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기 위함이라고. 글을 읽는 것은 남이 알고 있는 진실에 귀기울이기 위함이라고.

 

 

저마다 알고 있는 ‘무엇에 대한 진실’이란 게 있다.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실이 아닐 수가 있기도 하겠다. 자신이 잘못 알았다고 깨닫게 될 때가 있기도 하겠다. 하지만 혹시 그릇된 정보로 또는 그릇된 해석으로 진실을 잘못 아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무엇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진실’이 있다고 해도 ‘진실 찾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사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아니다. 이 땅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달리 말한다면 우리 모두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옮겨 보는 글이다. 

 

 


세상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면 나머지는 쉽사리 하찮아진다. 심지어 인간의 존엄과 생명마저 돈보다 순위에서 밀린다. 돈이 가치 사다리의 꼭대기에서 선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지경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가 아닐까. 수명이 다한 중고 선박을 구입해 과도하게 운항한 것이나 규정 이상으로 화물을 적재한 행위 모두 돈에 대한 탐욕이 시킨 일이다. 수백 명 학생에게는 자리를 지키라고 해놓고 자기 몸만 쏙 빠져 나온 선장은 비정규직이었다. 수백의 인명을 책임진 자리에마저 비정규직을 앉힌 경영 논리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참극이 빚어진 와중에도 해경 간부는 민간 잠수업체에게 돈벌이 기회를 만들어 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줄줄이 폭로되는 부정한 유착 고리들에 분노했지만, 그 비정상이 사실상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음을 뼈아프게 자각했다. 그렇게 돈 중심의 사회가 꽃다운 학생 수백 명을 희생시켰다.(68~69쪽)
- 박세길,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에서.

 

 

 


1983년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단일 주제로 무려 138일 총 435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어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출연해 사연을 호소했고 온 국민이 지켜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당시 그 기막힌 사연들을 TV로 지켜보던 나는 어떤 의문을 떠올렸다. 흔히 이산가족이라면 남북이 가로막혀 발생한 경우를 떠올린다. 그런데 당시 KBS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산가족은 대부분 남한 땅에서 헤어진 경우였다. 남북 사이에 발생한 이산가족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할 이유가 없었다. 북한 땅에 있는 이산가족이 방송을 보고 만나러 올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쟁 시기라지만 남한에 살던 주민들 사이에서 왜 그토록 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던 걸까. 이 의문은 한국 전쟁사를 공부하면서 풀렸다. 결국 남한 이산가족의 대부분은 미 공군기의 무차별 폭격이 만든 ‘난리통’에 생긴 것이다.(145~146쪽)
- 박세길,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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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7-09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책인데 페크님은 벌써 시작하셨군요.^^

페크pek0501 2015-07-09 13:01   좋아요 0 | URL
아무개 님, 오랜만입니다.
제가 원래 남들이 다 읽고 리뷰를 다 올리고 나서 책을 구입하는,
뒷북치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빨랐아요. 신문에서 신간 소개를 보자마자
이건 사야돼, 하면서 바로 구입했어요. 아마 제가 이 책에 대한 첫 글을 쓴 듯요. 이 책 살 때 리뷰도 백자평도 없더라고요.

괜찮은 책입니다. 아직 다 읽지 못했으니 아마 님이 구입해서 읽으면 저보다 빨리 읽으실 듯요. 저는 이달 안으로 다 읽는 것이 목표일 뿐이에요. 다른 책과 함께 읽고 있어요.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여름 보내시길...^^

stella.K 2015-07-0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있었군요!

맞아요. 저도 한국이 조그만 땅덩어리라고 하고 그중 남한이 반인데
어떻게 30년 가까이 못 만나고 있었을까 의문이 가더군요.
그런데 언니 글을 읽으니 새롭게 알았네요.

저는 요즘 <생각 수업>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장하성 편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생각 보다 심각하구나 싶어요.
그래서 선장도 일견 피해자일 수도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죠,
아, 정말 우리나라는....ㅠㅠ

페크pek0501 2015-07-09 16:30   좋아요 0 | URL
잘 지냈나요?

딱딱할 것 같지만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는 책이에요. 사라져가는 것들, 잊게 될지 모를 일들, 왜곡된 또는 은폐된 진실에 관한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한 글은 언제나 관심이 갑니다. 열한 가지 질문으로 이루어진 글이 마치 열한 권의 책을 읽듯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생각 수업>을 읽고 계셨군요. ^^
 

 

‘가트맨의 부부 감정 치유’라는 책에 대해 쓴 서평을 읽다가 내가 재밌게 읽은 부분을 옮겨 본다. <집 나간 책>이란 서평집에 있는 글이다.

 

 

...............
아내 : 아니, 나랑 상의도 없이 그따위 별장을 사다니, 당신이 인간이야?
남편 : 아니, 여보. 당신은 지금 들고 있는 명품 백 살 때 나랑 상의했어?
아내 : 별장이랑 명품 백이랑 비교가 돼?
남편 : 당신이 지금까지 산 명품을 다 합치면 그게 더 비쌀걸?(153쪽)

 

 

나쁜 예:여보, 입을 옷이 없잖아! 집구석에 있으면서 빨래도 안 하고, 뭐하는 거야!
좋은 예 : 여보, 오늘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팬티 바람으로 출근할게. 사랑해.(154쪽)

 

 

나쁜 예:내가 ‘처음처럼’을 사다달라고 했는데 ‘참이슬’을 사오면 어떡해? 당신, 글 읽을 줄 아는 거야?
좋은 예 : ‘처음처럼’을 더 좋아하지만, 오늘은 ‘참이슬’을 마실게. 하지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줘. 당신 아내가 ‘처음처럼’을 더 좋아한다는 거.(154쪽)

 

 

- 서민, <집 나간 책>에서.
...............

 

 

부부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말을 이렇게 예를 들어 보여 주니 좋네. 하지만 이런 글을 읽고도 잊어버리고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니 기억해 놓기로 한다.

 

 

저자가 신문에 사회 비판적인 글만 쓰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저자의 새로운 면을 본다고 할 것 같다. 


 
(참고로 저자 서민 님은 알라디너 마태우스 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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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6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의 감정이 달라져요. 그냥 가볍게 뱉은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기분 상할 수도 있어요.

페크pek0501 2015-07-07 09: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즘 그걸 실감합니다. 그래서 위의 글이 마음을 끌었나 봐요.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지요. 부부 사이에서만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말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솔직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 아니죠. 야구로 말하면 직구보다 변화구가 좋을 때가 있어요. ^^

마태우스 2015-07-1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페크언니가 제 책의 한 구절을 가지고 페이퍼를 쓰셨군요ㅠㅠ 부끄럽습니다 흑흑흑. 제가 당근 ㅗ내드렸어야 하는데, 정말 면목없네요. 저도 저렇게 써놓고는 아내한테 상처주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새삼 반성하게 되네요.

페크pek0501 2015-07-19 23:18   좋아요 0 | URL
ㅋㅋ 저자께서 납시셨네요. 안녕하세요?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제가 아는 분이 책을 내면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책을 살 수 있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인간은 완벽할 순 없으니 더러 실수도 하겠지요. 하지만 아내 분한테 사과를 하는 건 잊지 마시길요. 중요한 건 잘못했다는 부분이 아니라 사과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반성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님의 책에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에 대해 감탄할 때가 있다. 결혼을 해 본 적이 없는 작가가 부부 갈등이나 고부간의 갈등 또는 외도 등에 대해 잘 그려 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업에 실패해서 폐인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작가이면서도,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는 작가이면서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는 작가이면서도 그런 삶의 모습을 잘 그려 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체험하지 않았으면서도 온갖 것을 다 체험한 듯 인간의 사실적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 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시 작가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직접 만나 취재했을까? 노동의 현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공감하기도 하면서 삶의 체험이 쌓이게 했을까?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체험 부족’을 뛰어넘을 만큼 관찰력과 상상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것이겠다. 이런 게 바로 ‘작가적 재능’이리라.

 

 

글을 잘 쓰려면 둘 중에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삶의 체험이 많든지 작가적 재능(관찰력, 상상력, 통찰력 등)이 있든지.

 

 

이것도 저것도 없는 사람은 글쓰기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작가적 재능이 없고 삶의 체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글쓰기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은?

 

 

작가적 재능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므로 ‘독서하기’밖에 없을 것 같다. ‘남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로서의 독서를 하면 되지 않을까.

 

 

이 글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글.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264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누구든 노력하고 훈련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해낼 수 있다.
논리 글쓰기는 문학 글쓰기보다 재능의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조금 과장하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안도현처럼 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유시민만큼 에세이를 쓸 수는 있다.(59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위의 인용문을 이렇게 읽었다.

 

 

훌륭한 글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생각과 감정이 필요하다는 것. 생각과 감정은 삶과 연관이 있으므로 결국 삶으로 글을 쓴다는 것. 그러므로 올바르게 살아야 글을 잘 쓰게 된다는 것.

 

 

노력하면 시나 소설을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지만 에세이나 서평은 잘 쓸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쓰고 보니 머릿속 생각이 정리가 됩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나 서평이니까 희망을 가져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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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를 쓰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고 직접 만나서 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

페크pek0501 2015-07-04 16:19   좋아요 0 | URL
님은 시에 관심이 많은가 보군요. 저도 시를 쓰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흉내도 낼 수 없어서요. 시 쓰는 친구가 있는데 시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산문도 잘 써요. 문학적으로 써요.
시 쓰다가 소설가가 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는데 모든 글은 하나로 통한다, 가 될 것 같아요. 저도 시에 관심 있어서 한때 시집만 사서 읽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시는 전혀 못 써요. ㅋ

무플이 될 뻔했는데 첫 댓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우벅~

2015-07-05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6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6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평범하게 자랐고 지금도 (아마) 평범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굴곡 많은 인생이 아니었다는 점은, 파란 많은 인생이 아니었다는 점은 글쓰기에서 ‘약점’일 것이다. 사회에서 다양하게 일을 해 보지 못함도 글쓰기에서 ‘약점’일 것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함도 글쓰기에서 ‘약점’일 것이다. 내 글이 작가적이지 않은 이유이다. 어쩌면 나는 끝까지 글을 피상적으로밖에 쓸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끝까지 만족스런 글쓰기를 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요즘 내 머릿속을 빙빙 도는 생각. 내가 ‘글쓰기 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체험 부족’ 때문이라는 것. (책을 읽어서)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해서) 가슴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 어떻게 다를까? 예를 들면 ‘슬픔’에 대해서라면, 그리고 ‘분노’에 대해서라면 그것을 가슴으로 깊이 앓고 난 사람들만이 그것의 본질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 그저 책을 통해서 슬픔이나 분노를 접한 사람은 그것의 본질에 눈을 뜨지 못하게 된다는 것. 그 결과 앎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 이 둘의 차이가 글을 쓸 때 얼마나 다르게 나타날까 하는 생각.

 

 

 

그래서 ‘체험 부족’을 ‘책을 깊게 읽기’로 뛰어넘어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가 정답일 것 같아 공부해야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책을 한 권 읽을 적마다 그 내용이 내게 재미만 주는 게 아니라 살과 뼈와 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살과 뼈와 피가 되는 독서를 할 때 나와 많이 다른 타인과 소통할 수 있고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믿을 것이다. 믿을 수밖에 없다. 뾰족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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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7-0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신 생각입니다.
한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기.
저에게도 꼭 필요한 독서법입니다^^
내일 독서회에서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토론도서라 다시 읽는데 더 좋아집니다.^^

페크pek0501 2015-07-03 12:54   좋아요 0 | URL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는데, 어떤 분의 리뷰를 보고 저도 다시 들춰 보았더니 새롭게 느껴지는 글이 있었어요. 밑줄친 부분만 보는 데도 새로워서 놀랐지요.
역쉬~~ 책은 두 번 이상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오늘 날씨 좋네요. 맞바람 쳐서 집이 시원해요. 밖에 나가도 시원할까요?

2015-07-0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3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작가의 표절 논란

 

 

지난 6월 16일 이응준 작가는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 작가의 글(소설)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기고했다. 요즘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표절 논란’이 시작된 이유이다.

 

 

다음의 글이 그 문제의 글이다.

 

 

A.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에서.

 

 

B.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에서.

 

 

A와 B의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2015년 06월 16일에 게시됨.)에서 가져온 글이다. (‘우국’과 ‘전설’은 단편 소설이다. 이 글 말고도 표절 의혹이 일고 있는 작품이 몇 더 있다.)

 

 

다음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에서 가져온 글이다. (A와 C는 각각 번역자가 다르다.)

 

 

C.
두 사람 모두 실로 젊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라 이들의 사랑 행위는 매우 격렬하였는데, 이것은 밤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에서 돌아온 중위는 먼지투성이 군복을 벗다가 그 틈도 참지 못해, 집에 돌아온 그 자리에서 새댁의 가는 허리를 꺾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꼬도 곧잘 이에 응하였다. 첫날밤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될까말까 할 때, 레이꼬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끼오, 황요찬 옮김, ‘우국’에서.

 


A와 B의 글을 비교해 보면 문장은 물론이고 문장의 순서까지 같아서 누가 봐도 표절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표절한 게 맞다고 본다.) 표절이 맞다면 그 무엇이 신경숙 작가로 하여금 표절하게 만들었을까?

 

 

그에게 묻고 싶다.

 

 

1) 위의 문장이 작가로서 해서는 안 될 표절을 하고 싶을 만큼 탁월한 문장인가?
2) 이 부분이 그 소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인가?
3)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여러 문학상을 휩쓴 작가로서 이 정도의 문장을 자기 식으로 쓸 능력이 당신에겐 없었는가?
4) 이 세상에 얼마나 눈이 많은데 표절이 발각되지 않을 줄 알았는가?
5) 끝까지 유지되는 비밀이 있다고 믿었는가?
6)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 적이 한 번도 없는가?
7) 표절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는가?
8) ‘금각사’ 외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인가?
9)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 왜 이응준 작가를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지 않는가?
10) 이제 표절했음을 인정하고 반성 · 사과해서 그동안 안고 살았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

 

 

신 작가의 표절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작가들이 침묵했음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침묵하는 것은 자기 입장이 곤란해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아서, 막강한 문단 권력 때문에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런 문단을 향해, 그런 사회를 향해 어렵게 용기를 내어 혼자서 십자가를 진 이응준 작가가 앞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원하는 뜻으로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신경숙 작가도 정직한 태도로 용서를 빌고 이 시련을 잘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2. 글을 잘 쓰려면 어떤 삶인가가 중요

 

 

신경숙 작가는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 작품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일까?

 

 

성형 수술에도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표절에도 중독이 되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닐까? 성형 수술을 한 번 하고 나서 얼굴이 예뻐졌다고 느끼면 한 번 더 성형 수술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듯이, 한 번 표절해서 글이 나아졌다고 느끼면 한 번 더 표절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경우를 말함이다.

 

 

작가든 아니든 누구든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표절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글을 도둑질하듯 가져와서 제 것인 양 글을 쓰는 비양심적인 삶에서는 좋은 글을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격 없는 필자가 인격 있는 글을 쓸 수 없지 않겠는가? 옳지 않은 삶을 살면서 옳은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없지 않겠는가?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260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그렇다면 좋은 삶을 살면서 어떤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되는가?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기만 하면 최소한 못나지 않은 글은 쓸 수 있다. 여기에 나름의 개성을 입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면 훌륭한 글이 된다.(175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쉽게 쓰되 필자의 개성을 입혀라.’

 

 

말로는 쉬우나 이렇게 쓰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3. 글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이다

 

 

글감 선택으로 고민할 때가 있다. 무엇에 대해서 쓸까? 하고.

 

 

재료 선택은 잘했는데 완성된 음식으로선 실패한 느낌이 드는 음식이 있다. 재료 선택은 잘하지 못했는데 선택을 잘하지 못한 것 치고 완성된 음식으로선 괜찮은 음식이 있다. 이 둘의 차이.

 

 

글감 선택은 잘했는데 완결된 글로선 실패한 느낌이 드는 글이 있다. 글감 선택은 잘하지 못했는데 선택을 잘하지 못한 것 치고 완결된 글로선 괜찮은 글이 있다. 이 둘의 차이.

 

 

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러러볼 것은 시시한 글감을 가지고 잘 요리한 듯한 느낌의 글일 듯. 즉 무엇에 대하여 쓰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일 듯.

 

 

좋은 글감을 찾는 데에만 주력하다 보면 소재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기억해 둘만 하다.

 

 

 

 

 

 

 

4. 무슨 글이든 만들어 내는 재능이 필요하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린 지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면 대략 세 가지 경우일 가능성이 많다.

 

 

첫째, 다른 일에 열중하느라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
둘째, 열중하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경우.
셋째,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지만 슬럼프에 빠져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

 

 

어떤 경우가 되었든 ‘역시 난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다만 글쟁이가 되고 싶은 것이겠지.)

 

 

요즘 내가 글을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글을 자주 써서 올리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느낀 것 하나.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 요즘 새롭게 느낀 것이다.

 

 

글쟁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것.

 

 

무슨 글이든 만들어 내는 재능. 이게 꼭 필요한 것 같고, 사실 이 재능이 글쟁이에게는 제일 필요한 것 같다. 그러므로 글쟁이가 되고 싶다면 하루에 한 문단씩이라도 꼭 쓸 것.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글을 쓰고 있다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잘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글쟁이’란 말이 좋은 뜻을 담고 있지 않으나 나는 이 말을 좋아해서 즐겨 쓴다. 글쟁이의 뜻 :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글이 써지지 않더라도, 억지로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른 일이 있으니. 바로 독서이다. 난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지만 타고난 독서인인 것 같다.

 

 

(독서인(讀書人)의 뜻 : 책 읽기를 좋아하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독서인이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독서인이다. 여기서 나는 전자의 뜻으로 썼다. 

 

 

독서인으로서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인데 지금 읽어도 재밌다. 홍세화 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이다.

 

 

 

 

 

 


5. 글쓰기는 수학과 관련이 있을까?

 

 

글쓰기는 수학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글쓰기를 잘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할까? 수학을 잘하지 못해도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홍세화 저자의 글을 보자.

 

 

토론은 주로 글쓰기에 필요한 논리력, 추리력, 분석력, 정확성의 추구 등이 수학교육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길러진다는 주장과, 수학적인 차가운 논리가 오히려 창조적 감성이나 미적 상상력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 사이에 벌어진다. 반론자들은 하나의 좋은 예로 괴테를 내세운다. 독일의 으뜸가는 시인인 괴테가 수학에는 아주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토론에는 한 가지 흥미있는 재치응답이 있다. 반론자가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수학과 글쓰기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라치면, 상대방이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192~193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

 

 

하하~~. 재밌네.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반론을 편 사람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네.

내 생각엔, 글을 쓸 때에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수학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쓸 때엔.

 

 

글을 쓰면서 글쓰기는 수학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6.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건 마음가짐

 

 

세상을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프랑스엔 ‘비아제’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내가 죽고 나면 내 집을 줄 테니 내가 죽을 때까지 내게 매달 생활비로 얼마씩 달라는 것’이 되겠다. 121살까지 생존하여 세계에서 나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잔 칼맹’이라는 할머니의 사연이 웃게 만든다.

 

 

121살까지 살았던 그녀.

 

 

그녀가 80여 세일 때 그녀보다 (당연히) 훨씬 젊은 공증인이 그녀와 비아제 계약을 맺었다. 할머니에게 매달 꼬박꼬박 연금을 지급했던 그 남자가 먼저 사망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155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그 남자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할머니가 당연히 먼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 할머니보다 먼저 죽었다는 얘기다.

 

 

잔 칼맹 부인은 그 비아제 계약에 관해 코멘트를 요청받고, “사람이 살다 보면 손해볼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세계 최고령이 될 사람과 비아제 계약을 맺었으니 그 남자는 말 그대로 재수없는 사람이었다.(155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저자의 말대로 그 남자는 정말 재수 없는 사람이었을까? 할머니보다 먼저 죽어서 집을 차지하는 행운을 얻지 못했으니 불행한 사람일까? 아니면, 사는 동안 노후 대책에 대한 걱정 없이 편히 살았으니, 또는 집을 팔아서 멋진 자동차를 살 생각으로 희망에 부풀어 살았으니 행복한 사람일까?

 

 

만약 그가 “왜 이렇게 할머니가 빨리 죽지 않는 거야?”라고 불평하며 살았다면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겠고, “할머니가 언제 죽든 상관없어. 난 노후 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니 참 다행이야.”라고 만족하며 살았다면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겠다.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

 

 

마음가짐.

 

 

그가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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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6-20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절자에게 묻는 10가지 질문은 정말 꼼짝을 못하게 만드는군요.
신 신작가뿐 아니라 적지않은 작가들이 표절을 하는 거 보면
탐나는 건 내것으로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과 같은 건가 봅니다.
예전에 시나리오 배울 때 강사님이 늘 그런 말씀하셨죠.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구.
글에는 감성과 논리가 함께 있으면 좋은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아, 글쓰기는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요.ㅠ

페크pek0501 2015-06-21 15:02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첫 댓글에 감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 혹시 아시는지요?
표절 건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 누구나 어느 한쪽으론 나사가 풀려 있다는 거예요. 모든 면에서 훌륭하긴 힘들다는 거죠. 세종대왕도 잔인한 구석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도 인간미 없는 독한 구석이 있었죠. 그게 인간이라고 봅니다. 신경숙 작가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글쓰기, 어려운 것에 동의함. 오죽하면 10일만에 글을 올렸겠습니까? 캭캭~~

qualia 2015-06-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 작가(?)한테 이곳 알라딘은 비판 무풍지대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선 유시민 작가도 ‘벼라별’ 비난을 다 얻어먹더군요.
인간성 측면에서요.
과연 유시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수 혹은 수구 쪽에서의 비난과 음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 혹은 민주 진영 쪽에서 나오는 극렬한 비난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고종석 작가도 유시민 비난의 선봉에 있을 겁니다.
글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시민과 고종석 두 분이
서로 적대관계라는 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고종석 작가가 약간 더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합니다만...

페크pek0501 2015-06-21 15: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어 보면 정말 인간성이 의심되는 것 있어요. 나쁜 글의 예를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뽑아 왔거든요. 그것도 실명을 거론하면서요. 그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얼마나 불쾌하겠어요.
좋은 인품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저자가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셈이죠. 누군가에게 모욕을 주는 책을 쓰다니...

이곳 알라딘에선 주로 책 이야기이니까 유시민 저자의 좋은 글을 발췌, 소개할 뿐이지 그렇다고 팬이 많다고 볼 순 없을 것 같아요. 님의 말씀처럼 그래도 이곳이 책 이야기하는 곳이라 비판 무풍지대일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책보다 더 좋은 게 <청춘의 독서>였어요. 독후감을 잘 썼어요. 무슨 정치인이 이렇게 글을 잘 쓰나, 하고 감탄했죠. 이젠 아예 글쟁이로 발 벗고 나섰다고 하네요. 잘 쓴 글에 대해선 우러러봅니다. 글만요...

댓글, 감사합니다.

cyrus 2015-06-2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글 한 편씩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작가들 중에는 다작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을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작가 체호프는 무명 시절부터 잡지에 글을 투고할 정도로 젊은 나이에도 제법 글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평가가 젊은 체호프의 다작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글 쓰는 재능은 있으나 필요 이상 다작을 하는 바람에 읽을 만한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투입에 비해 산출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죠. 이 일을 계기로 체호프는 글을 쓰되, 좀 신중하게 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그의 실력은 인정받았고 단편소설의 대가에 오르게 되었어요. 체호프는 몇 백 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남겼는데, 여기서 우리가 읽는 단편소설은 고작 수 십 편에 불과합니다. 체호프 말고도 다작에 능숙했던 다른 작가들도 그래요. 독자는 작가가 남긴 모든 작품들을 무조건 좋다고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오랫동안 읽혀지고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는 반면에, 나머지 작품들은 독자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대표작에 비하면 인정을 못 받습니다. 한 사람이 매일 글을 써서 그 수가 100편 이상 되어도 100편 이상의 글이 모두 잘 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페크pek0501 2015-06-21 15:10   좋아요 0 | URL
하하~~ 시루스 님이 저에게 위안을 주려는 댓글입니까? 위안은 일단~ 감사하게 접수합니당~~.
그러나 어쩌나요. ㅋ 님의 댓글에선 이미 제가 주장하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걸요. 체호프가 단편 소설의 대가가 된 것은 그렇게 다작을 하면서 보내던 세월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다작을 하던 시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체호프는 없었을 거라고 봐요.

님의 말씀이 맞아요. 다작을 해도 수작이 되는 건 몇 편에 불과해요. 그러나 몇 편의 수작을 건지기 위해선 다작을 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제가 위의 글에서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잘 쓰는 사람이다, 라고 한 것은 알라딘 서재를 둘러보니 정말 그랬기 때문이에요. 자주 글을 올리고 방문자 수가 많은 알라디너의 글을 보니 잘 쓰는 게 맞더라고요. (님도 포함됩니다.) 아마 통계를 내도 그럴 것 같아요. 글을 백 편 쓴 사람과 천 편 쓴 사람의 역량을 비교하면 제 생각이 맞을 듯해요.
저는 오히려 님의 댓글을 보니 체호프처럼 다작을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으음~~ 다짐해야징...다작 다작!!)

시루스 님은 이 댓글로 하루에 한 문단 쓰기를 실천하셨습니다. 이 댓글도 좋은 글이에요. 페이퍼로 쓰셔야 할 글 같은데요...ㅋㅋ

cyrus 2015-06-22 20:52   좋아요 0 | URL
페크님의 답글을 읽은 뒤에 제가 쓴 댓글을 읽어 보니 제가 생각 정리를 안 하고 막 썼네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5-06-23 10:50   좋아요 0 | URL
ㅋㅋ 무슨 말씀을요...
시루스 님의 댓글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글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신중하게 써라. 여러 글을 쓸 생각 말고 하나의 글에 집중해서 깊게 파라. 이런 말이죠. 좋은 말씀입니다.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누구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의견 차이라고 보겠습니다.

독서로 말하면, 님은 정독이 좋다고 하고 있고 저는 다독이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 권을 읽기보다 한 권을 잡고 제대로 깊게 읽어라. - 이것 중요하죠.
(저도 요즘 다독보단 정독을 하고 싶어요. 다독보다 정독으로 얻는 게 훨씬 많은 것 같거든요.)

오늘 아침 신문 펼치니 신경숙 작가 인터뷰 기사 실렸네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자주 뵙기를 ...


AgalmA 2015-06-2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관련해서 글을 썼습니다.
pek0501님에 대한 반론이라기 보다 언급된 작가들의 표현에 대한 몇 가지 의문사항입니다.

http://blog.aladin.co.kr/durepos/7606618

페크pek0501 2015-06-21 15: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글에 관심 가져 주셔서 우선 감사하단 말씀드립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1. 괴테가 수학 과목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저는 이해했어요. 맞습니까? 학창 시절에 수학 성적이 나빴던 괴테가 글은 잘 썼다, 는 것이죠.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수학 성적’과 ‘수학적 사고’의 차이에요. 이 둘은 같은 의미가 아니죠. 홍세화 저자는 괴테의 수학 성적을 언급한 것 같고 글쓰기에 필요한 것은 수학으로 길러지는 수학적 사고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괴테는 학창시절에 수학을 못했어도 나이 들어서는 수학적 사고가 발달할 수 있겠죠. 삶에서 길러지는 것도 있으니까요. 또는 독서를 통해서 길러지기도 하겠죠. 정확히 말하면 괴테는 수학 과목은 잘하지 못했지만 훗날 나이 들어서는(책을 쓸 때는) 수학적 사고가 발달해 있었다, 고 볼 수 있죠. (학교를 다닌 적인 없는 할머니가 돈 계산을 잘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괴테가 수학을 못했어도 글은 잘 썼다고 말할 거예요. 글쓰기에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니 수학 과목을 열심히 해 두는 게 좋다, 라고도 말할 거예요.

2 .저는 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입으로만 부르지 말고 온몸으로 불러 봐. 그러면 훨씬 잘 불러져.” 제가 표절한 걸까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 있다. 토끼가 깡충깡충 뛰었다. 이런 것도 이미 우리 뇌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말들입니다. 어쩔 수 없지요. ‘온몸으로’는 김수영 시인 전에 누군가가 먼저 썼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요.
유시민 저자가 문장 배열까지 똑같다고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는 님의 말씀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3. 홍세화 저자는 괴테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해야 한다? : 님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괴테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쓸 땐 생각나지 않았으니 저의 실수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는 많은 정보 중 어떤 것은 그냥 삭제합니다. 주제에 벗어나거나 주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면 ‘썼어야 했어.’라고 아쉬워하게 될 때가 있죠.

4. 제가 위에 쓴 페이퍼의 제목이 ‘단상’이에요.
(단상의 뜻 :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제가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라는 것이죠. 요렇게 저는 빠져 나갑니다. 하하~~
이것저것 따져야한다면 결함 없는 글이나 책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우리는 말도 자유롭게 하지 못할 거예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가 맞으니까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오류가 많다고 합니다.

5. 님의 글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전문성이 느껴지는 유익한 글입니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오늘 공기가 맑네요. 좋은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5-06-2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쓰기가 수학과 유사하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글쓰기에는 체계화시키는 능력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능력, 앞뒤 매락을 끌어가서 마무리짓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고, 머리에 아무리 좋은 착상이 있다는 것과 적절하게 표현해낸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느끼면서 어릴 때 좌절감을 느끼곤 했었거든요. (제가 글쟁이가 되고팠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

그러나 그 이전에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묻어난다는 말씀이 더 와닿아요.
언니의 글을 늘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삶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으셔서 좋아요. ^^

페크pek0501 2015-06-21 15:19   좋아요 0 | URL
마고 님의 말씀 모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지막 멘트는 최고의 찬사네요. 늘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잊을 뻔한 한마디! 반가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