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사고라는 것이 자연적, 임의적 배열에 의해서 생기는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를 지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물을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그사물에는 반드시 질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이유라든가 원인 혹은 규제 조건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유, 원인, 조건 등은 일반적으로 그 특정한 사물의 원리이며, 그 사물 자체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에 뒤에 올 것을 먼저 오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먼저 올 것을 뒤에 오도록 배열하는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원리는 자신에 선행하는 또 다른 원리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소급은 하나의 원리에서 그 다음 원리로 상향적으로 진행하다가, 둘이나 셋 혹은 그보다 더 여러 단계를 거쳐서 최후의 원리에 다다르게된다. 그러면 의도했던 사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게 되고, 사람은 사고를 통해서 도달한 최후의 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후의 원리는 행동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는 거꾸로 인과관계에서 최후의 요소, 즉 자신의 사고활동에서 시작점이 되었던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줄 지붕을 만들려고 생각하면, 그는 마음속에서 지붕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지붕을 받쳐줄 벽, 그리고 벽을 서 있게 하는기초로 옮겨갈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사고는 끝난다. 그러면 그는 기초를 놓는공사로부터 행동을 시작해서 벽을 세우고 마지막에 지붕을 올릴 것이다. 거기서 그의 행동은 끝나게 된다. "행동의 시작이 사고의 마지막이며, 사고의 시작이 행동의 마지막이다." 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 P401
우리는 앞에서 인간이 동물이라는 부류에 속하지만, 신이 사고력을 부여하여동물과 구별시켰고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질서있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는데, 이것이 분별적 지성이다. 만약 그가 자신에게 유용하거나 유해한 생각과 사물에 대한 지식을 동료로부터 배워서 획득한다면, 그것은 경험적 지성이다. 만약 존재하는 사물에 대하여, 그것이 가시적이건 그렇지 않건 존재 그 자체로서 인식한다면, 그것은 시유적 지성이다. 인간의 사고력은 인간 안에 깃든 동물성이 완전한 단계에 도달한 뒤에야 비로소 찾아온다. 그것은 분별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분별력을 가지기 전에는 아무런 지식도 가질 수 없고 동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한 방울의 정자, 한 움큼의 피, 한 덩어리의 살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후에 그가 획득하는 것은 모두 감각적 지각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사고능력의 결과이다. 인간은 분별력을 가지기 이전, 즉 최초의 상태에서는 아무런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지 물질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의 신체기관들을 통해서 획득하는 지식에 의해서 인간의 형상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인간적본질은 존재의 완전함에 이르게 된다. - P406
신의 유일성을 보여주는 주장은 이러하다. 존재하는 사물들의 세계 속에 생긴것들은, 본질에 속하는 것이건 아니면 인간적, 동물적 행위에 속하는 것이건, 모두 다 자신의 존재 이전에 적절한 원인들을 필요로 한다. 그 원인들은 습관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사물들을 창조하고 또 그것을 발전시킨다. 그런데 이 각각의 원인들 역시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원인을 필요로 한다. 원인에 원인이 꼬리를 물고 상향적으로 진행하다가 마침내 원인들의 ‘원인자‘, 즉 그 모든 원인들을 창조하고 존재하게 하는 ‘그‘에게 이르게 되는 것이다. - P417
그런데 우리의 지각과는 다른 종류의 지각의 존재가 가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각은 창조된 것이고 존재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 창조는 인간의 창조를 초월한다. 인간에게는 완벽한 지식이 없고, 존재의 세계는 너무나광범위하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의 지각의 포괄성과 지각의 결과를 의심을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이성과 이성적 지각을 부인하라는 말은 아니다. 진실로 이성은 올바른 척도이며,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완벽하게 분명하며 절대 그른 것일 수 없다. 그러나 신의 유일성, 내세, 예언의 진실성, 신적인 속성의 진정한 특징, 혹은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 존재하는 다른 것들을 측량할 때, 이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불가능을 희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마치 금의 무게를 측량하는 데에 쓰는 저울로 산을 측정하려고 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은 신과 신의 속성을 이해할 수 없다. 이성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의 세계에 속하는 수많은 원자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 P419
36) 학문을 가르치는 올바른 태도 학생들에게 학문적 주제를 가르치는 것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진행될 때에만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각 분이에 있는 개별적 부분의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요약의 방식으로 설명함으로서 그 문제점들을 가르쳐준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의 지적인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 학문의 최종점에 도달할 때까지 제시될 자료들에 대해서 학생이 어느 정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에 대해서 습관을 체득한다. 그러나 그 습관은 완전하지 않고 취약한 것일 수 있다. 교사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학생으로 하여금그가그 분야를 이해하고 거기에 포함된 문제점들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뒤 교사는 학생을 다시 한번 그 학문으로 인도하여 보다 높은 단계의 가르침을 준다. 이제는 더 이상 요약이 아니라 완전한 주석과 설명을 제시한다. 그는현존하는 견해들의 차이를 설명하고, 그러한 차이가 학문의 최종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러한 견해 차이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학생의 학문적 습관은 개선된다. 그러면 교사는 이제 확고한 기반을 가지게된 학생을 다시 한번 그 학문으로 인도하여, 그에게 복잡한 것, 애매한 것, 불분명한 것 등에 대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설명해준다. 교사는 그 분야의 모든 비밀을 벗겨서 보여주며, 그 결과 학생은 그 분야의 공부를 마칠 때가 되면 그것에대한 습관을 체득하게 된다. 이야말로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다. 독자들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세 차례의반복을 요한다. 어떤 학생은 그보다 더 적은 반복으로도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이는 그의 타고난 성품과 자질에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의 많은 교사들이 이와 같은 효과적인 교육방법에 대해서 무지한 것을 본다. 그들은 학생에게 애매한 학문적 문제들을 직면케 함으로써교육을 시작하며, 그와 같은 문제들을 풀 수 있도록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이것이 경험에서 나온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문제들을 이해하고알아야 하는 것이 학생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시작 단계에서 아직 이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학생에게 학문의 최종 결과를 들이밀어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이다. -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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