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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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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가 전혀 달콤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확답과 같은 작품집이랄까. 오해로 지어 올려진 성채를 향한 망치질이랄까. 정이현은 분명하게 나는,스위트한 여자가 아니에요, 나도 닳고 닳은 여자에요! 라고 말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전작에서 배수아나 은희경의 흔적이 엿보이던 그녀의 이번 작품집을 읽고는 묘하게 그리고 강하게 천운영의 기운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식의 분류는 위험하긴 하지만 천운영의 강북감성이 무척 자극적이었다면 정이현의 어찌할 수 없는 강남스러움은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천운영의 그것만큼이나 날 것의 생생함이 가득하다. 우아하게 포장된 어떤 형식들의 아우라를 넘어선 특유의 단정하고 세속적인 매력은 단편에서는 제대로 날이 선 칼같다.

30대 서울 여성의 감수성과 생활상을 가장 대중적으로 펼쳐보이는 작가라는 타이틀은 무수한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단 쉽게 읽힌다는 장점은 깊이가 없다는 진부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한정된 궤적을 맴도는 거리감은 단조롭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타이틀이 역설적 의도의 한계를 벗어나자 못했던 것은 정이현이라는 작가가 그려낸 도시의 맛이 단순히달콤함이나 씁쓸함으로만으로 나뉘어져있지 않기 때문일게다. 읽는 재미나 묘사의 적확함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한 대중작가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야트막한 산만 오르려는 것같은 저자세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비교하자면 이번 작품은 정이현이라는 작가가 사실은 야트막한 산을 천천히 제대로 타고 넘는 야심가라는 것을 입증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녀가 타고 넘은 열 편이 단편들은 작고 야무지고 단단한 봉우리들이다. 섣부른 단언이지만 그녀의 봉우리들은 그녀가 쉬지 않고 백두대간으로 향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자전적 소설인 <삼풍 백화점>은 강렬하다. 계급적 사회에 대한 묘사도, 관계에 대한 성찰도 섣부르지 않는 담담함은 비극의 참담함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한다. 서랍 깊은 곳에 넣어든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열쇠를 다시는 손에 쥐지 않는 단호함은 상처의 치유가 불가능한 시대를 사는 공통적인 트라우마가 아닐까 가슴이 아프다. 이 작품에서 정이현의 두 여성의 관계를 조밀하게 묘사하면서 서사 이외의 어떤 성취를 이끌어낸다. 직장 여성과 백수 여성의 저녁 풍경에 대한 묘사는 정이현 튿유의 프랜차이즈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대목들이다.<삼풍 백화점>을 비롯 <위험한 독신녀>와 <오늘의 거짓말>들 대부분의 단편들이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미시적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여성의 성과 결혼, 연애와 사회라는 제도와 관계의 틈새를 파고들었던 <달콤한 나의 도시>가 세부묘사를 통해 얻어내었던 가장 눈에 띄는 성취를 이 작품집속의 단편들 역시 어렵지 안헤 이루어 내고 있다. 박진감이나 리듬감과는 거리가 있지만 매끄럽게 속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의 다양한 지도들을 겹쳐내는 솜씨는 발군이다. 특히 < 그 남자의 리허설>은 주상복합 아파트에 같혀 살던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관한 궁금증을 가능한 모든 동선에서 바라본 정밀화다. 왜 지금 대한민국이 계급사회이며 신분사회인지를 섬뜩한 유머를 통해 역설하는 양채린의 이야기 < 위험한 독신녀> 역시 최소화한 연민으로 그려낸 시대와 세대의 자화상이다. 희비극이 뒤엉키는 은희경의 초기작들에서 보이던 냉소와 거침없는 위악의 쾌감은 없지만 분명 정이현은 부반장 같은 매력이 있는 작가다. 그녀의 소설들이 담고 있는 걱정과 위안은 마치 <비밀 과외>처럼 따뜻하다. 13만 7천 8백원의 잔고를 인출하는 소녀의 심장처럼 두근두근 헐떡이는 조바심과 잔소리들이 충분한 온기위에 보태어져 있어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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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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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여러 가지 감정들로 행복하고 괴롭고 기쁘고 슬픈 '사람들'. 누구나 그러하듯 누구나 그러해서 사람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여러가직 축복중의 하나는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고 여러가지 감정들의 변화로 더욱 성숙해진다는 점이다. 다만 그 축복이 어떤 경우에는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방어적이된다. 하지만 대부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마음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피해의식을 갖는다. 분명 내 안에서의 일이지만 남의 탓을 하고 상황탓으로 돌려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어려운거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옛말,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자가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라는 건 그 유명한 <화>의 저자 틱낫한도 이미 설파하지 않았는가.

베스트셀러<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과 <성에>등에서 여성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가 김형경이 타국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과 마음을 통해 스스로를 향한 진단과 처방을 함께 그려나간 독특한 심리 에세이인 이 책은 트래블테라피라고 불러도 무방할 귀에 담고 마음에 새길만한 조언이 가득하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혹은 잠시 머무르는 여행자로 그녀가 관찰한 세계인들은 비록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지만 그녀와 비슷하게, 우리와 너무나도 닮아있는 마음의 고통과 기쁨들로 탄성하고 신음하고 있다. 파리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로마에서도 마치 시차는 다르지만 동일한 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풍경처럼 마음의 풍경도 그렇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찬찬히 둘러보고 써내려간 이 기록들은 충분히 수긍할만한 마음의 명칭들로 이어진다. 마치 마음 속의 지도를 그리는 지도처럼 각 장을 읽다보면 왜 내가 그렇게 힘들고 외로웠는지 혹은 왜 그렇게 행복한 순간이었는지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된다.

소설가가 다듬은 문장들은 충분히 아름답고 여성 특유의 섬세함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 차분함을 보여준다.무엇보다 행복의 또다른 말을 불행이라 쉽게 칭하지 않는 태도가 삶을 긍정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이렇게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는가 부러울 정도로 자신의 내면에 솔직한 글들이 무척이나 친근하다. 어찌보면 치부라고 할 수도 있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저자의 심리 성장기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책은 섣부르게 무엇을 시작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자기 계발서와는 다르다. 오히려 담담하게 인생을 관조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미덕을 발견하라는 오래된 지인의 충고같은 책이다.

내가 특히나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질투와 시기, 우울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모양새들에 관한 부분이었다. 독자가 처한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따라 여러가지 마음의 명칭들 중에서 마음에 끌릴만한 부분이 다를테지만 짐작컨대 내가 싫어하는 나의 감정들에 관해 명료하게 풀어주는 부분들이 마음에 많이 끌리지 않을까 싶다. 네거티브한 감정들의 발로 역시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두 번째는 그것에 아파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어떤 대체적 감정을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물론, 긍정적인 치유의 감정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감정의 기복을 탄다는 말은 그 많은 감정들을 제대로 소유하고 있다는 확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저자는 극단적으로 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아우르고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게 하는 일이 감정의 지도를 아름답게 그려나가는 첫째라 말한다. 둘째는 햇살 좋은 날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딛고 걷는 일이라 한다. 두 시간만 걸으면 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흘린 땀방울 처럼 투명해 질 수 있단다. 말갛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보는 일, 그리고 거울 앞에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한껏 아름답게 치장하고 세상에 나서는 것처럼, 마음의 매무새를 곱게 다지는 일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중요한 자기애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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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행복한 오기사의 스페인 체류기
오영욱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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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에게 태양은 가득하다. 작렬하는 무언가의 에너지가 늘 그러하듯이 오롯이 빛나는 그 뜨거움은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하고 독려하며 쉬이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을 주곤한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태양 아래에서 그렇게 뜨거울 수많은 없는 것이다. 힘주어 말하지만 바쁘게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몇몇은 조금 천천히 걸을 수도 있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그 뜨거움을 등진 서늘한 쉼으로 생의 다른 이면을 마주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격렬한 투우와 강렬한 플라멩고의 에스파뇰들 역시 모두가 그리한 것은 아니어서 더럽고 아름다우며 평화롭고 행복한 그 곳,바르셀로나,시에스타와 피에스타의 한가로운 사람 풍경은 늘 그리할수도 있고 이리할수도 있는 어떤 평화로움을 보여준다.

우리가 여행기, 특히 어느 한 지역에 오래 머문이들의 체류기에 가까운 방랑기에 기대하는 잡곡밥같이 거대한, 다양한 다채롭고 복잡한 무엇들의 취득과 체득을 정보와 팁들을 기대하고 이 책을 연다면 어쩌면 너무나도 단조롭고 평화로운 오기사의 노닥거림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허나 여행이란 것이 다른 세상을 위한 호전적인 도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 따사로운 햇볕의 나라에서, 오후 두 시부터 다섯시까지의 평화로운 일상이 허락되는 도시에서 누구보다 스스로의 생태계를 온전히 가꿔온 여행자이자 이방인이자 방랑자의 가장 친근하고 솔직한 기억의 화첩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건축을 전공한 오기사의 그림은 그리하여 매우 단단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유롭다. 책의 페이지들은 짧지만 인상적인 문구들과 대부분 거리와 카페의 풍경선으로 이루어진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감각적이고 군더더기가 없고 유머러스한 그의 그림과 다소 게으르고 유쾌한 그의 글씨체는 오기사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일년간 마셨다는 천 잔의 커피와 오백잔의 와인과 맥주는 이 조급하지 않은 30대 초반 동양인 남자의 일정부분 지루하지만 대체로 평화롭고 안온하며 낙천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실제로 책의 많은 페이지들도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난 오기사의 카페와 커피, 바와 맥주의 큰 징검돌 사이에 늘 지각하는 어학원과 에이쓰리 만한 전기장판, 늘 40퍼센트만 알아듣는 대화들이 섞여 있는 모양새다.단조롭기까지한 구성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던것은 어떤 낭만이 전투적이지 않아서 편안한 일상의 그릇에 가득 담겨있어서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타국에서의 생활을 누군가 무엇을 찾기 위해서 어떠한 스스로의 업적을 위해서 떠나간 그리고 그래서 외롭고 부박한 유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기사는 모든 것을 버리지도 않았고 그럴 용기도 없는 단순함으로 느껴지는 외로움들과 덮쳐오는 불안함들을 감싸안는 여유를 보여준다. 읽는이의 태도에 따라서 재미와 호불호가 크게 나뉠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 여유로움은 삶을 만드는 꽤 근사한 태도로 느껴졌다. 그가 1년간 그려내고 기록한 양지생태보고서는 뜨겁기보다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닮아있다. 불타지 않는 열정이야 말로 얼마나 은근한 매력을 지닐 수 있는지 보여주는 떠남과 머무름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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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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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너티브는 이렇게 인터랙티브 해야한다는!

 

개인적으로 올 해 최고의 영화로 꼽는 <가족의 탄생>에서 가장 마음에 들고 흥미로웠던 장면은 봉태규가 그 여자들의 집에서 능멸 당하는 장면이었다. 고두심의 눈빛 유혹과 문소리의 콧소리 매혹이 겹쳐진 그 장면은 정말이지 매혹적이었다. 그녀들은 그들만의 집으로 낯선 이를 또 그렇게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가족의 탄생은 비단 출산의 고통을 인내한 세월의 장맛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라는 통크고 화끈한 모계 사회의 살가운 똘레랑스가 터지는 꽃망울처럼 섹시하던 장면이었다.

 

이 소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아주 섹시하다.

아내가 결혼했다! 도 아니고 아내가 결혼하다....도 아닌 그저 담담한 아내가 결혼했다. 는 마침표 문장의 상황 체념,인식 종결형의 제목은 분명하고 당당하다. 수녀가 임신했다. 오빠가 언니됐다. 처럼 난감한 뉘앙스의 이 제목은 다수에게 순간 도발적으로 들릴 문장임에 틀림없다. 난데없이 제시한 두 가지 문장 속의 수녀의 임신이나 오빠의 성전환처럼 아내의 결혼 역시 일상적으로 '쓰이는'표현이 아닌 것에는 틀림이 없다.(이런 말을 일상적으로 쓰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한국방송의 금요일 11시 오분 프로그램 "러브 앤 워")사회적인인 제도(다수의 규약에 의한,법적인 것이 아닌 그리고 대부분이 성적인 의미의)에서 조금 다르면 다 도발적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작가는 아내의 결혼을 도발이 아닌 전위로 보는 듯 하다. 마치 중이 제 머리 깎았다! 하고 유레카 하는 것처럼.

물론 남성 작가의 시점에서 그런 논지를 성공적으로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에는 불가능 해서 결혼한 아내의 요목조목한 이해과정을 거치는 평범남의 성장 소설로 그려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이 섹시한 이유는 사람이 아닌 관계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긴장과 노력 때문이다. 일처다부제가 가능할 수 있다는 그녀와 그녀와의 떡정이 어느덧 찰진 인절미처럼 애욕이 되어버린 사내의 연애와 결혼담까지는 조금 특이한 커플의 연애담,(이를테면 유하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으로 읽혔지만 초장부터 축구에 빗대어서 골,인과 딕,인을 비슷한 흥분도의 도가니로 만들던 작가는 연애담이 지나가 결혼으로 이르는 본격 제도화의 길에는 범상치 않은 패스와 태클에 보도 못한 공격적이지만 유쾌한 '필'살기를 보여 주며 지면을 그라운드처럼 갈 지 자로 질주한다. 해박하다기 보다는 잡스러운 각종 지식을 썰처럼 풀어놓으며, 오늘 펜을 들었으니 골은 못 넣어도 팔짱끼고 젠체하는 골키퍼의 머리라도 날릴 듯한 기세인 이 이야기는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그런 부류의 책이다.

 

유하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그녀의 파격은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정도였지만 이 소설 속의 마치 신라시대 여왕 같은 인아씨의 자신감과 매력,노력과 정성은 넌 어느별에서 왔니. 수준이다. 그녀는 일과 사랑을 다 잘해내는 원더우먼이 아니라 두 집 살림을 요령있게 해내는 엑스맨의 변신괴물에 가깝다.  

이렇게 사랑스럽게 포스가 느껴지는 캐릭터를 굳이 찾는다면 김별아의 <미실>정도가 그 예라 하겠다. 꽃미남 화랑들을 속곳에 파묻고 정사를 논하는 여왕같은 인아씨는 이 책의 남자들과는 다른 종의 인간처럼 보인다. 그녀는 진심으로 보노보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선입견이 만들어낸 도발적 거슬림은, 특히 남성 독자들에게,축구와 관련된 백과사전 더하기 인간극장스러운 에피소드로 상쇄되는 부분이 있다. 낯간지러운 비유나 대책없는 짜집기 대신 축구와 관련된 팩트로 러브 월드컵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가의 솜씨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정말이지 박진감있다. 이 궤를 꿰는 솜씨를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할 정도로 감탄이 나오는 매치들도 한두개가 아니다.

사랑은 게임이고 룰은 언제나 가변적이고 승자는 한 명이 아닐 수 있으며 반칙승도 승리이고, 우승뒤에는 허탈함이 따른다는 스포츠의 진리는 깔깔하기만 한 사랑의 욕망과 까칠한 지점들을 시원스럽게 밟아버린다.

 

마치 두 개의 리그에서 동시에 똑같은 포지션으로 활약하는 스타 플레이어의 매끄럽운 플레이를 관전하는 듯한 이 러브 게임은 행복하게도 단순한 러브 게임이 아니다.

인아씨의 사고 방식은 소설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현실적이고 사려 깊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서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이기적 인간인 동시에 욕망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는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인물이다. 남편 둘을 얻었지만 스스로의 생활 일정 부분을 포기했고 자식을 위해서 남편 하나를 억지로 버리는 우를 범하지도 않으며 남편들을 위해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끊지도 않는다. 둘러둘러 타이밍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오로지 스스로가 정한 룰에 따라서 살아가면 자심의 주변인들에게 그 룰에 대해 이해시키고 설특시키며 함께 생활해가는 이런 캐릭터는 정말이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그녀가 간과한 사랑의 가장 큰 죄목, 질투는 안타깝게도 두 남편들에게서 자주 발생하는데 사실 그들은 사랑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비교우위를 쉽게 판단해주지 않는 가족의 수장에 대한 질투(수컷으로서의) 그리고 다른 경쟁 수컷에 대한 동성으로서의 질투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로맨티시즘의 유령을 생매장 시키고 난 다음의 사랑의 형태변환에 대해 꼼꼼히 파고 들어간다. 사실 사랑의 제도화 되어서 존재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인 제도 안에서의 형태적 변이와 관점이 차이 때문인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을 사랑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랑은 마음안의 영역이고 제도안에서 파생된 가족이라는 형태의 집단은 구성원들의 영역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학자들의 주석들도 나열되어 있지만 아내가 결혼한 이 사건이 말하는 가족은 애정과 의지에 종속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공동체이다. 물론 한국적 상황을 인아씨가 잔다르크처럼 버럭해서 주홍글씨를 박고 살아가게 할 수는 없어서 남편 둘과 저 먼 섬으로 떠나는 결말이 유력시되지만 어쨌든 이 아내 하나, 남편 둘, 딸 하나의 가족은 모두의 수긍 아래 이러한 구성원의 가족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뭐 72만부이상 팔린 책의 독자들의 의견 분분하겠지만 나는, 브라보다. 얼씨구나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잘 살면 그만이지 뭐니! 굿 럭!

 

축구에 대해서 무지하기로 소문난 본인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지단의 경기를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결혼 할 수 있고 나도 지단 경기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도 가족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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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쓰다
매거진 t 편집부 엮음 / 씨네21북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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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매일 왕국에 들어선다. 준비랄 건 단순해서 그저 드러 눕거나 기대어 앉거나 세상에서 가장 스스로를 편하고 늘어지게 만드는 자세를 취하고는 네모난 리모트 컨트롤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취향의 호오를 두고 간섭할 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곳 거대하고 까탈스럽지 않은 왕국은 온전히 당신의 소유가 된다. 조금의 인내심만 있으면 그 왕국의 모든 문을 두드려 시시콜콜 잡다한 일상사에 타박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그저 귀찮고 내내 한가롭고 싶다면 편안히 그저 편안히 당신의 왕국 속 광대들의 익숙한 친절함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혼신을 다하는 그네들의 소용돌이에 풍덩하고 빠져 함께 웃고 울고 감정의 진창을 질척하니 즐기다 빠져나오고 싶으면 그저 스윽하고 일상으로의 컴백, 버튼을 다시 한 번 슬쩍 누르기만 하면 된다. 네모난 텔레비젼을 조정하는 네모난 리모트 컨트롤이 선사하는 저렴한 행복추구권은 단순한만큼 안전하고 안전한만큼 반복적이다.

드라마의 왕국, 그 높지 않은 문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익명의 시청자들은 단순하고 안전한 행복을 어느덧 포기하기 시작했다. 쌍방향 매체들의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공중파 방송의 시청자들은 어느덧 그 저렴한 매체를 취향의 분명한 표식으로 만드는 방법을 익히고 즐기기 시작했으니, 텔레비전이 일으킨 텔레지변이라 할 만한 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하여 21세기 드라마 왕국의 로얄 패밀리는 그 선명했던 스타의 지형도와는 거리가 먼 지점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고 말았다. 적극적인 시청자들은 마치 김기덕의 영화와 홍상수의 영화를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헤메이듯 그네들의 삶의 환부를 뜨겁게 위무하는 드라마 작가들의 진심어린 펜끝에 감격한채 그들만의 완벽한 소왕국을 튼실이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흥행의 보증 수표라 할 수 있는 브라운관의 스타들이 cf화면을 감당해내는 십오초의 단발마 비명에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아차린 적극적인 브라운관의 우등 관람객들은 말초적인 쌩얼의 쾌감을 과감히 버린채 쌩이야기에 쌩삶에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기 드물고 심히 유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책, <드라마를 쓰다>는 마니아라는 계층을 거느린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공중파 시청자들의 '스타'들에 관한 팬레터라고도 볼 수 있다. 황인뢰와 노희경, 인정옥과 신정구는 최근 몇년간 시청자들과 텔레비젼이라는 매체를 주의 깊게 보아온 문화향유계층에게는 전혀 낯선 이름이 아니다. 발칙하고 참신하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그들의 족적은 단순히 드라마 작가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라는 무시당하기 쉽상인 그릇에 오롯이 담아낸 향기가득한 삶의 편린들이 만들어낸 파장은 무척이나 컸다.

기억하기 어렵지 않다. 불붙은 네티즌 들의 안티놀이 속에서 오롯이 빛을 반짝이던 <궁>의 아름다움, 시청률이라는 링에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대던 노희경의 자식들, 그 가족의 탄생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기억들, 복수와 전경, 중아와 시연의 이름만 떠올려도 아,하고 싸해지던 순간의 아픔들, 대략, 즐처드시던 뱀파이어 비둘기 포차의 짜릿한 쾌감을 떠올리고 미소짓기 그리워 하기란 감사하게도 무척이나 쉬운일이다. 이 책의 말미 신정구의 <안녕,프란체스카>에 대해 쓴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책은 '동족'을 알아보는 표식같은 흔적이다. 그들의 속내에 공감하고 일상의 양분으로 성장한 드라마족들에게 이 책은 문집과도 같은 동족의 선물이다. 예민하게 그들의 작업을 들여다보고 감정이 듬뿍 실린 감상을 전하는 필자들의 문체는 팬으로서의 격앙된 흥분을 애써 감추고 담담히 우리가 놓쳤던 모서리의 또 다른 감격들을 단단하게 전달한다. 물론 작가의 인터뷰와 작품론이 주제가 되는 구성답게 전체적인 드라마의 흐름보다는 드라마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가세계에 집중한 글들이다.

드라마를 보는 아줌마, 드라마에 넋나간 된장녀라는 얄팍한 네이밍 속에 숨은 우리 사회의 진짜 조각들을 맛 보는 쾌감을 분명한 의도로 전달하고 있는 이 책은 텔레비젼 시대의 텔레비젼 세대에게 특히 이 책에 언급된 작가들의 쾌도난담,완소대화에 중독된 이들에게는 치료제임에 동시에 비아그라의 역할을 할 것이다. 책의 전체를 다듬은 백은하의 말답게 웹에서의 스크롤이 아닌 지면을 넘기는 책장의 맛까지 제대로 전달해낸 편집의 묘미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기억을 읽어낸 팬덤의 반듯한 열정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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