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무엇보다도 한국인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같은 한국인에 대해서 강력한 유대감을 느끼고 인종과 민족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쉽게 적대감을 가집니다. 자신을 무엇보다 일본인으로 느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호모사피엔스의 일원으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피부색과 외모와 국적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감을 덜 느끼거나 강한 유대감을 가지겠지요. 인류 전체에 대해서,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인 지구와 자연에 대해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내가 하라리 박사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우주와 지구의 역사, 물질 세계의 운동법칙, 생명과 종 다양성의 발생 원리,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특성을 밝혀준 물리학자, 생물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뇌과학자, 유전학자, 생리학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분들이 애써 찾아낸 지식과 정보가 없었다면 저는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우리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모른 채 살고 있을 것이니까요. 만약 그랬다면 누군가 ‘어느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같이 괴상한 글을 책에 적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제가 그걸 읽으며 공감을 느낄 리도 없었을 겁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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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En Mer

앙리 세아르에게
최근에 사람들은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었다.
1월 22일, 불로뉴쉬르메르.
얼마 전 끔찍한 불행이 닥쳐와 2년 전부터 큰 시련을 겪어 온 해안지방 주민들을 경악케 했다. 자벨 선장이 이끄는 어선 한 척이 항구로들어오던 중 서쪽으로 튕겨 나가 선창 방파제에 부딪힌 것이다.
구조선이 구조에 나서 구명 로프를 던져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네 명과 견습 선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사건 이후 악천후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비극적인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한다. - P295

각성
Réveil

3년 전 결혼한 뒤로 잔은 시레 골짜기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곳에 방적 공장 두 개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식 없이 남편과 단둘이 나무들이 우거진 저택에서 행복하고 조용하게 살았다.
공장 일꾼들은 그곳을 성이라고 불렀다. - P303

보석
Les Bijoux

직장 상사 집에서 열린 야회에서 한 아가씨를 만난 뒤 랑탱 씨는 올가미 같은 사랑에 꽁꽁 묶였다.
그 아가씨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지방 세무 관리의 딸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왔고, 괜찮은 청년과 결혼할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 구역의 몇몇 부르주아 가정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 모녀는 가난하지만 존경할 만했고, 성품이 침착하고 온화했다. 특히 그 아가씨는 현명한 남자들이 인생을 함께하기를 꿈꾸는 전형적인 정숙한 유형의 여자 같았다. 수수한 아름다움에 천사처럼 수줍어하는 매력이 있었고, 입술을 떠나지 않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는 듯했다. - P311

발터 슈나프스의 모험
L‘Aventure de Walter Schnaffs

로베르 팽에게점령군과 함께 프랑스에 들어온 이후, 발터 슈나프스는 자신이 남자들 중에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몸이 뚱뚱해서 겨우 걸어 다녔고, 헉헉 숨을 몰아쉬었으며, 평평하고 살찐 발 때문에 지독히도 고통받았다. 그는 유순하고 너그러웠으며, 통이 크거나 잔인한 데가 전혀 없었다. 금발 머리 아가씨와 결혼해 몹시도 사랑스러운 네 아이를 둔 그는매일 밤 아내의 애정과 소소한 돌봄 그리고 입맞춤을 절박하게 그리워했다. 그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고 맥주홀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감미로운것들은 모두 삶과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포, 소총, 권총, 검에 대한 특히 총검에 대한 본능적이면서도 이론에 기초한 엄청난 증오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위험한 무기를 자신의 퉁퉁한 배를 방어할 만큼 충분히 민첩하게 다룰 자신이 없었다. - P322

오르탕스 여왕
La Reine Hortense

아르장퇴유 사람들은 그녀를 오르탕스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명령을 내리는 장교처럼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그녀가 키 크고 골격 좋고 성격이 강압적이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멍청한 하인, 닭, 개, 고양이, 검은머리방울새와 앵무새등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들을 당당히 지배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동물들을 애지중지하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처럼 가르랑거리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만지며 상냥한 말을 건네지도 않았고, 유치한 애정을 쏟지도 않았다. 자신의 짐승들을 권위 있게 지배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들위에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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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탕스 여왕이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 안 돼. 난 죽기 싫어죽기 싫다고! 내가 죽으면 내 아이들을 누가 키워? 누가 그 아이들을 돌봐? 누가 그 아이들을 사랑해 줘? 안 돼, 난 죽기 싫어! 죽가......"
그런 다음 침대에 벌렁 나자빠졌다. 그게 끝이었다.
몹시 흥분한 개가 깡충거리며 방 안을 뛰어다녔다.
콜롱벨이 창가로 달려가 동서를 불렀다. "어서 와요. 어서 오라고 방금 그녀가 간 것 같아요."
그러자 심 씨가 할 수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망자의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군." - P334

여행
En voyage

귀스타브 투두즈에게 객차는 칸에서부터 만원이었다. 승객들은 수다를 떨었다. 모두들 서로아는 사이였다. 타라스콩을 지날 때 누군가가 말했다. "바로 여기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에요." 그러자 사람들이 그 수수께끼 같은 살인사건에 대해, 붙잡히지 않는 범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2년 전부터 이따금씩 여행자의 생명을 빼앗았다. 각자 자신의 가설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내놓았다. 여자들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갑자기 기차 문에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유리창 너머의 어두운 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악당과의 만남에 관한 특급열차안에서 광인과 일대일로 대면한 일에 관한 수상쩍은 인물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낸 일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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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막신
Les Sabors

레옹 퐁텐에게
늙은 사제가 시골 아낙네들의 하얀 두건과 뻣뻣하거나 포마드를 바른농부들의 머리카락 위로 마지막 강론의 말을 불분명하게 중얼거렸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멀리서 온 농장주들의 커다란 바구니들이 성당 바닥에 놓여 있었다. 7월의 무거운 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가축 냄새, 양떼 냄새가 났다. 수탉들이 우는 소리와 인근 들판에 누워 있는 암소들의 울음소리가 열려 있는 커다란 문을 통해 흘러들었다. 때때로 들판냄새가 실린 바람이 현관 밑으로 들어와 여신도들의 머리쓰개에 달린 긴 리본을 들어 올리고, 제단 위 촛대 끝의 노란 불꽃들을 흔들기도 했다. "선하신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사제가 말했다. 그런 다음 입을 다물고 성무 일과서를 펼치고는 매주 그러듯이 마을의 소소하고 내말한 일거리들을 신자들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사제는 나이 든 백발의 남자로 근 40년 전부터 이 교구를 관리하고 있었다.  - P276

두 친구
Deux amis

파리가 포위되었고, 사람들은 굶주리며 힘겹게 살고 있었다. 지붕 위의 참새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하수도에 살던 동물들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아무거나 되는대로 먹으며 버텼다.
어느 맑은 1월 아침, 본업이 시계상이지만 집에서 한가롭게 지낼 때가많은 모리소 씨는 반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빈속으로대로를 따라 서글픈 마음으로 거닐다가, 친구 한 명을 알아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물가에서 사귄 친구 소바주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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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가 풀밭에 놓인 그물주머니를 보았다. 그는 그것을 주워 올려 살펴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외쳤다. "빌헴!"
병사 하나가 하얀 앞치마 차림으로 뛰어왔다. 그러자 프로이센 장교는 총살된 두 남자가 잡은 물고기들을 그 병사에게 던져 주며 명령했다.
"이 물고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 즉시 튀김을 만들어서 가져와 거 맛있겠군."
그런 다음 다시 파이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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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부,
글쓰기

이 책의 주제는 ‘공부와 글쓰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이야기를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글 쓰는 사람은 늘 공부를 해야 하니까, ‘공부‘라든가 ‘글쓰기‘에 관해서 나름 의미있다고 여기는 것을 말할 수는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좀 신통치 않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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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은 원시인》에서 진화심리학자 탱크 데이비스(HankDavis는 현대인의 마음이 여전히 수렵 채집기의 원시 논리에 붙박여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인의 미신과 비이성, 그리고 종교가 어떤 진화론적 연원을 갖고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인류 전체가 심하게 앓고 있는 ‘정신적 지체 현상‘에 관해 과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현대인은 그저 겁 많은 원시인의 두뇌를 그대로 간직한채 겉만 번듯한 양복을 입고 있는 우스꽝스런 존재라고 말이죠. 저자는 이 자화상이 미신, 외국인 혐오증, 국수주의, 전쟁, 테러, 종교 갈등의 배후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대해 여러분들은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것 같다는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 P215

구달의 발자취를 따라 탄자니아에서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했고, 최근에 하버드 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 학과를 만든 리처드랭엄Richard Wrangham (1948~)은 <요리 본능>이라는 책에서 ‘먹을거리‘의 차이로 두 종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180만 년 전쯤에 우리의 조상이 불에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하면서 침팬지와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몸을 유지하는 데 드는 최소 에너지를‘날 음식‘만으로 충당해야 한다면 여분의 에너지는 생기기 힘듭니다. 소화를 하는 데만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령 날 음식만 먹는 침팬지는 하루 여섯 시간 동안이나 무언가를 씹고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역사에서 어떤 무리가 ‘화식‘을 발명하여 구운 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운명이 갈라진 것이죠. 날 것을 소화하기위해 사용했어야 할 에너지와 시간의 일부를 뇌로 보낼 수 있기때문입니다. 랭엄은 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뇌가 큰 것은 바로 이런 먹을거리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턱과 입, 뭉뚝한 이빨, 그리고 짧은 소화관을 진화시킨 이유도 바로 화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고작 요리 따위가 인간의 진화 경로를 결정했다니 놀랍지 않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요리 문화를 만들었지만, 그 요리 문화가 다시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면, 이것은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어떤 문화가 우리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P226

데닛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감각질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객석 한가운데 앉아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난쟁이(호문쿨루스 homunculus) 같은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데닛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동안 그가 ‘데카르트의 극장‘이라 부르는 곳에 감각 입력들이 모이고 통합되고 상영되는 내적 자아의 공간이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뇌에 그런 장소는 없으며, 오히려 의식은 뇌의정보들이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분산적으로 처리되면서 연속적으로 생성되고 편집되는 이야기들의 흐름 같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스스로를 단일한 의식을 가진 행위자인것처럼 느끼는 것일까요? 그것은 뇌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쏠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국 드라마의 제작 과정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미국 드라마를 제작할 때에는 한 편의 에피소드를 위해 여러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 경쟁하는데요, 이 경쟁을 통해 최고의 스토리가 선정되고 나면 다른 모든 작가들까지 합류하여 그것을 세련되게 다듬어 내보내는겁니다. 누구의 어떤 스토리가 선정될지는 그때마다 다르죠. 통합의 주체는 없고 매번 스토리가 편집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 봅시다. 사탕을 떠올려볼까요? ‘달다, 약, 의사, 축구, 김밥, 옆구리, 자두.......‘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연상 작용은 통합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의식의 본질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마치 통합된 사적 느낌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뇌 속의 병렬처리 과정에서 매 순간 편집되는 수많은 원고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결국 하나의 생생한 스토리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데닛은 이 사실을 알아야만 매우 매력적이지만 심각한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대수의 만두 맛 느낌을 제3자는 접근할 수 없는 사적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런 착각 때문입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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