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충이 된다.
우리는 데이터를 정보로 착각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경향을 염려했다. 그가 눈돌리는 곳마다 사람들은 정보를 통찰로 착각하며 앞 다투어 달려들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썼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이런 과도한 양의 데이터(사실상 소음)는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며, 통찰의 가능성을 없앤다. 소음에 정신이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을 . - P179

니들먼은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철학도 분명 도착지에관심이 있지만, 여행을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그저 똑똑한 대답이 아닌 마음의 대답에 도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종류의 대답, 예를 들면 머리의 대답은 그만큼 만족스럽지못할 뿐만 아니라,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그만큼 진실하지도 못하다.
마음의 대답에 도착하려면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무지와 한자리에 앉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끝없는 해야 할일 목록에서 또 하나를 지우려고 성급히 문제 해결을 향해 달리는 대신, 의혹과 수수께끼의 곁에 머무는 것. 여기에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조롱할 것이다. 내버려두라고, 제이컵 니들먼과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비웃음은 지혜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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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는 하루도 부고 기사가 실리지 않은 적이 없다. 최근에도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오늘만 해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와 텔레비전 토크쇼를 삼십 년간 맡아 했던 진행자가 죽었다는 부고 기사를 보았다.
내일이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죽음은 얼마 되지 않는다. - P85

그렇다고 읽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읽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김윤자가 독서의 대상으로 택한 것은 신문이었다. 한글로 된 신문과 영어로 된 신문 모두.
아침 일찍 광화문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서너 종의 신문을 구할 수 있었다. 광화문에는 여전히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뒤적거리던 신문을 곱게 접어자리에 놓고 가곤 했다. 게을러서 쓰레기통까지 가지 않는 게 아니었다. 신문을 읽고 싶은 누군가를 위한 배려였다. 지금 시대에신문을 읽는 사람들이란 희귀했고, 그래서 신문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갈급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 P87

가 손을 들어올렸다. 손바닥이 신중호를 향하게.
"이거는 마이 시크릿."
99
"이거는 나의 프라이버시."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중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레이디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우 쥬 플리즈 토크 어바웃 유어 시크릿? 당신도 할 수 없잖아요"레이디가 말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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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에 그냥 두둥실 떠 있거나 스르르 미끄러져 떠다니는오리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한가롭고 여유 있고 가볍고 편안한 삶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물밑으로 보이지 않게 그들은 중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에 대한 나의 환상은 그때 깨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로움을 그리기보다는 그들 날갯짓의 중노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쉬운 삶이란 없다. 어떤 존재는 혼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7. (1996) - P158

그 일이 가능했던 것은 나의 괴상한 공부 덕분이었을 거야, 첫 외국행의 신선한 충격이 내게 자꾸 외국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지만, 가장 먼 외국은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거야. 가장 미지의 지역이 말이야. - P166

수피즘 이야기 중에 이런 게 하나 있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어떤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은 모여 모여,
흘러 흘러 마지막으로 바다로 흘러들지. 그러나 이 물이 하는 숱한 여행 중에서 언젠가 한 번은 사막을 건너가는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와. 온 세상을 돌고 돌아 흐르다 마침내 사막 앞에 다다른 물은 절망하지. 달구어진 거대한 모래사막을 앞에 두고서 물은 공포에 떨어. 물이 사막을건널 수는 없으니까. 도중에 물은 깊은 모래 속으로 빨려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 그때 사막이 물에게 말하지.
선택하라,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를, 물은 물론 살고 싶다고 말하지. - P169

처음에는 서양 체계와 『노자』를 접목시키려는 의도에서 텍스트를 부지런히 읽고 또 읽었지만 언감생심, 아무런 힌트조차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뒤로는 서양 신비주의 공부를 완전히 끊고서 처음에는 노자, 그다음에는 장자에 몰입하게 되었는데, 노자가 아주 노련한 미스터리 시인이었다면 장자는 강직한 드라마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자가 장자보다는 훨씬 더 높은 차원에 있다는 뜻이다. 노자를 읽으면 배가 허해지고 장자를 읽으면 배가 불룩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 장자는 사회인습론에더욱 깊이 빠져 있는 데 비해 노자는 우주, 사회, 개인이라는 세 겹 미스터리 신비주의를 완벽하게 시적으로 소화, 전달했다는 것이다. - P181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최승자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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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만화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우리집 창문으로 그애를 훔쳐본 일이 부끄러워졌다. 투이와 한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몰래 반가워했던 마음까지도 그애가 다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독일에서의 일은 이제 뿌연 유리창으로 보는 바깥 풍경처럼 희미하다. 그런데도 처음 투이네 집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그때 느꼈던감정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투이네 식구 모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던 일, 그 환대에 기뻐하던 엄마의 모습, 어떤 조건도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따뜻한 기분과 우리 두 식구가 같은 공간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던 공기를 기억한다. 어떻게 그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이 호의로이어질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고작 한 명의 타인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어른이 된 나로서는 그때의 일들이 기이하게까지 느껴진다. - P69

응웬 아줌마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봤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어땠는지,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는지, 바다를 가보았는지, 한국의 바다는 어떤 색인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음식은 무엇인지. 아줌마의 질문은 공부는 잘하냐, 왜 이렇게 키가 작냐, 커서 뭐할거냐 물어대는 다른 어른들의 것과는 달랐다. 진심 어린 관심을 받고있다는 기쁨에 나는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아줌마 앞에서떠들어댔다. - P75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투이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식탁의 분위기를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이 엄마 가족 모두를 다 죽였다고 했어. 할머니도, 아기였던 이모까지도 그냥 다 죽였다고 했어. 엄마 고향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대." 어떻게 네가 그런말을 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는 말투였지만 나는 그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P79

몇 번이나 독일로 출장을 가면서도 나는 플라우엔에 들르지 않았었다.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의 라이프치히에서 열흘 동안 체류했을 때도나는 애써 그곳을 외면했다. 그곳에는 서로를 경멸하는 부모 밑에서영혼의 밑바닥부터 떨던 아이가 있었고, 단 한 번의 포옹도 없었던 차가운 이별과 혼자 울던 길거리가 있었다.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추억만으로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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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5만 부 기념 봄 에디션, 양장)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평점 :
품절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99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 P328

나의 목록 작성은 절대로 이만큼 위대하지 않다. 내 목록은 존재를 보장하거나 문화를 이룩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한 나의 목록은 가치를 인식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의 목록은 내가 세상을,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보다 더 철학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 P332

누군가는 이 말에 반대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괴로운 것은 의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넘쳐나서라고 말이다. 소셜미디어덕분에 이제는 언제든지 모두가 모든 것에 자기 의견을 내보일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은 친구들에게, 전문가‘들에게, 그리고 가장 교활한 알고리즘에 크게 영향받는다. 그 결과 우리는 희뿌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의 신념은 종이처럼 얄팍하다. 당신은 새로 생긴 스시집을 좋아하는가? 아니면그저 사람들이 별점을 다섯 개 줬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타지마할은 정말로 아름다운가? 아니면 인스타그램 속 황홀해하는 사진들을 보고 타지마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가? 세이 쇼나곤은 자기 렌즈가 투명하고 깨끗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했다.
I , 고기 그 비허고 여거운 거 - P337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일본인이 그렇듯 쇼나곤은 사쿠라, 즉벚꽃을 무척 좋아했다. 벚꽃은 순식간에 져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삼 일쯤 만개했다가 다 떨어져버린다. 다른 꽃(예를 들면 매화)은 훨씬 오래 피어 있다. 어째서 그렇게 연약한 것을 피우려고그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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