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성이 입증된 약물인 만큼 언니의 의견에 이견을 달 이유는 없었어요.
그럼에도 나는 언니의 초고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편한, 그래서 방어적으로 읽히는 문장들 때문이었죠. 이를테면 언니는 "이렇게 안전한 약물적 임신중지법은 차기 임신에 영향을 주지 않아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고 쓰기도 했고,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결코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며 "여성 자신의 삶과 가족과, 무엇보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고심 끝에 결정한다고 적기도 했지요.

해수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습니다. 내가뭘 축하하느냐고 묻자 해수는 화면을 향해 턱짓을 했습니다.
화면에는 내가 몇 시간 전에 보았던 중계 영상이 저녁 뉴스로나오고 있었어요. "우리 자매님, 애 마이 썼네"라는 말에 프라이팬으로 시선을 돌린 내가 "나는 한 거 없어………"라고 하니
"그게 뭐 한 거지"라며 동생이 덤덤하게 대꾸했습니다. 무슨말인가 싶어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해수가 민 교수와 나누었다는 대화를 다시금 떠올렸지요. 혹시 읽어봤느냐는 내 물음에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해수가 뒷짐을 지고는 생글거리는얼굴로 다가와 귀엣말을 했습니다. "아니, 꼭 읽어봐야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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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일종의 감동 순례 코스나나는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몽고메리의 집터 부근 꽃밭에서 엽서를 썼다. 햇빛과 바람의 동선이 읽힐 만큼 사방이 고요했다. 이 엽서를 쓰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글씨를 좀 못 쓴 것 같아."
내가 말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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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N잡러의 시대다. 본업을 두고 여러 가지 부업을 하면서 부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작은단위의 일들을 여러 개 동시에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책 만드는 일과 유튜브 운영, 외주 업무까지 하고 있으니 N잘러라고 할 수있으려나? 어찌 됐든 스스로를 N잡러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먹고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것을 새로운 단어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 ‘N‘라는 말, 누가 어쩌다처음 쓰기 시작했는지 몰라도 참 잘 만들었다 싶었는데, 그 주인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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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개의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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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웠는 사람보다 앉았는 사람 앉았는사람보다 섰는 사람 섰는 사람보다 걷는사람 혼자 걷는 사람보다 송아지 두 세 마리앞세우고 소나기에 쫓기는 사람."
• 박용래, 「소나기」, 「먼 바다, 창비이 시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소나기‘라는 제목 아래 ‘어떠한 사람‘을 옆에 두고 있지요. 상상해볼까요. 누운 사람 옆 앉은사람을 앉은 사람 옆 서있는 사람을. 서있는 사람 옆 혼자 걷는 사람을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가장 쓸쓸하고도 슬픈 그이를 만납니다. "송아지 두 세 마리 앞세우고 소나기에 쫓기는 사람"을요. 그의 등허리는 축축할까요? 얼굴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질까요?
어린 송아지는 우왕좌왕하며 몸을 떨까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송아지 같은 슬픔 두엇을 끌고, 혼자 걷는 마음을요. - P20

"언니, 나는 마음으로 우는 게 뭔지 알아." - P21

마리오는 자기가 방금 메타포를 사용했다는 것을 모른 채 메타포가 뭐냐고 묻습니다. 네루다는 마리오 안에 살던 시인을 깨우고, 그가 메타포를 사용해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돕지요. 사랑에 빠진 자는 자기 환상에 빠진 자들이지요.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표현을 찾기 시작합니다. 베아트리스는 마리오에게 "미소가 얼굴에서 나비처럼 날갯짓한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 P24

메타포는 할머니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죠. 저희 할머니는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던 멋쟁이였는데요. 얇은 천으로 대충 만든 옷을 보면 "얘, 이런 걸 어디다 쓴다니? 개 혓바닥 같아서 못쓰겠구나!" 질색하셨어요. 훗날 알았죠. 할머니들이야말로 메타포의 귀재들이란 것을요! 꼬맹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사촌 동생은 다섯 살 때 할아버지를 ‘줄넘기‘라고 불렀어요. 이유를 물으니 입 주변의 팔자주름이 줄넘기처럼 보여서라나요? 한번은 친척 어른이 제 남동생의 뺨을 검지로 찍어보고 지나간 적이 있었어요. 토실토실한 뺨이 귀여워서였겠지요.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이 씩씩거리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뭐야, 왜 사람을 크림 찍듯 찍어보고 가?" 같이 있던 사람들이 ‘와하하 웃으며 좋아했어요. 눈치채셨나요? 저희가 즐거워한 이유는 친척 어른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어요. 동생이 사용한 말, 그중 메타포인 ‘크림 찍듯이에 크게 공감하며 즐거워했던 거죠.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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