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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자선 뒤죽박죽 걸작 단편집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이 단편집에 실려 있는 몇 편은 이미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이다. 그 당시 이 기발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묘사에 굉장히 놀랐다. 그의 소설 몇 편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어떻게 보면 대충 써내려간 듯한 글이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모두 여덟 편의 이야기가 있다. 한 편 한 편이 강한 인상을 준다. 읽을 때 기발한 상상력에 웃음을 띠고, 읽고 난 후 그 속에 담긴 의미에 다시 생각에 잠긴다. sf소설처럼 느껴지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장면도 많다. 블랙유머와 난센스가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과정에서 단순함은 힘을 발휘한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전개는 빠르게 읽히고, 그 재미난 상황들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덕분에 모두 읽고 난 후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8편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역사를 배경으로 한 ‘야마자키’와 ‘망엔 원년의 럭비’는 취향과 조금 거리가 있다. 특히 ‘망엔 원년의 럭비’는 제목에서 계속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만연원년의 풋불’을 연상하게 만든다. 물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야스타카가 혹시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살짝 비틀어 표현한 제목이 아닐까 상상하게 한다. 이 두 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일본역사에 무지한 것도 이유지만 풍자나 상황이 기발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행세계’는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그 기발함이 작품 전체에 완전히 녹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머지 다섯 편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은 ‘급류’, ‘최후의 끽연자’, ‘혹천재’다. ‘급류’는 시간과 현대인의 삶을 희화시켜 드러내는데 절대적 시간이 점점 빨라지면서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최후의 끽연자’는 흡연자에 대한 혐오와 사회분위기 속에서 끽연자 마녀사냥이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마지막 반전이 유쾌한 즐거움을 준다. ‘혹천재’는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문제에 대해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아이의 성적과 미래를 위해 혹을 달려는 엄마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그 속에 담겨있는 모순과 자기기만이 멋지게 드러났다. 유행이란 흐름에 휩쓸린 수많은 우리 어머니들이 생각난다.
‘노경의 타잔’은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타잔의 일탈이 섬뜩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상실의 날’은 한 동정남의 하루를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좋아하는 그녀와의 성교를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돌출적인 행동과 과도한 기대는 희극화 된 청소년 영화에서 자주 본 장면이라 낯익다. 그리고 마지막 상실의 순간 생각의 변화는 그가 지닌 순진함이 잘 드러난다.
자선 단편집이란 이름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취향 탓도 있다. 그의 단편을 즐겨 읽고 좋아하는 나에게 이 단편집은 읽는 동안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이전에 다른 곳에 읽은 내용이 다른 제목으로 번역된 점은 조금 아쉽고, 각 단편의 출간 연도가 나온 것은 상당히 반갑다. 세련된 느낌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 거침없고 간결하고 극단적인 묘사에 한 번 빠지면 정신없이 읽게 된다. 아직은 그의 단편이 중편이나 장편보다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