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개는 물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않기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큰 개가 달려들어 깜짝 놀라며 무서워한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튀어 나온 개였다. 끈으로 묶여 있지 않아 무서워하는 내게 개 주인이 말했다. “이 개는 물지 않아요.”

 

 

내가 M. L의 집에 들어서자 그 집 개가 내게로 달려나와 짖어댄다. 내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자 M. L이 말한다. “뭘 그렇게 겁을 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걸 자네도 잘 알잖아.” 내 대답 : “나야 알지. 하지만 개도 그걸 알까?”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32쪽.

 

 

"이 개는 물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개 주인을 보면 답답하다. 내가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데 ‘개가 물지 않음’이 중요할까?

 

 

예를 들어 본다. 내가 숲 속을 지나가야만 하는데 밤이라서 무서움에 떨고 있다. 그럴 때 누군가가 말해 준다. “이 숲 속에선 귀신이 나오지 않아요.”라고. 이 말을 들었다고 해서 내가 무섭지 않을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무서울 것이다. 여기서 귀신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지 않는 개’라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람을 한 번도 물지 않던 개도 물 수 있다는 걸 티브이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어느 동네에서 누군가가 개에 물려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개 주인이 말하기를, 여태껏 한 번도 사람을 문 적이 없는 개라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개에 물려 본 경험이 있다. 그 개는 친구네 개였는데 나를 물기 전까지 한 번도 사람을 물어 본 적이 없는 개였다.

 

 

개 주인들은 알까?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런데 개를 끈으로 묶어 다니면 개가 불편하려나?)

 

 

 

 

 

 

 

2. 보이는 대로 보지 않기 : 며칠 전, 비가 곱게 내렸다. 비 오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 풍경 속에서 나무들이 비에 흠뻑 젖어 갈증을 풀고 푸름을 빛내는 듯했다. 그러나 나무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랴. 비의 첫 모금만 좋았을 뿐, 계속 비에 젖는 건 싫었을지도 모를 일.

 

 

나무들이 서로를 미워하며 저마다 공간과 빛을 독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숲 속에 들어가면 강제수용소 같은 증오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집 정원의 모습이 달라진다. 어떤 나무들은 사라지고 어떤 나무들은 엄청난 크기로 자란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18~19쪽.

 

 

우리 집에서 창밖으로 숲을 볼 수 있다. 내 눈엔 숲 속의 나무들이 이웃 나무들과 다정하게 모여 있는 것만 같은데, 이웃 나무들과 소곤소곤 정다운 얘기라도 나누고 있는 것만 같은데 그게 아니란 말이네. 내가 보는 숲과 다르다는 게 놀랍다. 나무들도 경쟁하다니.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라는 수전 손택의 말이 떠오른다. 이 말에 따르면 우리가 숲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숲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시작되겠다.

 

 

인간은 뭐든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게 문제다. 자기 맘대로 해석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가 생기고 싸움이 생기기도 한다.

 

 

 

 

 

 

 

3. 마음을 안다고 확신하지 않기 : 오늘은 늦잠을 자도 되는 휴일인데 새벽에 눈이 떠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이사를 하느라 서재에 소홀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방문자 수가 많아서 내가 성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아니다. 그래서가 아니다. 방문자 수를 보니깐 새 글이 없어 허탕치고 돌아간 분들의 수인 것만 같아서 이 글을 쓴다. 아니다. 단순히 서재 관리 차원에서 이 글을 쓰는 건지도. 결과적으로 다 맞는 얘기다. 여러 이유가 있겠다. 인간이 하는 행동의 이유가 어찌 하나뿐이겠는가.

 

 

오늘 휴일이 아니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새벽에 눈이 떠지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방문자 수가 많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성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허탕치고 돌아간 분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서재를 관리할 생각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 맞는 얘기라는 것이다.

 

 

지금 또 하나 생각났다. 이사로 인한 집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하기 싫어서 글을 쓰는 것. 이렇게 말하는 게 가장 진실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집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거리로 글쓰기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일이다. 진짜 이유는 그러니까 가장 큰 이유는 내일 밝혀질지도 모른다. 혹은 그 이유가 며칠 뒤인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불현듯 뇌리를 스칠지도 모른다. 내 경험에 따르면 어떤 일의 진실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밝혀질 때가 많다.

 

 

진실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진실만을 말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남의 마음의 진실을 헤아려 아는 게 가능할까?

 

 

 

 

 

 

 

4. 같다고 생각하지 않기 : 최근에 바보짓을 했다. 이 얘기를 글로 쓰면 멍청한 페크가 될 것 같아서 쓰지 않기로 한다. 친구에겐 전화로 말해 버렸다. “난, 왜 이렇게 바보 같니?”라고 말하면서.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 “그래도 바보짓을 해 놓고 바보짓을 한 것도 모르는 것보단 바보짓을 했다는 걸 아는 게 낫잖아. 그건 바보가 아니라는 거지.”

 

 

바보짓을 해 놓고 그게 바보짓이었다고 (똑똑히) 아는 바보가 여기에 있다. 바로 ‘나’다.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 “투르니에 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187쪽.

 

 

(아니죠. 읽어야 하죠. 당신이 만난 손님 투르니에와 작가 투르니에는 다르니까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페크와 나는 많이 다르다. 왜냐하면 이 서재에선 적어도 내가 한 바보짓에 대해선 쓰지 않으므로. 그래서 여러분은 내가 얼마나 바보짓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모르므로.

 

 

여러분이 페크에 대해 매긴 점수에서 30점쯤을 빼면 내 점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 페크에 대해 30점을 매긴 사람은 30점을 빼고 나면 빵점이 되려나. ㅋ)

 

 

 

 

 

 

 

5. 때론 현명하지 않기 : 내가 현명하지 않아서 좋다고 느끼기도 한다. 

 

 

인용 :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보일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도움은 된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94쪽.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보일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도움은 된다. - 페크

 

 

내가 바보이기 때문에 1992년부터 갖게 된 글쓰기 취미를 지금까지 갖고 산다. 다시 말해 내가 바보이기 때문에 별 소득이 없는 글쓰기에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서재 주인 페크로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론 기꺼이 바보가 되리라.

 

 

앞으로도.

 

 

 

 

 

 

 

 

 

 

 

 

글감이 많은 책이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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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7-0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충분히 인간적이신 페크님이 좋아요~~~
저도 울 딸은 개가 무서워 오돌오돌 떨고 있는데 '이 개는 물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젤 싫어요. 제발 개를 풀어 놓지 맙시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강아지 자체를 무서워하더라구요^^)
바보 같은 짓이 뭘까? 문득 궁금하지만 참아야겠죠?
창문 밖으로 숲이 보이는 멋진 곳에 사시는 페크님이 부러워요~~~

페크pek0501 2014-07-07 11:19   좋아요 0 | URL
아휴~ 감사~
사람을 물지 않아요, 라는 말은 자기중심적인 말이죠. 무서워하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혹시 개에 물린 적이 있어서 무서워하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바보짓... ㅋㅋㅋ 세실 님을 언제 만나게 되면 제 바보짓을 말해 주겠습니다. 뭐, 제 친한 친구들은 다 아는 걸요...

부엌에 넓은 창이 있어서 얕은 산의 숲을 크게 볼 수 있어요. 거실에서 부엌으로 갈 일이 많은데, 그럴 때 저절로 그 숲이 그림처럼 들어오니 멋져요. 서울에 이런 아파트가 있다는 게 신기한데 사실 서울엔 의외로 산이 많답니다. 거실 쪽 창도 넓은데 아파트 마당이 보이고 푸른 나무들의 동산이 보입니다. 완전히 이 아파트에 반해 버렸어요.

둘째 애는 학교가 멀어졌다고 투덜댔지만 이젠 좋아하는 눈치예요. 그래봤자 학교까지 버스 타고 세 정거장만 가면 된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7-0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도 개와 비슷할 때가 있죠.평소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이 끔찍한 살인자인 경우...주변 반응은 다 그렇죠.저렇게 얌전한 사람이...전에 사람을 한 번도 안 때렸는데...

사람 무는 개는 의외로 작은 개가 많아요.하긴 큰 개가 사람을 자주 물어뜯으면 큰 일이겠죠.

페크pek0501 2014-07-07 11:20   좋아요 0 | URL
누구나 자기가 키우는 개는 무섭지 않고 예쁘겠죠. 저도 작은 개는 예쁩니다만
큰 개가 달려오면 무서워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최소한 남에게 스트레스는 주지 말아야겠지요.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라는 말이 있는 거겠죠. ^^

노이에자이트 2014-07-07 16:27   좋아요 0 | URL
그건 스트레스보다는 그냥 무서움,공포겠네요.

저는 투견이나 군견을 잘 다루는 편입니다.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저의 그런 기술을 부러워하더군요.

개를 무서워한다면 개가 내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열길 물 속보다 알기 어렵겠죠.사람과 똑같이...

페크pek0501 2014-07-08 11:52   좋아요 0 | URL
아, 님이 그런 기술이 있군요. 저도 부러운 걸요.
어떤 걸 표현하고 싶어서 개가 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저를 물었던 개도 어쩌면 저와 친해지고 싶어서 물었을 수도 있어요.
개는 말을 못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개가 큰 편이라 무서웠답니다.

어쨌든 개를 키우는 분들은 개를 무서워하는 분들을 잘 헤아렸으면 좋겠어요.

stella.K 2014-07-0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는 저에겐 130이어요.ㅎㅎ
오래 전 미셀 투르니에 단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언제고 이 사람의 책을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는데 여태 못 읽고 있어요.ㅠ
언니는 참 책을 알뜰하게 읽으세요. ^^

페크pek0501 2014-07-07 11:21   좋아요 0 | URL
어머낫! 130점이나요? ㅋㅋ 고마워요.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해요. 그 대신 책 잡았다 하면 끝장을 내죠. 다독 아닌 정독을 해요. 책을 읽을 땐 씹어 먹으려고 해요. 책값이 아까워서라도...



2014-07-07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8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0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4-07-0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상 바보짓을 하고 사는 바부탱이라 끄덕끄덕 ㅎㅎ
페크님이랑 동족인가 봐요.
저는 50점 빼고 봐주세요^^

페크pek0501 2014-07-08 11:41   좋아요 0 | URL
님도 그런 생각을 하셨군요. 50점이나요?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군요. 동족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갈수록 바보가 되는 느낌입니다. 하하~~

마녀고양이 2014-07-07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요즘 제 자동적 사고에 대해서 생각 중이예요.
많이 힘든 부분들이 있어서요. 어떤 상황이 생길 때 사실이 아님에도 경험적으로 생겨나는 생각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생각들을 자동적 사고라고 한답니다. 그것들은 지독히도 저를 괴롭히네요.

페크pek0501 2014-07-08 11:48   좋아요 0 | URL
자동적 사고...
마고 님은 생각이 많으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제가 이 나이가 되어 내린 결론은...
생각이 많을 필요가 없다는 것, 예민해서 좋은 것보단 나쁜 게 더 많다는 것, 입니다.
대충 살기, 이게 저의 바람이 되었답니다.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행복하게 그리고 남에게 좋은 일도 하면서 그렇게 보내면 되는 것 같아요.
잡념을 없애기 위해선 많이 움직이기, 가 좋아요. 어제 친구가 왔었는데 월수금은 탁구를 치러 다닌다고 해요. 그랬더니 잠을 푹 자서 좋더랍니다. 정신도 분산되어 덜 고민하게 된다고 해요. 저의 경우엔 하루 한 시간 걷기를 하는데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걸으면서 두뇌 속 스트레스가 빠져 나가는 걸 느끼거든요.
생각이 많은 건 좋은 건데 몸 건강에 해로울 수 있어요.

지혜롭게 대처하시길 믿어요. 또 봐요...
 

 

 

6월에 읽은 글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을 위해 소개한다.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125쪽.

 

 

 

 

외면일기를 쓰면 글을 잘 쓴다고? 대단한 걸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아서. 이걸 이제야 알다니 내가 한심하군.

 

 

내 생각에 내면일기를 쓰면 에세이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외면일기를 쓰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실제로 소설을 보면 외면일기의 글이 많다. 

 

 

그런데 난 일기를 쓰면 외면일기가 아닌 내면일기를 쓰게 된다. 앞으로 저자처럼 외면일기도 쓰기로 한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다. 나는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사랑한다.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재미를 안다. 나처럼 이런 재미를 아는 자는 이런 재미가 빠져 있는 삶을 산다면 삶이 싱거워지리라.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 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뒤표지에서.

 

 

 

 

이 글이 뒤표지에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글인 모양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외면일기를 썼다는 것, 기억해 두기로 한다.

 

 

(방문자 여러분은 어쩌면 앞으로 나의 외면일기를 읽게 될 것이다. 건방을 떨어 봄.)

 

 

 

 

 

 

 

 

 

 

 

 

 

 

 

 

 

 

 

 

 

 

 

 

 

 

덧붙임 1).................................

‘외면 일기’라고 띄어 써야 맞지만 역자의 표기에 따라 ‘외면일기’라고 붙여 썼다. ‘내면일기’도 마찬가지.

 

 

 

덧붙임 2).................................

6일 전에 이사해서 바빴다. 집 정리를 다 하지 못해서 앞으로도 바쁠 것 같다.

글을 늦게 올린 점,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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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7-0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에 읽은 책인데 역시나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이럴때마다 도대체 책은 읽어 뭐하나 싶습니다... ㅠ..ㅠ

이사하셨군요. 큰일 치루셨네요!

페크pek0501 2014-07-05 08:44   좋아요 0 | URL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책을 읽었어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저도 남이 인용한 글을 보고 '어, 이런 글이 있었나?' 하고 책을 펼쳐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도대체 책은 읽어 뭐하나? 그저 즐거움을 얻을 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사실이 중요하죠.

예, 이사했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세실 2014-07-0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면일기.......글쓰기의 중요한 방법이군요^^ 하긴 글쓰기의 기본은 사진이나 장면을 본뒤 자세하게 쓰는거라고 하더군요.
고3 중요한 시기에 이사도 하시는구나... 전 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걸까요?

페크pek0501 2014-07-05 09:47   좋아요 0 | URL
자세하게 쓰면 거의 성공적인 글이 되는 것 같아요.
세실 님이 정상이에요. 저는 고3엄마같지 않답니다.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7-0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묘사를 하려고 들 때 가장 곤란한 것은 사물의 명칭입니다.우리가 흔히 보는 도구나 그 도구의 부품에 대해서도 그 구체적인 명칭을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저도 글 쓰다가 꽉 막힐 때가 많아요.그런 명칭을 일일이 다 확인하려면 역시 분류사전이 있는 게 좋겠죠.저는 기계나 도구 해부도 같은 책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페크pek0501 2014-07-05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글쓰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낱말의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게 참 편리해요. 그런데 인터넷 확인이 되지 않는 것도 있어서(제가 사물의 이름을 잘 모를 경우) 곤란할 때가 저도 있어요. 누구나 경험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정확히 아는 것에 대해서만 글을 쓰니 아무래도 제약이 따른다고 봐야죠. ^^

루쉰P 2014-07-0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어요 ㅋ 주위를 관찰하고 쓸려고 하면 저걸 뭐라고 부르나 하고 저도 인터넷을 뒤져요 ㅎ
근데 문제는 제가 본 것과 인터넷이 같은 단어를 가르켜주면 좋은데 그러지를 못할 때 ㅋ 노자님처럼 숨이 막히죠 ㅎ
외면을 보고 그걸 쓴다는 거 그건 참 힘들어요
으휴

페크pek0501 2014-07-05 09:52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내면일기를 쓰는 것보다 외면일기를 쓰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군요.
한번 써 봐야겠어요. 얼마나 어려울지...

루쉰 님, 이제 긴 휴식은 끝나신 건가요?
 

 

 

 

여러분은 마음이 괴로운 사람에게 매력적인 조언을 한 적이 있는가? 혹은 매력적인 조언을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매력적인 조언을 글로 봤다.

 

 

 

어느 님의 서재에서 본 글을 옮긴다. (어느 님이 2011년에 올린 글.)

 

 

 

이 기회를 실컷 이용하도록 해.

넌 젊으니 가능한 한 모든 고통을 겪어보는 게 좋아.

이런 일이 평생 지속되는 건 아니거든.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111쪽.

 

 

 

이 글을 읽자마자 반해 버렸다. 마르케스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의 작품을 오래전에 읽었는데,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이 작품을 읽고, ‘노벨문학상 작품이 뭐 이래?’ 하고 실망했고 그 뒤로 그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끊었다. 그런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란 소설에 이런 매력적인 글이 있다니.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참 멋지단 말이야.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다. 병이 들어 아플 수도 있고, 누군가를 간호하느라 육체적으로 힘들 수도 있고, 속상한 일로 정신적으로 힘들 수도 있다. 남편의 사업이 망했다든지, 가세가 기울었다든지, 자식의 성적이 떨어졌다든지, 자식이 속 썩인다든지, 취직 시험에 불합격했다든지, 승진할 기회에 탈락되었다든지, 누구로부터 상처 받았다든지 여러 경우가 있을 수 있겠다. 어쨌든 남이 볼 때 작은 일이라도 본인의 일이 되고 보면 큰 일이 되는 법.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다.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줬다면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가능한 한 모든 고통을 겪어보는 게 좋아.

이런 일이 평생 지속되는 건 아니거든. (111쪽)

 

 

 

이 말을 꼭 기억해 두리라. 앞으로 힘든 시간이 닥쳐오면 이 말을 내가 나에게 해 주리라. 이 말에 위로받으리라.

 

 

 

 

 

 

 

 

 

 

 

 

 

 

이 책, 읽고 싶네.

 

 

 

 

 

 

 

 

 

 

 

 

덧붙임).................................

 

 

요즘 덥다. 초여름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울지 무섭다. 하지만 무엇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지까진 게 더워 봤자 반짝하고 마는 거지 9월까지 덥겠어? 9월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텐데 뭐.’ 이런 생각으로 이 여름을 보내겠다. 

 

 

가능한 한 모든 고통을 겪어보는 게 좋아.

이런 일이 평생 지속되는 건 아니거든. (111쪽)

 

 

이 인용문을 다음과 같이 변형해 써 본다.

 

 

가능한 한 모든 고통을 겪어보는 게 좋아.

그래야 고통이 없는 날이 오면 감사하게 되고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게 되거든.

 

 

가능한 한 심한 더위를 겪어보는 게 좋아.

그래야 덥지 않은 날이 오면 감사하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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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6-2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백년 동안의 고독 읽다 포기했어요.
재밌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고 읽다가 결국...ㅠ
그때가 제가 20대 말쯤 된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 좋으려나요?ㅎ
저 콜레라...는 얼마 전 드라마에 나왔잖아요. 따뜻한 말한마디요.
요즘 드라마 작가들은 자기 작품에 책 하나 슬쩍 끼워넣는 게 유행인가 봐요.
저도 멋있는 사람되고 싶은데 이렇게 안 되고 있네요. ㅠㅠ

페크pek0501 2014-06-23 15:53   좋아요 0 | URL
저는 구십 몇 년에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었는데 여러 인물들이 엉켜 있어 헷갈려 아예 인물 도표를 그려 가며 꼼꼼하게 읽었답니다. 왜 이 작품을 쳐 주는지 알고 말테다, 하는 각오로요. 그런데 재미없더라고요. 시간은 얼마나 잡아 먹던지 읽고 나서 후회했어요.

아, 드라마에 나온 책인가요? 요즘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요. 재밌는 걸 못 찾았어요.
오늘 비가 오네요.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


stella.K 2014-06-23 18:09   좋아요 0 | URL
그 드라마는 지난 봄에 했어요. 언니 보신 줄 알았는데...
안 보셨다면 강추해요.
정도전도 괜찮은뎁쇼. 거의 끝나가지만...
지난 주말 sbs에서 <끝었는 사랑> 시작했던데
좀 괜찮은 것 같아요. 나연숙 씨가 쓴 건데 좋아하신다면 볼만한 것 같아요.
황정음이랑 차인표 나오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ㅎ

페크pek0501 2014-06-27 11:1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이사하느라 서재에 들어와 보지 못했어요.
차차 드라마 찾아 볼게요. 감사~~^^

stella.K 2014-06-27 14:17   좋아요 0 | URL
에고, 더운데 이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겠군요.
이사하신데는 마음에 드시나요?
부디 새로운 곳에서도 다복하게 사시길요.^^

페크pek0501 2014-07-02 12:04   좋아요 0 | URL
예, 집이 맘에 듭니다. 숲 속의 아파트예요.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랍니다. 고마워요. ^^

노이에자이트 2014-06-2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모옴은 가난과 역경은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고 정반대되는 주장을 했는데 재밌군요.

마립간 2014-06-23 11:58   좋아요 0 | URL
저는 조건부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역경이 그것을 당하는 사람 역치 이하일 경우 고난/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지만, 고난/역경이 감당할 수 있는 역치를 넘을 겨우 그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극복하면 유익하지만, 극복하지 못하면 손해죠. 부모나 리더는 자녀나 추종자에 대해 당사자의 역치에 맞게 고난/역경의 정도를 조절해 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페크pek0501 2014-06-23 16:01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이 고견의 말씀을 해 주셨네요. 맞습니다. 가난과 역경도 어느 정도여야지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 좌절하고 말지요.
또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고요.
어떤 이는 가난으로 인해 헝거리 정신으로 극복해 나가지만 어떤 이는 가난으로 인해 심성이 삐딱해지기만 하고 극복 못하지요.
열등감도 그래요. 어떤 이는 열등감으로 인해 오히려 도전 정신을 발휘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실연 당했다고 자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보란 듯이 더 잘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 서머싯 모옴도 마르케스도 다 맞는 말을 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엔 가난과 역경을 겪는 경험도 좋을 것 같아요. 단, 기간이 길면 안 될 것 같아요. ^^ 열등감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단, 우월감이 있는 부분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세실 2014-06-22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긍정의 힘이 느껴집니다.
가능한 한 모든 고통을 겪어보는게 좋아...... 음 전 고통을 얼마나 겪었을까요? 그리고 제가 겪어야 할 고통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50줄이 코앞이다보니(앗!! 낯설다) 그냥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ㅎㅎ
고통은 젊을때 겪는 걸로......

페크pek0501 2014-06-23 16: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고통도 싫고 명예나 부도 관심 없어요. 몸과 마음이 편한 게 최고죠!!!!!!!!!

50줄이 코앞이시군요. 부럽다...
저는 아직도 5라는 숫자가 낯설어요.
제 정신 연령은 30대려나... ㅋ


비연 2014-06-2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추천요~

페크pek0501 2014-06-23 16:06   좋아요 0 | URL
제가 관심 갖고 있는 책을 누군가는 벌써 읽고 있다고 하면 존경스럽습니다.
아니 벌써? 뭐 이러면서요...
비연 님이 추천하시는 거라면 꼭 읽어야겠네요. 두 권짜리인 게 맘에 듭니다.
한 권짜리는 아쉽고...
세 권짜리는 지루하고...

행복한 독서 시간 보내세요.^^

노이에자이트 2014-06-2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을 극복하느냐 무너지느냐의 문제보다 더 불편한 진실이 있죠.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여 매우 독선적인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남의 말도 안 듣고...그래서 자수성가한 남자에겐 딸을 안 준다는 사람들까지 있더라고요.여자 입장에선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남자와 자수성가한 남자, 어느 쪽이 남편감으로 더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립간 2014-06-25 08:36   좋아요 0 | URL
저의 선호는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제 친구들은 최소한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하고 자립한 사람들입니다. 개인 경험에 기반한 가치관이죠.

역경을 극복한 개인적 경험이 큰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 즉 장애로 작용하기도 합니다만. 경우에 따라 작은 역경 극복이 큰 역경 극복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 매개 고리는 반성입니다.

반면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하는 사람은 독선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쿠바 카스트로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과유불급이라는 것이 적당한 답이 되지 않을까요.

페크pek0501 2014-06-27 11:06   좋아요 0 | URL
노 님, 저는 남편감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노 님과 마립간 님의 의견을 머릿속에 재워 두겠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이 늦어 미안합니다. 어제 이사를 했답니다.
정신 없이 바빴고 앞으로도 당분간 바쁠 예정입니다. 휴우~~


노이에자이트 2014-06-2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평범한 월급쟁이의 아들인데도 남들은 제 외모가 유복한 집 도련님 같다고 하더군요.외모는 아무래도 유복한 집 도련님 같아야 좋겠죠?

페크pek0501 2014-06-27 11:08   좋아요 0 | URL
ㅋㅋ 혹시 느끼하게 생기신 것 아닌가요?

루쉰P 2014-06-2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잘 지내시죠? 이제는 하나의 자신만의 독특한 글 양식을 완성하신 듯 싶어요 푸하 ㅋ
흠 참 좋은 문장이에요 ㅎ 저의 사상과 일치 하는 듯 싶어 무척이나 흡족합니다 ㅋ

페크pek0501 2014-06-27 11:1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잘 지냈겠죠?

자신만의 독특한 글 양식이라고 하셔서 제 글을 읽어 보니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쓰지 않는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저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아요.
자주 뵙길 기대합니다. ^^

아, 잊지 않고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노이에자이트 2014-06-2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산뜻하게 생겼답니다.느끼와는 거리가 멀어요.

페크pek0501 2014-07-02 12:06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ㅋㅋ
 

 

 

 

1. 단지 글을 올려야겠단 생각으로 급하게 글 한 편 써서 서재에 올렸다. 방문자들이 새 글이 없어 허탕치고 돌아가는 일이 없는 게 유일한 목적일 뿐이어서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 공감 영, 댓글 영이라도 좋다고 여겼다. 그런데 웬일인가. 나중에 서재에 들어가 보니 공감 수도 댓글 수도 많았다. 왜 저래?

 

 

하나의 주제로 묶어 통일감 있는 글 한 편 써서 서재에 올렸다. 이렇게 공들여 썼으므로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나중에 서재에 들어가 보니 공감 수도 댓글 수도 적었다. 왜 저래?

 

 

 

 

 

2. 화장하기 귀찮아서 선크림만 바르고 머리를 대충 말리고 옷을 대충 골라 입고 외출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만난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좋아 보인다고 한마디씩 했다. 왜 저래?

 

 

마스카라까지 칠하며 공들여 화장하고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받고 옷을 신경 써서 골라 입고 외출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만난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저래?

 

 

 

 

 

3. 어릴 적 초등학교 때 학교 준비물을 챙겨 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번번이 이랬다. 선생님이 준비물을 검사해서 못 챙겨 간 나를 혼낼까 봐 걱정한 날은 준비물 검사를 하지 않았고, 걱정하지 않고 태평한 날은 준비물 검사를 했다. 이런 일이 쌓여 가면서 터득했다. 내 생각과 빗나가기 일쑤라는 것을. 그래서 걱정을 하지 않는 일엔 뭔가 잘못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는 버릇이 생겼고 지금도 그 버릇이 없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병원에서 무슨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면 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태평하게 있다간 뒤통수를 치는 결과가 나오고 만다.)

 

 

 

 

 

4.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 맞선을 볼 때 기대를 많이 한 날일수록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상대를 만나지 않았는가?

 

 

 

 

 

5. 어떤 일이든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는 거다. 왜?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니까.

 

 

 

 

 

6. 자신의 예상이 빗나갈 때가 많다는 것. 그것이 인생의 본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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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났다. 넷이 만났는데 내게 한 친구가 물었다. 요즘도 블로그에 글을 쓰느냐고. 그렇다고 답했더니 무슨 글을 쓸 게 그리 많으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서재에 리뷰와 페이퍼를 합쳐 266편을 올렸는데 내가 생각해도 무슨 글을 쓸 게 그리 많았을까 싶었다.

 

 

어디에 있는 블로그냐고 다른 친구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난 왜 그때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서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까? 왜 블로그의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참고로, 내 친구들의 반쯤은 이미 이곳 서재를 알고 있다. 이곳을 알지 못하는 나머지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집에 와 생각해 보니 이런 것 같다. 난 내가 쓴 글을 친구들이 보는 게 창피한 것이다. 당당하게 내 글을 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글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 일로 내가 내 글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그렇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른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계기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뻔뻔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를 시장으로 뽑아 주세요. 제가 시장으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뻔뻔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뻔뻔함이 없다면 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는 것처럼, 뻔뻔함이 없다면 글을 계속 쓸 수 없을 것 같아서다.

 

 

 

 

 

 

 

2. 아십니까?

 

 

독자 여러분은 위의 1번의 글에서 제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 글에 자신이 없다는 것.

2)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것.

3) 인간은 자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다는 것. 어떤 일을 계기로 알게 될 뿐이라는 것.

 

 

어떤 문제이든 길게 쓴 것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 정답이기 위해서 자세하게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3)번이 정답이다. 나는 독자들이 1)번과 2)번은 물론이고 3)번까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고 특히 3번을 강조하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독자들은 다 알지 못한다고 서머싯 몸은 말한다. 

  

 

작가는 책 한 권을 쓰느라 몇 달을 보내며 자신의 진심을 쏟아붓지만, 그 진심을 읽는 독자는 거의 없다.(윌리엄 서머싯 몸)

- 도러시아 브랜디 저, <작가 수업>, 111쪽.

 

 

서머싯 몸의 말에서 진심을 ‘성의’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진실’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나는 진심을 ‘진실’로 해석하였다.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담아 글을 쓰지만 그 진실을 읽는 독자는 거의 없다.’는 것.

 

 

나 역시 남들이 쓴 글의 진실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곤 한다. 책을 읽으며 또는 이웃 님들의 서재에서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걸까?’라고.

 

 

 

 

 

 

 

 

 

 

 

 

 

 

 

 

 

 

 

 

 

 

 

 

3. 왜 글의 진실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가?

 

 

이렇게 글의 진실을 알기가 쉽지 않은데, 왜 작가들은 소설에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어떤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모를 때가 있어서다. 어째서 ‘해설’은 없고 ‘상황’만 있을까?

 

 

나중에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의 답일 뿐이다.) 작가는 전하고 싶은 것을 상황으로만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을 말로 설명하는 순간 그 소설은 중요한 것 하나를 잃기 때문이라는 것. 바로 독자에게 ‘스스로 해석하는 능력’을 줄 기회를 잃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이 작가가 해설가로 나서지 않는 이유라는 것.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에서 안나는 기차 안에서 매력적인 브론스키를 알게 되고 나서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남편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가 멈추자마자 그녀는 내렸다. 맨처음 그녀의 눈에 띈 것은 남편의 얼굴이었다. ‘세상에!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 (…) 특히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남편을 보는 순간 일어났던 자신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던 익숙하고 위선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녀는 이전에는 이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뚜렷하고 가슴 아프게 그것을 의식한 것이었다.

- 톨스토이 저, <안나 카레니나>에서.

 

 

‘세상에!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렇게 생겼을까?’의 문장은 남편의 귀가 못생겼음을 느꼈다는 걸 뜻한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박웅현 저, <책은 도끼다>에 나와 있다.)

 

 

<인생의 베일>이라는 소설에서 키티는 매력적인 타운센드를 알게 된 뒤 타운센드와 남편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타운센드는 키가 컸다. 최소한 185센티미터는 될 거라고 키티는 생각했다. 게다가 외모도 아름다웠다. 첫눈에 봐도 아주 건강했고 군살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방 안에서 옷맵시가 가장 뛰어날 정도로 옷을 입는 감각도 좋았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좋아하는 똑똑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눈은 월터(남편)에게로 옮아갔다. 월터는 앞으로 좀 더 신경 써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61쪽.

 

 

‘월터는 앞으로 좀 더 신경 써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의 문장은 남편의 모습이 후졌음을 느꼈다는 걸 뜻한다.

 

 

이 두 가지의 소설에서 모두, 작가는 해설가의 역할을 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상황만 보여 준다. 만약 작가가 해설가의 역할까지 한다면 이렇게 썼으리라.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으리라. 

 

 

페테르부르크에 내린 안나는 남편을 보자마자 꼴보기 싫음을 느꼈다. 매력적인 남자인 브론스키을 만난 직후였기 때문이다. 기혼자가 배우자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상대적으로 배우자가 볼품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법이다.

 

 

서머싯 몸은 이렇게 썼으리라.

 

 

매력적인 타운센드를 알게 된 뒤 키티는 남편이 후져 보였다. 기혼자가 배우자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상대적으로 배우자가 볼품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그건 마치 작가가 음식을 씹어서 독자에게 먹여 주는 것과 같다. 작가의 할 일은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상을 독자에게 주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맛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4. 해설가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앞의 1번에서 이렇게 쓴 글이 있다. 

 

 

집에 와 생각해 보니 이런 것 같다. 난 내가 쓴 글을 친구들이 보는 게 창피한 것이다. 당당하게 내 글을 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글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 일로 내가 내 글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그렇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른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계기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내가 1번의 얘기로 소설을 쓴다면 위의 글에서 괄호 안에 있는 글을 빼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해설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설은 소설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소설은 현실의 삶을 겪으며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독자의) 능력을 키워 줄 수 있는 소설이 될 때 가치 있는 소설이 된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해설가로 나설 것이 아니라 해설가의 역할을 독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작가의 할 일은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읽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독자에게 과제로 내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과제를 독자 스스로 해결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훈련을 통해 독자는 현실의 삶을 읽어 내는 능력 즉 해석(해설)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현실의 삶은 상황만 있고 해설가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서 해설가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해설가가 없다. 소설을 읽는 사람이 해설해야 한다. 현실의 삶에서도 해설가가 없다.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이 해설해야 한다.

 

 

이 글의 마지막은 다음의 글로 장식한다.

 

 

지혜란 누구한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다만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해 대신 수행해주지는 않는 여행을 통해,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해 면제해주지는 않는 노력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일세.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4쪽.

 

 

지혜란 누구한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 우리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이 글을 뽑아 옮겼다.

 

 

(참고 사항) : 옮긴 글에서 '여행'을 '정신적인 여행'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다.

 

 

 

 

 

 

 

 

 

 

 

 

 

 

 

 

 

 

 

 

 

 

 

...............................

<후기 1>

 

이 글의 소제목으로 네 개를 썼다. 네 개의 소제목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1번과 2번이 서로 짝을 이루고, 3번과 4번이 서로 짝을 이룬다.

 

1.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2. 아십니까?

 

3. 왜 글의 진실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가?

4. 해설가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건 사족이다. 이렇게 일일이 설명하면 글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사족이다. 독자 스스로 알아차릴 기회를 필자가 빼앗았다는 얘기다. 독자의 상상력을 필자가 차단시켰다는 얘기다.

 

 

 

................................

<후기 2>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고 글을 끝내면 답답하다. 독자가 모를까 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소설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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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제 블러그를 현실 세계에 있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알라딘 블러그는 일종의 가면 하나를 벗은 장소인데, 이런 모습이 쑥스럽고 불편할 것 같아서요... ^^

각자의 해석이 다른 소설이 훌륭한 소설로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했네요. 논점이 분명해야 하는 글이 있고, 아닌 글이 있네요. 하기사 지나치게 뻔한 글은 강요하는 것 같아서, 상상력이 없는 것 같아서, 과일의 액즙이 풍성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끌리지 않더라구요.

페크pek0501 2014-06-15 15:52   좋아요 1 | URL
마고 님, 안녕?

으음... 저는 이 서재를 갖게 되면서 신기해서 글 쓰는 친구들에게 이곳을 알려 줬어요. 저처럼 이런 블로그를 만들라는 말과 함께요.

그런데 제 글이 쌓이면서 언제부턴가 이곳에 제가 아는 이들이 들어온다는 게 부담스럽더군요. 아는 이들이 없다면 보다 편히 글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님은 이곳이 가면 하나를 벗은 장소라고 했는데 맞아요.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가면을 하나 쓴 곳이기도 해요. 방문자들 대부분이 제 실명을 모르기 때문이죠.

각자의 해석의 다양성... 그래서 문학은 어려운 것 같아요. 다양한 시각을 유도할 수 있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라는 점에서요. 까뮈의 <이방인>처럼요.
저는 명료하고 명쾌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설 창작과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인 거죠.
저는 소설 팬일 뿐인 거죠.

요즘 글쓰기 책을 보고 있는데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제가 새롭게 배운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해서 조만간 글을 올릴 예정이에요.
그런데 그 몇 권을 언제 다 읽으려나...

또 봐요, 반가운 님!!!^^^

다크아이즈 2014-06-1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서의 <말하기 기법(설명)>과 <보여주기 기법(묘사)>을 예시로 보여주시네요.
말하면 망하고, 보여주면 흥해요. ㅋ
이론처럼 쓰기가 쉽지 않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할까요.
잘 쓰는 소설가가 넘쳐나면 우린 뭘 읽어야할지 심히 행복하게 혼란스러워해야하니까요. ㅋ


글에 자신이 없어서 친구에게 블러그를 알려주지 않게된다는 페크 언냐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ㅋ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게 일반적인 생각 아닐까요. 아는 누군가가 내 블러그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쓴다는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하잖아요. 아무도 모르게 불특정다수를 향한 (진솔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에서는 그게 어렵지요? 자기 보호 본능 때문이지 글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주시어요. 왜냐면 페크님 글은 참으로 당당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페크pek0501 2014-06-16 08:18   좋아요 0 | URL
"말하면 망하고, 보여주면 흥해요." - 이런 훌륭한 말을 남겨 주시다니 감사드려요.
이 말 한 방이면 되네요. 외워 놓겠어요. ㅋ

자기보호본능... 으음~ 그런 것도 같네요. 자신감 결여가 아니란 말이지요?
제 글에 자신감이 넘치면 저는 얼마든지 제 블로그 주소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란 말이죠? 어쩌면 님의 말씀이 진실일지도 모르겠군요. 앞으로 시간을 갖고 분석해 보겠습니다.

제 글이 당당한지 저는 몰랐어요. 의식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게 맞는 것도 같아요. 들킨 것 같은 느낌이 순간 들었거든요.
겉으로 보이는 당당함과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심리적 위축, 이 두 가지를 제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저의 참모습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어요. ㅋ
창피하다는 생각은 자주 합니다. 뻔뻔해져야겠단 생각도 자주 합니다. 뻔뻔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늘도 뻔뻔하기!!!!!!!!!!! 입니다. ^^(이런 댓글도 뻔뻔해야 쓸 수 있어요.)

맨 마지막 말씀은 호평이네요. 응원의 뜻으로 감사하게 접수합니다. ^^


잘잘라 2014-06-16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페크님은 더 자주, 더 찐하게, 뻔뻔하실 필요가 있구요!!

3) 자신을 알게 되는 계기.. 정말요. 제가 오늘 처음으로 빵을 만들었거든요. 잘 되서 맛있게 먹었는데요.. 아아, 빵 먹자마자 밥이랑 김치가 왜 그렇게 땡기든지요. 결국, 오이소박이 한 탕기 꺼내서 밥 한그릇 뚝딱- ㅋㅋㅋ 그리고는 '빵은 아니야.. ㅠㅠ' 이랬다니까요. 아이쿠. 잔뜩 사들인 제빵도구들을 우짤꼬.. 잠이 안 옵니다요. 이 일을 계기로 저는 '빵도 좋고 밥도 좋지만 밥이 백만 배는 더 좋다는 거'랑요, 빵 없이는 살아도 밥, 김치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을 확실히 일게 되었습니다요. ㅎㅎ

페크pek0501 2014-06-16 08: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고 의미 있는 댓글을 남겨 주셨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경험이 있네요. 어느 날 빵이 먹고 싶어서 사 왔는데(모카 로울 케익인가) 하루만에 질려서 그 다음날엔 그 남은 것을 먹기 싫은 거예요.
역시 밥과 김치과 최고죠. 매일 밥상에 올라와 있어도 싫증이 안 나잖아요.

어떤 일이 터져야만 알 수 있는 것? 인간의 마음...

님 덕분에 유쾌한 하루가 시작될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6-1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로는 사람이 하는 동작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을 읽는 재미도 있더군요.요즘 작가들 중엔 하성란 씨가 그런 것에 능합니다.

스티븐 킹이나 딘 쿤츠의 소설 작법에도 대화 한 마디나 아주 짧은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기법을 익히라고 조언하죠.이거 못하면 직업작가가 될 수 없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4-06-20 12:4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소설을 읽을 때 주제니 결말이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 덕분에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그런 재미로 소설을 읽는 거죠.
드라마도 그래요. 불륜을 저지르다가 이혼하고 새 연인에게 가지만 조강지처가 그리워 돌아온다, 뭐 이런 이야기나 결말보다 그런 과정에서 보여 주는 인간의 모습들이 재밌어서 시청을 하는 거죠.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 주죠.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