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바이러스는 어떻게 우리 인간을 감염시키게 되었을까? 동물과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많은 병원균들에게 숙주를 바꿀 기회를 준 셈이었다. 과거 어느 시점에 독감 바이러스는 직접적으로 혹은 매개 숙주를 통해 조류에서 사람에게로 뛰어들어 왔다. 돼지의 몸은 바이러스의 ‘혼합 공장‘으로 불릴 정도로 바이러스가 잘 섞이는 장소이다. 돼지가 독감 바이러스를 받아들이는 문(수용체)이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가금류, 그리고 돼지들이 가까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중국의 시골이다. 주요 독감의 범유행이 대부분 기기에서 시작된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1918년 스페인독감도 중국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참호를 파기 위해 수천 명의 중국 노동자들을 유럽으로 데려왔는데, 아마도 이들이 질병을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
- P104

대안은 없는 것일까? 내성은 생물학적으로 유용한 특질이지만 대가를 치르게 한다. 항생제와 살충제 같은 압박을 제거하면 내성미생물들은 그들의 이점을 잃게 된다. 내성은 사그라진다. 문제는 우리가 자기 만족을 느끼고 방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야외에서 다시 모기를 박멸하고, 황열병,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와 말라리아 매개체인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썩은 물을 없애야 한다. 병원에서는 더 기본적인 위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엄격한 소독과 제멜바이스식 손 씻기를 실행해야 한다.  - P118

정말로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방식을 바꾸려면, 우리는 질병에 대해달리 생각해야 한다. 인간을 정복자로, 질병을 피정복자로 빗대는 방식은 미생물 기생충을 다루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생물과 인간의 진화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는 고전동화 속에 나온 ‘붉은 여왕 이론‘이더 적합하다. 우리가 진화하면 병원체도 진화한다. 병원체가 진화하면우리도 진화한다. 항생제 같은 치료약이나 염소 같은 독소들은 우리를이런 포식자들에게서 잠시 막아 줄 뿐이다. 결국 미생물은 그것을 극복하고 진화한다. 그러면 후손이 다시 우리를 압박해 온다.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 것이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에서 붉은 여왕과 앨리스가 그랬듯이, 우리가 제자리에나마 머물기 위해서는 최선을다해 계속 달려야 한다.
십중팔구 항상 그래야 할 것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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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들도 사람의 감정만큼 변덕스럽지는않다. 나는 생명 없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으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 목적을 위해 휴식도 건강도 다 포기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으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하지만 다 끝나고 난 지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막히는 공포와혐오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내가 창조해낸 존재의 면면을 차마 견디지 못하고 실험실에서 뛰쳐나와 오랫동안 침실을 서성였지만, 도저히 마음을 진정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침내 최초의격랑이 지나가고 극도의 피로가 찾아왔다. 그래서 옷을 다 걸친 채로침대에 쓰러져 몇 초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자 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잠이 들긴 했지만 지독하게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꽃처럼 피어나는 건강한 모습의 엘리자베트를 보았던 것 같다. 그녀는 잉골슈타트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기쁨과 놀라움에 나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하지만 입술에 첫 키스를 하는 순간, 그 입술은 죽음의 색깔인 납빛으로 물들어버렸다. 그녀의 외모가 변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내 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이 안겨 있었다. 수의가 시신을 감싸고 있었는데,
플란넬 천의 주름 사이로 기어다니는 무덤의 벌레들이 보였다. 꿈속에서도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깼다. 식은땀이 이마를 뒤덮고, 이가 딱딱 부딪고, 팔다리는 모두 경련을 일으켰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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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는 거의 변이가 없다. 그러나 똑같은 단백질을 사용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똑같은 구조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백질에서 형태 또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약간의 변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 즉 몸의 구조가 행동을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변이가 좀 더 커질 뿐이다. 왼손잡이가 반드시 왼손잡이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왼손잡이 집안에서 왼손잡이가 태어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집안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왼손잡이가 될 수 있는 구조가 진화하지 않는한 그러한 행동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 P194

 특히 "생물의 진화는 일직선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진화‘란 말을 들으면 계통수보다 잡목이나 꽃양배추가 떠오른다." 라는설명은 압권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박쥐·고래·기린·오랑우탄의 후손이 아니라 "경골어류의 직계 후손이고 양서류의 후손이며 포유류와 유사한 파충류의 후손이라서 ‘나 자신이 개박쥐나 고래 같은 포유류보다 도마뱀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라고 하는말은 다윈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공통 유래common descent 의 정곡을 찌른다. "특정한 박테리아가 20억이나 30억 년 전에 세포 분열을 하는데, 단 한 번의 치명적인 돌연변이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봐. 그렇다면 나는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거야." 라고 하는 대목도 그 어느 학술 논문보다 진화의 우연성을 훨씬 실감 나게 표현한다.
- P210

독일의 휘터만 부자가 저술한 <성서 속의 생태학AmAnfang war die  okologie>에 따르면 기독교의 누명은 나름 억울한 면이 있어 보인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고대 유태인들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지속가능성이 대단히 큰 삶을 살았다.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부터 첫 3년 동안에는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썩게 해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레위기 19장 23~25절) 일주일에하루씩 안식일을 갖듯이 7년마다 한 해씩 수확 안식년을 가졌다(레위기 25장 8~13절). 물속에 사는 동물 중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레위기 11장 9~11절)라는 계율은 모기를비롯하여 온갖 해충을 잡아먹는 개구리를 보호하는 생태학적 지혜를 담고 있다. 아울러 고대 유태인들은 개인의 토지 소유를 49년으로 제한했다. 당시 유태인들의 평균 수명이 50년 남짓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는 토지 세습을 막아 토지의 사유화 때문에 벌어지는 환경 파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정책이었다. 이 세상에 유태인만큼 까다로운 음식 계명을 가진 민족도 별로 없을 것이다. 좁고 척박한 땅에서 먹지 말라는 것투성이인 울법을 지키면서도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한 그들의 생활 철학 덕이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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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멀리 데려갈 이륜마차에 몸을 던진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우울한 생각들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끊임없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려 애쓰는 상냥한 가족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던 내가 이제는 혼자가 되었다. 지금 향하는 대학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고 스스로를 알아서 돌봐야 했다. 이제까지의 내 삶은 유별나게 가족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얼굴들에 대해 도저히 극복하기 힘든 반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동생들과 엘리자베트, 그리고 클레르발을 사랑했다. 그들이 내겐 친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 P55

 획득한 정보의 본질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매진해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주는 쪽에 가까웠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는 아니었다. 나는 마치 죽은 자들과 함께 파묻혔다가 다시 살아나갈 길을 발견한 아라비아인 같았다. 하지만 길을 인도하는 빛은 희미했고 무력해 보였다.
- P65

첫 성공으로 흥분한 가운데 태풍처럼 나를 몰아친 그 다채로운 감정들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으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야말로 이상적인 목표였다. 내가 최초로 돌파해 어두운 세상에 폭포수처럼 빛이흘러들게 만들었기에. 새로운 종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 헤아릴 수도 없는 행복하고 탁월한 본성들이 내덕에 탄생하리라. 나만큼 자식의 감사를 받아 마땅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이런 생각들을 따라가던 나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지금은 불가능해도) 시간이 지나면 겉보기에는 죽음으로 부패된 육신에도 새 생명을 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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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학자들이 개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눈에는 개미들이 거의 평지를 걸어 다니는 것 같지만, 개미를 우리 인간의 몸집으로 환산해본다면 집채만 한 바위들을 우습게 타고 넘으며 지하 몇 층 정도를 가볍게 오르내리며 걷는 셈이다. 여섯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곤충, 다리가 여덟 개인 거미,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는 다지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특성 중 하나가 바로 두 발로 걷는 우리 인간보다 험한 지형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동물들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재난 구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개미는 거미나 다지류에 비해 결정적으로 유리한 점을 하나 더 지니고 있다. 바로 사회성 동물이란 점이다. 개미의 행동을 잘 이해하여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로봇들을 만들면 훨씬 더 다양한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다.
- P142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탄생한 것은 분명하지만 진화가 우리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과정은 아니다. 자연선택은 어떤목표를 향해 합목적적으로 진행되는 미래지향적 과정도 아니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공학적인 과정도 아니다. 그래서 적자생존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난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완벽한 인간의 등장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생각은 지나친 인본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은 이처럼 지극히 낭비적이고 기계적이며 미래지향적이지도 못하고 다분히 비인간적인 과정에 의해 창조되었다. 하지만 그처럼 부실해 보이는 과정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단계를 거듭하며 선택의 결과들을 누적시킨 끝에 오늘날 이처럼 정교하고 훌륭한 적응 현상들, 심지어는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일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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