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 수업> : ‘작가 수업’이라고 해서 내가 작가 수업 중이라는 말이 아니다. 책 제목일 뿐이다. 작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적이 있긴 하다. 젊은 날엔 무슨 꿈인들 꾸지 못하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요즘 느낀다.)

 

 

<작가 수업>이란 책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얻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이제 새로운 무엇이란 건 없는 것 같다. (저 책에서 읽은 것을 이 책에서도 읽게 되니) 그 얘기가 그 얘기다. 그래도 중복된 글을 읽는 게 싫지 않으니 이런 책들을 계속 즐겨 읽게 된다. 복습이라고 생각하며 읽는 것도 좋다. 원래 자신이 흥미로운 것에 대해선 싫증이 없는 법이다.

 

 

 

 

 

 

 

 

 

 

 

 

 

도러시아 브랜디 저, <작가 수업>

 

 

 

 

“초보자들이 이 책을 통해 글을 잘 쓰는 법보다는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나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셈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39쪽)라고 밝혔듯이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또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이 책 속엔 좋은 말들이 많이 있다.

 

 

일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은 잘하는 것이다. 또한 일을 잘하고 싶으면 즐겨라.(펄 벅) - <작가 수업>, 75쪽.

 

 

어떤 일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선 잘해야 하는 것이구나. 야구를 즐겁게 보려면 야구 용어와 경기 규칙을 잘 알아야 하듯이, 클래식을 즐기려면 그것에 조예가 깊어야 하듯이 그렇겠군.

 

 

인생은 위험한 줄타기 아니면 안락한 침대다. 나는 줄타기를 택하련다.(이디스 워턴) - <작가 수업>, 83쪽.

 

 

그렇군. 나는 줄타기를 싫어하고 안락한 침대를 좋아해서 요런 삶을 살고 있는 건가. 아, 그래도 난 위험한 줄타기는 싫다. 안락한 침대가 좋아.

 

 

사람들은 평가를 요청하지만 사실은 칭찬을 듣고 싶을 뿐이다.(윌리엄 서머싯 몸) - <작가 수업>, 89쪽.

 

 

이것 어디에서 본 문장이다. 서머싯 몸의 소설에서 본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열 번쯤 평가를 요청했다면 그중 한두 번은 칭찬보단 자기 글의 문제점을 듣고 싶을 것 같은데. 내 글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잖아. 고치고 싶잖아. 그래야 더 나은 글이 될 테니까. 

 

 

좋은 소설은 주인공에 관한 진실을 들려주지만, 나쁜 소설은 작가에 관한 진실을 알려준다.(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 <작가 수업>, 119쪽.

 

 

많이 본 내용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이렇게 되겠다. ‘작가의 목소리를 내지 말고 작중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만약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은 소설을 쓰지 말고 수필이나 칼럼을 써야 할 듯.

 

 

동료나 선배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 자신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노력하라.(윌리엄 포크너) - <작가 수업>, 187쪽.

 

 

자기 자신을 뛰어 넘기. 흔하게 듣는 이 말이 이렇게 오래된 말이었구나. 

 

 

불만이 없는 자는 만족할 수 없다.(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 <작가 수업>, 197쪽.

 

 

이 말에 따르면 “제 삶에 불만이 하나도 없고 만족해요”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인가? 불만이 있어서 소망(꿈 또는 바람)이 있을 때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인가? 의미심장한 말 같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것. 만약 오후 4시에 글을 쓰기로 했다면 그 시간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쓰라는 것. 습관은 중요하니까.

 

 

글을 쓸 15분을 언제 내는 게 좋을지 정하라. 앞으로는 이 15분 안에 글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작가 수업>, 85쪽.

 

 

외출 중에도 휴대용 타자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글을 쓰라는 것.

 

 

전업 작가는 타자기를 두 대, 즉 표준 타자기와 휴대용 타자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작가 수업>, 199쪽.

 

 

글을 잘 쓰려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글쓰기 생각. 늘 글쓰기에 집중하라는 것.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책은 만화책 읽듯이 가벼운 흥미를 가지고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뻔한 내용이 많지만 그중에도 건질 건 있기 마련이다. ‘뻔할 책이야 그래서 이런 책은 보지 않을 거야.’ 하면서 이런 책을 무시하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든 존경하기, 이것이 뭔가 배우려는 사람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난 배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

 

 

 

 

 

 

2. <인간의 굴레에서> : 며칠 전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곱 곳의 서재에 댓글을 썼다. (이런 좋은 일도 하고 살아야 하는 거다.) 그중 두 분의 답글에서 서머싯 몸의 작품을 나 때문에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님의 답글 : “저도 모옴을 좋아해서 페크님의 성실하고 깊이 있는 모옴 읽기 여정에 저도 동행중이랍니다.^^”

 

 

또 어느 님의 답글 : 지금 열심히 <인간의 굴레에서>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또 새롭네요. 새로워요...

 

 

내가 서머싯 몸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몇 개 쓴 것에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는 답글이었다. 두 분께 감사하다.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인간의 굴레에서 2>

 

 

 

 

만약 소설을 쓰려는 분이 있다면 <인간의 굴레에서>를 적극 추천한다. 인생과 예술에 대한 글이 사색적이면서도 읽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그냥 쭉 읽어선 안 되고 밑줄을 그으면서 문장 하나하나를 씹어서 음미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노년에 다시 읽어 볼 책으로 50권을 추려 놓으려는데 그 50권 안에 <인간의 굴레에서>는 당연히 들어간다. 그 50권을 반복해 읽으며 노년을 보낼 생각이다.

 

 

말이 나온 김에, 그동안 올린 적 없는 문단 하나를 소개한다. 외국에서 사는 경험의 이점을 말하는 글이다.

 

 

외국에서 살게 되면 깨닫게 되는 게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 사는 경험이 주는 이점은 같이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행동 방식과 관습에 접하는 동안, 국외자로서 그들을 관찰하고 당사자들이 당연하게 믿고 있는 그 행동방식과 관습에 실은 어떤 필연성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명한 믿음도 외국인에게는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반드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그는 이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만사는 목적에 순응할 뿐이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431~432쪽.

 

 

행동방식과 관습에 실은 어떤 필연성도 없다는 것.

 

 

우리에겐 상투를 자르면 큰일이 난다고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남자가 귀고리를 하면 이상하다며 쳐다보던 시대가 있었다. 미래엔 남자가 치마를 입어도 예사로 보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 무엇에도 필연성은 없는 거니까. 바지에 비해 치마가 시원한 옷이어서 무더운 여름에 남자들이 치마를 선호하는 시대가 올지 모를 일이다. 그런 시대가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만사는 목적에 순응할 뿐인데.

 

 

요즘 글자 크기를 11포인트로 사용하고 있다. 10포인트를 사용하다가 변경한 것이다. 글자가 크면 읽는 사람이 눈의 피로를 덜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읽는 사람을 위해서 글자 크기를 크게 변경한 건 아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1) 내가 눈의 피로를 덜 느끼게 하기 위해 변경한 것이다. 2)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글을 볼 경우에 아무래도 글자가 큰 서재를 선호할 것 같아서 변경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얘기다. 서머싯 몸이 쓴 것처럼 만사는 (나의) 목적에 순응할 뿐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사를 당연하게 여기는 거의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올더스 헉슬리)

 

 

이 말은 비꼼이지? 만사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인 것 같다. 

 

 

 

 

 

 

3.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몸 건강하고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이 깨달음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몸이 아팠던 경험과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경험을 치른 대가로 얻은 것이다. 평범하게 살기도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되는 것 같다.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 같아서다.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이란 부제가 달려 있는 책이다. 

 

 

이런 좋은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우리 삶에 놓인 가시덤불을 깨끗이 걷어 낼 방법은 없다. 한 가지 희망은 그 모든 나쁜 경우에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3쪽.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이겨 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헬렌 켈러) -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7쪽.

 

 

상처를 받거나 받지 않음은 누구에게 달렸는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 

 

 

앞에서 말한 것처럼 누가, 그리고 어떤 일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가는 상처받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상처받았다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했다’가 아니라, 그 행위 때문에 ‘나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가 봐도 상처 주는 말이지만 나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모건 프리먼처럼 말이다. -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31쪽.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면 그 어떤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겠다. 나는 상처를 받지 않을 테니까.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상처 받지 않는 마음이 될 테니까.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그렇게 될까?

 

 

그렇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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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4-05-24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작가수업.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밑줄 긋기는 할 게 많았던 책이었지요.
페크님 밑줄 보면서 맞아, 맞아 맞장구치고 있다는...

그나저나 인간의 굴레 읽어야겠어요. 무조건 페크언냐 덕분~~

페크pek0501 2014-05-24 11:32   좋아요 0 | URL
아, 팜므 님도 작가 수업을 읽으셨군요. 이런 종류의 책은 내용의 질에 상관 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세계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 해도 좋다고나 할까요.

<인간의 굴레에서> 같은 소설을 또 찾고 있어요. 제게 글감을 많이 많이 준 소설이라서 말이죠. 읽고 쓰면서 많이 배웠답니다. 인간에 대해서요.

오늘 친척 결혼식이 있는 날이에요. 가서 많이 먹고 와야징, 하고 있어요. ㅋㅋ
물론 축하도 많이 해 줘야겠지요. ^^

stella.K 2014-05-2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전부터 작가수업을 살까 망설이다 일단 보류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그런 류의 책은 정말 가끔씩 읽어주면 흐트러진 마음도 다 잡고 좋긴한 것 같아요.

내 글에 대한 평가는 참 애매하더군요.
얼마 전 저의 초고 대본을 아는 연출가한테 읽어 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꽤 미안해 하면서 언급을 회피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기분이 좀 묘해지더군요.
뭔가 보는 관점이 다른 건데 이 사람 작품을 볼 줄 아는 사람인가 의문스러워지더군요.
작품도 나랑 좀 대화가 통하거나 관심이 가는 사람과 해야지 안 그러면 기분만 상하더라구요.

아, 또 댓글 쓸게 몇개 더 있는 것 같은데 워낙에 많은 이슈를 다루셔서 쓰는 동안 다 까먹었어요.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올게요.ㅠㅠ

페크pek0501 2014-05-25 12:32   좋아요 0 | URL
흐트러진 마음도 다 잡고... 맞습니다.

글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보니 옛날 위대한 소설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퇴짜를 놓던 출판사가 많았다는 얘기죠. 중요한 건 자신의 안목을 키우는 일일 듯해요.
자신의 글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안목 말이에요. 그러려면 역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공부가 필요하겠죠. - 이 댓글에서 기시감이 드네요. ㅋ

쓰고 보니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 같네요. ^^

마태우스 2014-05-2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언니, 답글 잘 읽었습니다. 메모장에 옮겨붙이는 방법이 있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구 글은 정말 11포인트가 좋은 거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4-05-29 14:23   좋아요 0 | URL
예, 예, 예... ㅋ
감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내 대답은 “으음~ 그만두세요.”였다.

 

 

자기에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끝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 그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복수하게 되면 죄를 짓는 일이 되고 자신의 삶이 망가지니까 참아야 한다. 왜 누구 때문에 삶이 망가져야 하는가. 이미 과거의 일이니 과거의 시간 속을 그만 배회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 전진해야 한다. 우리에겐 복수 이외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복수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돈을 벌러 다니자고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벌을 주는 일은 하늘에 맡기자고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오래 전 나도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생겨 먹은 그 자체가 벌인 거다. 그런 그를 맘속으로 비웃어 주면 된다. 자기를 비웃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 그게 그 사람에겐 벌인 거다. 그가 좋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 그게 그 사람에겐 벌인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당신은 그것을 압니까?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왜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냐고요? 누군가가 미워하고 있는데 그가 일이 잘 풀릴 리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미워하고 있는데 그가 가진 간절한 소망이, 그의 기도가 이루어질 리 없지 않습니까? 그만큼 미워했으면 이제 놓아주세요.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게 만든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서요. 그러면 이제 그를 미워하는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생길 거예요. 그를 미워함으로써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게 만든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길 거예요.)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 석가모니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50쪽.

 

 

 

 

 

복수 또한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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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5-2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님, 저도 석가모니의 그 글을 읽었는데요.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분노는 석탄을 손에 쥔 것과 같고, 복수는 자신을 해치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승화되지 않는 분노를 억누르는 것은 자기 자신을 해칠 수 있읍니다. 분풀이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더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복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수의 행위가 자신에게 해를 미치지 않으려면 용서로 승화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를 해도, 복수를 하지 않아도 해롭죠.

'화'라는 책을 읽고 저는 화를 내었고 '용서라는 고통'을 읽고 혼자 삭히지 않게 되었죠.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77730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8509301X

페크pek0501 2014-05-23 22:07   좋아요 0 | URL
분노를 참는 것이 건강에 해로운 것, 맞습니다.
용서로 승화하기, 이것 참 어려운 일이죠. 억지로 참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을 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안 보는 게 속편하니까요. 점점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게 될 듯해요.
건강을 위해서도 그게 좋으니까요. ^^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비로그인 2014-05-2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떡해. .. ^^

페크님.. ㅋㅋ
그날 페크님이 주신 말씀 덕분에 마음의 화를 한결 내려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때론 부글 부글 .. 그랬는데
이런 글도 있더라구요. 페이스북에..






Until you surrender the need to know why things happened to you as they did, you will hold on to your wounds with intense emotional fire. Your mind will want to heal, but your pride, anger and emotions will remain caught up in wanting to make sure that the people who hurt you fell bad about what they've done. Or you may want to hurt them back. But rest assured, your emotional self will remain attached to the unfinished business rooted in feelings of abandonment and humiliation, of having lost something or been cheated. Your mind may do what's required for healing and go through all the prescribed steps, but your heart will never fully participate in the healing process.



특히 그 다음 이어지는 이 부분 In the end, forgiveness is an act of release, surrendering the need for an explanation. From that prospective, forgiveness has nothing to do with the individuals who harmed you.

용서란 놓아줌의 행위이고 설명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용서란 당신에게 해를 입히는 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It is the act of accepting that there is a greater map of life, through which flow many rivers of events and relationships, all interconnected. Forgiveness is your release form the hell of wanting to know what cannot be known and from wanting to see others suffer because they have hurt you.

용서란 많은 사건들과 관계들의 강들이 모두 상호연결되어 흐르는 보다 큰 삶의 지도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같다.

결국.. 용서란 밝혀질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는, 그들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고통받기를 원하는 지옥으로 부터 당신을 놓아주는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 같은데 다시 쓰고 읽어가면서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잘못하고 실수하고, 그랬을 걸 생각하니...더더욱.. 마음의 화가 . . 내려갔습니다.. ~~

아.. 그럼에도 여전히 힘든 과정 같아요... ^^ 누군가 절 용서하는 일도 그렇겠지요 ?

저도 벌 주는 일은 하늘에 맡기려구요
아.. 그럼 저에게 벌주는 일도 하늘이 알아서 ㅠㅠ

마립간 2014-05-22 14: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새벽숲길님, pek0501님께 댓글을 다는 동안 새벽숲길님의 댓글이 눈에 띠어 일부 문구가 사용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의 개인적 가치관입니다만, 새벽숲길님과 판단과 이견이 있네요.

비로그인 2014-05-22 15: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립간님. ^^
양해는요.. 아니예요.. 댓글 기능이 있다는 건, 제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역할을 위해서도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개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하고, 또 그안에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마땅한 일인걸요. ^^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 언쟁도 높아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아니고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니까요..


마립간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존중합니다.



페크님께서 제 고민에 대한 따뜻한 지혜의 말씀을 그날 주셔서 저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었어요. 이 페이퍼를 올려주신 것에도 감사드립니다. ^^

페크pek0501 2014-05-23 22:09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때론 부글 부글 .. 그랬는데 "
- 히히~~ 찌개 끓는 소리 같아요.

저도 누군가에겐 죄를 지었겠지요. 그걸로 상쇄해 나가겠습니다. ^^

좋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페크pek0501 2014-05-23 22:10   좋아요 0 | URL
이크... 비밀로 하려 했는데...ㅋㅋ ^^

마립간 2014-05-2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등학교 때, 용서와 관용에 대해 - 용서는 포기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관용은 포용을 포함한 도덕적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배웠는데, 제가 보기에 이런 설명은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용서이든, 관용이든 ; 상처받은 당사자(용서를 하는 사람)와 사회에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어야, 즉 공리적인 기준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용서에는 가해자의 자기 반성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조건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피해자가 마음의 안정을 얻었더라도 포기나 외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침략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 우리나라의 반성 없는 일제 부역자들, 반성이 없는 독재자 및 독재 부역자들은 애초에 용서의 전제 조건이 구성된 것이 아니죠.

하늘이 벌을 내릴지 말지 결정할 수 있지만, 용서는 당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4-05-23 22:12   좋아요 0 | URL
용서과 관용에 대한 것... 어렵네요.
제겐 공부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

페크pek0501 2014-05-2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분의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이견을 개진해 주신 점, 아주 좋습니다. 환영합니다!!!!!!!!!
답글은 나중에 쓰겠고요.

저도 질문이 있답니다.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했는데 분노를 터뜨리고 통쾌해 하는 사람들, 이들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분노를 던지는 것은 오히려 상처를 입는 일이다, 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지각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오히려 터질 게 터진 거야, 이렇게 말하는 구제불능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니 석가모니의 말씀은 지각 있는 사람들에만 해당하는 듯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립간 2014-05-22 15:52   좋아요 0 | URL
저는 보수주의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 이유가 진보에는 내재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례를 들면, 관용은 불관용까지 관용하느냐? 입니다. 모든 것을 관용하는 사회에서는 나치즘 허용되어야 할까요? 나치즘이 모든 관용을 몰아낼 가능성도 있은데요.

제가 찾아 본 바에 의하면 여기에 논리적/철학적 일관성을 가진 답변은 없고, 알라딘 마을에서는 알라디너의 대체적 의견이 불관용을 제외한 다른 것에 대해 관용한다가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분노를 던지는 사람에 대해서 의견을 드리면 ; 분노의 내용, 분노를 던지는 행위 내용, 분노를 받는 사람의 상처 정도, 그리고 분노를 분출하는 사람의 자질, 제제하는 주체의 능력에 따라 제제가 결정되어야 할 것 같고, 실제적으로는 사회적 관습이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와 평등( 철학)의 기준으로 사자와 사슴의 육식/채식에는 답이 없습니다.

마립간 2014-05-22 16:09   좋아요 0 | URL
쓰고 나서 제 글을 읽어 보니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한 것 같네요.^^

페크pek0501 2014-05-23 22:12   좋아요 0 | URL
무슨 말쌈을요...
잘 읽었답니다. ^^

세실 2014-05-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라면 복수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겠어요. 심지어 '넌 내 삶에서 아웃이야!' 완전 무시하기도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 가지면 다음에 또 만나게 되더라구요. 한마디로 '냅둬유, 그렇게 살다 죽게....' ㅎㅎ 편안한 주말 되세요!

고3! 마음은 분주한데 해줄건 아무것도 없어서...더 불안합니다.


페크pek0501 2014-05-23 22:15   좋아요 0 | URL
'냅둬유, 그렇게 살다 죽게....'
'넌 내 삶에서 아웃이야!'

아, 난 이래서 세실 님이 좋아.

(고3, 저도 그래유...)
 

 

 

 

<인생의 베일>을 읽고 몇 가지를 생각하였다.

 

 

 

 

 

 

 

 

 

 

 

 

 

 

<인생의 베일>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두 번 읽고 광팬이 되어 그의 다른 작품을 읽었다. <인간의 굴레에서 1><인간의 굴레에서 2>를 읽었고 그 다음에 <인생의 베일>을 읽었다.

 

 

이 작품은 내가 인물보다 이야기를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아 쓴 유일한 소설이다.”라고 저자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인생의 베일>은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가독성이 높은 편에 속할 소설이다. 게다가 내용은 흥미진진해서 속도를 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불륜의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방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지?”

그가 물었다.

덧창이 닫힌 어두운 방 안이었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공포로 사색이 되는 것을 보았다.

방금 누가 문을 열려고 했어요.”

하녀나 하인 중 하나였겠지.”

하인들은 이 시간에 얼씬도 안 해요. 내가 점심 후에 꼭 낮잠 자는 걸 아니까.”

그럼 누구지?”

월터…….”

그녀가 속삭였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5.

 

 

그녀의 집에 함께 있는 두 사람. 방금 방문을 열려고 했던 사람이 그녀의 남편(월터)이 아닐까 걱정하며 두 사람이 긴장하는 장면이 이 소설의 첫 장면이다. 두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 그들의 비밀스런 관계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며 불안해 한다.

 

 

 

 

 

 

1. 우리는 왜 가짜에 빠져드는가?

 

 

예술품 중에서 가짜 예술품인 도자기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가짜 예술품인 풍경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인생의 함정이라 할 만하다. 여기, 인생의 함정에 빠져서 불행해진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키티. 키티는 남편(월터)이 있지만 유부남인 찰스의 매력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향해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 미소 앞에서 무기력했다. 그 미소는 그의 청명한 파란 눈에서 시작되어 맵시 있는 입가로 서서히 번져 가다가 마침내 정체를 드러냈다. 그는 작고 하얀 고른 치아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관능적인 미소로 그녀의 심장을 몸 안에서 녹아들게 만들었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1.

 

 

각각 가정을 가지고 있는 키티와 찰스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된 남편 월터.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 내가 찰스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왜 방으로 뛰어 들어오지 않았죠? 최소한 그를 때려눕힐 수도 있었잖아요. 두려웠나요?”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붉혔다. 창피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눈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혐오감을 읽었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98.

 

 

이혼을 해 달라는 그녀(키티)에게 남편은 제안한다. 찰스의 아내가 찰스와 이혼하겠다는 확답을 자기에게 주고 찰스가 그녀(키티)와 결혼하겠다고 자기에게 서면 동의를 한다면 이혼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찰스에게 곧장 달려가 그 사실을 말한다. 그러자 평화로웠던 그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 ()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가느냐 하는 거야. 당신도 나처럼 이혼을 원치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순간 그녀는 놀라 숨이 턱 막혔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03.

 

 

그녀는 모든 게 탄로가 났으니 찰스가 아내와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해 주리라고 믿었다. 찰스가 자기와 결혼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찰스에게 놀랄 수밖에 없는 그녀. 게다가 찰스는 이 문제를 입막음하지 못하면 자신의 직장 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만을 걱정할 뿐, 그녀의 괴로운 마음을 헤아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찰스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그녀는 최악의 불행에 빠지고 만다.

 

 

워딩턴이라는 사람과 찰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던 그녀는 찰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본다. 찰스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자 찰스를 제대로 보게 되었는지 모른다.

 

 

찰스가 멍청하고 허영심이 많으며 칭찬에 목말라한다는 것은 그녀가 봐도 분명했고 자신의 똑똑함을 증명하기 위해 일화들을 늘어놓을 때 그에게서 번뜩이던 자기 만족감이 떠올랐다. 그는 저급한 술수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남자에게 그토록 열과 성의를 다해 마음을 바쳤다니 자신이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단지 그가 멋진 눈과 훌륭한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143~144.

 

 

뒤늦게 찰스에 대해 참모습을 보게 된 그녀.

 

 

바람둥이에 불과한, 진실하지 못한 연인을 매력 있는 사람으로 보고, 멋대가리 없고 투박하지만 진실한 남편을 매력 없는 사람으로 보던 그녀. 그녀는 찰스의 잘생긴 얼굴이 뿜어내는 매력에 눈이 멀어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고상한 생각을 품을 줄 모르는 그의 참모습을 가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의 불행은 찰스가 어떤 남자인지를 제대로 보지 못해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설득의 심리학>에는 호감의 법칙이 소개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잘 생긴 사람은 으레 능력있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머리가 영리할 것으로 연상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그들의 신체적 매력에 의해 우리의 평가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 245.

 

 

 

 

 

 

 

 

 

 

 

 

 

<설득의 심리학>

 

 

 

 

이 책에 따르면 구인시장에서도 이런 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모의 면접 상황을 설정하였을 때 구직자들의 깔끔한 외모가 직업적인 자질보다 더 호의적인 고용 결정을 받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다.”(245)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의 외모가 상대의 내면이나 능력의 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가짜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꼭 미남 미녀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웃는 인상을 주는 사람은 성격이 좋아 보이고 마음씨가 착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다를 수 있다.)

 

 

 

 

 

 

2. 키티가 사랑한 남자는 허상이었을까?

 

 

훗날 키티가 다시 만난 찰스는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 보였다.

 

 

그의 얼굴은 너무 붉고 뺨에는 자줏빛 혈관이 비쳐 보이는 데다가 턱살은 몹시 거대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가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이중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그 무성하고 희끗희끗한 눈썹이 어쩐지 원숭이 같아서 그녀의 비위를 살짝 거슬렀다. 그는 움직임도 무거웠다. 다이어트에 쏟아 붓는 그 모든 노력과 운동량도 비만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뼈를 덮은 살은 두툼해지고 관절들은 노인처럼 삐그덕거렸다. 이제 그의 멋쟁이 의복은 다소 끼어서 그가 입기엔 너무 젊은 남자의 것이 되어 버렸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93.

 

 

그녀는 찰스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키티는 점심을 먹기 전 그가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상상력이 이상한 속임수를 부려 그녀를 속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머릿속에 그린 모습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을 정도였다. () 무엇에 씌어서 그에게 빠졌던 것일까?(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93~294.

 

 

그녀가 사랑한 것은 그의 허상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 사랑하던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이 이야기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그를 제대로 알고 사랑한 것이긴 할까 하는 것.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몰락의 에티카에서 뽑아 다듬어 옮기다

- 신형철 저, <느낌의 공동체>에서.

 

 

 

 

 

 

 

 

 

 

 

 

 

 

<느낌의 공동체>

 

 

 

 

여자인 당신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남자 가수가 있다고 치자. 당신은 그가 아침에 잠에서 깬 뒤 눈곱이 끼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가 밥을 먹고 난 뒤 트림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가 방귀를 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혹시 당신은 그가 노래하는 멋진 모습만 보고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당신은 그의 일 퍼센트에 해당할지 모를 모습만을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냥 좋아하면 그만이지 이런 분석이 왜 필요하냐고요? 당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도 실체와 허상의 구분은 필수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소설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제대로 알기, 인간을 제대로 보기.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키티의 불행은 상대를 올바르게 이해했다면 피할 수 있는 불행이었다. 그녀는 베일에 가려 있는 인간(또는 인생)의 진실을 몰랐다. 허상에 속았다

 

 

 

 

 

 

3. 작가의 관찰력을 관찰하는 재미로도 읽을 수 있다

 

 

소설에서 줄거리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제나 결론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게 중요하다면 소설의 긴 분량의 내용을 요약해 놓은 글이나 해설을 보면 된다.) 소설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독자라면 아마도 그런 것들을 뺀 나머지의 것들을 음미할 줄 아는 감각을 가졌으리라. 그중 하나가 인간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을 음미하는 것

 

 

예를 들면 이런 단순한 문장에서도 작가의 관찰력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녀의 말이 교만하게 들리지 않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7.

 

 

우리도 한 번쯤 이런 적이 있었으리라. 상대가 들으면 기분이 나쁠 말을 해 놓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심했나.’ 하면서 자신이 했던 말을 적당히 얼버무리기 위해 웃을 때가 있었으리라.

 

 

그녀의 명랑함 뒤에 숨겨진 책망을 그가 보았을까.

-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 27

 

 

우리도 한 번쯤 이런 적이 있었으리라. 자신이 웃으면서 명랑한 척하며 말을 했지만 그 말 안에는 상대에 대한 책망이 담겨 있어서 그것을 상대가 느꼈을까 하고 걱정할 때가 있었으리라.

 

 

작가는 자신을 또는 타인을 관찰함으로써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론 소설을 쓰는 작가는 인간을 세세히 보는 가장 훌륭한 관찰자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도 인간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설엔 굉장한 것들이 들어 있다. 같은 소설을 읽고도 독자에 따라서 10프로만 흡수하는 독자가 있고 90프로 흡수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몇 프로 흡수했느냐, 하는 게 아니다. 그 소설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경우엔 인간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그 무엇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소설의 줄거리나 주제나 결론, 그것들은 어쩌면 소설의 껍데기일 수 있다. 내가 소설에서 알맹이라고 여기며 주목해 보는 것은 인간의 모습들이다. ‘, 저런 게 인간이구나또는 저런 게 인간의 본질이었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것에 흥미를 갖는 한, 나의 소설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

불행에 빠진 키티는 다른 인생에서 행복을 찾게 됩니다. 어떤 인생이 이어질지 궁금하신 분들은 <인생의 베일>을 읽어 보세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그 뒤의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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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5-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월터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할수 없었어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하고 말이죠.


페크pek0501 2014-05-17 12: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월터도 키티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처럼 살아 보지 않고선 그 누구든 나를 비난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살아보지 않고선 누구든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밖에 나갔다 왔는데 봄 공기가 좋더군요. 푸른 나뭇잎들은 꽃보다 더 아름답고요.
우리 모두의 삶도 슬픈 일 없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14-05-1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7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7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4-05-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명한 파란 눈에서 시작되어 맵시 있는 입가....흥, 잘생긴 것들은 다는 아니지만 바람둥이가 될 확률이 높다구요. 그래서 여자들은 저처럼 못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요. 안타까운 점은 여자들이 그걸 잘 모른다는 점이죠...

아무개 2014-05-19 08:52   좋아요 0 | URL
ㅎㅎ 책에도 그렇게 강조해서 써놓으시더니 여기도 ^^::::::

마태우스 2014-05-20 13:10   좋아요 0 | URL
앗 아무개님 들켰네요...^^

페크pek0501 2014-05-20 13:43   좋아요 0 | URL
ㅋㅋ 두 분이 주인 없는 서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셨군요.
마태우스 님, 아무개 님, 안녕들 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외모와 관련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올려 보겠습니다.
아, 봄이어요... 봄날을 즐기시길...

2014-05-20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0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4-05-22 10:30   좋아요 0 | URL
어...지금 보니깐 안보이네요. 한글로 작업한 뒤 옮기면 이상한 암호들이 떠서 보기가 불편하던데.... 죄송! 제 착각이었나봐요 앞으론 그런 거 보면 캡쳐한 뒤 님께 말씀드릴게요

2014-05-2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05-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베일은 안나 카레니나랑 느낌이 비슷할듯요^^
다른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키티라니.......궁금해서 얼른 찾아봐야 겠습니다.
서머싯 몸을 참 좋아하시는 페크님^^

페크pek0501 2014-05-22 00: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유부녀인데다 사랑에 전부를 걸었던 두 여자라는 점에서 그러네요.
사랑말고도 재밌는 삶, 행복한 삶은 얼마든지 있지요.
세실 님과 나처럼 이렇게 책에 매료되어 사는 삶이 있듯이요. 히히~~
서머싯 몸의 광팬이랍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5-2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진 정음사판 제목은 <거짓된 생활>입니다.<인생의 베일>보다 제목 번역이 더 잘 되었다고 봅니다.

페크pek0501 2014-05-23 22:17   좋아요 0 | URL
좋네요. 거짓된 생활...
원제는 The Painted Veil.
원제에 충실한 제목이었나 봐요.
 

 

 

1. ‘아니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서재에 글을 하나 올려야지.’라고 하면서 이 글을 쓴다. 이 세상에서 느려 터진 것은 시간. 이 세상에서 쏜 화살과 같이 빠른 것은 시간. 

 

 

 

 

 

2. 글을 올리려고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글을 찾았다.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에는 ‘페크의 서랍’이라는 폴더가 있다. 이 폴더 안에 서른 개가 넘는 파일이 있다. 모두 미완성의 글이다.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 몰라 쓰다가 말았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유에스비(USB)를 넷북에 꽂으니 거기에도 수십 편의 글이 있네. 오래전에 쓴 글인데 모두 미완성의 글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종이로 된 노트에도 이런저런 글이 있네. 역시 완성된 글은 아니고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쓴 글이다. 이것들을 다 삭제하려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서재에 올릴 만한 글은 아니다. 어떻게든 보충하고 수정하는 손질을 해서 완성하고 싶은 글이니 그냥 놔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내가 글을 많이도 썼구나, 하는 생각.

 

 

 

 

 

3. 창작하는 동안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불안의 황홀>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20세기 일본 문단과 지성계의 신으로 군림한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 정체성 등을 이해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고,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비로소 자신의 사상이 무엇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존재다.

---------- 김도언 저, <불안의 황홀>, 75쪽. ----------

 

 

그런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면서 얻은 것 중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건 아니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가고 있을 뿐이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책 좀 읽었다고 내가 꽤 똑똑한 줄 알 뻔했다. 꽤 현명한 줄 알 뻔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마디로 모자라. 쯔쯧.) 글을 쓰면서 배운 두 가지는 ‘관찰’과 ‘분석’이다.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걸 배웠다. 이 배움은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4. 여러 책을 읽다 보면 표현만 다를 뿐 뜻은 같은 글을 반복해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김도언 저자와 밀란 쿤데라의 글도 그랬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작품보다 훌륭하지 않은 작가는 작품보다 훌륭한 작가보다 훌륭한 작가일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 김도언 저, <불안의 황홀>, 76쪽. ----------

 

 

다시 말해 작품이 똑똑해야지 작가만 똑똑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제 생각에는 소설가보다 위대한 것은 소설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소설가의 편견까지도 극복하게 해 준다고 말할 수 있어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를 소설가는 소설을 쓰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헤르만 브로흐라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소설이 열어 주는 세계관”이라고 표현했지요.

---------- 박성창 외 저, <밀란 쿤데라 읽기>, 92쪽. ----------

 

 

 

 

 

 

 

 

 

 

 

 

 

 

 

 

 

 

 

작품보다 작가가 더 똑똑하다면 ‘창작’을 하지 말고 ‘평론’을 써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로 말하면 ‘내 글’보다 ‘나 자신’이 (속되게 표현하면) 더 후지다. 아마 내 글을 평가한 사람들의 점수가 나를 평가한 사람들의 점수보다 나을 것이다. 맞는 말인가?

 

 

 

 

 

5.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예전에 문학을 배우는 강의 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단편 소설을 써 온 글쓴이에게 누군가가 소설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글쓴이가 변명처럼 설명을 했던 것. 이때 글쓴이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할 것.“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말로써 독자를 이해시키지 말고 작품으로 이해시켜라.“

 

 

 

 

 

6. 유명한 시의 구절을 변형한 말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캐머런 씨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

 

 

“여러분이 배워야 하는 것 가운데에는 지겨운 것도 많습니다.” 그는 관대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아마 그런 것들은 최종 시험에 통과하자마자 잊어버릴 겁니다. 하지만 해부학에서는 전혀 배우지 않는 것보다는 배우고 나서 잊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437쪽. ----------

 

 

해부학에서는 전혀 배우지 않는 것보다는 배우고 나서 잊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이것은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인 메모리엄>에 있는 다음의 구절을 변형해 말한 것이라고 한다. 

 

 

...................................

사랑을 전혀 해보지 못하는 것보다

실패를 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낫다.

...................................

 

 

책을 읽고 나면 책의 내용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고 나서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그래서 나의 책 읽기는 계속된다.

 

 

 

 

 

 

 

 

 

 

 

 

 

 

 

 

 

 

 

 

 

 

 

7. 실패한 일에도 유익함은 있다. 소설 속 필립은 이 년 동안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화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진로를 바꾼다. 그렇다면 그가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이 년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자네가 파리에서 이 년을 낭비한 게 안타깝게 여겨지는군.”

헤이워드가 말했다.

“낭비라고요? 저 아이의 움직임을 좀 보세요. 그리고 나무 새로 비쳐든 햇빛이 땅바닥에 만드는 무늬를 보세요. 저 하늘을 좀 보세요. 글쎄, 제가 파리에 가지 않았더라면 저 하늘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517~518쪽. ----------

 

 

필립은 만약 자기가 그림을 공부하지 않아서 예술을 몰랐더라면 ‘나무 새로 비쳐든 햇빛이 땅바닥에 만드는 무늬’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고 ‘하늘’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풍경을 보고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음악을 듣고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러므로 필립이 실패한 일에도 유익한 점을 찾을 수 있는 것.

 

 

실패가 실패이기만 하지 않다는 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실패를 한 번도 겪지 않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위로다.

 

 

 

 

 

8.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의 리뷰를 반 정도 썼다. ‘우리는 왜 가짜에 빠져드는가’에 초점을 두고 쓰려고 한다. 어째서 가짜는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버섯 중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독버섯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풍경 그림은 가짜 예술품인 경우가 많듯이 사람 또한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여기에 인생의 함정이 있다. 이것을 알면서도 또 가짜에 속는 나. (앞으로도 속겠지.)

 

 

 

 

 

 

 

 

 

 

 

 

 

 

 

 

 

 

 

 

 

9. 요즘 신형철 저,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있다. 2006년~2009년에 쓴 산문이라고 한다. 저자가 1976년생이니 39세인데 무슨 글을 그리도 잘 쓰는지 감탄! 감탄! (이건 다음에 소개할 예정.)

 

 

 

 

 

 

 

 

 

 

 

 

 

 

 

 

 

 

 

 

 

10. 세상 전체가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날씨는 5월의 푸른 나무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화창한 날들이었다.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부조화. 

 

 

많은 부조화 속에 우리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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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5-1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생이 놋북에 새 프로그램을 깔아주는 바람에 그동안 썼던 파일들을 폴더에 담아 잠시 usb에 보관했다 다시 꺼내봤더니 그 사이 몇 개가 날아갔더군요.
분명히 폴더에 다 넣다고 생각했는데, 일기도 있고 모아 놓을 원고도 있는데 못 찾았어요.
좀 아쉽기는 했지만 속이 상할 정도는 아니더군요.
일기는 일부러 태워버리는 사람도 있던데 어차피 다시 볼 것도 아니다 싶고.
원고는 30장쯤 썼던 건데 마침 일부는 누구한테 보냈던 걸 다시 살려서 쓰기로 했어요. 어차피 다시 써야하거든요.
기계라는 게 다 그렇죠. 날려 버리면 흔적도 없는 것.

언니는 참 책 취향이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불안의 황홀>이라. 읽고 싶네요.
<느낌의 공동체>는 사 놓고 몇 년째 못 읽고 있어요.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4-05-10 14:32   좋아요 0 | URL
저는 예전에 엠피쓰리를 오래된 노트북에 꽂았다가 음악이 다 날아가 버린 적이 있어요. 호환성이 없었던 모양이에요. 안전하게 하려면 컴퓨터와 유에스비, 두 군데 보관이 좋죠.

<느낌의 공동체>보다 <몰락의 에티카>가 더 좋다고 글쟁이 친구가 추천하던데 그 책이 두꺼워서 우선 느낌~부터 읽으려고 샀어요. 이게 좋으면 그땐 두꺼운 책도 읽을 만할 것 같아서요.
<불안의 황홀>은 저자가 일간지에 연재하는 글을 인터넷으로 보고 반해서 구입했던 것이에요. 내용보다는 문장을(표현기법을) 감상하는 재미로 읽어요. 문학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에요.

책 속으로 들어가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아요. 평화롭죠. 책은 마음의 약인 셈...^^

2014-05-09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0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3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등이다. 그리고 이번에 <헤세의 문장론>을 읽었다.

 

 

“이 책은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 비평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글을 12권으로 된 전집에서 모으고,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은 『책의 세계』에서 보충한 것이다”(머리말에서.)

 

 

이 책은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나는 책 읽기에 대한 책은 무조건 관심이 간다. 글쓰기에 대한 책도 무조건 관심이 간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 책에는 헤세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참 많다. 그중 열두 가지를 뽑고 그것과 관련하여 내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써 본다.

 

 

 

 

1.

“반드시 읽어야만 하고, 행복과 교양에 필수적인 도서목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45쪽) 그러므로 “최우수 도서 100선이나 최우수 작가 100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57쪽)

 

 

동의한다. 누구나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란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옷은 자기의 개성대로 입으면서 왜 책은 자기의 개성대로 읽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취향에 따라 옷을 골라 입듯이, 취향에 따라 책도 골라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2.

“호기심으로 안달하여 온갖 시대와 나라의 습작과 졸작을 마구 집어삼킨 이보다, 가령 우리나라의 최고 작가 서너 명을 거듭 완벽하게 읽은 사람이 훨씬 풍요로우며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몇 권 안 되는 책을 철저히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읽던 수많은 시간의 감흥을 되새기기 위해 그 책을 손에 집어 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머릿속 가득 수천 권의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더 만족스러우리라.”(60쪽)

 

 

동의한다. 나도 다독보다 정독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우선 책을 다양한 종류로 백 권쯤 읽어라. 그럼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

-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서 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어라.

- 그리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두 번 이상 읽어서 ‘깊이 읽기’를 하라. 그러면 작품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다. 안목이 높아지면 즐겁고 유익한 독서를 할 수 있다.

- 책을 두 권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게 더 좋다. 열 권을 읽는 것보다 다섯 권을 각각 두 번씩 읽는 게 더 좋다.

 

 

 

 

 

3.

(자신의 습작을 읽고 나서 자신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를 평가해 달라는 작가 지망생에게 헤세가 말한다.)

 

 

“하지만 ‘진실’을 찾는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어느 초보자의 습작을 가지고 재능에 대한 이런저런 결론을 내리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106~107쪽)

 

 

“가장 위대한 작가들의 경우에도 초창기 습작을 보면 언제나 참으로 특징적이거나 눈에 띄게 독창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실러의 청년기 시에서도 놀랄 정도의 조잡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108쪽)

 

 

“스무 살의 나이에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를 지은 젊은 시인이 서른이 되어서는 더 이상 그런 시를 쓰지 못하거나 아니면 더 못한 시를 쓰거나 여전히 똑같은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서른이나 마흔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 재능도 있습니다.”(108~109쪽)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글을 보고 단번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또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 

 

 

창작을 하고 싶으나 과연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해 고민하는 작가 지망생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 창작을 하려는 당신은 자연히 독서를 많이 할 것이다. 독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해 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므로 그 자체로 유익하다.

- 그러므로 창작이 잘 되지 않아서 작가가 되지 못하고 나중에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창작하는 시절의 경험은 좋은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 창작을 하고 싶다면 일단 해 보라. 창작을 하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다.

 

 

헤세도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직접 형편없는 시라도 지어보면 안 될까? 그렇게 해 보라. 그러면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158쪽)

 

 

 

 

 

4.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120쪽)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의 경우엔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는데, 어떤 때엔 고민이나 걱정을 잊기 위해 책을 집어 든다. 책을 읽고 나면 정신이 분산되어서 고민이나 걱정의 크기가 반쯤 줄어든 것 같아 좋다. 이것도 내겐 독서의 장점이다. 그런데 헤세는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 하는 독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나와 다른 시각이다.

 

 

 

 

 

5.

“우리는 냉담한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소심한 학생이나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또한 피난민이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할 것이 아니라 호의를 품고 친구나 조력자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120~121쪽)

 

 

독서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표현이 참 좋다. 한마디로 진지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나는 연필을 옆에 두고 책에 밑줄을 그으며 집중해서 읽는다.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읽지 않고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읽는다고 할 수 있겠다.

 

 

 

 

 

6.

“사랑도 예술과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더없이 위대한 것을 아주 조금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에 불타오를 수 있는 자보다 훨씬 불쌍하고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131쪽)

 

 

동의한다. 시 한 줄에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책에 열광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7.

“알다시피 정신분석가들 자신이 정신분석 이전 시기의 문학작품을 어디서나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이자 전거로 이용했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정신분석이 깨닫고 학문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137쪽)

 

 

정신분석학이 등장하기 전에 시인(작가)들은 이미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신분석학이 출현하기 이전에 그와 관련한 내용을 자신의 작품에 썼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을 알지 않고도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자신의 경험에서 알아냈을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여 알아냈을까. 인간을 깊이 이해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감탄스럽다.

 

 

 

 

 

8.

“거창한 문제를 제기하는 입센이나 헤벨 같은 작가들, 저 이상한 거인들은 작품에서 너무나 심오한 문제들을 울려대지만,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그다지 기쁨을 안겨주지는 못했다.”(185쪽)

 

 

헤세가 <인형의 집>이란 문제작을 쓴 입센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에 놀랐다. 이런 작가보다 새나 하늘의 구름을 노래하는 시인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으음... 이것은 생각해 볼 점.

 

 

이해를 돕기 위해 헤세가 좋아하는 시구를 소개한다.

 

 

“세계는 너무나 고요하고

어스름 속에 덮여 있다

너무나 아늑하고 사랑스럽게“(304쪽)

 

 

 

 

 

9.

“세계사의 가장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시시한 작품이 나올 수 있고, 잃어버린 바늘이나 눌어붙은 수프 같은 아무것도 아닌 소재를 가지고도 진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280쪽)

 

 

“바로 이들, 이들 목가시인들, 풀잎 하나도 계시로 여기는 단순하고 눈 밝은 이들 신의 자식들, 우리가 보다 소박한 작가라고 일컫는 바로 이들은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안겨준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가르쳐준다.”(185쪽)

 

 

무엇에 대해 글을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글감의 선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감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 소설의 한 문장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게 글감이다.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사람은 마흔 살이 넘으면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아도 글 쓸 게 충분하고, 마흔 살까지 경험한 것들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재료로 글을 쓰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독서와 사색을 할 것, 이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연애를 하라, 여행을 하라 등의 말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험이 부족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10.

“그런데 나는 특히 나 자신의 책들에서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가장 혐오한다.”(214쪽)

 

 

“나는 세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흥미진진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 객관적으로, 너무나 짧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215쪽)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니, 의외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는 편이라 동의할 수 없겠다. 하지만 문학이란 게 ‘흥미진진하게 쓰기’보다 ‘심오하게 쓰기’가 더 좋다고 한다면 이건 생각해 볼 만하다. 헤세의 <데미안>이란 작품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심오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것.

 

 

 

 

 

11.

“어떠한 사상가의 어떤 책, 어떠한 시인의 어떤 시도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다르게 파악될 것이며, 다른 울림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괴테의 『친화력』을 읽고 단지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내가 이제 다섯 번째로 읽게 될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268~269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긴 시간을 두고 읽을 적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읽을 적마다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셈이다.

 

 

 

 

 

12.

마지막으로 헤세의 메시지 중 가장 무게가 느껴지는 글을 뽑았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정신적으로 획일화하기 위해 민족의 특성을 없애는 것이 결코 저의 이상은 아닙니다. 오,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스런 지구에 다양성과 차이, 구별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인종과 민족, 수많은 언어, 많은 종류의 성향과 세계관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입니다. 저는 전쟁과 정복, 합병을 증오하고 철저히 반대합니다. (…) 저는 ‘위대한 단순화’에 반대하며, 질과 완벽성, 모방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합니다.”(295쪽)

 

 

동의한다.

 

 

 

 

 

 

..........................................

<후기>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눈에 띄어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221쪽)

 

내가 고치면 :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지만,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또는)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2)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현상이다.”(227쪽)

 

내가 고치면 :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사람이다.

 

 

 

3)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300쪽)

 

내가 고치면 :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하거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또는)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함을 위한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 있긴 하지만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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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4-3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 책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전 헤세 오래 전에 졸업했는데...
한동안 헤세가 좋아서 <데미안>을 비로해 몇 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지금 읽으라고 그러면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말입니다.

쓰신 3번 글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건, 엊그제 전에 써 놨던 대본을 연출가한테 보여줬더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그러고, 설명조라는 둥 그러는 거예요.
어찌나 기분이 잡치던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도 어지간히 소심하다 싶었어요.
오늘은 어떠냐구요? 날씨만큼이나 맑음이어요.
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조짐이 보여서요. 웃기죠?ㅋㅋ

페크pek0501 2014-04-30 17:45   좋아요 0 | URL
예, 읽을 만한 책이에요.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요. 이런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아요.
기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기도 하죠. 요즘 좋아하는 건 봄 공기와 걷기와 에세이예요.

아무리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즐기면서 노력하는 자를 따를 수 없겠죠.
그러고 보면 재능이란 별것 아니에요.
"천재는 l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이다."(에디슨) ^^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 작가들이 동시대 작가를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때가 있죠.헤세가 입센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태도로, 서머싯 모옴은 토마스 하디와 헨리 제임스의 명성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하지만...

페크pek0501 2014-05-02 15:29   좋아요 0 | URL
서머싯 몸이 쓴 <과자와 맥주>는 토마스 하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던 것인데 좋게 쓰지 않아서였죠.
시각의 차이라는 게 있겠죠. 누구에게나 좋은 작품이란 없는 건가 봐요...^^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길 가다가 이쁜 여자를 보면 저절로 시를 읊게 됩니다.오~ 여인이여!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곁에 있어주오~하면서요.

페크pek0501 2014-05-03 13:35   좋아요 0 | URL
ㅋㅋ 젊다는 증거입니다. 좋은 일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