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상집에 모인 손님들은 서로 잘 알지 못한다. 때로 손님들은 옆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그처럼 글쓰기를 통해 각기 떨어져 있던 체험들은 한자리에 모이고 관계를 갖게 된다. 글 쓰는 사람은 고인故人일까, 상주喪主일까.(171쪽)

 

글에 하나의 주제와 관련한 체험들을 모이게 하라.

 

 

 

 

 

2.
이삿짐센터 직원이 혼자서 피아노를 들어 올리는 것은 피아노의 구조와 무게중심 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즉 그는 급소를 아는 것이다. 그 급소가 글쓰기에서는 ‘디테일’이다. 정확히 말해 글쓰기는 수많은 디테일 가운데 바로 급소가 되는 디테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 어떤 디테일도 급소 아닌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다.(175쪽)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디테일 묘사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디테일로 작품을 살려 내는 글을 써라.

 

 

 

 

 

3.
밭을 갈 때는 멀리 보이는 큰 나무를 향해 나아간다고 한다. 똑바로 갈기 위해 발밑을 살피다 보면 밭고랑은 삐뚤빼뚤해진다. 옷감을 끊을 때도 천은 보지 말고 맞은편에서 잡고 있는 사람을 보아야 한다. 글쓰기 또한 눈길을 멀리 두고 나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리멸렬해지기 십상이다.(172쪽)

 

어릴 때 하던 잡기 놀이. 반드시 한 발을 고정시켜야 하지, 두 발 다 떨어지면 무효가 된다. 컴퍼스로 원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침 끝이 움직이면 원은 망가지게 마련이다. 글쓰기 또한 아무리 먼 데로 나아가더라도 애초의 중심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끝말잇기 놀이’ '수정 모드 타이핑‘ ’다른 샘 파기‘가 된다.(176쪽)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의 끈을 놓치지 말라.

 

 

 

 

 

4.
글쓰기의 마지막은 「따오기」 노래처럼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에 독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다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초콜릿을 선물할 때 껍질을 까서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아무도 이미 씹어 놓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선물은 포장을 벗기기 직전까지이다.(180쪽)

 

다 알려 주지 말고 의미가 감추어 있게 써라.

 

 

 

 

 

5.
스케이팅하는 동작은 글쓰기의 모습을 정확히 보여 준다. 스케이트를 타고 나아갈 때는 한 다리를 삐딱하게 뻗고, 다음 다리도 삐딱하게 뻗어 주어야 한다. (바로 앞으로 내밀어서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멈추어야 할 때는 다리를 완전히 반대쪽으로 꺾어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아름다운 글쓰기의 끝맺음 방식도 이와 같지 않을까.(180쪽)

 

예상 밖의 결말을 보여 줘라.

 

 

 

 

 

 

 

 

 

 

 

 

 

 

이성복 저, <고백의 형식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4-11-06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자병법에서 장수의 자질로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 5가지를 듭니다. 언뜻 보기에 (저는 자세히 봐도) 인과 엄은 대립적/상보적이죠. pek0501 님의 글, 2번과 3번도 그런 관계처럼 보이네요. 어느 글에서는 명품은 기본에 충실한다고 어느 글에서는 디테일이 명품을 가른다고 합니다. 아마도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디테일에도 충실한 것이 명품이겠죠.

페크pek0501 2014-11-06 22:22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런 것 같습니다. 어렵네요. ^^

oren 2014-11-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의 글을 읽으니 저는 몽테뉴가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평가하면서, `이 두 부류의 중간 것들은(이것이 가장 보통이지만) 모든 것을 벌여 놓는다. 그들은 우리가 씹을 것을 대신 씹어 준다.`고 말했던 대목이 금방 떠오르네요. 밭을 갈 때 먼 곳을 응시하라는 말 또한 인상적인 표현인데, 몽테뉴도 그와 무척이나 쏙 빼닮은 문장을 남겨 놓았더라구요.(제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처음 읽었던 1983년에도 그 문장만큼은 독서노트에 옮겨 놓는 걸 잊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 * *

풋내기들

그것은 마치 무도회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 귀족들의 점잖은 행세를 모방할 수 없으니까, 무도 학교를 세워 가면서 배운 위험한 뜀박질이나 익살스런 동작의 색다른 잡술을 가지고 장기를 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리고 정식 무도회에서 부인들이 천연스런 걸음으로 순진한 자세와 타고난 우아미를 보여 주기만 해도 되는 것을, 몸뚱이를 비꼬아 뒤흔드는 무도회에서는 그녀들의 자태를 값싸게 보여 준다. 나도 역시 본 일이지만, 탁월한 배우들은 일상적인 옷을 입고 화장기 없는 용모로도 그들이 예술이 줄 수 있는 모든 쾌감을 주는 데 반해서, 풋내기들은 공부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므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옷을 괴상하게 입고는 우리를 웃기려고 동작을 거꾸로도 하고, 얼굴을 망측하게 찌푸리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관념은 《아에네이스》와 《광분하는 롤랑》을 비교해 보면 어느 경우보다도 더 잘 이해가 된다. 전자는 확고하게 날개를 활짝 펴서 높게 날며, 늘 자기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후자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아 앉듯,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뛰어 돌아다니며, 자기 날개에 자신이 없어 짧은 거리밖에는 날지 못하고, 숨과 힘이 지탱 못할까 봐 밭이랑마다 내려서 쉰다.

그는 단거리 질주를 시도한다. (베르길리우스)


페크pek0501 2014-11-06 22:27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을 올려 주시는 님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됩니다.

저도 장거리 질주는 자신이 없어서 단거리 질주를 하고 있는데
그나마 이거라도 잘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

반갑습니다. ^^

단발머리 2014-11-07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서재에서 항상 `글쓰기`에 대한 좋은 가르침을 얻고 갑니다. 인용해주신 이성복님의 글도 너무 좋네요.

그처럼 처음에는 나의 의도 혹은 착상에서 글을 시작하지만, 이내 글이 가는 대로 내맡기고, 다만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을 막아 줄 뿐이다.(168쪽)

실제로 글을 쓰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많거든요. 원래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놀라곤 합니다. 나를 좀 더 내맡겨야겠군요.^^

페크pek0501 2014-11-07 14:54   좋아요 0 | URL
하하~~
일방적인 배움이란 없는 것 같아요. 서로 배우는 것이죠.
저도 님에게서 많이 배운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가을 보내세요. ^^
 

 

 

1.
2014년 10월 29일

 

서재에 단상을 써 왔는데 이제 백 번째로 쓸 차례가 되었다. 그동안 99편의 단상을 썼다니, 그렇게 많이 썼다니 놀랍다. 처음 단상을 쓴 것이 2009년 12월 2일이었으니 만 5년이 되어 간다. 5년 동안 꾸준히 글을 써 왔다는 것, 내가 나를 칭찬하고 싶다.

 

나, 참 성실하네. 지구력 있네. 그런데 나에게 없는 것은 투지. (사전에 따르면) 투지란 ‘싸우고자 하는 굳센 마음’이다. 내겐 무엇과 싸워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 굳센 마음 같은 것도 없다. 그냥 글쓰기를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2.
2014년 10월 0일

 

글을 잘 쓰려면 우선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분노가 있다는 건 그만큼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을, 세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가 끓어오를 만큼 세상에 대해 쓸 게 많아야 하는 게 ‘작가의 기본자세’라는 것. 이것은 박완선 작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어느 저서에서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게 만든 게 그 전쟁이었다는 것이겠다. 만약 전쟁이 나지 않아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한을 품지 않은 사람은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한’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의 깊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한때 나는 글을 잘 쓰려면 결혼도 해 보고 이혼도 해 보고 실직도 당해 봐야 하는 건지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런 걸 경험한 사람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 불행과 고통 속에서 얼마나 생각이 깊고 얼마나 생각이 많겠는가. 그래서 마음이 아픈 경험이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은 글을 잘 쓰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여겼다.

 

지금은? 지금은 아픈 경험 없이도 깊은 사유로 글을 잘 쓴 책이 있다는 걸 알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3.
2014년 10월 00일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동갑하고만 친구일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나이가 중요할까? 나보다 열 살 아래도, 나보다 열 살 위도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나이에서 보면 마흔 살만 넘으면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십 대는 인생을 알기 시작하는 나이 대인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젊은 이십 대의 사람과는 친구를 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젊은 친구는 젊은 친구대로 좋은 것이다.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젊은이들의 글을 보면서 그들의 젊은 정신을 흡수하는 건 얼마나 좋은가.  

 

시간은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관대해지게 만드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친구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선 관대해지지 않는다. 내게 호의적인 사람만 친구로 지내고 싶다. 요즘 편한 것만 찾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도 편한 만남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인 듯. 이건 건강하고도 관련이 있는 듯. 체력이 점점 약해지니깐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싫어지는 듯.

 

 

 

 

 

 

4.
2014년 10월 00일

 

나보다 나이가 적은 알라디너를 알고 지낼 수 있는 건 알라딘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알라딘이 좋다.

 

만약 알라딘이 책 이야기만 하는 공간이라면 내가 알라딘을 덜 좋아할 뻔했다. 다양한 정보를 담은 노 님의 글,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구 님의 글. 이런 글들이 없고 책 이야기만 있다면 알라딘은 덜 매력적이다.

 

나 역시 책 이야기만 하고 싶진 않다. 물론 책 이야기가 재밌긴 하지만 가끔 딴 얘기를 하고 싶다.

 

 

 

 

 

 

5.
2014년 10월 00일

 

결국 인생에서 부부애만이 남는다고 본다. 나중에 부모는 다 돌아가시게 되고, 나중에 자식들은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다 분가하게 될 것이고.

 

지인 중 한 분이 성격 차이로 남편과 이혼하려 했는데 남편이 이상 증세가 보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이혼을 접고 말았다. 큰 병 걸릴지도 모를 남편을 버릴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어떻게 자기 혼자 편히 살 수 있느냐는 거다. 지인의 남편이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현재 그가 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그게 ‘부부’라고 본다. 버리고 싶을 만큼 열정 없고 버리고 싶을 만큼 밉다가도 병에 걸려 누워 있다고 하면 달려가게 만드는 것. 그게 ‘부부’라고 본다. 그 끈끈한 정이 부부애이다. 연애 시작할 때 느끼는 뜨거운 사랑보다 더 신뢰할 만한 사랑, 그 이름은 부부애이다.

 

 

 

 

 

 

6.
2014년 10월 29일
 
가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었던가? 난 왜 그걸 이제야 알았지? 가을을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왜 가을이 좋은지 알 것 같다. 요즘 길에서 본 가을 나무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한다.

 

바다보다 산이 더 좋다는 사람을 보면 뭔가 수준이 있어 보였는데,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산의 매력을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러므로 내가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사람의 수준에 못 미친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 난 이제야 그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바다보다 산이 좋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까. 나무들 때문이다.

 

나무들의 그 풍부한 표정을 어찌 바다에 비하랴. 여러 고운 빛깔로 물든 가을 나무들 하나하나가 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다 한 편의 시처럼 읽혀졌다. 그 나무들을 내 눈으로 사진을 찍듯 유심히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늦여름만큼이나 멋진 건 가을이었다. 

 

 

 

 

 

 

 

 

 

 

 

 

 

 

 

...................................................
단상 백 번째라서 특별한 글을 쓰고 싶었으나(그래서 며칠 동안 고민했으나)...

 
맘대로 되지 않아(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은 법이라)...

 
그냥 요렇게 올립니다...


다음엔 단상(101)이 이어지겠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4-10-2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인생에서 부부애만이 남는다고 본다. ; 바라건데, `안해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뜨는` 나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페크pek0501 2014-10-31 12:32   좋아요 0 | URL
하하~~ 저랑 같은 생각이십니다. 저도 옆지기보다 제가 먼저 세상을 뜨길 바라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이기주의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

stella.K 2014-10-29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100번째 단상!!!
분노는 저의 은사님이 하신 말씀이기도 하죠.
언젠가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의 DJ가 오프닝 멘트로, 미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추리작가들한테 설문조사를 했대요. 왜 추리 작가가 됐냐고.
다 비슷비슷한 대답을 했는데 그 중 2명의 작가가 세상을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해주기 위해 자신은 작가가 됐다고 하더랍니다.
저는 요즘 글을 쓰는데 있어서 상대가 확실해야 하는 것 같고,
그 상대에게 그가 결코 모를 또 다른 이면을 알려주기 위해
글을 써야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봐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보는 것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살 때가 많잖아요.
결국 작가는 진실을 위해 펜을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저 보다 연배가 높은 지인이 계셔 좋은 것 같습니다.
누구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4-10-31 12:33   좋아요 0 | URL
축하, 감사하게 접수합니다.
저도 저보다 젊은 어떤 분이 계셔서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구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ㅋㅋ

세실 2014-10-3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대한 분노가 없는 저는 그래서 글쓰기를 못하는구나.
아무래도 다양한 경험이 도움은 되겠지요. 치열하게 살았던가하는.....
분노가 있으면 대신 화병은 생기겠죠?

저에게도 띠동갑 어린 후배가 있답니다. 저보다 책도 많이 읽었고, 여행도 많이 다녀서 배울점이 참 많아요. 박웅현은 딸도 멘토라고 하더라구요^^

옆지기는 나이들수록 애틋해집니다. 연민의 정이랄까? 그러면 잘 산다고 하네요.

어제 담양 소쇄원 다녀왔어요. 가을이 한창입니다. 봄의 소쇄원보다 지금의 소쇄원이 훨씬 아름다워요^^ 출장을 여행처럼 다녀왔어요.

페크pek0501 2014-10-31 12:39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러니 우린 세상에 대한 분노가 없다는 것에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자고요. 화병 생기니까요.

저는 저보다 두 살 많은 친구가 네 명이나 됩니다. 저는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간 반면 그들은 재수를 했거든요. 저보다 몇 살 적은 친구들보 셋은 됩니다. 그런데 전혀 동생 같지 않아요. 오히려 저보다 노숙해서 언니 같아요. 헤헤~~

부부 사이에 연민의 정이 생기는 건 아이들의 어머니, 아이들의 아버지라서 그런 것 같아요. 같이 늙어가면서 생기는 것도 있고요...

출장을 여행처럼... 참 좋습니다.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이런 날은 무엇을 해야 잘 보냈다는 소문이 날지...
 

 

 

1.
날씨가 변했다. 갑자기 추워졌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겠지. 공기의 뜨거움이 차가움으로 변했다는 것은.

 

 

곧 연말이 오고 해가 바뀌고 나는 나이 한 살 더 먹겠지. 시간과 나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에 초연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가장 싸우기 어려운 상대는 시간.

 

 

시간 앞에선 무력하다. 앞으로 점점 더 무력해짐을 느낄 것이다.

 

 

 

 

 

 

2.
가끔 과거의 시간을 더듬으며 아이들이 어릴 때를 생각하곤 한다. 언젠가 찍은 사진 속의 두 딸을 보니 조그만 게 귀엽다. 저런 때가 있었구나.

 

 

몸만 조그만 게 아니라 생각도 조그마하던 그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큰애는 어릴 때 아빠하고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되지?”라고 묻는 아이에게 “내가 먼저 아빠랑 결혼했는데?”라고 했더니 잠자코 있었다. 그때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혼은 형제끼리 하는 걸로 알았던 것. 아버지가 어머니의 오빠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오빠가 없는 애는 나중에 커서 누구랑 결혼하느냐, 하는 게 내 고민이었다. 어떤 친구는 오빠가 둘, 여동생이 둘이라서 짝이 맞았는데, 어떤 친구는 오빠 한 명에 여동생이 셋이어서 오빠의 수가 모자라 의문이 났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혼자서 궁리했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3.
작은애는 이제 나보다 키가 더 큰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눈엔 어린애 같다. 얼굴이 작아서인지 아직도 귀여운 초등학생의 얼굴 같다. 유모차를 탔던 어릴 때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작은애가 중학교 일 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

나(엄마) : 아침에 너처럼 불고기를 먹고 학교에 가는 애가 어딨니? 엄마를 잘 만난 거지. 친구들이 알면 부러워하겠다.

 

작은애 : 불고기 갖고 뭘 그래. 내 친구 중엔 정말 부러운 애가 있어.

 

나(엄마) : 걔는 뭘 먹고 오는데?

 

(나는 불고기보다 더 좋은 것, 이를 테면 갈비찜 같은 걸 먹고 학교 오는 친구가 있는 줄 알았다.)

 

작은애 : 아침에 라면 먹고 와. 걔를 애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

 

 

끼룩~~.

 

 

잠시 잊었다. 아이가 중학생이라는 것을. 어른의 잣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중학생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불고기보다 더 좋은 건 라면. 그러니 라면을 먹는 건 환상적인 아침 식사가 되겠다. 

 

 

내가 졌다. ㅋ

 

 

....................
(…) 세상은 무한한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그것을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

 

토머스 트러헌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28쪽.      
....................

 

 

현재의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없는 건 ‘(시간적으로) 지금, (공간적으로) 여기에’ 우리가 있기 때문일 듯. 만약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갖게 될 듯. 그래서 지나간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4.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을까? 모든 인간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실제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한다.

 

 

....................
모든 인간의 최종 목표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이 실제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3쪽.
....................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타인에게서도 알 수 있고 나에게서도 알 수 있다. 상대의 어떤 말에서, 상대의 어떤 행동에서 놀라곤 한다. 상대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나의 어떤 말에서, 나의 어떤 행동에서 놀라곤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5.
이런 친구가 있었다. 자기 블로그에 누군가가 악성 댓글을 썼는데, 그 악성 댓글을 쓴 사람이 자기 친구 누구 같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낱말이 그 댓글에 있었기 때문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꼭 그가 쓴 댓글처럼 여겨지더란다. 그의 댓글인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의심이 생겼다면 친구 관계는 끝장이 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관계를 유지하는 게 과연 좋을까 생각했다. 

 

 

....................
나를 비난하는 자는 실로 나의 좋은 벗이다.
비방을 당할 때, 나는 미움도 좋음도 간직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는 태어난 적 없는 곳에서 나온
사랑과 겸손의 힘이 자란다.

 

영가 현각 <증도가>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55쪽.      
....................
 

 

친구란 소중한 존재이니 스트레스를 받아도 친구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하겠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시간도 부족한데 굳이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시간을 할애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런데 조금만 수틀리면 인간관계를 끊어 버리는 태도도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겠다.  

 
  
‘밟으시오. 나를 밟으시오. 나는 밟힐수록 더 잘 자라는 잡초가 되리라.’ 하는 정신을 갖는다면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도 포용할 수 있으려나. 

 

 

 

 

 

 

6.
사랑에 대한 말.

 

 

....................
사랑은 확실하다. 거기에는 오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오류는 사랑의 부족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윌리엄 로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50~151쪽.
....................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오류가 생기는 게 사랑의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결혼을 반대해서 자식을 불행에 빠지게 만드는 부모가 있다. 이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식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부모라고 해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에는 지혜로운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랑도 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사랑 앞에선 오히려 판단이 흐려지고 어리석어지는 게 인간이다, 라고.

 

 

중요한 건 사랑과 지혜의 적절한 조화가 아닐까. 지혜를 놓치지 않아야 좋은 사랑이 될 것 같다.

 

 

....................
성 베르나르는 말했다. “사랑 없는 배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우쭐해질 것이다. 그리고 배움 없는 사랑이란? 길을 잃을 것이다.”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49쪽.
....................

 

 

 

 

 

 

7.
나는 자신만만하지 않다. 이것 다행인가?

 

 

출근할 땐 차가 막히는 일이 없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런데 월요일에 출근하는 곳과 화요일에 출근하는 곳이 서로 정반대의 방향이라서 헷갈린다. 만약 월요일에, 화요일에 출근하는 방향으로 탔다간 큰일이다. ‘나, 제대로 탄 것 맞나?’ 나는 수첩을 들춰 보고 확인하곤 한다. 워낙 바보 같은 짓을 잘해서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다.

 

 

친구들을 만나면 느끼는 건데, 사람들 참 똑똑하다. 아는 게 어떻게 그리 많은가? 내가 모르는 걸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만나면서 많이 배운다. 난 그들에 비해 정보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판단력도 부족한 것 같다.

 

 

....................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현재 깨어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이해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왕자이든 목동이든 간에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만만해한다.

 

<장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77쪽.
....................

 

 

스스로에 대해 자신만만해 하지 않으니 나는 아주 어리석은 건 아니네.

 

 

 

 

 

 

8.
누군가와 삼십 분만 얘기 나누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그에 대한 완전한 그림이 그려지진 않겠지만 스케치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하다. 얘기하면서 알게 되는 ‘그가 무엇을 보는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것이므로.

 

 

....................
신이 어떻게 보이는가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플라톤주의자 존 스미스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50쪽.      
....................

 

 

종교에 대한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종교에 대한 시각만 그렇겠는가. ‘행복에 대한 시각’, ‘직업에 대한 시각’ 등 무엇을 보는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알라디너들의 글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보는 시각이 글에서 다 드러나므로.

 

 

무엇을 보는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 페크

 

 

 

 

 

 

9.

종교마다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여러 가지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현명한 사람은 다양한 경전의 본질을 수용하고 모든 종교에서 좋은 점만을 본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334쪽.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남의 종교를 무시하고 자기의 종교만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알고 남의 종교에서 좋은 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
자기 종파의 영광을 높일 목적으로 자신의 종파에 전적으로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종파만을 공경하고 다른 종파를 비방하는 사람은 사실상 그런 행위로 인해 자신의 종파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그러므로 화합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경건함의 법칙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훌륭하다.

 

아소카의 칙령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334~335쪽.        
....................

 

 

 

 

 

 

10.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그런데 멀다 보니 자주 가 보게 되질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절을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절을 찾아 몇 군데 가 보았다. 내 눈이 까다로운 것인지, 문제는 가는 절마다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며칠 전, 드디어 맘에 드는 절을 찾았다. 푸른 나무들과 단풍이 든 나무들이 있는 숲속에 절이 있었다. 그 절을 보며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읽은 듯 감탄했다. 내가 찾으려는 절이 바로 이런 절이야,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절다운 면모를 갖춘 절이어서 좋았다. 나무가 많고 산책로가 있어서 좋았다. 운치가 있어 보여 좋았다. 한적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 좋았다. 앞으로 자주 가서 몸의 건강을 위해 산책로를 걷고, 마음의 건강을 위해 마음을 닦아야겠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그렇다고 내가 종교심이 강한 사람이라든지 열심히 절하며 기도하는 사람인 건 아니다.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좋아서 절을 찾을 뿐이다. 밖에서 벤치에 앉아 절을 바라보다가 오기만 해도 좋다. 욕심을 버리고 근심을 덜 수 있는 곳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절에서 오면서 다음의 글을 생각했다.

 

 

....................
배 한 척이 강을 지나가고 있는데 사람이 없는 빈 배가 와서 충돌하려 한다고 가정해보라. 아무리 성마른 사람이라도 버럭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에 누군가 타고 있다면, 다가오지 말하고 소리칠 것이다. 만일 소리쳐도 듣지 못하고 여러 번 고함을 지르게 만든다면 결국 욕설을 퍼붓게 될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에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화를 내게 된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경우 그 배가 비어있었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채로 삶을 살아간다면 누가 그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겠는가?

 

<장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90쪽.
....................

 

 

비어있는 채로 삶을 살아간다면 누가 그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겠는가?

 

 

내가 비어 있는 채로 삶을 살아가기를 감히 바랄 순 없다. 하지만 절에 다니면 최소한 욕심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11.
어떤 책을 괜히 읽었다고 후회한 적이 있다. 오래전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제2의 성>이란 책이다. 두 권으로 되어 있고 두 권을 합해 천 쪽이 넘는 분량이니 그때 읽느라 많은 시간을 들였겠다. 그런데 내가 그 책에서 배운 것이라곤 다음과 같은 결론뿐이다.

 

 

....................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다.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하다.

 

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문제이듯이,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제2의 성>에서.
....................

 

 

그나마 이것도 정리해 놓은 노트가 있어서 알았고, 이것 이외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천 쪽 이상의 글을 읽었는데도 말이다. 헛수고를 했단 생각이 들어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냥 요약해 놓은 책을 보는 게 현명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두꺼운 책을 읽느라 소비한 시간이 아깝다는 얘기다.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양가 있는 다른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얘기다. (이 책이 훌륭한 저작이라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요즘도 나는 바보처럼 영양가가 없을지도 모를 책을 들여다본다. 왜냐하면 이것저것 많은 책을 읽어 봐야 영양가 있는 책 하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내 머릿속의 저장고 어딘가에 그 내용이 보관되어 있을 거라는 것을 이젠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을 고를 때 현명하기보단 차라리 어리석은 게 나을 수 있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적은 시간을 들여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을 찾자는 자세는 좋은 자세가 아니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기대가 컸는데 실망하게 되는 책이 있고, 시시할 줄 알았는데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책이 있다. 그러니 읽기 전에 책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책 열 권을 읽고 단 한 권만이 좋을 수 있다. 책 한 권에서 단 한 문장만이 좋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원래 독서란 모래알에서 보석을 찾는 일이지 보석에서 모래알을 걸러 내는 일이 아니므로.

 

 

(<영원의 철학>이란 책도 모래알에서 보석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들여다봤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0-2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3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10-2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고기보다 라면이 더 좋은거군요. 중학생 눈에는....ㅎㅎ
스트레스 받는 친구라면 안 만나는편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호전되더라구요.
친구도 세월에 따라 미운정 고운정이 드는 듯합니다.
전 카톨릭을 사랑하지만, 불교도 좋아합니다. 혜민스님 짱~~~~ ㅋㅋ

페크pek0501 2014-10-23 14:03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짱~~~~~~

아, 그래요.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이해하지 못할 인간이란 없단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친구로 지내는 것도 좋을 듯요.
그런데 제가 요즘 편한 것만 찾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도 편한 만남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거 젊지 않다는 증거죠?)

나도 세실 님처럼 너그러워져야 할 텐데... ^^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을 뽑으라면 이 글을 뽑겠다.

 

 

....................
“넌 그럼 평생 그냥 이렇게 살 거야?”
“모르지. 남들 사는 대로 확 전향해버릴까 싶을 때가 가끔 있기도 한데. 그보다는 명랑사회 건설의 암세포 취급을 당할 때가 수천 배는 많거든.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바로 그 악명 높은 30대 백수 독신남이잖냐. 그렇지만 천하에 한심한 놈인 양 꼬나보는 시선 앞에서는 목 놓아 외치고 싶지. ‘흥, 삐뚤어질 테다!’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 112쪽.
....................

 

 

 

‘흥, 삐뚤어질 테다!’

 

 

하하하~~~. 이렇게 나랑 똑같은 심리가 작동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신기하다.

 

 

내가 그렇다. 서재에 글을 올리고 나서 나중에 공감 수를 봤더니 0이다.

 

 

그런 경우에,

‘아, 왜 0이지? 그렇게 후진 글인가? 다음부턴 잘 써야지.’ 하고 마음먹는 게 아니라

 

 

‘0이란 말이지? 계속 0이어라. 누가 공감을 누르기만 해 봐라. 난 앞으로도 쭉 후진 글을 올릴 테다. 더 더 후진 글을 올릴 테다’ 하고 마음먹게 된다.

 

 

왜 그럴까, 하고 지금 생각해 봤더니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더 후진 글을 올릴 테다.’ 하고 마음먹어야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앞으로도 쭉 후진 글을 올릴 테다.’

 

 

‘뻔뻔해질 테다.’

 

 

하하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0-16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10-17 12:4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보실 줄 몰랐어요. 영광입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세실 2014-10-16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페크님 귀여우세요~~~~
삐뚤어지는거 보고 싶어서 공감 안누를까 하다가 눌러요.
공감 백개 눌러주고 싶어라^^
전 공감0, 댓글0 이면 스스로 공감 눌러요. 비로그인 상태에서 가능해요. ㅎ

페크pek0501 2014-10-17 12:41   좋아요 0 | URL
호호호~~~ 나, 비뚤어질 뻔했네...
스스로 누르신다고 말씀하시다니... 아, 이 솔직함이여!!!!!!!!!!!
여러 번 느낀 건데 세실 님은 매력적인 데가 있어요. 인기맨이죠?

저는 완전범죄 스탈이라서 절대로 글 올린 PC는 안 건드려요.
공감을 누른다면 스마트폰으로 누르겠어요. 이게 완전범죄죠... ㅋ

그런데 말이죠. 저는 무슨 똥고집인지 공감 수가 낮으면 이렇게 생각 드는 거예요.
`흥, 공감 수가 낮다고 내가 누를 줄 알아?`
하하하~~~ 이 무슨 사춘기 소녀의 삐딱선일까요? 호호~~

세실 2014-10-17 16:17   좋아요 0 | URL
음 이번주 월욜부터 어제까지 매일 매일 약속이 있었어요~~~
신랑이 일찍 들어와서 아이 밥 먹여 학원 보냈어요.
더구나 화욜엔 소주 1병이랑 맥주 마시고 집에와서 확인까지 했다는..ㅎ
이 정도면 인기쟁이?
고3 엄마가 아니어요....ㅜㅜ
오늘은 인근 절로 혜민스님 만나러 갑니다^^ 기대 만땅입니다.

저는 글도 계속 수정하고, 댓글 몇개 달렸나 하루에도 몇번씩 확인한답니다.ㅎ

페크pek0501 2014-10-17 14:39   좋아요 0 | URL

어휴... 인기쟁이로 님을 임명합니다요...
그러니 님은 얼마나 바쁘시겠습니까? 매일 출근에다 인기맨으로서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니...
저는 체력 부족으로 일주일에 한 번만 친구 만남을 허용합니다요. 두 번이면 한 번은 다음주로 미루는 스타일... ㅋㅋ 안 그러면 제가 할일을 다 못해요.

아, 혜민 스님의 글 좋았어요. 저도 오늘 절에 갑니다. 가까운 곳, 새로 찾은 절이 있어서요.
고3엄마 흉내 좀 내 보려고요. 으음~~ 다른 엄마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인터넷으로 찾았는데 절의 풍경이 멋져요. 이것저것 살펴보고 맘에 들어 자주 가게 되는 곳이었으면 해요. 멋진 산책도 하고 오겠습니다. 나무가 많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은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색도 하고...
오는 길에 세실 님 만나서 차 한잔 하면 금상첨화인데... 언젠가는 그런 날 오리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
 

 

 

1. 사고 싶은 책 세 권

 

 

신문은 매일 흥밋거리를 선사하지만 특히 토요일의 신문은 신간을 안내하는 지면이 있어 더욱 그렇다. 신문을 보고 이달에 사고 싶은 책이 세 권 생겼다. 사실 사고 싶은 책이 어디 세 권뿐이겠는가. 더 많았지만 ‘구입 욕망’을 절제하는 힘을 발휘하여 세 권으로 줄인 것이다.

 

 

....................
<고백의 형식들> : 이성복 산문집. 1976년에서 2014년 사이에 씌어진 산문 21편을 담고 있다. () 이 책의 여러 산문들이 품고 있는 사유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물음들은 냉정한 자기 성찰과 세상 모든 ‘입이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고백들로 그를 이끈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 : 마음산책에서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세 번째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약 2년간 「씨네21」에 발표했던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연재글 19편과, 2011년 웹진 '민연'에 발표했던 글 2편, 2013년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발표했던 글 1편을 묶어 27편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일리치가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모색하던 격변의 사상 전환기에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그의 저서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는 저서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세기의 사상가가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이 어둠 속에 별처럼 빛난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

 

 

 

 

 

 

 

이성복 저, <고백의 형식들> : 시를 잘 쓰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산문집을 본다면 팬이 될 것 같다. 나와 친한 글쟁이 친구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는 저자이기에 꼭 한 번은 산문집을 사 보려고 했는데 마침 신간이 나와 이번에 구입하기로 했다.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저자를 존경하게 될 것 같네.

 

 

 

 

 

 

 

 

 

 

 

 

신형철 저,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이미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팬이 되어 버려 주목하고 있는 저자인데 이번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네.

 

 

 

 

 

 

 

 

 

 

 

 

 

이반 일리치 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학교 없는 사회>를 쓴 저자의 또 다른 저작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각성을 촉구할지 기대되네.

 

 

 

 

 

 

 

 

책 책 책! 책에 대한 내 열정은 끝이 나지 않는구나. 

 

 

 

 

 

 


 
2. 행복의 조건은 열정

 

 

행복의 조건 중 하나는 ‘열정’이 아닐까. 무엇에 대해서든 열정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정을 애착이라고 해도 좋겠다. 자신의 마음을 끌리게 하고 애정을 갖게 하고 열중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무엇이란 낚시일 수 있고 바둑일 수 있고 야구일 수 있고 등산일 수 있고 책일 수도 있다.

 

 

내 삶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정신을 가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책에 대한 열정을 가졌다는 점이다. 만약 내 삶에서 책을 뺀다면 내 행복의 반 이상이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책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한 건 1992년 가을이었다. 그러니까 22년 전부터 책에 미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하면 1992년은 내 삶에서 참 뜻깊은 해이다. 결혼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던 내가 삶의 변화를 찾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해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해에 나는 두 개의 일을 찾았다. 모 잡지사에서 ‘자유기고가’라는 자리를 얻어 일하게 되었고, 모 기관에서 운영하는 소설반에 등록하여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글 써서 돈 버는 일이 생긴 것도 좋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가 직접 강의하는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 게 더 좋아서 설렘과 흥분을 느꼈다. 집에서 애 키우면서 갇혀 지내다가 친정에 애를 맡기고 소설 강의를 들으러 갈 땐 마치 내 몸에 날개라도 달린 듯 신이 났다.

 

 

소설 강의를 들으러 다니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이 생겼고 그 열정이 책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아마 내 생애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때가 그때(1992년~1993년)가 되리라. 한 달에 열 권 정도 읽으며 지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많이 읽진 못하리라. 모 잡지사에 한 달에 한 번만 인터뷰 기사를 써서 보내면 되었고, 일주일에 두 번만 소설 강의를 들으러 가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책을 읽은 적도 있다. 그때 책을 읽고 나서 줄거리와 인상 깊은 구절을 빼곡히 적어 놓은 노트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 노트는 책에 대한 그때의 내 열정을 증명한다. 

 

 

아, 책에 대한 그때의 내 열정을 증명해 주는 게 또 있다. 그때 소설 강의를 함께 듣던 사람이 나를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말해 주었는데, 그 세 단어 중 하나가 ‘열정’이었던 것. 나를 ‘열정, 순수, 명료’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열정은 물론 책에 대한 열정을 말함이다. 남에게도 내가 꽤 열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그런데 내가 순수하고 명료했나? 이건 무엇을 말함인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순수’는 맘에 들지 않는다. 나이 값을 못한다는 것 같아서. ‘명료’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단순하다는 것 같아서. ‘열정’은 맘에 든다. ㅋ)

 

 

1992년에 만약 내가 남자와 연애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까지 열정을 갖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과의 연애는 2~3년이면 뜨거움이 식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람과의 연애가 아니라 책과의 연애였기에 지금까지 22년 동안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쭉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그 열정의 지속을 말해 준다.

 

 

 

 

 

 

 

 

3.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

 

 

매달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사고 싶은 책이 있는 한,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울 때가 있다.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대사.

 

 

....................
“아, 참 기억나요……?” 그녀가 덧붙였다. “……자동차 운전에 관해서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 말이에요.”
“그럼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지요? ()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위대한 개츠비>, 249쪽.
....................

 

 

 

 

 

 

 

 

 

 

 

 

 

 

 

 

 

 

 

 

 

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이다. - 페크

 

 

지금 가을이니 머지않아 겨울이 오겠다. 겨울이 되면 걱정되는 게 있다. 얼음이 언 길이 미끄러워서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넘어지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우리 시어머니가 지난겨울에 그런 사고가 나서 두 달 넘게 입원하신 적이 있다.) 만약 그 사고로 골반의 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게 되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가 없게 되어 내가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어쩔 것인가? 그래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 한 방이면 모든 행복은 끝이 나는 것.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

 


그래서 나는 책을 구입할 생각으로 행복한 지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4-10-0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2년이 pek님에게 변곡점이 되었군요. 저도 잠시 기억을 되살려보았습니다. 난 1992년에 무얼 했더라...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네요.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하던.
22년동안 지속된 열정이라면 그건 앞으로도 계속 갈 거라 봐도 되는거겠지요.
<고백의 형식들>이라는 제목이 좋아요. 우리가 여기 와서 끄적거리는 모든 글도 사실 일종의 고백이 아닐까 싶고요. 그러니까 이것도 고백의 한 형식이 아닐까.
오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4-10-09 17:58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꾸벅~~

가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가을이 1992년 가을이에요. 지금의 나를 만든 가을이었죠. 독서 노트와 소설 강의 시간에 쓸 노트를 사러 다녔죠. 신세계에 입문하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전업주부가 새 세계에 대한 달콤함을 맛보던 시간이었어요.만약 그 변곡점이 없었다면 지금쯤 따분하게 살고 있을지 몰라요.

22년 동안 그래 왔으니 앞으로 22년 동안도 책과 함께 살 수 있으리라 믿어요.
책에 대한 열정이 식는 날이 온다면 그땐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그런 날이 오진 않으리라 생각해요.
쓰고 보니 진짜 저의 고백이네요.ㅋㅋ 쓰면서 정리가 됐어요.

세실 2014-10-1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발생할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기 - 세실. ㅎㅎ
읽고 싶은 책이 있는한 저도 행복합니다.
`열정, 순수, 명료` 좋은걸요^^ 님이 더 좋아집니다.

오늘 우리도서관 인문학서평쓰기 모임을 했는데요. 토론도서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였어요.
엄마들 반응이 매우 뜨거웠답니다. 감동+행복!! 제가 추천한 책이었거든요^^
이럴때 막 보람을 느끼고 열정이 생겨요^^

페크pek0501 2014-10-11 15:31   좋아요 0 | URL
책은 도끼다, 저도 그거 재밌게 읽었습니다. 문학이 뭔지 복습한 느낌이랄까요.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고요. 뭔가 배울 수 있는 책은 늘 흥미로워요.

보람과 열정이 늘 님과 함께하시길...

아름다운 가을 보내시고 계신가요?

노이에자이트 2014-10-10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이란 그 밑바탕이 의외로 약해서 무너지기 쉬움을 불행이 닥치면서 알게 된다고 하는데...정말 그래요.특히 안정된 수입이 갑자기 끊기면 가정 불화가 생기는 경우가 많죠.가정의 화목함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죠.

페크pek0501 2014-10-11 15:34   좋아요 0 | URL
행복이란 게 그런가 봐요. 영원한 행복이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무서워지죠.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안정된 수입이 끊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이렇게 후진 글에도 댓글을 쓰러 달려 오신 두 분이 있어서
오늘 행복합니다.
저의 후진 글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