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의 탄생 103주년을 지나며

- 주기율표를 읽고

 



언젠가 나탈리아 긴츠부르크의 가족어 사전을 읽다가 긴츠부르크의 친정이 레비(Levi) 가문이라는 대목을 보게 되었다. 그럼 혹시 긴츠부르크 가문이 프리모 레비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특히 긴츠부르크와 프리모 레비의 가문이 이탈리아 북부(각각 밀라노와 토리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럴듯해 보였다. 한동안 이 궁금증을 잊고 있었는데,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라는 책에서 우연히도 답을 얻었다. 책 뒤에 실린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에서 프리모 레비는 긴츠부르크와 친하고 교류가 있었긴 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긴츠부르크의 친정은 아니라고 답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사소해보이는 문제에 대해 나 말고도 궁금해 하거나 물어본 이들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긴츠부르크 가문이든 프리모 레비의 가문이든 이들은 20세기 전반기의 엄혹한 시대를 겪어 냈다. 특히 주기율표는 아직 레비의 책을 몇 권 읽지 않았음에도, 읽기 시작하자마자 반해버린 작품이다. 비가 내리는 7월의 마지막 날에 프리모 레비의 작품을 다시 떠올린 것은, 오늘(731)이 프리모 레비가 태어난 지 103년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폭력성에 대항하여 빨치산 활동을 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레비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중 누군가의 밀고로 19431213일에 파시스트공화국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포로가 되었다. 명망 있는 토리노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화학자가 된 그가 주기율표의 원소를 제목삼아, 에세이 같은 단편 소설을 핍진성 있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주기율표.


 

원소 을 제목으로 한 글에서 레비는 자신의 경험과 모습을 글로 묘사했다. 당시에 포로가 되어 감방에 있던 화자(혹은 레비)가 생리적인 활동 외에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 바로 독서였다.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197) 그러면서 이 일을 겪을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매우 용기 있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 며칠 동안 나는 모든 일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들을 하고 싶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201) 또 화자는 수용소에서 자신의 소중한 추억과 죽음에 대한 공포 보다 더 가까이 있던 것은 바로 굶주림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경계에서 위태로운 삶을 경험했던 프리모 레비를 상상해본다. 그는 실력 있는 화학자였기에 구술시험을 거쳐 수용소 내의 화학실험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화자는 수용소에서 살기위해, 빵과 바꿀 수 있는 라이터 부싯돌을 이리들처럼 도둑질했다라고 고백하는데, 아마 실제 레비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싶다.


 

프리모 레비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렇듯 서경식 교수의 저작을 통해서였다. 그 중에서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박광현 옮김, 창비, 2006)는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서경식은 이 책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인물로서, 나치 독일의 야만적 행적을 증언하며, 이 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인상적인 소설 작품을 남겼던 인물이 왜 자살로 생을 마쳤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 이 책에서 그를 따라가며 그가 품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레비가 했던 여러 생각들 가운데 한 가지 단서가 될 만한 부분이 주기율표크롬이라는 제목의 글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인간들이 아우슈비츠를 지었고 아우슈비츠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내 많은 친구들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을 집어삼켜버렸기 때문이다.”(222)


 

아마도 이 말은 레비가 했던 고뇌의 일부, 거대한 빙산의 일부일 뿐이라 생각한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죄의식수치심’, ‘염치라고 간단히 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 표현 역시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서경식이 토리노의 레비 자택을 찾아가보고자 했던 당시, 서경식의 삶 역시 휘청거리고 너덜너덜했던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가족은 정치적인 상황으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고, 고난을 겪던 두 아들의 구명을 위해 애쓰셨던 모친이 아들의 귀환을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상황. 당장 본인은 직장 없이 불안한 앞날을 끌어안고 있던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 배경은 서경식을 읽고 영향을 받거나 그와 교유해온 여러 문인들, 지인들의 글을 모아 출간한 서경식 다시 읽기(연립서가, 2022)에도 그 정황이 어느 정도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난 후에도 프리모 레비가 왜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인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 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금 단계에서 레비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단정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서경식이 쓴 작품해설에서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로 인해 유대인이 되었다는 대목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주기율표에는 흥미로운 단편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바나듐 편이 인상 깊었다. 이 글은 화자 ’(혹은 레비 자신)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화학 실험실에서 함께 일하던 독일 장교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의 어디 까지가 소설적인 부분이고 어디 까지가 사실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화자는 단지 함께 일했던 독일 장교에 대한 적의나 보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의 태도는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특히 수용소 시절에 상관이었던 독일인을 이해하고자 했다. 나아가 당시 독일 장교의 인간적인 대우에 대해 감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화자는 이 전직 장교에게, 그리고 독일인들에게 자신들이 같은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가라고 묻고 그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시라. 묘한 여운을 주는 단편이다.


 

또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인데, 전업 작가가 아니었던 레비의 직업에 대한 양가적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특히 생계를 위해 화학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는 밥벌이의 지겨움과 작가로서 글쓰기 활동의 양립이 안 되는 상황을 말하는 대목에 공감이 간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전쟁과 수용소가 그것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기술자로 만족해야 했습니다.”(350) 시대와 현실 속에서 휘청거리는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반면 생계를 책임진 생활인이자, 직업을 가진 작가로서 자신을 비추어보기도 한다.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공장을 감독하느라 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 밀리탄차 덕택에, 그리고 거기서 내가 해야 했던 그 강제적이거나 명예로운 일들 덕택에 저는 진짜 현실적인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358) 



어쩌면 레비의 글이 그토록 힘을 갖게 된 이유도 단지 그가 겪은 극적인 경험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의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균형 감각이 레비의 경험들을 분명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따라서 현실적이고 성숙한 레비의 인식을 마주할 때면, 그가 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사실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므로, 이 이유 역시 내 맘대로 재단하고 단정하기 않기로 한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결을 내면에 지니고 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프리모 레비가 태어난 지 103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지 후두둑 떨어지는 비 소리를 들으며 생각해본다.

 


 





[1] "내게 화학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담은, 무한한 형태의 구름이었다. 이 구름은 내 미래를 번쩍이는 불꽃에 찢기는 검은 소용돌이로 에워쌌는데, 마치 시나이 산을 어둡게 둘러싼 구름과 비슷했다."(35)

[2]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한 편의 시이며,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소화해온 그 어떤 시보다도 고귀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주기율표는 압운까지도 들어맞는다."(64)

[3] "증류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사람을 분주하게 하지만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일이다. 또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액체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로, 증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89)

[4]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197)
-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감방에 있던 화자가 했던 행동.

[5]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인간들이 아우슈비츠를 지었고 아우슈비츠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내 많은 친구들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을 집어삼켜버렸기 때문이다."(222)

[6] "이방인을 사랑하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282)
- 구약 성경 <신명기> 10장 19절의 글귀 재인용. 유대인이었던 레비에게 이 문장은 누구보다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7] "내 목소리는 약하고 심지어 약간은 세속적이기까지 합니다."(325)
- 볼테르가 자신의 시 <오를레앙의 처녀>(1762)에서 잔다르크를 찬양하며 쓴 글귀.

[8] "지금 이 순간 미궁처럼 복잡한 줄거리를 벗어나 내 손으로 하여금 종이 위의 어떤 여정을 따라 달려가며 기호들의 소용돌이를 그리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세포다. 위로 아래로, 두 차원의 에너지 사이로 이중 도약을 한 이 세포는 내 손을 이끌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게 만든다, 바로 이 마침표를."(337)
- 마지막 문장.

[9] "생각하고 관찰한다는 것이 제 생존의 요인이기도 했어요. (...) 비록 제가 보기에는 맹목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말입니다. 저는 특이할 정도로 정신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것 같아요. (...) 사실 저는 제 주위의 세계와 인간들에 대한 기록을 멈춰본 적이 없습니다. (...) 어떤 사람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호기심이었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 속으로 옮겨진 자연주의자의 호기심이었습니다."(348)
-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에서

[10]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공장을 감독하느라 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 밀리탄차 덕택에, 그리고 거기서 내가 해야 했던 그 강제적이거나 명예로운 일들 덕택에 저는 진짜 현실적인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3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첼 카슨 외 지음, 스튜어트 케스텐바움 엮음,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이 품은 관계성을 바라보기

-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2022)


(원제: Visualizing Nature)

레이철 카슨 외 19명 지음 |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우리는 자연이라는 용어에 친숙하다.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자연이 뭐야?’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는 여러 사상가, 지식인들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그 중 레이철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보고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레이철 카슨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정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25)라는 표현이었는데, 이제 행성 지구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자연은 명료하게 정의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무언가로 다가온다. 실체가 있다고 믿어지지만 또한 어떤 대상을 명확히 지시하기 어려운 무엇. 영어 단어 nature가 품고 있는 여러 의미처럼, 존재물의 성질이나 본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닐봉지나 통조림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되고,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 호르몬이 알라스카의 이누이트 족이나 북극곰 체내에 가득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선뜻 레이철 카슨이 말하는 자연의 정의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는 DDT와 같은 살충제의 폐해를 경고하는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섬 GPGP와 같은 풍경이나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를 알기 전에 사망했을 터이므로 이 자연의 정의를 고수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반면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다시 뜯어보면 자연이란 실체와 인간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정확한 용어를 찾긴 어렵겠지만, 카슨의 자연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미개척지로서의 야생(wilderness)’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혹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행성 지구 위의 장소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카슨의 자연과 달리 이제 우리는 자연의 다른 정의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서 처음 만난 글에서 잠시 머뭇거린 이유는 내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물음을 갖고 나는 계속 여러 저자들의 에세이를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은 시인이나 작가, 저널리스트, 조경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저자들이 자연을 주제로 쓴 짧은 에세이를 담고 있다. 숲이나 늪지에서, 바다 속에서, 나무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단상이 모여 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글이지만 이들에게서 결이 맞는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이들이 모두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말을 걸 때, 이들은 이에 귀를 기울이고 여기에 화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엮은이의 말에 따르면, 이 저자들은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담겨 있는 주제들을 숙고하고, 오늘날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당대에 마거릿 풀러,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소통하며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다. 따라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의 저자들은 한편으로 에머슨의 후배 사상가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레이철 카슨이 언급한 자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다른 저자들의 글을 읽어보니 자연이란 어쩌면 관계성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연이란 관계성을 품은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로 오래 일했던 아키코 부시는 기억이라는 지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인간)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연을 파악하려는 활동으로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우리의 모습과 시간을 두고 기억에 새겨진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저자는 불과 한 인간의 일생이 지나는 시간 동안 변해버린 숲의 모습, 그리고 몇 개월 사이에 인간의 영향으로 변해버린 땅, 장소를 바라보고 성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자연의 장소는 바로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가 아닌가. 만약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으로 변해버린 장소는 자연의 지위를 잃은 것일까. 인간이 행성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긴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해 변해버린 지구의 모습,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장소,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된 공간 역시 자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관계성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면 어떤 환경이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행성 지구가 갖추게 된 모습은 결국 또 하나의 자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아마존 밀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명 속에서 살게 된 인간에게 도시는 또 하나의 자연이 된 셈이 아닌가. 관계성을 염두에 둘 때, 콘크리트에 덮인 도시가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자연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인간과 도시의 새로운 공진화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의 관점에서 읽다보니, 진 바우어의 글에도 주목해본다. 그는 여러 책의 저자이면서 먹거리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글의 서두에서 그는 거리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하나를 인용한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163) 바우어에 따르면, 이 말은 인간의 오만함,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을 암시하고 강조한다. 인간으로서의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경고하면서, 특히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한다. 육식 보단 채식을 함으로써 건강과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을 존중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가 언급하는 인류세의 특징 중 인상적인 표현은 인간이 닭 뼈가 수북하게 박힌 지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시점에서 일흔일곱이 된 저자 월리스 코프먼의 에세이가 기억난다.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글에서 그는 딸에게 자신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바람을 전한다.


 

일흔일곱 해를 산 지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소박한 관에 담겨 땅에 묻히고 내 위에서 검은 호두나 도토리가 아래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인데, 딸이 그 소망을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부활하여 세상의 영주자가 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174)


 

월리스 코프먼의 이 바람 역시 생명이 또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연 속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성찰이 아닌가. 나 역시 나의 마지막 모습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학교에서 자연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자연과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저자들의 글들을 보면 각자 자신의 배경에 따라 자연과의 관계를 숙고하고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visualizing nature'. 글로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했던 시도가 아니었을까싶다. 각자가 경험한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독자에서 제시하는 활동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도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명의 저자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이들 모두 자연이란 실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에세이들은 현대인이 자연과의 대화가 중단되거나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은 모습을 일깨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자연을 보여주려는행위는 인간이 자연과의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이면서 자연과의 우주적 합일을 바라는 주술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길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있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이 문장이 이 책의 정신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일이다.”(13)

 




[책 속으로]

[1]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다."(13)
-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 제7장 ‘정신‘에서 재인용한 문장

[2] "이 책에는 2차림에서, 사막에서, 늪지에서, 산호초에서, 수백 년을 사는 나무들에서, 저지Jersey해안에 부서지는 파도에서 온 소식들이 담겨 있다. 그건 아마도 아직 세상에 조화로움이 존재한다는 소식일 것이다."(19)

[3]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관한 정의는, ‘자연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입니다."(25)
- 레이철 카슨,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에서 재인용한 ‘자연’의 정의.

[4] "브리슬콘소나무는 가능성의 가장자리에서 산다. 그 뒤틀린 나무들은 경게에 선 보초들이다."(63)

"브리슬콘소나무는 ‘긴 시간’을 산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이 나무들은 긴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산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66)
- 데이비스 해스컬,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스론소나무를 찾아서」에서 인용.

[5] "나는 솔방울이나 벌보다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와 운명 사이의 문제다. 나를 필요로 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환영해주는 세계에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완벽한 본보기다."(73)
- 후안 마이클 포터 2세, 「자연의 무심함 속에 사는 영광」에서 인용.

[6]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 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 아키코 부시, 「기억이라는 지리」에서 인용.

[7] "수중 세계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란하다. 산호들이 펑펑, 비늘돔이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낸다."(131)

"나는 단편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이 림보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암초상어가 부럽다."(133)
- 폴 베넷, 「산호초가 부르는 더 깊은 곳으로, 프리다이빙!」에서 인용.

[8]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중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재치 있는 말은 우리 종의 오만이 다른 동물들과 자연,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쳐왔는지를 강조한다."(163)

"이제 과학자들은 우리가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지질시대는 인간의 지배, 멸종, 플라스틱과 닭 뼈가 박힌 화석 기록이라는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164)
- 진 바우어, 「우리는 본래 농업 인류였다」에서 인용.

[9] "나의 묘비명:
여기 잠든 남자/ 그의 삶은 길었고/ 의지는 약했고/ 모은 튼튼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망은/ 생각을 키우고 말(언)을 수확하며/
세상의 경이를 키우는 것./ 이제 그는 위에 있는 나무를 키운다."(174)
- 월리스 코프먼,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에서 언급한 자신의 묘비명.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07-11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건 좀 딴 얘긴데, 초란공님의 글은 글자가 커서 좋습니다.ㅋㅋ

초란공 2022-07-11 20: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젠 글자가 커야 답답하지 않더라고요 ㅋㅋ^^;;

페크pek0501 2022-07-23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자연이 개발이다, 뭐다 해서 그 영역이 좁아지고 있는 게 문제예요.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말이죠. ^^
 
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희망이란 씨앗을 틔우고 돌보는 일의 위대함

- 퀀텀 라이프》(2022)

 



1970년대 당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마치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짐승과 같았다.”(14)


 

나는 거의 엄마의 매버릭 안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23)


 

여기에서 엄마의 매버릭이란 7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 회사 포드(Ford)에서 출시했던 소형 승용차를 말한다. 위의 인용문은 퀀텀 라이프의 저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가져온 것이다. 안전한 집 없이 빈민가를 전전하던 어머니와 저자의 어린 시절에 흑인이라는 변수가 더해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내린 것 같이 여겨졌다. 분명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삶이다. 학교 친구들과 작별 인사는커녕 엄마의 낡아빠진 매버릭을 타고 매년 다른 학교를 다녀야 했던 생활을 단지 상상해 볼 뿐이다.


 

흑인 저자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발견하곤 하는 사실은 이들이 성장하며 각자의 세계가 커짐에 따라 어느 시기에 반드시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가 어린 시절에 전전하던 지역은 뉴올리언스 주나 미시시피 주의 시골이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느리게 변하는 세계였다. 빈민가의 흑인 학생들은 폭력과 마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운명에 어떤 변화와 개선의 가능성 보다는, 무언가에 단단히 고정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10대 학생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이런 상황이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고 있었다. 퀀텀 라이프에는 저자가 편견과 차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가 거대한 벽과 마주하여 어떻게 이를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어떻게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향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미국에서 빈민가의 흑인 소년이라는 조건은 마치 정해진 도식과도 같은 삶의 굴레를 예고하는 듯했다. 많은 10대의 흑인 학생들은 마약에 빠지고 학교를 중퇴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후에도 끝없이 나락으로만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빈민의 경계 안에서 맴돌게 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영에 가깝다. 자주 쓰는 표현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니었던 것. 10대 시절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한 인물의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된 사례는 이 과정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를 반증한다. 하지만 그의 삶을 단순히 아주 드문 가능성에서 벗어나 기적처럼 발생한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암울한 환경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책과 사람 - 희망이란 씨앗


 

책을 읽으며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저자의 높은 지능이나 높은 성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점이었다. 단지 많이읽은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책마다 닥치는 대로읽었던 것이다. 책이 귀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교 시절 그가 알렉스 해일리의 뿌리 Roots를 발견하고 독파했던 이야기가 인상 깊다. 내가 뿌리의 마지막 부분에서 느꼈던 전율을 저자도 틀림없이 느꼈을 테다. 그의 엄마는 자유로웠던 크리올 출신(흑백 혼혈)이었지만, 아빠는 뿌리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쿤타 킨테처럼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와 노예가 되었던 가문의 후예였다. 백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이름마저 바꾸도록 강요받았던 쿤타 킨테의 삶이 책을 통해 저자와 연결되었다. 빈민가의 한 어린이에게 책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으며, 이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저자는 우연히 백과사전까지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마주쳤던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에 대한 설명은 분명히 그의 삶을 크게 흔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제 내가 괴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대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암호를 주고받는 어떤 비밀단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87)


 

한 독자가 책읽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이와 연결되는 경험을 말한다. 그 중에서 저자가 백과사전에 나온 상대성이론 부분을 읽고 거리의 갱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장면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 흥분과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집 밖의 거리는 안전한 적이 없었고, 남들에게는 나쁜 놈처럼 행동해야 했지만 이미 희망의 씨앗이 그의 안에 심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 씨앗을 심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싹이 트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실내에서 식물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규칙적으로 물만 잘 준다고 성장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초보 재배가들은 식물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식물이 썩게 만들기도 한다. 식물에는 햇빛뿐만 아니라 통풍도 매우 중요한 것처럼, 하나의 씨앗이 온전한 식물로 성장하려면 여러 조건이 적절히 잘 갖추어져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빈민가 흑인 아이의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폭력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고 갱스터 흉내를 내야 했지만, 제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지해주었던 학교 선생님들이 있었다. 저자에게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교장 선생과 크로스 선생님, 과학전람회에 나갈 수 있게 값비싼 컴퓨터마저 집으로 가져가게 허락했던 과학교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 뿐인가. 핵엔지니어를 제안 받아 입대했던 해군에서는 자신을 열정적으로 격려해주고 지지해주었던 게이지 상사도 있었다. 대학원시절에는 양자역학을 11로 지도해주었던 틸 박사나 박사학위 자격시험을 준비할 때 도와주었던 다비드 같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저자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은 대학원 시절의 지도교수 아서였다. 아서 역시 흑인이었다. 그는 유색인들의 능력이 뛰어나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적 능력에 의심을 제기하는 백인들의 편견 및 인종차별적인 유산과 평생 싸웠던 사람이었다. 저자에게 아서는 격려와 질책으로 큰 스승이 되어주었고 나아가 학교 밖의 더 큰 세계와 연결해주었던 스승이었다.


 

유색인이었던 저자는 자신의 길을 찾게 되기까지 마약중독과 유색인들에 대한 편견, 제도적인 인종차별이라는 벽과 씨름해야했다. 비록 암울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는 결국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곁에서 그가 자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었다. 재능이 있는 한 사람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데에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주목해볼만하다. 물론 저자의 삶은 희망이라는 씨앗이 있다면 아주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알려 준다. 그건 바로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 돌봄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양자역학의 한 현상과 비교했다. 하나의 입자가 아주 드문 가능성의 벽이라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터널링 현상에 빗댄 것이다.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5)라고 말한다. 여기에 양자역학의 원리처럼 우리의 운명이 결코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책의 제목을 통해서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로 자신이 그 증거라고 말이다. 저자의 삶은 영화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책과 사람들)이 있었음에 다시 주목해본다. 이 책에는 한 인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방벽을 극복한 성공스토리가 담겨있다. 제임스 플러머 주니어라는 이름을 하킴 올루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자기 결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성공스토리는 한 사람이 온전히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준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함께 이루어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1] "나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5)

"나 자신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삶은 이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15)

[2] "집 안의 가전제품들은 마치 누군가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면서 두고 간 쿠키 점시와도 같았다. 나는 그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너무나 알고 싶었다."(36)

[3] "《뿌리》를 다 읽자마자 당장 다른 사람들과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실제로 다 읽은 사람을 주변에서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86)

[4] "그렇게 힘든 나날 동안, 학교 선생님들만이 나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131)

[5] "그(해군의 게이지 상사)는 마치 황금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대했다. 또 그는 나의 ‘고결한 인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칭찬했다."(194)

[6] "나는 너무 힘들고 너무 중요한 시기를 너무 많이 흘려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마냥 중독자가 되거나 살해될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 (...)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나와 거래하던 마약 중독자의 눈동자에서, 그들과 똑같아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252)

[7] "나는 난생처음으로 앞으로 어떤 과학자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했다."(270)

"나는 안전하다고, 그리고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꼈다."(271)

[8] "나는 나의 의지와 자기 결정의 의미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406)

"유년기를 극복하기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에게도 위협을 가하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 그때부터 나는 미래가 나의 손에 달린 삶을 살게 되었다."(406)

[9] "그들(아빠와 지도교수 아서)은 내가 그들의 길을 따르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만의 여정을 마쳐야 했다. (...) 이제 미래로 향하는 길을 나 스스로 구축할 때가 되었다."(414)

[10] "나는 과학분야에서 나만의 능력을 발견하고자 했고, 사회가 나에게 계속 투영했던 부정적인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멈추고 나서야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415)

[11] "아이들이 꿈을 구는 한 한계는 없다. 수천억조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매우 광활하다. 그러나 무한하지는 않다. 유한하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418)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7-11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11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7-11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재밌을 거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역시 사람을 키우는 건 책과 사람들이군요!!!

[3] 글 너무 공감가네요.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그 경험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현실ㅠㅠ 그래서 다들 온라인으로 소통하나봐요.

˝내가 관측한 것 중에 무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멋진 글입니다!!!

초란공 2022-07-11 14:30   좋아요 2 | URL
마치 영화처럼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하면서 말이에요. 그래도 아무 것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책 재미있습니다!

scott 2022-08-10 16: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추카!
이 책 작가님이 배우급이네요 !
이 책 찜 ^^

초란공 2022-08-14 21:27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시원한 연휴 보내세요!!

mini74 2022-08-10 16: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디 초란공님 *^^*

초란공 2022-08-14 21:57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mini74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8-10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우리가 사는 세상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게 감동이예요!

초란공 2022-08-14 21:05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며칠 간 로그인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야 들어와서 서재글을 보고 있어요. ^^;;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인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8-10 17: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역시 멋진 리뷰는 당선되는거 같아요 ^^

초란공 2022-08-14 21:40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지난 달에는 몇 편밖에 쓰지 못했는데, 뽑아주신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ㅋ

이하라 2022-08-10 2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초란공 2022-08-14 21:29   좋아요 3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이하라님도 축하드리구요! 남은 연휴 시원하게!!

thkang1001 2022-08-11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초란공 2022-08-14 21:35   좋아요 2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내일 부터 또 비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건강한 연휴 보내시길요!

고양이라디오 2022-08-12 04: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려요^^
덕분에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ㅎ

초란공 2022-08-14 21:47   좋아요 3 | URL
고양이라디오님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보람이 있네요^^ ㅋㅋ 고양이라디오님의 ‘스포일러‘... 계속 기다립니다.^^

thkang1001 2022-08-16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우리 숨바꼭질할까 - 꿀샘의 오순도순 학교 이야기
김향숙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교장 선생님

- 우리 숨바꼭질할까

 김향숙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2021)




학교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좋아하는 선생님 몇 분이 있긴 했지만, 교사의 폭력적인 언어와 체벌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책상에 올라가서 주먹과 발로 학생들을 내려찍던 수학 선생, 커다란 주먹으로 얼굴을 날리거나 나무 분필통을 학생들 얼굴에 집어 던지던 체육 선생, 테잎을 감은 각목으로 한 시간 내내 돌아가며 반 전체 학생을 400대나 때렸던 불어 선생도 여전히 기억난다. 지금쯤 은퇴했거나 은퇴할 나이가 다 되었을 것이다. 또 나보고 지진아라고 했던 여자 선생(심지어 도덕 선생님!)도 기억난다. 당시에 나이가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 아니었을까 싶은데, 모든 남자 아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분출하던 분이었다. 이제는 교사와 학생의 입장이 반대가 된 상황이라 학교 교실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에세이집 우리 숨바꼭질할까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한 분이었다. 읽는 글마다 뭉클한 감동이 느껴졌다. 저자는 500명이 넘는 전교생을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간에 맞아주고 이름을 외우는 교장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이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는 교장선생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교장 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표정만 보고도 아이들의 심리 변화나 형편을 읽어내는 일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아이들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학교의 실태를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32)


아이들 이름을 알기 전의 학교와 이름을 알고 난 이후의 학교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계였다.”(33)

 


아이들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른인 나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들에겐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음을 자주 잊곤 한다. 엉뚱해 보이고 때론 기발한 생각을 해내는 아이들에게 내 선택을 종용하고 있지나 않은가 점검해본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에게 아이들의 질문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직접 임명장을 받기도 하고, 아이가 직접 쓴 하나 뿐인 동화책을 선물로 받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저자로부터 감화를 받고, 저자의 상냥한 말투를 따라하며 성장해가고 있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교장 선생님을 상상한 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니 나는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겐 그게 당연하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예상과 편견을 뒤집는다.


 

저자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어른인 내가 아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의 말마따나 아이들은 저마다의 고유함을 지닌 존재’(113)인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단지 덜 발달된 사람 혹은 더 배워야하는 사람으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를 지키려고 학교에 나오지 못하던 한 아이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저자는 아이의 집을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당장 도와줄 수 없어 무력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책에는 5학년 선배들이 1학년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오일장 책 나들이행사도 소개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재직하던 초등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5학년 아이들은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보다 진지하게 책을 이해하게 되고, 후배를 챙기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책임감을 배운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저자가 있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만으로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여기에 더하여 이런 경험을 마련해준 저자와 교사들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교사 업무 가운데에도 전교생과 손편지를 수시로 주고받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학창 시절에 이런 선생님이 있었다면 그 시절이 누군들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에 실린 에세이 중에서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던 어느 1학년 아이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저자를 비롯해서 다른 교직원이 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하기를 한 학기 내내 했던 것 같다. 방학이 지나고 다시 개학날이 되자 이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교실에 많은 걸 보고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한 아이와 함께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저자와 교직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경험을 한 이후 저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아이를 위해 모두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아닐까.”(107)하고 말이다. 어쩌면 교사는 아이가 집을 떠나 사회(학교)로 나왔을 때 돌보아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조카나 아이들에게 나의 견해를 이해시키려고 조급하게 떠밀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당황스럽기도 했다.


 

가히 폭력 교실의 시대를 거쳐 온 내게 40년 동안 저자가 몸소 실천해낸 교육 현장의 모습이 때론 생소하기도 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이러한 저자의 모든 노력에는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 우선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세계가 있었다. 책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저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아이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이 깊다. 또 아이들은 각자 고유한 이름을 가진 존엄한 존재이기도 하다.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많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아이들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많다고 느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인내심을 가지고 더 배워야하는 어른이었다.

 

[1] "아이들 이름을 알기 전의 학교와 이름을 알고 난 이후의 학교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계였다."(33)

[2] "아이들은 하나의 숫자나 번호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존재이다. 이름부르기는 서로를 환대하고 존중하는 일이다."(33)

[3]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어떤 일이든 아이들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언제나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36)

[4] "우리 교직원이 경서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고 경서와 함께 산책했다. 그것이 전부이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아이를 위해 모두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아닐까."(107)

[5] "아이들은 내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은 단지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 ‘너‘와 ‘내‘가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123)

[6] "저는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132)

[7] "나는 왜 굳이 손편지를 쓰는가? 나는 손편지를 쓰는 동안 오직 편지를 받는 대상에게 빠져든다. 한 획, 한 글자를 꼭꼭 눌러 쓰면서 그를 불러온다. 그가 나의 펜 끝에 닿으면 우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즉 우리의 세상이 된다. 손편지는 이렇듯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내가 한 아이도 빠뜨리지 않고 해마다 손편지를 쓰는 이유이다."(1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거나 말거나 - 쉼보르스카 서평집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봄날의책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포의 시와 장미허브

- 쉼보르스카의 읽거나 말거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되어 책읽기가 쉽지 않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겠지만, 일이 끝나면 거의 탈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면 10분이 안되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는 한다. 무언가를 읽는 게 힘들어졌다. 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요새는 여러 블로그나 서재의 좋은 글들을 읽을 기력도 나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수입은 줄어들어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으려나 했건만, 내 몫의 삶을 살아내는 일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매일 아침 흔들흔들 언덕을 오르내리는 마을버스 안에서 잠시 펼쳐보는 책읽기가 꿀맛이다.


 

최근에 아내가 직장에서 장미허브 하나를 받아왔다. 톡톡 건드리고 쓰다듬으면 기분 좋은 향이 공기에 가득해지고, 못생긴 내 손에서도 향기가 난다. 햇빛이 잘 안 드는 집이건만 그래도 거실 창가에 가까이 해놓고 통풍을 신경써주어서 그런지 잘 자라고 있다. 조금 웃자란 부분을 끊어서 빈 화분에 장미허브를 옮겨 심었다. 아내가 장미허브는 이렇게 해도 잘 자랄 수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시들지 않고 상태를 유지하는 걸 보면 생존의 기로에서 한창 사투를 벌이는 모양이다.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매일 지켜보고 있다. 새로 심은 녀석도 톡톡 건드리고 쓰다듬어 보면 여전히 향이 퍼진다. 제약이 있긴 하지만 식물의 경우 본체로부터 나누어진 일부가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 늘 감탄하게 된다.


 

장미허브를 톡톡 건드리다가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에 눈이 가서 펼쳐보았는데, 마침 사포의 시집에 대해 짧게 리뷰를 남긴 페이지가 나왔다. 쉼보르스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었던 사포가 남긴 시는 1만 여 편으로 추산된다. 그 중에서 전해지는 시는 550편이고, 다시 이 가운데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불과 몇 편이란다. 규모로만 보자면 빈약한 파편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쉼보르스카는 그의 시대에도 여전한 사포 열풍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했던 시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머리와 팔, 발이 소실된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언급한다. 니케 상 주변에 떨어져 있는 손과 발 일부 조각들을 가리키면서 만약 니케상에서 단지 몇 개의 발가락만 남았더라면, 과연 감탄할 사람이 있겠는가”(44)라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간결하면서도 절제되고 정곡을 찌르는 언어를 사용하기로 유명했던 시인, 자신이 쓴 시를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쳤던 시인 쉼보르스카가 생각하는 시의 본연은 뺄 단어가 보이지 않는 그런 완전체에 가깝다.


 

몇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는 단어 하나만 사라져도 시 전체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44)

 


하지만 시인은 비록 사포의 시가 대부분 잘게 부서진 조각 같긴 하지만 란 돌을 깎아내어 만드는 조각품이 아니다”(44)라고 말한다. 오히려 파편처럼 남아 있는 시와 시어를 통해, 시인의 숙련된 경험과 직관을 통해, 오히려 위대한 시인을 상상했다. 사포의 시집에 대한 아주 짧은 리뷰이지만, 나는 사포의 시들이 오히려 이 장미허브를 닮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각처럼 몇 개의 이파리만 남은 생명이 빈 화분을 만나 다시 살아내듯이, 단어만 남은 시어, 빈약한 파편들로 이루어진 사포의 시를 통해 고대의 시인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 곁에 있는 셈이다.


흐린듯하지만 바람이 살살 부는 주말, 2000년 넘게 단어 몇 개가 살아남아 전해지고 여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는 시와 시인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혹독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이 시를 읽었거나 시인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또 다른 시인의 삶도 떠올려본다. 모처럼 새로 심어 놓은 장미허브 앞에 앉아 잎을 톡톡 건드려보기도 하고 쓰다듬으며 향기를 맡아 보는 아침이다.

 



 


 

[1] "시詩란 돌을 깎아내어 만드는 조각품이 아니다" (44)

[2] "몇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는 단어 하나만 사라져도 시 전체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 (4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6-05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쁠때 잠깐 시간 내어 읽은 책들이 더 기억에도 많이 남는거 같아요. 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요~!! 허브향과 함께 좋은 연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초란공 2022-06-06 09:35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기도 하구요^^ 평안한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