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책이 벌써 오다니 놀라고 말았다. 어제 저녁 6시 40분쯤 책값을 입금했던 것인데 오늘 오전 11시쯤에 집으로 배달된 것이다. 알라딘이 이렇게 빨랐던가. 내 예상대로라면 빨라야 오늘 밤이나 내일 배달되어야 했다. 빨리 책을 받게 돼서 기분이 나빴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빨리 받게 되어 신기했고 기분이 무지 좋았다는 얘기다.

 

 

이 페이퍼는 순전히 어떤 님 때문에 올리는 것임을 밝혀 둔다. 어제 쓴 내 댓글에 다음과 같이 답글을 쓰셨기 때문이다.

 

 

....................

 

나 : 책 사는 데 신중한 나머지 9월에 구입하고 나서 아직까지 구입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구입하려고 들어왔어요. ㅋㅋ

 

어떤 님 : 우와! 페크님이 10, 11 두 달이나 건너뛰고 드디어 구입하시는 책이 어떤 책일까 무척 궁금합니다. 어떡하죠? 궁금해서 잠이 안 오면요? 히히

....................

 

 

이렇게 궁금하시다니 내가 구입한 책에 대한 글을 오늘 올리기로 했다.

 

 

9월에 5권의 책을 사고 난 뒤, 책을 사지 않고 있다가 12월 어제 7권의 책을 샀다.

 

 

 

 

1. 이유경 저,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저자는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나 스치는 느낌을 써서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왔는데, 그 글들 중에서 78편을 추려 다듬어 엮은 책이라고 한다.

 

 

 

아는 사람의 책(알라딘의 다락방 님의 책)이라고 해서 의리 때문에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아니다. 저자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므로, 댓글을 주고받기만 하는 사이이므로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내 입장이 곤란할 일은 없다. 다만 소설 속에서 인용한 글에 대해 궁금했고, 그리고 인용한 글과 관련해서 저자가 쓴 글에 대해 궁금했다. 그래서 구입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의리로 산 것도 같다. ㅋ)

 

 

....................

 

나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상대를 기다리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다. 내가 일찍 도착해서 상대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은 얼마가 됐든 나만의 시간이라, 그 시간이 깨지면 좀 불쾌하다.

 

-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142쪽~143쪽.

....................

 

 

 

저자는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일찍 가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에 오히려 상대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면 싫다고 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아마 저자와 약속한 상대는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와도 괜찮으리라. 하지만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왔을 경우엔 오히려 미안해해야 하리라.

 

 

 

으음~ 저자가 직장에 다니면서도 글을 많이 올릴 수 있는 비결을 하나 알아냈도다.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 그것이군. 어느 글에서 보니까 저자는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이런 시간이 모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밖에서는 책을 읽고 집에서는 글을 쓰면 되겠네.

 

 

 

나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가 있다. 국이나 찌개가 끓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식탁에 앉아 책을 보는 것. 내가 시청하려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광고 방송을 하는 동안 책을 보는 것. 친정에서 어머니가 낮잠을 주무시는 동안 책을 보는 것.

 

 

 

사실 이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지 않으면 그냥 하루가 날아가 버릴 때가 많다. 바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청소와 빨래는 기본이고 신문 봐야지, 돈 벌러 나가야지, 장 보고 반찬 만들어야지, 샤워해야지, 머리 말려야지, 전화 오면 받아야지, 알라딘에 들어와야지 등등. 화장실에도 가야 한다.

 

 

 

요즘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읽을 만한 소설을 뽑아야겠다. 내 마음을 사로잡을 소설을.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보다 탁월한 선택이 될 것 같다.

 

 

 

 

 

2. 박성창 외 저, <밀란 쿤데라 읽기>

 

 

 

 

 

 

 

 

 

 

 

 

 

 

 

 

 

 

 

 

이 책값은 참 착하다. 삼천 원이라니. 책값에 비해 표지가 두껍고 멋지다. 읽을거리는 풍성하다. 횡재한 느낌이 든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깊이 읽기’의 책이랄 수 있겠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예전에 김주영 저, <홍어>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 김치수 저, <홍어 깊이 읽기>를 읽었는데 하나의 소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이 책도 내게 그런 경이로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

 

 

 

책을 들춰 보다가 내 눈에 띈 글이다.

 

 

....................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서로 이야기했던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들이 사랑하면서 저지른 수많은 실수 가운데 대부분은 피할 수 있을 텐데라고. 하지만 너무 늦었다. 회귀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를 입에 담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바람이다.

 

- <밀란 쿤데라 읽기>, 134쪽~135쪽.

....................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들이 사랑하면서 저지른 수많은 실수 가운데 대부분은 피할 수 있다고?

 

 

 

내 대답은 노노노노노노 이다. 다시 시작하면 실수를 하지 않고 완벽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걸. ㅋ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또 화를 잘 낼 것이고, 질투를 많이 하는 사람은 또 질투를 많이 할 것이다. 둘째, 사람이 변해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다시 연애를 시작하면 이번엔 다른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 이혼하는 사람이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둘의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서 완벽한 연애라든지 완벽한 결혼 생활이란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덧붙이자면 경험하고 나서 처음보다 두 번째가 조금 나을 수는 있겠다. 그 러 나 조 금 나 을 뿐 이 다.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3.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인간의 굴레에서 2>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

 

희끄무레하게 날이 밝았다. 구름이 나직이 깔리고 쌀쌀한 기운이 도는 것이 아무래도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유모는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주랑 현관이 딸리고 회 벽토를 바른 건너편 집을 버릇처럼 무심하게 힐끔 건너다보고는 아이의 침대 곁으로 갔다.

 

“필립, 일어나.” 유모는 아이를 깨웠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13쪽.

....................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

 

필립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술관을 걸어나왔다. 그들은 잠시 난간에 서서 트라팔가 광장을 내려다 보았다. 이륜마차와 승합마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사람들이 사방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503쪽.

....................

 

 

 

아! 멋지다. 희끄무레하게 눈이 내릴 것 같은 날로 소설이 시작되더니 햇빛이 빛나고 있는 날로 끝나다니... 필립이 등장하며 소설이 시작되더니 필립이 등장하며 끝나다니... (ㅋㅋ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그의 작품에 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작가가 갖추어야 할 자질 중의 하나는 이런 것 아닐까. ‘별것 아닌 일에 수선을 떨 줄 아는 것.’ 그래서 작가란 비가 오면 비에 대해서, 눈이 오면 눈에 대해서, 만남이 생기면 만남에 대해서, 이별이 생기면 이별에 대해서 수선을 떨며 글로 나타내는 자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어떤 사람인가. 독자란 별것 아닌 일에 수선을 떠는 작가에게 빠져드는 사람이 아닐까.

 

 

 

예를 들면 이런 것. 남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여 가을을 깊게 느끼는 자가 ‘작가’라면, 귀뚜라미에 대해서 가을에 대해서 말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깊게 느끼는 자가 ‘독자’인 것. (여기서 ‘독자’란 애독자를 말함.)

 

 

 

나는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을 읽고 작가에게 빠져들었고, 이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구입한 것이다. 이 책이 <달과 6펜스>만큼 나를 매료시켰으면 좋겠다.

 

 

 

아, 그런데 이 책 두 권의 분량이 만만치 않다. 518쪽과 503쪽으로 되어 있네. 두 권을 합하면 천 쪽이 넘는다. 천 쪽을 언제 읽지? 아무래도 올해 안으로 다 읽기 힘들 것 같다. 내년으로 이어지겠다. 2년에 걸쳐 읽게 되겠다.

 

 

 

 

 

....................

오늘 받은 7권 중 4권을 소개했다. 그만 써야겠다.

왜냐하면 글이 길어지면 방문자 님들이 피로할 것 같아서...

아니 솔직해지기로 하겠다. 책을 받은 날이라 7권의 내용을 일일이 훑어보고 나서 이 글을 썼기에 눈이 피로하고 어깨가 아프다.

 

그리하여 오늘은 요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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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2-1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은 당일배송이었는데 익일 밤이 되었는데도 아직입니다ㅠㅠ

페크pek0501 2013-12-15 10:12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럴 때도 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쓰신 님의 글에 제가 첫 추천을 눌렀답니다.
앞으론 그런 일을 당하시는 일이 없으시길...

프레이야 2013-12-1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간의굴레를 중2때 읽었던, 단지 읽었다는 기억만 나네요. 엄마가 사주신 2단 세로쓰기 세계명작전집이었지요. 다시 느끼지만 담백한 페크님^^

페크pek0501 2013-12-15 10:15   좋아요 0 | URL
저는 명작을 학창시절에 읽었다는 분을 보면 부럽습니다.
집에 책이 많았는데도 책과 친하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제가 돈을 주고 직접 구입하기 시작한 대학생 때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집에 있는 책은 전집이라, 세로줄에 글씨가 작았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동화를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아, 이 사실을 제가 지금 댓글 쓰면서 깨닫게 되네요. ^^
님 덕분입니다. ㅋ

노이에자이트 2013-12-16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굴레>는 성장소설이고, 자서전적 요소가 강합니다.다만 모옴의 말년 이야기까지 포함된다면...거의 막장 드라마가 되겠죠...내가 모음 특유의 신랄한 문체를 익혀 모옴 말년을 소설로 쓰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상상한 적이 있었죠.

페크pek0501 2013-12-18 13:39   좋아요 0 | URL
으음~ 노 님이 쓰시면 재밌을 것 같네요.^^
<인간의 굴레에서>란 책 뒤에 있는 해설을 읽어서 주인공과 작가의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를 알게 되었어요. 역시 자서전적 요소 강해요.
세상엔 막장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한 일이 실제로 있긴 해요. ^^


다크아이즈 2013-12-1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책 배달 넘 빨라서 놀라고 있어요.
오늘 저녁 주문하면 내일 오는 시스템이라니, 책 주문하는 재미 때문에 살림 거덜나게 생겼어요.
오자마자 읽고 페이퍼 쓰시는 페크 언냐, 대단해요. 전 야금야금 조금씩 조금씩...

페크pek0501 2013-12-18 13:43   좋아요 0 | URL
살림 거덜나시면 안 됩니다요, 팜 님!!! ㅋ
글쎄, 제가 책 오자마자 글을 올릴 생각을 할 게 뭡니까. 제가 어리석었죠.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땐 구입한 책7권 모두에 대해서 쓸 생각이었다니까요.
그런데 쓰다 보니 지치는 거예요. 7권을 훑어보느냐고 몸의 피로가 쌓여 있었나 봐요.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4권에 대해서만 글 써 올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는 책 받은 날엔 책만 봐야겠어요.
저가 뭐 썬파워라고... ㅋ

 

 

 

 

며칠 전, 은행의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돈을 인출하려는데 갑자기 덩치 큰 개가 나한테 달려들더니 내 발등을 핥는다. 깜짝 놀라서 “어머!” 하고 소리쳤더니 개 주인이 미안하다며 개를 데리고 간다.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이 “개를 데리고 다니려면 끈으로 묶어야지.”라고 말한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다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서 갑자기 개가 튀어나와서 놀랐던 일도 있다. 그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개를 데리고 다니려면 끈으로 묶어야지.’라고.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얼마나 인간중심주의의 생각인지 다음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새장에 갇힌 새는 기분이 언짢다.

기뻐서 지저귀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서 지저귄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가장 충실한 친구인, 그토록 영리한 개를 사슬에 묶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개를 볼 때마다 나는 그 개에 대한 절실한 동정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수년 전 <타임스>지에 보도된 사건을 떠올리고 통쾌함을 느낀다. 즉 큰 개를 쇠사슬에 묶어 두었던 귀족이 때마침 뜰 안을 거닐면서 개를 쓰다듬어 주려고 곁을 지나가자 개는 곧 그의 팔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물어뜯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 행동으로 개는 “당신은 나의 주인이 아니고 나의 짧은 생애를 지옥으로 만든 악마다.”라고 말한 것이다. 개를 쇠사슬에 묶은 사람은 모름지기 이런 변을 당해야 한다.

 

 

- A.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 325쪽.

 

 

 

 

개를 위해서 사슬을 풀어야 할까, 타인을 위해서 사슬에 묶어야 할까.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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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흙 없는 아파트에서 키워야 하는 일부터 힘들어요. 개가 얼마나 힘들까요. 어쩌다 한 번 풀어 주었는데, 그렇게 좋아서 날뛰듯이 뛰어다니리라 느껴요. 시골에서도 개를 한 번 풀면 몇 시간 동안 동네를 몇 바퀴 빙빙 돌며 좋아한다고 해요. 뛰고 싶은 본능을 도시에서 줄로 묶어서 가두면... 서로서로 고단하지요.

페크pek0501 2013-12-15 10:19   좋아요 0 | URL
그래서 개를 보면 가엾단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편한 대로
개를 키우니까요. 그래서 사랑하는 개를 보고, 다음엔 사람으로 태어나라, 하고
말하나 봐요. ^^
 

 

 

 

 

 

정신 수양을 위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어떤 현자의 말인데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 나는 그 가르침을 아주 꼼꼼하게 따르고 있다. 날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 서머싯 몸 저, <달과 6펜스>, 16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읽다가 웃음이 나왔다. 이 소설의 화자가 나를 웃겼다. 다시 읽어 봐도 재밌다. 마치 자신은 웃지 않으면서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처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라니. 그걸 싫어하지만 매일 실천하고 있다니.

 

 

 

나도 정신 수양을 위해 내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며 살아 볼까? 무엇이 있을까? 물론 좋은 일이어야 되겠지.

 

 

 

-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

- 글을 잘 쓰는 누군가에게 나보다 글 잘 쓴다고 말해 주는 일.

-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다가 뒷사람을 앞에 서게 양보하는 일.

 

 

 

이것 다 어렵잖아. ㅋㅋ

 

 

 

- 길거리의 쓰레기 중에 아주 더러운 게 있으면 어떡하나. 쓰레기에 개똥이 묻어 있을 수 있잖아. 또 토사물이 묻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므로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 글을 잘 쓰는 누군가에게 ‘당신 참 잘 쓴다.’라고 말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보다 잘 쓴다고 말해 주는 것은 쉽지 않잖아. 물론 그렇게 말한 경험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인심을 쓰듯 이걸 실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데, 게다가 뒷사람을 앞에 서게 양보하다니.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 보니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기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만약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 같다.

 

 

 

이건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시길.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하겠습니까?

 

 

 

 

 

 

 

 

 

 

 

 

 

 

 

 

 

 

 

 

 

 

 

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이 소설의 화자와 같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을 싫어한다. 밤이 되면 잠자기 싫어서 억지로 잠을 청하고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어서 억지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이런 소원이 있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잠자고 싶은 시간에 잠을 자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 이런 소원을 생각하다가 알아낸 게 있다. 이런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 잠을 방해하는 소리를 내는 식구들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을 차려 줘야 하는 식구들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독신자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내 소원을 이루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독신자라면 직장에 다니더라도 휴일이면 아무 때나 자기 맘대로 잠을 자고 아무 때나 자기 맘대로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을 부러워하다가 언젠가 나도 한 번쯤은 혼자 살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애들이 결혼을 하고 남편과 내가 주말부부가 되면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집에서 밤에 혼자 잠자는 게 싫어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여전히 즐기지만 저녁이 되면 식구들이 들어오면 좋겠다.

 

 

 

이렇게 정리하련다.

 

 

 

 

 

젊음이 아름다운 건 젊음이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젊음이 늘 유지된다면 아름답게 여길 리 없다. 꽃이 아름다운 건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꽃이 늘 피어 있다면 아름답게 여길 리 없다. 마찬가지로 잠은 시간에 구애받으며 짧게 자야 달콤한 법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정해진 시간의 아침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의 밤에 잠자야 한다.

 

- pek0501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행복이란 긴 시간 동안 가질 수가 없겠구나, 짧아야 행복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달과 6펜스>를 읽지 않았으면 글 쓸 게 없을 뻔했다.

이 책으로 인해 글 쓴 게 다섯 편이나 된다.

<달과 6펜스>는 내게 ‘사골’이다. 여러 번 우려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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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12-08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굿모닝!
휴일에 늦잠 자고 싶은데 평소 같은 시간에 눈이 떠져요.ㅠ
금욜, 토욜 늦게 자고 싶은데 밤 11시30분되면 막 졸려요.
나도 잠자기 싫어해 봤으면...잠을 지배하고 싶어라.
착한 일 두가지 하는게 더 쉽겠다! 싫은 일하면 더 보람 있으려나요?
요즘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 주문처럼 외우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13-12-09 11:00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굿모님!
으음~ 님은 그러실 것 같아요. 출퇴근하다 보면 얼마나 달콤한 잠에 빠져 드실지
짐작이 갑니다.
님의 말씀이 맞네요. 착한 일 두 가지 하는 게 낫겠다 싶네요. 우리는 그럽시다. ㅋ
싫은 일을 하면 보람이 있기보다 자기 극기 훈련이 되지 않을까요?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요. 도리없지요.

하늘바람 2013-12-0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사골같은 책 재밌네요 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정신 수양보단 스트레스돌거같아요 특히 3번

페크pek0501 2013-12-09 11:0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 사골 같은 책이랍니다. ㅋㅋ
맞아요. 싫어하는 일은 스트레스를 주겠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 중에서도 찾아보면 남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프레이야 2013-12-0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모옴은 유머까지 갖췄네요. 페크님도요ㅎㅎ 절대공감이에요. 저도 아침 제시간에 일어나기와 밤 제시간에 잠들기가 제일 싫어요ㅋ 어렵기도 하구요. 늦게 일어나거나 날밤새거거나 ᆢ 아무려나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전 결혼식장 갑니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 보면 기분 더 좋아질 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13-12-09 11:04   좋아요 0 | URL
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보면, 당신은 이제부터 고생문이 훤하다, 좋은 세월 다 갔다, 그래요. 히히...
애 낳아서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살림하는 건 어떻고요.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연애할 때가 좋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우리 딸들은 일찍 시집 보내지 않을래요.
제 맘대로 되지 않겠지만... ㅋ


그렇게혜윰 2013-12-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하는 일 두 가지 매일 하는데요, 밥하는 것 그리고 화장실 가는 거?ㅋㅋ 둘 다 너무 귀찮아요. 서머싯 몸이 저렇게 유머 있는 줄 몰랐네요^^

페크pek0501 2013-12-09 11:1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이 재밌네요...
밥하는 것과 화장실 가는 것이라... ㅋㅋ 그럴 듯하네요.
저는 밥하는 것보다 반찬 만들기가 더 싫어요.
특히 외출시엔 화장실 가기가 귀찮고요.

서머싯 몸의 팬이랍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마녀고양이 2013-12-1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 상담받을 때, 제가 차마 못하는 것들을 해보라고 자꾸 부추기시는거예요.
그래서요, 저는 빨간 불에, 사람이나 차가 별로 없는 거리에서 그냥 건너요! 쿡쿡.....
제가 아주 고지식했거든요~ ^^

저두저두,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유머가 있는 분들 정말 좋아해요.
예를 들면, 마립간님? 아하하.

페크pek0501 2013-12-13 09:51   좋아요 0 | URL
아하하~ 마립간 님, 재밌는 것 맞아요...ㅋㅋ

차마 못하는 것들을 해 보라는 게 자기 극복 훈련을 위한 것 같네요.
저도 고지식한 면이 있긴 해요. ^^

노이에자이트 2013-12-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은 결혼 앞둔 여자들을 보면 고생문이 환하구나 한다지만...그래도 노처녀가 되어가는 친인척을 보면 "언제 결혼하고 애 낳을래..."하는 생각도 들 거에요.

페크pek0501 2013-12-13 09:54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아마도 저는 다 해 봤기에 그런 생각을 하나 봐요.
만약 아직도 제가 올드 미스로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엄마에게 되게 볶임을 당했을 것 같아서...
제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맞선 시장에 내보내신 어머니거든요...
저는 제 딸한테 안 그럴 거예요. 후후~~
 

 

 

어제 미세먼지가 많아서 되도록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황사 때문에 봄이 싫어졌는데 이젠 겨울에 미세먼지라니. 별 게 다 속 썩인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걷는 운동 삼아 친정에 가려 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갈 수가 없었네. 시장에 가서 사 올 게 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갈 수가 없었네. 청소할 땐 이불을 털기 위해 창문을 여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열 수가 없었네. 부엌에서 가스 불을 쓸 땐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열 수가 없었네. 미세먼지 하나가 참 불편하게 만든다 싶었다.

 

 

 

어제 처음으로 발령됐던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오늘 해제되었다. 창문을 통해 확인해 보니 어제 희뿌옇게 보이던 먼 산이 오늘은 선명하게 보인다. 와우, 신난다. 오늘은 밖에 나가도 되겠다.

 

 

 

평상시에는 공기의 존재 같은 건 아예 생각하지 않고 사는데 이렇게 불편을 겪고 나니 맑은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전쟁이 나 봐야 평화의 소중함을 알듯이. 병이 나 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듯이.

 

 

 

티브이 뉴스를 통해 중국발 미세먼지에 폐암을 유발하는 오염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걸 알게 됐는데, “현재 서울 평균 미세먼지는 보통 수준으로 돌아왔으나 주말에는 다시 중국에서 날아온 스모그의 영향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것이 전망되고 있다.”(한국경제, 2013-12-06)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 공기 맑은 날이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될 것 같다. 이런 것까지 감사하며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

어제 미세먼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쓴 블로거가 없는 거지?

나만 심각하게 생각한 건가?

글이 내 눈에 띄지 않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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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0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분만 바람을 안 마셔도 모두 죽잖아요.
사람도 풀도 나무도.
그러니, 맑은 날이란
우리한테 엄청난 축복이라고 느껴요~

페크pek0501 2013-12-08 00:38   좋아요 0 | URL
예, 푸짐한 햇볕만 축복이 아니었어요.
바람도 공기도 축복이었어요. ~

stella.K 2013-12-0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도 한마디 쓸 걸 그랬어요.ㅎㅎ
저도 어제 외출할까 하다가 포기했어요.
그저께 머리 자르러 잠깐 외출했는데 집 앞에 조그만 축구장 있는데
사람들 축구하고 난리더군요.
운동하면 숨이 차서 공기를 더 많이 흡입할텐데 사람들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더라구요. 내가 예민한 건지 원...
다행히도 오늘은 날씨가 맑네요. 중국이 어떻게 좀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줘야 할텐데... 중국은 더하다 잖아요.ㅠ

페크pek0501 2013-12-08 00:39   좋아요 0 | URL
중국은 엄청 심하지요. 앞이 보이지 않아 운전 사고가 많이 일어날 정도라니까요.
두 나라가 맑은 공기를 위한 성금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blanca 2013-12-0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새 미세먼지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어요. 게다가 어린 아가까지 있어서 더욱요. 방사능이야 보이지 않으니 어찌 어찌 잊는데 이건 창밖에 스모그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니 정말 지구 대재앙 같고. 오늘 파란 하늘 보고 신나게 환기시켰어요. 지금도 막 문 열고 싶고. 앞으로 장기전이 될 텐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중이랍니다.

페크pek0501 2013-12-08 00:40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 그렇죠? 정말 그래요.
방사능에 스모그에... 점점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맑은 공기를 배출하는 공장이라도 지어야 할까요? ㅋ
 
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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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과 6펜스>에 매료되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독자는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화가로서 성공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은 화가로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결과가 아니라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성공에 이르게 되었는지’가 될 것 같다. 그 과정의 전개가 이 소설의 줄거리인 셈이다. 서머싯 몸은 고갱의 생애를 연구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이 책의 줄거리를 구상했다고 한다. 아마 서머싯 몸은 폴 고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이 흥미로웠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소설에서 내가 제일 주목한 것은 예술가로 살게 되는 스트릭랜드의 내면의 세계다. 때로는 위악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이고 남녀 간 사랑의 가치를 무시하고 도덕 같은 건 아예 고려해 보지 않는 듯한 예술가의 독특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웠다. 인간의 유형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햄릿형이 있고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돈키호테형이 있듯이 서머싯 몸이 창조한 스트릭랜드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이 소설을 오래전에 읽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읽으면서 서머싯 몸이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였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땐 반전이 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반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화자의 생각에 반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전 소설이 이 정도면 문학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확보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읽으면서 이 소설의 팬이 되었다.

 

 

 

다른 소설과  ‘재미’를 비교하자면 <달과 6펜스>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보다 재밌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만큼 재밌다. 내가 이렇게 재밌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번에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그 뒷얘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던 게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읽는다고 해도 큰 물줄기의 내용만 생각날 뿐 작은 물줄기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궁금증을 가지며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글을 쓸 때 글쓰기의 제일의 목적은 자신이 즐겁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부와 명성이 따른다고 해도 글쓰기가 즐겁지 않다면 많고 많은 일들 중에서 글쓰기를 택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한가로워서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책의 내용에 끌려 어쩔 수 없이 책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를 즐겁게 해 줄 것을 의무로 느껴야 한다. 그 의무를 소홀히 할 때 독자는 그 작가를 외면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소설이 아무리 명작이라고 해도 독자로 하여금 인내를 갖고 읽게 하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한다. <달과 6펜스>처럼 말이다.

 

 

 

 

 

 

 

2. 줄거리 일부를 소개하다

 

 

 

스트릭랜드는 왜 가출했을까?

 

 

 

증권 중개업자인 찰리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한다. 그에겐 아내가 있고 두 남매의 자식이 있으며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을 때이다. 그는 가출한 이유에 대해선 한마디 없이, 내일 아침에 파리로 떠날 것이며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간략하게 쓴 편지 한 통만 아내에게 남기고 떠난다.

 

 

 

주위에선 연애 사건 때문에 그가 가출했다고 소문이 났고 그의 아내조차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서 가출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스트릭랜드)이 돌아오면 지난 일로 그냥 묻어 두겠다고 하며 화자에게 파리에 가서 비싼 호텔에 묵고 있을 남편을 만나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의 아내의 부탁을 받은 화자는 파리에 가서 직접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그런데 그는 비싼 호텔에 묵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자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지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께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요? 그렇게 대하시니 말입니다.”

“없어요.”

“그럼 부인께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소.”

“그렇다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십칠 년이나 같이 살아온 사람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이런 식으로 버리다니 말입니다.”

“심하지요.”(62쪽)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소.”(67쪽)

 

 

 

스트릭랜드가 가정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몰두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쪽)

 

 

 

남의 아내를 빼앗아 함께 사는 스트릭랜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화자는 삼류 화가인 더크 스트로브와 함께 스트릭랜드를 찾아간다. 가서 보니 스트릭랜드의 방엔 난로가 없었고 테이블 위에는 그림 물감, 팔레트 나이프 등이 있었다. 그는 작아 보이는 침대에 불편스럽게 누워 있었는데 언뜻 보아도 몸에 열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태에 빠진 환자여서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다. 더크 스트로브는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기의 집으로 그를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고 집에 가서 아내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내는 스트릭랜드가 싫다며 집에 데리고 오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

 

 

 

“그 사람은 훌륭한 화가야.”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난 그 사람 싫어요.”(129쪽)

 

 

 

이렇게 싫다고 말하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하여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오게 하고 아내에게 스트릭랜드를 간호하도록 만든다.

 

 

 

이삼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화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스트로브를 만난다. 스트로브는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화자는 나중에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스트로브가 화자를 찾아와 말해 주었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이제 웬만큼 병이 나은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가 당장 나가겠다고 하더란다. 그러고는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스트로브의 아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더란다. 스트릭랜드가 모자를 찾는 중에 아내가 불쑥 이렇게 말하더란다. “여보, 저는 이 분을 따라가겠어요. 당신과는 이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라고.

 

 

 

“모르시겠어요? 제가 스트릭랜드 씨를 사랑한다는 것을? 저이가 어디로 가든 전 저일 따라갈 거예요.”

“하지만 당신도 알지 않소. 저 사람은 당신을 절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따라가선 안 돼. 당신 앞날이 어찌 되려고 그래.”

“다 당신 잘못이에요. 당신이 저일 데려오자고 우기지 않았어요.”(146쪽)

 

 

 

스트로브는 아내에게 또 한 번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와 스트릭랜드는 함께 살게 되고 만다. 스트릭랜드를 싫어한다고 강하게 표명했던 그녀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었을까. 놀라운 반전이다.

 

 

 

여자가 자살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 스트로브는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향해 다가왔다.

“자살해 버렸네.” 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놀라 부르짖었다.(171쪽)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을 시도했고 병원에 실려 갔으나 죽고 말았다. 이에 대해 보통 사람 같았으면 죄책감을 가질 법도 한데, 스트릭랜드는 죄책감 같은 것을 갖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좁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는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방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두려고 하는 거요. (…) 나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내가 자기 것이 되어주기만 바랐지. 하기야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빼놓고 말이오. 난 혼자 있기를 바랐거든.”(203쪽~204쪽)

 

 

 

혼자 있기를 바라는 남자와 함께 살았던 ‘스트로브의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녀의 자살은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 블란치 스트로브는 나한테 버림을 받아서 자살한 게 아냐.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그랬지. 자, 이제 그만하면 그 여자 이야기는 충분하오. 전혀 중요할 것 없는 사람이니까. 갑시다. 내 그림을 보여줄 테니.”(205쪽)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줄거리는 여기까지...

 

 

 

 

 

 

 

3. 이 소설의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다

 

 

 

이 소설의 주제는 작품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작품 해설, 310쪽.

 

 

 

이 작품의 뒷부분에서 아브라함이란 사람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이 일화 속에 작가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일화란 아브라함이 외과의로서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버리고 남 보기에 초라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로 가서 살게 된 것을 말함이다.

 

 

 

알렉 카마이클이 아브라함에 대해서 “사람이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망쳐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라고 말하자 화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259쪽~260쪽)

 

 

 

이것이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겠다. 행복한 삶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의 생각에 좌우된다는 것이겠다.

 

 

 

요즘 실내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개의 털을 손질하고 이를 닦이고 목욕을 시키고 배설물을 치우고 살면서 행복해 한다. 반면에, 개를 키우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들을 보면서 ‘왜 사서 고생을 할까’ 하고 의아하게 여긴다. 행복한 삶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그렇게 다르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삶 - 높은 수입에 예쁜 아내가 있는 저명한 외과의로서의 삶 - 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으며 ‘행복한 모습’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덧붙여 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6펜스’의 세계가 ‘달’의 세계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4. 나는 ...

 

 

 

스트릭랜드와 아브라함.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모험적인 삶을 택하고 안락한 삶을 버렸다. 그들처럼 우리도 ‘달’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6펜스’의 세계를 버릴 수 있을까. 자신의 이상을 위해 현실을 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현실에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있었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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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0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와 비슷한 알레고리를 가진 이야기들은 책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해요. 스트릭랜드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실제로도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소설에 매료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어떤 인물이 <인생이라는 모험에 찬 여행>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 여행길에 올라선 여행객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물든 끝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든 그 모든 건 여행객들 각자의 취향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란 '강물처럼'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을 탈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 * *

"인간의 마음이란 한 번 새로운 생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 절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 올리버 웬델 홈스

페크pek0501 2013-12-02 13:42   좋아요 0 | URL
오렌 님... 인간의 마음이란 강물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걸 제가 글로 이미 써 놨어요. 아직 미완성의 글이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이에요. ㅋㅋ
언젠 완성되면 꺼내 보도록 할게요.
늘 좋은 인용을 기대하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0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미주의자들...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방해되는 것은 사람이든 뭐든 다 버리는 사람들이죠.그래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은 모두 작품 파괴 특히 불지르기 아니면 자살로 끝맺습니다.저는 미시마 유키오<금각사>,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연이어 읽기를 권합니다.단, 정신이 혼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3-12-06 10:22   좋아요 0 | URL
아, 노 님!
<금각사>는 읽었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보관함에 있어요.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 자살을 했다고 해서 놀랐었죠.
예술가가 별난 건 있는 것 같아요.ㅋ

다크아이즈 2013-12-0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육펜스를 다 원해서 삶이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지요.
일직선 위에, 경상도 말로 쌔리빼딱하게 달쪽으로 많이 기울면 예술이 되고
육펜스 쪽으로 많이 기울면 허세 쩐 일상이 될 터인데,
저 같은 범부는 둘 다 쪽으로 쌔리빼딱하게 기울어지기를 바라니 되는 게 없사옵니다.
스트릭랜드는 완전히 달쪽으로 기운거지요.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 걸까요?

서머싯 모옴이 얼마나 잘 쓰는 작가인가는 저도 이 책을 통해 일찍이 깨쳤지 뭡니까!
페크 언니, 12월에도 맹활약을^^*

페크pek0501 2013-12-06 10:25   좋아요 0 | URL
팜 님이 방문하신 건 오랜만인 것 같군요. 반가워요.^^
한동안 활동이 뜸하셨죠?
저야 뭐 맹활약을 하는 수준은 못 되고요... 그냥 꾸준히요...
저 같은 사람을 지구력이 있다고 하나요? ㅋ

앞으로 님의 맹활약을 지켜볼꼬예요. ㅋㅋ

루쉰P 2013-12-1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어 봐야 겠어요 ㅎㅎㅎ 가뜩이나 사놓고 읽다만 책이 많지만...아,,,페크님 리뷰 읽으니 사고 싶어졌어요...아...아...

내용은 참 흥미롭네요. 하지만 주인공이 자살한 여인에게 두고 생각하는 마음이나, 가정을 내팽게치고 자신의 그림만을 그리기 위해 산다는 태도는 좀 이기주의적이랄까...그런 생각이 드네요. ㅎ

하지만 흥미를 끄는 내용이에요 ㅋ

페크pek0501 2013-12-19 23:00   좋아요 0 | URL
아, 루쉰 님 오랜만이어요. 다시 활동 시작하셨나요? 반갑습니다.

이기주의자 맞습니다. 바람직한 인간형은 아니죠. 하지만 천재 화가인 건 틀림없답니다.
이 책 추천합니다. 재밌는 고전인데다 배울 점도 많아요.
작가가 인간에 대한 안목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자주 뵙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