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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평점 :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My
Age of Anxiety: Fear, Hope, Dread, and the Search for Peace of Mind)
스콧 스토셀(Scott Stossel)/홍한별 옮김
오늘 신문을 보니 ‘방송인
A씨, 불안장애로 방송활동을 중단’이란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기사는 방송인 A씨가 불안장애를 오래 앓아왔고 최근 심해져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치료에 전념할 것이라고 전했다. 자신의 성공이 지속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으며, 불안장애 약을 먹고 있다는 얘기까지 공개했다. 불안장애로 자신의 직업과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정도라면 분명 큰 문제다. 방송을 통해서 보던 A씨의 이미지(유머있고 넉살도 좋으며 자신감
넘치고 여유있는)와는 너무도 다른 개인적 고민이 있었다는 점에 상당히 놀랐다. 물론 방송을 통해서는 연예인들의 ‘편집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실제 모습,
성격과는 다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기사였다.
마침 내가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읽고 있었기에 이 기사는 더욱 하루종일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불안장애를 오래 겪었다고하는 방송인 A씨도 이 책의 저자 스콧 스토셀만큼이나 극심하게 고통을 받은 경험이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톨스토이가
언급했듯이 각자의 불행한 이유는 개별적이기에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불안장애를
3살 때부터 가지고 살아온 저자 스콧 스토셀은 ‘불안’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책에서 고려한다.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및 에픽테토스의 오랜 문헌으로부터 시작하여 역사문헌을 뒤지고,
최신의 학술 논문까지 끊임없이 찾아 읽으며, 자신의 일부인 불안을 탐구한다.
아울러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긴 하지만 불안을 주제로 하는 학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자신을 오래동안 치료했던 의사들을 다시 찾아가 최근의 연구 경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 책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불안과 함께 30여 년을 살아온 저자의 내밀한 고백때문이다. 저자는 실존적 불안과 함께 살아가며 자신의 문제를 정면에서
바라본다. 자신의 일부를 이루는 불안이라는 실체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 불안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려 하며 이는 저자의 기나긴 여정이자 르포르타주라고 말한다.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를 끌어않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진정한 운명애(amor fati)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 저자는 과도한 ‘불안장애’의 증상을 지니고 있지만, 매우 지적이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애틀란틱>이라는 잡지의 에디터이자, <뉴요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에 여러
편의 글도 기고한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고, 특히 좋은 집안
출신에,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보이는 저자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심각한 ‘불안장애’로 고생을 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이 책을 쓰고있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우선 놀라움이었고, 그 다음은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시하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이런 불안 장애로 고통을 받고있음을 반증하는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인간적 감정과 정서적
문제들은 문화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억눌려 왔기에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창피함을 무릅쓰고 개인의 에피소드(오물이 묻은 수건을 하반신 앞뒤로
가리고 계단을 오르다가 존 F. 케네디 2세와 마주친 일 등)를 공개하거나 외증조부의 정신과 기록을 공개하는 등 공개적으로 밝히기 힘든 일들을 책에 쓴 것이 매우 놀라웠다. 한편 불안에대한 생각이 구토공포증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례를 보면서 인간의
정신과 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유기체로서의 존재가 자기통제를 상실한 순간의 고통에 대해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우선 책은 자신이 평생 함께하고 있는 이 ‘불안’의 연원을 추적해나가며 시작한다. 자신의
불안에 ‘우디 앨런 유전자’라고 하는 유전적 요인이 있음을 주장하는 하버드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로부터 자신의
집안 사람의 ‘불안 내력’을 따져나간다.
우선 저자의 부계는 ‘독일계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로 ‘화병’을 떠올리듯, 나는 독일인의 특징적인 불안 심리를 지칭하는 말로 져먼 앙스트(German Angst)를 생각했다. 이는 독일, 오스트리아
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불안’정서를 폭넓게 지칭하는데, 나의 독일 친구 몇몇을 떠올려보면, 어떤 특징적인 면을 ‘민족성’과 결부시키는 일은 언제나 만족스러운 설명을 이끌어내기는 힘들었다.
인간은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존재인 까닭이다. 물론 독일 친구 중 일부는 대중 앞에서
발표를 하기 전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하며 끊임없이 때로는 강박적으로 보일정도로 걱정하는 듯한 친구가 있긴 있었다. 이 친구는 매우 지적인 친구였으나 이런 과도한 불안의 모습을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독일 친구는 과도한 걱정과 불안 속에서도 자기나름대로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여 시도하고 이를 극복해 나갔다. 마치 짝사랑하던 여인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을 쓰고 이를 극복해버렸던 젊은 시절의 괴테처럼, 이 괴테의 후예는 자신의 ‘의지’를 견지하고, 문제를 하나하나 극복해갔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민감한 유전적 요인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저자의 모계를 살펴보면 어머니는 정통 와스프(WASP)의 후예다. 저자의 외증조부는 명망있는 하버드 대학 교수였으며, 존 F. 케네디의 대선 캠페인을 함께하기도 하며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외증조부는 말년에 4차례의 전기충격치료를 받은 기록을 포함하여 끊임없는 불안증세와 자기 비하 등으로 하버드대학의 학생처장 및 교수직에서 물러나고 정신병원에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적이 있다. 저자의 어머니도 역시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공황 발작과 광장공포증,
구토공포증에 시달렸다고 하며, 자녀에게는 애정표현을 의도적으로 자제하면서도 과잉보호 경향을 보여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곧
부계와 모계 모두로부터 평균보다 예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셈이다.
첫 장에서 저자는 지적 탐색을 위한 워밍업을 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불안에 대한 근원을 탐색하는데,
‘8년간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지난 3000년 동안 쓰여진 불안에 대한 글 수십만장을 읽으며 보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학술적으로 수많은 사례와 이론을 검토해가며 수천년의 시간성과 전 지구적인 공간성을 넘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이 불안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심리 치료, 인지행동 치료등의 노력 뿐 아니라 다양한 약물 치료의 경력도 공개하고 있다.
정신약리학의 역사를 더듬어가며 약의 발견과 발달사를 보여준다. 저자는 약에 의존하게
되는 것, 중독되는 것은 피해야할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30여년 넘게
병행한 다양한 치료법보다 (일시적이나마) 약물치료에 더
큰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약물은 수많은 이들에게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기에 사람들은 약물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다. 심지어 2차대전
당시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는 데 쓰였던 로켓 연로 히드라진으로부터 결핵치료제 및 정신과 약으로 쓰인 아이러니룰 얘기하는데, 나에게있어 이 사례는 약물 개발 방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곧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관점은 즉각적인 효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약물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증상이 재발하고 약물에 의존하게되는 중독의 위험성 또한 언제나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신과 약을 개발하는 방식에서도 나의 불편함은 점점 더 두드러지는 듯 하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거의 모든 정신과 약, 신경안정제등은 실제 수많은 환자들에게 투여되어 그 결과를 관찰한 후 판단되었다.
문제는 예상되는 효과 이외의 부작용에대해 완전히 무지한 상태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절차상 여러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또 다른 문제점은
미디어를 통한 약의 과신 문제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신경안정제가 폭발적으로 판매된 것도 미디어에서
영화배우, 쇼 호스트 등의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다. 유명 영화배우가
TV에 나와 특정 상표명의 신경안정제를 언급하며 칭찬하면 어느 누가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유전적인 연구의 도움으로 이런 불안증세를 가진 인구는 대략 전체
인구의 3분의 1정도로 일정한 비율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약의 구매력은
엄청나게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약물과 관련하여 저자는 책을 쓰고 있는 현재 까지도 약물에 의존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특히 정신약리학은 오늘날의 신경과학과도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연구되고 있다.
예컨대 신경과학의 관점은 단순화하면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약을 통하여 조절함으로써 ‘불안’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하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약물에서 관심을 돌려 또 다른 자신의 불안 장애인 ‘분리불안’을 탐색한다. 특히 분리불안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기일 때 이미 이 분리불안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분리분안과 관련한 연구들로 저자는 유전적인 연구와 환경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들을
다양하게 제시해주는데, 이러한 선천이냐 후천이냐의 논의는 오랜 생물학계의 논쟁인 환원주의적 관점(예를 들어 분자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나 자크 모노 등의 관점)과 전일적 관점(예를 들어 르네 뒤보의 관점)의 대립과 유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저자는 각각의 입장들을 모두 균형있게 보여주고 있으며, 각각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연구팀의 실험결과들을
모두 균형있게 제시해주고 있다. 환원주의적 관점은 불안이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곧 유전적으로 결정되며 인구중 일정 비율로 나타나는 점을 주장한다. 곧
1960년대 유전자 조작 없이도 두드러지게 불안해하는 쥐들을 계속 교배하여 민감한 쥐들을 만들어낸 ‘모즐리 쥐’ 실험처럼 이 불안도 유전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일적 관점은 데카르트가 주장했던 것처럼 인간이 몸과 정신이 구분가능한 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며 몸과 정신은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곧 ‘몸이
마음을 만들며 마음이 몸에 스며든다’라는 표현처럼 이 둘은 구분할 수 없다. 그 증거로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손자 대까지도 ‘생리적으로 측정가능한 불안정도가 높게 나온다’는 연구를 제시한다. 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손들에게 소말리아 내전 희생자에 관한 영화를 보여주면 다른 대조군들보다 훨씬 강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유전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환경적인 면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주는 예이다.
저자는 최근의 불안 연구 경향에 따라 ‘유전적 요인’에 조금 더 무게를 싣고 바라보는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상처와 재능은 함께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시말해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불안은 저자를 힘들게하고 수치심을 안겨주지지만, 오랜 불안장애 속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이룬 찰스 다윈이나 프로이트처럼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유전적인 영향력에 경도된 환원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해 자기 효능감(Self-Efficacy)를 강화해야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나는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처음에 언급했던 방송인 A씨에대해 생각해본다. 그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에대해 이 책을 읽은
일은,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홀로 경험하게 되었을법한 그런 증상들을 떠올리고 이해를 좀더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울러 정상의 위치에서 엄습해오는 그런 불안감을 대면해왔을 이 방송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불안장애의
실체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A씨의 성공적인 치료와 재기를 바라며 이에 응원을 보낸다.
책에 대하여: 이 책은 특히 각주의 분량이 많은 편이었는데, 각주에 사용된 글자의 크기가 작아서 읽어나가는데
꽤 고통스러웠다. 다음에는 각주의 글자를 좀더 크게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책의 만듬새에관해서 달리 불만스러운 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책에 사용된 종이는 가볍고 책장의
넘김은 부드러우며 종이의 밀도는 적당하여 페이지수가 많아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울러 종이의
바탕색 또한 온전한 흰색이 아니라 약한 베이지색이기에 눈에 부담을 주지않고 즐겁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들을 세심하게 고려한 출판사의 책들에 호감이 가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번역자의 번역 작업이 상당히 매끄럽게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읽는 동안 학술적인
전문용어등이 많이 나오는 책임에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저자의 폭넓은 관심이 책에
드러나는 것처럼 다양한 영역에 걸친 주제의 번역을 하느라 많이 고생하셨을 것 같다. 다음에는 번역자의
<새벽의 인문학>을 읽어볼 계획이다. 앞으로 계속 번역자의 좋은 작업을 기대해본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사람들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갖는 생각때문에 불안해한다." (28면) -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
"요즘같은 시대에는 이런 두려움이 더욱 커진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 기술변화로 인한 노동시장 변동, 성역할과 관계의 혼란과 변화등이 노동자들에 압박을 가하여 지속적인 불확정성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당연히 걱정을 하게 된다. 이 일에 더 잘 맞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리를 뺏기게 될까? 일자리를 잃고 중산층에서 밀려나게 될까? 이런 만성적 불확정성이 뇌를 변화시켜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164면)
"불안이 두려움에서 비롯되었고 두려움이 종의 생존을 연장하기위해 설계된 진화적 충동이라면 불안은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불안은 영원한 인간의 조건이다." "불안의 형태는 바뀌었으나 불안의 경험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401면)
"트라우마나 학대의 경험은 몸 안에 축적되고 신체 조직에 깃든다." (413면)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구분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불안을 환원론적으로 보는 관점에 반한 입장의 설명.
"내 불안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끔은 나의 삶을 막아서고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이기도 하다." (422면)
저자의 불안장애를 치료하던 W박사의 충고 "당신한테는 장애가 있지요. 불안장애요. 그래도 잘버텨가고 있고,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봐요. (...) 당신이 그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자신을 좀더 높게 평가하세요." (4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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