가슴 속에 깊숙이 봉인했던 서점에 대한 열망을 북돋아준다. 책 향기 가득하고 책으로 가득한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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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주술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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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악의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마지막을 보면서 역시! 라는 느낌과 브롤린이 주인공인 다음 권에 대한 아쉬움을 가졌다. 작가의 후기를 보면 브롤린과 관련된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맡겨 놓는다고 한다. 독자들의 상상력으로 이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하지만 약간 희망적인 암시를 남긴다. 주연과 조연에 대한 글에서 혹시! 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유명작가들이 열화와 같은 팬들의 요청에 의해 죽었던 탐정도 살려내었으니 그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한 나의 바람일까?

 

3부작 동안 연쇄살인범들은 상상을 초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체절단과 인육에 이어 이번엔 속이 텅 비고 거미의 고치 속에 들어있는 시체로 발전한다. 이 피해자들은 모두 외형적인 수술 자국이 없이 뇌와 내장이 비워져 있다. 그리고 거미줄에 휩싸여 발견된다. 그렇게 많은 거미줄은 현재 과학 수준에서 생산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럼 어떻게 이렇게 가볍고 텅 빈 시체가 만들어지고, 이들을 거미줄로 지탱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지식으론 뇌를 제거하는 정도 밖에 알 수 없다. 답은 여기에서 파생되었지만 얄팍한 지식의 한계로 더 풀어내지 못했다. 거미줄도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되고 있다는 것과 가능성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지식을 덧붙여 멋진(?) 장면을 연출해낸다.

 

악의 삼부작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악의 심연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악에 조금씩 흔들리는 브롤린의 모습이다. 그는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걸어간다. 약간 위험해 보일 때도 많다. 이번엔 그의 텅 빈 내면과 삶이 피해자들의 모습과 묘하게 배치되면서 다가온다. 비워져 있는 것이 다른지만 상실감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모습이 읽는 내내 가슴으로 전해지며 황폐화된 시간과 공간을 연상하게 한다. 이 강한 상실감과 허무함을 채워주는 존재인 애너벨은 활력소이자 가라 앉아 있는 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녀의 활약은 이번 소설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 두 콤비가 어떤 미래를 보여줄지는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이 상상의 몇 개를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건은 1년 전 한 시체가 시체공시소로 들어오면서부터다. 법의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현재 브롤린과 절친한 래리의 동생 사체가 발견된다.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그는 죽어있다. 얼마 전부터 그 숲에서 거미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가 경찰들은 추측한다. 하지만 브롤린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 후 발견된 한 구의 시체는 본격적인 사건의 시작을 알린다. 바로 거미의 고치 속에서 발견된 속이 텅 빈 여자의 시체다. 불과 며칠 전 실종신고가 들어온 여자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살인범을 찾기 위한 경찰 측과 범인의 대결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 범인은 용의주도하다. 곳곳에 살며시 흔적을 남겨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증거를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실과 실제의 차이를 보여준다. 강적이다. 범인은 또 브롤린을 죽음 속으로 몰아간다. 여기서 1년 전 벌어진 사건과 만나게 된다. 이 부분은 예측이 가능한 장면이지만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샤탕은 미로와 함정으로 수사에 혼선을 제공하고, 독자와 경찰은 그 흔적들 때문에 정확한 범인을 추리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느끼고 힘겹다.

 

근래 추리소설은 간결한 문장과 빠른 장면 전환과 영상을 보는 듯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이 소설도 그렇다. 한 번 잡으면 어느 순간 수십 쪽은 그냥 나간다. 자세하고 끔찍한 묘사는 현장감을 느끼게 만들고, 범인과 브롤린 측의 대결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드러난 단서들을 토대로 프로파일링을 한다. 이때 만들어지는 범인의 윤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쇄살인범과 너무나도 다르다. 선입견이 또 하나의 장벽을 만든다. 이 소설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그리고 풍부한 지식과 우리가 가지는 거미에 대한 공포감을 이용한 설정은 사실과 관계없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삼부작으로 이 작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혹시라도 브롤린과 애너벨 콤비의 모습을 다시 볼 날이 오지 않을까 무작정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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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1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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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데이비드 바사미언.하워드 진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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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과의 여덟 번에 걸친 인터뷰를 기록한 책이다. 각각의 주제는 언제나 자극적이고 깊은 사색을 통해 다듬어져 있다. 모두 다른 시간대에 이루어진 인터뷰인데 현재에 대한 우려와 미래에 대한 전망과 희망이 담겨있다. 그 인식의 바탕으로 작용하는 것은 그가 겪은 경험과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낙관하지는 않는다.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사회 구성원인 우리가 모두 행동하고 실천하면서 비판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국민 투표라는 제도와 시위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라는 거창한 주제를 다루지만 협소하게 본다면 미국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를 말하고 있다. 9.11 이후 미국에서 점점 강해지는 안보라는 단어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 부분은 보면서 놀랐다. 그 ‘안보’를 위해서 지문날인을 강요하고, 군비를 확장하고 있는데 정작 삶의 본질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예산이나 노력이 거의 없다고 한다. 국가의 기본이 국민임을 생각하면 그 구성원들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야 하는데 소수의 권력자나 자본가들을 위해 그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또 테러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과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이며 가장 많은 폭격으로 다른 나라 국민을 해쳤는지 설명하는 부분에선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과 미국의 강압적인 폭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데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위해 군사 예산을 확대하였다니 제국주의 군사대국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틴 루서 킹과의 비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마틴 루서 킹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비폭력 저항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많이 말해지는 간디도 역시 절대적인 진리로 인정하지 않다는 지적은 언론이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확대하고 과장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비폭력이란 단어를 행동의 반대말로 사용하여 그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하는 형태가 지금 촛불문화제를 통해 비추어지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많은 점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비폭력 시위가 얼마나 무서운 행동인지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이 한 주옥같은 이야기 중 권력자들이 바라는 바가 잊는 것이란 대목에선 역사와 현실에서 너무 자주 펼쳐지는 일이라 정확한 지적임을 깨닫는다. 불과 몇 년 전 IMF로 나라를 말아 먹은 자가 국가 경제의 수장으로 올라선 현실이나 불과 몇 개월 전 자신들이 말한 주장을 뒤엎고 다른 주장을 펼치는 언론이나 정당들의 행태를 보면 진정으로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면 과연 우리의 미래가 어떨지 암담하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와 사람들이 그 미래에 대한 암울함을 지워주기에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이고 가슴에 담아두어야 한다.

 

우리가 많이 잊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국가라는 개념이 최소한 유럽에선 몇 백 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태생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이 개념을 현대에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개인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아닌가 한다. 두 나라 모두 다양한 민족이나 인종이 만든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국가의 주류는 따로 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최대한 확장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권력 구조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가 스펠먼 대학 졸업 축사에서 곤돌리자 라이스, 콜린 파월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신 마틴 루서 킹, 말콤 엑스, 매리언 라이트 에델먼 등과 평화와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지배집단에 도전하는 훌륭한 백인을 귀감으로 삼아라는 대목에선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모든 논의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인종이나 국가를 뛰어넘어 인간을 평등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하워드 진과의 이 대담을 통해 미국과 현재의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고, 우리가 너무 쉽게 잊으면서 지배계급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바뀐다면 더 좋은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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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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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추리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카쿠치바 전설’의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다. 전작도 긴 세월을 다루었는데 이번에도 백년이란 시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섯 이야기다. 각각 독립되어 있지만 성마리아나 학원의 독서클럽 부원이 기록원이고, 그들이 이 사건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충분히 매력적인 구성과 진행이다. 어여쁜 소녀들과 그녀들의 숨겨진 욕망을 곳곳에 드러내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 편 한 편이 재미있다. 첫 이야기가 펼쳐지는 1969년은 일본에서 과격한 학생운동이 일어나던 시기다. 저자는 살짝 말하지만 밖의 사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학원 내 풍경과 분위기 묘사에 주력한다. 이것은 책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다. 한정된 공간과 여자들만 모여 있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욕망과 사랑이 끝까지 이어진다. 아니 잠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성마리아나 학원 설립자의 프랑스 생활이 나온다. 이것만 예외적인 상황이고 나머지는 이것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묻혀있던 암흑의 과거사와 함께 드러난다. 유쾌하면서 변덕스러운 여학생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학원소설의 장점이 무엇인가? 밝음, 청춘, 기발함, 열정 등이 아니던가! 10대 여학생들이 자신들만의 성곽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던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짜 왕자다. 그의 성별은 여자다. 하지만 여자만 있는 곳이니 우상으로써의 남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가짜 왕자를 축제 때면 선출한다. 대부분 이 왕자는 연극부의 아름다운 소녀들이 선택된다. 긴 세월 속에 어떻게 한 단체가 독주할 수 있겠는가? 이 변수들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백년이란 세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만 뽑아놓은 것이니 재미난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소녀를 위한”이 아닌 “청년을 위한”이란 제목이 생긴 것 같다.

 

책을 읽다 놀라는 장면 중 하나는 독서클럽의 학생들이 원서를 읽고 있는 장면이다. 영어도 있지만 불어를 읽는 모습이나 현대 영어가 아닌 고문으로 된 책을 읽는 모습에서 그들의 수준에 놀란다. 그리고 왕자를 만들어내는 첫 이야기는 과거라는 시간 속에 펼쳐진 현대의 이미지 전략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모습과 장면을 연출하여 그를 추종하는 무리를 만드는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시울을 붉힌다는 여고생들이 이 멋진 대상에게 환호성을 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약간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의심도 해보지만 열광적인 팬들이 매체에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카쿠치바 전설’을 정신없이 읽었다. 푹 빠져 있었다. 이 소설에도 약간은 그런 기대를 하였지만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섯 이야기 때문인지 그때처럼 빠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재미있다. 각 이야기마다 나오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 암흑사를 기록하는 클럽 부원의 코드네임도 재미있다. 지우개 탄환이니 양성구유 시궁쥐라느니 소도구 말 목 등으로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백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기록된 암흑의 독서클럽지엔 얼마나 많은 재미나고 즐거운 이야기가 실려 있을까? 몇 개 더 추려서 실어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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