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와 정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문명의 질료(質料)를 제공한다. 만약 군주가 재산과 조세수입에 집착하거나 혹은 그것을 상실한다든지 적절히 사용하지 못한다면, 군주 측근들의 재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군주의 측근들이 자기 추종자들에게 주는 선물도 끊기고 지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들은 지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이루고 그들이 지출하는 것은 다른 어느 집단보다도 더 교역을 활성화시키는데, 그들이 지출을 중단하면 자본부족 현상이 나타나서 장사는 불황에 빠지고 상업적 이익은 줄어들게 된다. 지세와 다른 세금들 역시 노동, 상거래, 장사의 활성화, 이윤추구를 위한 사람들의 노력 등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세수입은 자연히 감소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의해서 피해를 받는 것은 왕조 자신이다. 왜냐하면 세액의 감소로 말미암아 군주의 재산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왕조는 가장 큰 시장이요. 모든 교역의 기반이자 어머니이고, 수입과 지출을 가능케 하는 질료이다. 만약 정부의 사업이 불황에 빠지고 교역량이 적어지면, 그것에 의존하는 시장도 자연히 그와 동일한 정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이게 된다. 게다가 재화는 군주와 백성들 사이를 순환하면서 오고 가는데, 군주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만 묶어두면 백성들은 그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 P294

타인의 재산에 대한 침해는 재산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의 의욕을 빼앗아버린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재산을 획득하려는 목적 혹은 궁극적인 목표를 상실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재산권이 침해되는 정도와 크기는 재산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약해지는 정도와 크기를 결정한다. 그 침해의 정도가 광범위하고 전반적이어서 모든 생계수단에 미칠 때, 작업의 침체 역시 전반적인 것이 되지만,
재산 침해가 가벼운 것에 불과하다면 이윤을 위한 작업의 중단도 경미한 것에그질 것이다. 문명과 그 번영 그리고 작업의 활기는 생산성에 의존하고, 이익과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 각 방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존한다. 사람들이 생계를 위한 작업을 더 이상 하지 않을 때, 그리고 이윤을 창출하는 모든 활동을 중지할 때, 문명의 활동은 침체에 빠지고 모든 것은 쇠퇴해버린다. 사람들은 생존수단을 찾으려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현 정부의 관할범위 바깥으로 나간다. 따라서 그 지역의 인구는 희소해지고 거주지는 텅 비게 되며, 도시는 황폐해진다. 이와 같은 붕괴는 왕조와 군주의 지위를 붕괴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의 지위가 문명의 형상(形相)을 이루는 것이고, 그 형상은 질료(즉 문명)가 쇠퇴되면반드시 쇠퇴하기 때문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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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집대형의 전투는 공격과 후퇴의 전술보다 훨씬 더 강고하고 격렬하다. 왜냐하면 밀집대형에서 전열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화살을 열지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기도할 때 예배자들이 도열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이러한 대형은 공격시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적절한 전술의 효과적인 활용에도 좋으며, 적을 더욱 겁먹게 하기도 한다. 밀집대형은 어느 누구도 움직일 엄두를 내기 힘든긴 장벽이나 단단하게 지어진 성채와도 같다.
적이 공격을 해올 때, 그것을 상대하는 밀집대형은 전열을 견고하게 지키며 누구도 뒤로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에게 등을 돌리는 자들은 전열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며 패배를 초래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무함마드는 밀집대형의 전투가 다른 어떤 방식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격과 후퇴의 전술을 이용한 전투는 전투 중에 후퇴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견고한 전열이 후방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밀집대형에 비해서 강력하지도않고 또 승리를 거둘 가능성도 높지 않다. 후방의 그와 같은 전열은 밀집대형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 P280

고대의 왕조들은 수많은 병사와 광대한 영역을 소유했는데, 군대는 소규모 단위로 나누어졌다. 그 까닭은 아주 먼 지방에서도 병사들이 징발되어 그 숫자가엄청나게 늘어났고, 그래서 그들이 전쟁터에서 적과 뒤섞여 활을 쏘고 백병전을벌일 때 아군들끼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 아군들끼리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군을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고, 그래서 군대를 보다 작은 단위로 나누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군대를 동서남북의 네 방위에 맞추어서 편성했고, 군대의 사령관, 즉 군주 자신이나 장군은 그 중앙에 위치했다. 이러한 배치를
‘전투대형‘ 이라고 불렀다. 이는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 그리고 이슬람 초기의 우마이야와 압바스 왕조들의 역사에 언급되어 있다. 군주의 전방에는 장군과 깃발이 있는 전열을 갖춘 부대가 배치되었는데 이를 ‘전위‘라고 불렀다. 군주가 있는곳 우측에 또 다른 부대가 있었고 이를 ‘우익‘이라고 불렀으며, 좌측에도 역시
‘좌익이 배치되었다. 본대의 배후에는 ‘후위‘라고 불리는 또 다른 부대가 두어졌다. 군주와 그의 참모들은 이 네 부대의 중앙에 위치했으며, 그가 있는 곳을 ‘중군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정교한 전열은 한 사람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지역에 배치되었고, 더 넓은 지역에 분포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각 부대 사이의 거리는 하루나 이틀 거리를 넘지 않았고, 병력의 다과를 고려하여 그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전열은 전투개시의 명령이 떨어지면 밀집대형으로 진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슬림들의 정복전과 우마이야 및 압바스 왕조들의 역사를 통해서 입증된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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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미생물은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을까?

내부 침입자
우리는 깨끗하고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이런 상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처음 혼자의 힘으로 숨을 쉬는 순간에 우리 몸은여러 다른 작은 생물들이 더불어 살아가며 모험하는 터전, 즉 숙주가 된다. 우리는 감염되는 것이다.
- P12

흑사병은 4년 만에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후 유럽을 휩쓴 어떤 유행병도 흑사병만큼 위력적이지 않았다. 유럽의 사회 구조 전체에 틈새가 더 많아지고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작농 인구가 줄어들면서 임금은 상승했다. 소비가 줄어들면서 물가는 하락했다. 시골과 도시에서 새로 부상한 중산계층이 죽은 사람들이 남긴 땅과 사업과 부를 싼 값으로 끌어 모았다. 이러한 경제 변혁이 다른 분야들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법은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였고, 예술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반영하고 새로운 부를 과시했고, 무역은 훨씬 더 많은 부를 축적해 갔다. 교회에서는 재난으로 인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정통주의가 밀리면서 의문, 날조, 이단 논쟁, 전쟁이발생했고 결국 기독교는 여러 교파로 분리되었다. 지배층과 귀족 사회는 흑사병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들의 권력은 조금씩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갔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되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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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가 분노를 억제하라고 말했을 때,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 자질을 없애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만약 인간이 분노라는 힘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하게 되면, 진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만한 능력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성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신의 말씀을 영광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무함마드는 사탄을 위해서 봉사하며 비난받아 마땅한 목적을 지닌 분노를 비판한 것이지, 신과 하나가 되고 그를 위해서 봉사하는 분노는 찬양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칭찬받을 만한 분노야말로 무함마드의 자질 가운데 하나였다.
마찬가지로 그가 욕망을 억제하라고 했을 때에도 그것은 욕망을 완전히 제거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게서 강렬한 욕망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그는장애인이나 열등인이 되고 말 것이다. 욕망이 대중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 용인될 수 있는 목적에 사용됨으로써 인간이 신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는 적극적인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무함마드의 참뜻이었다. - P206

종교법과 관련된 모든 종교적 직책 — 예를 들면 예배, 판관, 무프티(mufti), 성전, 시장감독관 등은 ‘대(大)이맘‘, 즉 칼리프의 관할하에 있다. 칼리프는 말하자면 거대한 근원이나 포괄적인 토대와 같은 것이어서, 모든 종류의 직책은 그 가지이며 그 아래에 포섭된다. 그 까닭은 칼리프위가 광범위한 관할성, 성속을 불문하고 무슬림 공동체의 모든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간여, 성속 양면에걸쳐 종교법을 집행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P220

무슬림 공동체에게 성전은 종교적인 의무이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포교는 보편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사항이고, 또 모든 사람을 반드시 설득이나 강제에 의해서 이슬람으로 개종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리프의 지위와 군주의 지위는 이슬람 안에서 통합되어, 그 지위를 담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그 두 가지에 모두 동시에 쏟을 수 있게 된다.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 집단들은 보편적인 포교의 의무가 없고, 따라서 방어를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전도 그들의 종교적 의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다른 종교에서 종교적 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은 정치권력과 전혀 무관하다. 그들의 경우, 왕권은 어떤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종교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그것을장악한 사람의 수중에 들어간다. 즉 왕권은 연대의식 -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이것은 본질상 왕권의 장악을 추구한다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지, 이슬람의 경우처럼 다른 민족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해야 할 의무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기 민족 내부에 종교를 확립하는 정도의 의무가 있을 뿐이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은 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 400년 동안 왕권에 관심을가지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기들의 종교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 P234

군주란 그 개인으로서는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고 과중한 업무를 안고 있기때문에, 동료들의 도움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다른 모든 수요의 충족을 위해서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또한 신께서 그에게 백성으로 위탁하신 인간들, 즉 그와 동일한 종에 속하는 인간들에게 대해서 정치적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들도 필요하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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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기 전에 피르자다 씨는 늘 이상한 행동을 한 가지했다. 가슴 호주머니에 넣어둔 시곗줄이 없는 평범한 은색 시계를 꺼내 주위에 흰머리가 촘촘히 난 귀에 잠깐 갖다 댄 다음, 엄지와 검지로 재빨리 태엽을 세 번 감았다. 그는 나에게, 손목에 찬 시계와는 달리 호주머니 시계는 다카 지역의 시간에 맞춰져 있어서 열한 시간 빠르다고 설명해주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그시계는 커피 테이블 위의 종이 냅킨에 놓여 있었다. 그가 그 시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없었다.
피르자다 씨가 인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좀 더 주의 깊게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무엇이 다른지 알아내려애썼다. 나는 호주머니 시계가 다른 점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 밤 그가 시계의 태엽을 감고 커피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을 보았을 때, 낯선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에게는 다카에서의 삶이 우선임을 깨달은 것이다. 피르자다 씨의 딸들이 잠에서 깨어나 머리에 리본을 묶고, 아침 식사를 기다리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우리의 식사와 우리의 행동은 이미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피르자다 씨가 정말로 속한 곳의 뒤늦은 허상일 뿐이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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