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과는 다른 영역이었다. 그런 건 남자도 발산하니까. 잘난남자는 물론이고 잘났다고 착각하는 남자들도 발산한다. 스스로가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뿜어내는 그런 흥에 겨운 에너지와는 또 다르다. 보호받아 마땅한? 그런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아무리 망한다고 해도 망한 느낌이 들지 않고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그런 느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 - P36

이곳이 저런 인간들의 균과 냄새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자 김윤자는 머리가 아프다.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참는다.
김윤자는 염치를 잊지 말자고 생각해왔다. 부끄러움을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다. 아니다. 이말은 적절하지 않다. 그건 남을 배려한다기보다도 그녀 자신을 위하는 일이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긍지를 지키는 일이니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핸드폰이 제멋대로 울리게 놔두지 않고 이런 데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된다.
김윤자는 그러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핸드폰이 없다. 전화가 울릴 수 없다.
그런데 냄새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다. 자신한테서도 저런 냄새가 날지 모른다. 씻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씻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김윤자는 갑자기 위축된다.
아…… 하스미 시게히코가 아니라 하라 세쓰코다. - P51

얼굴도 이쁜 여자가 제법이네..
이 정도의 반응은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김윤자는 기분이 상했다. 자신의 결격사유가 뭔지 궁금했다. 예상할 수 있어서, 그녀가 예상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기분이 나빴다.
그러니까 그녀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 좋은 가정에서 자란 영양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게 김윤자가 예상하는 자신의 결격사유였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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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쇼코는 비가 내리던 날에 우산을 들고 마중나오는 할아버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담을 넘어 집으로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얼마 없는 돈을 쪼개서 사준 옷을 포장째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고 했다. 쇼코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마치 여자친구처럼 생각하는 게소름 끼친다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도쿄로 떠나서 다시는 고향으로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 P13

11
"여기서 나랑 지내자. 한국에 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
쇼코는 마치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듯이 발랄하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쇼코를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저 열일곱 살의 쇼코를 기억하고 연락이 끊어져버린 걸 안타깝게 여기며 그렇게 서서히 잊어버렸으면 좋았으리라고,
뉴욕 시립 도서관 앞에서 하나와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쇼코에 대한 안타까움과 궁금증을 품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쇼코를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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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환경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있을까요. 이곳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은 채 욕심만 부렸던 것은없었는지 돌이켜봅니다. 그러다 한 번씩 박시도 님이 내려주는차를 마시러 갑니다. 그리고 찻잎이 우러나길 기다리며 차가제게 주는 시간을 지켜봅니다. 박시도 님처럼 스스로 비워내고채울 수 있는 여백을 갖게 되면, 저도 언젠가 숲속의 차나무처럼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이곳과 섞여 지낼 수 있겠지요. - P37

엿 방 중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이웃을 짝꿍으로 둔 장순님어머니의 엿은 씹으면 아사삭 부서지는 구멍 많은 엿입니다.
그 구멍을 어머니는 ‘바람‘이라고 합니다. 바람 많은 엿을 만드는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짝꿍과 혹여 서운한 것이라도생기면 엿을 잡고 있는 손이 틀어져 함께 당기는 엿도 틀어지고말기 때문에 엿을 만드는 계절이 오기 전에 어머니들은 서로에대한 마음부터 준비해둔다고 합니다. 서운하지 않게, 다투는일 없도록 평소보다 특히 더 조심하며 지내신다지요. 그렇게마음을 맞추니 엿의 맛이 더 좋아지나 봅니다. 따뜻한 방에서도차가운 겨울을 즐기라는 바람을 가득 담은 장순님 어머니의 엿을보냅니다. 어머니의 바람이 멀리까지 전해지길 바랍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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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기자를했으나 국내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공채에서 낙방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건 나랑 안 맞는구나 싶었고, 그렇다면 나랑 맞는 건 무엇이며 내가 진짜로 쓰고 싶은 건 무엇인지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소설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소설 때문에 인생이 크게 휘청인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나역시 언제나 소설가의 꿈을 간직한 채 습작생의 마음으로살아가고 있었으니까. - P13

아니, 그건 제가 더 잘 알죠. 쓰는 건 저잖아요.
내기할래요?
나는 광호 씨가 한 말이 공기 중에 충분히 스며들기를기다렸다. 광호 씨가 지금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저기요, 광호 씨. 모든 사람이 광호 씨처럼 용감할 수는 없어요.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요.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광호 씨가 내 말을 자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시간의 문제죠.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 - P25

거기엔 아무런 차별이 없어서 특별한 용기도 자긍심도 필요 없는 세상. 우리가 누구에게 어떤 종류의 끌림을 느끼든 그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어서 누군가의 인정도 응원도 필요 없는 세상. 그날의 광호 씨는 시간이 흐르면 그런 세상이 반드시 도래할 거라는 자신의 믿음에 내기를 걸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면그런 세상은 틀림없이 앞당겨질 거라는 신념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
*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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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모모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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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디테일과 캐락터의 중요성을 여실히 증명허는 이 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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