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일단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그림책의 내용을 동일시하게 되면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도 저항감 없이 흘러나옵니다. 마음을 열게 되면 치유도 빨라집니다.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빨라집니다.

같은 그림책이라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마음 상태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어른들의 마음 성장에도 정말 유익합니다. 저는 여러 그림책을 살펴보고, 10년 동안 상담한 경험을 살려 우리 마음과의 연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에 상담이론과 저의 경험을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감정은 우리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면 설레기도 하고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두려움을 유발해서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게도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우리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감정을 억누르고 살다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심한 경우 타인이 시키는 대로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옥죄는 감정이 있다면, 그와 연관된 사건을 찾아서 풀어주어야 합니다. 혼자서 찾기에는 힘겨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힘들거나 괴로운 감정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무의식 저 깊은 공간에 묻어 두고 살아가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핵심감정을 찾아내 치료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핵심감정이 해소되면 나머지 자잘한 감정의 찌꺼기들도 함께 쓸려 내려갑니다.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삶이 행복해집니다. 삶을 괴롭게 하는 핵심감정을 만나 그것을 치유하는 시간은 나의 삶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으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감정은 떼어내거나 없애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감지된다고 떨쳐버리기 위해 몸부림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느낌은 참 포근하고 따사롭습니다.

<마음이 아플까봐>
호기심이 강한 소녀의 곁에는 늘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빈 의자를 발견하기 전까지 소녀의 매일은 신나고 즐겁습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할아버지의 상실을 경험한 소녀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 아픔이 너무 커 마음을 병에 넣어두기로 합니다. 그 이후 마음을 만나주지 못한 소녀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린 소녀의 마음은 늘 무겁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감정을 숨기는 찬이>
"거기서 벗어나려면, 네 감정들을 꺼내놓아야 해."

감정은 우뇌가 긴급한 일들을 지체 없이 처리하도록 마음을 몰아가는 ‘긴급전화’라고 《감정의 치유력》에서는 말합니다. 찬이처럼 친구가 괴롭혀도 "괜찮아!", 웅덩이에 빠져도 "괜찮아!"라고 하며 감정을 모른 체하면,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속에서 더욱 커지게 됩니다. 화가 났을 때 그것을 눌러 참으면 그 화가 더욱 커져서 어느 순간 폭발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출했을 때 나쁜 사람, 형편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현명하지 못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몰상식하고 속 좁은 사람으로 낙인찍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감정을 안전하게 해소하고 현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화를 해소하는 활동으로는 감정 일기를 쓰거나 신문지에 써서 찢는 방법이 있습니다. 찢은 신문으로 공을 만들어 그것을 벽에 치면서 화나는 감정을 해소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종이컵에 화나는 상황을 써놓고 발로 밟아도 효과가 있습니다. 독서치료 집단상담에서 아이들의 화를 해소하는 작업을 할 때 신문지를 주로 사용합니다.

생각을 하는 경우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좋은 일보다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뇌의 작용입니다. 우리 뇌의 편도체는 위험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과거에 내가 위험하고 두렵고 불안하고 화가 났던 상황을 그대로 저장합니다. 또다시 그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에 발생하는 사건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데도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뇌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떠오르는 생각이 합당한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감정과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나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얀에게 화가 나타난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얀과 화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것처럼 나와 나의 감정을 분리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집채만 한 감정이 나를 엄습할 때 안전한 장소에 있을 상황이 아니라면 그 감정을 발생시킨 상황과 장소를 일단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쐰다거나 산책을 하면서 나무와 꽃을 보며 심호흡을 합니다. 복식호흡으로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호흡하다보면 명상의 효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좋았던 일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장소와 그곳의 느낌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내가 무언가를 할 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에도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을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다 익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익숙하게 사용해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알아주고 왜 그런 감정이 올라오는지를 꾸준히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훈련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는 나의 감정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감정 공감은 타인과의 관계를 증진하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내가 슬픈 일이 있는데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고 모두가 자기 할 일만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냉정하게 느껴질까요?

내가 기쁠 때 아무도 함께 기뻐해주지 않으면 기쁨은 반이 되겠지요. 기쁠 때 함께 기뻐하면 그 기쁨이 배가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 대부분은 주변에서 상처를 받았는데, 그것을 진정으로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 주위에 진정 나를 알아주고 내가 힘들면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공허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담사 앞에 오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속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한바탕 눈물을 펑펑 쏟고 나면 뭔지 모를 후련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때의 감정에 귀기울여주세요. 진심으로 그 아픔을 느끼면 저절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사람을 향한 연민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홀로 괴로웠니? 많이 애썼다……."

판단이 일지 않습니다.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온전히 그가 가여운 한 영혼으로 보일 뿐입니다. 동정이 아닙니다. 공감은 마음을 함께해주는 것입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홀로 견디기 힘든 마음을 함께해주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고, 따사로운 세상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강하게 느꼈다면 우선 감정을 읽어주고 그것을 해소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때는 혼자,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서 합니다.

감정 일기 기록하기

해소 작업을 하고 나면 A4용지를 준비해서 상황, 감정, 행동, 생각 등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해왔던 일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행동했는지를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아마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를 찾는 과정에서 글쓰기는 아주 유용한 활동입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감정 일기를 쓰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자신의 하루일과를 정리하고 거기에 따라 핵심감정을 읽어주고 마음까지 토닥여줄 수 있다면 쌓이는 감정이 그만큼 적어질 것입니다.

상황, 감정, 생각, 행동, 내 마음 알아주기 등을 기록했다면 합리적인 사고는 어떤 것인지 찾아봅니다. 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보편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림책에서 소녀처럼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스스로가 친구들을 멀리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왜곡된 사고가 얼마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생각을 찾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혼자 소설을 쓰다가 그 사람의 진짜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민망하고 미안했던 적이 없으셨나요? 누군가를 의심하면 모든 상황이 의심하는 것과 일치하게 흘러갑니다. 참 신기하게도 말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따라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감정이 올라옵니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긍정을, 또 다른 사람은 부정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따라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감정이 올라옵니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긍정을, 또 다른 사람은 부정을 생각합니다.

우울하다는 감정은 ‘내가 우울하다.’라는 생각에서 옵니다. 능력 없고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면 자연적으로 마음은 우울해집니다.

자동적인 반응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반복해서 자주 바라보고 읽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종이에 써서 세밀하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체크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꾸준히 하다보면 종이에 기록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나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발표를 할 일이 있으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떨리고 긴장되는 나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그때의 생각은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우리는 모두 생각이 다르고 보는 것도 다릅니다. 듣는 것도 다릅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과 시각과 청각이 맞는다고 우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틀림없다는 왜곡된 생각에서 나옵니다. 내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면, 아기 돼지처럼 자초지종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확신한 것이 몹시 부끄럽게 느껴지고 어디론가 숨고 싶을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상황은 같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릅니다. 모두가 자신의 잣대로 보며 판단을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보는 것도 다르고 듣는 것도 다릅니다. 모두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사물을 보고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본 것이 맞는다고 우기거나 자신이 들은 것이 정확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해석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긍정적인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상황을 보고 바로 떠올리는 생각은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일들에서 기인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나의 무의식에 이런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구나. 내가 그 상황에서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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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출산 과정에 국한할 필요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섹스의 전제는 출산이 아니라 피임이다. 계획에 따른 출산은 피임에서 시작돼야 한다. 지금은 순서가 반대다.

한국사회는 포르노 산업의 영향이 절대적이어서, 남성 성기 중심의 삽입 섹스에 집착한다. 이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성교는 성 활동의 극히 일부이다. 성은 다층적인 차원의 사회성을 갖는다. 인간은 재생산(출산), 자아실현, 쾌락, 정체성, 건강, 친밀감 형성, 치유 등 다양한 이유로 성 활동을 한다. 내 주변에는 무성애자(無性愛者, asexuals)도 상당히 있다.

성교육은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가’가 아니라 인권과 공중보건 교육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타인 몸의 개별성을 인식하고 거리를 둘 줄 알며, 자기 몸에 대한 존중감을 키워주는 게 성교육이다. 이런 훈련은 장애인이나 외국인에 대한 무례나 폭력적 행동도 줄일 수 있다.

20대에게 성문화를 강의하다보면 무지와 왕성한 활동이 빚어낸 비극을 본다. 고통은 거의 여성의 몫이다. 초등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나는 건강교육(성교육), 정치교육, 환경교육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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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뉴스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이 넘쳐납니다. 입에서 입으로 혹은 SNS를 통해서 전해지는 소식들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분주한 일상이 근본적인 두려움이란 감정을 묻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똑같은 일상을 되풀이하게 만듭니다. 두려워할 만한 조금의 시간적인 여유도 주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불안, 두려움, 공포 같은 어두운 감정들이 슬며시 나옵니다. 일상을 깨트리는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죽음’ 아닐까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요? 그런 상황에서 죽음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만큼 두렵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혼자만의 힘과 노력으로 만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면, 자기가 만들어낸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삶을 망가뜨리려고 위협한다면, 그 상대가 누구든지 혹은 무엇이든지 그로부터 삶을 악착같이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죽기 전에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리 배우고 연습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는 동안 알 수 없기에 죽음은 더욱 두렵고 무섭게 다가옵니다.

어떤 이에게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절망적인 일입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지나온 시간에 대해 감사함을 배우는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치열했던 생의 끝자락에서 누리는 평안한 안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결말은 같지만,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죽음을 정의합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살아갈수록 실수와 잘못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사람에 대한 원망, 미움, 용서하지 못한 태도도 그 높이를 더해갑니다.

그런데 삶의 마지막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산다면, 그 높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람에 대한 용서가 조금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죽음을 의식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죽음 앞에서 삶에 대한 어리석은 집착은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죽음의 순간이 언제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마다 정해진 때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미리 알 수 없을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초조하게 기다린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 ‘때’까지 남은 시간을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환자들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이 남은 시간의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강의 시작 무렵에 강사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즉 죽음의 정의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떤 이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삶의 완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죽음을 정의했습니다.

죽음을 자주 접하는 호스피스 병동 종사자들은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떠나보내면서 죽음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를 만들어갑니다. 나에게 죽음은 두려움이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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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만큼 줄어든다.
 
· 레프 톨스토이(작가 겸 사상가)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간절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내 하루의 삶이 무척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나 자신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고유한 가치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소소한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더없이 소중해집니다. 그리고 죽음은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나 자신이 걸어온 시간의 의미를 상기시켜주며 내가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걸어갈 시간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지는 삶입니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아프고 힘들어서’ 죽고 싶어하는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에 출생하는 시간은 알게 하셨으나, 생을 마감하는 시간과 이후의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잘 모르게 하셨습니다. 때문에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이리도 슬프고 힘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말처럼 이 세상 삶이 힘들고 아프고 어려웠어도 죽음이 아름답게 정리되면 우리 모두의 삶도 아름답게 마무리되어집니다.

모두의 삶이 존엄하고 귀하듯, 모두의 죽음도 존엄하고 귀합니다.

이 책을 통해 반드시 다가올 스스로의 죽음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현재를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라는 이름으로 미루고 있는 일들이 있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 ‘언젠가’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루고 있는 일들 중에 특별히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더더욱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세요.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상처로 남지 않을 죽음을 위해서 마음껏 사랑하고, 삶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감사함으로 죽음이 아닌 이별을 준비하길 바랍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불안감이 두려움을 만듭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기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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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캐리 그랜트가 되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캐리 그랜트가 되고 싶다니까요."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배우 캐리 그랜트

당신의 성격을 알아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당신이 지닌 성격의 속성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외향성, 성실성, 신경성 같은 특성이 여기 속한다.

다른 하나는 당신의 행위, 즉 퍼스널 프로젝트를 살펴보는 것이다.

. "그가 누구인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의 행동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읽는 당신을 관찰하고 있다면 갑자기 책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당신은 꿋꿋이 책에 눈을 내리꽂을 것이다. 그 사람이 당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당신의 퍼스널 프로젝트는 책 읽는 지적인 이미지 어필하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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