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나이지리아의 유언비어와 닮은 것처럼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이 주장은 좀더 쉽게 사실로 확인되었다. 미국 중앙 정보국CIA은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던 중 그의 소재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DNA 증거를 모으기 위해서 실제로 가짜 백신 접종캠페인을 벌였다. 진짜 B형 간염 백신을 제공하되 면역 형성에 필요한 3회 용량을 다 놓진 않는 식이었다. 여느 전쟁행위가 그렇듯이, 이 기만은 결국 여자들과 아이들의 목숨을 대가로 치를 것이었다. 파키스탄 여성 보건 인력은 방문 의료를 제공하도록 훈련받은 여성 11만 명 남짓으로 구성된 단체로, 그러잖아도 탈리반으로부터 잔인한 위협을받으며 버텨 온 터라 심지어 CIA와 연루되는 건 절대 사양할 일일 것이었다. 탈리반이 접종을 금한 지 오래지 않아, 소아마비 백신 접종원 9명이 조직적으로 계획된 일련의 공격에 살해되었다. 그중 5명은 여성이었다.
파키스탄의 소아마비 근절 캠페인은 살인 사건 이후 일시 중단되었으나, 캠페인이 재개되자 파키스탄과 나이지리아 양쪽에서 살인도 재개되었다. 2013년 나이지리아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원 9명이 총에 맞아 죽었고, 내가 이글을 쓰는 현재까지 파키스탄에서는 보건 노동자 22명이살해되었다.  - P134

 철학자 마이클 메리는 아동 비만을 통제하려는 각종 노력에 대해서 논하던 중, 가부장주의를 좋은영향을 끼치거나 피해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타인의 자유에 간섭하는 일로 정의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가부장주의가 교통 법규, 총기 통제, 환경 규제에 반영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규제들은 비록 선의에서 나온 것일망정 어쨌든 자유에 대한 제약이다. 메리는 비만 아동에 대한부모의 양육 방식에 타인이 개입하는 건 꼭 선의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위험 평가에는 위험이 따른다. 자칫하면 안 그래도 체형 때문에 낙인이 찍힌 아이가 더욱더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 비만 위험이 높다고 판단된 가족은 차별적 감독을 당할 위험이 있다. 위험 예방이 곧잘 힘의 강압적 사용을 정당화한다는 게 메리의 지적이다.
- P151

나는 아들의 수술에 여전히 감사한다. 그러나 마취 의사에게는 여전히 화가 나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이를맡겼던 나 자신도 여전히 실망스럽다. 철학자 마크 새고프는 이렇게 말했다. 〈신뢰가 있다면, 가부장주의는 불필요하다. 신뢰가 없다면, 가부장주의는 비양심적이다.> 우리는 이중 구속에 걸려 있다.
- P159

일단 수두에 걸리면, 수두 바이러스가 몸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신경 뿌리에 남아 있고, 면역계는 남은 평생 그것을 저지해야 한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심한 시기에, 바이러스는 신경을 감염시켜 통증을 일으키는 대상 포진으로 되살아난다. 깨어난 바이러스는 뇌졸중과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데, 그보다 더 흔한 대상 포진 합병증은 몇 달 혹은 몇 년씩 이어지는 신경 통증이다. 수두의 경우, 실제 질병에 의해서 생성된 면역은 질병과 영원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걸 뜻한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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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리스트 티나 로젠버그도 <이 책보다 더 크게 세상을 바꾼 책은 별로 없다〉고 인정했으나,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DDT는 환경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흰머리 독수리들을 죽였지만, 『침묵의 봄은 대중의 뇌리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 비난은 『침묵의 봄』 자체보다는 그 책의 상속인인 우리에게 가해져야 옳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DDT를 모기 퇴치제로쓰지 않는 나라들 중 일부에서 말라리아가 되살아났다는건 사실이다. 요즘 아프리카 아동 20명 중 1명이 말라리아로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아이가 뇌 손상을 입는다. 효과 없는 치료법, 독성 강한 예방약, 환경을 망치는 살충제가 여태 쓰이는데, 왜냐하면 말라리아에 쓸 수 있는 효과적인 백신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DDT는 현재 그런 장소에서 말라리아를 좀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몇 가지 수단 중 하나다. 
••••••
그러나 DDT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해법이다.
DDT를 생산하는 화학 회사가 거의 없고, DDT를 살 돈을 기꺼이 후원하려는 기부자는 없으며, 많은 나라는 딴 나라에서는 금지된 화학 물질을 쓰기를 꺼린다. 로젠버그는〈말라리아를 겪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벌어진 가장 나쁜 일은 부자 나라들에서는 그 질병이 근절되었다는 점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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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명령이었다. 내 표정이나 무슨 기색이 비위에 거슬렸는지 그녀는 내색을 않으려고 애는 썼지만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나는 일어서서 문께까지 갔다가 되돌아섰다. 나는 방 안을 가로질러 창께로 가서  그녀에게 바싹 다가섰다.
나는 꼭 얘기를 해야 했다. 그처럼 심하게 짓밟히지 않았던가. 그냥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적수를 향해서 대거리할 힘이 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있는 힘을 모두 내어 퉁명스럽게 대들었다.
"저는 남을 속이지 않아요. 만약 속이기가 일쑤라면 아주머니를 좋아한다고 말할 거예요. 그러나 저는 분명히 말하겠어요. 아주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 세상에서  존리드 말고는 아주머니가 제일 싫어요. 거짓말쟁이에 관한 이 책일랑 조지아나에게 주세요. 거짓말쟁이는 제가 아니라 조지아나니까요."
- P61

나는 그녀가 몹시 몹시 부끄러워하고 또 괴로워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얼굴도 붉히지 않아 적잖이 놀래었다. 엄숙하긴 하지만 침착한 얼굴로 그녀는 모든학생들의 눈길을 받으며 서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듯 태연하고 의젓하게 견딜 수가 있는 것일까? 하고 나는혼자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저 아이와 같은 처지라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리라. 그러나 저 아이는 처벌을 넘어서고 현재의 처지를 넘어선 그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주변이나 눈앞에 보이지 않는그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다. 백일몽이란 말을 들은 일이있지만 혹 백일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마루청을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이 안중에 없음은 분명하다. 그녀의 눈길은 안으로 향해서 자기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있는 성싶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지사를 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없다. 도대체 저 아이는 어떠한 아이일까? 착한 아이일까,
그렇지 않으면 장난꾸러기일까.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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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시는 주인집 딸들의 옷을 다 입히고 나면 곧 떠들썩한 부엌이나 가정부의 방으로 촛불을 들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인형을 무릎에 올려놓고는 난로의 불이 흐릿해질 때까지 주위를 둘러보며 방에는 나 혼자뿐이며 달리 도깨비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타다 남은 불이 둔한 감빛으로 되면 이음매나 끈을 살며시 잡아당기고 급히 옷을 벗고는 추위와 어둠을 피해 침대로 기어들었다. 이 침대 속으로 나는 언제나 인형을 가지고들어갔다.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법이다. 달리 애정을 쏟을 만한 그럴듯한 것이 없었던 나는 조그만 허수아비처럼 초라하고 퇴색한 우상을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가운데서 즐거움을 구하였다. 그 조그만 인형이 살아 있어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바보같이 고지식하게 그것을 사랑했던가를 회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묘한 느낌이 든다. 인형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누워 있으면 나는 얼마간 행복스러운 기분이 되는것이었고 인형 또한 그러리라고 여겨졌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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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역이라는 신화

면역에 대해서 평생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의사인 아버지가 해주신 것으로,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그건 아킬레우스 신화였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어떤 서술에서는 그녀가 아들의 필멸성을 불에 태워 없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아킬레우스는 발뒤꿈치를 제외한 온몸이 결코 다치지 않는 몸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그 발뒤꿈치에 독화살을 맞아서 죽는다.
또 다른 서술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어머니가 현세와 저승을 나누는 스틱스 강에 아들을 담갔다고 한다. 그때 그녀가 아기의 발뒤꿈치를 잡고 물에 담갔기 때문에, 이번에도역시 치명적인 취약점이 한 군데 남고 말았다.
- P9

우리가 백신의 효과를 따질 때 그것이 하나의 몸에 어떤영향을 미치느냐만 따지지 않고 공동체의 집합적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까지 따진다면, 백신 접종을 면역에 대한 예금으로 상상해도 썩 괜찮을 것이다. 그 은행에 돈을 넣는다는 건 스스로의 면역으로 보호받을 능력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셈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 면역herd immunity 의 원리이고,
집단 접종이 개인 접종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은 바로 이 집단 면역 덕분이다. - P34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은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은 건 그 때문이다.
미접종자는 자기 주변의 몸들, 질병이 돌지 못하는 몸들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에 질병을 간직한 몸들에게 둘러싸인 접종자는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나 면역력이 희미해졌을 가능성에 취약하다. 우리는 제 살갖으로부터 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보호받는다. 이 대목에서, 몸들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혈액과 장기 기증은 한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들어가며 몸들을 넘나든다. 면역도 마찬가지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 P35

어느 한 사람이 과정을 책임진 게 아니었고, 어느 한 사람이 발견의 공을 주장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서로위키가 상기시키듯이,
과학은 <대단히 집단적인 사업이다〉, 그것은 집단의 생산물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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