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이 사진 속 사람들을 공부하듯이 바라보기도 했다.
이름과 장소들을 기억하고 중요한 순간들을, 나에게서 빠져나가버린 그 순간들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보았다. 내가 너무나 간편히 삭제해버린그 기억들을 다시 그러모으려고 해보았다. 이 완벽한 사진 속 완벽하게 사랑받는 아이에서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헤아리려고도 해보았다.
나는 안다. 아주 정확히. 하지만 잘 모른다. 아니, 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그때와 지금 사이의 거리가 왜 그렇게 벌어졌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 ‘왜‘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 ‘왜‘를 내 손에 넣어 낱낱이 해부하거나 아니면 찢어발기거나 아니면 태운 다음에 남은 재를 뒤적거리면서라도 해답을 얻고 싶다. 그 안에서 내가 보게 될 것들이 두렵다 해도, 그런 식의 이해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혼자 있을 때 나는 이 앨범을 꺼내서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뭐가 빠졌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천천히 넘겨본다. 아무리 그런다 해도 그 ‘왜‘는 나를 비껴간다. - P51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모든 구박과 놀림에도 불구하고 막내는 형과 누나를 무조건적으로 따랐고 조엘과 나는 막내가 보내는 열렬한 애정으로 따뜻하게 데워졌다.
어린 시절 앨범 속의 사진들은 내가 행복하고 온전했을 때의 유물과도 같다. 이것은 한때 내가 예뻤고 가끔은 귀엽고 상냥했었다는 사실의증거물이다. 지금 당신이 보는 내 모습 밑에는 예쁘고 여성스러운 물건을 사랑하는 예쁜 소녀가 아직 살아 있다.
그 사진들에서 나는 자랄수록 덜 웃게 된다. 여전히 예쁘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부터 치마를 안 입기 시작했고 장신구를 전혀 하지 않았고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시도하지 않았다. 항상 머리를 위로 바짝 올리거나 하나로 묶었다. 아직 예쁘긴 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사진 속의 나는 머리를 커트로 짧게 잘랐고 빅 사이즈의 남자 어른 옷을 입기 시작한다. 나는 덜 예쁘다. 사진의 나는 카메라를 공허하게 응시한다. 텅 비어 보인다. 실제로 텅 비어 있다. - P55

내게 일어난 일을 돌려서 썼던 이유는 우리 가족의 머릿속에 끔찍한이미지가 남길 바라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가족에게 내가 무엇을 견뎌왔는지, 지난 25년 넘게 어떻게 그것을 비밀로 해왔는지도 알리고 싶지않다. 내 연인이 나를 볼 때 내가 폭행당한 순간만을 떠올리길 바라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나를 원래의 나보다 더 연약한 인간으로 생각하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너졌으나 그래도 강하다. 내 연인들이, 아니 어떤사람이라도 나를 고작 나에게 일어났던 그 최악의 일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싫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 나자신을 보호하고 싶다. 내 과거는 내 소유이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과거를 깊은 곳에 묻어두고 그 과거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30년이나 흘렀는데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P58

‘그가 말했다/그녀가 말했다‘ 때문에 이 세상의 너무나 많은 피해자(혹은 생존자, 당신이 이 용어를 선호한다면)가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그가 말했다‘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진실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삼키고, 그렇게 하면서 진실은 변질된다. 변질된 진실은 감염처럼 몸에 퍼져나간다. 우울증이 되고 중독이 되고 집착이 되며, 그 밖에도 그녀가 말할 수도 있었고말해야만 했으나 하지 못했던 그 말은 침묵이라는 독이 되어 다양한 육체적인 증상으로 확대된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는 나 자신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되었다. 내가 역겨웠다. 그를 피해 다닐 수도 없었다. 그 소년들이 한 짓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그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그들의 입을 느끼고 그들의 혀와 손과 거친 몸과 따가운 피부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말한 그 더러운 말들이 귀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늘내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이제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숨쉬기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 소년들은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 대했고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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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5월 2일 월요일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벌써 말름셰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백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시장도 초대되었고, 한 지역 신문도 달려와 이 행사를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노인들은 모두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는 중이었고, 성질머리 고약한 알리스 원장을 위시한 양로원 직원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이 불참하게 될 거였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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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개인 훈련용 1:1 슈팅로봇이다. 현대자동차그룹에 따르면 이 로봇은 풍향, 온도, 습도 등 외부 요소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조절해 평균 9.65점 이상의 명중률을 자랑한다. 더불어 자동차 주행감유지에 필수인 첨단 서스펜션 기능이 장착돼 지면 상태와 상관없이 일정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선수들은 이러한 강자와의 대결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추가로 주변 환경과 탄착군 변화량 간 상관관계데이터까지 확보했다.
훈련용 다중카메라는 자세를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슈팅 자세를 다각도에서 촬영하고, 이를 다양한 시간 모드로 제공해 정밀한 분석을 가능케 한 것이다. 선수는 0.125배속까지 제공되는 영상을 바탕으로, 미세한 동작 차이를 감지해 훈련에 참고할 수 있다. 이 역시 주차, 차선 변경 등을 할때 운전자를 도와주는 자동차 서라운딩 기술이 활용됐다. - P141

직접적인 싸움은 아니지만, 혹독한 자연 속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은 벌였고 네안데르탈인이 이 경쟁에서 열세에 몰리면서 몰락했다는 주장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의 악셀 팀머만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2018년, 옛 기후 데이터를 이용해 빙하기 시절 과거 유럽 지역의 환경을 시뮬레이션하고 이 안에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확산하는 과정을 추정했다.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원인으로는 기후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는 가설과 현생인류와의 자원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가설, 현생인류와의 이종교배로 사실상 흡수됐다는 가설 등이 꾸준히 제기돼 있었다. 연구팀이 세밀하게 복원한 빙하기 기후 속에서 인류가 어떻게 퍼졌을지를 살핀 결과,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자원을 둘러싼 현생인류와의 경쟁과 각축전이었음을 확인했다. 기후는 더 급격한 변화에도 견뎠기에 큰 요인이 아니었고 현생인류와의 혼혈도 큰 영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립된 채 외부와 단절된 특성이 멸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5만 년간 고립됐던 네안데르탈인 집단을 연구한 코펜하겐대 연구팀은 "장시간 고립된 생활로 유전자 변이가 제한돼 기후변화와 감염병에 대한 적응 능력이 떨어졌고, 지식 공유도 부족해 (문화적) 진화도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라고 밝혔다. 부족해진 유전적, 문화적 다양성이 멸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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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낙에 작은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 무슨 수를 써도 절대 아담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일단, 나는 키가 무척 크다. 이것은 저주이자 은혜가 되기도 하는데 나는 존재감이 있다는 말을자주 듣는다. 나는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나는 중압감을 준다. 나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 나는 숨고 싶다. 내 몸의 주도권을 다시 찾을 때까지 잠시 사라져버리고 싶다.
내 몸이 어떻게 이렇게 제멋대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이것은 내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후렴구와도 같다. 내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은 축적의 문제였다. 나는 내 몸을 바꾸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내 의지가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소년들이 나를 파괴했고 나는 파괴 현장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와 같은 폭력을 또다시 겪으면 살 수가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고 나의 몸이 역겨워지면 남자들을 멀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먹었다. 어린나이에도 뚱뚱하면 남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이해했고, 그들이 경멸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된다는 걸 이해했고, 나는 그들의 경멸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소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 날씬하고 아담해야 한다고. 자리를 많이 차지해선 안 된다고. 남자들 눈에 보기 좋아야 한다고, 사회에서 받아들일 만해져야 한다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알고 있다. 우리는 점차 작아지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더 크게 반복적으로 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기준에 힘없이 굴복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다. - P32

하지만 이건 내가 한 일이다. 이 몸은 내가 만들었다. 나는 뒤룩뒤룩살이 쪄갔다. 갈색의 살덩이들이 내 팔과 허벅지와 배를 몇 겹으로 돌돌말고 있다. 지방들은 내 팔다리 주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더 이상 갈곳이 없게 되자 그 살들 위에서 눕고 뻗을 자리를 만들어갔다. 나의 몸곳곳에 살이 튼 자국들이 선명히 찍혔고 거대한 허벅지에는 셀룰라이트주머니들이 출렁거렸다. 지방 덩어리들은 새로운 몸을 형성했고 이런몸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나를 안전하게 느끼게 했으며 그때는 안전의느낌만큼 중요한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무도 통과할 수 없는 요새가 되고 싶었고 아무도 맞서지 못하는 무적이 되고 싶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내 몸에 손대지 않길 바랐다.
내가 나 자신에게 이런 짓을 했다. 온전히 나의 과오이자 나의 책임이다.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이 몸에 대한 책임을 나 혼자 감당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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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기분좋을 때는 한없이 다정한 아빠처럼 굴다 금방 변덕 부리며 모두를 긴장시켰던 것도. 정말이지 채운은 그 긴장이 지긋지긋했다. 아마 엄마도 그랬을 터였다. 그 어느 곳보다도 편안하지 않던 곳. 현관문 앞에서 늘 크게 다짐하며 들어가야 했던 곳이 채운에게는 ‘가정‘이었다. - P136

문득 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네가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뽕뽕 소리 나는 샌들을 신고 아장아장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그럴 때면 나는 뿌듯한 감정이 들면서도 왠지 네가 그대로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지.
부모들은 한 번쯤 다 겪는 감정이고.
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채운아. 나도 그럴게. 그게 지금 내 간절한 소망이야. 이건 희생이 아니란다. 채운아. 한 번은 네가, 또 한번은 내가 서로를 번갈아 구해준 것뿐이야. 그 사실을 잊지 말렴. - P182

지우는 화면 속 태오의 얼굴을 가만 바라봤다. 그러곤전자 펜으로 지우기 기능을 이용해 태오의 눈가에 어린 물기를 수정했다. 마치 그림 속 인물의 눈물을 닦아주듯 펜 끝으로 눈가의 물기를 지우고 또 채워나갔다. 지우가 이해하기로 지우개는 뭔가를 없앨 뿐 아니라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대상에 빛을 드리우고 그림자를 입힐때 꼭 필요했다. 그 대상이 사물이거나 인물, 심지어 신일때조차 그랬다. 누구든 신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서는 신의얼굴을 조금 지워야 했다. ‘광원‘, 즉 빛이 출발한 곳을 먼저파악해 빛이 닿는 곳은 어둡게, 그렇지 않은 데는 밝게 표현하는 게 기본이었다.  - P200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

지우가 속으로 그 문장을 한번 더 되었다. 동시에 한 손이 파르르 떨렸다. 평소에 연필을 쥐는 손이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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