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마당이었다. 젊은 남자와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각각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여자아이는 “아빠, 같이 가.”하며 젊은 남자의 자전거를 뒤따르며 활짝 웃었다. 젊은 남자는 그런 여자아이를 뒤돌아보며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젊은 아빠와 그의 딸아이가 크게 원을 그리며 다정하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내 발걸음이 멈췄다.

 

 

그 여자아이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지 모를 것이다. 그 아빠는 알까.

 

 

나에게도 그 여자아이처럼 부모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고, 그 젊은 아빠처럼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땐 그 시간들의 풍경이 나중에 그리워할 아름다운 풍경인 줄 몰랐다.

 

 

아무리 산과 들과 강이 아름답다고 해도 자연의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건 사람이 있는 풍경이리라.

 

 

 

 

 

연기

 

 

호숫가 나무들 사이 조그만 집 한 채.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까.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있는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사람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이 있기에 이 풍경은 적막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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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5-1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히트 읽고 계시는군요.
전 브레히트는 읽어본 적이 없는 (쿨럭;;;)

어린 딸과 마주하면서 이것저것 함께 하다보면 어린 제가 딸아이와 함께 노는 것만 같아서 은근 치유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육아를 하는 요즘은 춤을 추는 것처럼 은근 육아를 즐기고 있어요.

제목이 좋은데요. 책표지도.

페크pek0501 2013-05-17 18:39   좋아요 0 | URL
육아를 즐기는 건 좋은 일이죠.
저도 아이와 놀면서 정말 아이인 것처럼 수준 낮춰 놀았는데 재밌었어요. 그런데 이제 딸들이 커서 수준이 높아져 그런 놀이가 통하질 않네요. 먼 훗날 손자손녀들하고 놀아야 되려나요. ㅋㅋ
요즘 앤 님의 서재활동을 즐겁게 보고 있답니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좋아요.

프레이야 2013-05-1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브레히트의 다른 시집 한권이 달랑 있어요. 저 시에서만 봐도 역시 세상에 주인공은 배경이 있어야 아름답군요. 아니 어느 것이 주인공이 배경인지 경계가 모호하겠죠. 조화로운 게 아름다운 것인 거 같아요. 정말! 물론 사람도요. 사람의 얼굴도 풍경이라면 좋은 풍경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더 들었답니다. ^^

페크pek0501 2013-05-17 18:4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은 좋은 이미지를 갖고 계시니 이미 좋은 풍경을 이루신 거죠.

아, 그런데 이 후진 글의 추천 수가 높지 않나요? 후한 점수를 받은 기분이에요. 황송해요... ^^

노이에자이트 2013-05-1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자식이 커서 부모가 되죠.괴로운 옛날도 추억으로 넘기면서...

페크pek0501 2013-05-17 18:42   좋아요 0 | URL
괴로운 옛날도 추억으로 넘기면서... ㅋㅋ 추억 중엔 괴로운 추억도 있겠군요. 그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3-05-1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 괴로울 리 있겠어요? 괴로운 옛날도 추억이 되면 아름답다 이거죠...

페크pek0501 2013-05-19 12:50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알아들었사옵니다. ^^

좋은 봄날 보내세요. ^()^

감은빛 2013-05-2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지를 걸려는 건 아니구요.
저는 순수하게 아름다운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사람이 개입하면 아름다움이 퇴색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속뜻을 제 방식으로 이해하면
"(그리운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풍경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이렇게 이해가 되네요.

페크pek0501 2013-05-23 15:2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감은빛 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개인의 생각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 딴지는 아닌 것 같고요.
님의 생각도 일리는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음.)

그런데 저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가도 자연 풍경보다는 사람이 있는 풍경의 그림 앞에서 발검음을 멈추어 오래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꼭 그립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풍경이 있더라고요.

<총, 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독자가 내 생각에 동의한다면 그건 쓰지 말았어야 할 책인 거다."
요즘 이 말에 용기를 내어 글을 쓰고 있답니다. 자신 없는 글일 때가 많거든요.
또 뵈요. ^()^

 

 

 

 

 

 

시간을 내서 양서를 읽도록 하자. 특히 올바른 주장을 펼치는 사회철학자들의 생각을 가까이하라. 이런 책들을 꾸준히 읽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드물다. 그리고 올바른 생각의 틀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자주 갖도록 하라.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영향력을 미치는 대상을 제대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느낌과 감각을 주의하고 사실과 진실 위에 있는 주장이나 의견을 판단하라.

 

 

- 공병호 저, <습관은 배신하지 않는다>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십 대에 좋은 선배를 만났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 상담할 만한 사람 또는 본받을 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 인생은 혼자만의 의지로 가는 길이 아니고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배치’를 잘하는 게 필요하겠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닮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멀리 두는 게 필요하겠다.

 

 

직접 만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있다.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그리고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책들이 내 주위에 있다. ‘어떤 사람을 알고 지낸다’는 것 그리고 ‘어떤 책을 알고 지낸다’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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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5-2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관은 배신하지 않는다. - 저 같은 경운 나쁜 예로 증명이 되네요.
잠으로 모든 피로를 회복하려 하니 만날 잠이 와요.
오늘도 그간 좀 잠이 모자랐더니 낮에 모임하면서 계속 졸았지 뭡니까.
빨리 집에가서 자야겠다, 자야겠다 이러면서 꾸벅꾸벅 졸았다는...
나쁜 습관에서 빨리 헤어나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습관이 배신하지 않도록 좋은 습관들이기 연습을 해야겠어요.

멘토를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이십대 때 그건 거의 로또 맞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땐 그걸 몰랐다는.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 해주면 멍~ 때려요. 그들도 지나고 나면 후회하겠지요. 그리고 이해하겠지요. 엄마가 왜 그런 소리했는지를...

페크pek0501 2013-05-30 14:05   좋아요 0 | URL
공감하시는군요. 이십 대에 멘토를 만나는 건 큰 행운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때 그걸 몰랐죠. 요즘 젊은이들은 알았으면 좋겠어요. 깨달음은 늦을 때가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저도 잠이 많아졌어요. 어떤 땐 12시간을 누워 있는 적도 있어요. 자다, 깨다, 자다, 깨다 그러죠. 나이 들어 체력이 약해진 탓인가요?

오랜만의 나들이이시죠. 무척 반갑습니다. (^()^)
 
“새로운”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명남 옮김 / 까치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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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감정이 생기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 그 해답을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한 판단과 인식에 관여하는 우리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층위에서 작동한다. 의식이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의식은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의식 아래의 숨겨진 마음이다.

 

 

 

이 책의 제목 ‘새로운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연구했던 무의식과 구별된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환자들의 행동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적 과정에 지배될 때가 많다는 옳은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기술적 도구가 없었다. 오늘날에는 fMRI 등이 등장함으로써 과학자들은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런 연구 결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새로운 무의식>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여러 실험이 소개되는데, 각 실험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뿐만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각 장마다 그 주제에 맞는 금언을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하게 만든 점이다.

 

 

 

 

밑줄긋기

 

....................

 

우리는 없던 일을 지어내서 기억한다 : 거짓 기억과 거짓 정보를 심는 것은 워낙 쉬운 일이라, 생후 3개월 된 영아, 고릴라, 심지어 비둘기와 쥐에게도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다. 특히 인간은 거짓 기억에 취약하다.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짐짓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거짓 기억을 유도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그는 그 사건은 “기억하되” 기억의 원천은 잊는다. 그래서 상상의 사건을 실제 과거로 혼동한다.(105쪽)

 

무의식은 감각이 제공하는 불완전한 데이터를 받아서 빈틈을 메우고, 그 인식을 의식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어떤 장면을 볼 때 사진처럼 선명하고 윤곽이 뚜렷한 그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의 작은 일부만 또렷할 뿐이고 나머지는 의식 아래의 뇌가 마음대로 그려낸 것이다. 뇌는 기억에도 그런 기교를 쓴다.(108쪽)

 

 

 

 

평가엔 무의식이 영향을 미친다 : 우리는 타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합리적이고 의식적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212쪽)

 

이 발견 -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더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 에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결론이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사업적 거래에서 내집단 구성원을 더 선호하고, 그의 작업과 결과물을 외집단 구성원의 것에 비해서 더 우호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228쪽)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 진화는 인간이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뇌를 설계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존을 돕도록 설계했을 뿐이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관찰한 뒤,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그것을 이해한다.(264쪽~265쪽)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 고등학교 최고학년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했던 조사를 보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스스로 평가해보라고 했을 때, 100퍼센트(모두)가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했고, 60퍼센트가 상위 10퍼센트로 평가했고, 25퍼센트가 상위 1퍼센트로 여겼다. 지도력에 대해서 묻자, 2퍼센트만이 자신을 평균 아래로 평가했다. 교사들이라고 더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수의 94퍼센트가 자신은 평균 이상으로 일을 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자기 평가가 부풀려지는 경향성을 가리켜 “평균 이상 효과(above-average effect)"라고 부르며, 운전 실력에서 관리 능력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그 영향을 확인했다.(269쪽~270쪽)

 

이런 과대망상은 기업계에서도 법칙이나 만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자신의 회사가 동종업계의 다른 전형적인 회사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회사이니까.(270쪽)

 

 

 

 

우리는 과학자가 되기도 하고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 :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진실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라고 말했다. 과학자의 길과 변호사의 길이다. 과학자는 증거를 모으고, 규칙성을 찾고, 관찰을 설명하는 이론을 구축하고, 그것을 시험한다. 변호사는 거꾸로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고 싶은 결론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아보고, 지지하지 않는 증거는 깎아내리려고 한다. 가끔은 객관적 진실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가끔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열렬히 변호하는 사람이 된다. 두 접근법은 늘 겨루면서 우리의 세계관을 만든다.(273쪽)

....................

 

 

 

 

이 글의 마지막은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말로 마무리한다.

 

 

“자신이 하는 선택의 이유와 방식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 믈로디노프를 따라서 이 근사한 여행을 마치고 나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인코그니토>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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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5-0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능력을 잘 모를 경우엔 과대평가하는 게 자신에겐 나은 것 같아요.
과소 평가해서 우울해하는 것 보단 과대평가해서 자신만만하다 보면 뭔가 진척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언제나 주춤하다 보면 길은 저만치 멀어져 있더라구요.
괜한 넋두리 페크 언냐께 하고 휘리릭~~

페크pek0501 2013-05-08 12:02   좋아요 0 | URL
최근 기죽었다가 괜찮아졌어요. 기죽지 않으려면 마음을 비우기, 가 답이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면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마음 비우기 연습 중...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자신감인 듯해요.
과대평가할 수 있다면 본인에겐 좋은 것, 맞아요. 남들이 볼 땐 속터지려나요? ㅋㅋ
그래도 저도 저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착각이 필요한 듯...

저는 팜 님,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진도가 느려서 늘 몇 박자 뒤처져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게획을 세우지만 실천은 반밖에 못해요.
영차, 영차!!! 팜 님이 좀 끌어 주시길...^^

수이 2013-05-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음 역시 보통 사람들이 대개 갖고 있는 거였군요.
하지만 저는 살림에 있어서만은 역시 작아질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해도 늘지를 않네요. 후훗.
시엄마는 역시 이런 말씀을 하셨지만요.
"책 읽는 거 즐기는 것 절반이라도 보태서 살림을 즐긴다면
그런 소리는 못할텐데 -_-;;;;;"

애교에 있어서만은 역시 자신 있는지라 번번이 애교로 넘어가지만
역시 살림을 잘하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져요 한없이 ^^;;

페크pek0501 2013-05-08 13: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해요... 저는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저만은 살아남을 것 같단 생각을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과대평가예요. 나만은 운이 좋을 거야, 하는...

살림... 앤 님도 저와 같은 과의 분이시군요.ㅋ 저도 주부 경력이 몇 년인데 아직도 부엌에서 유능한 주부생활을 못해요. 반찬 만큼은 친정 엄마를 닮아서 곧잘 맛을 내지만 유능하게 척척 하는 게 아니라 끙끙 대며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짧은 시간에 몇 가지의 반찬을 척척 해 내는 우리 시누이 형님 같은 분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감탄을 하지요.

애교... 저는 애교도 없어요. 후후~~

노이에자이트 2013-05-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읽으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인간의 기억은 일종의 가공을 거쳐 형성되니까요.이것이 집단적인 기억이 될 때 무의식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는 것도 학자들 간에 큰 쟁점이고요.

페크pek0501 2013-05-08 13:29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 이해가 되지요.

저도 제 기억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기장을 보고 알았어요.
일기장에 써 있는 것과 제 기억이 정반대여서요.ㅋ


프레이야 2013-05-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끌리네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아는데
결국 마음에 품은 건 다 해내더라구요.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성향이나 폭력성이
나타나는 경우를 봤어요. 놀랍더라구요. 모든 면에는 중도가 필요한 것도 같고요^^

페크pek0501 2013-05-11 14:0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프레이야 님!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어요. 이번 달엔 행사가 많은데다 오늘은 친척 칠순잔치에
가야 하고 다음 주엔 절에 가야 하고...

중도, 중용의 자세가 제일 좋겠죠.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겠고,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남들에겐
거부감을 갖게 할 수 있겠죠.
우리 둘째 애의 말에 따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이 싸가지가 없대요. ㅋ
아마 성공한 사람들이 싸가지가 없을 걸요?ㅋ

자신을 과대평가하되, 남들 앞에선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할 듯해요. 그러니까 남들에겐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좋은 봄날 보내시고 있겠죠?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개의 낱말을 중심으로 리뷰를 써 보았다.

 

 

 

1. 오해 : 말은 오해를 낳는다. 행동도 오해를 낳는다. 그래서 세상은 수많은 오해로 만들어진 각각의 세계를 구성한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각본을 미리 짜 놓고 그것을 상대에게 꿰맞추기 일쑤다. 그래서 진실은 굴절된다. 종종 억울한 일이 생기곤 하는 이유다.

 

 

소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미스 풍켈 선생님은 매우 엄격하고 신경질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어느 날 소년은 10분 지각을 하여 피아노 선생님을 화나게 만든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가 소년을 한참 동안이나 울타리 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도중에 자동차를 두 대 만났으며, 네 명의 행인을 앞질러야만 했기 때문에 지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소년에게 늦은 이유에 대해 변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제멋대로 이렇게 말한다.

 

 

“그럼 그렇지, 개하고 놀았겠지! 얼음과자도 하나 사 먹었을 테고! 너 같은 애들은 내가 잘 알고 있어. 히르트 아줌마네 구멍가게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면서 얼음과자나 사 먹을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소년은 이런 오해를 받는 게 분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혀 버렸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가방이나 열고 악보나 꺼내서 뭘 배웠는지나 해 봐! 보나마나 연습도 안 했겠지!”라고 피아노 선생님은 소리를 꽥 질렀다.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이 숙제로 내 주었던 연습곡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서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소리개의 공격을 비롯하여 흥분되는 일들을 겪었고 지각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혹독한 꾸지람을 들어서 소년의 마음은 흙탕물이 튄 옷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 곡을 잘 칠 수가 없었다.

 

 

소년이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자, “내가 그럴 줄 알았지!”하면서 피아노 선생님은 어금니 사이로 뱉어 내는 듯한 말로 화를 냈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네 녀석이 암만 그래도 네까짓 녀석이 나를 갖고 놀게는 안 해, 알았어? 내가 이렇게 화만 내고 말리라고는 꿈도 꾸지 말아라! 네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 네 아빠한테도 전화할 거야. 네 녀석이 일주일은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패 주라고 할 거야! 앞으로 3주일 동안은 집 밖으로도 내보내지 말고, 하루에 세 시간씩 앉아서 사 장조를 연습시키라고 하고, (…) 내 맛 좀 보라구, 이 말썽꾸러기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 ”

 

 

소년이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은 이렇다.

 

 

“네 물건 싸 가지고 꺼져 버려!”

 

 

 

 

 

2. 자각 : 우리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의 저마다의 경험에서 각자 특유의 자각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 처음 갖는 깨달음일 수 있다. 소년은 무엇을 자각했을까.

 

 

“나는 온몸으로 떨었다. 무릎이 너무나 떨려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 나를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오한이 날 정도로 몹시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은 미스 풍켈 선생님의 난리법석이 아니었다. 매 맞을 것과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감금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뭔가를 두려워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보다는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3. 결심 : 누구나 참담한 감정이란 수렁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수렁에 빠지면 혼자서는 빠져 나오기 힘들다. 정신이 극단적인 생각으로 향하게 만들며 비이성적인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소년이 그랬다. 피아노 선생님의 꾸지람으로 인해 참담한 감정에 사로잡힌 소년은 자살을 결심한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죽는 방법으로 소년이 택한 것은 덩치가 커다란 가문비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떨어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일어날 아주 멋진 장례식을 상상했다.

 

 

 

 

 

4. 상상 : “아주 멋진 장례식이 되겠지! 교회 종이 울릴 테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윗마을에 있는 공동묘지는 수많은 조객들로 미어터지겠지. 나는 유리 관 속에 누워서 수많은 꽃 속에 파묻혀 있을 테고, 까만색 조랑말이 날 끌고 가면 사방에서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요란하겠지. 부모님이 우실 테고, 누나와 형들도 울 테고, 우리 반 아이들도 울 테고, 하르트라웁 박사 부인과 미스 풍켈 선생님도 울 테고, 멀리서 찾아 온 친척들과 친구들도 엉엉 울면서 그들 모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지르겠지. ‘엉 엉!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우리 잘못이야! 만약에 우리가 좀 더 잘해 줬더라면, 너무 못되게 굴지도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그 착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상냥했던 아이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으련만!’”

 

 

이것은 매우 황홀한 상상이었다. 이 상상이 소년을 아주 행복하게 하였다.

 

 

 

 

 

5. 사소함 : 사소한 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가 많은 게 우리의 삶이다. 사소한 일로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을 하다가 이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소함은 사소하다고만 볼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소년은 죽기 위해 가문비나무에 올라갔다. 가문비나무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높이가 30미터쯤 된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세다가 ‘셋’하는 순간에 눈을 그대로 감은 채 허공으로 몸을 날린 다음 떨어지는 순간에는 다시 눈을 뜨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소년이 떨어지기 직전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하는 소리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30미터 밑에, 그것도 내가 뛰어내린다면 나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도 넘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수직적인 위치에 나타났다. 난 나뭇가지를 손으로 꽉 부여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소년은 좀머 아저씨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소년은 좀머 아저씨가 자신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죽기로 한 것을 그만두고 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간다.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의 꾸지람이라는 사소한 일로 자살을 결심했듯이 역시 사소한 일로 자살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6. 좀머 씨 :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는 좀머 씨. 소년의 어머니는 그를 밀폐 공포증 환자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밀폐 공포증이 아주 심하단다. 그 병은 사람을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만들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좀머 씨가 누구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멀리 사라지는 기차의 뒷모습과도 같은 유년기의 흐릿한 추억이 되돌아오는 기차처럼 또렷이 보이는 듯했다. 소년을 통해서 유년기의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멋진 선물이었다.

 

 

좀머 씨는 베일에 싸인 존재로,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뿐이다. 소년이 고통(또는 참담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좀머 씨에게서 자신보다 더 큰 고통(또는 참담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자신만이 느낀다고 생각한 어떤 감정을 남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고 공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때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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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08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보면 사랑을 느끼며 배우고
슬픔을 보면 슬픔을 느끼며 배우지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면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좋은 꿈 꾸리라 생각해요.

페크pek0501 2013-05-08 12:04   좋아요 0 | URL
그런데 우리 인간은 빛만 보는 게 아니라 그림자도 함께 봐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라서 말이죠. 빛과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아야 하려나요.

봄날이에요 함께살기 님. 좋은 봄날 보내세요. ^^

 

 

 

 

- 신경숙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짧은 소설 26편이 담겨 있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아마, 나도 이런 소설이라면 쓸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구성이 단순하고 작품의 길이가 짧아 ‘간단한 소설’로 읽히기 때문이다.

 

 

 

 

 

 

 

 

 

 

 

 

 

 

 

 

 

 

 

 

 

 

- 작가가 ‘패러독스나 농담이 던져주는 명랑함의 소중한 영향력은 나에게도 날이 갈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온다’라고 후기에 밝혔듯이, 이 책의 소설들 중에는 명랑함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서 내가 읽었던 그의 작품들(아픔, 고통, 서글픔 등이 느껴지는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면(밝음, 유머 등)을 볼 수 있다.

 

 

 

 

 

- 누구든지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모든 것이 부질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죽는 순간에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될 터이다.

 

그러나 단 하나, 부질없지 않고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고흐의 답변에서 찾는다. 바로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

고흐의 친구가 고흐에게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 묻는다. 친구의 질문에 고흐의 답변은 이와 같았단다.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세.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쓸모 있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30쪽.

....................

 

 

 

 

 

-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다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써 줄 여유가 없는 걸까.

 

....................

오늘 아침에 나는 이런 시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브레히트라는 시인의 ‘나의 어머니’라는 시입니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97쪽~98쪽.

....................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뻔히 알면서도 그 마음속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은. 뒤늦게 헤아리게 된다는 것은.

 

 

 

 

 

- 하하하~ 웃게 만든 이야기로 이것을 뽑는다.

 

....................

할머니1 : 야야! 근데 예수가 죽었다 카대.

할머니2 : 와?

할머니1 : 못에 찔려 죽었다 카네.

할머니3 : 낸 그리될 줄 알았고마. 머리를 그리 산발하고 허구헌 날 맨발 벗고 길거리를 그리 싸돌아댕기싸니 못에 안 찔리고 배기겠나.

할머니4 : 근데 예수가 누구꼬?

할머니5 : 글쎄…… 모르긴 해도 우리 며늘애가 자꼬 아부지, 아부지, 해쌌는 거 보이 우리 사돈영감 아닌가 싶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204쪽~205쪽.

....................

 

 

 

 

 

-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로 이것을 뽑는다.

 

소설 속 ‘나’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찬장에서 접시 세 개를 꺼내 두 개의 접시엔 사료를 나눠서 붓고 다른 한 접시엔 물을 담아서 고양이가 지나다니던 곳에 내다 놓았다. 며칠 뒤 사료가 반쯤 비어 있음을 알았다. 아, 드디어 고양이가 먹이를 발견했군, 싶었다. 그다음 날은 고양이들이 접시의 사료를 다 먹은 것 같았다. 잘 먹네, 하면서 접시에 좀 더 많이 사료를 부어 놓았다. 그다음 날은 조금 더더 많이 부어 놓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맘에 들었다. 텅 빈 접시에 사료를 부어 놓을 때의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었던 것이다. 타자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뜻밖에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는 것이므로.

 

그런데 ‘나’는 뜻밖의 결과를 발견하게 된다. 접시에 있는 사료를 먹은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던 것. 까치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접시의 사료를 정신없이 쪼아 먹고 있었던 것. 한두 마리가 아니라 한 떼가 몰려들어 먹고 있었다. 그제야 그동안 저 까치들이 고양이 밥을 다 빼앗아 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까치들이 등장하면서 고양이들이 마당 근처에 얼씬도 않는 것 같았다. 아, 고양이들은 어디서 물을 마시나, 싶었지만 까치도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그 다음부턴 까치를 위해 고양이 사료를 접시에 계속 부어 놓았다.

 

그런데 오늘 해 저물녘에 ‘나’는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까치들이 난리가 난 것이다. 분위기로 보아 까치들이 패를 갈라 싸우는 듯했다. 사납게 서로를 향해 날아들고 도망치고 쪼아댔다. 처음 고양이 먹으라고 내놓은 것을 까치들이 차지하더니 어쩌면 다른 영역에 살던 까치들까지 그 사료를 차지하려고 몰려들어 생긴 일일까? ‘나’는 한참 지켜보다가 그 싸움이 무서워서 얼른 현관문을 닫고 들어왔다. 한 떼의 까치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 그 치열한 소란은 계속되었다.

 

‘나’는 다음 날 세 개의 접시를 조용히 집 안으로 들여놨다. 그들의 세계에 내가 개입하면서 생긴 이 싸움을 그치게 하는 길은 내놓았던 세 개의 접시를 들여놓는 일밖에는 없었으므로.(19쪽~23쪽을 요약함.)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라고 여길 수는 있어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 결과는 두고 봐야 아는 것이니까. 어떤 일의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좋다는 법은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우리 인생이란 게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 것 아닌가. 이 소설에서 우리의 인생을 본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에 꽂힌 글귀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라는 글귀다.

 

어느 날 내가 본 거리의 풍경이 있다. 자전거를 탄 젊은 남자가 뭔가를 땅에 떨어뜨리고 지나가더니 자신도 떨어뜨린 것을 알았는지 자전거를 멈췄다. 땅에 떨어진 것은 작은 수첩인 것 같았다. 그것을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부부인 듯한 사람들이 보았다. 그중 남편인 듯한 사람이 그 수첩을 주워 자전거를 탔던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탔던 남자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인사도 없이 그냥 수첩을 건네받더니 자전거를 타고 휑 가 버렸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예의가 없잖아,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생각도 했다. 수첩을 주워 준 그 사람은 무안하지 않았을까. 좋은 일을 했건만 상대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아내 앞에서 체면이 구겨진 건 아니었을까.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 버린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도대체 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남에게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사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몇 번이나 봤다.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자리를 양보해 주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좌석에 앉아 버리는 사람도 봤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올바르게 처신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도 그런 사람일 때가 있겠지.) 상황에 맞게 처신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17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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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5-0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히트의 '나의 어머니'는 되낼수록 맘에 들지요.
신경숙의 달에게~,는 글쎄, 후한 점수 주기가...
작가를 떠나 출판사는 책 파는 일이 본업이지요.
페크 언니 잘 살고 있는 거 맞지요? 크~

페크pek0501 2013-05-02 09:44   좋아요 0 | URL
예, 잘 있습니다. 저도 님처럼 쉬고 있었어요.
물론 서재만 쉴 뿐 삶은 계속되는 것이어서 다른 일로 바쁘게 지내게 되지만요.
<달에게~>는 수작들이라기보단 그저 소품 같은 작품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적은 분량으로 그만큼 써 낸 작가의 역량은 과소평가하지 못할 것
같아요. ^^
하지만 신경숙의 작품을 처음 읽는 사람에겐 이것보단 다른 작품을 읽는 게 낫다는 조언을 해 주고 싶긴 해요. ㅋ

프레이야 2013-05-0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오월의 첫인사 드려요^^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결과는 신에게 맡겨야 될 일이란걸 며칠 전 실감했지뭐에요. ㅎㅎ 그러고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제 마음 속에 뭔가 기대했던, 바랐던 게 조금이나마 있어서 그리된 게 아니었나 싶더라구요. 신경숙의 저 책은 편안하게 읽어볼 책 같아 나쁘지않네요. 할머니들의 유머 ㅎㅎ 두번째 보는대도 웃겨요. 써먹어야겠어요. ㅎㅎ 화사한 오월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3-05-03 08:3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요즘 서재 쉬고 계시나 봐요.
으음~~우리에게 휴식이 필요하긴 해요.

짧은 소설로 되어 있고 책도 두껍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님도 화사한 오월, 마음까지 푸른 오월을 보내세요. ^()^

노이에자이트 2013-05-0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는 많지만 나이값을 못하는 사람들도 어른 대접 받기를 바라는 욕심은 강하니 그런 사람을 대하면 참 곤란합니다.

페크pek0501 2013-05-04 13:38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런 경우가 있겠군요.

저는 자기 자신을 높은 위치에 설정해 놓고 말하는 것 같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확 누르고 싶은데, 참지요.
"야, 너 어깨에 힘 좀 빼라. 못 봐주겠다."라고 하고 싶은 걸 참아요.
그리고 '저러는 건 열등감 때문일거야.'라고 생각하며 미워하는 대신 연민을 가지러 노력해요.
알고 보면 우리 인간들, 불쌍하잖아요.

님이 오랜만에 방문해 주시니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하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반 가 웠 어 요.) ^()^

세실 2013-05-0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죠~~ 할머니들의 대화에 빵 터졌습니다. 어쩜 이리 기발할 수가. 직원들에게 카피해서 나눠줬어요^^
신경숙씨가 이런 책을 쓴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페크pek0501 2013-05-07 15:20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읽으셨군요. 같은 책을 읽다니 반갑습니다.ㅋ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에요. ^^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