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는 말 그대로 1호다. 그러니까 내가 ‘인공 반려자‘를 개발하고 시험 작동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맡은 기계다. 물론 진짜 이름이 ‘1호는 아니다. 모델명이 따로 있고 회사에서 임의로 부여한 이름과 내가 시험 가동하면서 지어준 이름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건 전부 잊어버렸고 이제 와서는 별로중요하지도 않다. 나에게 첫 번째였으니까, 1호는 그냥 1호다. 안 켜지면 어떡하지…... - P126
세스는 1호가 켜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옆에 서서 조용히기다리고 있었다. 웃지도 않고 쓸데없이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쩐지 예감이 좋았다. - P129
나는 내 것이 아닌, 회사에서 받아와 시험 가동 중인 신형인공 반려자의 단단한 가슴에 꼭 안긴 채 그가 깊고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는 가사 없는 곡조를 소리 없이 따라 불렀다. 안녕, 내 사랑안녕, 내 사랑… - P134
"나 이거 할 줄 몰라."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넘어질 것 같아." 「그냥 제가 하는 대로 따라오세요.」1호가 속삭였다. 「천천히.」화면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가운데 1호는 영화의 마지막 삽입곡을 배경으로 나를 안고 느리게 부드럽게 춤추며 거실을 돌았다. 기계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달콤하게 슬픈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천천히 거실을 한 바퀴 돌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를 ‘인공‘ 반려자가 아니라 ‘반려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 P137
11나는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대 전체를 적시는 것을 느끼며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침실 창문 밖으로 셋이 밤의 거리를 걷는 모습이 보였다. 여섯 개의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갈 때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가로등 불빛이 흔들려 셋의뒷모습이 어둠에 가려졌다. 그것이 내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P143
여자아이의 목에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아내는 어린딸에게 신경 쓰느라 아들이 손톱과 입가에 묻은 얼마 안 되는 피를 아깝다는 듯이 열심히 핥는 모습은 눈치채지 못했다. - P151
아들의 몸에서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금빛 액체를 받아 모으며 남자는 마음의 평화와 미래의 희망을 되찾았다. - P1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