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란 것은 어쩌면 맞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다. 리더의 결정과 그에 따른 실천만이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그것이쉽지 않다는 것은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모른다. 물론 대장님께서 결정하시는것이지만 그 결정에서 부담이란 요소를 없애야 확신에 찬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확신에 찬 결정이어야 오류 없이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326

11월 초부터 펭귄들은 둥지를 틀자마자 짝짓기에 들어간다. 워낙 몸집이 두껍고 털이 길어서 둔하기는 지만 나름대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교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집터를 닦는 것이다. 항상 주위보다 약간이라도 높은 곳에 둥지를 틀었는데, 그래야 배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곳에 돌멩이를 구해다 놨다. 돌멩이 이곳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다. 아마 이 녀석들이 경제 개념을 가지고 거래를 시작한다면 돌멩이는 인간 세계의 금에 해당할 것이다. 이곳에서 둥지를 틀 재료가 돌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새들이 나뭇가지로 둥지를 만들 듯이 이 녀석들은 작은 조약돌들을 모아다가 땅바닥에 둥지를 틀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만들어서 그곳에 알을 낳고 엎드려서 알을 품었다. 그렇게 해야 물도 잘 빠지고 따뜻한 공기도 더 많이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제 펭귄은 자신의 발등과 배 사이에 알을 품었지만, 작은 펭귄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돌멩이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 P377

눈, 바람, 얼음…. 나에게 지금 남아 있는 남극의 기의 눈, 대금, 얼음뿐이다. 그중에서도 바람에 대한 인상이 가장 강하다. 들어을 대개될 예나는 날도 예외없이 강풍이 불었다. 조디악으로 넘쳐 들어오는 파도가 너무 거겠다.
2주 뒤에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치 며칠 집을 비웠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일 년 만에 내 침대에 누웠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나갔다 온 느낌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눈앞에 펼쳐진 마리안 빙벽과 위버 반도, 멀리 넬슨 섬의 부드러운 빙원, 그리고 세종봉이 눈에 선하다. 머리 위로 모든 것이 거꾸로였던 그곳.. 그곳에 바로 내가 있었다. Adios...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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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선택한 아이, 알폰스 무하
무하는 1860년 7월 24일, 성 제임스 축일 이브에 체코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났다. 법원의 하급 직원이었던 아버지 온드르제이 무하는 이미 한 번의 결혼을 통해 1남 2녀를 두고있었다. 어머니 아말리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귀족 자제들을 가르쳤던 엘리트 여성으로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빈의 향기를 느끼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과 제국의 수도 빈, 전혀 인연이 닿을 것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실로 놀라운 사건으로 연결된다.
어느 날 밤 아말리에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그녀에게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라는 계시를 남겼고, 곧 온드르제이에 관한 중매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운명을 느낀 듯 망설임 없이 모라비아로 향한다. 이러한 결혼으로 태어난 무하를 아말리에는 ‘선택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가 성직자로 자라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 준비된 길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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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런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버릇없이 드러누워 말처럼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이 나서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기울에 침을 뱉어 댔다. 그러자 누님은 내게 옥압玉鴨과 금봉金蜂을 꺼내 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달래셨다.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해가 되었구나!
강가에 말을 멈춰 세우고 멀리 바라보았다. 붉은 명정이 휘날리고 돛그림자가 너울거리다가, 배가 기슭을 돌아가고 나무에 가리게 되자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누님의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렸을 적 일은 역력할 뿐더러 즐거움도 많았고 세월도 더디더니, 중년에 들어서는 노상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구나.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던고!
- P379

아아! 가난한 선비의 아내를 옛사람들은 약소국의 대부大夫에 견주었다. 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지탱하려 하나 언제 망할지 모르는 지경인데도 능히 제 힘만으로 외교사령外交辭令을 잘하고 나라의 체모를 갖추었던 약소국의 대부처럼, 공인은 가난한 선비의 아내로서 보잘것없는 제물이나마 결코 제사를 거르지 않았으며, 넉넉지 못한 부엌살림이나마잔치를 너끈히 치러 내시었다. 그러니 어찌 이른바 ‘몸이 닳도록 힘을다하여 죽어서야 그만 둔 분이 아니겠는가?
- P381

전에 공인을 마주대하고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우리 형님이 이제 늙으셨으니 당연히 이 아우와 함께 은거하셔야 합니다. 담장에는 빙 둘러 뽕나무 천 그루를 심고, 집 뒤에는 밤나무 천 그루를 심고, 문 앞에는 배나무 천 그루를 접붙이고, 시내의 위아래로는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 천 그루를 심을 겁니다. 세 이랑 되는 연못에는 한말의 치어稚魚를 뿌리고, 바위 비탈에는 벌통 백 개를 놓고, 울타리 사이에는 세 마리의 소를 매어 놓을 거구요. 아내는 길쌈을 할 겁니다. 형수님은 그저 여종을 시켜 들기름을 짜도록 재촉해서, 밤에 이 시동생이 등잔불을 켜고 옛사람의 글을 읽도록 도와만 주십시오."
공인은 그때 비록 병이 심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는 머리를 손으로 떠받치고 한 번 웃으면서,
"그건 바로 나의 오랜 뜻이었소!"
하고 감사해 하셨다.
- P382

죽은 사람이 죽음의 슬픔을 모르는 사실이 슬퍼할 만한 것과, 죽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이 슬퍼할 만함을 모른다는 사실을 산 사람이 아는 것이 슬퍼할 만한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슬플까?
••••••
아아, 슬프다! 아무리 그래도 산 사람은 제 슬픔에 스스로 슬퍼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이 슬퍼하는지 슬퍼하지 않는지는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나처럼 그를 아끼던 사람이 어찌 애사를 지어, 한편으로는 산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사람이 자신의 슬픔을 슬퍼하지 못함을 애도하지 않겠는가.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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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 말하면, 당초의 제 예감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도련님이 벌판에서 말을 타거나 산책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아서 실제로 건강이 회복되었음에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린튼 도련님이 그렇게 열의를 가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 히스클리프 씨의 음모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설마 죽어가는 자식을 그처럼 잔인하고 사악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요. 히스클리프 씨는 그의 욕심 많고 냉혹한 계획이 린튼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허사가 될 것 같은 위협을 느껴 더욱 다급히 서둘렀던 모양이에요.
- P429

" 이제 삼촌이 정말 돌아가시게 됐대, 아이 좋아, 삼촌이 돌아가시고 나면 내가 그 집의 주인이 될 테니까 말이야. 캐서린은 언제나 그게 제 집이라고 말했거든. 그건 자기 집이 아니지!
내 집이라고, 아빠가 그러시는데 캐서린의 것은 모두 다 내 것이래. 그 재미있는 책들도 모두 내 것이지. 캐서린은 내가 만약 우리 방 열쇠를 가지고 와서 자기를 내보내 주기만 하면, 그 재미있는 책들이며 예쁜 새, 조랑말 미니도 다 내게 준다는 거야. 하지만 난 그것들은 모두가 내 것이니까 네가 나한테 줄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 줬어.
그랬더니 캐서린은 울면서 목걸이에서 조그만 그림을 꺼내더니 그걸 나더러 가지라는 거야. 금으로 만든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사진인데 한쪽에는 자기 엄마의 사진이 있고, 다른 쪽에 삼촌 사진이 있는데 두 분 다 젊었을 때 찍은 거였어. 그게 어저께였어. 난 그것들도 내 것이라고 말하고 캐서린에게서 뺏으려고 했지. 그 망할 것이안 주려고 나를 떠밀어서 아프게 했어. 난 소리를 질렀어.
캐서린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지. 아빠가 올라오시는 소리가 들리자, 캐서린은 케이스의 한쪽을 떼더니 둘로 나누어 엄마의 초상이 들어 있는 쪽을 내게 주고 다른 쪽은감추려고 했어. 그런데 아빠가 왜 그러느냐고 묻기에 내가설명을 했지. 아빠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고, 캐서린에게 제 것을 내게 주라고 말하니까 안 된다지 뭐야. 그래서 아빠가 캐서린을 때려 넘어뜨리고 그 케이스를 줄에서 비틀어 떼어 발로 짓밟아버렸어."
- P466

"다행히 저는 성격이 좋으니 그의 나쁜 점을 용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가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도 그를 사랑해요. 히스클리프 씨, 당신은 아무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무리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아저씨의 그 잔인한 성격은 아저씨가 우리보다 훨씬 비참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풀려요. 아저씨는 비참해요, 그렇지 않아요? 악마같이 외롭고 시기심이 많은 거죠. 아무도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아요. 아저씨가 죽어도 아무도 울어주지 않을 거예요! 저는 아저씨처럼 되진 않을 거예요!"
캐서린 아가씨는 일종의 서글픈 승리감을 맛보며 말했지요. 아가씨는 앞으로 가족이 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원수의 슬픔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듯이 보였답니다.
- P478

"나는 연장 창고에서 삽을 꺼내다가 힘껏 파기 시작했어.
살 끝이 관 모서리에 닿는 소리가 나더군. 그러자 엎드려서 손으로 후볐지. 관 뚜껑의 못 박은 자리가 벌어지고 내가 목적하던 바가 거의 이루어질 참인데, 그때 바로 묘 가장자리에서 내 머리 위로 몸을 구부리며 누군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내 이 뚜껑을 열 수만 있다.
면 나를 함께 묻고 흙을 덮어주면 좋으련만!‘ 하고 나는 중얼거렸어. 그리고 나는 더욱더 미친 듯이 뚜껑을 잡아떼려고 했지, 바로 내 귓전에서 다시 한숨 소리가 들리더군.
진눈깨비를 몰고 오는 바람을 물리치는 따뜻한 숨결 같은느낌이었어. 피가 통하는 산 인간이 옆에 없다는 건 알고있었지. 그러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면 눈으로 분간은 못 할망정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난 확실히 캐시가 거기 땅속이 아니라 땅 위에 있는 걸 느꼈어.
갑자기 안도감이 심장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더군, 난 고뇌에 찬 일을 그만두고 당장 마음이 놓여 돌아보았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위안이 되었지. 그녀의 모습이 내옆에 있었단 말이야. 내가 파낸 묘를 다시 메우는 동안 그대로 거기 있다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어." - P481

"초라한 종말이군그래." 그는 방금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나의 그 맹렬한 노력이 이렇게 끝장난단 말인가? 두 집을 부숴버리려고 지렛대며 곡괭이를 장만해 놓고 헤라클레스와 같이 괴력을 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훈련했건만, 막상만반의 준비가 되고 내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자어느 쪽 집에서도 기와 한 장 들어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으니! 나의 숙적들은 나를 넘어뜨리지는 못했어. 이제야말로 바로 그들의 후손에게 복수를 할 때지. 내 힘으로 할수 있지. 그리고 아무도 막지 못해. 하지만 그래서 무슨소용이 있겠어? 난 사람을 때리고 싶지 않아.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귀찮아졌단 말이야! 이렇게 말하니 마치 오직 아량의 미덕을 보이기 위해서 이제까지 애를 써온 것처럼들리는데, 그와는 거리가 먼 얘기지. 난 그들의 파멸을 즐길 만한 힘도 없어졌고 쓸데없이 남을 파멸시킬 생각도 없어졌단 말이야.
- P538

내겐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있고, 내물과 능력이 그것을 성취하기를 열망하고 있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꿋꿋하게 그 소원의 성취를 열망했던지 나는 그것이 꼭 성취되리라고 믿고 있지. 그것도 얼마 있지 않아서 말이야. 그것을 위해 내 생애를 바쳐왔기 때문이지. 나는 소원이 성취되리라는 기대 속에 갇혀버린거야.
내가 고백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이 고백이 내 성격의 설명할 수 없는 면에 대한 설명은 될 거야. 아, 젠장! 오랜 싸움이었지. 이제 끝장이 났으면 좋겠어" - P541

무덤을 찾아보았더니, 벌판에서 가까운 언덕배기 위로 비석 세 개가 이내 눈에 띄었다. 가운데 것은 회색이었고 히스에 반쯤 묻혀 있었다. 에드거 린튼의 것만 비석 밑의 잔디와 이끼 때문에 어울려 보였다. 히스클리프 것은 여전히 벌거벗고 있었다.
나는 포근한 하늘 아래 그 비석들 둘레를 어슬렁거렸다.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방들을 지켜보고, 풀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저렇게 조용한 땅속에 잠든 사람들을 보고 어느 누가 편히 쉬지 못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 P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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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쏟아져 나와, 바윗돌과 부딪치며 거세게 다툰다.
그 화들짝 놀란 듯한 파도, 분노를 일으킨 듯한 물결, 슬피 원망하는 듯한 여울물은 내달아 부딪치고 휘말려 곤두박질치며 울부짖고 고함치는듯하여, 항상 만리장성을 쳐부술 듯한 기세를 지니고 있다. 전거戰(전투용 수레) 만 채, 전기 (기마병) 만 대隊(대열隊列), 전포戰砲 만 문, 전고戰鼓 만개로도, 무너져 내려앉고 터져 나오며 짓누르는 저 강물의 소리를 비유하기에 부족하다.
백사장에는 거대한 바윗돌이 우뚝하게 늘어서 있고, 강둑에는 버드나무들이 어두컴컴하여 형체를 분간하기 힘들다. 흡사 물귀신들이 다투어나와 잘난 체 뽐내는 듯하고, 좌우에서 이무기들이 사람을 낚아채려고 애쓰는 듯하다. - P282

강물을 건널 적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길래, 나는 그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속으로 기도를 드리나 보다 하였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안 사실이지만, 강을 건너는 사람이 물을 살펴보면 물이 소용돌이치고 용솟음치니, 몸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듯하고 눈길은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듯하여, 곧 어지럼증이 나서 물에빠지게 된다. 그러니 저 사람들이 고개를 쳐든 것은 하늘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요, 물을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는 짓일 뿐이었다. 또한 잠깐 재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인데 어느 겨를에 속으로 목숨을 빌었겠는가.
이와 같이 위태로운데도, 강물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요동 벌판이 평평하고 드넓기 때문에 강물이 거세게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라고 모두들 말하였다. 그러나 이는 강에 대해 잘 모르고 한 말이다. 요하가 소리를 내지 않은 적이 없건만, 단지 밤중에 건너지 않아서 그랬을 뿐이다. 낮에는 물을 살펴볼 수 있는 까닭에 눈이 오로지 위태로운 데로 쏠리어, 한창 벌벌 떨면서 두 눈이 있음을 도리어 우환으로 여기는 터에,
또 어디서 소리가 들렸겠는가? 그런데 지금 나는 밤중에 강을 건너기에눈으로 위태로움을 살펴보지 못하니, 위태로움이 오로지 듣는 데로 쏠리어 귀로 인해 한창 벌벌 떨면서 걱정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이제 도道를 깨달았도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린 사람에게는 귀와 눈이 누를 끼치지 못하지만, 제 귀와 눈만 믿는 사람에게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할수록 병폐가 되는 법이다.
- P284

소리와 빛깔은 나의 외부에 있는 사물이다. 이러한 외부의 사물이 항상 귀와 눈에 누를 끼쳐서, 사람이 올바르게 보고 듣는 것을 이와 같이 그르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강을 건너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뿐 아니라, 보고 듣는 것이 수시로 병폐가 됨에랴! 나는 장차 나의 산중으로 돌아가 대문 앞 계곡의 물소리를 다시 들으며 이와 같은 깨달음을 검증하고, 아울러 처신에 능란하여 제 귀와 눈의 총명함만 믿는 사람들에게도 경고하련다.
- P286

문득 보니 발(廉) 곁에서 제비가 지저귀는데, 이른바 ‘회여지지 지지위지지‘ 회汝知之 知之爲知之라 하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
회여지지 지지위지지 회汝知之 知之爲知之 :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말하기를
"너에게 아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니라"(회汝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하였는데, 원문의 음이 제비의 지저귀는 소리와 비슷하다 하여 제비의 울음소리를 묘사할 때 흔히 쓰인다.
*가르칠 회 - P330

하지만 지기를 잃은 쓰라림으로 말하자면 그렇지가 않네. 내가 다행히 눈을 지녔지만 누구와 더불어 나의 보는 것을 같이하겠는가? 내가 다행히 귀를 지녔지만 누구와 더불어 나의 듣는 것을 같이하겠는가? 내가 다행히 입을 지녔지만 누구와 더불어 나의 맛을 함께하겠는가? 내가 다행히 코를 지녔지만 누구와 더불어 나의 향내 맡음을 같이하겠는가? 내가 다행히 마음을 지녔지만 장차 누구와 더불어 나의 지혜와 깨달음을같이 하겠는가?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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