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
영국의 새빌 부인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 17 XX년 12월 11일

그토록 불길하게 여기셨던 일이 별다른 탈 없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신다면 무척 기뻐하시겠지요. 어제 이곳에 도착했어요. 저의 첫임무는 바로, 제가 아주 잘 있을 뿐 아니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커진다는 소식을 전해 제 사랑하는 누이를 안심시키는 일입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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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만찬에당신을 초대합니다

취미 독서와 기획 독서

나는 책벌冊閥이다. 벌閥이란 본래 대문의 왼쪽 기둥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족벌族閥, 파벌派閥, 학벌學閥, 재벌財閥 등의 단어에서 보듯이 주로 출신 · 이해 · 인연 따위로 함께 뭉치는 집단이나 세력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벌‘은 영 호감이 가지 않는 말로전락해버렸다. 학파學派는 전혀 어감이 나쁘지 않은데 학벌은 더러운 말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스스로 책벌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책 일끼를 즐기며, 책 쓰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책 모으기에 열심인 사람이 비난받을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것 같아 당당히 고백한다. - P4

나는 독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었는데 술술 읽힐 리는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 한 권을 뗐는데 도대체 뭘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기왕에 읽기 시작한 그 분야의 책을 두 권, 세 권째 읽을무렵이면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차츰 내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P7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세운 학문의 구획을 자유로이 넘나들지만,
우리는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갇혀 진리의 옆모습 또는 뒷모습만 보고 있다.
나는 이제 학문의 국경을 넘을 때 여권이나 비자를 검사하는 거추장스러운 입국 절차를 생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의성에는 애당초 경계라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P64

《천재성의 비밀Insights of Genius: Imagery and Creativity in Science and Art》, 《아인슈타인, 피카소: 현대를 만든 두 천재Einstein, Picasso:Space, Time, and the Beauty that Causes Havoc) 등의 책을 쓴 과학사학자 아서 밀러는 창의성이란 통합적 사고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다음 한마디로 창의성 논의에 종지부를 찍는다. "창의성도 훈련이다." 이어서 창의성을 함양하기 위해서 우선 제일 먼저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창의성이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해준다.
- P66

지속가능성이란 이 지구가 우리 세대가 쓰고 난 다음 완전히 소멸하거나 원상태로 복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우리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음 세대의 행복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학자들은 인간의 탐욕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나단 포리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 창의력이 자본주의에 내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롭게 지각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는 데이비드 봄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봄은 네트워크의 상호연결성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요즈음 지나친 연결성은 변화의 폭을 증가시켜 우리사회를 자칫 감당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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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브를 껴안으며 말했다. "우리는 영원히 친구야. 그리고 나는 언제라도 참깨 세상에 놀러 오고 싶을 거야. 여기는 모두가 다정하고 언제나 색이 밝아."
오브가 말했다. "나는 힘든 세상에서 절대 못 살아. 거기는 잿빛일 때가 너무 많아."
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잿빛인 데에는 좋은 점도 있어, 잿빛인 날이 많기 때문에 푸르른 날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어. 밝고 행복한 날만 계속될 수는 없어. 잿빛도 삶의 일부야."
"그래서 오로르는 참깨 세상에 오는 걸 좋아하지! 잿빛은 없으니까"
"그래, 맞아. 그렇지만 힘든 세상에는 잿빛이 있어서, 사람들한테 문제가 있어서, 내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어!"
- P224

"나는 오로르니까요! 내가 하는 일은 뭐든 재밌어요. 내가 하는 일은 뭐든 모험이죠!"
"그래서 다음은?"
"또 오로르의 멋진 모험!"
"무슨 사건인데?"
"전혀 몰라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모험이죠!"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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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사는 자기 학생들을 교육시킬 때 너무 혹독하게 대해서는 안 되며,
아버지가 아들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부 무함마드 이븐 아비 자이드가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한 규율을 적은 책에서, "만약 아이들을 체벌하려고 한다면, 교육자는 세 차례 이상 때려서는 안 된다." 라고 말했다. 또한 칼리프 우마르는 일찍이 "종교법에 의해서 훈도되지 않은 사람은 신에 의해서 교육받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체벌이 주는 굴욕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종교법이 규정한 처벌의 수준은 사람을 통제하기에 적절한 정도가 좋다는 점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법은 그 사람에게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504

45) 언어는 기술적인 습관이다.
모든 언어는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관이다. 그것은 혀에 밴 습관이며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러한 표현이 적절한가 아닌가는 그 습관의 완성 혹은 결함의 정도에 달려 있다. 이것은 개별적인 단어가 아니라 단어들의 결합에 관한것이다. 완벽한 습관을 체득함으로써 개별적 단어들을 결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즉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상응하여 작문 형식에 맞게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듣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유창함이 의미하는 바이다.
습관은 반복적 행동에 의해서만 성취된다. 하나의 행동은 일회적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하나의 상태가 되는데, 그것은 아직 확고한 뿌리를 내리지 않은 하나의 속성이다. 더 많은 반복이 거듭되면 그것은 하나의 습관, 즉 확고한 뿌리를 내린 속성이 된다.
- P519

미사여구의 자연스러운 사용은 결코 억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방식의 화법은 언어학적으로 오류라고 비판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억지에 의한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미사여구는 말의 기본적인 구문을 무시하고 말의 의미를 나타내는 모든기반을 파괴한다. 그것은 말에서 모든 유창함을 없애고 오로지 장식만을 남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작가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유창함에 대한 맛을 아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미사여구로 채워진 오늘날의 글들을 경멸하고, 작가들이 더 나은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생각한다.
- P538

이 책의 저자 - 신이여, 그를 용서하소서! — 는 말한다. 나는 수정하고 교정하기 전에 이 첫부분에 대한 초고를 5개월에 걸쳐서 써서 779년 중반 마지막(1377년 11월)에 끝냈다. 이후에 나는 이 책을 수정하고 교정하고, 내가 이 책의 맨 처음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 민족의 역사를 첨부하도록 하겠다.
지식은 오로지 전능하고 현명한 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 P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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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사고라는 것이 자연적, 임의적 배열에 의해서 생기는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를 지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물을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그사물에는 반드시 질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이유라든가 원인 혹은 규제 조건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유, 원인, 조건 등은 일반적으로 그 특정한 사물의 원리이며, 그 사물 자체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에 뒤에 올 것을 먼저 오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먼저 올 것을 뒤에 오도록 배열하는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원리는 자신에 선행하는 또 다른 원리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소급은 하나의 원리에서 그 다음 원리로 상향적으로 진행하다가, 둘이나 셋 혹은 그보다 더 여러 단계를 거쳐서 최후의 원리에 다다르게된다. 그러면 의도했던 사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게 되고, 사람은 사고를 통해서 도달한 최후의 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후의 원리는 행동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는 거꾸로 인과관계에서 최후의 요소,
즉 자신의 사고활동에서 시작점이 되었던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줄 지붕을 만들려고 생각하면, 그는 마음속에서 지붕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지붕을 받쳐줄 벽, 그리고 벽을 서 있게 하는기초로 옮겨갈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사고는 끝난다. 그러면 그는 기초를 놓는공사로부터 행동을 시작해서 벽을 세우고 마지막에 지붕을 올릴 것이다. 거기서 그의 행동은 끝나게 된다. "행동의 시작이 사고의 마지막이며, 사고의 시작이 행동의 마지막이다." 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 P401

우리는 앞에서 인간이 동물이라는 부류에 속하지만, 신이 사고력을 부여하여동물과 구별시켰고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질서있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는데, 이것이 분별적 지성이다. 만약 그가 자신에게 유용하거나 유해한 생각과 사물에 대한 지식을 동료로부터 배워서 획득한다면, 그것은 경험적 지성이다. 만약 존재하는 사물에 대하여, 그것이 가시적이건 그렇지 않건 존재 그 자체로서 인식한다면, 그것은 시유적 지성이다.
인간의 사고력은 인간 안에 깃든 동물성이 완전한 단계에 도달한 뒤에야 비로소 찾아온다. 그것은 분별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분별력을 가지기 전에는 아무런 지식도 가질 수 없고 동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한 방울의 정자, 한 움큼의 피, 한 덩어리의 살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후에 그가 획득하는 것은 모두 감각적 지각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사고능력의 결과이다.
인간은 분별력을 가지기 이전, 즉 최초의 상태에서는 아무런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지 물질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의 신체기관들을 통해서 획득하는 지식에 의해서 인간의 형상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인간적본질은 존재의 완전함에 이르게 된다.
- P406

신의 유일성을 보여주는 주장은 이러하다. 존재하는 사물들의 세계 속에 생긴것들은, 본질에 속하는 것이건 아니면 인간적, 동물적 행위에 속하는 것이건, 모두 다 자신의 존재 이전에 적절한 원인들을 필요로 한다. 그 원인들은 습관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사물들을 창조하고 또 그것을 발전시킨다. 그런데 이 각각의 원인들 역시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원인을 필요로 한다. 원인에 원인이 꼬리를 물고 상향적으로 진행하다가 마침내 원인들의 ‘원인자‘, 즉 그 모든 원인들을 창조하고 존재하게 하는 ‘그‘에게 이르게 되는 것이다.
- P417

그런데 우리의 지각과는 다른 종류의 지각의 존재가 가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각은 창조된 것이고 존재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 창조는 인간의 창조를 초월한다. 인간에게는 완벽한 지식이 없고, 존재의 세계는 너무나광범위하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의 지각의 포괄성과 지각의 결과를 의심을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이성과 이성적 지각을 부인하라는 말은 아니다.
진실로 이성은 올바른 척도이며,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완벽하게 분명하며 절대 그른 것일 수 없다. 그러나 신의 유일성, 내세, 예언의 진실성, 신적인 속성의 진정한 특징, 혹은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 존재하는 다른 것들을 측량할 때, 이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불가능을 희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마치 금의 무게를 측량하는 데에 쓰는 저울로 산을 측정하려고 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은 신과 신의 속성을 이해할 수 없다. 이성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의 세계에 속하는 수많은 원자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 P419

36) 학문을 가르치는 올바른 태도
학생들에게 학문적 주제를 가르치는 것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진행될 때에만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각 분이에 있는 개별적 부분의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요약의 방식으로 설명함으로서 그 문제점들을 가르쳐준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의 지적인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 학문의 최종점에 도달할 때까지 제시될 자료들에 대해서 학생이 어느 정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에 대해서 습관을 체득한다. 그러나 그 습관은 완전하지 않고 취약한 것일 수 있다. 교사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학생으로 하여금그가그 분야를 이해하고 거기에 포함된 문제점들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뒤 교사는 학생을 다시 한번 그 학문으로 인도하여 보다 높은 단계의 가르침을 준다. 이제는 더 이상 요약이 아니라 완전한 주석과 설명을 제시한다. 그는현존하는 견해들의 차이를 설명하고, 그러한 차이가 학문의 최종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러한 견해 차이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학생의 학문적 습관은 개선된다. 그러면 교사는 이제 확고한 기반을 가지게된 학생을 다시 한번 그 학문으로 인도하여, 그에게 복잡한 것, 애매한 것, 불분명한 것 등에 대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설명해준다. 교사는 그 분야의 모든 비밀을 벗겨서 보여주며, 그 결과 학생은 그 분야의 공부를 마칠 때가 되면 그것에대한 습관을 체득하게 된다.
이야말로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다. 독자들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세 차례의반복을 요한다. 어떤 학생은 그보다 더 적은 반복으로도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이는 그의 타고난 성품과 자질에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의 많은 교사들이 이와 같은 효과적인 교육방법에 대해서 무지한 것을 본다. 그들은 학생에게 애매한 학문적 문제들을 직면케 함으로써교육을 시작하며, 그와 같은 문제들을 풀 수 있도록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이것이 경험에서 나온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문제들을 이해하고알아야 하는 것이 학생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시작 단계에서 아직 이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학생에게 학문의 최종 결과를 들이밀어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이다. -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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