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인생의 역사>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강간’에 대해 저자가 쓴 글이다.


불행하게도 “때”가 왔다. 당신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했다. 알지만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 남자가 근무하는 경찰서에 가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고 즉각적인 보호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그게 아니다. “당신은 그에게 자백을 해야만 한다.” 자백은 죄를 지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왜 피해자인 당신이 그것을 하고 있는가. 이 기괴한 상황의 아이러니를 리치는 역설의 수사학으로 적발해낸다. “당신은 당신이 당한 그 범죄에 대해 유죄이므로.”(58~59쪽)



어떤 말의 종류는 그것을 듣는 사람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그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번들거리는” 것은 그가 당산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느낀 게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건의 “세부사항”을 듣기 원하고 그것을 포르노그래피처럼 즐긴다. 당신의 고통이 초래한 “격렬한 흥분hysteria”조차 그의 쾌락을 위해 소비될 때, 어느새 당신은 무고誣告를 행하는 자가 되어 있다. 무고가 아님을 증명해야 할 책임은 이제 당신에게 있고, 당신은 자신의 고통이 진실한 것임을 필사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 모든 가족들”을 포함한) 이웃들의 눈이 경찰의 눈을 닮아갈 것임을 예감하며 심리적으로 고립된다.(58~59쪽)



제목은 ‘강간’이지만 이 시는 ‘강간 이후’의 상황만을 보고한다. 피해자를 피의자로, 진술을 자백으로 바꿔버리는 남성적 권력의 개입 역시 ‘강간’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해야 할까.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다.’ 육체적 강간과 정신적 강간, 혹은 개인적 강간과 사회적 강간. 40년도 더 된 시다. 자신을 희생하며 싸워온 이들 덕분에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시 안에는 ‘지금’과 ‘여기’가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있다. 구조가 폭력적일 때 그 구조의 온순한 구성원으로 살아온 사람은 축소해 말해도 결국 ‘구조적 가해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점을 자인하는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으리라.(61쪽)


⇨ 이 글은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글을 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남성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이라면 육체적 강간과 개인적 강간이 이미 있었던 것이고, 그다음에 경찰서에서 피해자인 여성이 진술할 때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정신적 강간과 (세상에 공개되는) 사회적 강간이 일어난다. 육체적 강간과 개인적 강간이 첫 번째 강간이고정신적 강간과 사회적 강간이 두 번째 강간이다. 그러므로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나리자 2023-06-19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군요. 피해자인데도 진술을 해야하는 과정에서 두번의 강간이라니 가혹합니다.
담당하는 경찰계에서도 이런 고통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규칙이나 제도를 개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헤아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낮엔 뜨겁더니 저녁이 되어서 시원해졌네요. 건강한 여름 나시길 바랄게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6-20 12:32   좋아요 3 | URL
여성 피해자가 진술을 해야 할 때 여성 경찰관이 업무를 보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해요.
교사나 경찰관은 인성 검사가 필수여야 할 것 같고요.
저자가 남성임에도 이런 글을 썼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모나리자 님도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1.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공부를 많이 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하였으므로 돈을 많이 벌고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로 갖지 말라. 이 세상에는 당신보다 가방끈이 더 긴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게다가 당신이 갖고 있는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똑같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경쟁자들은 비자격자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과 똑같은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이다.(111쪽)


나 역시 그 어떤 자격증도 크게 믿지는 않는다. 직원이 어떤 자격증을 자기고 있다고 하여도 그저 참고만 할 뿐이지, 그 실력을 크게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부분의 자격증은 보통 사람들보다 이론을 조금 더 안다는 의미일 뿐 실무를 더 잘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격증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자격증을 소유함으로써 더 많은 대가를 받는 게 가능한 직종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격증 소지자가 많다는 것은 결국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며, 정작 기업에서 필요한 사람은 실무에 밝고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임을 잊지 말라. 입사할 때 유리하게 작용하는 자격증이 있기야 하지만 실무 수행 능력이 받쳐 주지 않는 한 곧 잊히고 말 것이다.(107쪽)


자격증은 당신을 봉급생활의 쳇바퀴 속에 던져 넣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당신이 이 세상에서 운신할 공간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과거에 무엇을 하였고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였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의식적으로 부동산 중개업 방향으로만 기회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기회를 당신 스스로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106쪽)


⇨ 자격증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함부로 자격증을 따 놓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있음을 경고하는 글이다. 예를 들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놓으면 부동산 중개업 방향으로만 기회를 잡으려고 함으로써 다른 방향으로 나갈 기회를 잃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격증을 따려고 결정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하겠다.  




2.













<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우수작 : 서성란,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170~192쪽)


연희가 쓴 희곡의 스토리와 주제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일곱 살에 미국으로 입양되고 파양과 재입양 과정을 겪었던 아이는 서른일곱 살이 되던 해 겨울, 주정부의 추방 명령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연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내지고 돌아와야 했던 존 터너의 사연에 주목했다.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한 채 살았던 존은 폭력과 절도 등의 전과 때문에 추방당했다. 한국말을 모르고 돈이 없었던 그는 이태원 거리를 부랑아처럼 떠돌다가 행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에 체포됐다. 십 대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조현병 약을 먹지 않으면 자신을 제어하기 어려웠던 존은 경찰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넘겨졌다.(175쪽)


한국 입양 기관은 그가 해외 입양인이고 추방당해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파악할 수 있었다. 입양 기관에서 마련해 준 시설에 입소해 지내는 동안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다. 존은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한국에서 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이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십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175쪽) 


⇨ 존 터너의 사연에 주목하여 연희가 희곡을 썼다. 연희는 혜순의 딸이다. 독자는 읽어 가는 도중 혜순이 그 사연과 무관하지 않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혜순이 아이를 버린 적이 있는지 아니면 혜순이 버려진 아이였는지 궁금해 하며 읽을 수 있다는 게 이 소설의 강점이다. 그래서 독자가 읽기를 멈출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지루해서 읽기 어려운 소설이 얼마나 많은가. 


“고아들을 수출해서 돈을 벌어들인 나라”(178쪽)라는 점과 해외입양 문제가 한국 사회의 과제로 남아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좋은 소설이다. 




3.












알베르 카뮈, <페스트>


신문들은 외출 금지령을 갱신하고 위반자들을 투옥하겠다는 시행령을 계속해서 보도했다. 시내에 순찰병들이 돌아다녔다. 황량하고 이글대는 거리에서, 포장도로를 밟는 말발굽 소리로 먼저 예고된 기마 경비병들이 줄을 지어 닫힌 창문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순찰대가 지나가고 나면 위협받고 있는 도시 위로 육중하고 경계하는 듯한 침묵이 다시 내리눌렀다. 새로운 명령에 의해, 벼룩을 퍼뜨렸을지도 모르는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임무를 띤 특별 전담조의 발포 소리가 멀리서 이따금씩 들려왔다. 그 둔탁한 폭발음은 우리 시를 경계 태세 분위기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114쪽)


⇨ 그 당시는 개와 고양이가 반려동물이 아니라서 죽이는 게 가능했던 것 같다. 요즘은 반려동물이자 가족인 개나 고양이를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물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우월 의식에 빠져 있기 때문인데 이는 버려야 마땅하다. 



세계 속의 악은 거의 항상 무지에서 비롯되고, 또 무식한 선의는 악의만큼이나 많은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사람들은 악하다기보다는 선하다. 사실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지는 더하기도 덜하기도 하며, 바로 이것이 미덕 또는 악덕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서 누군가를 죽일 권리를 자신에게 인정하는 무지의 악덕이다. 살인자의 영혼은 맹목적이며, 분명 가능한 통찰력 없이는 참된 호의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을 것이다.(133쪽)


⇨ 카뮈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서 누군가를 죽일 권리를 자신에게 인정하는 무지의 악덕이다.’ 이 부분을 읽으니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가 떠오른다. 히틀러는 수많은 유태인들을 살상했다. 옳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그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세상이 되면 그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역사가 증명해 준다.  



다시 한 번 정확히 이런 이유로 영웅다운 면모라곤 전혀 없는 그랑은 이제 보건대에서 일종의 서기 역할을 맡고 있었다. 타루가 편성한 일부 조는 사실 과밀 지역에서 예방 보조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그곳에 필요한 위생을 갖춰 주려고 노력했고, 소독반이 다녀가지 못한 헛간과 지하실의 수를 세었다. 다른 일부의 조는 의사들의 왕진을 보조했고, 페스트 환자의 이송을 맡았으며, 나중에는 기술직원이 없어서 심지어 환자와 사망자용 차량을 운전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에는 등록이나 통계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랑이 그것을 하겠다며 나섰다.(135~136쪽)

 

서술자는 이런 관점에서 그랑이 리외나 타루 이상으로 보건위생대에 활기를 불어넣은 조용한 미덕의 실재적 대표자였다고 평가한다.(136쪽) 


⇨ 이 책을 쓰는 필자는 자원봉사를 하는 그랑이야말로 영웅적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랑은 앞에 나서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보조 역할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사람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3키로에 달하는 전신 방호복을 입고 온몸이 땀에 젖으며 일하던 간호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영웅이었다는 것을. 그들의 힘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현재 진행 중이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6-12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이노의 가르침 지금은 거의 읽지 않고 있지만 읽고 있으면 속이 후련한데가 있어요. 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거 보면 뭔가 불안하고 공허한 인간의 마음을 공략하는 거겠지 싶기도 하고요.

일상을 회복한 요즘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꿈꾸고 깨어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ㅎ

페크pek0501 2023-06-12 17:40   좋아요 2 | URL
속이 후련질 때가 있는 것 맞습니다. 조심스럽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확 질러 버려서 후련해져요.ㅋㅋ
아무래도 노느니 자격증이라도 따 놓자고 생각하게 될 텐데 세이노 님의 일침은 새겨들을 만한 것 같아요.
자격증으로 인해 평생 일할 직장이 정해지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몇 년에 한 번씩 생길 거라고 하는데 모를 일이죠.
저는 딸이 꼬셔서 찜질방 갈 준비하고 나갑니다. 이 더운 날 웬 찜질방!! 몇 번 거절해서 오늘은 가 줘야 할 듯.ㅋ

stella.K 2023-06-12 19:42   좋아요 2 | URL
아, 벽지 바꾸셨네요.
아까는 스맛폰으로 본지라 몰랐어요.
시원해 보입니다.^^

페크pek0501 2023-06-12 23:07   좋아요 1 | URL
여름이라 벽지를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주도에 갔을 때 찍은 놓은 수영장 사진이 있더라고요. 활용했슴다. 시원해 보이셨다면 벽지 선택 성공, 이네요. 하하~~

서니데이 2023-06-13 0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아직도 일일확진자가 적지 않은데 뉴스에 적게 나오면서 이전만큼 관심있게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름이 되니 조금 걱정이네요. 페크님 사진이 예뻐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페크pek0501 2023-06-13 11:15   좋아요 2 | URL
코로나가 끝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의료진들과 그 관계자들은 아직도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일과 방역에 힘쓰고 있지요. 영웅들입니다.
폭염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거의 마스크를 벗게 될 것 같아 전파가 걱정이 되긴 해요.
서니데이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06-13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셰도 보라색처럼 얇게 날씬하게 그려진 보라조명이 너무나 매혹적입니다

페크pek0501 2023-06-13 11:23   좋아요 1 | URL
며칠 전, 용산가족공원에 바람 쐬러 갔다가 찍은 사진이에요.
둘째애가 먼저 가 보고 좋다며 우리가족을 끌고 갔어요. 좋은 풍경이 많았는데 밤이라 푸른 나무들을 찍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얄라 님의 표현이 좋습니다.

프레이야 2023-06-13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멋집니다.
새삼 페스트를 다시 한 번 읽어야지 싶네요.
자격증 따는 것에 대한 저런 관점도 있군요
자격증 없는 저는 위안이 된달까요 ^^

페크pek0501 2023-06-15 17:16   좋아요 0 | URL
사진, 요즘 폰 기능이 좋아져 덕을 봅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잘 나와요.
페스트는 재독한 것인데 코로라19를 겪어서겠지요, 공감이 가서 읽기가 수월했어요. 좋은 책은 두 번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자격증을 따서 저도 자격증과 관련된 일을 14년이나 했었죠.ㅋㅋ
요즘 저녁엔 덥지 않아 저녁마다 산책합니다. 프레이야 님, 좋은 저녁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3-06-15 17:28   좋아요 1 | URL
앗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저도 자격증 따서 10년 관련일을 했었네요. 결국 책과 글과 동떨어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격증 안 따고 게으른 자들의 변명에 힘이 되는 글이군요 ㅎㅎ 울제부는 인생 후반전에 쓰일지도 모를 자격증들에 도전 중이고 이미 몇 가지나 땄구요. 부지런하네요 직장도 다니면서 말이죠. 오늘은 날이 조금 시원해요. 저녁이 다가오네요 어느새. 산책 잘 다녀오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6-15 17:32   좋아요 0 | URL
자격증.. 그러셨군요.
이 책을 읽고 함부로 자격증을 따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어요.ㅋㅋ
아무래도 취직하기 어려울 때 자격증이 있으면 우대해 준다는 쪽으로 마음이 가게 마련이죠.
요즘 저녁 산책 후 샤워하는 재미로 삽니다.^^

모나리자 2023-06-13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스트> 내용을 읽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과학 문명이 발달했어도 전염병 바이러스를 퇴치하지 못한다는 것...
코로나는 아직 완결하지 못한채로 정말 이 시기에 배운 교훈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3-06-15 17:18   좋아요 1 | URL
오히려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새로운 감염병이 생기는 건 아이러니죠.
예. 아직도 의료진들은 코로나 환자들과 함께 보내죠. 잊지 말아야 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6-13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간은 모든 걸 파괴한다고
하던데...

말씀해 주신 대로, 지난 천일
동안 수고하신 노고들에 대한
기억만큼은 시간이 부수지 않
았으면 합니다.

페크pek0501 2023-06-15 17:20   좋아요 0 | URL
깊은 사유의 말씀을 새겨 듣겠습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할지라도 애쓰신 분들의 노고는 시간과 함께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맛있는 저녁 드십시오.^^

서니데이 2023-06-16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동산중개사는 자격증 소지자가 많지만, 그중 개업자가 많지 않다고 해요.
자격증으로 개업하지 않아도 그 분야에 대해 잘 알면 좋은 점도 많겠지요.
전문자격증 중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건 기회비용이 조금 큽니다.
페크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6-19 12:12   좋아요 1 | URL
뭐든 알아 두면 좋지요. 집 살 때 사기 당할 일도 없고,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수도 있고요.
자격증은 나중에 노후대책용으로 놔 둬도 뿌듯할 듯요.

저는 지금 선풍기를 애용하고 있어요. 노트북과 스탠드에서 열이 나는지 글 쓸 때면 더 더운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저녁 산책을 할 만한 날씨예요.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십시오.^^

감은빛 2023-06-19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자격증을 정말 많이 갖고 있는 분이 계세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직업을 한 5개 정도 가진 분인데, 재주가 정말 많은 분이지요.
그 분이 가진 자격증 중에서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들도 있더라구요.
그런데 자세히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격증을 가졌다고 해서 그 일에 대해 정말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수박 겉핥기 식으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내용들도 있더라구요.

2. 고아 수출국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아요.
일부러 정보를 조작해가며 아이들을 해외로 보낸 정황들이 뒤늦게 많이 발견되었다고 들었어요.
이런 과거를 제대로 밝히고 처벌할 수 있어야 정상적인 사회일텐데요.

3. 군대에 있을 때 이런 말들을 자주 했었죠.
내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상관은 멍청한데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이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최상의 상관은 똑똑한데 게으르고 악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보통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악행을 행하더라구요. 반대로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요.

페크pek0501 2023-06-20 12:43   좋아요 0 | URL
1번에 동의합니다. 저도 자격증을 두 개 갖고 있는데 그 분야를 잘 아는 건 아닌지라...ㅋ
자격증을 따고도 따로 더 공부를 해야 합니다.
2번.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으나 고아 수출국이란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붙는 건 선진국답지 않은 일이죠.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3번의 댓글을 보니 통찰력이 뛰어나신 것 같군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저를 배우게 하는 좋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작 : 최진영, 홈 스위트 홈(13~38쪽)



몇 년 전부터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지 않았다. 내가 소설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해마다 나온 작품집이 나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상 수상작인 ‘홈 스위트 홈’을 읽고 나서는 흡족했다.(함께 실린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수상작이 수작이라 흡족했다.) 이 정도라면 책을 구매해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매년 구매해 읽는다. 다 읽었다며 이 책을 내게 주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홈 스위트 홈’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진’이라는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40대 여자인 ‘나’는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수술과 항암 치료 종료 후 두 번이나 재발된다. 의사는 3차 재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나’는 시골의 폐가를 고쳐서 살겠다며 집을 수리하기 위해 공사를 한다. 암의 3차 재발 가능성이 있는데도 병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삶을 계획한 것이다. 공사는 무사히 끝난다. 이삿짐을 옮길 일만 남았다.



‘홈 스위트 홈’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을 뽑아 옮겨 놓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쓸 거야.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두라는 뜻이야. 내 몸에 어떤 튜브도 넣지 말고 나를 살리겠다고 나의 가슴을 짓누르지도 말란 뜻이야.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34쪽)  


⇨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이런 멋진 말을 생각해 내다니....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34~35쪽)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쓸 것이고,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것이라는 말에서 죽음을 대하는 화자의 자약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멋지다. 



공사를 도우며 집 안 곳곳에서 여러 물건을 주웠다. 플라스틱 헤어핀, 문구사 앞 뽑기 기계에서 뽑았을 듯한 통통 튀는 고무공, 닳은 지우개, 몽당연필, 발목에 앵두 자수가 있는 양말 한 짝, 노란 슬리퍼 한 짝, 스누피가 그려진 볼펜, 빨간색 레고 블록, 유리구슬, 티스푼, 손뜨개 인형, 열쇠고리, 베이지색 단추……. 그런 것을 발견하면 흙을 털어 내고 물로 깨끗이 씻어 작은 바구니에 모아 두었다. 누군가 그것을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까. 실례지만 혹시 이곳에서 손잡이에 꽃 모양 장식이 있는 티스푼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늘색 고무공을 찾지 못했습니까. 오래전 이곳에 살 때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네잎클로버 모양의 열쇠고리인데요, 제가 지금에야 그것을 찾는 이유는 …….(36~37쪽)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그들이 찾는 것을 기적처럼 꺼내어 건네주는 상상은 천국 같았다.(37쪽)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37쪽)


⇨ 한 편의 시 같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니까. 미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38쪽)


⇨ 인간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이 기억한 대로 살게 되었으니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미래를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예상이 적중했던 경험.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했던 경험.



아름다운 단편을 읽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나는 말기 암 환자의 사색을 전개한 것으로 읽었다. 이 소설이 나의 흥미를 끈 이유는 병과 죽음에 대해 의연한 자세를 갖는 사람을, 어떠한 난관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내가 우러러보기 때문이리라. 마치 죽음을 앞둔 이들이라면 이런 마음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을 제시한 소설 같았다. 이미 일어난 과거 일에 얽매이기보다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화자의 모습이 바람직해 보인다. 행복하게 살다 보면 병이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6-03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상문학상 매니아시군요!
저는 언제 봤는지 모르겠습니다.ㅠ
최윤의 회색 눈사람인가? 잘 기억도 안 나네요.
그거 이후로 읽은 기억이 없네요. ㅎㅎ
올핸 최진영이 탓군요. 보통 가을에 발표하지 않나요? 아닌가...
울나라 작가들 서사가 약한 편인데 근래엔 서사가 좋은 작가들이
좀 나오는 것 같긴하더라구요.
근데 문학은 잘 모르겠더군요.
막 욕하다가도 막상 세월이 흐른 후 다시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 왜 욕 했지? 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그건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성실함이 있으면 달리 생각해 보게되는 것 같아요.
반명 단명하는 작가는 그대로 욕 먹고 장렬히 사라지는 거죠
문학계도 알고 보면 살벌해요. 그죠? ㅋㅋ

페크pek0501 2023-06-04 13:30   좋아요 1 | URL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거의 갖고 있어요. 노년에 심심치 않겠어요.ㅋ 저도 최윤의 회색 눈사람,을 읽었네요.
이 책을 보니 23년 2월에 출간됐어요. 무슨 논란이 휩싸여 한 해 수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제 기억을 믿을 순 없지만...ㅋ
시간적 거리를 두고 읽고 나면 예전과 다른 느낌이 날 때가 있죠.
문학계가 인간적이진 않지요. 사실은 가장 인간적이어야 하는 영역인데 말이죠.ㅋㅋ^^

페넬로페 2023-06-03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집 꼭 챙겨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보기 시작했어요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페크pek0501 2023-06-04 13:3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예전엔 꼭 챙겨 봐야 하는 책으로 알았죠. 요즘은 젊은작가상 작품집이 괜찮은 것 같아요.
몇 년전 것을 읽었는데 다 괜찮았어요. 꼭 사 보게 되는 좋은 작품집이 나오면 좋겠어요.^^

서니데이 2023-06-04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은 오래전에도 표지 디자인이 비슷했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보는데도 낯설지 않네요.
처음 보는 작가의 글을 수상작으로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전에 읽었던 것과 비슷한 책들을 더 많이 사게 되는 것 같아서요.
페크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6-04 13:35   좋아요 1 | URL
중간에 표지가 바뀌어서 영 어색했던 적이 있어요. 몇 년 동안 표지가 얇아진 걸로 보아 비용 절감을 위해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요. 몇 년전부터 다시 예전 표지를 사용하는데 이게 더 나아요.
수상작으로 작가를 알게 되면 좋지요.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휴일, 편안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모나리자 2023-06-04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자가 말하는 ‘나의 천국‘이나 그밖의 내용들이 정말 단아하고 맑은 느낌이 나는군요.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면 암이라는 병이 찾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이렇게 담담한 마음으로 좋은 걸 떠올리며 살다보면 병이 다 물러갈 것 같아요.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6-06 15:51   좋아요 1 | URL
‘홈 스위트 홈‘을 읽어 보면 저자가 아름다운 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쓸 수 없는 글이라고 느껴집니다.
글은 곧 그 사람인 것 같아요.
모나리자 님도 날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05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얼마나 아끼시는지는, 책이 보존상태를 보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요, 페크님^^
2017년도 책도 그렇고 어쩌면 이렇게 모서리까지 깨끘하게...
저는 이번주 받은 책도 벌써 모서리가^^;;;

페크pek0501 2023-06-06 15:56   좋아요 0 | URL
하하~~ 남편이 젊었을 때 문학청년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문학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지만 독서광이랍니다.
작품집을 처음엔 제가 모으기 시작했는데 최근 몇 년간은 남편이 사오더라고요.
표지만 깨끗한 것일지 몰라요. 일단 제 손에 책이 들어오면 밑줄과 낙서가 많아져서 중고로 팔 수도 없답니다.
아마 얄라 님은 책을 가지고 다녀서 보존 상태가 그럴 것 같군요.ㅋ 좋은 날 보내세요.^^


희선 2023-06-05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이 두번이나 생기다니... 암을 빨리 찾으면 고치기는 해도 빨리 못 찾는 것도 있고 어떤 건 말기에 알기도 하네요 그럴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겠습니다 소설에 나온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려고 하는군요 그렇게 살다 병이 다 나으면 좋겠네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희선

페크pek0501 2023-06-06 15:59   좋아요 1 | URL
말기에 암을 발견하는 게 가장 불행한 것이겠죠. 병이 생기면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미 병이 생겼다는 사실보다 앞으로의 삶에 주목하는 화자를 우러러보게 됩니다.
저자가 쓴 글을 보니 낮에는 글을 쓰고 저녁엔 산책을 한대요. 이상적인 하루 같습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

댄스는 맨홀 2023-06-09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기대의 끈을 놓고 말았습니다.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만나면 반가워요. ㅎㅎ

페크pek0501 2023-06-11 12:45   좋아요 0 | URL
저도요. 그런데 다른 작품을 읽어 봤는데 괜찮은 작품이 많아 앞으로 작품집을 읽으려고 합니다.
좋은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23-06-09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수상작이 최진영 작가의 소설이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정말 예전에는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매년 사서 읽었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안 읽게 되어버렸네요.
요즘은 올해의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매년 읽어요.

제가 속한 지역의 의료사협에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해 알려주고 작성하는 시간을 만들더라구요.
계속 바빠서 참여는 못 했는데, 언젠가는 꼭 시간을 내서 해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23-06-11 12:47   좋아요 0 | URL
예.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 저는 좋았답니다. 공감도 가고요.
저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대신 읽곤 했어요.
저도 사전연명~ 작성에 대해 지인으로부터 듣고 꼭 해 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06-10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1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며칠 전 ‘애착하기보다 무심하기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고 그 칼럼이 신문에 실렸다. 그 칼럼의 초고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

제목 : 무심함의 장점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들에게 “숙제는 했니?”, “잠잘 시간이 됐으니 이 닦아야지.” 등등의 잔소리를 했다. 옆지기에게는 “퇴근이 왜 이리 늦어?” “모임이 너무 많은 것 아니야?” 등등의 잔소리를 했다. 아이들도 옆지기도 내 잔소리가 듣기 싫었으리라.  


내가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로 돈을 벌고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면서 잔소리가 없어졌다. 살림하랴, 아이들 키우랴, 돈 벌랴, 글 쓰랴, 책 읽으랴 얼마나 바빴던지 식구들에게 잔소리를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일이 많아져 머릿속이 복잡해지니 애들과 옆지기에게 저절로 무심해진 것이다. 그래서 나와 식구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말해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나와 옆지기와의 관계가 좋아졌다. 나의 무심함 덕분이었다. 나의 무심함은 생활 습관이 되어 애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 잔소리가 많아지기 일쑤다.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없지만 자기를 괴롭힌다고 여기고 피하고 싶어 한다면 사이가 나빠지고 만다. 누구나 자신을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요령이 필요한 일에 인내심이 부족해서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로 인한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 본인이다.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말했듯이 지혜의 절반은 인내에 있다. 

....................



이 초고를 다 버리고 제목도 고쳐서 다른 칼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초고를 썼기에 ‘애착하기보다 무심하기를’이라는 칼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초고가 없었으면 ‘애착하기보다 무심하기를’이라는 칼럼을 쓸 수 없었다. 그러니 버렸더라도 초고는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보통 나는 200자 원고지 10매를 쓰려 할 때 초고를 13~14매 정도 쓴다. 초고를 써 놓고 그다음에 퇴고를 하면서 불필요한 문장이나 문단을 없애서 10매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나무를 잘 가꾸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듯이, 더 나은 원고를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글을 잘라 내는 것이다. 가지치기를 하면서 ‘원고지 10매를 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신문사 측의 요구’에 따라 10매나 9.9매의 원고가 되도록 완성해 나간다.  


어느 책에서 보니 써야 할 원고 분량의 세 배가 되는 초고를 쓰고 나서 3분의 2의 글을 버리는 작가가 있다고 한다. 그 작가가 나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생각의 가지를 여러 방향으로 길게 뻗어 나가게 해서 초고를 많이 쓸수록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적은 분량의 초고보다 많은 분량의 초고가 좋은 글을 완성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과 열 개 중 빛깔이 고운 사과를 고르는 것보다 사과 서른 개 중 빛깔이 고운 사과를 고르는 게 유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초고를 쓸 땐 가지치기를 염두에 두고 생각나는 대로 글을 많이 쓰는 게 좋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한 가지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생각만 하지 말고 무조건 글을 쓰라는 것이다. 한 문단을 쓰고 나면 그다음 문단을 쓸 수 있게 된다. 글이 새 글을 부른다. 




이 글에 인용한 책....................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람을 얻는 지혜>


알아 두면 좋은 글 : 


지혜의 절반은 인내에 있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법칙은 참을 줄 아는 것이고, 지혜의 절반은 인내에 있다”라고 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종종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한다. 이는 자제력을 기르는 데 좋은 훈련이 된다. 평소 이 훈련을 자주 해 두어야 한다. 

자제력을 가지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기쁨인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 반대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참아내야 한다.(178쪽) - <사람을 얻는 지혜>에서.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5-28 2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려운 거 같습니다.
예전엔 알라딘에 올리는 글도 하루면 올렸는데
요즘엔 3, 4일씩 걸리고 어떤 건 묵혔다 올리고 그러고 있습니다.
명문을 쓸 것도 아닌데...ㅠ
짧은 글 쓰기가 어려운 건데 그걸 매번 하고 계시는군요.

인간관계는 무심한듯 시크하게란 말이 있기는 한데
그러다 놓쳐버리는 인간관계도 있더군요.
그렇다면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겠죠?
근데 가족은 정말 그래야하는 것 같긴해요.
욕하면서 닮는 관계이고 보면.ㅋ

페크pek0501 2023-05-29 10:27   좋아요 3 | URL
저도 예전에 글을 쓸 땐 퇴고를 몰랐어요. 그냥 한 번 더 읽어 보는 게 다였죠.
그래도 알라딘 서재는 언제든 본인이 글을 수정할 수 있어서 부담이 덜 돼요. 퇴고할 적마다 고칠 곳이 너무 많이 나와요. 작가들이 글을 묵혔다가 본다고 해요. 시간적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죠.

인간관계에서 특히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가족에겐 무심한 게 좋더라고요. 시어머니도 아들네에 무심할수록 집안이 평화롭죠. 친구나 지인과의 관계는 인연이 있으면 이어지고 없으면 저절로 끝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연을 잇고 싶다면 전화해서, 친구야 만나 밥 한번 먹자, 그러면 되지요. 안부 전화만 해도 되고요.
어제까지 비가 왔는데 오늘은 비가 오지 않고 시원해서 좋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3-05-28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혜의 절반은 인내에 있다‘ 정말 맞는 말 같습니다. 그리고 페크님처럼 잘쓴 글에는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는군요~!!
전 리뷰를 막(?) 쓰는데 반성합니다 ㅋ

페크pek0501 2023-05-29 10:30   좋아요 1 | URL
인간관계에선 특히 인내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일필휘지로 쓴 글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 번 고쳐서 간신히 글이 완성됩니다. 나의 역량 부족!
아니에요. 리뷰를 막 쓰시는 건 잘하시는 겁니다. 막 쓰면서 글이 늘거든요. 글은 글의 양에 비례해서 늘기도 하니까요. 저도 막 써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ㅋㅋ

서니데이 2023-05-28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잔소리 하는데는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지만, 듣는 사람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요.
때로는 적당한 거리와 무심함도 서로 편안한 거리를 확보해줄 수 있을 거예요.
오늘 페이퍼의 사진에서는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페크님,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5-29 10:32   좋아요 3 | URL
요즘은 제가 애들한테 잔소리를 듣습니다. 애들이 크니 오히려 애들이 보호자가 되는 것 같아요.
서로에게 편안한 거리가 분명히 있어요. 무조건 가깝다고 해서 좋은 사이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 저 사진은 제주도의 어느 펜션에 있는 테라스예요.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희선 2023-05-29 02: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리가 아주 가까운 것도 문제지만, 거리가 먼 것도 문제겠습니다 누구하고든 적당란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은 듯합니다 거의 머네요 가까이 하면 더 멀어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죠

이렇게 글을 쓰셔서 2023년에도 칼럼을 쓰게 되셨군요


희선

페크pek0501 2023-05-29 10:34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 적당한 거리를 갖는 게 중요한데 그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글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해 고생인 거죠. 그래도 취미라 생가하니 다행인 거죠. 글쓰기 취미도 없다면
사는 게 심심할 것 같습니다. 좋은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모나리자 2023-05-30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생각만 하다가는 글이 날아가지요.ㅎ 일단 써나가면 마인드맵을 펼치듯이 신기하게 글 양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소리내어 읽기를 반복하다보면 수정과 제거를 통해서 마음에 드는 글이 되는 것 같아요.
바빠서 잔소리할 틈이 없어지고 좋은 관계가 되는...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6월에도 좋은 글 누에고치 실을 잣는 것처럼 뽑으시기를.^^

페크pek0501 2023-05-31 16:08   좋아요 3 | URL
생각만 하고 글을 쓰지 않는 건 제 경험이에요. 긴 시간 동안 글 구상을 하고 마감 날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가 오면 부랴부랴 글을 썼어요.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듯요.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일단 쓰고 보는 거죠. 결국 버리더라도 말이죠. 소리내어 읽는 것, 좋은 방법입니다.
제게 일이 없고 살림만 하고 살았더라면 피곤한 스타일이 되었을지 몰라요.ㅋㅋ
6월에도 누에고치...ㅋ 저는 목표를 높게 잡지 않아요. 잘리지 않을 정도로 글을 쓰기, 가 목표입니다.
모나리자 님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응원합니다!!!

세실 2023-06-01 17: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저도 평생(?) 직장 다니느라 잔소리가 덜한 편이긴 합니다.
무심함도 있구요^^
초고 길게 쓰고 간결하게 정리하기. 제 글쓰기 방법이기도 합니다. 주절주절 써놓고 단문으로 만들기. ㅎㅎ
페크님에 감히 비할건 아니지만요.
인내심! 아이들 키우면서 많이 단련되긴 했지요.
이제 퇴근 1시간 전. 알라딘에서 놀려구요. ㅎㅎ

페크pek0501 2023-06-03 17:58   좋아요 1 | URL
직장인들도 바빠서 잔소리를 덜할 듯합니다. 저도 학생들 숙제 검사와 첨삭, 수업 준비 등으로 할 일이 줄 서 있어서 가족에게 무심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세실 님의 겸손!! 세실 님은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절주절 많이 써 놓고 썩은 나뭇가지 자르듯 미련 없이 글을 잘라 버려야죠.
결혼 생활로 인내심이 키워지지 않나요? ㅋ
바쁘신 가운데 틈틈이 노시기 바랍니다. 일만 하며 사는 건 좀 억울한 일입니당~~돈은 벌어서 좋지만요...ㅋ^^

서니데이 2023-06-01 2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오늘부터 6월 1일입니다.
즐거운 일 가득한 한 달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3-06-03 17:59   좋아요 1 | URL
어제는 운동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서 오늘은 집에서 노는 편안한 날입니다.
벌써 6월은 시작되었고요, 6월 역시 쏜살같이 갈 듯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즐거움이 가득한 6월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얄라알라 2023-06-05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새 글을 부른다!! !
이 새벽에 페크님 서재에서 얻어가는 명언!!
고맙습니다

글이 글을 부른다

페크pek0501 2023-06-06 16:05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 님은 늦게 주무시나 봅니다. 새벽 한 시가 넘는 시간엔 저는 꿈나라에 빠져 들어 있죠.
글이 글을 부른다, 는 표현이 더 세련되어 좋습니다. 처음에 저도 그렇게 썼다가 뜻이 빨리 전달되지 않을까 봐
새 글, 이라고 썼어요. 글이 글을 부른다, 가 더 좋네요. 다음부턴 이렇게 쓰는 걸로!!! ㅋㅋ 고맙습니다.^^

감은빛 2023-06-09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3배를 쓰고 버리는 사람이 바로 저예요. ㅠㅠ
글을 쓰다보면 왜 이렇게 쓰고 싶은 내용이 많은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다 써넣고 싶어서 마구 쓰는데,
막상 나중에 다시 읽으면 이건 이 정도로 쓸 내용은 아니겠구나 하고 깨닫고 다시 지웁니다.
아! 내 시간이여. 내 손가락 노동이여!

그런데 저 초고 너무 좋은데요! 그럼 이제 아래에 있는 칼럼을 읽으러 갈게요. ^^

페크pek0501 2023-06-11 12:51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도 3배수를 쓰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되지 않더라고요.ㅋㅋ
저도 좀 마구 써서 길게 쓰고 싶은데 저는 그게 안 됩니다. 하하~~
잘라 지우더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문장을 쓰는 시간을 길게 가진 것이므로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노동을 아까워하지 마시기를...
저 초고가 사실은 아까워서 언젠가 써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올린 겁니다. 여기 올려 놔야 글을 찾기 쉽거든요.
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길을 지나가다 눈에 띈, 화분 속에서 핀 장미.



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 일반이나 '딸 바보', '아들 바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사랑이 각별한 부모가 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녀에 대해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식을 품에 안고 어떤 일이든 다 해 주려는 '캥거루 맘'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학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챙겨 주고 관여하는 '헬리콥터 맘'이란 말까지 있다. 그러나 부모의 과잉보호는 의존적인 아이를 만드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 쉽다.



아들이 결혼한 경우엔 어머니가 아들의 결혼 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면, 고부간의 갈등이 심해져 가정불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고부 갈등으로 생긴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고부갈등 때문에 이혼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고부간 나쁘고 잘되는 집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며느리 또는 예비 며느리에게 시기나 질투를 느끼는 어머니라면 이 속담을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강한 애착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한 마을에 얼굴이 사나워 보이는 사십 대의 여자가 이사를 온다. 그녀가 살인죄로 감옥에 있다가 출소했다는 추문이 퍼진다. 그녀에게는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스무 살의 아들이 있다. 아들이 오면 그녀는 애틋한 몸짓으로 아들을 귀여워했다. 그녀는 맹렬한 열정으로 아들을 사랑했다. 아들이 젊은 여자를 쳐다보면 참을 수가 없었고, 아들이 젊은 여자에게 구애하는 상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런 그녀가 아들이 로살리아라는 예쁜 아가씨와 춤을 추는 것을 보자 분을 이기지 못해 신음을 토했다. 춤을 춘 이후 그녀의 아들은 로살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마침내 그녀는 로살리아의 앞을 막고 자기 아들과 무슨 짓을 했냐고 캐물었다. 로살리아가 길을 비키라고 해도 놓아주지 않았다. 로살리아는 그이가 결혼하자고 했다고, 그이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이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살인자의 아들을 거부하지 않고 결혼해 주는 걸 자랑으로 알 것이지 말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살리아의 말을 듣고 그녀는 분노의 괴성을 내지르며 로살리아를 덮쳐서는 어깨를 붙잡아 내리눌렀다. 로살리아는 몸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그녀는 가슴 속에서 단도를 꺼내 로살리아의 목에 칼을 꽂았다. 경찰관들이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으나 그녀의 눈은 승리감으로 반짝거렸다. 로살리아는 숨졌다.



소설 속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광적 집착이 독을 품게 하여 한 여자를 죽이고 만다. 어머니로서 아들의 행복을 빌어 주어야 마땅한데,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임으로써 오히려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본인은 감옥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 소설이 1874년에 출생한 영국 작가의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부모의 애정 결핍도 자녀의 마음을 병들게 해서 문제지만, 부모의 강한 애착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충분히 있다. 자녀에 대한 애착이 강해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에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무심타법(無心打法)이란 것이 있다. 야구를 할 때 타자가 자신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타격에 임하는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마음을 비움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부모도 자녀에 대해 마음을 비움으로써 부모 자식 간 긍정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부모가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계속 간섭하고 구속하면 자식들은 반발심이 생겨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분노의 감정을 조절해야 하듯, 지나친 사랑도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 화를 부르는 것을 막으려면 부모는 자식에 대해 애착하기보다 무심해져야 한다. 이것이 자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사랑의 지혜라 할 수 있다.




.......................................

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0525010004953






(서머싯 몸의 단편집)

















 

추신)

제 서재에 방문자 수가 

오늘 1991분,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이런 일이 있던데 오류인가요? 

아시는 분은 알려 주십시오. 

궁금한 건 못 참는 1인 올림.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5-25 2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적정한 거리가 있다고 해요. 둘 다 편안하게 느끼는 정도의 사이만큼의 거리겠지요.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안전거리를 넘어오면 서로 불편할 수 있을거예요.
그 거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건 하고 싶은데, 가끔씩 어렵다고 느낍니다.
장미가 예쁘게 피었네요.
페크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5-25 22:13   좋아요 2 | URL
맞아요. 가까운 사이라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해요. 저 역시 그 적정한 거리를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애들이 그러는데 제가 자식에게 좀 무심한 편이라고 해요. 아마도 제가 신경 쓸 딴 일이 많아서인 듯.
서니데이 님도 좋은 날들 보내세요.^^

서곡 2023-05-25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심타법!!! 기억해야겠습니다 장미화분 저리 뻗어나가네요 신기합니다 미니장미화분만 본적있는데요

페크pek0501 2023-05-26 09:02   좋아요 1 | URL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무심타법을 우연히 보게 돼서 써 먹었죠. 사전 없이는 글을 못 써요.ㅋㅋ
저 장미 화분을 보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두었어요. 재밌지 않습니까?

새파랑 2023-05-25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의 글을 읽다보면 좀 섬뜩한 경우가 많더라구요. 완전 임팩트 있는 ㅋ
과도한 집착은 항상 안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크pek0501 2023-05-26 09:04   좋아요 1 | URL
서머싯 몸의 광팬이에요. 제 서재에서 많이 언급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에요.
넘치는 것이 부족함과 같다는 말도 있잖아요. 과유불급~!!

페넬로페 2023-05-26 0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달리 장미가 눈에 많이 들어와요.
꽃도 유행을 타던데 장미를 많이 심는가 봅니다.
아들에 대한 집착은 만국공통인 것 같습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23-05-26 09:05   좋아요 2 | URL
5월은 장미의 계절.
만국공통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댄스는 맨홀 2023-05-26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분속에서 핀 장미 멋지네요. 어떤 사랑이든지, 정도를 넘어서면 무서워지네요. 저도 어제 방문자가 4,400명을 찍었는데 에러인지 궁금하네요.

페크pek0501 2023-05-26 14: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중용의 자세를 견지하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어제 4,400명이나 왔군요. 잘 모르지만 제 생각엔 시스템 오작동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들어오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새 글을 올리지 않은 날도 수백 명이 들어올 때가 있더라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서니데이 2023-05-26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내일 토요일은 부처님오신날인데, 올해부터 대체휴일이 되어서 5월 마지막 연휴가 될 거예요.
연휴 잘 보내시고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페크pek0501 2023-05-26 22:05   좋아요 1 | URL
오늘은 일찍 친정에 들러 반찬 갖다 드리고 발레 하고 왔더니 고단했는지 낮잠이 스르르... 30분가량 잔 듯해요.
서니데이 님도 주말 즐겁게 잘 보내세요. 저녁 때부터 덥지 않아 좋습니다.^^

희선 2023-05-27 0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나라 사람도 아들한테 집착하기도 하는군요 어느 나라 어머니나 비슷하다니... 다 그런 건 아니겠지요 부모 자식이어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한국 사람은 그걸 못하는 것 같은데 다른 나라 사람도 그렇군요

페크 님 연휴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3-05-27 19:37   좋아요 1 | URL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세계적인 현상 같아 흥미롭습니다.
오늘 비가 와서 시원했는데 외출해서는 좀 불편했답니다. 내일은 전국에 비가 온다는군요.
희선 님도 편안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은빛 2023-06-09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초고를 먼저 읽고 이 칼럼을 읽으니, 이래서 페크님께서 글을 잘 쓰는 분이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다 버리고 차분하게 새로 쓰셨네요.
만약 저였다면, 이미 써놓은 것이 아까워서 그러지 못 했을 것 같아요.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면 더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구요.
아마 제 부모님께서도 지금까지 수천번 서운함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딸들이 다 자라서 이제 더는 아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저도 엄청 서운하더라구요.

다 각자의 삶이고 각자의 몫이라고 애써 마음을 고쳐 봅니다.

페크pek0501 2023-06-11 12:57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정말 잘 쓰는 사람이면 한 번에 딱 썼겠죠.ㅋㅋ
저도 쓴 글 중 버릴 때 아까운 글은 저축을 해 놓지요. 언젠가 써 먹게 될지 모르니까요.
감은빛 님도 저축 폴더를 만드세요. 나중에 생각나면 꺼낼 쓸 수 있게 말이죠.

저도 아이들이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어린 아이들과 놓고 싶단 생각을 해요.
지금은 저보다 더 키가 커 버리고 오히려 저에게 잔소리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려서 내 손길을 필요로 했던
그 시절이 그립답니다. 아이들은 너무 빨리 커 버려요. 좋은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