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평점 :

우리는 외딴 섬이 아니다
- 《아웃사이더》
마수드 후세인(Masud Husain)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2025)
신경과 의사 마수드 후세인의 임상 기록이자 에세이 《아웃사이더》의 원제목은 <Our Brains, Our Selves>이다. 우리의 뇌와 자아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다. 반면 번역서의 제목 《아웃사이더》는 인간의 정체성과 뇌가 만들어 내는 ‘자아’와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1.5세대이기도 하다. 런던과 버밍엄의 도심에서 자랐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의 청소년 시절이 대강 그려진다. 자신과 가족이 다른 피부색과 억양만으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매순간 감지하며 살았을 것이다.
번역서의 제목처럼 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수성(피부색과 억양 등), 곧 고유한 표지들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학교를 오가는 동안에도 혐오와 조롱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볼 수는 있으나,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그저 불안하고 위축되는 기분을 늘 감지하지 않았을까. 때론 절망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법하다. 특히 장차 신경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을 때, 친구가 해준 조언(‘넌 유색인종이니 이방인이고 이 세계(신경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류머티스 분야를 택하라’)은 백인 상류층을 구성하는 영국 신경학계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여 극복하고 결국 신경과 의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로도 활동해왔다. 기득권에 속한 이들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저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는 30년 동안 저자가 진료실에서 환자와 만난 임상기록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뇌의 문제를 이해하고 질환을 치료하려는 노력에 인간의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더해진 역작이다. 저자가 오랜 시간 만나온 뇌 관련 질환 환자 중에서 대표적인 증상을 보이는 환자 7명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예를 들면, 뇌졸중으로 모든 행동의 동기를 잃거나 한쪽 시야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언어와 사물에 대한 의미를 점점 잃어가는 사람, 기억을 잃거나 가짜 기억을 회상하는 사람, 불쑥불쑥 나타나는 환영이 나타나거나 이상한 복장이나 언행을 하게 된 사람, 한쪽 손과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환자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뇌와 관련한 질병으로 인해 한순간 ‘자기다움’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개인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더 중대한 문제는 그 개인이 인생의 한 시기에 집단과 맺어온 관계가 뇌 질환으로인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하고, 더 나아가 그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배제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일어나보니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단지 정치적인 개인의 결정에서 비롯되는 것만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신체의 변화, 특히 뇌질환만으로도 누구나 겪게 될 수 있는 일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인간이 어느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잃게 될 때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환자들의 사례를 보면, 과연 인간이 자각하는 ‘나 그 자체’, ‘자아’란 도대체 무언인가, 하는 의문을 되짚어보게 된다. 신경과 의사로서 저자는 뇌의 어느 특정 부위가 아니라 뇌 전체에 긴밀하게 연결되고 얽혀 있는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가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이 모여 우리의 ‘자아’를 구성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 수많은 ‘나’가 모두 나의 자아를 구성하는 실체이기도 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우리의 ‘마음’이 이런 다양한 면모들을 모두 포함하는, 보다 구체적으로 내 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지 기능들의 긴밀한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한 가지 더 저자가 잊지 않고 덧붙이는 사항이라면, 이러한 내 안의 여러 ‘자아들’은 우리가 속한 환경, 특히 집단과의 의식적, 무의식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다. 나는 내가 속한 환경, 공동체 속에서 결코 피할 길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존재인 셈이다. 이 사실은 개별자 개인을 바라볼 때, 그 개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선이 되어준다.
특히 저자와 가족이 ‘아웃사이더’가 된 경험, 그리고 이를 극복해간 과정은 이 책의 메시지와 공명하며 더욱 힘을 발한다. 그가 신경과 의사가 되어 진료한 환자 가운데 와히드나 애나, 윈스턴 같은 이들을 떠올려본다. 이들은 20세기, 그리고 영국이라는 시간-공간적 특수성이라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저자처럼 자신이 합류한 공동체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책에 소개된 ‘아웃사이더 되기’의 경험들은 우리 사회와 인간성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애나가 자신의 모국어 폴란드어로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혐오가 담긴 언어를 듣고 물리적으로도 폭행을 당했던 사건은, 유독 영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영국 사회의 귀족적-엘리트적 성격, 그리고 일부 이긴 하지만 외국인 혐오의 시선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 장면은 분명 영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집단’에 속한 인간이 ‘외집단’에 속한 이들에게 가질 수 있는 정서적 반응이나 이질감, 배척 행위를 구체적인 사례로서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이지메’라고 불렸던 집단 따돌림도 우리는 직접 겪거나 드물지 않게 보아 왔음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이 소속감, 혹은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짐을 자각하는 정서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구성원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은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큰 물음에 대한 전문가로서 저자의 답변으로 책의 성격을 이해해볼 수 있겠다. ‘우리의 자아는 뇌의 여러 기능들의 총체이면서 이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 혹은 ‘자기동일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자아의 속성이, 때로는 얼마나 취약한지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 각자의 소망 혹은 욕구에도 불구하고, 뇌는 바로 이 ‘자기다움’,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경계이면서, 또한 이 길에 이르는 열쇠일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평생 어딘가에 속해 살아간다. 이러한 자각은 전통적인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넘어 구성원들이 파편화, 원자화 되고 고립되어가는 동시대에 보다 중요한 주제가 된 듯하다. 이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정서, 소속감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뇌 이야기는, 인류가 학문으로서 수행하고 참여하는 모든 활동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와 통찰에서 우리는 신경과학의 한 갈래를 따라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길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생각거리는, ‘자아’라는 실체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공동체, 나아가 환경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자아는 작게는 내가 속한 가정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자각을 일깨우는 일도, 우리가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길이 되기도 할 테다. 우리는 결코 외딴 섬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