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고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또 나중엔, 그런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인처럼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이 글과 관련한 책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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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7-2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의 '의자놀이'란 책이 곧 발간될 예정인데요...
의자는 정해져있고, 사람은 더 많은 경우,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추하게 싸우는 모습... 그 경쟁의 구도를 복지의 구도로 바꾸어야 사람은 살 건데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30 14:00   좋아요 0 | URL
아, 반가운 글샘님! 역시 정보맨이시군요.
공지영 작가의 책은 단편은 몇 편, 그리고 장편은 네 권을 읽었는데, 다 괜찮았어요.
경쟁의 구도를 복지의 구도로 바꾼다, 멋진데요.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생계의 문제 때문에 비관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죠.
우리 딸들이 살 미래가 걱정이 되어요. 미래 전망이 밝았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12-07-29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은자의 슬픔, 저 싯구도 생각나고
다시 들춰보고 싶어져요, 페크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외에도 많지요. 그럼에도 기쁨을 찾아야겠구요.
무지하게 더워요. 버티다가 결국 에어컨 켰답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2-07-30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남이 쓴 페이퍼 읽다가 제가 읽었던 시가 나오면 다시 들춰 본답니다.
정말 덥죠? 저는 아이들이 툭하면 에어컨을 켜서 아예 리모컨을 감춰 두었답니다.
에어컨이 천장에 부착되어 있어서 그 리모컨이 없으면 켤 수 없거든요. 그래도 바람이 있는 날이면 맞바람 쳐서 시원한 편인데, 청소를 한다든지 해서 움직이면 참 더워요.
아주 더운 날엔 저도 켤 수밖에 없어요.ㅋㅋ 그래도 전 여름이 좋아할 꼬예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7-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자가 부리는 횡포는 보통 사람들은 경험하기 힘들죠.보통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끼리 벌이는 아귀다툼이 더 익숙하죠.평범한 사람들의 잔인성!

페크pek0501 2012-07-30 14:04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의‘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인간은 무지함으로써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인간의 사악함을 인정하는 편이에요. 인간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 반대편엔 천사 같은 얼굴이 있어요. 동전의 앞뒤처럼 다 갖고 있는 게 인간이란 생각이에요. 그러므로 절대적인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다는 거죠. 그저 인간은 거기서 거기...ㅋㅋ
반가웠습니다.
 

 

 

 

이 세상은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클래식을 눈을 감고 느긋하게 귀로 감상하듯이 뭐든 천천히 하면서 그것을 음미하며 살고 싶은데, 그랬다간 뒤처진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빨리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르게 살고 싶은 나는 ‘느림’을 여유롭게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데,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인생의 낙오자로 여기리라. 세상은 부지런을 떠는 사람에게만 승리의 자리를 내주는 것 같다.

 

 

가끔 지금의 세상을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느낀다. 세상은 앞서고 나는 그것을 힘겹게 뒤따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들 앞에선 버겁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세상과 더불어 내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촌스러우니까, 싸 보이니까. 그건 또 싫으니까.

 

 

며칠 전, 친구들과 빕스(VIPS)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이런 곳에 갔을 땐 어색해서 맛있는 음식이었을 텐데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이젠 이런 곳에서 식사하면서 자연스러운 척할 줄 알게 되었고, 맛있게 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아, 그래도 부자연스럽다. 한 끼의 식사 값이 비싸서.

 

 

집에 셋톱 박스, 인터넷 전화, 인터넷 공유기 등 세 가지를 설치했다. 이 세 가지를 같은 회사의 것으로 설치하면 설치비가 싸고 사용료도 싸다. 또 시간을 놓쳐서 시청하지 못한 방송 프로그램을 나중에 시청할 수도 있다. 이런 정보를 알면서도 어찌 설치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난 기계와 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서 처음엔 망설였다. 그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게 싫었다. 물론 배우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제2의 빕스나 제2의 셋톱 박스가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다. 생겨날 때마다 빨리 친숙해지는 게 바로 변화해 가는 세상을 따라가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하지만 부지런을 떨기 싫은 나는 새로운 것 좀 그만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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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 : 또 한 주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마술을 부려서 높은 시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에 머무른 듯하다. 앞으로 또 그런 마술을 부려서 한 달이 금방 가고, 이 여름이 금방 갈 것 같다. 시간의 마술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는 것만 같다. 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바쁜 일상에 쫓겨 이곳 서재에 소홀하다 보면, 어느새 글을 올린 지가 한참 되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2. 시간의 흐름 :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은 다를 때가 많다. 관심 있는 책을 읽을 때와 같이 재밌는 시간은 긴 시간이라도 빨리 가는 것으로 느껴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와 같이 지루한 시간은 짧은 시간이라도 천천히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각각의 시간의 ‘의미 없음’과 ‘의미 있음’의 차이일까.

 

 

 

 

 

3. 시간의 의미 : 나는 여행 가기 전날인 어느 날에 여행 가방을 싸면서 여행을 가기도 전에 미리 행복한 적이 있다. 오늘 커피를 타면서 커피의 맛을 보기도 전에 미리 행복했다. 오늘 넷북을 켜면서 글을 쓰기도 전에 미리 행복했다.

 

 

<어린 왕자>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린 왕자는 이튿날 다시 왔다.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면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이 될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에 마음을 곱게 치장해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 예절이 필요한 거란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4. 행복이란 : 때로는 행복이란, 큰 액수의 재산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배고플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 끼의 식사 값에서 얻어지는 수가 있다. 또 행복이란, 누가 주느냐에 따라서 백 송이의 장미꽃보다 한 송이의 장미꽃에서 얻어지는 수가 있다.

 

 

 

 

“아저씨 별의 사람들은 한 정원 안에 장미꽃을 5천 송이나 가꾸지만…… 그들이 찾는 것을 거기서 발견하지는 못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단 한 송이의 장미꽃이나 물 한 모금에서 얻어질 수도 있어…….”

 

“그야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5. 길들이기 :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한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베란다가 없어서 거실에서 화초를 키우고 있다. 거실 바닥에 물이 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에 물을 주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화분을 부엌이나 욕실로 가져가서 물을 흠뻑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화초가 잘 자란다. 일을 줄이고 싶은 나는 사실 화초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나와 십 몇 년을 함께 해 온 세월 때문에 마치 식구처럼 느껴져서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키운 모든 화초는 내게 특별한 것이다. 어느 가게에서 팔고 있는 화초와 아주 다른 존재인 것이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정성껏 물을 주며 보살펴 준 화초이므로. 내가 길들인 화초이므로.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물었다.)

 

“(…) ‘길들인다’는 건 무슨 뜻이지?”

 

“(…)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관계를 맺는다고?”

 

“(…)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들과는 조금도 같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못했어. 내 여우도 너희와 마찬가지였어. 수만 마리의 다른 여우와 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 여우를 내 친구로 삼으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너희들은 아름답긴 하지만 속이 비었어.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내 장미도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그 꽃 한 송이가 너희들 모두보다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바람막이를 씌워 주고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었으니까. 그리고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것도,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귀기울여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지.”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6. 마음으로 느끼기 : 아는 선배에게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선배님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좋으세요?”

 

 

그랬더니 그 선배가 웃으며 답했다.

 

 

“봄은 봄대로 좋고, 여름은 여름대로 좋고, 가을은 가을대로 좋고, 겨울은 겨울대로 좋아.”

 

 

나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제가 물으나마나한 거잖아요. 그런 싱거운 대답을 하시다니.”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묻는다면 그 선배처럼 대답하게 될 것 같다. 정말, 봄은 봄대로 좋고, 여름은 여름대로 좋고, 가을은 가을대로 좋고, 겨울은 겨울대로 좋다. 이제야 사계절이 다 좋다는 것을 그 선배처럼 알겠다.

 

 

며칠 전, 여름 날씨에 반해 버렸다. 장마철이라 무더위가 시작되지 않아서겠지만 날씨가 참 좋다고 느꼈다. 저녁에 산책을 해 보면 얼마나 좋은 날씨인지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비 개인 날에 걸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피부에 닿는 공기의 감촉이 신선해서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여행을 가게 된다면,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할 수 있는 여름에 가리라. 따뜻한 겨울도 좋지만 시원한 여름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그동안 여름의 매력을 모른 것은 무더위로 인해 그 계절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다른 계절도 그 좋은 점을 마음으로 느껴 보는 여유를 갖는다면 그 매력을 알게 될 것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 내 비밀을 일러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7. 여름이 아름다운 이유 : 여름이 덥기만 하다면 그래서 시원한 순간은 한 번도 없다면 여름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건 이런 것.

 

 

- 밖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인데, 거실의 찬 바닥에 누워 책을 보는 것.

- 누워 책을 보면서 창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끼는 것.

-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오는 것.

- 잠에서 깨어나 욕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하는 것.

-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것.

- 운동으로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샤워하는 것.

- 문득 창밖을 보았는데 비 오는 풍경이 보이는 것.

 

 

여름이 아름다운 것은 그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한 순간을 선사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여름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8. 짧은 행복 : 한때 혼자 살고 싶었던 적이 있다. 혼자서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주부라면 누구나 혼자서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지 않을까.

 

 

혼자 살면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애들과 남편을 위한 아침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늦잠을 실컷 잘 수 있겠다. 내 소원 중 하나는 스스로 잠을 깨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 낮에 일어나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늦잠을 자도 되니까 밤에 늦게까지 책을 보든지 티브이를 봐도 되겠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해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밥상을 차리기 싫으면 밖에 나가 한 끼 사 먹어도 되겠다. 누라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막상 혼자 있는 경험을 해 보면 꼭 좋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느 여름에 남편과 애들이 시집 식구들과 물놀이를 간 적 있다. 나는 그때 논술수업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집에 남아 이박 삼 일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물론 처음엔 기뻤다. 신났다. 내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환상은 밤이 되자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밤에 혼자서 자려니 문단속을 반복해서 살피게 되고, 무슨 소리만 나도 도둑인가 싶어서 신경이 쓰여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혼자 살면 불편한 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삼 일째 저녁이 되자 이젠 식구가 집에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모든 식구가 밖에 나가고 없는 월요일 아침을 좋아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네 식구가 함께 지내다가 월요일 아침에 혼자 남는 건 즐겁기 때문이다. 그 즐거운 자유가 좋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저녁때가 되면 돌아오는 식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서라는 걸 이젠 안다. 직장인들이 휴일이 즐거운 것은 출근하는 평일이 있다는 걸 전제해서인 것처럼.

 

 

내가 아는 한, 행복한 시간은 길어지면 그 행복이 물기가 증발하듯 날아가 버린다. 짧은 시간의 행복일 때만이 행복일 수 있을 뿐, 길게 매일 가지는 행복은 없다. ‘행복은 짧음’, 이게 행복의 속성인지 모른다.

 

 

 

 

 

* 맺는말

 

 

1번에서 8번까지의 글에서 관통하는, 공통적인 것은 ‘무엇에 의미 두기’이다. 무엇에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그것 자체와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이 특별한 물건이 되는 것은 ‘추억의 물건’이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듯이.

 

 

 

 

“예절이 뭐야?”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우가 대답했다.)

 

“그것도 너무나 잊혀진 거지.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가령 내가 아는 사냥꾼들에게도 예절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에 동네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 말이야. 그래서 목요일은 내게 있어 기막히게 좋은 날이란다! 나는 포도밭까지 소풍을 가지.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고 해 봐. 그저 그날이 그날 같고, 나는 휴가라는 게 없을 거 아니니?”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처럼 삶이란, 매일 똑같은 목요일이 되지 않게 무엇에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를 가지고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만약 그렇다면, 좋은 쪽으로 의미를 가지고 사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겠다고.

 

 

이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인식하면 삶은 언제든지 달라져 보인다고.

 

 

 

 

.................................................................

 

 

(출간일순)

 

 

 

 

 

 

 

 

 

 

 

 

 

 

 

 

 

 

 

 

 

 

 

 

 

 

 

 

 

 

 

 

 

 

 

 

 

 

 

 

 

 

(인용문은 하서 출판사의 책에서 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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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7-2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이라는 나라는,
우두머리로 나서려는 정치꾼들이 바보짓을 하지만,
사람들 스스로 좋은 숲에서 네 철을 누리려 하면,
참 살기 좋은 아름다운 터라고 느껴요.

네 철이 골고루 돌아가면서 찾아오는 일이란,
참 고마운 사랑이로구나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7-24 00:24   좋아요 0 | URL
네 철을 누리는 행복을 된장 님은 잘 아시겠지요.
된장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어요. 휴우~~
반갑고 고맙습니다.

글쓰는 일이란 창피함을 무릅쓰고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점점 창피해지면 글을 못 쓰게 되겠지요... 그래서 좀 두꺼워져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오늘 파마하면서 했어요. ㅋㅋ
두꺼워져야징...

노이에자이트 2012-07-2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니뭐니해도 여름의 즐거움은 늘씬한 미녀의 각선미죠.신이여...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2-07-24 11:06   좋아요 0 | URL
ㅋㅋ 남자로 태어나서 좋으시겠어요. 저는 그런 감사를 할 만한 일이 없어서요. 그러보 보니 여름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계절이군요.
그건 생각 못했는데... 아무튼 노이에자이트 님은 참 재밌어요. ㅋ

프레이야 2012-07-2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이 좋은, 페크님만의 이유에 공감되네요.^^
벌써 지치지 시작하는 것 같아서 잘 먹고 잘 자고 기운 좀 내려구요.
지금 매미 소리 울울창창, 쨍쨍한 여름날 하루 시작이어요!!!

페크pek0501 2012-07-24 11:0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벌써 지치시면 어떡해요? 그래도 여름이 많이 갔어요.
앞으로 3주만 버티면 8월 중순인데, 그때쯤이면 해수욕장 폐장이랍니다. 아침 저녁으로 시원할 거예요.
여름엔 삼계탕이 최고예요. 만들기도 편하고요. 그거 드시면 기운이 날 거예요.
 

 

 

 

 

 

 

 

 

 

 

 

 

 

 

 

 

 

 

 

 

 

인간에게는 정신적인 탁월함만큼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인간이 동물을 능가하는 점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결정적인 정신적 우월성을 다른 목격자가 있는 데서 나타내는 것은 불손한 행위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복수하라는 식의 도전을 받았다고 느끼게 되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모욕을 줌으로써 복수를 실행에 옮길 기회를 찾게 된다. 즉 상대방은 이것으로써 지성의 영역에서 만인의 평등한 의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따라서 사교계에서는 지위나 재산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정신적인 탁월함은 결코 그런 대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설령 가장 혜택을 받는 경우에도 이것은 무시될 뿐이다. 심한 경우 정신적인 탁월함은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든지, 아니면 이러한 탁월함의 소지자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얼굴을 내밀고 자랑을 해 대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을 당한다. 따라서 사교계 사람들은 남몰래 어떤 다른 방법으로 이런 인물에게 굴욕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럴 기회를 열심히 찾게 된다. 아무리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탁월함을 나타낸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사디는 <굴리스탄>에서 ‘어리석은 자가 분별 있는 자에 대하여 느끼는 반감은 후자가 전자에 대하여 느끼는 혐오의 100배나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 A.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 186쪽~187쪽.

 

 

 

 

 

나는 ‘정신적인 탁월함’이 느껴지는 친구가 있으면 더 친해지고 싶고, 감탄하며 좋아지던데...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말한 대로, 정반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둬야 할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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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7-0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착하지 못할 때에는, 좋은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지 못하니, 슬프게 스스로를 갉아먹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테지요...

페크pek0501 2012-07-08 16:00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입니다. ㅋ 반갑습니다.

프레이야 2012-07-0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또 한 주가 시작되는 아침도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저는 이제 도서관에 갈 생각입니다.
지인이 뭘 부탁하셔서 그 일을 해야하는데 당분간 어깨랑 눈이 좀 빠질 것 같아요.ㅎㅎ
알바라 생각하고 해달라셔서 기분 좋게 해드릴 생각이에요.
일흔 나이에 그런 열정, 참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존경스러워서요.
정신적 탁월함은 참 쉽지않은 말이네요. 드러내면 오만해 보이고, 드러내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젖어있으면 시나브로 표출되겠지만 그게 그리 쉽나요, 우리같은 범인에게요.ㅎ
그래도 그런 탁월함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분명 있지요. 정신적 탁월함도 관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생각을 새삼 해보는 아침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09 15:1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또 한 주가 시작되고, 또 한 달이 금방 가고 또 여름이 금방 가겠지요. 시간이 마술을 부리는 것만 같고, 그 마술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는 것만 같아요.

오늘 오전은 실내에 있는 여러 화초들을 옮기며 새롭게 배치하고 물을 주는 걸로 시간이 다 가 버렸어요. 일을 줄이려면 화초를 없애야 하는 건데, 저와 십 몇 년을 함께 해 온 세월 때문에 마치 식구처럼 느껴져서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수중식물은 여름엔 시원한 느낌을 주고, 겨울엔 가습기 역할을 해 줘서 좋아요.

알바? ㅋㅋ 그거 좋죠. 저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알바, 하고 있는데 재밌어요. 나이가 많아져서 잘릴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에요. ㅋㅋ

정신적 탁월함이 관념이 아닌, 실천의 문제다... 으음~~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탁월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 찬성 찬성 !!!

페크pek0501 2012-07-09 15:12   좋아요 0 | URL
된장 님과 프레이야 님, 두 분 덕분에 무플을 면했다는 것, 에 감사 드려요. ㅋㅋ

된장 님, 감사합니다. 꾸우벅~~
프레이야 님, 감사합니다. 꾸우벅~~

다음엔 쇼펜하우어의 글이 아닌, 제 글을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7-1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하는 행위는 미움받기 딱 좋습니다.쇼펜하우어 성격도 그다지 원만하지는 않았다는데, 아마 여럿 앞에서 아는 체하며 누군가를 무안하게 한 일이 있지 않았을지...그래서 상대방이 발끈한 일이 생겨 이런 글을 남기지 않았나 추정해봅니다.

페크pek0501 2012-07-11 13:3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 노이에자이트 님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군요. 저도 경험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러셀도 그렇고 잘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높게 설정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무의식중에라도... 그러니까 이런 사람일수록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할 듯해요. 늘 겸손하게 말하는 것부터...

쇼펜하우어의 글을 보면 친구관계를 알 수 있는 대목도 있어요.
"적이 알아서 안 될 것은 친구에게도 말하지 말라."와 같은 글이요.
이 책 재밌어요.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게 만들어요. ㅋ
그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강추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12-07-1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글쎄요. 정신적으로 탁월한 사람을 지켜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나의 절친한 친구라면 잘 모르겠어요. 질투가 날 것 같지는 않은데, 조금은 자격지심이 들고 또 바짝 긴장하게 되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왠지 그 사람은 나와의 친교 상황에서도 뭔가 더 고도의 것을 추구하고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면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면 쇼펜하우어가 말한 '평등함'의 의지가 샘솟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저러나 저는 정신적으로 탁월하지 못하다는거ㅠ
그런 친구 있어봤으면, 또 그런 사람 되어봤으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12-07-16 13:21   좋아요 0 | URL
님도 어떤 부분에선 정신적 탁월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은 모를 수도 있지만... 어떤 글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요.
'말없는 수다쟁이'라는 닉네임의 선택도 탁월해요. 말은 없이, 글로 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 속뜻이 멋져요.

이렇게 긴 댓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글 - 남의 글을 읽고 댓글 쓰는 것.
제가 가장 쉽다고 생각하는 글 - 남이 쓴 댓글에 대해 답글을 쓰는 것. ㅋㅋ

비로그인 2012-07-16 1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페크님, 마지막 두 문장에서 아주 크게 웃었어요 ㅋㅋ
아, 정말 요새는 댓글 달기가 무서울 정도에요. 내가 하려는 말 탁 뱉어내는 것보다 남이 하는 말에 어떤 사족으 다는게 더 어려워요, 정말로!! ㅠ

정신적인 탁월함... 제 안에도 분명 도사리고 있겠죠? 광부처럼 그걸 캐내겠어요. 그런데 체력적으로나 정신력적(?)으로나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나랑 같은 소모를 하고서도 짱짱한 사람들 보면 무척 신기하고 그래요. 음, 이것도 나만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잘 파악을 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2-07-16 20:40   좋아요 0 | URL
까르르 까르르~~ 댓글쓰기의 어려움에 공감하시는군요. 정말 어려워요. 잘못 썼다간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아요. 그래서 꼼꼼하게 읽고 써야 해요. 그리고 그 본문에 어울리는 적합한 말을 써야 해요. 그것도 그 댓글을 읽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로... 그러니 어렵죠. 키득키득...

"그런데 체력적으로나 정신력적(?)으로나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나랑 같은 소모를 하고서도 짱짱한 사람들 보면 무척 신기하고 그래요"
- 이것 완전 공감해요. 저는 좀 무리했다 싶으면 금방 몸에서 피곤하다는 신호를 받아요. 목에서 귀까지 아프고 그래요. 그래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요즘도 애쓰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못 올리고 있네요.
그런데 직장에 다니면서도 자주 글을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기가 팍 죽어요. 아주 팍~~.ㅋㅋ

2012-07-18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9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에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구입했다. 다음의 글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의사한테서 아무래도 앞으로 일 년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소식을 듣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사한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단다.

“사회학자와 결혼해서 노스다코타로 가세요.”

“그럼 낫나요?”

“아니요 일 년이 아주 길게 느껴질 겁니다.”(8쪽)

 

 

 

내가 보니까 사회학은 인간 세상의 거대한 파노라마에 변함없이 끌리는 사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죽겠는 사람, 그래서 필요하다면 열쇠 구멍이라도 들여다보고 남의 편지라도 훔쳐보는 사람에게 매우 적합한 학문이다.(9쪽)

 

 

 

앞으로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사회학과 심리학이다. 그래서 이 분야의 신간이 나오면 관심이 간다.

 

 

고세훈 저, <조지 오웰>도 구입했다.

 

 

이 책을 구입하고 참 뿌듯했다. 원래 두꺼운 책을 싫어하는데, 이 책은 두꺼워서 오히려 좋았다.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으면서 오웰에 대해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웰에 대한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

 

 

 

내가 요즘 읽은 책에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들이 있어 정리해 보았다.

 

 

 

1.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이 책에 재밌는 농담이 있다.

 

 

 

 

 

한 미국인 부부가 6개월 된 중국 사내아이를 입양했단다. 그리고 그 부부는 강도 높은 중국어 레슨을 받았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 알아듣고 싶어서 말이다. 우리의 이론은 이 농담이 왜 어처구니없는지를 (그래서 왜 웃기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120쪽.

 

 

 

 

 

이 글은 틀렸다.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6개월 된 아이는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 또 그 어린애가 커서 말을 한다고 해도 중국어로 말을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 어린애가 중국어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는 따옴표가 중요하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이런저런 철학적 기준으로 봤을 때 타당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경험적인 사회과학 방법론을 벗어나는 일이다. 마크 트웨인은 이를 멋지게 표현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에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또 윌리엄 토머스의 말을 빌리면(모든 사회학 입문 과정에서 암기하는 그 유명한 ‘토머스의 금언’) ‘만일 우리가 어떤 상황이 실재한다고 규정하면, 그 때문에 그 상황은 실재하게 된다.’ 그래서 이쪽 사회에 사는 사람은 자기가 귀신 들린 것으로 ‘알고’ 저쪽 사회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안다’. 경험적인 사회과학자는 각각 ‘앎’의 내용과 결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121쪽~122쪽.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올바른 생각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시각이 올바른 시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려면 자신이 무엇이든 알고 있다는 태도를 지양하고 자신의 '믿음'을 의심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2. 고세훈 저, <조지 오웰>

 

 

 

 

 

 

 

 

 

 

 

 

‘오웰’, 하면 생각나는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하나의 예술로 만드는 것”이라는 고백이다. 오웰이 글을 쓴 것은 '예술작품을 만들기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밝히기를 원하는 거짓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겐 너무도 명백하여 변경 불가능한 사실들, 그리하여 조만간 직면해야 할 사실들을 무시하는 능력, 곧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믿으려는 성향이 있다. 마침내 틀렸음이 밝혀졌을 때에도 옳음을 보이기 위해 사실들을 비트는 것이 인간이다. 전체주의 사회는 물론이고 민주사회에서도 득표를 위해 남발되는 공약들, 주요 쟁점에 대한 침묵, 언론의 왜곡 등 이런 정신분열증적 현상은 만연한다.

 

- 고세훈 저, <조지 오웰>, 503쪽~504쪽.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믿으려는 성향이 인간에게 있는 한, 믿음과 사실의 구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웰은 정치작가로서의 다짐을 이렇게 토로한다.

 

 

 

 

 

책을 쓰는 일이란, 어떤 고통스런 질병을 한 차례 길게 앓는 것 같은 끔찍하고 탈진시키는 투쟁이다. (...) 자신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 (...) 내 작업을 돌아볼 때, 내가 생기 없는 책을 쓰고, 미사여구, 의미 없는 문장, 화려한 수사, 곧 눈속임에 취해 있을 때는 예외 없이 정치적 목적을 결여했을 때였다는 것을 본다.

 

- 고세훈 저, <조지 오웰>, 514쪽.

 

 

 

 

 

여기서 자신의 개성이란 '주관적인 감정'을 말하는 듯하다. 주관적인 감정을 없애야 '믿음'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오웰로서는 진실, 사실과의 정직한 대면, 그리고 그러한 대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인간이 주관적인 감정을 온전히 배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가능하면 사고로부터 그것을 걷어내는 일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읽을 만한 것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가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 정치적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글이라는 의미 - 고 말했을 때,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 고세훈 저, <조지 오웰>, 502쪽~503쪽.

 

 

 

 

 

 

 

3. 이승우 저, <생의 이면>

 

 

 

 

 

 

 

 

 

 

 

‘믿음’과 ‘사실’을 구분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신뢰하는 점이다. 나는 인간의 기억은 신뢰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일이 있다. 과거의 일기장에 현재의 기억과 반대되는 내용이 있어서 놀란 일이다. 그 뒤로 내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작가가 ‘기억’에 대해 쓴 글은 음미할 만하다.

 

 

 

 

나는 내 취사선택되고 검열된 기억 속의 과거로 들어가는 것의 무의미함을 안다.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 그 위에 어떤 색칠을 하고 어떤 형태를 그려내는 것은 현재의 나이다. 과거란 결국 인상(印象)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승우 저, <생의 이면>

 

 

 

 

 

 

4. 맺는말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수많은 갈등이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연인이(또는 친구가) 늦게 오면 자신에게 소홀히 대한다고 생각하고(늦을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인데도) 연인이 하품을 하면 자신과 있는 시간이 지루해서라고 생각한다.(그 전날 잠을 적게 잤기 때문인데도)

 

 

어떤 여자가 말했다. 남자와 맞선을 볼 때 상대가 맘에 들면 자신이 말이 많아지고,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면 말이 적어진다고. 남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시간이 지루한 게 싫어서 이런 저런 말을 하며 시간을 때우게 되고, 남자가 맘에 들면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말을 적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상대는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왜 말이 없으시죠? 제가 맘에 안 드시나요?”와 같이 말하는 남자가 있더라는 것.

 

 

두 사람 중 한쪽에서 “당신이 나를 오해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거야.”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당신이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거야.”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관계에서든 상대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될 수 있는데, 문제는 왜곡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러니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수전 손택에 의하면, 사물에 대한 해석은 장소에 따라 다르다. 해석이 장소에 따라서만 다르겠는가. 같은 사물이라도 시간에 따라 다른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예를 들면 무서운 그림이나 귀신 이야기를 낮에 접할 때와 깊은 밤에 접할 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래서 수전 손택의 다음의 말을 깊게 새겨 둘 필요가 있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즉 잘못된 시각일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믿음’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날 것이다.

 

 

******************

 

 

 

어떤 사람이 좋아졌다면 그 사람의 장점 때문일까, 아니면 좋아져서 그 사람의 장점이 돋보이는 것일까. 좋아했던 어떤 사람이 싫어졌다면 그 사람의 단점 때문일까, 아니면 싫어져서 그 사람의 단점이 눈에 거슬려 보이는 것일까. 예를 들면 상대의 목소리가 좋아서 그가 좋아진 것일까, 상대가 좋아져서 그의 목소리가 좋게 들리는 것일까. 이것의 답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곧 ‘사실’일까.

 

 

경험을 통해 무엇을 알았다고 확신하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무엇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 같다. 내가 한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도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에 따라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데, 과연 인간은 어떤 것의 진실(사실)을 알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언젠가는 알게 되는 진실(사실)이 아니라, 끝까지 모를 진실(사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내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진실로 여기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을 때가 많은 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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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2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는 곳에서든 안 보이는 곳에서든
진실은 늘 진실일 테지요.

올바르며 좋은 생각을 이끌어서 살아가려 했기에
조지 오웰 님은 숱한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느껴요.

페크pek0501 2012-06-21 13:03   좋아요 0 | URL
예, 된장 님. 오랜 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그만큼 세상에 대해 할 말도 많을 거예요. 그것을 글로 쓰겠죠.
요즘 조지 오웰에 대한 글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프레이야 2012-06-2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오랜만의 글 더 반가워요.^^
저도 늘 생각하는 게, 기억이란 인상이더라 하는 거에요.
그렇게 믿고 싶은 대로 마음에 그려진 기억을 스스로 맞다고 옳다고 믿고 우기곤 하지요.
과거의 어떤 동일한 상황이나 장면, 공간을 두고도 어떤 사람과 대화 중 그 사람과 나의 기억이 다르게 그려져 있는 걸 발견할 때면 참 놀랍고도 신기하구요.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라" .. 겸손하게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경구이기도 하네요.
마음에 갖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2-06-21 13:05   좋아요 0 | URL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듯이, 기억 또한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주관적 감정이란 게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나고 나서 제 생각을 고치고 또 고치고 그러다 보면 마치 진실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요. 제가 찾을 수 없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듯한...

또 봐요. (난 프레이야 님을 자주 봤으면 좋겠네...ㅋㅋ어쩐지...)

2012-06-21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6-2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학과 심리학은 전혀 다른 접근을 하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면 참 골치 아프죠.역사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결국 부딪히는 문제는 '이게 사회구조의 문제냐 개인심리의 문제냐' 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일류급 사상가들도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했잖아요.페크 님은 이 라이벌 학문 중 어느 것에 더 기울어지는지도 알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6-22 11:54   좋아요 0 | URL
1. 사회학과 심리학에 대해 공부 많이 하셨나 봐요. 저는 초보입니다. 체계적인 공부보다 그냥 마음 끌리는 대로 책을 하나씩 읽는답니다.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이란 책에 심리학 서적 50권이 소개되어 있어서 그것에서 뽑아 사서 읽는 경우가 많아요. 프로이트, 융, 가드너, 피아제, 파블로프 등의 명저를 비롯, 50권의 내용이 잘 소개되어 있어요.

2. 친구가 이번에 대학 입학해요. 대학을 두 군데나 졸업했는데 또 3학년으로 편입학하게 되었어요. 며칠 전 통화했는데 사회복지학과 심리학을 복수전공 한다는군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심리학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추천하는 교재를 사고 모르는 건 물어볼 참이에요. (왜 그런 친구 있죠? 반에서 1등만 하고 공부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친구요.ㅋㅋ)

3. 뒤르켐(‘자살론’의 저자)은 자살의 이유를 개인의 심리적 원인에서 찾지 않고 사회적 원인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는 사회가 문명화할수록 도덕이 붕괴된다는 생각으로, 잘못된 현대사회에서 자살 이유를 밝혀내려 했다.- 제가 올린 페이퍼의 일부분임. (저는 사회구조와 개인심리 두 가지 다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4. 제가 사회과학 분야의 논문을 썼었는데, 학교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모든 학문은 하나의 길로 통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 학문마다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경우가 많아서, 한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선 다른 분야의 공부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5. 둘 중 하나 고르라면 심리학이에요.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길게 썼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누가 물으면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나 봐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6-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도 이렇게 꼼꼼한 댓글이 좋습니다.

사회학이나 심리학 분야를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어요,다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사회냐 개인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죠.그래서 역사철학 분야는 반드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요즘 심리학을 대중의 취향에 맞게 풀이한 책들이 잘 팔리는 반면 사회학은 잘 안되죠.대학에서도 사회과학 분야 중 제일 많이 없어지는 학과가 사회학과더군요....이것도 시류인가 봅니다.

사회구조와 개인심리 두 가지 다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페크 님은 결국 심리학을 고르셨군요.여기서도 사회학이 판정패했네요.

페크pek0501 2012-06-22 13:56   좋아요 0 | URL
아, 재밌어요. 사회학이 판정패했다는 표현...ㅋㅋ

심리학도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요. 취직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죠. 다만 대중들은 인간심리에 대해 호기심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쉽게 쓴 심리학 대중서가 잘 팔리나 봐요.(아무래도 심리학 전문서보단 읽기 편하겠죠.) 저 역시도 사회보다 인간심리가 더 궁금하거든요.

<세계명저 사회학30선>, 다케우치 요우우가 쓴 이 책도 괜찮은데,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사회학 명저도 하나씩 읽을 예정입니다.

아, 아까 댓글을 길게 쓰는 바람에 반갑웠다는 말씀 못 드렸어요.

마태우스 2012-07-1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아이에 관한 농담, 재미지네요^^
글구 제가 요즘 너무 서재에 뜸해서, 그리고 페크언니한테 문안도 못드려서,
"좋아했던 어떤 사람이 싫어졌다면 그 사람의 단점 때문일까, 아니면 싫어져서 그 사람의 단점이 눈에 거슬려 보이는 것일까"란 구절을 보면
이거 혹시 내 얘기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페크언니도 요즘 활동 잘 안하셨군요.
전 요즘 갑자기 글발이 불타올라서, 여기저기 마구 글 써제끼고 있답니다.
페크언니도 다시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시길.
님 글은요 늘 무언가를 배웠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한답니다

페크pek0501 2012-07-14 14:42   좋아요 0 | URL
ㅋㅋ 제 서재에 오랜 만에 방문하시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리신 겁니까? 그런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반가운 마음으로 이렇게 답글을 쓰는 것으로 보아, 저는 지금도 님의 팬이 맞고요...ㅋㅋ

글발이 불타오르신 건 부러운 일인데요. 그럴 때 많이 써야 하는 거죠. 저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또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죠.

페크언니라는 말, 언제 봐도 재미지네요. ^^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