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말했다.
"사람들은 항상 그들이 처한 환경을 탓한다. 나는 환경을 믿지 않는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아다니고, 찾을 수 없다면 그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불평하든지 아니면 움직이든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슬럼프는 흔한 호모 사피엔스의 일’이므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점은 슬럼프를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이겨내는 것이다.

자꾸 멈춰지려 할 때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슬럼프를 이겨내고 싶다면 자신이 향하는 목적지를 그려보아야 한다.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떤 삶을 감당해야 할지 생생하게 떠올릴 때 다시금 추진력이 생긴다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Saint-Exupéry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고 일을 지시하고 업무를 나눠주는 짓은 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보고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이 우리를 슬럼프에서 건져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모험’이고, 모험의 시작은 새로운 도전 과제의 부여인데, 그것은 사실 익숙했던 일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편안함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순간 말이다.

당신의 익숙한 일상에도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우선 침착하자. 당신에게 다가온 인생의 도전을 ‘모험에의 소명’이라고 생각해보자. 한 번뿐인 삶인데 멋진 모험과 끝내주는 여행담으로 가득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모험에의 소명을 받아들여야 영웅이다. 당신이라는 영웅은 거기서 출발한다.

. 어디를 향하건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과정은 아무 데도 없는데, 그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최종 결과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할 것을 믿는 사람만이 고생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세상은 확신이 있는 자를 좋아한다. ‘이래도냐’ 하고 괴롭혀도 ‘고작 이것뿐이냐’ 하고 주눅 들지 않는 사람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이렇게 우리를 응원한다.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버섯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수가 필요하다. 바로 뿌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조건이다. 이를테면 기온의 변화나 토양의 산성도 같은 것이다. 이런 방해에 부딪히면 뿌리는 기존의 성장 전략에 변화를 꾀해 포자胞子의 형태로 번식 방법을 바꾼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로소 송이버섯이 만들어진다.

① 분량으로 적기: 영어 단어 50개, 혹은 헌법 교과서 p50~p120
② 내용으로 적기: 등차수열과 등비수열, 또는 공자의 생애와 사상
③ 시간으로 적기: 8시간 공부, 아니면 아침 9시~밤 10시까지 독서실
 

오늘이 달력 너머로 사라질 무렵, 계획과 실행을 한번 맞춰보자. 달성하지 못한 분량이 얼마나 되는가. 예상과 어긋난 정도는 또 얼마나 되는가. 그런 다음 생각해보자. 하루의 공부조차 이 정도 오차가 났다면 평생의 꿈에서는 얼마나 많은 오차가 발생할까.

하루를 온전하게 채우지 못한 사람은 평생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평생이란 시간은 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인 까닭이다.
하루의 공부와 평생의 목표 관계가 이와 같다. 전자를 온전히 채우는 사람만이 후자를 이룰 수 있다.

당신이 매일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당신의 삶은 얼마나 다른 모습이 될 것인가.

반드시 끝이 있다고 해서 시작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시작과 끝이 두 기둥처럼 자리 잡은 그 사이는 빈 공간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만두소를 채우듯 그 자리에 경험을 채워 넣는다. 경험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지혜를 잉태한다. 지혜의 궤적이 바로 삶이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은 "사랑을 하다가 사랑을 잃는 편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고도 말했다.

공부한 것은 언젠가 잊힌다. 하지만 시작과 끝이 그렇듯, 공부와 망각 사이에는 경험이 자리한다. 그 경험의 깊이가 당신 삶의 깊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라. 반드시 잊어버리게 될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라. 공부를 하고 잊어버리는 편이 한 번도 공부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당신이 만약 1시간을 빈둥거리며 흘려보낸다면 정말 최소한으로 계산해도 1시간의 최저 시급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은 오늘 얼마짜리 공부를 할 것인가.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 박경철, 『자기혁명』

삶은 한 번뿐이고, 기회는 열려 있으며, 당신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할 수 있는데 왜 평범한 사람에 머무르려 하는가."
당신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데, 왜 거기 머무르려 하는가.

공부의 목적은 공부하는 동안 이미 얻어진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해도 결국 집에 도착할 뿐이지만 분명히 건강해지지 않는가.

만약 당신이 선택의 순간에 늘 우유부단하다면 열심히 공부해보자. 무지는 어둠이요, 앎은 빛이다. 선택이 두려운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선택하는 이들은 다만 가야 할 곳과 가는 방법을 보다 잘 아는 것에 불과하다.

위대한 힘은 위대한 생각에서 나온다.
위대한 생각은 위대한 질문에서 나온다.
위대한 질문은 위대한 책임감에서 나온다

이따금 ‘공부가 어렵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환절기에 훌쩍이는 콧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춥다’고 느끼면 곧장 옷을 입고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것이 계속 자라나지 않도록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생각이 떠올라도 따라가지 말자. 마음에 있더라도 소리 내지 말자. 생각하는 것은 기도, 말하는 것은 주문이다. 잘되지 않을 것 같다고 계속 생각하는 것은 실패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멍을 반쯤 파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어디부터 파기 시작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잘못된 구멍일지언정 인상적인 깊이까지 파 내려가는 편이 훨씬 낫다."
해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당신은 더 나아질 것이다. 무턱대고 앉아 있지 마라. 겁먹지 말고 나아가라.

미국 소설가 아이작 싱어Isaac Singer는 이렇게 말했다.
"잘 안 될 것이라고 계속 말하면 그 말을 증명할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세바스티안 라이트너Sebastian Leitner는 『공부의 비결』에서 "사람은 의미 없는 것을 외울 때 10배의 시간을 들이고도 10배는 더 빨리 잊어버린다"라고 말했다.

가수 김창완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삶이라는 것이 매 순간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구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오랜 세월의 집적이 아니라 ‘찰나’구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채우기를.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삶의 여기저기를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일이 없기를.

다산 정약용은 책을 읽다가 몸과 마음이 아울러 편안해지는 경험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요즘 퇴계 선생의 문집을 얻어 공부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근육이 안정되고 맥박이 편안해져 조급하고 들뜬 기운이 사라지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의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겠는가?"

언어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고, 정신은 육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언어를 접하면 언어에 담긴 에너지에 육체가 반응한다.

고난을 극복한 성공 스토리는 좌절감에 효과가 있고, 멘토의 따뜻한 조언은 불안감에 특효약이며, 오래 묵은 동서양의 고전은 방향을 잃었을 때 도움이 된다. 식탁 위에 비타민 병을 놓아두듯 책상 위에 마음을 위한 책을 올려두자. 곁에 두는 좋은 책 한 권은 옆자리에 앉은 스승과 같다.

우리의 꿈을 무의식 속에 새겨 넣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바로 잠들기 직전이다. 꿈을 그리며 잠들면 잠자는 동안 무의식이 몸과 마음을 우리의 꿈을 향해 조정해놓는다. 미국의 목사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이 "잠자리에 들 때는 언제나 승자가 되어 있어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다. 꿈을 그리며 잠들자. 무의식에 닿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쓰레기로 채우지 말자.

"사실 우리는 모습을 변장하고 있는 신성神性이며, 우리 내면에 있는 그 신성은 완전히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디팩 초프라, 『성공을 부르는 일곱 가지 영적 법칙』

애매모호한 목표는 애매모호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당신의 꿈을 뚜렷한 목표로 바꾸고 그 목표를 머릿속에 새기자.

마사노리는 이렇게 당신을 응원한다.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가 분명한데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공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아직도 목표를 세우기 귀찮은 마음이 들거든 미국 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Heinlein의 다음과 같은 경고를 기억하길.
"명확히 정해진 목표가 없으면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 충성을 바치다가 결국 그 사소한 일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

작가들이 ‘뮤즈Muse’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다. 저절로 글이 써지게끔 도와주는, 이른바 ‘영감’을 주는 존재다.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도 이렇게 말했다.
"쓰고 또 쓰라. 영감을 기다리지 말라. 쓰다 보면 영감을 얻게 된다. 쓰고 또 쓰라."
위대한 작가들은 그렇다. 잘 써질 때 쓰기 때문에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쓰기 때문에 잘 써질 때가 오는 것이다.

"세계는 언제 어느 때에도 불완전하고 흙투성이어서 이를 참고 견디며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과 신념을 필요로 했다."
참고 견뎌야 한다. 편하고 즐겁지 않은 의자 위에서 버티며 당신의 우주를 가치 있는 무언가로 빚어내야 한다.

"바닷속에도 산이 있어 이를 해산海山이라 한다. 해산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섬이 되고, 수면 아래에 얕게 잠겨 항해에 위험이 되면 이를 암초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암초 위에 등대를 세워 오히려 항해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다."

항상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찬 인생은 없다. 어려움은 어떤 식으로든 닥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매사에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비는 것과 같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어려움을 어떻게 피할까’를 질문하지 말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까’라고 질문하자.

철학자 에머슨Emerson의 말처럼 "어떤 사람은 슬픔을 딛고 서고, 어떤 사람은 슬픔 밑에 깔린다." 당신의 목표를 방해하는 암초가 있거든 그 암초 위에 등대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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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김남규 지음 / 이지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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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는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인간이 아닌 ‘덩어리‘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환자를 만나고
아픈 사람을 대하는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일이니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는 싶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있어서인지
의사가 쓴 이 책도 곱게만 읽히지는 않았다

내가 의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면
실제로 나는 그런 병원과 의사만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하느님과의 수다책을 통해 마음가짐 바꾸는중) 생각이 드니
내 고정관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숭고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환자를 살리고 싶어하는 의사가 있다고
환자를 생각하는 병원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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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가치가 언제나 육신의 욕구를 넘어선다고 할 수도 없다. 착취당하는 농민들이 빵과 권리를 위해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고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육신의 편안함이 꼭 영혼의 기쁨과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그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균형 있게 채워가도록 서로 배려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품위와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오래된 집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우리 집을 낯설어하지 않고 잘 적응하셨으면 한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사시면 좋겠다. 언젠가 어머니는 조용히 나를 불러 내가 어머니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큰 병이나 사고를 겪고서야 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너무 늦기 전에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 어떨까? 지금 곁에 계시다면……

그동안 기고했던 글을 모아서 막상 책으로 내려고 하니 글이 더 필요하여 일기 비슷하게 써둔 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신변잡기 같은 내용이라 과연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삶과 죽음의 문턱이 일상인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부끄럽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기쁨은 어디에 있으며, 죽음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고통 중에 있는 형제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다면, 그 고통은 서로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실로 하느님의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 함은 바로 이렇게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이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혈연 이상의 자매가 되어 하느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병 때문에 여러분을 찾는 환자 70% 이상이 여러분보다 배움이 부족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분들일 것이다. 가슴을 열고 늘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의 손을 잡는다면 오히려 여러분이 행복해질 것이다. 의사는 결코 고상한 직업이 아니지만, 매우 숭고한 직업인 것은 확실하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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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이는 됐고 남편과 고양이면 충분합니다
진고로호 지음 / 꼼지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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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아이없이 남편과 살고 싶어한다(딩크족)
비슷한 점이 있는 줄 알고 읽게되었는데
고양이 엄마가 된 이야기가 추가되어있어서
아이없이사는사람 이라고 다 같은게 아니라
각자 다른 인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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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살피고 발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럴 때마다 만들어내는 작은 선언 같은 문장들이 모이면 시끄러운 소리에 쫓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는 발걸음을 멈추게 해줍니다. 거대하고 으리으리한 것들 사이에서 작아지고 흐려지는 자신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아이 없이 사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도 저는 진지하게 대답한 적이 없었습니다. 얼버무리거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답만 했습니다. 그것도 말끝을 흐리면서요. ‘결혼하고 왜 아이 없이 사느냐?’라는 질문은 제게는 어렵고 부끄럽고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다른 사람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삶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아이 없이 살게 됐는지 그리고 아이 없이 사는 매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남편을 만나 평범함에서 자꾸 어긋나려는 제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았습니다. 아이 없이 사는 삶에 대해 조용하고 끈기 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 책을 썼고 새로운 문장을 완성했습니다.
‘저는 아이 없이 남편과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
이 책은 저의 작은 선언문인 셈입니다.

과거에는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맺어지는 가족만 정상으로 여겼지만 최근에는 가족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 같다. 어떤 배경으로 탄생한 가족이든 그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그렇지 않은 가족에 비해 본능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그 결집이 조금은 더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은 보통의 가족보다 더 큰 책임감으로 서로를 꽉 붙들어야 한다.

아이가 없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일을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아니 왜? 왜 애가 없어?"라고 묻는다.

책 내용 정리중-> (아이 낳으려고 불임전문 병원에도 간적있음-> 남편과 아이에대한 생각이 달라 이혼함 -> 아이 없이 살자는 지금 남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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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없이 남편이랑 둘이서 살고싶기에
궁금해서 읽어본 책인데
먼저 고양이를 키우는 상황부터 나와 다르다
5마리나 키우고 있다니 !.!
<임신하려고 노력했었고- 이혼을 했다>
이 경험도 나에겐 없는 경험이라

딩크라도
다 같지 않구나
생각하게 된다

별일 없는 듯 살았지만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죄책감이 나를 괴롭혀왔다는 것을. 그를 만나 안도했다.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어.’


"우리는 모두 평범하고 모두 이상하답니다. 그러니 각자의 자연스러운 삶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요?"

부부 사이에 상대방의 단점은 운동화에 들어간 작은 돌조각처럼 아프게 밟혀서 주기적으로 털어내야 한다.

아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오른손도 평소에는 나의 관심 밖 저 멀리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아무리 봐도 숟가락처럼 짧고 둥근 내 엄지발가락이 예쁠 리가 없는데, 그런 내 엄지발가락으로 보고 귀엽다고 말해줄 때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꼈다.

내 인생에도 간절히 사랑받고 싶었던 외로운 시간이 있었다. 마음과 마음이 마주 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양이든 사람이든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여념이 없는 지금이 좋다.

왜 아이가 없냐는 질문은 동질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쉽게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아이 없이 살게 되는 이유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다는 당신의 말에 반갑다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왜 아이가 없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매일 보는 고양이, 매일 일어나는 일을 천일야화라도 되는 양 말하는 남편에게 질 수 없지. 나도 입을 열었다. 소소한 이야기 배틀이 벌어졌다. 별거 아닌 일을 실컷 이야기하다 보니 어젯밤 나를 괴롭혔던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별거 아닌 걸로 느껴졌다. 이 사람과 같이 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동시에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사람이라 그가 좋다.

내 입장에서는 아이 없이 사는 일이 특별할 게 없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다르다. 미안한 일이 돼버린다. 손자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내 부모님 또래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모님의 큰 기쁨을 빼앗은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강권하지 않았다. 그동안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속상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조카가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에게는 드디어 손녀가 생겼고 부모님께 더 이상 죄송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조카가 고마웠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에서 현자는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책은 도끼다》 에서는 위의 문장을 인용하며 현자를 창의력 있는 사람으로 바꿔 창의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나는 현자를 ‘아이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라고 바꾸고 싶다. 그러면 더 이상 행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제일 자주 경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나야, 나!"라고 외칠 수 있다. 시시한 즐거움과 경탄,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법을 찾았다.

사람에게 천성이 있다면 나는 확실히 게으른 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제일 좋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양이를 껴안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살짝 열린 베란다 창 사이로 풀벌레 소리까지 들려온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렇게 누워서 온종일 보낼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자꾸 눕고 싶어서 실룩거리는 엉덩이를 의자에 꼭 붙들어 매야 한다. 여행 가서 멋진 풍경을 보는 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도 행복하지만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읽었던 책은 아이 없는 삶에 대한 것이었다. 내 아이는 없지만 내 삶에 아이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이름을 아는 아이, 이름을 모르는 아이, 그리고 나라는 아이. 아이 없는 내 삶이지만 아이는 항상 가깝게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 어떤 일을 계속해나간다면 우리는 그 일에 익숙해지게 된다. 익숙해지면 결국 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간단한 인생의 진리를 이제야 알다니 진작 알았다면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에라도 깨우친 내가 대견하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린다.

나이가 드는 게 신기하더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재미없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니 늙어가는 기쁨은 되도록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요즘 세상에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 오랫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였다. 사람들이 "뭐 하세요?"라고 물어볼 때 한 단어로 된 직업을 바로 댈 수 있는 것

매달 월급을 받는 일이 쓸모 있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이었다. 직장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버리고 나를 설명할 이름을 잃었다.

꼭 무언가가 돼야 한다면 나는 시인이 되겠다. 마음에 담은 것들을 소중히 기억해 글과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순간 나는 나의 쓸모를 확신했다.

"나중에 아이 없는 걸 후회하게 될 거야."
꽤 여러 번 들었던 말 앞에서 나는 진짜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맞을 아이 없는 겨울이 두려웠다. 추운 겨울 굽은 등으로 혼자 걷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 말이 피할 수 없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인생의 끝에서 자식을 갖지 않는 걸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듣고도 잠자코 웃기만 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지금이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의 저주는 반사하겠어요."

인생의 끝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아이의 유무에 따라 흔들리는 삶이 아니다. 내 안의 진실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 매일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냈는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주 웃고 계절을 온전히 느끼고 내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저 오이는 쓰다, 그렇다면 내다 버려라!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다, 그러면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마라!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귀찮은 존재들은 왜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와 같이 생각을 한다면 자연의 진실한 탐구자인 우리는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이는 마치 목수나 구두수선공의 가게에 톱밥과 가죽 조각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 그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쓰레기통이 있지만 자연은 그와 같은 것이 필요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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