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들도 사람의 감정만큼 변덕스럽지는않다. 나는 생명 없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으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 목적을 위해 휴식도 건강도 다 포기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으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하지만 다 끝나고 난 지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막히는 공포와혐오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내가 창조해낸 존재의 면면을 차마 견디지 못하고 실험실에서 뛰쳐나와 오랫동안 침실을 서성였지만, 도저히 마음을 진정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침내 최초의격랑이 지나가고 극도의 피로가 찾아왔다. 그래서 옷을 다 걸친 채로침대에 쓰러져 몇 초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자 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잠이 들긴 했지만 지독하게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꽃처럼 피어나는 건강한 모습의 엘리자베트를 보았던 것 같다. 그녀는 잉골슈타트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기쁨과 놀라움에 나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하지만 입술에 첫 키스를 하는 순간, 그 입술은 죽음의 색깔인 납빛으로 물들어버렸다. 그녀의 외모가 변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내 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이 안겨 있었다. 수의가 시신을 감싸고 있었는데,
플란넬 천의 주름 사이로 기어다니는 무덤의 벌레들이 보였다. 꿈속에서도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깼다. 식은땀이 이마를 뒤덮고, 이가 딱딱 부딪고, 팔다리는 모두 경련을 일으켰다. -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