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는 정신분석에서 나왔고 정신분석은 교회의 고해성사로 처음 형식을 갖춘, 위험한 생각들을 털어놓는 의식에서 나왔다. 정신분석은 특수한 기술들을 이용하여 신경증을 유발한 어린시절의 정신적 외상을 밝혀내는 치료법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시간(보통 일주일에 네다섯 시간)을 요하며 무의식의 내용을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프로이트와 그에게서 나온 정신역동적 이론들을 비판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지만, 사실 프로이트의 모델은 (결점은 있지만) 훌륭하다. 루어만의 표현을 빌리면, 거기에는 "인간의 복잡성과 깊이에 대한 인식, 자신의 거부들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 인생의 힘겨움에 대한 존중"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이룬 업적의 세부 사항들을 왈가왈부하고 그 시대의 편견들에 대해 프로이트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느라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동기들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포로‘라는 그의 글의 기본 진실을, 그의 숭고한 겸손을 간과한다. 우리는 자신의 원동력의 작은 부분만을 (타인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더 작은 부분만을) 알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원동력에 대한 이론을 세운 것만으로도(이 원동력은 ‘무의식‘ 혹은 ‘통제를 벗어난 두뇌 회로들‘이라 부를 수 있다.) 정신 질환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 P165

 CBT(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객관적 타당성을 가르친다.
치료사는 우선 환자가 자신을 현재의 처지로 몰고 온 고난들, 즉 ‘생활사(史) 자료‘의 목록을 만들도록 돕는다. 그런 다음 이 고난들에 대한 반응들을 도표로 정리하고 과잉 반응의 특징적 형태들을 파악한다. 환자는 자신이 왜 특정한 사건들에 대해 그토록 우울해했는지 깨닫고 부적절한 반응들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이런 거시적인 단계 이후에는 환자가 자신의 ‘자동적인 생각들‘을 중화시키는 미시적인 단계가 이어진다. 감정들은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들이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먼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다음에 인식이 감정들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환자가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그에 수반되는 감정 상태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애인이 일에 몰두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직장의 요구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이라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경우를 살펴보자. 그러면 그 환자는 자신이 사랑스럽지 못한 머저리라는 자동적인 생각이 자기 비난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낳고 이 부정적인 감정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일단 그 악순환이 깨지면 환자는 얼마간 자기 통제력을 갖게 된다.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 P173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다하우 수용소에 1년 이상 갇혀 지내며 가족이 모두죽는 걸 지켜봐야 했다.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현실을 생각하면 미쳐서 죽고 말리란 걸 깨달았다고말했다. "그래서 결심했지. 내 머리에 대해서만 생각하겠노라고. 그곳에서 내내 머리 생각만 했어. 언제 머리를 감을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는 생각을 했다네. 어떻게 하면 간수들에게 걸려 머리를 박박 깎이는 걸 면할 수 있을까 궁리했고. 그리고 수용소에 득실거리는 이들과 씨름하며 시간을 보냈지. 그런 식으로내가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스스로 현실과 차단되어 살다 보니 그 모든 걸 견딜 수 있었네." 이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CBT의 원칙이 극단적인 형태로 이용된 예다. 만일 자신의 생각을 특정 패턴으로 몰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구제받을 수 있다. - P176

현재 항우울제는 네 가지 계열이 유통된다. 그중에서 가장 큰인기를 누리고 있는 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는 기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수치를 높인다. 프로작, 루복스, 팍실, 졸로프트, 셀렉사가 모두 이 계열에 속한다. SSRI 계열보다 오래된 종류가 두 가지 있는데 삼환계 (TCAS)와 모노아민산화효소억제제(MAOI) 계열이다. 삼환계는 화학 구조의 명칭을 딴 것으로 세로토닌과 도파민에 영향을 미친다. 엘라빌, 아나프라닐, 노르프라민, 토프라닐, 파멜러가 모두 삼환계다. MAOI계열은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의 붕괴를 억제하며 나르딜과 파르나테가 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비정형적 항우울제로는다수의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작용하는 아센딘, 웰부트린, 세르존, 이펙서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어떤 약을 쓸 것인지는 대개 (적어도 처음에는)부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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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눈에 띈 것은 지붕 위에 달린 텔레비전 수신용 위성 접시였다. 그녀는 한국의 방송프로그램을시청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나는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물었다. 물어보면서도 아마 드라마나 가요 프로그램이 아닐까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대답은 뜻밖에도 <세계는 넓다>라는 프로였다. 지금은 종영한 이 프로그램은 일반 여행자가 특정 여행지에서 찍은 동영상을 직접 설명해 주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가보고 싶은 곳이 참 많은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직접 여행을 떠날 수 있는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간에 갇혀 있는 삶에 대한 나의 무지와 몰이해를 깨달았다. 법적인 문제와 육체적 한계 때문에 제자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조차 늘 떠남을 희구하면서 살아가는 이 모습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어쩔 수 없는이유로 공간에 갇혀 있는 존재라고 해서 경계 너머 넓은 곳으로나가고 싶은 욕망조차 접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욕망은 오히려 훨씬 더 간절한지 모른다. - P46

19세기 이후 선진국에 산업화와 근대화의 바람이 불면서 전통 문화와 경관은 소멸하기 시작했고 산업형 관광은 점차 활성화되어 갔다. 자신들에게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것들 그리고 색다른 것들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장거리 여행으로 발현된 것이다. 문명을 갖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자신들의 순수한 모습을 찾고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는 없으니 아직 산업화를 겪지 않은 가난한 나라로 가서 순수하고 덜 훼손된 자연과 문화를 보고자 한 셈이다. 사회학자 존 어리는 이를 관광객의 시선Tourist‘s Gaz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관광객들은 전통 유산을 지닌 어떤 여행지를 방문할 때 현지인들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일련의 기대감을 갖는다. 그리고 관광 회사와 지역 정부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경제적인 성취를 이룩하고자 관광객의 시선을 확대해 재생산한다.
그런데 순수한 타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고 하더라도 관광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그 순수성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타자 역시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산업으로서의 관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타자가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에 맞게 적극적으로 개조된 타자, 때로는 완전히 ‘발명된 타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위 재현된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 P58

고난을 수반하던 전통적인 여행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관광산업으로 발전하는 한편, 대중화되었다. 그 결과 현대사회에서는 여행과 관광이 엄밀한 구분 없이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행과 관광은 비슷하면서도 분명하게 다른 용어다.
관광은 잠시 둘러보며 구경하고 즐긴다는 의미가 강하다. 자신이 떠나온 곳과 친숙한 곳에 머물면서 잠시 낯선 것을 경험하는 데 초점을 둔다. 새롭고 특이한 것을 경험하긴 하지만,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편안한 숙소에서 지내며 가능한 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려 한다. 그래서 패키지관광상품 광고는 얼마나 고급 호텔인지나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혹은 한식이 포함되었는지를 피력한다.
특히 패키지관광에는 재현된 퍼포먼스를 경험하는 일정이 포함된다. 이는 관광객들을 위해 볼거리들을 인위적으로 마련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관광을 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국의 자본을 관광지에 투입해 관광객을 충족시킬 만한관광자원을 개발하고, 관광객들로 하여금 소비하게 한다. 고급호텔이나 리조트는 물론, 어떤 경우에는 현지 문화를 재창조해관광 이벤트나 쇼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관광지에서 살고 있는 현지 사람들이 과거에 지니고 있던 생활양식인 경우가 많다. 그들의 현재와는 상당히 유리된 삶인 것이다. - P60

반면에 여행은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동참해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색다른 낯선 세계에 동참해 그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둔다. 재현된 퍼포먼스보다는 여행지의삶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것이다.
관광과 여행의 또 다른 차이점은 여정의 구체적인 계획 수립여부다. 관광이든 여행이든 볼 것, 경험할 것을 미리 정해 놓음으로써 전체 여정을 짜기 마련이다. 하지만 관광은 정해진 시간과 가격에 꽉찬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출발하기 전에 정해 놓은 여정(만)을 모두 성취해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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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역시 대략적인 여정을 짜서 무엇을 보고 체험할지 정하기는 한다. 하지만 반드시 계획한 것만 수행하고 돌아오지는 않는다. 마음과 머리를 열어 놓기 때문에 정해진 것 외에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한다. 관광은 예기치 않은 경험을 최대한 막아서 안전성을 보장하려 하지만, 여행은 예기치 않은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만족감을 더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 P61

물론 여행에도 경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관광의 경계와다르다. 이쪽과 저쪽을 분리하지 않고 구멍이 뚫려 있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즉 차단막이 아닌 연결 통로로서 늘 열려 있고 언제든 넘나들 수 있는 경계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 보면 위험에노출되기도 하고, 불편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관광이 낯익은환경을 유지한 채 낯선 것들을 경험하려 한다면, 여행은 애당초낯선 환경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낯익은 것들을 찾아보려 하기 때문이다.
경계 너머의 문화를 어떤 관점으로 경험하는지에 있어서도관광과 여행은 다르다. 관광은 경계 안쪽과 바깥쪽의 문화를 비교하며 살펴본다. 그때 비교의 기준은 경계의 안쪽, 즉 나(여기)의 문화다. 관광은 색다름을 향유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계속 바깥쪽에서 경계의 안쪽에 없는 것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가령 선진국 사람들의 경우 제3세계 지역을 관광하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발견하며 회한에 젖거나, 그들만의 독특한 환경과 문화를 확인하며 즐거워한다. 나와의 비교가 관광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비교가 지나쳐 문화의 ‘차이‘를 자칫 ‘우열‘로 나누고, ‘열등한 타자‘의 발견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동남아시아를 관광하는 한국의 일부 장년층들이 더운 환경과 그 속의 고단한 삶을 과거 자신들의 어렵던 시절과 비교하면서 열등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그 예다.
한편 여행은 비교하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시간적이고도 지리적인 맥락 속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때 이해의 기준은 나(여기)가 아닌, 그들(거기)이다. 여행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지 주민들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자는 다름을 확인하고 한 발짝 떨어져 비교하는것이 아니라, 다름을 만든 주체들의 노력과 결과를 공감하고 그 가치를 이해한다. 더불어 그에 비추어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해낸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핵심이다. - P66

프랑스 작가 미셸 옹프레는 그의 책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은 우리에게 치료제로 작용하기보다는 우리 존재에 대해서 정의해 주고,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준다. 우리는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자아에 더 익숙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잘 느끼고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이다.
_미셸 옹프레, 『철학자의 여행법」

정체성은 고정되고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늘 새롭게 구성된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세상은 모두다르면서도 같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마크 트웨인 여행기: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 떠난 여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여행은 편견, 고집과 편협한 정신에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여행을 필요로 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따뜻하면서도 해박한 식견은 평생 지구의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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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삽화 횟수가 많을수록 재발 가능성이 높아지며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심각해지고 간격도 짧아진다. 이러한 가속성은 우울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울증의 첫 발병은 대개 충격적인 사건이나 비극과 관련되어 있다. 우울증 발병의 유전적 소인을 지닌 사람들은, 케이 재미슨의 표현을 빌자면 "바짝 마른 장작처럼, 삶에서 불가피하게 튀는 불똥들에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다." 그리고 재발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상황에 관계없이 일어난다. 어떤 동물에게 매일 한 차례씩 자극을가해 발작을 일으키면 결국 나중에는 자극을 가하지 않아도 하루에 한 번씩 자동적으로 발작이 일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도 몇 차례 우울증을 겪게 되면 자꾸 되풀이해서 그런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울증이 외적인 비극에 의해 야기된다 해도 결국 생화학적 작용뿐 아니라 뇌의 구조까지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P88

스트레스로 장기간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면 코르티솔 체계가 손상되어, 나중에는 일단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기 시작하면 쉽게 중단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가벼운 충격에는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했다 이내 정상화되지만 코르티솔 체계가 손상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어느 것이나 그러하듯 코르티솔 체계도 한번 무너지면 작은 충격에도 다시 무너지기 쉽다. 과로로 심근경색을 일으킨 사람은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서도 다시 심근경색을 일으킬 수 있는데 그것은 심장이 지쳐서이따금 큰 무리가 없이도 그냥 손을 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정신에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
내과적 질병이라 해서 사회심리적 원인들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영과 함께 일하는 후안 로페스의 말을 들어보자. "내 아내는 내분비 전문의로 소아당뇨병 환자들을 봅니다. 당뇨병은 분명 췌장의 질환이지만 외부적 요인들의 영향도 받아요. 먹는 음식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까지도. 가정 환경이 나쁜 아이들은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혈당량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뇨병이 정신 질환이 되는 것은아니에요." 우울증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생물학적 변화를 불러오며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CRH가 분비되며 우울증의 생물학적 실재가 야기되는 경우가많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방지하는 심리학적 기술들은 CRH와 코르티솔 수치를 억제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다시 후안 로페스의 말이다. ‘타고난 유전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발현을 통제할 수는 있지요." - P92

이런 현상은 가족들과 가족 관계에 커다란 부담을 준다. "아내는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 그녀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는 법을 배웠어. 고마운 일이지." 그러나 대개 가족들과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 관대하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완전히 무능력자가 된 것처럼 취급하면 그 자신도 스스로를 완전한 무능력자로 보게 되며 결국 그는 (어쩌면 필요이상으로) 진짜 무능력자가 되어 버린다. 약물치료는 사회적 불관용을 낳았다. 한번은 병원에서 어떤 여자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문제가 있니? 그럼 프로작을 먹고 이겨 낸 다음에 연락해라." 우울증 환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관대할 것인지에 대한 바람직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 환자나 가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우울중 환자의 가족들은 절망에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 P99

 피츠버그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증 우울증의첫 삽화는 대개 생활사건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만 두 번째삽화로 가면서 관련성이 적어지고 네 번째, 다섯 번째쯤 되면 생활사건과 전혀 관련성이 없어진다. 조지 브라운은 우울증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자체의 추진력으로 발병하는" 임의적이고 내인적인형태가 되며 생활사건과 분리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우울증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한 사건들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그런사건들을 경험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울증을 일으키는 이는 다섯 명가운데 한 명 꼴에 불과하다. 스트레스가 우울증 발병률을 높이는건 분명하다. 스트레스 중에서 으뜸은 굴욕감이고 두 번째는 상실감이다. 생물학적 취약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최선의 방어책은 외적인 굴욕들을 흡수하고 최소화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이다. 조지 브라운은 이렇게 인정한다. "사회심리적 변화가 생물학적 변화를 만든다. 다만 취약성은 반드시 먼저 외적인 사건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한다." - P100

우울증은 불안 증세들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불안증과 우울증을 따로 다룰 수도 있지만 불안증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과대학교의 제임스 밸린저는 그것들을 "이란성 쌍둥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조지 브라운은 간명하게 "우울증은 과거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증은 미래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두려움에 대한 슬픔의 관계는 희망에 대한 기쁨의 관계와 같다고 했듯 불안증은 우울증의 전조다. 나는 우울증 상태에서 너무도 많은 불안을 겪었고 불안에시달릴 때 너무도 우울했으므로 위축감과 두려움이 뗄 수 없는 관게임을 알고 있다. 순수한 불안장애를 갖고 있는 환자들의 절반가량이 5년 이내에 중증 우울증에 이르게 된다. 우울증과 불안증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경우 단일 유전자 세트를 공유한다. (이 유전자세트는 알코올중독 유전자들과도 관련이 있다.) 불안증을 동반한 우울증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자살률이 훨씬 높으며 회복하기도 훨씬 어렵다. 제임스 밸린저의 말을 들어 보자. "날마다 몇 번씩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면 한니발 장군이라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요.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녹초가 되어 태아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을수밖에 없죠.‘ - P103

우리의 목숨을 구하는 것들은 사소한 것들인 경우가 (대단한것들인 경우 못지않게 많다. 그중 하나는 프라이버시 문제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자신의 불행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기때문이다. 눈부신 미남인 데다 유명하고(고등학교 때 내가 알던 여학생들은 침실에 그의 포스터들을 도배하다시피 붙여 놓았었다.)재능도 뛰어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도 이십대 후반에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매우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했노라 토로했다. "허영심이 내 목숨을 구했지요. 사람들이 내가성공할 수 없었다느니, 성공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다느니 하면서 비웃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자살할 수 없었어요."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은 결점투성이이기 때문에 완벽주의자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낮아지지만 대개 자존심까지 잃지는 않는다. 자존심은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 우울증과의 싸움에 도움이 된다. 우울증이 깊어져 사랑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질 때에도 허영심과 의무감이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 P110

존 그리든의 말을 들어 보자. "장기 복용이 정확히 어떤 효과들을 가져올지는 나도 모릅니다. 아직 프로작을 80년 동안 복용한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약을 끊거나 먹었다 안 먹었다 하거나, 부적절하게 복용량을 줄이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는 분명히 압니다. 뇌가 손상됩니다. 만성화에 따르는 결과들이 일어납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점점 더 심각한 형태의 재발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뇨병이나 고혈압은 꾸준히 치료해야 하는 병으로 알면서 왜우울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 이해 못 할 사회적 압력은 대체 어디에 기인할까요? 우울증이라는 병은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1년 이내 재발률이 80퍼센트에 이르며 약물치료를 하면 회복률이 80퍼센트입니다."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로버트 포스트도 같은 의견이다. "사람들은 평생 약에 의존하는 것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지만 그 부작용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어요. 우울증을 방치하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당신의 친척이나 환자가 강심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그에게 복용을중지하라 권유하겠습니까? 그러다 심장이 점차 기능을 잃으면서 폐나 다른 조직으로 혈액이 몰리는 울혈성심부전 발작이 일어나 심장이 다시는 제 모습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우울증도 그런 경우와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약의 부작용을 겪는 것이 병을 안고 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것이다. - P129

이제 나는 우울증 삽화에 대비해 어떤 절차들을 밟아야 하는지 알게 된 터였다. 어떤 의사들에게 연락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언제쯤 면도칼들을 치우고 개를 데리고 열심히 산책을 다녀야 하는지도 알았다.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우울증이 재발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친구들이 내 집으로 들어와 두 달 동안 함께 살면서 하루 일과 중 힘겨운 부분들을 견뎌 내도록 도와주고, 내 불안과 공포를 대화로 가라앉혀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꼭꼭 끼니를 챙겨 먹도록 하고, 내 외로움을 덜어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 평생의 마음의 벗이 되었다. 동생이 연락도 없이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버지도 즉각 내게 주의를 집중했다. 나는 발 빠르게 대처하고,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는 의사를 확보하고, 자신의 우울증 패턴을 분명히 파악하고, 아무리 힘들고 싫어도 수면과 식사를 조절하고, 스트레스는 즉시 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동원한 덕에 구원받을 수 있었다. 재발 첫날에 나는 대리인에게 전화해서 상태가 안 좋으니 아무래도 책의 집필을 보류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재난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노라 고백했다.
"내가 어제 차에 치어 지금 병원에서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언제 다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나는 멍한 그로기 상태가 되는 걸 무릅쓰고 자낙스를계속 먹었는데 불안이 폐와 위장에서 멋대로 날뛰도록 방치하면 상태가 악화되어 곤란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발광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시에 폭격을 피하지 못해 처참하게 파괴되어 가는, 그리하여 겨우 남은 유물의 자취가 잔해 속에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독일의 드레스덴이 된 기분이었다. - P140

나는 과거라는 것을, 시간의 경과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너무도 힘들다. 내 집에는 과거를 너무 생생히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읽지 못하는 책들과 듣지 못하는 음반들과 볼 수 없는사진들이 가득하다. 어쩌다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시절이 너무 행복했기에 (지금보다 반드시 더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시절만의 독특한 행복감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기에) 그때 얘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 한다. 빛나는 청년 시절은 나를 초조하게한다. 나는 항상 과거의 즐거움이라는 벽에 부딪히는데, 내게는 과거의 즐거움이 과거의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 외상후스트레스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는 알지만 내게는 다행히도 과거의 외상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의 즐거움들은 견디기 어렵다. 이제 이 세상에 없거나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린 사람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이 내겐 현재 최악의 고통이다. 나는 과거의 즐거움의 파편들에게 제발 기억을 되살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지나치게 무섭고 끔찍했던 체험들 못지않게 지나치게 즐거웠던 체험들도 우울증을 낳을 수 있다. ‘기쁨 후 스트레스(post-joy stress)‘라는 것도 있다. 최악의 우울증은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한탄하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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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지를 고르지만 말고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인의 여행 사랑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텔레비전에는 각종 여행 프로그램이 넘쳐 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등 각종 SNS에는 수많은 여행 고수가 저마다의 여행을 소개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또 서점에서는 수많은 여행 안내서와 자칭 타칭 여행 전문가의 에세이가 다양한 여행을 권유한다. 가히 여행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 P7

이 세상에는 어느 하나 같은 장소가 없다. 모든 장소에는 독특한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곳사람들은 자기 삶의 터전에 고유한 의미와 상징을 아로새기며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여행에 지리학적 안목이 필요한 이유다. 여행지에 대한 앎을 바탕으로 세상과 나의 관계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나에 대한 성찰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여행자는 여행지와 그곳의 사람들, 즉 여행되는 것들을좋고 나쁘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여행은 항상 여행자와 여행지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는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여행자는 여행되는 것의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함으로써 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다시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역량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책무다.  - P9

 여행은 장소에 대한앎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이루어 가는, 그래서 미래의 나를 가늠해 보고 조형해 나가는 훌륭한 과정이다. 여행을 통해 삶의 경험과 지식은 더욱 풍부해진다. 삶은 여행이고 여행은삶이다. 따라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여행이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지리를 알고 여행을 떠나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 P27

‘장소감sence of place‘은 지리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여행의의미와 방법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장소감은 익숙함의 여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제자리에 있는 in place‘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리를 벗어난out of place‘ 느낌이다.
우리는 제자리에 있을 때 편안함과 안정감을 향유한다. 안식처인 집, 늘 다니는 학교, 일터, 카페 등 낯익은 모든 곳이 마음을편안하게 해준다. 세상의 모든 장소에는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는 익숙하고 편안하다. 바로 이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여행이다. - P29

편안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롭고도 낯선 장소에 처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사간 새로운 집, 졸업과 퇴사 후 갖게 된 새로운 일터, 새로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용기 내어 들어간 낯선 장소들 이들은 모두 나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낯선 것이 주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 내는 노력, 낯선것을 낯익은 것으로 만드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인생의 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여행이란 바로 이런 새로운 장소감을 느끼는일, 즉 제자리를 벗어나는 경험이다. 그러니까 제자리를 벗어나는 경험을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 의도적으로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 P32

우리의 삶은 늘 움직이면서 이루어진다. 매일 집을 떠나 어디론가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길게 어딘가를 계속 움직이다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간다. 출퇴근과 등하교의 여정을 생각해 보라. 매일 집을 떠나 비교적 익숙한 곳들을 순회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상대적으로 먼 낮선 곳으로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이동의 끝자락에는 결국 집이있다. 떠남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제자리에 있기와 제자리 벗어나기는 반복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가 멀고 가까운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늘이동 중에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모든 장소에는 저마다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들도 의식하지 않으면 그 이면을 결코 볼 수 없기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가까이서, 오늘의 일상에서 오감의 안테나를 세워 보자.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길이나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여행은 흔히 생각하듯 그리 대단하지않다. 낯선 것들과 함께 낯익은 것들도 낯설게 바라보며, 그 속에깊이 자리 잡은 의미를 확인하고 끄집어내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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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1912년 평양 근교 지역의 한 기독교 가족에서 태어났다. 당시 모든 한국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은 식민지사람들에게 강압과 전횡을 휘둘러 왔다. 수십만의 여인들과소녀들이 붙잡혀 가 천황 군대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남자들은강제로 징집되어 천황을 위해 싸워야 했다. 또 이 천황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김일성의 아버지는 평소 조용한 한의사였지만 일본인들의만행에 대해서는 소리 높여 비판했고, 결국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사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1931년 일본군이 만주를 침공하자 그곳도 더 이상 평화로운 장소가 되지 못했다. 이때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뒤였고 어머니가 김일성에게 일본인들을 만주에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중국 유격대에 들어가 싸우라고 권했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유격대 내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의 과단성과 용맹함은 곧 두각을 드러내어, 한 군단 전체의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그를 비롯한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이때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김일성은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도 출세 가도는 중단되지 않았다. 소련군 대위가 된그는 소련의 깃발 아래서 1945년까지 싸웠다.
결국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한국에서 물러났다. 김일성은민족적 영웅의 후광을 둘러쓰고 망명에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으며 국민들이 자신을 <위대한 영도자>로 원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두 전승국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각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두 개의 세력권으로 분할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타 공인의 공산주의자를 한반도 전체의 머리로 삼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망명 중이던 또 다른 한국인을 데려와 반도 남쪽의 국가수반으로 세웠다. 김일성은 북쪽 부분으로만 만족해야 했으나, 그러지를 않았다. 대신 그는한국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놈들도 몰아낸 자신인데, 미국과그 졸개들에 불과한 유엔군을 몰아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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