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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집 책장에 동생이 사놓은 것은 읽었던 것이 처음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이 책이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책인지 몰랐다.
당연히 그냥 재밌게 읽었던 기억만 난다.
그 후 이 책에 대한 호평과 극찬을 보면서도 솔직히 그렇게 공감하지 못했다.
아마 책 속 재판 장면이 그 당시 읽던 법정 스릴러보다 덜 자극적이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재판의 이미지 때문에 다른 부분의 재미를 놓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러 다시 읽은 지금 다양한 재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도 재미가 더해진 이유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항의 여파 속에 있었다.
<분노의 포도>를 읽으면 이 당시 모습을 아주 잘 볼 수 있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한 작은 읍 메이콤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친다.
아직 인종차별이 당연한 듯 시대였고, 남부는 더 심한 곳이었다.
흑인들만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고, 인종적 편견이 가득했다.
백인 여성 강간으로 기소된 흑인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공교육이 시행되는 중인 것 같다.
이 공교육 시행으로 인한 초기 혼란은 이야기 앞부분에 잘 나온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스카우트에게 선생님이 한 말에 그대로 드러난다.
아빠가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니 더 이상 가르치지 마시라는 말이다.
황당한 말과 체벌 등은 그 시대의 한 면은 잘 보여준다.
스카우트는 오빠 잼과 함께 노는데 여름이면 딜이 와서 같이 논다.
어린 이 세 명의 아이들이 노는 장면들을 보면 <톰 소여의 모험>이 떠오른다.
자신들만의 놀이 방식을 개발해서 재밌게 논다.
이 마을 아이들 사이에는 스카웃 앞집인 부 래들리 집에 대한 괴담이 있다.
그 집 근처만 가도 아이들은 공포에 질리고, 문을 두드릴 생각조차 못한다.
무섭지만 허세를 가진 잼은 용기를 내어 문 앞까지 갔다가 급하게 돌아온다.
스카웃은 이런 오빠를 놀리지만 그녀와 딜 또한 무서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 앞 나무 속에서 껌과 고장난 시계 등이 나온다.
누가 이 물건들을 그 속에 놓아 두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무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구멍은 시멘트로 메꾸어진다.
스카웃이 화자로 등장해 3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초반은 젬 오빠 등과 재밌게 놀고 모험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이 마을 사람들의 상황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아버지 애티커스가 이 남매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도 조금씩 드러난다.
광견병 사건이 터졌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뛰어난 명사수였는지 알지만 그뿐이다.
아버지는 인종적 편견이 없고, 아이들이 선입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길 바란다.
50대인 아버지는 아내가 죽은 후 홀로 살면서 흑인 캘퍼니아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 키운다.
바쁜 아버지 때문에 흑인 교회에 간 장면은 다시 이 시대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높은 문맹률, 생존을 위한 흑인 공동체의 모습, 백인에 대한 배척과 두려움 등.
한 편의 법정 스릴러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 장면이 톰 로빈스의 재판이다.
이전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 있던 장면인데 세부적인 상황이 기억과 달랐다.
법정은 흑인과 백인의 방청 구간이 나누어져 있다.
스카웃 등은 1층 백인 자리가 없어 2층 흑인 구역으로 가서 방청한다.
딸이 흑인 톰에게 강간 폭행당했다고 유얼 가족들이 신고했다.
보안관이 딸이 폭행당한 후의 장면을 봤고, 톰을 체포했다.
이 사건에 대한 법정 공방은 아무리 나쁘게 봐도 톰의 무죄가 확실하다.
아버지가 변론한 내용들은 톰의 무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하지만 백인 배심원들은 톰의 유죄를 선고한다.
이 장면은 이후 법정 스릴러에서 다른 방법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1930년대 대공황과 인종 차별 속에서 한 소녀의 성장을 그려내었다.
아직 그 시대의 가치관 등이 집안에 그대로 드러난다.
말괄량이 소녀인 그녀의 행동과 말은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진 루이자의 울음 장면들이 이번에는 쏙쏙 눈에 들어온다.
인종 차별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하는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 애티커스.
아버지가 보여준 냉철함과 피곤함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나타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 이 과정 속에 있는 우리란 주장은 가슴에 새겨둬야 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원칙적인 모습과 낙관적인 태도는 왠지 불안하다.
마지막에 스카웃이 부의 집 현관에 서서 역지사지를 깨닫는다.
한 소녀가 일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자 독자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