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신간이 소개된 것을 볼 때마다 이번엔 어떤 새 책이 나왔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아마도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간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몇 권 살 때마다 신간을 한 권쯤은 끼어서 구입하고 싶을 것이다. 신간은 마치 새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듯 설레게 한다.

 

 

이번에 내가 눈여겨본 신간은 데얀 수딕 저,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거대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거대한 건축물은 거대한 권력을 나타낸다.

 

 

 

 

 

 

루이 14세, 나폴레옹, 카타리나 대제, 카이저 빌헬름 2세부터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를 거쳐 마오쩌둥과 차우셰스쿠, 후세인을 하나로 엮는 단어는 '거대 건축물'이었다. 거대 건축물은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의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징표다. 유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히틀러는 약 7만평(23만㎡)에 달하는 제2관저와 40만석 규모 경기장을 꿈꿨다. 스탈린은 왕조를 무너뜨렸지만 그 상징인 '겨울 궁전'은 그대로 뒀다. 혁명가에겐 제국의 위엄이 장식으로 필요했다. 독재자 시대가 갔어도, 비슷한 건축은 계속 나온다. 1995년 영국 베어링 증권 파산 후 경기는 바닥을 쳤고, 정권도 바뀌었다. 그러나 집권 노동당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 프로젝트를 승계했다. 세계 표준시 기준점 그리니치 반도에 대형건물을 세워 '영국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조선일보, 2011. 12. 3.)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낱말을 열거하면 거대 건축물, 권력, 과시 등이다. 이 세 가지의 낱말들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인간은 자신의 권력과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거대 건축물이 탄생한다.’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을 읽으면 히틀러, 스탈린, 블레어 등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건축물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건축물은 그 자체로 권력자의 권력을 나타냄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크고 훌륭할수록 자신의 권력도 커 보인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은 순수한 예술행위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예술행위의 영역에 있게 된다.

 

 

권력자들이 그처럼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리라.

 

 

이 욕망,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주목하여 관련된 책들을 살펴보았다.

 

 

 

 

1.

이 욕망에 대해서 데일 카네기도 인정한 바 있다.

 

 

데일 카네기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는 소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뿌리 깊은 욕구”라고 말한 존 듀이와 “인간 본성의 가장 끈질긴 욕망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욕구이며, 인간이 문명 자체를 진전시켜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욕구 때문이라고 하였다.

 

 

 

 

 

 

 

2.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도 통찰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 때문이라고 밝혀 놓았다.

 

 

“인류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경쟁심(競爭心)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同感)과 호의(好意)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安樂)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虛榮)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信念)에 기초한다.” - <도덕감정론>, 92쪽.

 

 

 

 

3.

이처럼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남들의 이목을 중요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에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버트런드 러셀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우리가 가구를 사면서 생각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구를 구입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고르기보다 이웃들의 수준에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고름으로써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인정받으려 애쓴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주부는 커튼과 양탄자, 식탁과 의자, 만찬용 식기와 커피잔 따위에서 자기표현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구를 갖추는 과정을 은밀하고 개인적인 작업으로 생각한다. 개성적인 아름다움, 특히 창조자 특유의 기질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수줍고 소심한 자아를 가진 이들-현대 세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도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은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구에서도 자기만의 취향을 표현하기보다는 정확성을 추구한다.” - <런던통신 1931-1935>, 147쪽.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만이 중요하므로, 자신의 취향대로 가구를 구입하지 않고 그저 이웃을 의식해서 가구를 고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그는 이렇게 비판한다.

 

 

“이웃을 두려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고질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로 모든 성취의 적이기도 하다. 거실을 가구로 꾸미는 일처럼 비교적 단순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퉁명스러운 검열관 같은 태도로 이 감정을 서로에게 강요한다. 이러한 태도 탓에 우리는 서로를 우둔하게 만들 뿐 아니라, 활기 넘치는 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광경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스스로 박탈한다. 따라서 꼴사나운 가구의 근원은 전쟁이나 종교 박해 등 인간 삶에서 주요한 모든 해악의 근원과 동일하다.” - <런던통신 1931-1935>, 148쪽~149쪽.

 

 

그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예로 들어, 파티를 치르는 일에서도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모습을 포착하여 비판한다. 파티를 즐기지를 못하고 그저 파티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것에 주목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피로연을 여는 신혼부부 한 쌍에 대해 어디에선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파티가 끝나자 두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정확하게 똑같은 파티를 치렀다는 사실을 서로 축하한다.” - <런던통신 1931-1935>, 148쪽.

 

 

신혼부부인 그들은 파티를 즐기려는 마음을 갖기보다 남들과 똑같은 파티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파티에 임했을 뿐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즉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의 만족감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남들에게서 찾으려 한다.

 

 

 

 

4.

그렇다면 인간은 남들의 눈만을 의식한 인생에 대해 끝까지 만족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로 들어 ‘만족할 수 없는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이전에 가졌던 생각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지위에 목을 매단 사람이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커다란 아파트에 살며, 이 아파트는 이 시대 유행에 따라 장식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맥이 빠진 저녁 잔치가 자주 벌어지지만, 따뜻하거나 진지한 말이 오가는 법은 없다. 이반 일리치는 고등법원 판사라는 직위를 즐기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 그러다가 이반은 마흔다섯 살에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는데, 이것이 점차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의사들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 그는 너무 피곤해 일을 하지 못한다. 장에는 불이 붙은 느낌이다. 식욕도 떨어지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휘스트 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판사 자신이나 주위의 모든 사람도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 그의 부인은 그의 죽음 자체가 안타까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받을 연금 규모가 줄어들까 봐 걱정을 한다. 사교계의 명사인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자신의 결혼 계획이 엉망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반은 이제 살날이 몇 주 안 남은 상태에서 자신이 지상에서 얻은 시간을 낭비했고, 겉으로는 품위가 있지만 속으로는 황폐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한다.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 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불안>, 291쪽~293쪽.

 

 

주인공은 병에 걸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깨달음을 얻는다.

 

 

 

* 맺는말

 

 

1.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고 욕망을 지배하기

 

 

여러 책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였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살게 되고, 그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로부터 보이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가구를 구입할 때조차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맘에 드는 가구를 고르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고른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시하고 사회(또는 이웃)가 추구하는 가치에만 집착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삶인지 자기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이것이 첫 번째 생각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삶의 재미도 없고 삶의 발전도 없다. 만약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가 머리를 파마하고 새 옷을 구입하고 다이어트를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라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까.) 또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또는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우러러보지 않고 오히려 비난한다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까.) 이것이 두 번째 생각이다.

 

 

어떤 욕망이든 중요한 건 ‘욕망에 지배당하느냐, 아니면 욕망을 지배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욕망이 지나치게 크면 욕망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못할 일이 없게 되어 삶의 균형이 깨진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지배당해서 성형수술에 중독된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지배당해서 비리나 범죄를 마구 저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2. 욕망이 가린 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지 않기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에겐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오로지 회사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이미 그는 그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회사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으로만 살았다. 그 욕망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인생의 새로운 행복에 눈뜨게 된다. 딸아이와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시간도 소중하고, 가족이 함께 떠난 낚시여행을 하는 시간도 소중했다. 그러면서 왜 진작 이런 행복들을 알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한다. 자신의 욕망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며 살다가, 뒤늦게 인생의 행복은 이런 평범한 작은 일들에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했다. 혹시 우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고 빨리 달리느라 기차가 지나친 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2011년을 보내며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을 듯하다.)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12-3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2011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과 내일만 지나면 2012년이 됩니다.

그동안 제 서재에 댓글을 남겨 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댓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방문해 주신 분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분들 덕분에 힘이 나서 글을 써 왔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지금까지 총 117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내년에 보다 나은 글을 올리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이곳에 들어오시는 분들 모두,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2012년에 뵐~게~요~

(페크 올림.)

oren 2011-12-31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건축물'에 관한 글을 보니 문득 '피라미드'를 비롯한 고대이집트의 건축물들이 생각납니다. 2008년 2월에 이집트 일주여행을 갔을 때 '테베'에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엔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0년 동안 지어졌다고 하는 '카르낙 대신전'이 있더군요. 거기엔 약 200년 전 쯤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 곳에 진주했을 때 카르낙 대신전의 정문 쪽의 거대한 석축의 신전의 '벽 높이'에 감동받아 여기에 '맞장'을 뜨기 위해 자신의 군대병력을 동원시켜 흙벽돌을 마주 쌓아 올렸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더더욱 인상적이었답니다. 그런데 헨리 데이빗 소루우는 이 멋진 '건축물'에 대해 '천박한 장관'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았더군요.
* * *
여러 민족들은 그들이 다듬어서 남긴 석재의 양으로 자신들에 대한 추억을 영구화하려는 광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차라리 그만한 노력을 자신의 품행을 가다듬는 데 바쳤다면 어땠을까? 한 조각의 양식良識은 달까지 솟아오른 기념비보다 더 기릴 만한 것이 아닐까?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 테베의 장관은 천박한 장관일 뿐이다. 인생의 참다운 목적에서 멀어져버린 100개의 대문을 가진 테베의 신전보다는 어느 정직한 사람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돌담이 더 의미가 있다. 야만스럽고 이교도적인 종교와 문명은 화려한 신전들을 짓는다. 그러나 기독교, 참다운 기독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 민족이 다듬는 돌은 대부분 그들의 무덤으로 간다. 그야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야심한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차라리 그 작자를 나일 강물에 처박아 죽인 후, 그 시체를 개들에게 주어 뜯어 먹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당당했으리라.

- 헨리 데이빗 소로우,『월든』中에서

oren 2011-12-31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저도 오래전에 읽어봤는데 pek님께서 이 글의 내용에 어울리도록 정말 절묘하게 인용해 주셨군요.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갈망은 참으로 끈질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허망한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 *
남의 견해, 즉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 나타나는 우리의 존재는 그저 생각해 보아도 그것이 우리의 행복에 본질적인 것이 못 됨을 곧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타고난 천성이 지닌 약점으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그것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가 남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거나, 자기의 허영심을 자극해 주면 마음속으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마치 고양이가 자기 등을 쓰다듬어 주면 목청을 꾸르륵거리는 것처럼, 칭찬을 들은 사람은(그의 헛된 자부심의 범위 내에 속하기만 하면, 그 칭찬이 분명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도) 으레 달콤한 기쁨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참된 불행이나 행복, 다시 말해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해 온 그 두 원천이 실은 보잘것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는 갈채에 위로를 얻는다. 이와 반대로, 어떤 의미에서나 그 정도를 불문하고 조금이라도 자기 허영심이 손상되거나 모욕받거나, 또는 무시당하거나 멸시를 받으면, 영락없이 격분하거나 때로는 커다란 비애를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中에서

페크pek0501 2012-01-01 12:42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을 써 주시다니, 그것도 두 개씩이나, 이러면 어떡합니까?
그럼 제가 무지 감사해서 황송해지잖아요. 호호...

소로우의 인용은 저도 처음엔 넣었다가 뺐답니다. 이 글이 길기도 하고, 또 그동안 소로우를 몇 번 인용한 적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오렌님이 쓴 그 글은 제가 찾은 인용문보다 훨씬 좋은데요.ㅋ
늘 느끼는 거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내용이 전부 머릿속에 입력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은 반복해서 세 번쯤은 읽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오래 전에 읽어 어떤 내용인지 생각나지 않았는데, <불안>을 읽고,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했을 정도예요. ㅋㅋ

쇼펜하우어도 제가 단골로 인용하는 인물이에요. 전 그의 책이 재밌어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흥미롭지만 인생론 에세이도 흥미로워요.

댓글로 좋은 글을 감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바라시는 일 많이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11-12-3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드라마를 보고 잤는데 등장인물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죽는데,
행복해지기 위해 살라고, 그렇다고 바쁘게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은 아니라고,
사람은 가만 있으면 불행해지니 행복하기를 결심하고 살라고. 대략 뭐 이런 말을 하고 죽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왤케 다가오던지. 겁 많고, 게으른 저에게 정말 와닿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내년 한해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생각 좀 하고 살려구요.ㅋ
페크님도 내년 한해 행복하게 사십시오. 꼭이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4   좋아요 0 | URL
페크님도 내년 한해 행복하게 사십시오. 꼭이요.^^ - 요것 스텔라님에게 반사합니다. ㅋㅋ

요렇게 감동적인 멘트를 날리시다니... 내 가슴 속엔 감동의 물결이 넘실댑니다. 스텔라님, 행복하게 글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길, 그리고 바라는대로 이루어지길 빕니다. ㅋ

마녀고양이 2011-12-3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보다 '왜 인정받고 싶어할까, 어떻게 해소할까'에
더 관심이 있는거 같아요. 아들러는 인간 성장의 동력은 '열등감 해소' 및 '우월감 추구'라고 했는데 일견 납득이 가는 부분이예요. 언니가 말씀하신 발전과 비슷한거죠.

페크 언니를 안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정말 푸근한 언니 한분 모셔서 기쁘고
새해에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7   좋아요 0 | URL
아, 푸근한 언니라, 그것 참 맘에 드는데요. 한번도 푸근하다 소릴 못 들어봤어요. 그건 좀 체격이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몸은 좀 홀쭉한 편이라서요.
그러나... 마녀고양이님이 제 콘셉트를 정해 주신 걸로 알고 새해엔 푸근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새해 바쁘실 턴데 시간관리 잘 하셔서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잘잘라 2011-12-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보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면서 한편으로는 누구와도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며 청개구리처럼 살아온 저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누구와도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나는 너희와 다르다. 천상천하유아도존!'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죠.

새해에도 페크님의 진심 담은 좋은 글,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8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오랜만이군요. 반갑습니다. 호호~~
님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요, 소원성취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엔 자주 뵈요.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2-3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는 늘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도 남을 배려하지는 않는 인간들이 있습니다.남에게 폐를 끼치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그런 인간들! 어떻게 혼내줄까요?

페크pek0501 2012-01-01 12:53   좋아요 0 | URL
혼내줄 필요가 없답니다. 그런 싸가지 없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것 자체가 벌이니까요. 그런 심성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답니다. 일이 잘 풀릴 리도 없고요. 그게 벌이지 않겠습니까. 남으로부터 존중 받지 못하고 욕을 먹으며 사는 것, 그것도 벌입니다.

그냥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고,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나쁜 전범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새해에도 자주 방문해 주세요. 늘 고마워한답니다. ㅋㅋ
상투적이지만,... 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ira 2011-12-3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마지막 날 우연히 들어왔는데 너무 좋은 글이네요. 저자신의 욕망도 어떤 기차, 어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 자주 놀러 올께요

페크pek0501 2012-01-01 12:55   좋아요 0 | URL
아, 첫 손님,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 오신다니 제가 힘이 나네요. 참 좋은 말입니다.ㅋㅋ

저도 나중에 시간 내서 님의 서재에 들를게요.
또 뵙기를...

2012-01-0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1-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고 책과 함께 행복하시기를...

우리 독서회원이 올해 읽고 싶은 책 중에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꼽았는데 토론도서로 선정할까요?^^

페크pek0501 2012-01-02 16:57   좋아요 0 | URL
어머머, 까르르~~ 조금 전에 순오기님의 서재에 들렀는데...
이걸 텔레파시라고 하나요?

챙기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 저한테까지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저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구입했는데, 글쎄요. 님이 직접 목차를 보고 토론도서로 선정해야 할 것 같네요.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리더가 되는 9가지 방법, 인간관계를 잘 맺는 6가지 방법 등이 있답니다. ㅋㅋ저는 재밌던데...

복 많은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

숲노래 2012-01-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 눈치나 인정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간다면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즐거운 길을 걸을 테니까
이때에는 나한테 가장 인정받을 삶을 사랑하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2-01-03 14: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된장님이 오셨군요.

자기만족이 제일 중요하죠.
자신한테 인정받는 삶을 저도 살고 싶어요.

복된 새해가 되시길...

카스피 2012-01-02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님,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
<(▶◀)>
<( = )>
<( = )>

━┛┗━

페크pek0501 2012-01-03 14:23   좋아요 0 | URL
반가운 카스피님,

이게 용의 그림이군요. 멋집니다. 그리고 이 용이 제게 큰 복을 줄 것만 같군요. 이 선물, 고맙습니다.

복된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2-01-04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easis 2015-10-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받고 갑니다..정말 대단하네요ㅎ
후배들을 위해 짧은 글 쓰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종와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선생님. ^^

페크pek0501 2015-10-16 17: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답글이 늦이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글도 썼군요. 오랜만에 훑어 보았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시니 웃음이 나네요. 알라딘에선 잘 쓰지 않는 말인 것 같아서요. 어쨌든 님의 댓글을 기분 좋게 접수합니다. 고맙습니다.
 

 

 

 

 

1. 참았네

 

 

친구 넷이서 만났다. 친구들 중 한 사람이 만둣국을 잘 하는 음식점을 안다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거기로 갔다. 겉으로 보기에 깔끔한 음식점이었다. 우리는 만둣국을 주문했다. 우선 종업원이 물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의 손가락이 컵 안의 물에 닿은 걸 내가 보았다. ‘종업원의 손가락을 적신 물을 먹으라는군.’

 

 

불쾌했지만 참았다. 그 종업원은 바빴고 청결문제 같은 건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 다음, 주문한 만둣국이 나왔다. 만둣국은 맛있었다. 아, 그런데 반쯤 먹었을 때 내가 먹고 있는 만둣국에 긴 머리카락이 하나 빠져 있는 게 보였다. 비위가 상해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까지 비위가 상할까 봐 그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종업원에게 따질 수도 있었으나, 또 참았다. 친구들을 만나서 기분 좋은 날에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해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참기만 한 게 잘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컵 안의 물에 손가락이 닿았다고, 만둣국에 머리카락이 있었다고, 음식점의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 옳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나처럼 불쾌함을 느끼는 손님이 또 생기지 않도록 그들이 주의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2. 이번엔 못 참았네

 

 

대구에 사는 친구 둘이 서울로 놀러 왔다. 나처럼 서울에 사는 친구 한 명도 함께여서 넷이 모였다. 대구의 두 명과 서울의 두 명이 만난 것이다. 원래 대구와 서울의 중간 지점인 대전역에서 넷이 만나곤 했는데, 이번엔 대구에 사는 둘이 아예 서울로 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 덕분에 내가 편했다. 대전까지 갈 필요가 없으니까. 차비도 굳었다.

 

 

일단 우리 집에서 모였다. 두 친구가 대구에서 얼마나 부지런을 떨며 일찍 출발했는지 오전 11시쯤 되니 네 명이 다 모였다. 우리 집에서 빵과 과일과 커피와 함께 수다떨기가 신나게 시작됐다. 점심은 나가서 먹기로 해서 12시가 넘자 우린 외출 준비를 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음식점과 카페가 모여 있기로 유명한 카페촌에 가서 먹기로 했다. 점심은 내가 사기로 했다.

 

 

우리 넷은 한정식을 먹기로 의견을 모아 한정식을 파는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들어가니 분위기가 고급스러웠다. 음식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반찬 종류가 다양하고 다 맛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점을 잘 선택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문제는 질 낮은 서비스였다.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숟가락을 놓자마자 바로, 종업원이 와서는 양해를 구하는 말도 없이 그릇을 치울 모양으로 쟁반에 옮겨 담는 게 아닌가. 그것도 달그락, 쾅쾅 소리를 내면서였다. 마치 우리에게 빨리 나가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푸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고급 음식점으로 보이던 그곳이 싸구려 음식점으로 보였다.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비어 있는 자리가 많았다.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고급스런 음식점에서 이런 불친절이라니….

 

 

대구 친구 중 한 명이, 서울은 다 이러냐고 물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친구들 모두 기분이 상해 보였다. 내 기분이 슬슬 나빠지기 시작했다. 밥은 잘 먹었는데, 이렇게 기분을 구겨 놓다니. 우리의 기분이 구겨진 종이처럼 느껴졌다. 이건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음식 값을 내면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별렀다. 우리의 기분이 나빠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처럼 기분 상하는 손님이 또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종업원의 불친절에 대해 지적해서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식 값을 내러 계산대로 갔더니 음식점 주인이 있었다. 그에게 음식 값을 지불한 다음에 종업원의 불친절에 대해 말하며 우리들의 불쾌함을 표명했더니, 상대편에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릇을 치우는 게 그렇게 급한 일인가요? 모처럼 지방에서 친구들이 올라와서 점심 사 주러 왔는데, 그 불친절한 종업원 때문에 우리 넷 다 불쾌해졌어요.”

 

 

“죄송합니다. (그 종업원이) 그릇을 치우고 깨끗한 테이블에서 이야기 나누시라고 그런 것 같아요.”

 

 

그건 핑계 같았다. 하지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태도를 보고 기분이 풀렸다.

 

 

 

 

3. 며칠 뒤, 애덤 스미스가 생각났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지나 그 일을 생각해 보니 내가 종업원의 불친절을 지적해서 사과를 받은 일이 잘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나로 인해 음식점 주인한테 그 종업원이 혼나게 되었다면 그래서 그 종업원이 상처를 받았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준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내가 음식점 주인에게 종업원의 불친절을 지적한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단 한 가지의 이유로 그랬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정확하지 못한 법이다. 내가 왜 그랬는지를 곰곰이 분석해 보니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 지난번에 음식점에서 종업원의 손가락이 닿은 물도 참았고, 머리카락이 빠져 있는 음식도 참았는데, 이번에도 또 참으면 내가 아주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난번의 일이 없었다면 이번엔 참았을지 모른다.)

 

 

둘째, 이번에 참으면 내가 처신을 잘하지 못했다고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번에 참으면 내가 친구들 앞에서 바보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넷째, 우리들이 자존심이 상했으므로 우리들의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의 이유가 한마디 해야겠다는 나의 태도에 대해 갈등 없게 만들었다. 내가 ‘악’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해 준 이유다.

 

 

다섯째, 내가 느낀 불쾌감을 얘기해 줘야 앞으로 나처럼 불쾌한 손님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다섯째 이유로 인해서 애덤 스미스의 글이 떠올랐다.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에 대한 글이다.

 

 

 

 

도둑놈이 어떤 부잣집의 물건을 훔치는 경우, 그는 부자는 이 물건이 없더라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비록 도둑을 맞더라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어떤 악(惡)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부(姦夫)가 자기 친구의 처(妻)를 유혹해서 간통을 하려는 경우, 그가 자신의 음모를 감추어 그 남편의 의혹만 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가정의 평화만 깨뜨리지 않는다면, 자신은 어떤 악(惡)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이처럼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에 굴복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행하지 못할 정도로 흉악한 범죄행위는 하나도 없게 된다. - 애덤 스미스 저, <도덕감정론>, 327쪽.

 

 

 

 

도둑이 어떤 부잣집의 물건을 훔칠 때, 집 주인이 부자니까 이 물건이 없더라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 또 부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도 그런 생각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겠다. 또 빈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도 당신의 형편이 나보단 나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겠다. 그래서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합리화의 명수’여서 자신이 한 일을 합리화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손님이 나처럼 기분 상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종업원의 불친절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니 종업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된다고 해도, 나는 어떤 악(惡)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건 옳은 일인가. 아니면 혹시 나도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에 속아서 잘못을 저지른 걸까.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누군가가 불친절해서 내가 불쾌해졌을 때 참아야 할지, 참지 말아야 할지를.<끝>

 

 

 

 

................................................................................................................

 

 

<이 글을 쓰고 나서>

 

 

며칠 전에 친구들이 놀러 와서 생긴 일을 글로 옮겨 보았다. 만약 내가 애덤 스미스 저, <도덕감정론>을 읽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이 책의 어떤 구절(위에서 인용한, 327쪽의 글)이 떠올라서였으니까.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뛰어난 경제학자이다. 내가 보기엔 인간을 통찰한 학자로서도 뛰어나다. 요즘 나는 <도덕감정론>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로 읽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기회에 ‘역자 서문’의 글을 옮겨서 이 책에 대해 소개한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특히 어떠한 천성 내지 심성을 가진 존재인가? 인간 속에 있는 <마음이라는 자연(自然)>은 어떠한 법칙(法則)을 가지고 있는가? 인간의 심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인간완성의 조건, 인간행복의 조건을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심성을 올바로 이해하여야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인간 개개인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 아담 스미스가 근대 시민사회 형성기에 올바른 사회과학 이론과 올바른 사회발전 원리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론이 인간의 심성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구성원리와 발전원리를 가장 명쾌하고 정확하게 밝힌 최고의 명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의 밑바탕에는 바로 <도덕감정론>에 나타난 아담 스미스의 인간 심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역자 서문 <초판>’에서.

 

 

<도덕감정론>은 보기 드물게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책이든 좋은 책이라고 해서 책 전체의 내용이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즘 내가 하는 독서란, 마치 모래밭에서 숨은 보석을 찾아내듯,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찾는 일인 것 같다. 그 ‘찾는 일’이 참 재밌다. 이게 독서의 달콤한 맛이 아닐까 한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1-12-2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남이나 애정녀가 필요하신 것 같아요.ㅋㅋ
저는 그런 상황 같으면 즉시 말해 버립니다.
남이사 어쨌거나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할 일이고,
손님을 상대로한 장사라면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되죠.
그럼 장사를 하지 말던가...
아, 그렇다고 제가 애정녀라는 건 아니고.
그런 상황에선 복잡하게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 뭐 있나요?
(아, 그러니까 오히려 심각해지네.-_-;;)

와, 근데 정말 책을 세심하게 찾아 보시는군요.
저는 아직 말씀하신 책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글은 참 쉽고 또렷하게 잘 쓰세요.^^
저는 감정의 뒤범벅인데.ㅎㅎ

페크pek0501 2011-12-25 20:27   좋아요 0 | URL
무슨 겸손의 말씀을...

책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밑줄 친, 인상적인 구절을 자주 들춰 보는 취미가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좋아하는 책은 표지가 닳아 헌 책이 되지요. 하지만 저도 읽고도 놓치는 글, 많아요. 그래서 가끔 남의 리뷰를 보고 그 책에 그런 내용도 있었나, 하고 다시 들춰 보곤 해요.

첫 댓글, 고맙습니다. ^^ 크리스마스 밤을 잘 보내세요. :)

이진 2011-12-2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낯도 많이 가리고 쑥스럼도 많아서, 절대
사장에게까지도 그렇게 말을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음식점에서 머리카락이 나온것은 참을수가 없는걸요?
가끔 저희 학교 급식에서 파리가 나오는것은 제가 겪어도 봤고 보기도 많이 봤지만
그때마다 불쾌감과 짜증이 확 밀려오더라구요.
어떨때는 한 숟가락 펐는데 파리가 나오고 , 우동을 신나게 먹고있는데
파리가 둥둥 떠있어서 얼마나 속이 메슥거리던지...
그 종업원도 꽤나 불쾌하셨겠어요.
저는 그릇치우는 것을 평소에 신경안쓰는 타입인지라...
그런데 치워달라는 말도 안했는데 치우나요? 이상한걸요 ㅎㅎ

그나저나 저 애덤스미스의 말 너무 좋아요
가끔 제가 자기 합리화를 하고있을 때 생각해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1-12-26 10:53   좋아요 0 | URL
예, 치워달라고 안 했는데, 그러더라고요. 순간 무안하고 당황스러웠어요. ㅋ

저도 마음 약한 편이라 싫은 소리, 따지는 것 잘 못하는데, 그날은 힘좀? 썼어요.

자기합리화인지 아닌지... 애덤스미스의 말을 상기하면 자기 성찰에 도움이 될 듯해요. 저도 그러려고요.

친구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며 충고를 하면서 아픈 말 던지면 안 될 것 같아요.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일지 몰라요.ㅋㅋ 고맙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12-2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빼놓고 다시 먹었을 거예요. 아 저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특별히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냥 참는 편인 것 같네요. 그런 상황에서는요. 벌레 나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요. 그나저나 친구들이랑 만나 즐거우셨겠어요. 저 지금 [나홀로 집에] 찍고 있어요. 뭘 좀 하는 중인데, 눈이 빠지겠어요.ㅋㅋㅋ 프린터가 고장나서 생긴 일.ㅠ

예전에도 [도덕감정론] 말씀하셨었죠? 맞아요, 좋은 책이라도 다 좋진 않죠. 좋은 영화라도 다 좋진 않고. 그래서 재밌냐 아니냐로 물어보면 아주 난감하다는;; 좋고 싫은 건 지극히 제 기호죠. 그래서 쓸때마다 조심스럽고. 누군가 영향을 받으니까요. 이건 눈치 보는 것과는 다른 문제 같아요 :)

오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어요?^^

페크pek0501 2011-12-26 10:56   좋아요 0 | URL
24일엔 친정에서 크리스마스 보냈어요.
어젠 집에서요. 기됵교인이 아니라서 크리스마스보단 연말이 더 의미가 있죠. 나이 한 살 더 먹네요. ㅋㅋ 더 이상 나이 안 먹고 싶은데...ㅋㅋ

연말 잘 보내세요. :):)

oren 2011-12-2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도덕감정론』은 저 역시 올해 가장 흥미롭게 (그리고 꼼꼼하게) 읽었던 책 가운데 한 권이었는데, pek님의 글을 읽어보니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에 대해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문득 `합리화`에 관한 재미난 댓글이나 하나 남겨볼까 싶네요. ㅎㅎ
* * *
영화 「새로운 탄생(The Big Chill)」에서 제프 골드블럼은, "합리화는 섹스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친구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그는 이렇게 묻는다. "한 번도 합리화를 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는가?"
- 스티븐 핑커,『빈 서판』중에서

페크pek0501 2011-12-26 10:5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오렌님이 이 글을 읽으셔서 좋네요.
오렌님이 도덕감정론을 추천해 주신 분이니까요. 그 점, 감사 드립니다.

누군가를 알고 지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져요.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노는 물이 중요하다...ㅋㅋ 그런 점에서 오렌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새로운 탄생, 대사 멋지네요. 저런 게 통찰이죠.

곧 연말이네요. 망년회가 많으시겠어요. 즐겁게 보내세요.


숲노래 2011-12-26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만 담기엔 생각주머니가 아주 커서
이렇게 글 하나로 솔솔 풀려나왔구나 싶어요.
생채기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1-12-26 11:01   좋아요 0 | URL
이 세상에 된장님 같은 분만 계신다면 불친절, 불쾌감 같은 건 없을 텐데요. ㅋㅋ

이 해, 잘 마무리하시고 연말 잘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12-2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언니, 글이 너무 좋아요, 진짜루요... (이렇게 입에 짝짝 붙을수가!)

언니랑 저랑 고민하는(?) 주제가 비슷한거 같아요.
저도 타인에게 싫은 소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 제가 상담심리 공부를 하면서 살짝 든 생각은 이것이 일종의 `투사`구나 싶더라구요. 투사란게 자신에게 버겁거나 힘든 사고와 감정을 타인에게 넘기는거거든요. 즉,
내가 타인에게서 듣기 힘든 소리를, 타인에게 해야할 때도 힘들어하는거 아닐까 하는거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
사람마다 들을 때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서, 모든 사람이 상처받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특히 사소한 문제인 경우 말이죠. 그리고 해야할 말을 못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서 적응하는데 문제가 있고, 나중에는 우리나라의 소위 홧병(?)으로 남아서요, 갑자기 욱하고 폭발하는 성향을 보이더라구요. 평소에 얌전하다가 욱하는 그런.

결국 이슈는, 어떻게 부드럽게 나의 의견을 전달하는가 인거 같아요.
제가 평소 고민하던 문제라 댓글이 무지하게 길어졌어요,,, 아하하. 페크 언니,
즐거운 연말 되시고, 올해 언니를 알게 된 것이 너무 기쁘답니다~~~~~~

페크pek0501 2011-12-27 13:16   좋아요 0 | URL
저도 마녀고양이님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답니다.~~~~~~~~
입에 짝짝 붙는 글을 썼군요, 제가...ㅋㅋ
아마 마녀고양이님과 제가 심리학을 좋아하고 관심 갖는 게 비슷해서 좋게 읽어 주신 것 같아요.

김형경은 <사람풍경>이란 책에서 투사를,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옳겨놓기라고 요약했어요.
지역감정, 인종차별주의, 마녀사냥 등이 대표적인 투사 방어기제라는 군요.
게슈탈트의 말 -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결국 투사를 살펴보면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가 되지요. 예를 들면 게으른 동생을 보고 지나치게 화를 낸다면 그건 자신의 게으름을 동생을 통해 보게 되어서 화를 낸다는것...

아, 저도 얘기가 길어졌어요. 마녀고양이님과는 얘기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 이 예감... 좋은 예감이죠? ㅋㅋ 연말 잘 보내세요.

마태우스 2011-12-2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의 사건에서 전에 읽은 책을 떠올리다니, 삶과 독서를 연결시키는 훌륭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저도 배우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11-12-27 13:16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배우고 싶어요! 마태우스님의 그 유머를요.
그래서 우울증이 싹 날아갔아요, 라는 댓글을 저도 받고 싶어요.
심하게 반갑습니다. ^^

달사르 2011-12-2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습니다. 일상에서 하는 이런 탐구, 이게 바로 스스로 터득하는 삶의 지혜, 뭐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교묘하게 꾸며낸 생각들..저도 많이 공감되는 지점입니다. 뭔가 정의로운 일인듯해서 행했으나 뒷끝이 개운치 않을 때 주로 드는 생각들인데요. 매번 무언가를 행하고 나서, 그 행함에 교묘한 지점은 없었는지 체크하는 버릇. 아주 멋진 버릇 같애요. ^^

방명록 글은 오늘 읽었어요. 감사드립니다. ^^

페크pek0501 2011-12-27 13:1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삶의 지혜라는 표현은 과찬이시고요.ㅋㅋ

제가 방명록에 근황을 묻는 고런 기특한 글을 남겼네요.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궁금했어요. 앞으로는 글을 올리실 거죠? 일이 바쁘셔서 그런 건 알지만요...

필사 진도가 궁금했답니다. 또 뵈요.

노이에자이트 2011-12-2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초로 도덕감정론을 번역한 박세일 씨는 요즘 장기표 씨와 함께 보수주의가 거듭나야한다며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총선준비 중이더군요.문제는 인지도가 너무 낮아 내년 총선에 몇 명이나 당선될지 암담하다는 거죠...저는 이런 사실에도 관심이 많아서...

페크pek0501 2011-12-27 18:58   좋아요 0 | URL
아, 정보맨이시군요.
제가 갖고 있는 책도 박세일님 번역입니다.
아무튼 노님은 그냥 평범하게 사시기엔 아까운 분이신 것 같습니다. ㅋㅋ
 

 

지난 12월 13일에 마태우스님의 서재에서 <물만두님 베스트셀러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물만두님의 책 홍보를 위한 이벤트로서 간략히 쓰면 이렇습니다.  

 

고인이 되신 물만두님의 1주기를 맞이하여 물만두(홍윤)님의 책 <물만두의 추리책방>을 읽고 마태우스님이 만든 열 개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쓴 분들 중에서, 다음과 같이 선정하여 상품권을 선물로 준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정답을 맞추신 분이 2등,

4번째로 정답을 맞추신 분이 3등,

7번째로 정답을 맞추신 분이 1등.

 

1등 알라딘 상품권 5만원,

2등 알라딘 상품권 3만원,

3등 알라딘 상품권 2만원."

 

그리고 재밌는 당첨이 또 있는데, 이 이벤트에 댓글을 달은 분들 중에서도 네 분을 뽑아 물만두님의 책을 선물로 준다는 것입니다.  

 

"12번째와 25번째 댓글을 달으신 분, 그리고  26번째와 42번째 댓글을 달으신 분께 물만두님의 책을 드립니다."

 

바로 제가 42번째 댓글을 쓴 사람이라서 댓글 당첨자로 뽑혔다는군요. 그래서 제가 물만두님의 책을 선물 받게 되었답니다. 물론 몇 번째의 댓글이 당첨되는지는 주최측(두 분이 비밀댓글로 알림)만 알고 진행되었습니다.

 

저로 말하면 가위바위보를 해도 늘 지는 쪽이어서 이런 행운이 온 걸 좀 의아하게 생각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비용을 들여서 책 홍보에 나선 분들도 있는데, 그런 생각으로...

 

이 이벤트를 주최해서 상품권을 선물로 내놓으신 마태우스님을 비롯하여 댓글 당첨자에게도 선물을 주시겠다는 조선인님, 진/우맘님께 감사 드립니다. 또 저처럼 참여해서 댓글을 남겨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이벤트의 훈훈한 마음이 쭉~ 이어져서 물만두님의 책이 많이 많이 팔리길 기원합니다. (선물 받는 책은 제가 읽고요,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있을 땐 이 책을 구입해서 하겠습니다.)

 

저도 물만두님의 책이 많이 팔리도록 힘껏 응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물만두님의 책이 많이 팔리도록 응원해 주세요.

 

 

 

.....................<물만두님의 책 두 권>.....................................................................

 

 

<알라딘, 책소개>

 

전설의 서평 블로거 물만두 홍윤의 <물만두의 추리 책방>. 저자가 11년간 동명의 블로그에 올린 추리소설 리뷰 중 200편을 엮어낸 유고집이자 국내 최초의 장르문학 서평집이다. 20여 년간 희귀병인 봉입체근염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2010년 12월 13일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저자는 방대한 독서량과 따뜻한 시선으로 양질의 리뷰 세계를 구축했다.

이 책은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통틀어 엄선한 물만두표 '죽기 전 읽어야 할 추리소설 필독서 200선'이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괴도 뤼팽 시리즈로 유명한 모리스 르블랑, 정통 추리소설의 대가 엘러리 퀸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시각을 날카롭게 녹여낸 히가시노 게이고와 유쾌함과 치유를 동시에 선사하는 미야베 미유키까지 153명 작가의 200개 작품에 대한 리뷰를 모았다.

저자는 2000년 3월 2일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세상으로 떠나기 전인 2010년 11월 17일 <메타볼라>까지 공식적으로만 1838편, 비공개 글까지 포함하면 무려 1만 2334편의 글을 올렸다. 그중에서 추리소설에 대한 리뷰만 1296편(원고지 12,000매)을 써 압도적인 분량으로 이미 장르문학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추리소설을 읽고 싶었던 그녀의 리뷰 세계를 집대성한 이 책은 시대별, 국가별 대표작을 골라 차려낸 푸짐한 추리소설의 만찬이다. 개별 리뷰들 외에도 '뤼팽 전집, 순서대로 읽기'나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베스트 8', '처녀작이 우수한 추리소설 7' 등 물만두가 정성껏 기획하고 선정한 리스트들을 통해 추리소설의 지형도를 한눈에 그릴 수 있다.

 

 

 

<알라딘, 책소개>

 

물만두라는 이름으로 10년간 활동한 서평 블로거 홍윤의 비공개 일기를 모은 에세이. 스물다섯의 나이에 진행성 근육병을 판정받은 그녀는 마흔둘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하면서 꾸준히 서평을 올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고인의 1주기를 기리며 출간된 이 책에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 가족 이야기, 바깥세상과의 소통 통로였던 서평 활동 이야기, 인터넷을 통해 맺은 인연 이야기 등을 비롯해 그녀의 단상과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추신(12월 25일에 씀) :

오늘 물만두님의 책 두 권을 택배로 받았습니다. 제가 아주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어요. 제가 이런 멋진 선물을 받게 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12-2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두 생일 선물로 그 책들을 받았답니다.
좋은 책이예요, 물만두님의 책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훈훈한 이벤트를 주최하신 분들께, 저도 감사 꾸벅~

페크pek0501 2011-12-21 14:36   좋아요 0 | URL
에그그, 잽싸라... 우리 마녀고양이님이 첫 테이프를 끊으시네요. 고맙게도...
댓글이 없어 썰렁할까 봐, 걱정했는데...ㅋㅋ

예쁜 사람은 예쁜 짓?만 골라 한다니껴. 호호호...

재는재로 2011-12-2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댓글 당첨되서 책을 받는데 이런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추리소설은 좀 좋아해서 홈즈시리즈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는 다읽었는데
물만두님 책을 읽고는 도저히 비교불가능한 독서량과 그 리뷰에 두손들어죠
한사람이 살면서 책 안읽는 사람도 많지만 책을 읽어도 이렇게 많은 책을 읽기힘든데
그분은 진짜 대단한 독서량과 그책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꼬집어주시는 그분의 책을 읽고
이번에 도서관에서 말타의 매를 빌려보려구요 요세는 앨러리퀸의 재발행된 책을 두권다읽고
앨러리퀸을 책을 다시 읽고있어요 아무튼 많은사람에게 그분의 책이 읽혀을면 하네요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 에시이집도 이번에 책받으면 읽어봐야죠 아무튼 축하드려요

페크pek0501 2011-12-22 13:1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축하 드려요. 그리고 반갑습니다.
저는 추리소설 분야는 셜록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것만 읽어서 좀 무식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물 받으면 많이 배우려고 그래요. 목차 보니깐 책 제목이 꽤 많던데요...

나중에 무엇을 사 볼지 조언을 부탁드려야겠네요. ㅋㅋ

아이리시스 2011-12-2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서재에서도 어제 언뜻 보고는 지나쳤는데 거기 페크님이 계셨군요. 이벤트 시작하신 분들, 당첨되신 분들 다 추카추카. 페크님도 추카.

제가 침대위,머리맡공간에 책을 하도 쌓아놔서(쌓기는 쉬웠어요)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제가 자다가 책에 깔려죽을지도 모른다고 치워라, 바닥에 놓던지.해서 설마 떨어지겠어 하다가 걱정이 좀 돼서 오늘 그것만 거실로 꺼냈어요. 책장도 없고 책꽂이도 없고, 거실 한복판에 으하하, 책상 책꽂이는 교재,연습장,노트,정리본만으로도 한가득이고, 정말 책만 갖다버려도 집이 엄청 깨끗해지겠다고 생각했어요.ㅜㅜ 지금 팔다리가--;; 오랜만에 책상정리도 좀 하고~ 저는 아주 나중에 물만두님책을 읽을지도 모르겠어요.^^

페크pek0501 2011-12-22 13:21   좋아요 0 | URL

아, 나랑 똑같네요. 저도 침대 옆에 50~60권쯤 책들이 쌓여 줄지어 있어요. 그중 반은 읽은 책이고, 반은 안 읽은 책이에요. 본 것은 다시 책장에 꽂아야 하는데, 또 볼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러고 있어요. 책상도 갖다 놓은데다, 그래서 예쁘게 꾸며야 할 침실이 엉망이지요. 그런데 좋은 점은 책상에서 글 쓰다가 바로 침대에 누워 낮잠 잘 수 있다는 거지요. ㅋㅋ

다음엔 런닝머신도 사다 놓으려고 그래요. 책 읽다가 뛰려고요. ㅋㅋ 티브이 보면서 뛰면 시간이 금방 갈 것 같아서... 요즘 추워서 운동하러 나가기 싫어요.

stella.K 2011-12-2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더 없이 좋은 선물이시겠어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저는 이렇게 말로만...;;

페크pek0501 2011-12-22 13:22   좋아요 0 | URL
말로만이라니요, 무슨... 얼마나 수고 많이 하셨는지, 저는 알고 있는데염...ㅋㅋ

좋은 분들이 많아서 참 훈훈한 12월입니다.

숲노래 2011-12-2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받는 즐거움 마음껏 누리면서 섣달그믐 즐거이 맞이하셔요~

페크pek0501 2011-12-22 13:23   좋아요 0 | URL
예, 된장님도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아, 며칠만 있으면 새해가 되네요.
새해인사는 나중에 해야겠지요?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2-2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이 평론한 소설 중에는 제가 즐겨 읽던 것도 많더군요.저도 언젠가 추리소설 평론도 해보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11-12-23 15:20   좋아요 0 | URL
아, 반가운 분이 와계시네요.ㅋ 추리소설 평론이라, 역시 팔방미인이시네요 .님이 하시면 잘 하실 거예요. 다방면으로 쌓은 지식이 많으니까요.

한 분야를 정해서 그쪽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 멋지죠. 저도 제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 모색중이에요. 문제는 모색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지 않을까 싶은 거죠.ㅋ

저는 말콤 글래드웰이나 수전 손택이나 정희진님의 글을 좋아해요. `지루하지 않음, 재밌어서 읽고 싶음`을 느끼게 만들거든요. 이것이 글이 꼭 갖추어야 할 점이라고 봅니다. 교훈이나 감동은 그 다음이고요. 그런데 이게 어렵죠. 어려워서 매력이 있죠. ^^

2011-12-23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12-23 15:21   좋아요 0 | URL
매우 감사합니다.
앞으로 종종 뵙길 바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2-2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추리소설이건 본격소설이건, 외국 소설이건 한국소설이건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에요.그게 재밌더라고요.소설작법도 공부하고 또 소설의 배경이 되는 나라,민족,역사적 사건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잖아요.

pek0501님은 최근에 화제가 된 책들도 많이 보시는군요.

페크pek0501 2011-12-25 20:06   좋아요 0 | URL
예,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닥치고 정치, 그리고 하루키 잡문집도 읽기 시작했어요. 오늘 페이퍼에 올린 도덕감정론도 함께 읽고 있는데, 내용이 좋습니다.

고전과 현대를 5:5로 읽으려고 해요. ㅋㅋ

페크pek0501 2011-12-2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물만두님의 책 두 권을 택배로 받았습니다. 제가 아주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어요. 제가 이런 멋진 선물을 받게 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 내용을 위의 페이퍼에도 맨끝에 추신으로 썼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 모두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요,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결혼했던 1988년 그해, 남편이 내 이름을 부를 순 있어도 내가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감히 아내가 남편의 이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게 시집 식구들의 의견이었다. 우리 부부는 동갑이니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남편의 이름에 ‘씨’자를 붙여 불렀고 남편은 나의 이름에 ‘씨’자를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불렀는데도, 내가 부른 남편의 호칭만 문제가 되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여성의 낮은 위치를 뼈저리게 자각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호칭 문제를 경험한 터라 책을 통해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을 때 무척 반가웠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보부아르 저, <제2의 성>,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울프 저, <자기만의 방>, 그리고 우리는 남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쁜 원칙과 싸운다고 말하는 프리단 저, <여성의 신비> 등을 읽으며 세상의 불합리와 불공정을 배웠다.

 

 

그로부터 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아내가 남편의 이름을 불러도 괜찮은 시대가 되었다. 시동생이 결혼하여 새로 생긴 동서가 그걸 증명했다. 세월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그렇게 높여 놨다. 이제 페미니즘이란 말은 진부하다. 그래서 누구나 페미니즘에 대한 모든 책들이 새롭지 않은 뻔한 주장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가 정희진 저,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은 진부하지 않고 새롭다 못해 충격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기존의 인식의 틀을 뿌리 뽑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만들어서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가부장제 사회의 통념을 전부 지워 버리고 새로운 내용으로 사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떤 독자에겐 마음 불편한 책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남자에게 대항하여 싸우자고 소리치지 않으며, 여자의 힘을 기르자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남자든 여자든 우리가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 주기 위해 세상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설명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가졌던 생각들이 맞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게끔 해 줘서 좋다.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권력을 드러낸다

 

 

우선 저자는 머리말에서 ‘물음’에 대해 말한다.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는 것.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교양과 예의뿐 아니라 권력을 드러낸다는 것.

 

 

 

 

“왜 여자들이 취업하려고 하지?”, “장애인도 애를 낳을 수 있나?”, “왜 노인이 사랑을 해요?”, “동성애자도 실연당해요?”, “흑인도 철학자가 될 수 있나?”, “(이주 노동자에게) 왜 한국에 왔나?” 이 같은 질문은 남성, 비장애인, 젊은 사람, 이성애자, 백인, 한국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혹은 용서받지 못할 욕망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질문은 묻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의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왜 그렇게 취업하려고 노력하니?”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16쪽)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니. 그렇다면 평상시 하는 말에도 주의가 필요하겠다. 나의 말에 어떤 편견과 선입감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검토해야겠다.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여성은 남성의 시각을 이어받는다

 

 

저자는 우에노 치즈코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은 “그들이 말하게 하라.”였다. 우에노 치즈코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서화된 역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역사가 출발하다 보니, 그동안 역사는 남성에 ‘의해’ 여성에 ‘대해’ 쓰여진 문서나 재현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남성들이 쓴 것은 여성에 대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가와 관련된 남성들의 관념을 웅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생산한 여성에 대한 지식은 남성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214쪽)

 

 

 

 

남성에 의해 쓰인 여성의 역사에서 여성의 모습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 모두가 갖고 있는 시각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시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에 불과함을 말하고 있다.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리면,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다는 것이겠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도 남성 중심의 사회가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다

 

 

저자는 ‘동성애 혐오 문화’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신이 동성애를 허용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누가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한다. 여성이나 흑인, 장애인 모두 누군가 ‘찬성’하지 않아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누군가의 ‘동의’와 ‘허락’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자임을 알리겠다는 위협이 한 사람의 인권을 몰수하는 ‘권력’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퍼져 있는 동성애 혐오 문화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의 가해자는 사회 구성원 모두라고 볼 수 있다.(111쪽)

 

 

 

 

‘소수자’에 대해선 이렇게 언급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면에선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일 수는 없다는 것,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는 것, 그러므로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고 소통해야 한다고.

 

 

이 밖에도 성판매 여성, 군사주의와 남성성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며,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여아 낙태의 문제, 정신대 문제, 가정폭력 문제 등이 ‘인권’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의 일상을 규율하고 있는 외모 ‧ 학벌 ‧ 나이 ‧ 서울 중심주의 등으로 인한 차별 사안도 인권 침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나 원칙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이란 저서에서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해 쓴 것,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글이 생각났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이란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를, 얼마든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제도를 마치 늘 존재해 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게 어디 ‘제도’뿐이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원칙들을 일말의 의심 없이 꼭 지켜야 마땅한 옳은 것들로 수용하여 고정관념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비해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요즘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여자가 뭐 하러 밤늦게 싸돌아 다니냐?”라는 말로써 여성이 여성을 비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또 신문을 통해 한국인이 이주 노동자를 무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이 책은 아직 유효하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12-1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언니,
누구나 어떤 면에서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문구에 열렬히 공감해요.
제가 생각했으나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그대로 페이퍼화시킨 듯한 글이예요.

저는 현 제도가 이점이 있어서 지켜지는 것이기에 가능하면 지켜야 하지만
경직된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현재 제도나 나의 의견이나 틀릴 수 있다는 융통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경직된 저의 태도, 이미 욱한 감정 상태를 보면서 한숨을 쉬곤 해요. 흔히 타인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하지만, 그에 앞서 내가 균형을 잡고 있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균형이 아닌가 싶어지더라구요. ^^

페크pek0501 2011-12-16 21:40   좋아요 0 | URL
아, 첫손님! 마녀고양이님 고맙습니다.^^

마음의 균형 잡기,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다가도 막상 어떤 화나는 일에 처하면 이성을 잃어 마음의 균형을 잃을 수 있죠. 그런데 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난 뒤에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었는지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일이 아닐까 해요. 실수는 누구나 하는데, 그것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사람과 성찰할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는 것이죠. 마고님은 성찰하실 줄 아셔서,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이런 말도 위의 리뷰글에서처럼 저의 권력을 드러내는 것인지 걱정?이 되는군요. (지가 뭔데 괜찮다고 그래,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까 봐서요.) 농담임.ㅋㅋ 정말 말조심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오늘 날씨 무척 추워요. 하필 오늘 선배님집에 놀러갔다가 오는 길에 진짜 `겨울`을 만났어요. 겨울의 동반자, 감기 조심해요, 우리.

노이에자이트 2011-12-1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지금은 부부 간에 어떻게 호칭을 정했는지 궁금합니다.이곳 호남지방에선 중장년 이상의 남자는 아내에게 누구누구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죠.물론 누구누구는 아들이나 딸이름이죠.

페크pek0501 2011-12-18 01:18   좋아요 0 | URL
님의 질문에 생각해 보니,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군요. 저는 씨자를 붙여서 남편을 부르고 남편은 그냥 제 이름을 불러요. ㅋㅋ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 말처럼 저도 이 사회에서 길들여져서 남편 이름을 감히? 못 부른 것이죠. 이렇게 어떤 문화를 수용해 버려서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ㅋㅋ 어른들 앞에서만 서로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라고 불러요.

마태우스 2011-12-1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제 인생에서 두번째로 많은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한줄 한줄이 다 예술이죠. 근데 이 책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성매매 문제를 읽다가 "이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했었어요. 정희진님이 책을 좀 많이 썼으면 좋겠는데 너무 뜨문뜨문 쓰시더군요. 그나저나 님 <제2의 성> 읽으셨군요. 그거 읽은 분 찾기가 참 어려운데...사실 전 정말 의지, 끈기, 인내 이런 걸 다 동원해서 읽었어요. 빨간펜으로 줄만 빡빡 쳤다는...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긴 한데요, 읽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여자였다면 좀 더 쉽게 읽었을까요? 암튼 님이 그 책을 읽으신 걸 안 게 반갑네요.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릴게요

페크pek0501 2011-12-18 01:1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런데 지도편달 부탁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요? 큭. 마태우스님의 겸손? 배울 사람은 저인 것 같은데염.ㅋㅋ

성매매 문제, 저도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이 리뷰에선 성판매 여성(밑에서 네 번째 문단에)이라고만 썼어요. 성매매 자체가 인권 침해인지, 아니면 그것의 금지가 생존권 침해인지..., 또 우리가 바라는 것과 성매매 여성들이 바라는 것이 다를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등 어려운 문제예요.

<제2의 성>, 다 읽으셨다니 저도 반갑네요. 초보 시절에 500쪽이 넘는 상하 권 두 권을 꼭 읽어야 페미니즘을 알게 되는 줄 알고 읽었어요.ㅋㅋ 저도 줄 치며 읽는 버릇 있어요. 읽었더니 이렇게 써 먹을 일이 있을 줄이야...
아, 그런데 님에게 첫 번째로 영향을 끼친 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

2011-12-26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7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7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7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5-04-27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안해는 저에게 존댓말을 하고 저는 안해에게 존댓말을 합니다. 제 딸에게도 존댓말을 할 예정인데,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왜 pek0501 님은 배우자에게 상호 존댓말을 써 줄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이라는 직종만으로도 연하인 사람 모두에게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2015-04-28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물은 일정한 법칙을 따른다. 물론 그 법칙을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법칙이다.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을 읽으면 두 남녀 사이에서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남자(화자)가 여자(클로이)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기까지의 연애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통해 사랑의 법칙을 정리해 보았다.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통해 본 사랑의 법칙 14가지


첫 번째 법칙 :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질 땐 상대에 대한 미화가 시작된다.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평생 서툴게 찾아다녔던 바로 그 여자, 나의 꿈에서 예고된 자질을 갖춘 존재를 확인했다. 그녀의 웃음과 눈매, 유머 감각과 책에 대한 취향, 불안과 지성은 내 이상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12쪽)


두 번째 법칙 : 두 사람의 공통점인 우연적 요소도 필연적 운명으로 해석한다.


평소에 미신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클로이와 나는 우리가 이미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즉 우리가 서로에게로 운명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무수한 사실들 -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 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짝수 해의 같은 달 자정 무렵(그녀는 오후 11시 45분, 나는 오전 1시 15분)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클라리넷을 분 적이 있으며, 둘 다 학교 다닐 때 <한 여름밤의 꿈> 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헬레나 역이었고, 나는 테세우스의 시종 역이었다). 우리 둘 다 왼쪽 발가락에 커다란 점이 둘 있었고, 똑같은 뒤쪽 어금니에 충치가 있었다. (…) 심지어 우리의 책꽂이에는 똑같은 <안나 카레니나>(옛 옥스퍼드 판)가 있었다.(13쪽)


세 번째 법칙 : 연인의 단점에서도 사랑을 느낀다.


그녀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이, 귀걸이의 취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결론은 피할 수가 없었다.(24쪽)


네 번째 법칙 : 연인에 대한 집중력이 강해진다.


클로이를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이 며칠 동안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30쪽)


다섯 번째 법칙 : 연인의 전화를 기다릴 땐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 된다.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33쪽)


여섯 번째 법칙 : 연인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할 때 사랑에 더 빠지게 된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린다)이 아니라, 수줍어하며 그 양극단 사이로 우리를 이끄는 사람이므로.(40쪽)


일곱 번째 법칙 : 연인의 눈을 통하여 자신을 보게 된다.


구애하는 위치 때문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지 않고 그녀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내 타이가 어떤가? 하고 묻지 않고 그녀가 내 타이를 어떻게 볼까? 하고 묻게 되었다.(49쪽)


여덟 번째 법칙 : 사랑이 불확실하거나 안전하지 못할 때 사랑의 욕망이 더 커진다.


몽테뉴는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니 드 루주몽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불태우는 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는 욕망을 정의상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한정시켰다.(92쪽)


아홉 번째 법칙 : 연인의 시각은 다른 사람의 시각과 다르다.


나는 그녀가 남의 편의를 잘 봐주고 관대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집에서 그녀는 약간 오만하고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 나는 클로이가 돈과 직업에 대해서 분별력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딸이 “남자 친구들을 못살게 굴어서 자기한테 복종시킨다”고 말했다.(104쪽~105쪽)


열 번째 법칙 : 연인의 눈에만 보이는 매력이 있다.


두 눈이나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진 입에서 매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슈퍼마켓 계산대 위에서 움직이는 여자의 손에서 매력을 찾아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클로이의 독특한 버릇들은 더 큰 완전성을 가리키는 기호들로, 그것은 연인만이 읽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빙산의 일각처럼 그 밑에 놓인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의 진정한 가치,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149쪽~150쪽)


열한 번째 법칙 : 연인이 낯선 사람으로 보일 때 강렬한 욕망이 솟는다.


어느 주말, 길을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15분쯤 뒤 카센터의 밴이 도착하자 클로이가 나서서 경찰관과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낯선 사람(신분증이라는 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내가 아는 여자가 갑자기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익숙함이라는 갑갑한 담요 밖으로 나와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게 된 여자가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여자처럼 그녀를 보았다. (…) 한번도 손을 대본 적이 없는 몸을 가진 사람에게 느끼는 듯한 강렬한 욕망이 솟아올랐다.(201쪽~202쪽)


열두 번째 법칙 : 사랑하면 괜스레 불안해진다.


클로이를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안은 부분적으로는 내 행복의 원인이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클로이는 갑자기 나에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고,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관계를 일찌감치 끝내고 싶은 유혹이 생겼다.(224쪽)


열세 번째 법칙 :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클로이와의 이별에 대한) 내 분노를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 자신의 죽음으로 그 분노를 상징하려고 했다. 나는 클로이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쪽을 택했다. 나 자신을 죽임으로써 그녀가 나한테 한 일이 무엇인지 내 몸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 나는 단지 클로이에게,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284쪽)


열네 번째 법칙 :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또 빠지게 되는 게 사랑이다.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낭만적 실증주의가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유일하게 유효한 지혜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금욕주의적 충고였다. 나는 이제 상징적인 수도원으로 물러나, 간소한 서재에 처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 그러다가 어느 날 디너 파티에서 레이철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사무실 생활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나는 그녀의 눈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순간 나는 금욕주의적 철학을 내팽개치고 클로이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모조리 되풀이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311쪽~312쪽)



* 맺는말

우리는 연애를 모르면서 연애를 한다. 연애를 하면서 연애에 대해 하나씩 알아 간다. 우리는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에 대해 하나씩 알아 간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을 모르면서 인생을 산다. 삶엔 연습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연습 없이 바로 실전의 현장에 들어가서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 사랑에 실패한 뒤에 시간을 되돌려 다시 연애할 수만 있다면, 다시 사랑할 수만 있다면 잘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땐 으레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므로. 같은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으므로.


어떤 사람도 그처럼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자신의 말에 그처럼 주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뜨거운 햇빛 속에서 그처럼 인상 쓰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람도 멀리서 알 정도로 그처럼 활기차게 걷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특별한 연인이므로.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각각의 연애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것이고,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연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유익한 책이다. 하지만 연애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의 가치는 덜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통찰한 알랭 드 보통의 글을 감상한다는 것은 즐겁기 때문이다.


내게 이 책은 단순히 연애 소설로 읽히기보다 인간의 심리를 명쾌하게 해석한 심리학 서적으로 읽혔다.  

 


  

 

 

 

 

 

 

 

               절판                               개정판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1-12-0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에 연습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배울 것을 남긴 채 살아갑니다.어쩌면 배울 것이 남아있다고 느끼는 것이 성숙한 인격의 증거인지도 모르죠.

페크pek0501 2011-12-09 13:39   좋아요 0 | URL
인생에 연습이 없어서 요즘도 무엇이 옳은지 몰라 헤매며 산답니다. ㅋㅋ 예를 들면 아이의 교육문제 등... 정답을 모르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12-0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꽤 최근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처음만큼 신선하지 않아서 안 읽힌다는 것과 사랑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사랑을 아무리 정의내리고 싶어도, 결국 사랑은 한 번에 한사람과 차근차근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관음증도 아니고 타인의 사랑은 그냥 타인의 사랑이고, 지나가는 남자가 아무리 멋져도 결국 내 남자 아니면 타인이라는 것도요.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ㅋㅋㅋ 이 페이퍼, 페크님이 정리하신 사랑의 법칙 너무 명쾌하고 재밌어요.^^

페크pek0501 2011-12-09 13:40   좋아요 0 | URL
님도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시죠? 그가 이 이 페이퍼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내가 쓴 소설에 그런 법칙들이 숨어 있었나?" 할지 모르겠어요. 제 맘대로 써 본 거예요.ㅋㅋ

비로그인 2011-12-1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한다, 는 말이 와닿네요. 마치 삶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계속 살아가는 것처럼... 똑같은 원리일까요? 페크님 서재는 맑은 봄날 오후 같군요. 그런데 오늘은 눈발도 날리고 추워서 공원 갔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 ㅠㅠ 그리고 몸을 녹이면서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 보내고 있네요 ㅎㅎ
종종 들를게요! :)

페크pek0501 2011-12-11 13:4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님의 닉네임이 멋지군요.ㅋㅋ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시 구절이 생각나네요. (똑같은 원리? 그렇죠 삶 속에 사랑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까요.ㅋ)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타서 컴퓨터를 켜고 있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입니다.

제 서재의 배경사진은 하늘과 나무들과 풍차가 아주 맘에 들어 싫증이 나질 않네요. 하늘에 써 있는 글을 읽다가 내려오면 지상이 되는 듯한 느낌이 저는 좋아요.ㅋㅋ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봄날인 사진인 거죠.

저야말로 님의 서재에 종종 들를게요! :) :)

마녀고양이 2011-12-1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3요소라는 것이 있는데,
친밀감, 열정, 헌신(결정)이라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열정에 얽힌 정열적 사랑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10단계를 넘어서면 다시 한번 고비를 넘기면서 친밀감있는 사랑으로 가는게 아닐까 그렇게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어요, 언니가 더 잘 아시겠지만 결혼 10년이 넘어서니 그렇다구요. 그리고... 비단 사랑 뿐 아니라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져요. 적어도 10년은 한분야에서 일해야, 적어도 맛은 보았다고 적응을 조금 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구요.

그래서 점점 짧아지는 사랑의 기간이 아쉬워요,
그 고비를 넘으면 또다른 세계도 있는데 싶어서요. 열정은 적지만 편안하고 친밀한 세계가.

페크pek0501 2011-12-12 15:17   좋아요 0 | URL
님과 저의 텔레파시인가요. 우리가 동시에 각각의 서재에 댓글을 달았던 것 같네요. 크하하... 그래서 더 반갑다는...

남녀간의 열정은 기간이 짧아요. 그런데 그건 다행이라 여겨져요. 연인을 만날 때 가슴이 두근두근거리죠. 그런데 그게 결혼생활에도 이어져 남편이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면 어떻겠습니까. 삶이 고단하죠. 그건 대단한 에너지 소모거든요. 그리고 매일 둘 만의 시간만을 갖고 싶어서 직장일에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육아문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그러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이땐 열정보단 친밀감이 좋은 것 같아요.

흔히 결혼생활을 의리로 산다는 말을 많이 하던데, 그 말이 이젠 좋아져요. 그건 한쪽이 아프더라도 결코 버리지 않고 돌봐주겠다는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거든요. 친밀감 그리고 우정에 가까운 애정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은퇴 남편 증후군`이라는 게 생겼잖아요. 나이 들면 남편들은 아내 곁에 있고 싶고, 아내들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고 그렇대요. 그래서 황혼이혼도 많대요. 아직 거기까진 안 가 봐서 모르겠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내가 남편이 귀찮아서 문제가 된다면, 서로 대화로 타협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남편들이 아내가 귀찮게 느끼지 않도록 자신을 개선해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2011-12-1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1-12-1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번째 법칙, 매우 공감합니다^^
사랑할 때 보이는 집중력을 다른 일에 활용하면 정말 훌륭한(?)사람이 되었을 것을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1-12-14 15:37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반갑습니다. 님의 닉네임을 보니 저는 굿모닝이라는 닉네임 하고 싶어요.ㅋㅋ

집중력, 멋지죠. 집중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갖게 되는, 상대에 대한 집중력 멋지잖아요.

저도 지금 님처럼 글을 쭉 보고 하나 선택했어요. 저는 열 번째 법칙 : 연인의 눈에만 보이는 매력이 있다 - 가 맘에 들어요. 그래야 짚신도 짝이 있을 거라는 즐거운 추측으로...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