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곧 네 이름이긴 하지만, 너의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입에달려 있는 것이다. 남이 부르기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되고, 영광스럽게도 치욕스럽게도 되며, 귀하게도 천하게도 되니, 그로 인해 기쁨과 증오의 감정이 마구 생겨나는 것이다. 기쁨과 증오의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유혹을 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공포에 떨기까지 한다. 이빨과 입술은 네 몸에 붙어 있는 것이지만, 씹고 뱉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는 셈이니, 네 몸에 언제쯤 내 이름이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저 바람 소리에 비유해 보자. 바람은 본시 공허한 것인데, 나무에 부딪쳐 소리를 내고, 도리어 나무를 흔들어 댄다. 너는 일어나 나무를 살펴보아라. 나무가 가만히 있을 때 바람이 어디에 있더냐? 너의 몸에는 본시 이름이 없었으나 몸이 생겨남에 따라 이름이 생겨서, 네 몸을 칭칭 감고 너를 겁박하며 억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P226
매탕梅宕(이덕무)이 전에 처마 사이에서 왕거미가 거미줄 치는 모습을 보고는, 기뻐하며 나에게 말하기를, "절묘하더군요! 때로 머뭇거리는 모습은 마치 무슨 생각이 있는 듯하고, 때로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듯하며, 파종한 보리를 발로 밟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거문고 줄을 손가락으로 누르는것 같기도 합디다." 하더니, 지금 담헌이 풍무와 어우러져 연주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왕거미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 P230
"무릇 물고기가 물속에서 놀지만 눈에 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보이는 것이 모두 물이라서 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지금 낙서 자네의 책이 마룻대까지 가득하고 시렁에도 꽉 차서 앞뒤 좌우가 책 아닌 것이 없으니, 물고기가 물에 노는 거나 마찬가지일세. 아무리 동생 董生에게서 학문에 전념하는 자세를 본받고 장군張君에게서 기억력을 빌리고 동방삭東方制에게서 암송하는 능력을 빌린다해도, 장차 스스로 깨달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러자 낙서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렇다면 장차 어찌 해야겠습니까?" "자네는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가? 앞을 바라보면 뒤를 놓치고, 왼편을 돌아보면 바른편을 빠뜨리게 되지. 왜냐하면 방 한가운데 앉아 있어 제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고, 제 눈과 공간이 너무 가까운 탓일세. 차라리 제 몸을 방 밖에 두고 들창에 구멍을 내서 엿보는 것이 낫지. 그렇게 하면 오로지 한쪽 눈만으로도 온 방 물건을 다 취해 볼 수 있다네" - P238
그때 나는 과연 밥을 못 먹은 지 사흘이나 되었다. 행랑아범이 남의 집지붕을 이어주고 품삯을 받아, 그날 밤에야 비로소 밥을 지었다. 그런데어린아이가 밥투정을 부려 울면서 안 먹겠다고 하자, 행랑아범은 성이나서 사발을 엎어 개에게 주어 버리고는 아이에게 뒤져 버리라고 악담을 하였다. 이때 나는 겨우 밥을 얻어먹고 식곤증이 나서 누웠던 참이었다. 행랑아범에게 장괴애가 촉蜀 지방을 다스릴 적에 어린아이를 베어 죽인 고사를 비유로 들어 타이르고 나서, 또 말하기를, "평소에 가르치지 않고서 도리어 꾸짖기만 하면, 커 갈수록 부자간의 은의恩義를 상하게 되는 법일세." 하였다. 그러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은하수가 지붕 위에 드리웠고 별똥별은 서쪽으로 흐르며 흰 빛줄기를 공중에 남겼다. - P246
들려오는 맹꽁이 울음소리는 눈 어둡고 귀먹은 원님 앞에 난민亂民들이 몰려와서 소송을 벌이는 듯했다. 매미 울음소리는 일과를 엄히 지키는 서당에서 시험일에 닥쳐 소리 내어 글을 외우는 듯했다. 닭 울음소리는 한 선비가 홀로 나서서 바른말 하는 것을 자기 소임으로 삼는 듯했다. - P271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로다! 통곡할 만하구나!" 그러자 정 진사가 묻기를, "이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시야가 탁 트인 드넓은 곳을 만났는데, 갑자기 또 통곡을 생각하다니 왜 그러시오?" 하기에, 내가 말하였다. "그렇기도 하오만, 꼭 그렇지만은 않소. 자고로 영웅은 울기를 잘하고미인은 눈물이 많은 법이오. 하지만 그들의 울음은 두어 줄기의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 앞에 굴러 떨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들의 울음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종이나 경쇠에서 울려 나오는 듯했다는 말은듣지 못했소, 사람들은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情) 중에 오직 슬픔(哀)만이 통곡을유발하는 줄 알고, 일곱 가지 감정이 모두 통곡할 만한 줄은 모르오. 기쁨(喜)이 극에 달하면 통곡할 만하고, 노여움(怒)이 극에 달하면 통곡할 만하고, 즐거움(樂)이 극에 달하면 통곡할 만하고, 사랑(愛)이 극에 달하면통곡할 만하고, 미움(惡)이 극에 달하면 통곡할 만하고, 욕심(欲)이 극에 달하면 통곡할 만하다오. 그리고 억눌린 감정을 시원스레 풀어버리는 것은 울음소리보다 더 빠른 게 없으니, 통곡이란 천지에 있어서 격렬한 천둥에 비길 만하오. 극에달한 감정에서 우러나오고, 우러나온 것이 사리에 들어맞기만 하다면, 통곡이라 해서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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