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이케이도 준의 소설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전에 그의 소설을 몇 권 사 놓고 묵혀 두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 절판되었다. 나의 게으름 덕분에 득템한 느낌인데 문제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소설도 4권까지 모두 사 놓았는데 이제 겨우 1권만 읽었다. 나머지 3권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언제 읽을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엄청난 가독성을 자랑하는 책이다 보니 마음먹고 읽으면 1~2주일 안에 다 읽을 수 있을 테지만 다른 밀린 책들을 생각하면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미래는 알 수 없지 않은가.


일본에서 시청률 42.2%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수치다. 한참 일본 드라마를 볼 때 20%만 넘어가도 초대박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시청률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큰 착각을 했다. 이 드라마가 80년대 나왔을 것이란 착각이다. 한국 드라마도 요즘 시청률 40%가 거의 없지 않는가. 아닌가? 주말이나 일일드라마를 제외하면 거의 보기 힘든 시청률로 알고 있다. 이 대단한 기록을 한 드라마의 원작이라니. 그리고 최근에 몇 권 읽은 작가의 작품들이 지닌 가독성은 또 어땠는가? 1권이 나오자마자 받아 놓고 묵혀 두고 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취직이 잘 되던 시절 일본 명문대학 게이오 출신 한자와는 산업중앙은행에 입행한다. 취직이 잘 되던 시절이라고 해도 들어가기 힘든 곳은 언제나 존재한다. 금융권이 그런 곳 중 하나다. 입사가 내정된 후 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묶어 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낯선 모습이다. 이때가 1988년이었다. 그 후 산업중앙은행은 거품경제 이후 도쿄중앙은행으로 합병되었다. 은행 합병은 우리에게도 낯선 모습이 아니다. IMF 이후 한국의 많은 은행들도 망하고 합병되었다. 작가는 이 사이 있었던 이야기는 생략하고, 이야기 중간중간 한자와의 동기들 이야기를 넣는다. 시대의 변화를 알 수 있게 만드는 설정 중 하나다. 그리고 이 동기들 중 한 명이 본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한자와에게 보내 미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게 만든다.


처음 제목을 보고 ‘한자’ 와 ‘나오키’ 두 사람을 떠올렸다. 한자와가 성이다. 나오키는 당연히 이름이다. 한자와는 오사카지점 융자과장으로 발령난다. 사건이 터진 것은 그가 일하던 중 그가 거쳐간 서부오사카철강 대출이 부도난 것이다. 서부오사카철강은 오랫동안 은행에서 새로운 거래를 뚫어려고 하다 실패했는데 지점장 아사노가 단번에 뚫은 거래처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재무제표를 검토해야 했는데 지점장이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5억 엔 대출을 성사시켰다.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 대출 책임을 지점장이 한자와에게 모두 전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한자와는 분노한다. 그리고 이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의 공은 가져가고, 과는 전가하는 일이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자와는 반발하고, 이 대출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파고든다. 새로운 사실들이 나올 때마다 왜 지점장이 자신이 아니고 신입 행원을 데리고 갔는지, 왜 그렇게 서둘러야만 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가공 매입을 발견한다. 이 거래처 사장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고 둘은 사라진 서부오사카철강의 사장 히가시다를 쫓는다. 내부에서는 한자와를 파멸시키려고 하는 노력을 저지하고, 외부에서는 히가시다를 찾아 채권을 회수해야 한다.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은행 내부 감사가 오고, 일방적으로 한자와 잘못으로 몰려고 하지만 결코 한자와는 수긍하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직장인의 한 명으로써 이 모습을 보고 속이 시원해졌다. 물론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통쾌한 복수극이다. 그 과정에 어떤 음모가 있는지, 숨겨진 사람의 정체도 쉽게 알 수 있다. 한자와의 기지와 대범함이 합쳐져서 만들어내는 복수는 어떤 순간에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수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기에 섬뜩함을 느낀다. 흔히 하는 말로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리고 프롤로그에 작은 거짓말을 하나 심어 놓았는데 에필로그에 이것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독한 인물이다. 다음 권의 줄거리를 보니 또 새로운 부당한 업무가 내려졌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갈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림의 연인들 안전가옥 쇼-트 18
김달리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전가옥 쇼트 18권이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빌런> 속 ‘우세계는 희망’에서 처음 만났다.

이번 소설은 메타버스 속 부부와 현실의 부부 사이의 문제를 다룬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모두 세 명이다. 다미, 석영, 초영 등이다.

이 세 명이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대단한 건축가 고선의 딸 고다미가 있다.

그녀의 남편 석영은 메타버스 밀림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 결혼의 대상이 바로 닉네임 초코페인 이초영이다.


다미와 석영의 신혼 여행 이야기는 그들의 환상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환상은 에단 호크 주연의 <비포 선라이즈>이고, 현실은 석영이 다미처럼 부자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석영은 아주 잘 생긴 남자고, 다미는 그를 사랑한다.

이 둘은 서로 사랑했다. 이 사랑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은 두 집안의 경제적 차이 때문이다.

다미에게는 별것 아닌 것이 석영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석영이 부모의 집 사기에 휘말린 것이다.

아내가 잘 차지 않는 보석 중 하나를 팔려다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알게 된다.

이 사실이 아내에게 알려지면서 생기는 문제는 석영의 가슴에 큰 상처가 된다.

물론 이런 일이 있다고 부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다,


석영은 메타버스 밀림의 플랫폼 직원이다.

이 밀림 속에 직원들은 누구나 하나씩 비밀 계정을 가지고 있다.

결혼한 유부남이 다른 팀 사람과 게임 속에서 부부 사이로 지내기도 한다.

석영은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에서 이 밀림에 접속해 돌아다녔다.

우연히 초코페라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다른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우연한 만남과 메타버스 속 마약의 사용은 쾌락을 극대화시킨다.

단순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것은 이런 가상 현실 속 만남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현재의 기술이라면 그냥 하나의 놀이로 볼 수 있지만 미래는 또 다르다.

현실과 별 차이 없는 메타버스가 그들의 육신과 정신을 거의 동기화시킨다.


석영이 늘 초코페를 찾고, 말하는 햇수가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다.

현실의 불만족을 메타버스 속 여성에게서 대안을 찾고 만족한다.

이 메타버스는 성인들만 가입이 가능한데 늘 그렇듯이 미성년자들이 부모 아이디를 도용한다.

이들은 밀림 속에서 매춘 등을 하면서 돈을 번다.

초코페 이초영도 이런 미성년자 중 한 명이다.

석영은 초코페가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만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초코페는 나타나지 않았고, 초영의 부모가 석영의 정체를 알고 나타났다.

이유는 이 부부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속셈이다.

다미는 합의금 몇 억을 주는 것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더 우선이다.


이 세 명의 남녀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간다.

어느 순간은 그 감정이 밖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이 감정에 완전히 휘둘리지는 않는다.

밀림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약의 유통을 막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마약이 그들의 중요한 수익원 중 하나다.

마약을 먹고 하룻밤의 쾌락에 빠지는 남녀들이 수없이 많다.

다미도 밀림에 가입해 이런 쾌락 속에 빠진다. 이 부부 뭐지?

현실의 불만을 메타버스 속에서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 쾌락은 한정적이다.

여기에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충족하려는 시도가 현실과의 경계를 지운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런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길지 않는 이야기는 메타버스란 가상 공간과 현실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이 바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해 사랑을 갈구한다.

다미는 자신의 눈앞에서 죽은 엄마를, 낳지 못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초영에게 투영한다.

석영에 대한 사랑을 다른 사람과의 원 나이트와 그의 모습을 덧씌워 해결한다.

초영은 다미의 거대한 부에 끌린다. 영악하게 자신을 포장한다.

반면에 석영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들의 감정과 행동이 뒤섞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간결하게 처리된다. 아쉬운 대목이다.

더 깊이 파고들어 심리적인 문제들을 더 강렬하게 부각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실제 미래에 이런 메타버스가 생긴다면 나의 선택을 어떤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 피플 상상초과
김구일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빌런> 중 ‘송곳니’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기록을 보면 이 앤솔로지 중에서 가장 흥미 있게 읽었었다.

작가의 이력과 장르와 출판사 브랜드가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특히 초능력이란 단어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그리고 이 초능력이 한 박사의 유전자 조작의 결과라고 할 때 눈이 더 반짝인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읽는데 단편과 다른 구성과 설정이라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넣을 수 있는데 많은 가지를 쳐낸 느낌이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아주 현실적이다.

제로가 다른 사람이 먹다 남긴 음료수를 받아 마시고, 카페 남자 화장실에서 대충 씻는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는 부주의한 손님의 테이블 위 노트북을 들고 나온다.

이때 그를 본 한 손님이 말한다. 자리를 치우고 가라고.

이 신형 노트북을 가지고 고물상 하는 김 사장을 찾아간다. 장물이라 겨우 30만 원을 받는다.

김 사장은 이런 도둑질 말고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제로는 마더를 기다리고, 돌봐야 할 친구 원, 투가 있다.

이 아이들은 버려진 마을의 폐가에 모여 조용히 살아간다.


몇 년 전 무더위 속에 이 소년들이 집밖으로 나가 은행에 간 적이 있다.

시원한 바람, 시원한 정수기 물, 구걸로 얻은 돈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그들을 협박하고 때리고 가두는 어른들이 있다.

겨우 십 대 초반인 이들은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갇혀 있었다.

제로의 관찰력으로 탈출하는데 들킨다. 이때 그들을 숨겨준 인물이 바로 김 사장이다.

이 세 소년의 정체는 마더는 오지 않고, 투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밝혀진다.

투는 당뇨병을 앓고 있고, 지속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제로가 택시를 잡아타고, 마더가 근무하는 강원도 세온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이 세 소년이 유전자 조작과 그 부작용의 결과물이란 사실이 알려진다.

물론 이것은 마더 자영과 그녀를 통해 이 아이들을 찾으려는 윤철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열다섯 소년들이 가진 초능력은 특별하지만 세상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제로는 외견상 별다른 문제가 없고, 탁월한 두뇌와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원은 괴력을 발휘하지만 햇볕을 쬐면 몸에 이상이 생기는 모양이다.

투는 아주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어 멀리서 나누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지만 당뇨병 환자다.

이 능력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무적이겠지만 이들은 아직 그 활용에 서투르다.

그리고 윤철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이 능력은 한정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윤철이 권총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행동에 제약에 걸린다.


작가는 한정된 공간과 사람들을 그렇게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넣었다.

재밌는 것은 박성호 박사의 연구에 반대 데모를 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이다.

이들이 제로 등의 존재를 알고 접근해서 아이들을 자기 종교의 희생자로 만들려고 한다.

외롭고 힘들게 산 아이들에게 그들이 보여준 따뜻한 행동은 원과 투를 사로잡는다.

물론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제로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윤철 일행이 나타나고, 이들은 같이 마주하고 싸우고 도망친다.

이때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바로 김 사장과 명주의 딸 소이다.

이 이전에 명주와 제로의 에피소드가 몇 번 등장해 이 상황을 설명한다.


상당히 좋은 가독성으로 빠르게 끝까지 달려가게 한다.

예상을 뛰어넘은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윤리와 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사람도 있다.

몰랐던 자식이 나타났지만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도 눈길이 간다.

누구는 자신이 만든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반전을 설계하지만 그 반전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야기가 생략된 부분의 아쉬움을 이런 상황들이 채워준다.

빠른 진행과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낸 부분은 아주 매력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정은영의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이후 두 번째로 읽는다.

이 얇은 단편집에는 두 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산책>과 <경유지에서>이다.

이 두 편 모두 짧은 단편이라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 취향만 놓고 본다면 이번 단편집이 더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장르는 분명 SF인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장이니 이야기는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


<산책>은 신도시로 이사 온 여경의 집에 집들이 온 윤경의 시선을 담고 있다.

단지 안에 수목이 십 미터도 넘고, 각 동 사이의 간격도 상당히 떨어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한다.

실제 신도시 아파트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지만 서울 아파트와는 사뭇 다르다.

단지 속에 쉼터가 있고, 집밖을 조금만 나가도 쉽게 산책할 수 있다.

더 넓어진 공간, 높아진 삶의 질. 하지만 서울까지의 출퇴근 시간은 더 늘어났다.

집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한국인에게 이런 좋은 장점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집값이다. 강남에 대한 환상이다. 씁쓸한 대목이다.


<경유지에서>는 읽으면서 이화의 행동에 놀랐다.

초급반 영어 강사 에릭에게 자신의 집 주소와 문 비밀번호를 쪽지로 전달한다.

능청스럽게 에릭은 빈집에 들어와 누워 있는다.

이 둘은 길지 않은 시간 동거한다. 이화의 이런 행동은 무엇 때문일까?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찾아온 거대한 상실감 탓일까?

이화는 에릭의 작은 일탈들을 그대로 받아준다.

제대로 거절할 줄 모르는 그녀의 삶이 만들어낸 현실적 대응이다.

에릭은 또 어떤가? 그는 영어 사용자란 것 하나만 믿고 동아시아를 돌아다닌다.

한국 영어 시장의 현실과 한 여성의 상실감이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 흔들리고 지친 이들에게 산티아고가 보내는 응원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손미나의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출간 목록을 찾아보니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다른 책들의 표지가 낯익고 몇 권을 사 놓은 것 같은데 읽은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선 순위가 계속 밀려 읽지 못한 모양이다.

이 책도 한때 나의 산티아고 순레길 열정이 없었다면 밀렸을 것이다.

팬데믹 이전, 작가처럼 프랑스길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상상을 했다.

한때 산티아고 순례길 예세이나 팟캐스트를 아주 열심히 읽고 들었다.

이 책에서 그 이전의 흔적을 살짝 바랐고, 그 열정을 다시 깨우고 싶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그때의 열정은 많아 수그러들었고, 불완전한 기억으로 계속 비교하면서 읽었다.


홀로 간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다.

일본인 사진작가 레이나, 청년 영상감독 이지환 군이 함께 한 일정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했다고 그녀가 걸은 800킬로미터를 대신 걸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동행자들이 그녀의 순례길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작가와 자연풍경을 멋지게 찍은 사진작가가 레이나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함께 한 일행과 그 길을 어떻게 느끼고, 즐기고, 힘들어 했는지가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에세이 속에서 생략된 그들의 감상은 어쩌면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은 어느 순간 글보다 더 강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중요한 책도 있고, 순례길 정보에 집중한 책도 있다.

이 책에도 나온 배낭의 무게 부분은 많은 배낭 여행자들이 하는 말이다.

버리고 가도 될 텐데, 가지고 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잠깐 배낭을 들고 다닐 때 결코 느낄 수 없는 일이 이 순례길에서는 생긴다.

여행이 길어지면 점점 더 많은 것을 내려놓고 걷게 된다고 한다.

좀 걸어본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500미리 물 병 하나가 나중에 얼마나 무겁게 다가오는 지 알게 되는 그 순간도 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이 책에서는 자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힘든 길임에는 분명하다.

800킬로미터면 서울 부산 왕복 거리다. 40일 동안 걸어서 완주해야 한다.

다른 책에 의하면 이 길을 한 번에 걷지 않고 나눠 걷거나 필요에 의해 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평지만 걸어도 쉽지 않은데 그 길이 경사가 심하고, 비와 땡볕 속에서 걸어야 한다면 어떨까?

아름다운 풍경도 육체의 피곤 앞에서는 가끔 그냥 풍경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그 풍경이 잠시 그 육체의 고통을 지워주는 순간도 있다.

이런 순간을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풍경은 한국에서도 본 것 같다고 느껴진다. 착각일까?


이 힘든 길을 걸으면서 작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가끔 자기계발서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나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과 나름의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많지는 않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개도 좋았다.

특히 열 살 아들과 함께 마지막 코스를 걷는 엄마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감히 나라면 시도조차 못할 일이다. 그 짜증을 어떻게 온전히 다 받아낼 것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나와 아이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은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자기계발이나 그 길에 대한 간단한 감상 등을 원한다면 나쁘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힘든 여정은 삶의 과정 중 한 부분이다.

한국 도착 후 부은 다리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이고, 어중간한 거리는 걷는다는 부분에 눈길이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