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대의식이 진실로 강고하고 그 토대가 순수할 때, 공통의 혈통이 지니는 이점은 가장분명하게 드러나고 더 큰 효력을 나타내는데, 거기에 다수의 고귀한 조상들이 있다면, 부가적인 이점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명망과 고귀함은 연대의식을 공유한 사람들 속에 굳게 자리잡고, 어떤 가문의 고귀함은 연대의식의 강고함의 정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 P138

그들은 너무나 약해져 투쟁을 하거나 요구를 내세울 수 없었다. 「코란」의 구절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태는 그들이 오랫동안 이집트인들에게 복종하고 살면서 형성된 노예근성과 공순한 성격, 그에 따른 연대의식의 완전한 상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들은 모세가 말했던 내용, 즉 신이이스라엘인들을 사랑하여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여리고에 살던 아말렉인들은 그들의 제물이 될 것이고 시리아는 그들의 땅이 되고 말 것이라는 모세의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지시받은 일을 성취하기에는 너무나유약했다. 그들은 유순함이 체질화되어 이제는 어떠한 자기 주장도 할 수 없을정도로 약해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또 자기들의 예언자가 한 이야기와 그가 내린 명령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신은 그들을 징벌하여 사막에 남도록 한 것이다. 그들이 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의 사막에서  40년 동안 머무르는 동안 문명과의 접촉이 끊어지고 어떠한 도시에 정착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코란」에 기록된 바이다. 이것은 시리아의 아말렉인이나 이집트의 콥트인도 무척 강력한 민족이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인은 그들과 맞서 싸우기에 스스로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란」의 구절의 의미와 맥락으로 보아 그와 같은 사막에서의 체류가 무엇을 시사하는지는 명백하다. 즉 치욕과 억압과 폭력에 의해서 연대의식은 완전히 파괴되고 유약한 성격의 한 세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대신 법률도 억압도 모르고 또 유순함의 낙인도 찍히지 않은 새로운 강력한 세대가 사막에서 출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연대의식이 성장하고 그로써 그들은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지배권을 성취할 수 있었다. 이로써 40년이라는 세월은 한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데에 필요한 최단기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지혜롭고 전지하신 분께 찬미를! - P147

23) 피정복민족과 피지배민족은 신속하게 소멸한다.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이 자신의 일을 통제할 수 없게 되거나, 혹은 노예화되어 다른 사람들의 도구가 되고 의존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들을 엄습하는 무기력증 때문인 듯하다. 희망은 엷어지고 약해진다. 그런데 문명의 확대와 증가라는것은 강력한 희망과 그 희망이 인간의 동물적 힘 속에 창출하는 에너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희망과 그것이 자극하는 것들이 무기력에 의해서 없어지고 연대의식이 패배의 충격으로 사라질 때, 문명은 쇠퇴하고 상업이나 다른 활동들은 중단된다. 패배의 충격으로 인해서 그들의 힘이 쇠미해짐으로써 자신을 방어할수도 없게 된다. 그들은 그들을 지배하려고 시도하는 누구에게나 희생물이 되고 그들을 잡아먹으려는 누구에게나 제물이 되고 만다. 그들의 왕권이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건 그렇지 않았건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 P155

전야민은 기질적으로 왕권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들이 종교적 감화의 영향을 받아 그런 기질을 모두 씻어버리는 완전한 변화의 과정을 겪고,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고 상호간의 공격을 중지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비로소 그들은 왕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아랍계 왕조들이 입증하는 바이다. 즉 종교는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문명의 발전을 도모하는 종교적 법률과 규정을 왕권의 지도력과 결합시킨 것이다. 그 결과 아랍인들의 왕권과 국가는 위대하고 강력해졌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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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주의가 잘 이해되지 않나요? 그럼 이렇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정육면체를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그것을 펼쳐 전개도로 만듭니다. 그리고 가위로 마음대로 자릅니다. 수많은 조각이 생겼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캔버스 위에 붙이세요. 그러면 입체주의 회화 완성입니다!!
세잔이 남긴 모든 유산을 찾아내려 했던 마티스와 달리 피카소는 세잔의 유산 중 단 하나에만 집중했습니다. 바로 ‘형태‘입니다. 형태를 다시점으로 보며, 형태를 분해시켜 그렸죠. 이제, 화가는 자연에서 본 형태를 그대로 그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피카소 덕분에 말이죠.
- P253

마티스는 자연에서 보이는 색을 재현하는 기능에서 ‘색채‘를 해방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은 보통 파란색이지만, 화가의 감정에 따라 분홍색으로 그리는 식이죠. 마티스는 감정을 표출하는데 색채를 사용했습니다. 색이 가진 고유한 표현성에 몰두했기에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죠.
피카소는 자연에서 보이는 형태를 재현하는 기능에서 ‘형태‘를 해방시켰습니다. 그 핵심 전략은 ‘다시점(多視點)‘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시점으로 대상을보고 그리던 전통적 관념을 파괴하고, 다양한 시점에서 본 대상의 부분을 모아하나의 화면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사물을 불변하는 형태가 아닌, 파편처럼해해 재조합시킨 것이죠.
- P264

 이러한 러시아인들의 무자비한 포그롬 행위는 20세기 초까지 수백 차례나 이어집니다. 하지만 유대인들 대부분은 이런 세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샤갈 또한 그러했다면, 우리가 아는 색채의 마술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버지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손은 굳은살로 덮여 있었다. (중략) 나도 벽에 기대앉아 일생을 그렇게 살 운명이었을까? 혹은 물건이 담긴 통을 운반하며 살아야 했을까? 나는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나는 특별한 직업을 찾아야 했다. 하늘과 별을 외면하지 않아도되는,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 그래, 그것이 내가 찾는 것이다. (중략) 예술가란 무엇인가?‘ 하고 나는 내게 물었다."
- P269

"손재주에 구속당하는 예술가의 처지를 극복하고 지적인 지위를 얻기위한 일이었어."
예술가는 자신이 연마한 손기술을 바탕으로 회화 혹은 조각을 해야한다는 생각 역시 고정관념으로 보고 거부합니다. 회화도, 조각도 안 한다? 뒤샹은 인류 탄생 이후 존재한 적 없는 미술을 창조해내려고 합니다. 그는 손재주가 아닌 ‘머리로 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어렴풋이 발견한것입니다. 예술가의 기술력이 아닌 사고력으로 예술을 하려고 합니다.
뒤샹의 이런 발상은 미술 창조의 본질을 통찰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천 년의 미술사에서 양식 변화의 근본 원인은 결국 ‘생각의 변화‘에 의한 것임을 꿰뚫어본 것이죠. 그는 미술 작품 속에 숨겨진 ‘창조의원리‘를 끄집어냅니다. 마치 인체라는 작품에서 두뇌를 끄집어낸 것과같다고 해야 할까요?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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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점쟁이들이 하듯이 억측과 추정과도 다르다. 그것은 완전한 오류일 뿐이고,
마음 약한 사람들을 낚으려고 던져놓은 올가미에 불과하다...
그것이 어떠할지는 신께서 더 잘 알고 있다. 초자연적인 것을 지각하는 이 모든 방법들은 입증된 것이 아니며 여하한 확증 위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이것을 읽는 독자가 확고한 기반 위에 선 학자라면 이 문제를 치밀하게 조사해보아야 할 것이다. ..……..
우리가 기지의 사실에서 미지의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정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서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이나 존재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나 적용될 수 있다. 미래의 일은 그 발생원인이 알려지기 전까지혹은 그것에 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소유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초자연에 속한 것이다.
- P124

사람들의 생활상태의 차이는 그들이 생계를 꾸려가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사회조직은 사람들에게 생계를 위하여 서로 협동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필수품을 획득하는 것에서부터 편의품과 사치품들을 얻는 것까지 가능케 한다.
어떤 사람들은 농경, 즉 채소와 곡식의 경작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또 어떤 사람은 목축, 즉 양, 소, 염소, 벌, 누에 등을 기르고 그 생산물로써 살아간다. 농경이나 목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야로부터 단절될 수 없는데, 그 까닭은 넓은경작지와 목초지는 물론이고, 정주지역이 제공할 수 없는 여타의 다른 것들을 전야만이 그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활을 전야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불가피하다. 생활과 문명에 필요한 것, 즉 의식주를 충족시키기 위한그들의 사회조직과 협동은 그들로 하여금 생존 차원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건이 점차로 개선되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재화와 안락을 확보하게 되면, 그들은 휴식과 여유를 즐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단순히 생존차원의 필수품 이상의 것들을 위해서 협동하며, 더욱 더 많은 음식과 의복을 가지게 되고 거기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은 커다란 집을 짓고 방어를 위해서 - P125

도시를 건설한다. 이로써 안락과 여유가 많아지고, 그것은 다시 고도의 사치습관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고급요리를 준비하는 것, 혹은 비단, 능라와 같은고급 옷감으로 만든 현란한 의복을 입는 것, 더 높은 건물과 망루를 건설하는 것, 건물을 정교한 가구들로 장식하는 것 등에서 최고의 자부심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기술은 고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성곽과 저택을 짓고 수도를 설치하며, 점점 더 높은 망루를 짓고 그것을 극도로 정교하게 장식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들은 의복, 침대, 그릇, 도구 등 모든 물건에 품질의 차이를 둔다. ‘도회민‘이란 도시와 그 근교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그들 중 일부는 생계수단으로 기술을 택하고 또 다른 일부는 상업을 택하기도 한다. 그들은 전야민에 비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더 안락한 생활을 누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 필수품에 만족하는 수준 이상으로 살고 있으며, 그들의 생계수단도 재산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설명으로 전야민과 도회민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집단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 P126

창조된 최초의 자연적 상태에서 영혼은 선과 악그 어느 것이 주는 영향이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모든아기는 자연상태로 태어난다. 그를 유태인으로 기독교도로 혹은 불신자로 만드는 것은 그의 부모이다."라고 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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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네의 그림 속에선 평범한 옆집 사람들이 퇴폐적으로 놀아나고 있었습니다.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는 전혀 떠오르지 않죠. 어제 점심때 퇴폐적으로 놀았던 기억만 떠오르게 하는 그림 앞에서 방탕했던 부르주아 남성들은 얼굴이 붉어졌고, 급기야 "이 그림은 쓰레기다!" 라는막말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 ‘쓰레기 같은 그림은 어느새 시대의 거울이되어 당시 방탕한 남성들의 일상을 비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의 생활, 즉 동시대 사람과 생활상을 그려야 해." 마네에게 수없이 얘기했을 보들레르의 한발 앞선 생각이 마네의 정신을 흔들어 깨운셈입니다. 그 결과, 풀밭 위에 퇴폐적으로 노니는 1860년대 부르주아들의 생활상을 풍자하는 그림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미술은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 비로소 시대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네가 발견한 미래로 가는 문‘ 입니다. 오늘날의 미술 작품이시대와 호흡하고 있는 이유이죠. 마네의 도발적 시도는 오늘날에 와서야 대중적 코드로 정착된 것입니다.
- P184

과거의 정신과 미래의 정신이 뒤섞여 혼란과 갈등을 흘뿌리던 19세기 예민한 감각을 지녔던 젊은 예술가들은 갓 태어난 시대정신을 한발앞서 포착합니다. 이들은 르네상스 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획일화된 주제나 기법 등의 전통을 과감히 깨부숩니다. 대신 자신만의 관점으로새로운 미술 창조를 추구하죠. 이렇게 과거의 패러다임이 깨지고, 그 자리에 근대적 정신이 반영된 모더니즘 미술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합니다.
그렇다 해도 너무 빠른 것 아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1789년,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그린 건 1863년, 모네가 <인상, 해돋이>를 그린 건 1872년입니다. 100년도 채 되지 않아 미술이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입니다. 이렇게 미술이 재빨리 근대의 옷을 입게 된 것은 매우 강력한 촉매제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카메라입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이 카메라라는녀석이 19세기에는 회화를 종말시킬 괴물로 여겨졌습니다.
- P199

인상주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오직 빛이 보여주는 세상을 솔직하게 포착해 그린다.‘ 인상주의 이전에 고전주의 회화는 사물 고유의 색과 형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머릿속에 있는 관념적 색과 형을 그렸던 것이죠. 인상주의는 사실 우리눈에 보이는 사물의 고유한 색과 형은 없으며,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한다는 솔직한 시각의 반영입니다. 내 눈으로 본 것만 그리겠다‘는 사실주의가 한단계 진화한 사조라고 할 수 있죠.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물의 색과 형을 보여주는 햇빛을 포착하기 위해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햇빛의 변화로 시시각각 변하는 색과 형을 즉각반영하기 위해 물감을 섞지 않고 원색을 바로 썼으며, 붓질은 점찍 듯 짧고 빠르게 했습니다. 또한 인상주의는 사진 기술의 근간인 광학이 반영되었습니다.
1874년 최초의 인상주의 전이 초상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열린 것은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나다르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 전문 사진가였습니다.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자들은 이런 사진가와 관계를 맺으며사진 제작의 원리(광학)를 알게 되었고, 자신의 회화 작업에 반영한 것입니다.
- P217

이런 노력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모네는 뭔가 2퍼센트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회화에 대한 독창적인 개념을 아직 그림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곳의 풍경은 단 하나가 아니더라!‘ 같은 곳의 풍경을 하루 종일 바라본 인내심의 대가인 모네는 깨달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씨가 변하고 그것은 빛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 빛이 변하면 풍경 속 만물의 색과 형태가 변한다는 것, 그러므로 무한한 시간만큼 그곳의 풍경도 무한히 다채롭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을요. 이것은 이제껏 풍경 화가들이 하나의 풍경에 하나의 그림만을 그리던 것과 전혀다른 개념이었습니다. 모네는 자신의 깨달음을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연작‘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 P214

세잔이 본 자연은 보면 볼수록 분해되거나 쪼개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보면 볼수록 모든 자연물의 색과 형태가 명료해지고또렷해짐을 느꼈습니다. 변화 속 불변의 발견입니다. 세잔은 매 순간 변하는 자연의 껍데기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를 느낍니다. "영원한 인상주의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말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세잔은 자연의 본질을 통찰해 그리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웁니다.
즉, 사물이 지닌 본연의 ‘색‘과 ‘형태‘, 그 엑기스를 추출해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 엑기스를 추출하기 위해 오랫동안 보고 또 보며 탐구했습니다.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 세잔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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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는 자신만의 자세와 시선, 몸짓을 지니고 있다."
"그림을 배우려고 옛 거장들의 작품을 공부하는 것은 분명 훌륭한 일이지만, 만약 목표가 현재의 아름다움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불필요한 훈련일 뿐이다."

‘현대의 생활, 즉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그려라.‘ 이게 보들레르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마네의 미술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 P178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의 절대 법칙으로 군림해왔던 표현법이 있는데요. 바로 원근법입니다. 평평한 벽면과 캔버스를 3차원의 공간으로 만드는 신통한 아이디어였죠. 1,000년의 중세시대 동안 비현실적이었던 회화에 마치 실재 같은 가상공간을 탄생시키는 절정의 기술이었습니다. 이 필살기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몰입을 높여 그림속 주제를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치 일반 영화를보다가 3D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마네가 본 우키요에에 원근법 따위는 없었습니다. 평평한 그림들이 마네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그림을 어디에 그려? 평평한 종이, 천에 그리잖아. 거기에 뭐하러 3D 가짜 공간을 만들어? 그냥 평평하게 그리면되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키요에는 그리스로마 미술을 절대 진리로 여기며 르네상스 이후 500년간 이어져온 고전적인 화풍 또한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인 미를 그리기 위해 철저히 이성적으로 계산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인의 살결은 붓질 하나보이지 않게, 드레스는 실제보다 더 빛나게 그렸죠. 마치 인간이 아닌 신이 그린 것 같은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그림이었습니다.
- P181

하지만 마네가 본 우키요에는 이것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인물,
건물, 산 등 모든 사물에 뚜렷한 윤곽선이 있었고, 그 안은 순수한 원색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단순미가 강렬하게 드러났죠. 우키요에는 마치이렇게 마네에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왜 사람을 그리는 데 수천 번붓질을 해야 하지? 윤곽선, 원색, 끝!"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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