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는 다음 네 가지 조건을 설정하고 쥐가 어떤 조건에서 손잡이를 더 많이 누르는지 실험했다.
① 고정간격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는 것과 관계없이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먹이가 나온다. ② 변동간격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는 것과 관계없이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먹이가 나온다. ③ 고정비율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온다. ④ 변동비율 스케줄: 손잡이를 누르면 불확실하게 먹이가 나온다.
스키너의 실험에 따르면 손잡이를 누르는 횟수는 ④) → ① 순으로 감소한다. 이 결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손잡이를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온다(③)는 조건보다 손잡이를 누르면 불규칙하게 먹이가 나온다(④)는 조건이 쥐에게는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는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대가의 의미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아할지도 모른다. 이는 ‘행동 강화‘에 관한실험으로, 행위는 그 행위로 인한 대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알고 있을 때보다도 대가가 불확실하게 주어질 때 더욱 효과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P91
도파민은 각성, 의욕, 목표 지향 행동 등을 유발하며, 그 대상에는 물질적 욕구만이 아니라 음식이나 이성 등 추상적인 개념, 즉 근사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식견도 포함된다. 한 가지 덧붙이면 최근 실시된 연구에서 쾌락에 관여하는 물질은 도파민보다 오피오이드opioid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생물 심리학자 켄트 베리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욕구계 도파민과 쾌락계오피오이드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사람을 제어하는 엔진과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욕구계인 도파민이 특정 행동을 촉진시키는 반면 쾌락계인 오피오이드는 만족을 느끼게 함으로써 추구 행동을 정지시킨다. 중요한 점은, 일반적으로 욕구계가 쾌락계보다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항상 무언가 느끼고 추구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도파민 시스템은 예측하지 못한 일에 직면하면 자극을 받는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란 스키너 상자 실험에서 네 번째 조건이었던 변동비율 스케줄에 해당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이들 미디어는 변동비율 스케줄로직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강화하는, 즉 반복해서 행동하게 하는효과가 매우 크다. 왜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빠지는 것일까? 다름 아니라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가 제시하는 해답이다. - P93
이 물음에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라는 답을 제시했다. 앙가주망이라 하면 뭔가 고상한 철학 용어로 들릴 수도 있지만, 결국은 주체적으로 관계한 일에 참여commit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참여하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자유이며, 따라서 ‘무엇을 할까?‘라든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사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앞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다룰 때 자유의 괴로움에 관해 고찰했는데, 사르트르 또한 자유를 매우 무거운 것으로 인지해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사르트르는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앙가주망에 따라 참여하는 두 번째 대상인 ‘세계‘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시간, 즉 인생 자체를 사용해 어떤 계획을 실현하는데, 이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 계획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르트르는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까지이야기했다. 그 예로 들었던 것이 전쟁이다. 사르트르는 전쟁을 인생의 외부에서 닥쳐온 사건으로 여기는것을 잘못이라 보았다. 전쟁은 ‘나의‘ 전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반전 운동에 몸을 던지거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자살함으로써 전쟁에 항의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의 이목을 생각하거나 단지 겁이 많아서, 혹은 가족과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주체적인 의지로 이 전쟁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상,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실로 냉정한 지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강조한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 P94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 P96
세뇌라는 단어는 영어 brain-washing을 중국어 (시나오)로 직역한 말이다. 이 용어는 한국6.25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시행된 사상 개조에 관해 미국 첩보기관이 작성한 보고서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그 후 저널리스트인 에드워드 헌터가 중국 공산당의 세뇌 기법에 관해 쓴 저서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은 포로가 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단기간 내 공산주의에 세뇌당하는 사태에 당황했다. 이때 중국 공산당이 실시한 세뇌 기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오늘날에는 전부 밝혀져 있다. 누군가의 사상과 신조, 또는 이데올로기를 바꾸고자 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반론을 강하게 호소하여 설득하거나 고문을 가하지 않고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이 실제로 행한 방법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포로가 된 미군에게 ‘공산주의에도 좋은 점은있다‘는 간단한 메모를 적게 하고 그 포상으로 담배나 과자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주었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미군 포로는 착착 공산주의로 돌아섰다. 이 세뇌 기법은 우리의 상식선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사상이나 신조를 바꾸기 위해 주는 포상은 이를 사들이기 위한 뇌물이므로 대가가 아주 크지 않다면 효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사후 영혼의 복종을 조건으로 현세에서 인생의 모든 쾌락을 얻는 계약을 맺는다. 영혼의 복종은 결국 사상과 신조를 팔아넘기는 것이므로 그만한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현세의 온갖 쾌락 정도의 포상이어야 적합한것이다. 그런데 미군 포로는 사상과 신조를 바꾸는 대가로 담배나 과자밖에 받지 않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 P110
이해하기 힘든 이 사태를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는 설명 가능하다. 인지부조화 이론의 틀에서 미군 포로들의 심리 변화 과정을 알아보자. 우선 자신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 공산주의는 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포로가 되어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었다. 이때 호화로운 포상이 나왔다면 포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메모를 적었다는 명분이 성립되므로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해소된다. 하지만 실제로 받은 것은 담배와 과자 정도의 소소한 포상일 뿐이다. 이래서는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죄책감의 원인은 ‘공산주의는 적‘이라는 신조와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행위 사이에 발생하는 부조화이므로, 이 부조화를 해소하려면 어느 한쪽을 변경해야만 한다. 이때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메모를 적은 것은 사실이기에 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변경할 수있는 것은 공산주의는 적이라는 신조 쪽이다. 그리하여 이 신조를 공산주의는 적이긴 하지만 몇 가지 좋은 점도 있다고 수정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와 신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화의 강도를 낮추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미군 포로의 뇌 안에서 일어난 세뇌 과정이다. 덧붙이자면 리언 페스팅어가 인지 부조화 이론을 정리한 것은 6.25전쟁 이후의 일이므로, 중국 공산당은 이 세뇌 기법을 독자적으로 고안했다는 말이 된다.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는 능력에 그저 놀랄뿐이다. - P111
사실과 인지 사이에 발생한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인지를바꾸는 일은 인간관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이성이 이것저것 염치 좋게 부탁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도와주다가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인지 부조화가 빚은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지와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조화를 발생시킨다. 자신이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변경할 수 없으니대신에 부조화를 해소하고자 좋아하지 않는 감정을 ‘조금은 호의가있을지도‘로 바꿔 버린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상대에게 이것저것부탁받아 성가셔 하던 사람이 그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우리는 주위의 영향을 받아 생각이 바뀌고, 그 결과 행동에도변화가 생긴다고 믿는다. 인간은 주체적인 존재로서 의식으로 행동을 다스리는 자율적 이상형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페스팅어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관념을 뒤엎었다. 그에 따르면 사회의 압력이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해 의식과 감정을 적응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 P114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다. 앞서 소개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관료제의 특징인 ‘과도한 분업 체제‘ 덕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아렌트가 이러한 가설을 제시한 1960년대무렵까지는 주로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독일의 국민성과 나치의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아렌트는 그 해석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홀로코스트가 나치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가능했다는 논조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고관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부정하고 독일 아닌 다른 국가의 국민에게도, 그리고 나치 이외의 다른 조직에도 그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 같은 광신적인 지도자가 중추가 되어 깃발을 흔드는 것만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실제로 총이나 독가스를 이용해 자신의 손으로 죄도 없는 사람들을 벌레처럼 죽인 사람들은 나치의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일반 시민이었다. 이때 그들의 자제심과 양심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아렌트는 ‘분업‘에 주목한다. 유대인 명부 작성을 비롯해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많은 사람이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아주 수월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저는 명부를 작성했을 뿐입니다", "그 당시엔 누구나 협력했지요", "제가 어떻게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죽이지 않았어요. 단지이송열차를 운전했을 뿐이에요" 등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러한 체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구성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책임 소재가 애매하게 분단된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술회했다. 그악마 같은 통찰력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밀그램 교수의 실험 결과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어떤 일을 할 때야말로 그 집단이 지닌 양심이나 자제심이 가동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조직 구성원 모두가 제반 법규를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사전적, 상시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하는 체제-옮긴이) 위반이 속출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밀그램의 실험 결과가 시사하는 바를 더욱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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