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미국 단편소설의 코드 - 예술 감상을 위한 미학 세미나
한동원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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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규정되기 어려운, 그러나 시대와 함께 호흡해온 개념



그로테스크

: 예술 감상을 위한 미학 세미나

한동원 지음 [미술문화] (2024)

 



문학 혹은 보다 포괄적인 범주로서의 예술에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을 말할 때 무엇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까? 그로테스크를 읽기 전에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뭔가 음침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정도 이해도 틀리진 않겠지만, 지극히 제한된 이미지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학술적이지 않은 일반 독자로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을 거칠게 조사해본 바로는 우선 어떤 기준으로부터의 일탈에 해당하는 요소가 이 개념에 담겨 있다.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의 동굴 벽에 그려져 있던 기이한문양들은 해괴한 생물의 형태를 띠는 것이 많다. 사람 몸에 뱀이나 말이나 사자 다리와 같은 몸을 가진 존재, 혹은 기묘한 형태의 덩굴 식물처럼 보이는 대상들이 보는 이에게 무언지 모를 스산함을 일으킨다.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고대의 그로테스크적인 것들은 무엇보다 자연 질서에서 벗어난 것 혹은 이 질서의 와해를 가져오는 요소를 지닌다. 곧 질서로부터의 일탈, 정상성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이해된다. 결국 어떤 대비되는 요소들의 병치와 혼합이 가져오는 낯설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문학에서 대상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하는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우스꽝스러움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히 고전적인 그로테스크의 개념이 예술가들에게는 점차 뜻하지 않은 어떤 상황에서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경우가 등장할 때를 의미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웃음이라는 인간적인 행위를 천박하고 조야한 것으로 여겼던 귀족들의 절제되고 엄숙했던 규범을 조롱이라도 하듯, ‘귀족이 아닌 계층들의 웃음 코드는 기존의 질서를 와해하는 요소로서 그로테스크의 외연이 확장되어 온 정황으로 보인다. 따라서 과거의 귀족이나 식자층만이 향유하던 문학 혹은 예술 향유의 세계에 점차 민중이 침투하고 얽히면서 그로테스크 개념은 불가피하게 변형 혹은 확장의 단계를 거쳤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맥락에서 그로테스크개념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섬뜩함을 여전히 함께 유지한 채 말이다.

 


그로테스크의 저자는 19세기 정도까지 형성되어 유지되어온 고전적인그로테스크의 개념 이후 변화 혹은 확장된 개념으로서 그로테스크를 추적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미국 근현대 단편소설로부터 보다 현대적인 그로테스크개념을 찾아내고 있어 내겐 신기하고 무척 흥미로웠다. 다시 말해, 저자는 미국 문학에서 미국적 그로테스크의 코드를 추적하고 있다. 미국 근대 단편소설의 전범이 되었던 에드가 앨런 포에서 출발하여 현대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까지, 10편의 대표 미국 단편을 뼈대로 두고, 문학에서의 그로테스크개념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선 나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 대한 논의다. 꽤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미국의 서해안과 동해안 지역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미국적인 정서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학술적으로 검증된 의견은 아니다) 대신 미국적인 정서를 들여다보려면 남부로 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미국적 그로테스크개념을 추적하며 언급하는 작품 가운데 연작소설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언급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20세기에 들어 산업화되어가던 미국 남부의 정서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남부 그로테스크southern grotesque'라고 하는, 지극히 미국적인 그로테스크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이 특수한 개념은 미국 국토의 양쪽 해안가 주변의 대도시들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반면 깊숙한 미국 내륙, 흔히 남부라고 지칭되는 곳의 중소도시로 방향을 틀어, 이 시기 미국의 산업화 시대의 여파로 한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농촌 사회가 결국 붕괴되기 시작하는 시기의 인간 소외와 고립의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이전까지는 정상성으로부터 일탈한 존재, 규범적 질서로부터 벗어난 괴물 같은 그로테스크적 존재가 관심의 대상이었을지라도, 이제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이는 존재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언가의 불일치’, ‘불편함’, ‘낯설음의 정서를 새롭게 주목하고 발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그로테스크한 특성은 더 이상 주로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소외와 고립이라는 정신적인 영역으로 올라왔다는 의미”(74)로 풀이한다. 그러니까 기존의 유럽 문화 및 예술에서 명맥을 유지해온 고전적인 그로테스크 개념은, 이제 신대륙의 내륙 깊은 곳에 자리 잡으며 삶에서 분리되어 파편화하는 개인들”(67)에 대한 개념으로 새롭게 확장되어 갔던 셈이다. 이러한 미국적 그로테스크가 개인의 내면을 비추고 탐험하기 시작하면서 자아 안에 동화되지 않은 타자로서 여성적인 것”(70)과 같은 퀴어성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저자가 소개하는 셔우드 앤더슨의 연작소설 가운데 <>이라는 작품이 바로 이런 점들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특징을 또 잘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인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남부의 전통적인 기독교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한국 독자로서 이 작품의 그로테스크적 성격을 처음부터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까 탈옥수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이야기, 그리고 살해되는 가족과 살인자들이 나누는 종교와 구원에 대한 기이한 상황으로서 그로테스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때 고려해야할 부분이 남부 근본주의(종교적 극단 혹은 광신이라는 뉘앙스로서)이며 여기에 다크 유머가 추가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른바 총구 앞에서 남부적인 정서로 살인자와 미소지으며 대화하는 기이함에 주목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로테스크 문학에서는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이 뒤섞여 있고, 숭고함이 추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이러한 다크 유머가 아주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141)

 


남부의 그로테스크가 잘 드러나는 오코너의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물론 한국의 독자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다크 유머와 비극,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병치되고 얽혀 있는 상황에 주목해본다. 피 구덩이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을 한 할머니의 시체. 물론 이 장면 자체가 그로테스크하지만, 이 소설은 여기에 무언가 더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코너의 소설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적 정신 혹은 교리로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특유한 정서와 같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곧 오코너의 단편이 그로테스크한 것은, 단순히 살인이라는 소재나 기독교적 소재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낯설음 그 자체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미국 남부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텍스트 너머의 뉘앙스를 파악하는 데 큰 제약을 느낀다. 하지만 저자의 언급대로 오코너의 1960년대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로테스크 역시 소외되고 단절된 인간 내면의 풍경을 하나의 그로테스그적 요소로 제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저자는 이후의 미국 문학에 관한 논의에서 토니 모리슨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포스트모던 그로테스크나, 그로테스크 개념을 젠더화한 조이스 캐럴 오츠, 베트남 전쟁 시기 이후의 인간들의 내면과 감정, 불안 등에 주목하는 팀 오브라이언의 작품 속 그로테스크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 있다. 각 작가와 작품에 대한 독서 역시 앞으로의 영미 문학 작품 감상에 좋은 참고가 되겠다.

 

저자가 제시하는 미국 단편 소설들에서 찾아본 그로테스크 개념은 결코 정의되지 못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이야말로 네로 황제의 동굴 벽에 그려진 자연 질서의 와해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문양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도록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재생산, 확장, 변형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은 마치 마르지 않는 찰흙처럼 문학 나아가 예술이 존재하는 한, 시대와 호흡하며 공진화해가는 개념으로 보인다. 나아가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은 규정되기 어렵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창작의 요소에서 발견될 수 있는 요소가 아닌가 자문해보기도 한다. 이를 테면, 음악에서의 어떤 일탈적인 시도(형식적이든 기교적이든) 역시 기존의 규범과 질서에 새로움 혹은 낯설음으로 다가와 그 순간의 그로테스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다시 이것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면 더 이상 새로움이나 낯설음을 느끼지 않을 테고, 그러면 또다시 이 국면이 앞으로의 새로움, 혹은 파격을 예비하는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그로테스크는 결코 정의되지 않을 무언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은 어쩌면 창작하는 모든 존재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어떤 내적 충동의 결과일수도 있지 않을까. 진부함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구, 혹은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정신과 같은 것 말이다. 그로테스크를 읽고 나서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해본 바는, 우선 이 개념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이것이 기존의 존재 혹은 진부함을 거부하는 예술가의 창작 충동과 더 관련이 있을 법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의 형식과 작품에서 우리는 그 시대와 호흡하며 작품에 입김을 불어 넣었던 그로테스크한 요소를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보편적인 창작 원리로서의 그로테스크개념을 이번 독서에서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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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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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모른다로부터 문학은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박희진 옮김, 솔출판사, 2019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과 만났다. 쉽게 읽힌 책은 아니었다.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 가운데, 1부에서는 램지 씨네 가족이 주로 등장한다. 이들은 저명한 교수인 듯 보이지만 아내/여성으로부터 인정과 관심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램지 씨와 그의 부인 램지가 주로 등장한다. 이들은 매년 스코틀랜드의 서쪽에 있는 어느 섬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낸다.

 

램지 부인은 바다 건너에 외로이 서 있는 등대에 가보고 싶어 하는 아들을 세워두고, 등대에 갈 경우 등대지기 아들에게 줄 양말을 짜는 장면이 나온다. 부인은 아들을 모델로 양말 길이를 어림해 보는 중이다. 짜던 양말 길이를 꼼지락거리는 어린 아들의 몸에 대보는 잠깐의 시간 동안, 램지 부인의 의식은 확장되어 몇 페이지나 이어진다. 몇 페이지나 지났을까, 부인은 다시 생각에서 벗어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을 타박하고는, 다시 양말의 길이를 잰다. 소설의 화자는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어느 순간 바뀌어 있다. 각 화자의 내밀한 의식이 제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러니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은 타인들에 의해 파악된 일부 특징들이 단서가 될 뿐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을 규정하는 방식이 늘 이렇지 않은가.

 

영문학 전공자들은 울프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울프 입문자가 처음부터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기회가 되면 원문으로도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다. 단 울프의 소설에 대한 첫인상은, 울프의 실험적인 문체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점이다. 램지 부인이 바라보는 풍경처럼 화자의 의식이 불현 듯 확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의식이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울프의 문체는 정말 탁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어가 익숙해서 문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램지 부인은 가족을 위해 이타적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인간적인 내밀한 욕망과 소망을 간직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잊기 쉽다. 가족의 일을 정신없이 돌보는 가운데 내밀한 그녀의 바램이 스쳐지나간다.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혼자 남아 사색에 잠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작가는 램지 부인의 욕구와 자의식을 주목하고 있었다.

 

반면 소설에는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더 놀라운 부분은, 램지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한 문장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심지어 결혼한 딸이 출산에서 죽은 사건과 참전한 아들(작품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소설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시기에 집필되었다.)이 전사한 사건도 한 문장으로 처리할 뿐이다. 작가에게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섭리였음에도, 그녀는 작품에서 아주 간결하게, 마치 일상의 루틴처럼 처리하고 있어 오히려 충격을 준다. 이에 비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면은 여러 인물의 내면이 파도 위의 돛단배처럼 표류하는 과정이 이루고 있다. 2부에서는 여러 등장 인물들의 죽음이 아주 간결하게 처리되며 축소되어 있다. 무엇보다 1부와 3부를 잇는 전환점으로서의 역할이 더 클 것 같다.

 

3부는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램지 가문의 지인인 화가 릴리 브리스코우는 이들 가족의 여름 별장에 초대받은 식객이기도 하다. 그녀는 마침내 등대를 향해 배를 타고 간 램지 씨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건 인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면의 스크린을 비추는 작업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부산하던 램지 가족이 등대로 떠나고, 램지 씨로부터 무언의 청혼 압력을 받던 릴리는 비로소 혼자남게 된다. 이제 오래전 사망한 램지 부인의 초상화 작업을 다시 시도한다. 등대로 가는 배를 바라보던 릴리는 캔버스를 향해 돌아서서 자신이 무언가 시도한 흔적을 알아본다. 이 무언가를알아차린순간이 그녀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 하나를 그려 넣으며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어(I have had my vision)."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난다. 우리는 릴리가 알아차린 통찰력 혹은 시각이 무엇인지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소설의 서사가 이기적 세계에서 이타적 세계로의 여정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타적 세계에서 이기적 세계로의 여정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개인의 발견과 자아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다. 단독자로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 그 순간 순간의 표류하는 여정, 혹은 그 순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릴리가 마주하는 이 에피파니의 순간이 내게는 동시에 인간 존재가 헤쳐 나가야 하는 삶의 무목적성과 공허, 타자에 대한 이해불가능성을 거듭 확인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홀로 고립되어 있고,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등대로 나아가는 램지와 아이들의 배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여정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듯 해서다. 아울러 램지 부인이 남편의 결핍과 단점을 알아보면서도 남편의 훌륭한 점들 또한 함께 생각해 보는 장면은, 모든 존재를 한 가지로 규정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는 물론 작가 울프의 인간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이었기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인적성 검사니, MBTI니 하면서 이런 잣대만으로 처음 보는 나를 함부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이런 인식과 가벼움을 거부하고 싶다. 우리는 타인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우리는 이 모른다로 만나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울프가 창조한 인물들이 타자를 생각할 때, 이들의 의식이 끊임없이 표류하면서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기도 하는 과정이, 마치 램지 씨와 아이들이 작은 배를 타고 등대로 나아가면서도 때론 조류에 떠밀리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런 존재임을 자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처음 만난 버지니아 울프가 내게 가르쳐준 바다.

 

 

#버지니아울프 #등대로 #박희진번역가 #솔출판사 #버지니아울프전집 #우리는타자를이해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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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 1950-1955
카지이 노보루 지음, 정미영.박소영 옮김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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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 교사가 남겨 놓은 희망의 씨앗

 


카지이 노보루,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정미영/박소영 옮김, 몽당연필, 2023

 



코로나19가 급속하게 전파되던 20203월 즈음 읽었던 기사 한편이 기억난다. 일본에 있는 어느 중소도시에서 관내 유치원과 보육원에 코로나 감염 방지용 마스크를 배포하면서 조선학교 유치부를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내용이었다. 내 눈을 믿기 힘들었다. 이건 1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4년 전의 기사였다. 21세기에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하여 배제와 차별에 앞장서는 졸렬함이라니! 심지어 기사는 시 직원이 ‘(조선인은) 마스크를 다른 곳에 팔아넘길지 모른다는 취지의 폭언도 스스럼없이 했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관련 사건에 대한 사설을 읽어보았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은 이미 오랜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깝게는 2013년 아베 신조 정부의 고교무상화정책과 관련한 사례가 있었다. 이 정책은 고교수업료를 무료화 하겠다는 취지라 명목상 많은 일본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정책에 조선학교만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이를 법으로까지 제정하여 차별을 제도화한 것은 우려스러웠다. 이 조치는 몇 년 전 조선학교 유치원 및 보육원에 인도적 차원에서 마스크를 배포하는 일에서 차별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한 근거가 되었다. 일본 사회에 염치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는 왜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한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학교에서 5년 간 근무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책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를 읽으며 내내 궁금했다. 저자 카지이 노보루는 일본이 패망한 후 재일조선인들이 교육 현장에서 겪었던 수난과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겼다. 귀한 기록물이다. 그가 조선인학생들과 함께 한 경험들은 단순히 교육 현장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2020년 당시 조선학교 유치원생들에게 공공기관이 주도한 합법적차별은 훨씬 복잡하고 광범위한 문제와 얽혀 있었던 것이다. 조선인학교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무엇보다 일본의 정치권과 공권력, 권력의 눈치를 보고 진실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까지 가세하여 만든 총체적 결과물로 응어리진 결과다.

 

일본의 패망 후 연합군사령부(GHQ)의 교육담당 장교 듀렐이 도쿄의 조선인학교를 시찰하며 개 잡듯이 죽여야지.”(62)라고 했던 대상은 누구였던가. 그리고 조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조선인학교 문제를 치안 문제로 이야기하던 이들은 누구인가. 저자가 같은 일본인으로서 이러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느낀다는 대목에 눈길이 멈추기도 했다. 나아가 일본 식민주의 지배세력의 조선인 혐오, 그리고 미국의 세계패권 야욕과 철저한 반공주의가 결합하며 찾은 희생양이 바로 조선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1951228일 오전 630분에 무장한 경찰 예비대대 520명이 도립조선중고등학교 건물과 기숙사에 침입했다. 훗날 이 사건을 2·28사건이라고 불렀다. 도둑처럼 학교에 급습하여 학생들의 교과서나 숙제, 미술작품, 수첩까지 압수하며, “조선인은 싹 다 죽여야 해.”(75)라고 고함치고, 학생과 교사들에게 곤봉까지 휘둘렀던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자가 당시의 광경을 묘사한 이미지를 군국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의 일본의 모습과 겹쳐놓으면 아마도 어긋난 곳을 찾기 힘들 것”(77)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은 또다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올해로 101주기를 맞은 간토대학살 사건(19239)이었다. 일본 군부의 주도하에 일본자경단들이 일본도뿐만 아니라 죽창으로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던 사건이 아니었나. ‘그들의 구호가 조선인을 다 죽여라!”였다는 사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조선인학교의 폐교는 가장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현재 및 미래의 타자를 숙청하는 방법이었다.

 

엄혹했던 일본의 식민지 시절, 한인들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사람들도 있지만, ‘힘든 식민지 생활을 견딜 수 없어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패전 후 조선인들에 대한 속죄는커녕, 보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지우는 일에 몰두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흔적지우기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정황을 엿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등한 대우를 말하며 동일한 책임을 요구했지만, 조선인들은 정작 받아야할 혜택에서 언제나 제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대의 젊은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중학교에 부임하여 마주했던 것은 학생들의 냉냉한 시선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재일 조선인들의 박탈감을 이해해야 넘을 수 있는 선이었다. 조선인학교에 온 신임 일본인 교사들은 달아매기라는, 학생들의 불신어린 심문을 받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자신들의 학교를 망가뜨렸다는 반감으로 가득한 학생들로부터 일본의 문부성 및 교육위원회의 스파이로 간주된 것은 저자가 조선인학교에서 처음 마주한 현실이었다.

 

조선학교에 감염 방지용 마스크를 배포하지 않은 사례 역시 저자가 그토록 맞서 싸웠던 조선인학교 차별과 배제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인학교에 일어났던 일, 그리고 몇 년 전 조선학교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은 단순하고 충동적인, 일탈적 사건이 아니었던 셈이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야만으로 치달은 전쟁의 최대 희생자였다. 이를테면 식민주의, 제국주의/군국주의, 반공주의 등의 이념이 인류에게 가한 폭력의 세계사적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주목하게 된 대목 하나는, 조선인학생들을 위한 민족교육에 대해 저자가 성찰한 대목들이었다. 조선인에게 올바른 민족교육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권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조선인학교 문제가 곧 일본의 교육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119)을 간파하고 있던 소수의 지식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본 정부가 재일조선인 아이들 12만 명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한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을 아래에서 엿볼 수 있다.

 

(재일조선인 교육 문제는) 피압박 민족의 해방 문제로서, 식민지로부터 해방이라는 문제로서, 일본의 평화와 독립의 문제와 관련되었음을 중요시 해야만 한다.”(138) [홋카이도에서 온 요시다 하츠미 씨의 언급 재인용]

 

여기에서 교사는 교육자로서 양심의 자유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 문제부터, 가해국 국민으로서 피해국의 국민과 평화를 위한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에 속한 집단의 친선을 도모하고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서로 존중하는 일이 우선 요구될 것이다. 물론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치유될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다. 흉터는 남아도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줄곧 추구하던 민족교육의 문제는 양국의 건강한 평화와 독립을 위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 가해국의 국민으로서 이런 지점까지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같은 인간으로서 후손인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는 교육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따라간 여러 일본인 교사,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 조선인 교사와 조선인학생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립조선학교는 결국 1955331일부로 폐쇄되었지만, 이 책이 남겨놓은 것은, 결국 희망의 씨앗이라 여긴다. 저자 카지이 노보루를 비롯한 여러 참여 지식인들의 존재 덕분이다. 그가 남겨 놓은 이 씨앗이 책이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계속 전달되고 읽히고 기억된다면, 언젠가 새롭게 싹이 트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감해본다.





[책 속으로]

[1] "새로 채용된 일본인 교사들은 조선인들의 분노와 슬픔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 한 학교에 교장이 둘이나 있는 이상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 것은 조선인학교에 근무하고 나서다."(24)

[2] "그 아이들이 일본에 영주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이미 역사를 통해 아시는 바와 같이 조선인이 원해서 조국을 버리고 일본에 온 것이 아닌, 힘든 식민지 생활을 견딜 수 없어 도일한 이가 많기에 조선이 평화롭고 완전한 독립국만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35) [도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청원서 재인용]

[3] "선생님! 우리는 조선인이에요.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말도, 나라도 빼앗겼어요. 얼굴은 조선인이지만, 조선말도 역사도 모른 채 살아왔어요! 선생님, 누가 선생님에게 일본어를 써도 안 되고 배워도 안 된다면서 학교 문을 닫아버리고 감옥에 집어넣으면 화가 나지 않겠어요?"(41)[일본인 교사 S의 기록]

[4] 4·24 교육 투쟁-재일조선인연맹 강제해선-전국 조선학교 폐쇄-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필름 위에, 남북의 분단과 일본 국내에서 미 점령군의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비민주적 행태를 아무런 설명도 수식도 없이 겹쳐놓고 보았을 때, 내 나름대로 도립조선인학교의 위치에 대해 깨닫게 된 것 같다."(62)

"문부성이 ‘조선인학교는 학교교육법에 따라 사립학교로 취급할 것’(1948년 5월)이라는 통달을 발표한 직후, 도쿄도 내 조선인학교를 시찰하러 온 GHQ 도쿄군 교육담당 장교 듀펠은 군홧발로 교실에 들어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며 "개 잡듯이 죽여야지."라고 중얼거렸다. 조선인에 대한 감정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도 드물 것이다. 그는 교원 가운데 공산주의자들의 숙청을 강하게 추진했던 자타공인 철저한 ‘빨갱이 혐오자’였다." (62)

[5]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내려 한 교사에게까지 "교사면 다야?", "감히 국가 권력에 불만을 품어?", "조선인은 싹 다 죽여야 해."라고 고함쳤습니다."(75) [3·7사건에 대한 기록 재인용]

[6] "수색 영장도 없이 3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을 동원해 무기 하나 없는 학교에 쳐들어와 폭력을 저지르는 행위에 과연 어떤 이유를 댈 수 있을까. 게다가 무저항 상태의 학생들과 사태를 수습하려던 교사들까지 폭행한 것은 물론이며 신문사 카메라맨과 의사까지 폭행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폭력단이나 다름없었다."(77)

[7] "인식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속에 들어가려면 스스로 피해자라는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99)

[8] "지금까지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아래 놓여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인식함과 동시에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완전히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피압박 민족의 해방 문제로서, 식민지로부터 해방이라는 문제로서, 일본의 평화와 독립의 문제와 관련되었음을 중요시해야만 한다."(138)

[9] "내가 상당히 고심해서 완성한 구상은 두 가지 기둥으로 이뤄졌다. 첫째, 고교 이하는 의무교육으로 하고 운영도 공비로 하지만, 교육 내용은 재일조선인이 자주적으로 실시하는 것, 둘째는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을 지키는 일이 일본인의 민족교육을 확립하는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142)

[10]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시설 등 제반 운영에 필요한 조건 마련은 일본 정부가 하고, 교육 내용과 조직을 만드는 일은 조선인 스스로 책임지고 확립해 가는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재일조선인 교육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44)

[11] "일본의 아이들이 풍요로운 일본인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아이들도 역시 풍요로운 조선인으로 자라나야 한다. 게다가 그것은 과거에 대한 속죄로서 일본인 자신이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토록 단순명료한 논리가 5년간에 걸친 조선인학교 생활을 지탱해준 논리다."(206)

[12]"언어가 가장 고도로 승화된 것이 문학작품이라 생각한 점과 난독 학습을 하다 보니 36년간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분단의 비극을 맞은 조선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확실한 실마리가 문학 속에 훨씬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그 무렵부터 다시 20년이 지났다. 나의 공부는 마치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조선을 알아가는 일은 어쩌면 나에게 남겨진 반생의 과제로서 앞으로도 계속 나를 뒤따라올 것 같다."(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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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0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심이 살아있으면 일본인이든 누구든 정의는 지켜지는 법이죠!
 
[큰글자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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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노안인 사람들을 주요 독자로 정하신 건지요^^;; 드넓은 행간을 쉬엄쉬엄 돌아가며, 생각하며 읽으라는 깊은 뜻으로 알겠습니다~ ㅋㅋ
오히려 글자가 컸던 중세의 책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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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1-02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이 바로 중세를
깨뜨린 도끼 같은 그런
책인가요.

초란공 2024-11-02 11:13   좋아요 0 | URL
뭔가 수백년 된 금서를 받아본 느낌인데요? ㅋ 글자가 커서 안경을 벗고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
 
푸른 기록
신상웅 지음 / 소요서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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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염색 장인을 닮은, 이런 여행법

 

신상웅, 푸른 기록, 소요서가, 2024

 




책을 읽는 동안 책의 곳곳에서 책을 만든 이의 의도가 느껴졌을 때,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국내 쪽 염색 장인의 에세이 <푸른 기록>도 그런 책이었다. 푸른 쪽 색으로 물든 양포 혹은 화포의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상상하게 만드는 책의 표지 색과 질감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자와 저자 사이에서 책 내부에 접혀 있었을 세세한 이야기들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저자는 고향에 내려와 쪽을 직접 재배하고 천에 염색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 그리고 사이 시간을 이용해 자료 조사를 위한 여행을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 일본 등등 동아시아 여러 곳의 쪽 염색 현장을 발로 누빈 기록이다. 중국의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과 무늬를 지닌 옷감을 만들고 일상에서 사용할 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자녀에게 직접 고추장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편지글에서 쪽 염색된 두루마기를 언급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자신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대상이 먼저 눈에 보이듯, 저자에게는 연암 선생의 화포가 보였던 모양이다. 연암 선생이 입었던 화포 두루마기는 우리나라에서 염색된 것일까, 아니면 수입된 옷감으로 지어진 것일까. 나 역시 궁금했다.


 

동시에 해방 직후에 그려진 한 점의 자화상도 떠올릴 수 있었다. 월북했던 화가 이쾌대가 그린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었다. 이제 막 해방되어 건국된 이 땅에서 서양식 물감 팔레트와 붓을 들고, 중절모와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어쩌면 이 두루마기 역시 연암 선생의 화포처럼 우리 땅에서 염색되고 지어진 옷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자가 자료 조사 차 쪽 염색 전통을 지닌 동아시아 지역을 여행한 과정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쪽 염색 과정 이전에 저자의 독특한(?) 여행법이었다. 만약 연암 선생이 청나라 연행을 하기 전에 화포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호기심 많던 연암은 현지에서의 저자처럼 인연을 만들어 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저자가 보여주는 현지인들과의 사소하지 않은 마주침과 인연 만들기의 모습이 너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도 여행에 동참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저자의 특이한 여행법은 오지에서 생존하는(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저자만의 여행 감각인 듯하다. 이를테면, 인도차이나반도의 라오스 산골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산길을 걷다가 결혼식 잔치집에서 하객들에게 발견(?)되어 초대되고 환대받는 모습이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피로연에서 독한 증류주 라오라오를 마시고, 하객들과 춤을 함께 추는 저자의 능글능글한(?) 내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취기에 오른 저자가 감지하던 여인들의 아찔한 향기에 대한 언급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다. 단지 글을 읽을 뿐인 나 역시 곧 눈이 부시고 현기증이 나는 듯 생생하니 말이다.

 


저자의 가방에는 이따금 찹쌀떡이나 귤 등의 과일이 들어 있어, 현지인들에게 주며 말을 트는 모습도 여행지에서의 인연을 만드는 노하우인가 보다. 이걸 알았다고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낯선 곳, 특히 산골 오지 마을에서도 결코 굶지 않을 것 같은 저자의 인연 만들기 내공은 아무리 봐도 신기할 뿐이다. 저자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가는 인연은 오지의 산간 마을, 낯선 장소를 이전과는 다른 곳으로 만들어준다. 태국 북부 산간 마을 매살롱을 지나며 저자가 기록해 둔 한 문장, “삶이 섞이듯 문화도 섞인다.”(110)는 타문화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철학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또 나의 시선을 붙들었던 부분은 쪽 염색을 하는족과 관련한 역사였다. 중국에서 쪽 염색하는 먀오족은 족과 친척이었고, 이들은 역사적으로 어떤 계기로 인해 남쪽으로 이동했던 모양이다. 이들이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의 북부 산간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족이라고 하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있어서 이전에 읽은 책을 들여다보다 족에 관한 언급을 처음 마주쳤던 책을 찾았다.

 


바로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현실문화, 2023)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로키산맥을 중심으로 송이버섯을 채취하던 동양인들이 바로 족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번역자는 몽족대신 몽인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라는 표현이 현대 문화가 아닌 전근대적인’, 혹은 미개하고 야만적인문화를 가진 사회라는 편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몽인으로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의 5장과 6장에서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산속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몽인에 대해 소개하는데, 이들이 미국이 야기한 전쟁으로 난민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보인다. 다만 애나 칭은 보다 자세한 내막을 소개하고 있지 않아 이 대목을 읽을 때 몽인들이 미국에 난민으로 오게 된 사연이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바로 <푸른 기록>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점령군으로 있던 프랑스가 물러난 후 들어온 미국. 이들이 벌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의 공산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산골에서 살아가던 몽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싸우게 했던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패전하고 퇴각한 후다. ‘몽인들은 미국의 먹튀에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몽인들의 비극과 고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버려진 몽인들은 공산 정부의 보복 대상이 되어,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난민수용소에 머물다가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으로 건너가 디아스포라가 되었던 것. 이렇게 해서 <세계 끝의 버섯>에서 마주쳤던 몽인들의 비극적인 역사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마치 송이버섯처럼 척박한 토양에 흩어져 자신만의 생존술을 발휘하며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낯선 곳에서도 지난 시절 쪽 염색물을 들인 양포에 대한 푸른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쪽 염색 전통을 찾아간 저자의 여정이 세계사적인 사건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저자가 일본의 골목 전시장에서 일본인들이 작업한 쪽 염색 옷감과 더불어 중국의 '먀오인몽인들의 푸른 화포를 다시 만난 순간 먹먹해하던 장면이 인상 깊다. 국내에서 직접 쪽을 기르고 염색에 매진해온 저자는 매순간 작업의 의의를 끊임없이 자문했을 테다. 산골 마을에 사는 몽인들이 명절에 입고 나온 화려한 옷들을 보며,“내가 물들이는 푸른색은 명함도 내밀기 부끄럽다.”(170)고 말하는 저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현재 남아 있는 푸른색 화포에서 무엇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196)를 자문하는데, 전통과 새로움에 대한 요구와의 충돌 혹은 균형에 대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모색하고 있다. 현재적 관점에서 쪽 염색 작업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탐색하는 장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저자가 여행에서의 기억과 종이 위에, 그리고 그간 무명천 위에 남겼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 역시 저자가 전해주는 푸른 기운을 이어 받아본다. 저자의 표현대로 푸른색은 푸른색이되 다 같은 푸른색이 아닌이 쪽 염색의 빛깔은 서늘하면서도 신비함을 자아낸다. 은근히 눈길을 붙들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듯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게 하는 색이다. 때론 처연한 푸른색에 눈이 시린 느낌이 들 정도다.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지의 산골에서 전통을 이어온 이들이 옷감에 물들이고 남은 푸른 물은 그들의 애환과 고통, 슬픔을 오랫동안 씻어내었을 테지만, 한편으론 반복할수록 선명하게 남는 푸른 빛은 한편으로 그들의 심연에 응어리진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만 같다. 때론 시간이 지나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진실은 있기 마련이니까. 저자가 여행에서 낯선 인연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그는 사라져가는 것을 찾으면서도 때론 우연한 발견들 또한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삶이든 문화가 서로 섞이며 새로운 세계로 한 발 한 발 내딛게 되는 것처럼.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1]
"나는 콩 대신 색을 수확했다. (...) 쪽에서 풀려난 색이 하늘로 이어졌다."(13) - P13

[2]
"이름을 쓴 꼬리표라도 달지 않으면 푸른 무명더미 속에서 내 것을, 나의 푸른색을 구별할 수 있을까. 저 안에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하는 속절없는 물음들."(13-14)
- P14

[3]
"삶이 섞이듯 문화도 섞인다."(110) - P110

[4]
"나는 현재 남아 있는 푸른색과 화포에서 무엇을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196) - P196

[5]
"더구나 그런 아름다움이 일상과 함께 한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반갑다. 아름다움이란, 또 문화란 저렇게 삶과 섞여 살아있을 때 가장 빛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265) - P265

[6]
"길은 끝이 없고 가야하는 이유도 앞에 놓인 길 위에 있다."(303)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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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28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초란공님도 책을 협찬받아 읽으실 때가 있으시군요. ㅎ 저도 쪽염색 좋던데. 보기만. ㅋ 이런 책이 있었네요. 좋으셨나 봅니다. ^^

초란공 2024-10-28 22:04   좋아요 1 | URL
하하 네^^ 가끔은 색다른 주제로 출간된 책에 관심이 가서요~ 책을 보고 일본 우키노에 그림을 보이 온통 사람들이 푸른 쪽 염색 옷을 입었더라구요.

그레이스 2024-10-28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도 소요서가에서...!^^
저두요...

초란공 2024-10-28 22:04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혹시 서점에서 마주치는 분이 아니실지 ㅋㅋㅋ

그레이스 2024-10-28 22:07   좋아요 1 | URL
저는 회원이긴 한데요, 프로그램은 아직 온라인으로만....!

초란공 2024-10-28 22:08   좋아요 1 | URL
아하^^ 왠지 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