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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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노안인 사람들을 주요 독자로 정하신 건지요^^;; 드넓은 행간을 쉬엄쉬엄 돌아가며, 생각하며 읽으라는 깊은 뜻으로 알겠습니다~ ㅋㅋ
오히려 글자가 컸던 중세의 책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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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1-02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이 바로 중세를
깨뜨린 도끼 같은 그런
책인가요.

초란공 2024-11-02 11:13   좋아요 0 | URL
뭔가 수백년 된 금서를 받아본 느낌인데요? ㅋ 글자가 커서 안경을 벗고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
 
AI와 살아가기 위한 기초 지식 - AI 개념부터 위험성과 잠재력, 미래 직업까지 AI 세상에서 똑똑하게 살아가는 법
타비타 골드스타우브 지음, 김소정 옮김 / 해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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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기술은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거울

- AI와 살아가기 위한 기초 지식

 


타비타 골드스타우브 지음 | 김소정 옮김 | [해나무] (2024)

 




AI와 살아가기 위한 기초 지식을 읽으면서 간간이 새롭게 깨닫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AI에 대해 독자에게 이야기해주는 저자 타비타 골드스타우브가 공학도가 아니라 어렸을 때 게임에 심취했던 평범한 여학생이었지만, 이내 AI 기술과 영향력을 잘 이해하고 이를 사업으로 만든 스타트업 기업가가 된 인물이다. 또 한 가지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백인)남성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기술·공학의 세계에서 성평등의 입장을 분명히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운동장 전체를 다시 평편하게 만들려면 꽤나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한 가지 놀라웠던 부분은 AI의 기반이 되는 연구분야에서도 이미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활약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사에 꽤나 관심을 갖고 읽어왔다고 자부하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 이론의 선구자로 여겨진 존 폰 노이만이 부인과 공동 연구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이 사실을 처음 접했다. 그만큼 한쪽 세계의 진실은 아주 두터운 장막으로 가려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천재적인 수학자로 나오는 조앤 클라크도 실제보다는 튜링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유로 크게 부각되었던 캐릭터는 아니었다. 또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천재적인 계산능력을 보유했던 흑인 여성들이 NASA에서 연구하기 위해 포트란을 독학하고, NASA의 전산원을 이끌기까지의 이야기는 상당히 짜릿한 쾌감마저 주었던 기억이 났다. 인종과 성차별이라는 두터운 벽과 맞서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낸 흑인 여성 연구원들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었던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듯 AI와 관련하여 일반 독자가 알아야 할 사실들을 알려주면서도, 동시에 크게 기여했고, 지금도 기여하고 있는 여성 과학자들을 소개하거나 함께 나눈 대화를 제시한다. 저자의 관심사와 입장이 아주 분명한 AI소개 책인 셈이다.

 


저자는 AI분야가 자신의 모든 열정의 근원인 듯 이야기하면서도, AI기술이 인간에게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사실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 점인데, 우리는 이미 AI기술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저자가 언급한 위험과 언제든 가까이 있기도 하다. 결국은 인간이 이러한 기술 그 자체와 본성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AI기술이 결국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이란 생각에 가 닿는다. 기존에 생성된 텍스트에 의존하여 학습하는 경우, 이미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문서들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 기계가 학습하여 내놓는 견해는 이미 이러한 차별적인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이치다. 여전히 AI가 내놓는 결과물은 인간의 편견과 착오로부터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지나치게 AI기술에 대해 우려를 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AI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 그 자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깊은 심연 속에 꽁꽁 숨어 있는 어두운 본성에 회의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자, 공학자들이 좋은 의도로 연구를 하고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기업가나 정치인들이 이를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은 무용지물이 아닌가. 그리고 나의 이 우려는 인간의 역사 이래 꾸준히 우리 자신을 어김없이 공격해왔다.


AI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요소가운데 내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것이었다. 누구나 한번 쯤 셀피 앱을 사용해보았을 테다. 이 앱으로 재미있는 표정이 담긴 자신의 사진을 가상 공간과 인터넷에 올리게 되면,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는 이 이미지들을 학습하고 훈련하여 신원 확인에도 사용될 수 있는 셈이었다. 저자는 이 기술을 법 집행 기관에 판매했다는 기사를 언급했는데, IBM도 사용자들의 분명한 허락을 구하지 않고 플리커에 올라온 사진을 이용하여 얼굴 인식 앱을 훈련한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말하자면 AI기술은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길거리에서 보이는 이의 신원과 그 밖의 사생활을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겁부터 낼 필요는 없다는 주장에는 수긍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실현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 이런 상황이 사생활 침해의 문제에서만 끝날 것 같진 않다. 이런 현실에서 건강 정보와 같은 개인정보가 보험이나 취업, 진학 등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AI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이를 전파하고자 하는 저자가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어쩌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은 오히려 우리가 어떠한 기술을 다루고 있으며, 어떤 위험성과 이로운 점이 있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통제해야한다는 입장에 더 가깝다. 여기에 이 과정에서 저자는 다양하게 AI기술을 고민하는 과학자, 공학자, 커뮤니케이터, 작가 등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여러 여성 지식인들이 기대하는 '부드러운 기술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여전히 우려스럽다. 그 이유는 이 모든 기술과 지성의 결과물들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하는 주체가 기업인과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된 노동과 반복 작업을 줄이고자 훌륭한 도구를 발명하고 개선해왔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00년 전에 일주일 걸려야 할 수 있었던 이들이 이제는 단 한 시간에 해결이 되기도 한다. 그럼 인류는 이 일주일에 가까운 잉여 시간을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쓸 수 있게 되는가의 문제다. 우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축한 시간만큼 노동자는 더 많은 일을 하여 생산성을 높일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좁은 소견에 따르면 인간이 개발한 좋은 기술들은 대부분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사용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가장 큰,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3차 기술 혁명이든, 4차 기술 혁명이든 그 국면이 매번 바뀐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결국 우리 인간에게 놓여 있다. AI기술 역시 결국은 급변하는 기술문명 시대에 인간은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는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화두가 아닐까 싶다. AI기술과 관련한 논의가 과학자와 공학자들만의 것이 아닌 까닭이다. AI 관련하여 철학자를 비롯한 인문학자들이 활발하게 연구에 참여하고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이 본질적인 문제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결국 AI는 인간이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처우하며 살아갈 것인가의 철학을 반드시 수반해야한다는 명제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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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차별적인 AI의 등장이 우려되긴 하네요.ㅠㅠ 어차피 인공지능ai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이니까요.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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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흑역사 속에서 희망 찾기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북하우스] (2023)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는 기자인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자가면역 기능의 이상에 의한 뇌염이 조현병이라는 오진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할 뻔했던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진단을 한 의사들이 보기에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경우, 책임감 있고 주의력 있는 의사의 노력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뇌염을 판정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은 결코 사소한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와 닿아 있었다.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거울삼아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의 차이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후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기관을 통해 끊임없이 세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어느 시기부터는 자연을 바라보며 모든 존재에 이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분류하기로 이어졌다. 어떤 기준에 따라 대상을 비슷한 것 끼리 연결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속성을 지닌 존재끼리 모으면 자연스럽게 차이가 드러났을 것이다. 이 과정은 모든 인류에게 가장 기본적인 세계 이해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든 존재에게 나름의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곧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는 개체와 집단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인 셈이다.


 

우리는 인류사에서 자연에 이름을 붙이고 대상을 분류한 대표적인 사례를 잘 알고 있다. 학명이라는 용어로 생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의 린네식 분류 체계를 사용한 전통을 떠올리면 된다. 분류학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이란 개념 하나마저도 얼마나 불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나아가 인류는 아직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파악하고 이름을 붙인 것도 아니다. 현재 통용되는 개념에 적용되지 않는 생물들도 다수 존재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개념 하나도 인간이 규정한 분류의 개념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알게 되면 놀라게 된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앞에서 언급한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는 정신의학 분야에서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분하는 경계 역시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보여준다. 저자 역시 주요 정신의학 진단들은 모두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296)는 점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제 이 책의 핵심 인물인 데이비드 로젠한에 주목해보자.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몇 명의 가짜 환자와 함께 직접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이들은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시설에 수용되는 것이다. 각자가 정신병동에서 지낸 체험을 바탕으로 20세기 정신의학사를 새롭게 쓸 논문을 내게 되었다. 그들은 이 실험을 통해 정신의학에서 정신질환의 진단이 자의적이며 맥락 의존적임을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까지 정신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혹자는 이 작업을 정신의학의 얼굴을 바꾼, 기념비적 성취라고 일컫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여기에서 출반한다는 점이다.


 

로젠한의 실험을 담은 논문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정신의학계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들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수용하는 절차나 시설에서의 돌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정신의학에 대한 불신도 증가했으며 심지어 정신질환자를 위한 병원도 속속 문을 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정확한 진단을 위한 엄밀한 기준이 마련되었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돌봄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는 고무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했다. 병원이 사라지면서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될 시설이 마땅치 않게 되고, 때론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더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엄밀한 진단 기준을 마련하면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환자 내부에서 찾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외부, 그러니까 외부의 고압적인 어머니나 나약한 아버지의 영향을 전제한 프로이트적 해석에 따랐던 것이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게 되었다는 것은 신체적, 생화학적인 증상을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낳았다. 따라서 이 변화는 현대의학이 약물의 과잉 처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 셈이기도 하다.


 

이 사례는 의학의 역사에서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내부에서 찾을 것인지를 두고 대립했던 두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한 가지는 신체 내에 4가지 체액이 있어서, 이 체액 사이의 기능 이상이나 불균형으로 질병이 일어난다고 보는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관점이 있다. 신체 질병의 다른 원인과 관련한 관점은 질병이 외부로부터 온다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현대의 세균이나 감염으로 인해 발병한다고 보는 것과 같다. 이런 관점은 연금술사로 더 잘 알려진 의사 파라켈수스의 관점이다. 다만 정신질환과 다르게 신체 질환의 원인이 외부에서 온다는 관점이 발병했을 때 약물로 이 원인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이나 발병의 원인이 외부인지 내부인지를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체계에 여전히 기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한 논의도 서양의 2분법 적인 사고의 범주 내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은 400페이지가 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탐정이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단서를 퍼즐처럼 모아 점차 뚜렷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존경스러운 업적을 이루어 낸 로젠한의 논문이 상당 부분 날조가 되었음을 밝히는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반전이었다. 게다가 로젠한의 논문은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주어진 실험 자료를 이 결론에 맞게 취사선택하고 날조하여 완성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이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궁금했다. 저자가 찾던 가짜 환자들은 찾을 수 있을까? 혹은 어쩌면 이 가짜 환자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암울한 예감까지 들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한 가지 이슈는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의 경계에 관한 물음이다. 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혹은 이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일반적으로 확장해보면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중대한 문제는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음에도 구분을 강요함으로써 비극이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성차별 문제), 이성애와 동성애(성소수자 문제), 백인과 유색인(인종차별 문제)과 관련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이 문제는 우생학의 역사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우리가 정상인과 장애인을 멋대로 규정하고 구분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주제에 금방 매료되었다. 한편 저자의 관점이 왠지 익숙한 느낌을 받았는데, 저자의 관점과 연결지점이 닿아 있는 책 2권이 떠올랐다. 하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란 표현은 인간의 관념적 규정에 지나지 않으며, 바다 속의 모든 생물을 이 범주에서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음을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와 함께 고민한 책이었다. 여기에서도 역사상 유래 없는 우생학의 폐해를 언급하는 대목과도 닿아 있었다. 또 다른 책은 자연에 이름 붙이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에게 자신의 책을 쓸 수 있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책 역시 본격적인 분류학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생물을 분류하고 경계를 온전히 정의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 이 두 권의 책의 계보를 이으면서 특히 정신의학 부분으로 관심을 확장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인간이 마음의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신경학과 정신의학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말해준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친 사람이라도 항상 미친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까지 이어진 행동의 연속체를 오가며, 살면서 이 연속체의 다양한 지점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저자가 5년 이상 진실을 알기 위해 이 모든 일에 뛰어들어 붙들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이유로는 자신과 동일한 증상을 보였음에도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하고 증상이 악화되었다가 사망한 환자를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또 다른 거울상과도 같은 환자가 더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저자는 정신의학에 있어서 사람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돌봄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유산, 곧 병원이란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는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바라고 있다





[책속으로]

[1] "우리가 마음의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신경학과 정신의학의 경계가 흐려졌다."(55)

"(현대의학은)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없다."(68)

[2]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125)
- 로젠한의 논문에 나오는 문장.

[3] "일단 ‘정신질환자’나 ‘조현병’이라는 꼬리표가 부착되고 나면 이것을 없애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의사의 결론과 위배되는 증거가 뒷받침하는 증거에 밀려난다면 손쓸 방법이 없다."(147)

[4] "미친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미친 행동을 하진 않는다.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까지 이어진 행동의 연속체를 오간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연속체의 다양한 지점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이며,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을 맥락이 좌우할 때가 많다."(235)

[5] "전기충격요법은 이탈리아 의사 우고 체를레티가 시작했다. 그의 조수가 로마의 한 도살장에 들렀다가 전기 쇠막대로 충격을 받은 돼지들이 유순해진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238)

[6] "문제는 지역사회가 환자들을 돌본다는 꿈이 말만 그럴듯했지 실현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 지역사회 돌봄 모델은 경증 장애인에게 유명무실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중증장애인은 방치되거나 외면을 받았다."(252)

[7] "증상과 징후는 물론 아주 실제적인 것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수수께끼였다."(296)

[8] "내가 보기에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편람의 방식 때문에 정신의학의 실태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환자를, 인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 이것은 오진을 부추길 수 있다."(301)

[9]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다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으며, 그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는 평범한 대다수 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키지의 시대와 오늘날의 진정한 차이라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 이제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밖에 없다."

[10] "로젠한은 모든 곳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388)

[11] "신체냐 정신이냐, 뇌냐 마음이냐? 난감한 이 문제가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 우리는 어떤 질병이 다른 질병보다 더 우리의 공감ㅇ르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417)

[12] "의학에 대한 이런 믿음, 우리의 치료자, 진단, 시설에 대한 이런 믿음은 로젠한이 망가뜨리는 데 힘을 보탠 것이자 스피처가 바로잡으려고 애쓴 것이며, 제5판을 둘러싼 논란과 교도소 시스템과 관련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더욱 뒤흔든 바로 그것이다. 믿음은 정신의학이 잃어버린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 희망은 꼭 필요하다."(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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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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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대멸종을 살아가는 지구인의 보고서

- 우리에게 남은 시간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

 




몇 년 전에 본 뉴스 중에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지대에서 발생한 홍수 기사가 기억난다.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기후 온난화로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호수가 커지게 되었는데, 물이 점점 증가하면서 제방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홍수가 난 것이었다. 산에서 한꺼번에 내려온 물이 산간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고, 마을 주민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파괴된 마을 영상만 보더라도 충격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자연 재해가 수년 전부터 이미 예견되어 왔으며, 앞으로 계속 예상되리라는 점이다.


 

환경 및 생태 분야 전문 PD인 최평순의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는데, 이런 형태의 재난을 빙하 홍수라고 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저자는 이 재난이 발생하기 수년 전에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를 제작하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미 경고한 바 있었다. 실제로 이런 사태가 발생하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37)고 회고하는 부분이 뇌리에 남았다. 게다가 불과 2개월 전인 202310월에도 인도의 또 다른 빙하호의 둑이 터져 82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한다.


 

기후 이상에 의한 재해는 전 지구적으로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에서 개별적인 사건으로 재난 뉴스를 접하지만, 이 모든 자연 재해는 모두가 연관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피쿼드호에 타고 있다. 피쿼드호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서 화자 이슈메일이 탔던 포경선이다. 서구 백인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고래를 포획하고, 그 산물로 자본을 축적했다. 또한 소설에서 백인들이 멸족시킨 미국 원주민 부족 피쿼드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기상 이변의 시대에 중요한 건 우리가 한 배에 탄 운명 공동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과 사물을 모두 포함된다. 현재 인류는 진행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을 살아가는 피쿼드호의 선원들인 셈이다. 소설에서 피쿼드 호는 모비 딕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이슈메일처럼 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지만, 이후의 삶은 결코 전과 다를 것이다.


 

앞에서는 인도 지역에서 인간의 영향으로 발생한 빙하 홍수를 떠올렸지만, 남태평양의 작은 국가 투발루는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 해발 고도가 4.6미터에 불과한 이 국가는 현재 해수면 상승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9개의 섬 지역 중에서 2개 섬이 이미 물속에 잠겼다. 우리는 기후 이상 현상의 결과를 피부로 덜 느낄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고 있다. 기후 위기를 공포로 위장하고 과장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고학과 지질학 연구에 따르면 12천년 즈음 전에 우리의 서해는 바다 없이 땅으로 중국대륙과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이런 해수면 변화는 지질학적 변동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 변화의 속도가 너무빠르다는 것이 문제의 요지다. 투발루의 해수면은 매년 1센티미터 이상 오르고 있고(59), 인도의 히말라야 산간 지대의 호수는 수십 년 사이 5-6배가 커져버렸다(38). 여기에 야생 동식물의 멸종 속도는 자연 속도보다 ‘100배에서 최대 1000배 정도 빨라졌다.’(123) 다시 말해 자연스럽지 못한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자는 환경 문제를 직접 확인하기위해 전 세계의 현장을 취재하고, 각 계의 전문가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그가 기후 문제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진단에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언론이 공론장에서 담론화할 수 있는 역할이 부족하다는 그의 비판이 인상 깊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기후 문해력 교육이 반드시 필요할 시점이기도 하다. 자라나는 세대가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살아가야 할 세계이므로. 안타까운 점은 시스템 차원의 문제인 기후 위기 관련 사안이 석유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도덕성과 규범 준수에 호소할 일이 아니라 공동의 정치적 대응이 필요한 시스템의 문제다. 여기에 정치적인 활동의 과정으로서 사회 구성원들에 의한 합의도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이 간과된 우리나라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발화하지 못했던 속내를 책에서 내보이고 있었다.


 

인류세는 이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된 용어다. 인간의 영향에 의한 대멸종은 현재진행 중인 사건’(124)인 것이다. 물론 당장 몇 년 후에 인류가 공멸하는 것이 아니다. 지질학적 시간과 비교하여 훨씬 빠르게 그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균일하게 다가오지 않을 테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보호막 없고 무방비인 사람들의 삶이 더 취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더하여 기상 이변이 재난의 일상화로 이어질 것(54)이라는 저자의 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언젠가 기후 온난화가 진행되면 우리 집 에어컨을 더 틀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던 초등학생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아이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에게는 보다 진지한 기후 문해력 교육이 필요하다. 저자는 왜 우리가 지구 반대편의 기후 문제를 알아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에게, ‘우리가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184)고 대답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피쿼드호에 함께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행 중인 기상 이변의 피해 현장을 직접 목격해왔던 저자가 대중에게 전하는 경고이자 보고서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지구의 환경을 바꾸고 비인간 존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간에게 기상 이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에게는 인류세에 대비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인식의 부족을 새로 채울 수 있는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상상력의 예로는 예술 활동을 수행할 수도 있겠다.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바닷가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돌과 같은 산업화의 잔재로 전시를 하는 예술가, 기후 우울의 감정을 공유하고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웹툰 작가의 작업들에서 영감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데에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인식 제고와 공감을 얻기 위한 예술 활동도 인류세를 대비하는 상상력을 구체화한 사례로 보였다. 인류세와 갑작스럽게 마주한 인류의 부족한 상상력을 채울 무형·유형의 언어로서 말이다.


 

또한 저자는 인류세 위기를 알리고 이 시대를 살아갈 방안을 알아보고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의 정체를 규명하여 노벨상을 수상했던 파울 크뤼천 박사는 인류세라는 용어를 널리 알린 사람이기도 했다. 생명다양성 개념을 보다 친근하고 중요한 개념으로 소개했던 에드워드 윌슨 교수 같은 인물도 있다. 여기에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가 생존이란 키워드로 발전시킨 무해의 개념에 대한 논의, 홍성욱 교수가 적극적 실천이 바탕이 되는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우리 사회의 실정을 고려하여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데 좋은 틀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가운데 인류세를 헤쳐나갈 감수성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을 언급하는 대목을 소개해보며 마무리할까 한다. 홍성욱 교수에 의하면, 포스트휴머니즘의 개념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인간 중심주의를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비인간-무생물 존재 모두가 지구라는 피쿼드호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내 위치를 다른 존재들과 바꾸어 보는 일이 필요하단다. 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지구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확장 적용된 개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밖에서 한 겨울 추위에 떨고 있거나 고통 받고 있는 고양이라면? 혹은 나무나 숲이 반사되어 보이는 건물이나 방음벽 주위를 날아다니는 새라면? 한번 쯤, 아니 일상에서 자주 생각해볼 수 있는 감수성이다. 타자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내 기준으로만 타자를 판단해버리는 과정을 늦추거나 판단을 중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든 관계의 총체가 바로 라는 관점을 말한다.


 

기후 이변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저자는 인류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섣부른 희망을 전해주지는 않는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보다 먼저 재난의 현장을 목격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대화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해진다. 그의 심정이 이어진다. “나는 지구의 위기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게 얼마나 괴로울지 그때는 몰랐다.”(248). 나는 이 말로 저자의 생각을 짐작해볼 뿐이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지구가 더 가혹하게 인류를, 대한민국 국민을 위협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252)라는 메시지도 남긴다. 다큐멘터리 작업, 대중 강연과 책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저자는 여전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알리고자 동분서주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변화와 대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서로 연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연대를 출발점 삼아 실천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저자 한 사람의 바람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지구라는 피쿼드호에 탄 모든 존재가 다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육지에 안착할 것인가는 지금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1] "흔히 제3의 극지라 불리는 히말라야는 인류세 현장이 되어버렸다. (...) 빙하가 녹으며 생기는 물로 인해 없던 빙하 호수가 생기고, 있던 빙하 호수가 거대해진다. 호수의 자연제방이 강해지는 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져버려 호수의 물과 흙이 쓰나미처럼 산 밑 마을을 덮친다. 이 현상을 ‘비하 홍수’, 영어 약어로는 GLOF(Glacial Lake Outburst Flood)라고 부른다."(37)

[2] "절망적인 건 지금 당장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 순간 1.5도 상승선을 넘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 현재까지 배출한 온실가스가 앞으로 30-40년은 영향을 미칠 테니, 21세기 중반에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46)

"인류세적 재난이 체감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재난의 예고에서 발생까지 진행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56)

[3] "도나 해러웨이는 긴급성의 시대에 우리는 사유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 긴급성의 시대는 우리가 사유해야 하는 시간이다."(66)

"재난을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긴 과정으로 보고, 여러 요소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67)

[4] "인류세 시대에는 ‘중립적인 재난’도, ‘순수하게 자연적인 재난’도 없다고 단언한다. 인류세 현장은 누적된 산업화의 결과일 뿐 아니라, 재난의 전조를 방기한 사회의 공동 책임이기도 하다."(67)

[5] "독일 젊은이들은 2019년 12월에 제정된 독일 기후 보호법이 2030년까지의 단기 목표만 설정한 것이 불충분하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독일 헌법제판소는 2012년 4월,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라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91)

[6] "(기후 위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발생한 문제고 정치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니까요."(110)
-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 진민정 박사의 말

[7] "육지에서 바다로 되돌아간 포유류 ‘고래류’와 뭍에 올라온 적이 없는 ‘고등어류’가 진화의 관점에서 멀리 있듯이, 우리가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145)
-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만 서식하는 포유류 고래인 상괭이의 수난과 관련한 인식 부족에 대해 이야기하며

[8] "자연이 알아서 제 갈 길을 찾아가도록 두고, 야생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길 도모하는 것이죠."(178)
- ‘활생(Feral)‘ 개념을 국내에 소개하여 알리고 있는 김산하 박사의 말.

[9]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나서였죠. 그 사고 후에 진짜 내 삶이 바뀔 수 있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어요."(191)
- 바닷가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돌을 전시하는 예술가 장한나의 말.

[10] "석유화학이 주력 산업인 대한민국에서 경제 성장과 지구 위기 담론은 양립하기 어렵다. (...)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제적 손해는 금기어고 자유주의 사회에서 욕망의 절제는 터부시된다."(196)

[11] "내가 누리는 경제 시스템의 풍요가 지구 시스템을 고장내 파국으로 흘러가는 시대. 재난적 상황은 우리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기후 우울’은 기후 위기로 인한 걱정으로 불안, 슬픔, 무력감 등 정서적 고통을 겪는 우울 장애다."(198)

[12] "한국의 20세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생존’이죠. 우리나라처럼 생존을 위해 모든 가치를 변형시킨 사회가 없어요."(210)
-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가 ‘무해’개념에 대해 설명하며 덧붙인 말.

[13] "무해의 욕망은 지구의 위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임과 동시에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다. 나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임과 동시에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다."(211)

"무해의 욕망은 지구를 떠나지 않고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215)

[14] "무해한 삶의 태도와 실천적 연대가 함께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무사히 착륙할지도 모른다."(234)

[15] "우리는 끊임없이 시스템을 의심하고 변화와 대책을 요구하며 연결되어야 한다. (...) 주변 사람 및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자기의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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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주의 첫 순간 - 빅뱅의 발견부터 암흑물질까지 현대 우주론의 중요한 문제들
댄 후퍼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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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한 암흑물질 사냥꾼의 우주론 안내서 겸 고백록

- 우리 우주의 첫 순간

: 빅뱅의 발견부터 암흑물질까지 현대 우주론의 중요한 문제들

댄 후퍼(Dan Hooper) 지음 | 배지은 옮김 [해나무] | (2023)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학생이던 외삼촌께 DNA가 뭐냐고 물어본 기억이 난다. 명문대 대학생(문과 사람이긴 했으나) 삼촌이 뭐라고 중얼거리셔서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요즘 과학에 좀 관심이 있는 초등학생들은 원자나 DNA에 관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빨리 발전하고 있고, 지식의 전달은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도서나 미디어 등을 통해서도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대학 시절 개론으로 들었던 내용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에 나오는 걸 보면서 놀라기도 한다.


 

내가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이제 대부분 다 잊기도 했지만 남은 지식마저 대개는 30년 이전의 지식이다. 마침 최근 뉴스 기사에서 허블우주망원경의 고장에 관한 뉴스가 보이길레 관심 있게 읽어보았는데, 벌써 33년간 임무를 수행중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 상당히 노후화되어 부품 고장으로 작동이 중단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동안 이 망원경을 통해 우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들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우리 우주의 첫 순간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현대 물리학에서 등장하는 여러 입자들 가운데 중성미자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름이 말해주듯, 이 입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거대한중성자에 비해 질량이 터무니없이 작은 입자다. 고도의 검출기로도 찾아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작은 입자란 의미에서 중성미자’(neutrino)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질량이 작고(가볍고) 중성인 입자는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호작용을 생각해보려면 우선 큰 물체를 떠올려보자. 테니스공을 벽에 힘껏 던져보라. 그럼 벽에 공이 되튀어 내 눈에 멍이 들 것이다. 테니스공은 벽 및 내 눈과 상호작용을 한 것이다. 이번에는 여자 테니스 세계 1위인 아리나 사발렌카를 떠올려보자. 그녀가 테니스공을 있는 힘껏 내리치면 철조망에 공이 박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도 공은 테니스 체의 줄, , 그리고 내 눈과 상호작용을 한 셈이다. 충돌하여 되튀거나, 벽에 박히거나. 반면 테니스공이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테니스공을 칠 수도 없을뿐더러 공을 벽에 쳤다고 해도, 벽을 통과해 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호작용을 겨의 하지 않는 중성미자는 실제로 대부분의 물질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중성미자에 대한 내용이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 입자가 지금 매초마다 내 몸을 대략 100조개 이상 그대로 통과한다’(129)는 설명 때문이다. 그리고 이 중성미자의 대부분이 태양에서 핵융합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일상에서 나의 감각이나 기존의 지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런 현상들을 과학은 모형을 만들고 현상을 설명하며, 관측과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태양에서 나온 이 입자가 내 몸뿐만 아니라 지구도 쉽게 통과해간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도대체 내가 감각할 수 없는 이러한 사실을 과학자들은 어떻게 알아내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였던 칼 세이건의 영향으로, 이제 많은 이들은 우리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의 후손임을 안다. 별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핵융합 과정으로 가벼운 수소는 보다 무거운 헬륨 등으로 합쳐지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또 아 결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보다 무거운 원소(탄소 등등)가 생성된다는 것까지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재의 역사를 말해주는 우주의 기원을 묻는 분야가 바로 저자 댄 후퍼와 같은 천체물리학-우주론학자들이 담당하는 분야일 것이다. 우리 우주의 첫 순간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탐구과정과 그 성과, 그리고 최신의 우주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이 있다면, 저자가 우주에 대해 알아낸 지식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는 지점이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종사해온 분야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성취를 조명함과 동시에 우리가 아직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현대 우주론이 아직 풀지 못한 지점이 어떤 것들인지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이 분야에 얼마나 진지하게 천착해오고 있는지를 반증해주고 있었다.


 

요새 초등학생 아이들이라면 빅뱅이 우주의 시작을 말하는 용어임을 상식처럼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아주 작은 영역(혹은 특이점)에서 폭발하여 우주가 확장해왔다는 이론 말이다. 이는 책에 소개된 바와 같이 1930년대에는 허블과 르메트르와 같은 과학자가 다룬 최신 과학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해한대로 빅뱅 우주론을 간단히 표현해본다면, 빅뱅 우주론을 뜨거웠던 과거, 차가워질 미래에 대해 말하는 우주론이라고 정리해보겠다. 하지만 우주론이 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독립적이다시피 발전해온 입자물리학과 만남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다듬어졌으며, 실험적으로도 어느 정도 검증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자가속기의 시대가 출현한 것이다. 이 도구는 입자를 거의 빛의 속도로 빠르게 가속시킨 후 여러 입자들과 충돌시켜 이 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검출하고 분석한다. 이 입자가속기의 역할은 빅뱅 우주 초기의 환경과 조건을 짧은 시간이나마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무거운 바위를 깨뜨리면 보다 작은 돌덩이가 되고, 이를 계속 충돌시켜 더 작은 돌멩이로 만들어낼 수 있듯이, 무거운 입자를 깨뜨려 보다 작거나 다른 종류의 입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현상들을 실험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입자가속기에서 입자들이 충돌할 때 방출하는 데이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내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 용량은 1테라바이트의 절반에 해당하는데, 5-6년 간 사용하고 있음에도 아직 저장 공간이 남아 있다.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수석과학자이기도한 저자의 말에 따르면, LHC(거대 강입자 충돌기)와 같은 장치에서 입자의 충돌로 방출되는 데이터만 해도 매초에 약 600테라바이트라고 한다. 그러니까 해마다 수십에서 수백 페타바이트에 해당하는 데이터가 쌓인다고 하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데이터다. 이거야말로 빅 데이터 처리 기술을 요할 것이다. 엄청난 데이터가 수집되면 전 세계 30여 개 국가에 분배되어 분석에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 저자의 상당한 연구 과정이 될 것이다. 그는 우주를 들여다보는 과학자이긴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이터과학자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원을 말해줄 수 있는 증거를 추적하는 사람이다. 현대 우주론은 빅뱅 이론에 근거를 두긴 했지만, 여러 차례 수정과 변형을 거쳐 초기 우주가 급격한 폭발을 일으켰다는 우주 급팽창이론으로 진화되었다. 이 이론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우주의 극초기 시기에 일어난 현상을 설명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빅뱅 이후 우리 우주의 현재 모습을 설명하는 데 있다. 입자 가속기를 통해 초기 우주의 조건을 상당히 구현해내었다고 하지만, 빅뱅 후 첫 1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실험으로 구현해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충돌시키는 입자의 에너지를 더 크게(곧 입자를 더 빠르게) 가속시켜 충돌해야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에 도달할 규모가 실험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책에 따르면 현대 우주론은 빅뱅 이론에서 더 나아간 우주 급팽창이론이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우주가 그냥 단순히 폭발(빅뱅)해서 균일하게 팽창해온 것이 아니라, 우주의 초기에 아주 격렬하게 폭발하며 팽창하며, 여러 상전이 현상을 거쳐 지금 우리 우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우주 급팽창 이론을 통해 우주의 극초기 시기에 서로 만나면 소멸하는 물질과 반물질의 비율이 비대칭적으로 물질 위주로 남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 관련된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은 아직도 추정만 하는 상황이다. 특히 실험적으로 구현하여 검증해내기 매우 힘든 만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주 극초기의 조건에 대해 다양한 모형이 제시되었고, 간접적인 증거를 수집해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것이 현대 우주론 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몇 가지 이슈 가운데 하나다.


 

또 다른 관심 이슈는 우주 급팽창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끝나는지에 관한 탐구다(309). 우주 급팽창 이론과 같은 이론이 필요하게 된 근본적인 우주의 조건에는 우리의 존재를 강력하게 설명해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가 설명이 되어야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입자들을 제외하면 우리 우주의 총에너지 가운데 95%가 바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이루어낸 과학적 성취가 대단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만 알아냈을 뿐이다. 저자와 같은 천체물리학자가 암흑물질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우주의 기원에 관련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함이다. 암흑물질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측정할 수 있게 되면, 우주의 팽창속도를 알아낼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극초기의 우주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219)는 것이다. 곧 우주로부터 연유한 모든 존재, 예컨대 은하나 별, 행성뿐만 아니라 지구의 생명, 결국 우리도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암흑물질 사냥꾼인 저자가 우주로부터 암흑물질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려고 오래도록 헌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이 과정이 쉬울 리는 없다. 암흑물질을 쫓는 과학자로서 저자는 이 우주에서 회전하는 중성자별인 펄사를 가장 싫어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216). 이 펄사에서 나오는 신호 스펙트럼 형태가 암흑물질이 내보낼 것으로 여겨지는 신호와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에는 사실상 실패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LHC와 같은 거대 장비로부터 얻은 지식이 거의 없거나 부실할 때, 혹은 기대되었던 암흑물질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과학자들이 얼마나 좌절을 하게 될지 짐작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과학은 확실하고 정확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요소를 갖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실험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 이론은 틀린 것이다라고 했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처럼, 과학은 언제든 검증을 요구하고 예측이 관측이나 실험 결과와 다를 경우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게 마련이다. 저자 댄 후퍼 역시 페르미 감마선 망원경으로 측정한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어 이를 주장했지만 과학자 집단의 강력한 저항에 마주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동료 과학자 집단을 설득하기 위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엄밀한 이론을 고민하고 보다 다양한 분석 기법과 접근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저자는 5년간 진행한 연구로 과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성취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해피 엔딩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에게 언제나 헤피 엔딩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저자가 10년 전 우리는 약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암흑물질을 생각했다. 오늘날에는 도대체 암흑물질이 가시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묻고 있다.”(233)라고 말한 대목처럼, 마치 길을 잃은 듯 보이는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가 얼마나 어려울지 암시한다. 그는 다중우주와 양자중력 등에 관한 이야기까지 최신의 우주론을 설명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이 인정하는 이론들이 거의 대부분 틀렸을 수도 있다는 태도 역시 분명히 견지한다. 다른 과학서들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다 선명히 그려볼 수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책 전반에서 견지되고 있다. 우리가 현재까지 알아낸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디까지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정리해보자면, 이 책은 암흑물질을 탐색하며 현대 우주론을 이끄는 한 과학자가 안내하는 현대 우주론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동시에, 과학자집단에 의해 이루어낸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고백하는 당혹한 지구인의 고백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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