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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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끄적여본다. 정말로 오랜만에...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베르크는 ‘유럽인의 편견’이 담긴 이 책을 너그럽게 봐달라고 양해를 구하며 짐짓 솔직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세계사를 서술해 보았노라 이야기한다. 나아가 빅히스토리 역사가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절친’임을 여러번 강조하며 책에서 인용하고 있다.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1978년 내놓은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에서 우리에게 새롭게 환기해주고 있듯이, 서양이 만들어낸 동양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다소 불편했다. 다시말하면, 서양을 대표하는 유럽 문명이 분명 동양의 문명에 비해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저자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유럽인의 편견’을 솔직하게 드러낸 점에서 아직도 이 허구적 이미지는 사실 ‘현재진행형’임을 다시 확인해볼 수 있었다.

저자의 ‘절친’ 유발 하라리와 서면 이메일 인터뷰를 했던 박민영 문화평론가가 유발 하라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은 문화제국주의자인가’라고 물었던 대목을 떠올려보게 된다. [경향신문 2017년 7월 13일자 기사 참조] 박민영 선생의 이 질문은 역시 ‘아름다운 성(castle)’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저자 자신의 이름(쇤베르크)를 보여주며 ‘von’이라는 이름(귀족 계급 출신임을 드러냄) 또한 보여주고 싶어하는 저자에게도 물어볼만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거대기업의 총수였던 빌 게이츠가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빅히스토리’ 운동의 선구자 유발 하라리와 매우 친한 친구임을 누누히 강조하는 저자의 적극적인 마케팅 기술이 책 내용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물론 저자는 책을 많이 본 사람이고, 매우 지적이고 글을 잘 쓰는 저널리스트이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던바대로 스티븐 핑커의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를 너무 맹신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다. 스티븐 핑커는 MIT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저술가로서 거대한 책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의 폭력성은 점점 감소했다는 주장을 엄청난 통계와 경제학자들의 자료를 제시하며 해내었다. 그리고 <사피엔스의 미래>에서 보여주듯 매트 리들리와 ‘과학자’팀을 꾸려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이 한팀이 된 ‘인문주의 팀’과의 토론에서 이들을 상대로 이겼다. 이 토론 과정을 자세히 따라가보면 매트 리들리와 스티븐 핑커는 승리하기 위한 토론 전략을 잘 구사했다. 상대방의 질문 회피/자신의 주장 반벅과 보다 다양한 증거와 통계 제시로 설득하기 등등. 이는 과학으로 대변되는 이성의 힘을 과시하고 서양인의 관점이 보다 더 우월함을 인정해준 결과였을까. 아뭏든 이 ‘세계사 농담책’의 저자 쇤베르크는 인간의 역사를 볼 때 폭력성은 단연코 감소해왔으며, 그러므로 인류는 진보하고 있고,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믿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도 대표되는 전세계적인 ‘사피엔스’ 열풍은 곧 마이크로소프트사로 대표되는 글로벌 초거대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영향력에 우리가 얼마나 종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유발 하라리의 국내 펜들이 보면 싫어하겠지만, 하라리의 절친임을 스스럼없이 그것도 여러 차례 밝히는 저자의 이 빅히스토리 저작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빅히스토리는 분명 학문적인 구분이나 유행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는 빅데이터와 함께 거대 기업의 글로벌 마케팅에 작용하기 좋은 역사 관점이 빅히스토리가 아닐까 질문을 던져본다. 빅히스토리는 인류의 큰 역사를 일목요연하고 매우 흥미있는 주제아래 잘 정리해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히려 인간 개개인에 대한 고민이 제외되기 싶다. 인간 개개인은 결국 상품소비의 주체이자 대상일 뿐,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된 표현 및 관점은 빅히스토리의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예를들어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유럽인이 신대륙에 도착하여 미국의 기원이 되었다는 서술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유럽인들이 북미 원주민(아메리카 인디언)과 충돌하기도 했으나 서부로 진출하여 미합중국이라는 성취를 이루어 내었다.라는 문장으로 역사를 정리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수천만명의 인디언들이 유럽에서 온 백인에 의해 죽어갔다는 이야기는 등장하지않는다. 빅히스토리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가치가 희미해지거나 대상화되기 쉽다. 나는 이런 점에 우려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우려는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서나 나오는 희귀한 양식이 되어버렸다. 빅히스토리 열풍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멀리하게 만들지 않을까.

이 책이 주는 ‘세계사 읽는 재미’에도 불구하고, 내 후손들이 인간 자체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하기 이전에 빅히스토리가 말끔히 정리해주는 인간의 성취와 간결한 사건의 흐름 그리고 인류의 희망적 미래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같이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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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기운에 오래 간만에 집에서 뒹굴하다가 읽게된 <헤밍웨이의 말>(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통해 살아남았지만 부상으로 점점 쇠약해져기던 시기에 담은 보다 진솔한 인터뷰를 읽는 동안 한 사람의 삶을, 그리고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삶을 떠올려본다.

대학 시절 ‘헌책방’에서 구한 <나의 형 헤밍웨이>(을유문고)라는 책(저자: 헤밍웨이의 사촌동생 라이체스 헤밍웨이)이 생각나 먼지를 털고 책을 펼쳐드니 책 속에 20년 전 내가 넣어둔 꽃잎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색연필로 표시해둔 헤밍웨이의 낚시하는 장면과 이 책의 저자인 사촌동생에게 이런 책들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장면까지...헤밍웨이가 <헤밍웨이의 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낚시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속에서 ‘만들어’본다.

비행기 사고 이후 쿠바에 있는 농장이 딸린 그의 집 ‘핑카비히아(전망 좋은 농장)’에서 힘겹게 회복을 하고 있었을 헤밍웨이의 모습이 또한 오버랩된다. 인터뷰를 하러 방문한 인터뷰어 로버트 매닝과 부상후 첫 낚시 출항에서 로버트가 헤밍웨이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 헤밍웨이의 모습은 쇠약해가는 저자 자신에 대한 우울감을 비추어주고, 과거 저자 스스로 만들어간 자신의 신화에 대한 향수였을까. 아마도 헤밍웨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균형을 잡으며 그 수많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간간이 낚싯배의 조타를 잡았을 것이다.




(인용) <헤밍웨이의 말> (마음산책) 95면
*인터뷰어 로버트 매닝이 헤밍웨이가 불쑥 꺼낸 말을 기록한 대목

“있잖습니까,” 그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총으로 자살했어요.”
침묵이 흘렀다. 헤밍웨이가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헤밍웨이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모든 사람의 권리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이기주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경시가 담겨 있어요.” 그는 책 몇권을 집어 들며 화제를 돌렸다.



[메모: 2018.02.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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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가려진 세상 - 생각실험으로 이해하는 양자역학
최강신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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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가려진 세상

최강신 지음 | [MiD]

 

 

 

 

20세기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가장 발전을 이룬 세기일 것이다. 과학분야만을 보더라도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고전 물리학의 문제점들에 관한 논의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켰다. 인류는 비행기를 만들어 위에서만 이동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이동할 있게 되었다. 나아가 20세기의 중반에 해명된 DNA 구조를 시작으로 새로운 과학, 유전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생물학의 길을 열기도 하였다.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달에 발을 딛기도하고, 태양계 외부로 나가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으며, 20세기에 발견 고안된 각종 과학이론을 토대로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현재 우리 삶이 각종 전자기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매일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 폰만 하더라도, 20세기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양자역학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은 사물이다. 스마트 폰에 내장된 GPS기능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모두 사용하는 대표적인 부산물이며,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 스마트 폰의 두뇌인 프로세서, 디스플레이 등은 모두 양자역학의 발전과 이해가 없었다면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생각해보는 <우연에 가려진 세상>  바로 양자역학에 대한 본격적인 안내서라고 있다.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를 읽고나면 언제나 드는 생각은 크게 가지이다. 첫째는 역시 양자역학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고, 둘째는 양자역학을 대중에게 쉽게 쓰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은 직간접적으로 양자역학과 절대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자각이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까지 이야기했던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상기해보면, 오랜 시간 물리학 연구에 노력을 쏟고, 학문적 훈련을 해온 학자들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분야가 양자역학일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를 읽는다면 우선 바로 이해가 가지 않다고 하더라도 바로 책을 덮을 필요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만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양자역학이라고 해도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해서 과거 20-30 전과는 다른 생활을 해나가고 있지 않은가.

 

 

책의 저자와 같이 오랜 시간 물리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연구자라면 물리학 관련 강의나 책을 , 대상이 누구인지를 예상하고 이에 따라 준비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일 것이다. 내가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 남았던 것은 대상 독자에 대한 설정이 다소 모호하지 않았나하는 점이다. 책은 저자가 대학에서 학부생들을 가르치며 수업시간에 논했던 양자역학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므로, 아마도 저자는 책의 독자가 물리학과 학부생이나, 물리 특히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을 것이다.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진, 대학 학부생 수준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갖는 일반인을 최소한 염두해두었을 것이다. 책의 시작은 흥미진진하게 물리학 강의 노트로 유명한 권짜리 파인만 강의집 중에서 양자역학을 다룬 3권의 시작과 유사하게 시작한다. 다시말해 고전적 대상(축구공) 양자적 대상(전자) 겹실틈(이중슬릿) 실험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2부에서 양자적 대상의 입자-파동 성질의 이중성을 소개하기 위해 파동 물리학을 잠시 소개한 이를 양자역학의 맥락에서 연결짓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천천히 따라갈만 했지만, 3 부터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지 수없이 새로 등장하는 물리적 개념에 대한 소개가 대체로 없이 나아가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저자도 책의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듯, 양자역학 분야에서 아직도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는 측정과 관련한 얽힘 문제까지 다루고 있는데, 이는 쉽지 않은 시도였을 것같다. 저자의 고충이 어느 정도 느껴지면서도 어떤 독자를 주로 대상으로 하고, 수업에서와는 달리 어떤 부분을 배려하여 독자들의 독서를 도울 있을지 좀더 고민을 하고 반영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같다.

 

 

저자가 언급한 바대로 책에서는 양자역학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마련했던 코펜하겐 학파의 견해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검토하고 있다. 코펜하겐 학파에 대한 소개가 책의 앞에 나왔다면 좋았을 것인데, 코펜하겐 학파는 20세기 양자역학의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사람들이 속해있는 학파라고 있겠다. 학파의 주요 멤버로는 고전적인 원자론에 대한 문제점을 파동과 양자개념의 도입으로 양자역학적 원자론을 탄생시켰으며 상보성 원리를 주장한 닐스 보어를 주축으로, 불확정성 원리를 창안한 하이젠베르크 등을 우선 떠올릴 있겠다. 그리고 이들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 현상에 대한 해석은 양자물리학의 표준적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다시피 했던 점을 우선 저자가 상기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코펜하겐 학파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판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해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다루는 수많은 개념들을 고려해보면 단행본 교양서에 담기에는 지면의 제약이 많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다만 저자가 많은 내용을 담아내려고 하다보니 놓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진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초반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코펜하겐 학파와 물리학사상 가장 격렬했던 논쟁의 상대자는 크게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로 대표되는  물리학자들이라 있겠다. 내가 책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한 바에 따르면 코펜하겐 학파가 양자 현상에 대해 주장하는 물리적 해석의 기본 특징 하나는 해석의 성격이 확률적이라는 점이다. 책의 제목 <우연에 가려진 세상> 사용된 우연이라는 개념은 아마도 양자역학의 해석에 있어 확률적 개념을 반영하는 코펜하겐 해석 지칭하는 것이고, ‘우연에 가려진 세상 코펜하겐 해석이 표준해석의 위치로 자리매김해온 정황을 염두해둔 표현이 아닐까한다. 한편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물리적인 대상을 측정함에 있어 측정행위자체가 조사하려는 대상의 상태를 기본적으로 바꾸어버린다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삼는다. 따라서 과정을 되돌릴 없이 영구적으로 변형되어 버리는 비가역적 특성을 함께 갖는다. 반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던 아인슈타인의 경우, 우주의 원리를 확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동의할 없었다고 알려져있다. 책에서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을 언급할 잠시 언급되긴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함께 코펜하겐 학파에 대항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크게 부각되고 있지는 않는 같다. 대신 물리 현상에 대해 확률적 해석이 아닌 결정론적이고 통계적 앙상블 해석 지지자로서 아인슈타인과 데이비드 봄이 좀더 비중있게 부각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전자의 겹실틈 실험을 비롯한 측정과 관련하여 코펜하겐 해석 앙상블 해석 가장 차이점은 측정행위 측정되는 대상의 상태를 망가뜨리는지의 여부가 같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측정을 통해 전자가 가지고 있었을 법한 여러 상태 함수들의 중첩상태가 측정을 통해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어 버린다. 이를 양자역학에서는 파동함수의 붕괴내지는 환원으로 표현되고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생각 실험에서와 같이 우리가 일정시간이 지나서 고양이를 넣은 상자를 열고 결과를 관찰하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고양이 죽은 고양이 상태가 혼재(중첩)되어 있는 상태로 보고 있지만, 관찰행위를 통해 상태함수(파동함수) 중첩 상태는 하나의 결과로 결정되어 버리므로, 파동함수의 붕괴가 필수적이다. 반면 앙상블 해석은 전자 하나에 대한 상태 확률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사 실험을 반복했을 경우, 설명할 있는 비율, 통계적 해석에 기반하는 점이 주요 특징이라고 이해할 있을 것이다. 앙상블 해석의 경우는 측정 후에도 상태 함수들의 중첩상태가 여전히 인정될 있다는 점이 코펜하겐 해석과 크게 다른점이다. 측정문제의 해석에서 코펜하겐 해석과 앙상블 해석 사이의 다른 입장 차이는 빛의 편광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나아가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이 주장한 ‘EPR제안 소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앙상블 해석 지지자로서 사람은 얽힘상태를 이용하여 교환불가능한(, 측정 순서를 바꾸면 다른 측정값을 얻게되는) 물리량을 측정할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얽힘이라는 주제는 양자역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보인다. 저자는 얽힘 개의 입자를 따로 다룰 없는 양자 상태’(299)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말로 풀이해보면, ‘ 입자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양자상태에 있다라고 바꾸어 이해해볼 있겠다. 예를 들어, 운동량 보존 법칙의 지배아래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출발한 빛의 편광상태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같은 편광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 이를 입자가 서로 얽혀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 양자역학에서 얽힘문제가 ‘21세기에 얽힘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양자역학은 발전하게 되었다’(299)라고 얽힘문제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얽힘의 문제에 기반한 EPR역설 제기한 해석의 문제점은 얽힘 중요한 구분 기준이 있는 국소성(locality)’ 가정 뿐만 아니라 물리적 대상의 존재를 규정하는 실재성(reality)’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저자는 현대 물리학에서 EPR역설 제기하는 문제점이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명쾌히 해결 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한다.

 

 

물리학 연구자로서 저자가 전해주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해석으로 자리를 잡고있던 코펜하겐 해석이 튼튼한 기반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 나와있는 어떤 해석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일 것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앞으로 물리학자들에게 남은 숙제일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물리학자들이 고민해온 과정에서 우리는 양자역학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용할 있음을 알게되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특히 양자 정보 이론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보다 많은 새로운 응용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컴퓨터의 연산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양자 컴퓨터의 이용으로 보다 빠르게 정보를 검색하고 전달하고, 정보에 대한 보안기능이 강화된 정보의 암호화 분야에 대한 전망을 저자는 짧게 언급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특히 철학적’, ‘사변적으로 보이는 이런 해석의 문제가 전혀 다른 분야로 보이는 블랙홀 대한 이해를 더욱 넓혀주었다는 저자의 설명이었다. 이것은 자연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물리학의 강력한 특성 내지는 장점이 드러나는 사례가 것이다.

 

 

책을 덮으며 다시금 드는 생각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과 이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의 어려움이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저자가 사용하는 수많은 양자역학의 개념과 용어가 보다 면밀히 정의되고 소개되어야함에도, 부분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밀톤 역학에서는 속력보다 운동량p 근본적인 양이므로 운동에너지를 * 쓴다.”(160 각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면 물리량에 대한 정의 뿐만 아니라 여기서 근본적이라는 표현의 말뜻도 보다 명확히 밝혀주고 독자를 안내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전반을 통해 저자가 물리학과 학부생을 주요 독자로 상정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저자는 독자가 이미 정도는 알고 있을 이라고 판단하고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책은 저자가 특별한 설명 없이 사용하는 물리 개념과 용어에 대해 독자들이 부지런히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나가는 노력이 없다면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양자역학의 정수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같다.

 

 

물론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과 앙상블 해석, 여러 세계 해석 등을 책에서 소개한 것은 이미 양자역학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해석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보다 새롭게 느껴질지도 모를일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화두인 ‘4 혁명 기저에는 사실 양자역학이 있다는 사실 정도도 아울러 상기해볼 있겠다. 물론 ‘4 혁명이라는 개념 속에는 인공지능 개념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과학으로서 양자역학은 여전히 중요성을 인정받아야 것이다. 정보이론, 컴퓨터 과학, 각종 전자기기와 이를 통한 혜택은 모두 양자역학에 크건 작건간에 어느 정도는 빚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없다. 나아가 같은 맥락에서 <우연에 가려진 세상> 어렵사리 읽어내는 과정은 양자역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게 얽혀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양자역학 #우연에가려진세상 #MID출판사 #최강신 #생각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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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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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한 삶의 철학

(원제: The Wisdom of Frugality)

엠리스 웨스타콧(Emrys Westacott) 지음 | 노윤기 옮김 | [책세상]

 

 

이번에 읽게된 <단순한 삶의 철학> 대한 글은 기존의 독후감과 유사한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고 보다 간결하게, 내가 받은 인상을 책은 어떤 책이다라는 방식으로 정리해보려한다.

 

 

<단순한 삶의 철학> 생각의 출발점이 되는 책이다.

책의 저자 엠리스 웨스타콧에 대해 출판사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미국 뉴욕 소재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서 본인 자신은 지독한 구두쇠로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나 책에서는 독자에게 검소한 삶만이 길이다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소박하고 단순한 선배 철학자들이 주장했고, 이를 찬양했다고 하여 우리도 여기에 따라야하는가를 묻는다. 책의 원제(검소함의 지혜) 고려하면 결국 저자의 입장은 소박하고 검소한 손을 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이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을 공개하듯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인상을 받는다.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기,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우리에게 책전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견해에 동조하든 반대하든 선택은 각자의 논리와 철학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하나하나 따라가며 자신의 견해와 비교해보면 것이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단순한 삶의 철학> 천천히 읽는 책이다.

저자가 어떤 관점에 대해 소개할 , 다양한 견해를 제시해준다고 말했다. 동전의 양면을 모두 면밀히 살펴보듯, 해당 관점에 대해 저자는 반론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뚜렷한 주장이 없이 저자의 논점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반론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은 긴장의 이완이 없이 지속적으로 긴장상태에 있는 같아 속도감있게 진행되지 않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책은 소박하고 검소한 삶과 우리의 행복한 , 의미있는 삶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소개해주는데, 고대의 철학자 뿐만 아니라 알랭 보통과 같은 동시대의 저술가도 소환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제시하는 문장의 의미는 저자가 정리한 고대 철학자나 동시대 철학자의 저서에 대한 서평이기도 하다. 책은 독자의 수준에 따라 저자가 제시해주는 견해들을 이미 알고있다면 빠르게 읽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천천히 읽을만한 책이다. 어떤 점에서는 <단순한 삶의 철학>  검소한 삶의 미덕으로 가기 위해 저자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책들과 삶의 철학이 함께 녹아든 독서에세이라고 수도 있겠다. 저자의 폭넓은 독서 경험과 검소한 삶의 미덕 대해 생각해온 저자의 고민이 들어있는 만큼 천천히 읽으며 독자 자신의 생각을 부추기는 책이기도 하다.

 

 

<단순한 삶의 철학> 유연한 윤리학을 보여준다.

윤리학/철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 자신이 책을 읽으며 받은 인상은 책이 북미의 실용주의 윤리학의 전통을 잇는 실천윤리학적 맥락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실천윤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피터 싱어의 철학과 생각하기의 방식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치에 대해 우리의 일상의 실례를 다양하게 고찰하고, 다양한 관점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서양철학사 2000년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는 영국 철학자 화이트 헤드(White Head) 말을 떠올려본다. 플라톤 철학의 전통은 이데아 철학임을 인정한다면, 이데아 영원불변의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다. 여기서 플라톤을 갑자기 꺼내는 이유는 <단순한 삶의 철학> 원제가 의미하듯 소박한 삶의 지혜라는 (저자의) 기준을 가진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전통을 잇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길에 이르기 위한 과정은 상당히 유연하고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 또한 우리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어떤 가치 대해 다시 들여다보기를 실천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경제를 북돋우기 위해 지역 농산물만을 구매하여 섭취하는 것이 좋다라는 주장을 놓고 , 피터 싱어가 그의 <죽음의 밥상>에서 다양한 입장을 모두 고찰하던 모습을 책의 저자 엠리스 웨스타콧도 유사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 측히 후기 자본주의로 대두되는 지구촌에서 물질적 풍요와 소비의 향유는 성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풍요속의 빈곤, 공허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책은 결국 이러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검소한 사람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게 해주고, 우리의 일상에서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실천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단순한 삶의 철학> 읽고 옆길로 흔적 단상들

저자는 고대 철학자, 사상가들의 시대와 현대 시대는 분명 삶의 양태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이 인식하고 제시한다. 가진 것이 부족하고, 소수의 특권 귀족 계층만이 부를 누리던 고대 사회에서는 귀족 계층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금욕주의 칭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금욕주의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다’(49)라고 저자도 주장하고 있듯이, 저자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고려를 놓치지 않는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역시 2년에 가까운 속에서의 생활에 기반하여 <월든>이라는 책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역시 전세계가 긴밀히 인터넷과 전화 등의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소로의 실험적인 삶은 사실 접근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2018 현재, 자본주의적인 경제구조가 지구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잡리잡을 있었던 이유 하나는 서구의 자본주의가 지구촌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개성이란 개념을 발명(?)하고 주입시킨데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나 욕구 가지고 있다. 생물체로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말이다. 자본주의는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점으로 우리에게 안심시키며, 우리가 자신들의 욕망 충족하기 위해 자유의지 갖고 이를 추구하도록 독려한다. 저자도 누누이 강조하고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른 일일까를 반문해보면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욕망 모습이 어떤 양태를 가지며,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따져보라는 것이 저자 엠리스 웨스타콧 교수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간결히 말하면,  어떤 가치 주장에 대해 단순히 수긍하기 전에 각자가 따져보라 것이다. 그리고 판단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저자는 끝없이 의심하고 소소한 반론을 제기한다. 저자는 심지어 끝없는 욕망이 불행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127)라고 까지 주장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높고 강렬하고 광범위한 행복의 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127) 점이다.

 

그러나 책의 후반에서 다루고 있듯 우리 현대인들은 개성 표출, ‘욕망 충족을 위해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하는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차혁명이라는 화두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에 기반한 삶의 혁명은 우리의 삶의 질을 보다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우리의 삶을 좀더 편하고 일처리를 빠르게 해주는 자동화 과정에서 현대 기술은 인간의 생산성을 더욱 압박하는 양상도 무시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자동화 설비를 통해 일주일하던 임무를 하루만에 해냄으로써 기존의 작업방식을 혁명적으로 개선했지만, 이는 또다시 노동자로하여금 일주일 내에 일곱배의 일을 완수하도록 강요하는 메카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현대인들, 특히 노동자들의 삶은 노동시간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하도록,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모순을 가져왔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저자가 소박한 사람또는 검소한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노동시간을 언급하는 것도 분명 검소한 에는 삶의 대한 고려도 분명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있었다.  

 

저자가 보여주는, 혹은 저자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검소한 모습을 글로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를 글로 표현하고 타인에게 주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책의 가치는 저자가 독자들을 각자 나름의 고유한 점과 보편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한번 면밀히 들여다보라고 권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낯설게 보라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책은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성찰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라는 주장에 대한 실천적 가능성이라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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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용서의 나라

(원제: South of Forgiveness)

토르디스 엘바/ 스트레인져 지음 | 권가비 옮김 | [책세상]

 

과거를 대면하고 치유의 길로 이어주는 마법’ – 피해자와 가해자가 용서와 자유에 이르는 여정

 

 

 

 

잃어버린 기억, 잃어버린 시절

기억에서 기어 나오며 나는 잃어버린 세월의 황량함에 몸을 떨었다. (…) 사랑의 나라로 처음 뛰어내렸는데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다는 . 피처럼 붉은 대문자들이 나의 추락을 그림처럼 선명하게 묘사해 넣었다.”(146)

 

성폭력 피해자이자 <용서의 나라> 저자인 30대의 토르디스 엘바가 열여덟 생일날 아침에 시를 다시 들여다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은 폭력은 십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들의 세포 하나 하나에 선명히 각인되어 끊임없이 피해자들을 따라다닌다. 

 

<용서의 나라> 저자는 때의 연인이자, 성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면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있는 일이기에, 특히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보살핌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람을 대면하게 해줄 있게 해준 매개체는 책의 제목에도 드러나듯, ‘용서라는 화두로 가능했다. 책은 흔히 합의라는 이름의 경제적 보상으로 폭력사건의 가해자가 면죄부를 받고 새사람으로 변신할 있는 대한민국 사회를 떠올려볼 , 진정한 용서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며 우리가 눈여겨볼만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등장하는 저자이자 성폭력 피해자인 토르디스 엘바는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여성이며, 다른 저자이자 성폭력 가해자인 스트레인져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남성이다. 사람은 각각 10 후반이자 20 초반이었던 16 사람 사이에 있었던 성폭력 사건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 이와 직접 대면하기위한 준비를 한다.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장소로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을 선택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케이프 타운은 소수의 백인 남성이 주도했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폭풍을 겪은 곳이면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반평생을 감옥에서 갇힌 풀려나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기에, 케이프타운에서 이루어진 사람의 만남은 서로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매우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을지 모르지만 성적으로나 삶의 경험으로나 아직 미숙하던 10 후반, 20 초의 저자들은 사건직후, 가해자 피해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정 반응을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할 있다. 토르디스는 자신이 겪은 절대적 신뢰의 대상이었던 연인에게서 당한 일이었음을 믿지 않으려 했다. 한편 톰의 경우, 토드디스와 절교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게 되어 아이슬란드를 떠나며 상황을 회피하였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덮으려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톰에게는 회피기작으로 인해 어떤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토르디스가 톰에게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톰의 가해 사실을 전달할 때까지는 말이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성폭력은 우리 주변, 특히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많이 자행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여러 성폭력 관련 사건을 살펴봐도 그렇다. 무작위로 성폭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토르디스가 책의 초반에 말문을 열며 언급하는 대목도 정확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강간사건은 우리가 피하라고 교육받는 그런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강간 사건은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믿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친척, 배우자, 친구 등에 의해서 일어난다.”(33)

특히 톰의 경우 성폭력 가해자가 되리라고 짐작해볼만한 단서를 찾기힘들다. 우리가 성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있다라고 믿는한 그렇다. 그러나 톰은 사랑이 넘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에서 충만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교육도 충분히 받았고, 부모로부터 사랑도 많이 받았다. 여성을 혐오할만한 부정적인 경험을 적도 없어보이며, 오히려 성장과정에서 톰에게 긍정적인 여성상도 많았다. 경우를 보면 누군든 성폭력 가해자가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일깨워준다. 아울러 성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할 있음을 사례는 다시금 분명히 보여준다.

 

토르디스는 남자가 여자를 범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사회구조에서 찾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 사회구조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 부분은 책의 후반에 사람이 남아공의 강간위기센터를 방문했을 , 곳의 담당자였던 시릴라가 남아공의 현실에 대해 언급한 내용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시말하면 남아공은 소수 백인(남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 영향과 상처를 아직 치료중이라는 것인데, 시릴라는 아파르트헤이트가 가부장제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고 지적하였다. 여성 인권이 극히 취약하면서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폭력 발생률을 보이는 남아공-케이프타운의 현실을 고려해본다면, 본질적으로 현상(아파르트헤이트와 높은 성폭력 발생률) 서로 모종의 연관을 갖는다는 점을 시사해주기도 한다. 시릴라의 말대로라면 강간은 힘과 지배 문제이기에, 성폭력 문제는 결국 개개인의 가해자에 대한 교화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구조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배울 있다.

 

 

 

 

수인(囚人)으로서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

있고난 직후 토르디스와 톰에게 일어난 반응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현실에 대한 부정 혹은 현실 회피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피해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이런 폭력을 당할 있는가? 그리고 가해자는 아마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은연중에 내리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 겪은 일의 후폭풍은 사람 모두가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토르디스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우울증, 스스로 강간을 자초했다는 자괴감 뿐만 아니라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등으로 장기간 고통을 받았다. 가해자입장이었던 톰도 이후 쉽지 않은 세월을 보내게  된다. 수치심, 그리고 끊임없이 몸에 새겨져 스스로를 갉아먹는 죄책감의 감정과 떳떳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두려움 속에서 살게되어 스스로를 수인(囚人)으로 만들어 버렸다. 피해자를 무의식중에 회피하고 살아가더라도, 묻혀있던 죄책감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어 가해자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할지 모른다. 결국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타인과의 관계가 원할하기 힘들게 됨은 미루어 짐작할 있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상대방을 위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있겠는가. 토르디스가 과거를 마주대하는 것이 편하지는 않은 입장임에도, 톰이 동안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를 짐작하는 대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토르디스는 톰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혐오하며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다 보면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거꾸로 보살핌 받기가 힘들어진다.”(223)

 

결국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피하고, 잊으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톰처럼 진심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원활한 대인관계를 맺고 타인을 위하는 마음가짐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수치심을 너머 가해자였던 이들에게도 평생의 짐을 지우고,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토르디스는 이미 스스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며 깨닫고 있었다.

 

 

 

 

피해자가 다른 가해자가 되는 프레임 -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무자비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사진을 수백 보고 나니 사람에게 딱지를 붙인다는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람이 이상 사람이 아닐 백인혹은 흑인 되고, ‘박해자혹은 피해자 되는 것이다.”(115)

 

아파르트헤이트의 참상을 고발하는 박물관에 들른 사람은 케이프타운에서 벌어진 인간의 다른 폭력의 역사를 접한다. 여기에 피해자 새로운 가해자 수도 있는 구조를 보여준다. 바로 딱지표 붙인다는 , 달리 이야기하면 누군가의 행동으로 상대방 자체에 공고한 낙인 찍어버리는 행위의 위험성을 다시금 생각할 있다. 젊은 시절 때의 실수 혹은 잘못으로 평생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을 들어야한다면, 과연 언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준비할 있을까. 토르디스는 과거의 가해자에 대해 영구적인 딱지표 붙이는 대신 이런 역사적/관습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용서라는 것이 필요함을 오랜 숙고와 과거의 자신과 대면을 통해 확신하게 된다. 성경에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리아 여인이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하였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는 놀라운 가르침을 전해준다. 평범한 우리들이 타인에 대해 비난하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종종 우리의 허물과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망각하곤 한다. 타인에 대한 비난과 마녀사냥 결국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분노와 두려움이 억눌린 감정이 내부로 향하면 토르디스와 톰과 같이 죄책감과 자책, 심지어는 자해로 이어질 있을 것이며, 감정들이 외부로 향하게 되면 결국 타인에 대한 비난과 딱지표 붙이기와 같은 행위를 초래하게 것이다. 결국 피해자마저도 가해자가 있는 가능성을 본질적으로 내포한다.

 

<용서의 나라>에서는  과거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오랜 시간의 대화와 고통스러운 상처 되돌아보기 과정을 통해 각자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보살피고 있다. 일종의 의식과 같은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풀어내고 궁극적인 용서와 화해 여정으로 있었다. 놀랍게도 토르디스는 불완전한 인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여유의 경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16년이 걸리긴 했지만.

 

나는 너를 강간범이라고, 적어도 나를 강간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 그렇지만 말이 너를 말하는 아니야. (…) 사람은 평생 살면서 좋은 일도하고 나쁜 일도 . 요지는 나는 사람이라는 말이야. 딱지가 아니고. 나라는 사람이 그날 일어났던 일로 축소될 수는 없어.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177)

 

 인간은 누구나 실수 혹은 잘못을 저지를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 그리고 상대방의 인간 분리해낼 있는 이런 분별력과 심리적 여유는 오랜 시간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토르디스는 용서 여정을 위해 과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필요한 과정인지를 숙고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용서의 핵심은 짐을 덜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것이야. 짐이 원래 사람의 몫이라하더라도 말이야. 돌을 소유한 사람이 바뀐다 해도 악순환이 계속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70)

 

토르디스와 톰이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과거의 상처를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는 과정은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나로서도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만큼, 사람에게는 민감하고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에서 이런 성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일방적 용서 완전한 해결책은 결코 아님을 또한 일깨워 준다. 결국 토르디스의 깨달음과 확신은 성폭력을 극복하려면 공동체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자라야 하고, 잘못된 생각을 다듬어내야 하고, 노력을 합쳐야 한다.”(352) 결론에 도달한다.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이다. 그것도 가해자, 피해자의 노력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사회의 구조를 새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만들어나갈 있도록 말이다.

 

 

 

 

나가며 소리내어 말하고, 웃어 넘기고, 그리고 그냥 다시 살아가기

토르디스에게 있어 용서 길은 험난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자해, 자존감 상실 등의 심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겪어내야했다. 또한 자책과 죄책감, 그리고 사회 생활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스스로 옭아매던 과정을 겪었다. 사람은 각자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케이프타운에서 과거를 대면하고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사람 모두 진정한 자유 얻었다. 사람이 만나 노력한 대화와 화해, 용서의 과정은 매우 낯선 과정이다. 낯선 , 낯선 방식으로 서로가 진심으로 만나는 지점을 찾아가는 노력은 사람에게 용기와 주변 가족의 도움 지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시 상기하지만 과정은 사람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하고 참여한 결과라고도 있다.

 

책을 덮으니 바로 떠오르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토르디스가 톰으로부터 받아 반평생을 속에 넣고 다니던 돌하나를 톰의 손바닥에 쥐어주는 장면이다.

 

그가 침을 삼켰다. 그와 마주친 시선을 떼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아 돌을 쥐어주었다. 그가 짧게 숨을 들이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손이 그의 주먹 손을 감쌌다. 그가 남은 손으로 위를 덮어 우리의 힘들었던 과거를 감싸 쥐었다.”(343)

 

16년의 세월동안 사람이 고통의 시간과 이메일로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그리고 최종적으로 케이프타운에서 직접만나 이르게 여정의 마지막에서 사람은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 있기 이전의 톰이 토르디스에게 쥐어주던 돌은 성폭행 사건 이후 토르디스에게는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로 무게감있게 자리를 잡았다.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마음의 짐을 몸에 새기듯 16년을 짊어지던 토르디스는 다시 돌을 톰의 손에 되돌려주며 진심어린 용서를 하고 스스로 짊어지던 마음의 짊도 내려놓았다. 이어서 톰은 돌을 거꾸로 나무 불리었던 바오밥나무 옹이에 남겨둠으로써 톰이 지니고 다니던 죄책감과 두려움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아주 상징적이지만, 낯선 의식은 사람에게 무엇보다 의미를 갖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상처는 남지만, 사람의 기이한 만남과 용서의 여정은 진정한 용서 어떤 모습일 있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책의 여러 군데에서 사람이 대화하는 과정에서 토르디스가 제안한 지혜는 결국 케이프 타운에서 사람의 모토가 된다.

 

 소리내어 말하고, 웃어 넘기고, 그리고 그냥 다시 살아가는 거라니까.”(224)

 

감정적으로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은 모토를 다시금 기억하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 ‘소리내어 말함으로써 우리 내면에 숨겨져있는 상처와 불완전한 감정들을 대면하고 이를 인정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것이 기반이 되어 용서로의 여정 시작된다. 이후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고 웃어 넘김으로써 자신들에게 짊어지워진 죄책감 혹은 두려움을 벗고 스스로를 가볍게 하게 된다. ‘그냥 다시 살아가기 시작함으로써 이들은 비로소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으로서 평범한삶을 살아갈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평범한 삶의 위대함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유사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지하고 도움을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로 삼을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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