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도로써 나라를 전했는데, 지금은 보물로써 나라를 전한다.
태위 주발은 옥새를 손에 넣자, 제 것인 양 하면서 군주를 횡재한 물건처럼 여겼다. 대장군 곽광藿光도 옥새를 손에 넣자, 제 것인 양하면서 몸소 군주에게 채워 주기도 하고, 몸소 군주에게서 끌러 내기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옥새는 천하를 좌우하는 것이 되어서, 옥새가있는 것을 보면 사방에서 일어나 엇보고 노리게 되었다. 더구나 군주가죽은 비상시국에는 내시나 후궁들이 이것을 손에 넣었다가 제가 좋아하는 자에게 주어 환심을 사기도 했는데, 그래도 대신들은 그저 ‘예, 예‘ 복종하고 세상 사람들도 감히 이의를 달지 못하였다.
아아! 천하를 전하는 것은 막중한 대사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낱 옥새로써 천하를 전해 받은 증거물로 삼기를, 마치 현승이나 현위가 인끈을 품고 다니듯이 하는가?
- P414

"천하의 물건치고 하나의 그릇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꼭 맞는 곳에 사용할 따름일세, 붓이 먹을 머금은 채 딴딴히 굳어지면 모지라지기 쉬운 법이기에, 항상 그 먹을 씻어서 붓을 부드럽게 해 두지. 그러므로 이 그릇이 필세가 된 것일세."
- P424

작고하신 형님을 그리며
燕岩憶先兄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
두건 쓰고 옷 입고 가 냇물에 비친 나를 봐야겠네

我兄顏髮會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中铁映溪行 - P436

한때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고문古文(고전적 산문)의 대가‘로 연암을꼽기도 했고, 또 한때는 양반 사회의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한 ‘소설가‘로서 그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에 들어 연암은 소설뿐 아니라『열하일기』와 산문, 한시 등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적 개성을 추구한 ‘우리 근대문학의 선구자‘ 라는 정평을 얻는가 싶더니, 평범한 일상사를 가볍고 참신하게 표현한 ‘소품문小品文의 작가‘로 새삼스레 주목을 받기도 한다.
- P469

‘옛것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하자‘는 법고창신론은, 연암이 명나라 말 청나라 초 중국 문학계의 변화와 그에 영향 받은 당시 조선의 창작 경향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제시한 문학론이다. 「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연암은 명나라의 작가들이 ‘법고파‘와 ‘창신파‘로 분열·대립하다가, 둘다 바른길을 얻지 못하고 말세의 하찮은 문학으로 타락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말한 법고파란 오로지 고대의 문학만을 모범으로 삼아 창작할 것을 주장한 일파로서, 이반룡과 왕세정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창신파란 그러한 고전의 구속에서 벗어나 참신한 개성적 표현을 추구한 일파로서, 원굉도袁宏道 형제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그 중 법고파의 문학이 선조 때 국내에 소개된 이래 지속적으로 큰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 창신파의 문학도 뒤이어 국내에 점차 소개되면서 변화를 갈망하던 일부 문인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당시 조선 문단에는 중국의 고전에 대한 피상적인 모방을 일삼는 폐단이 심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유행을 무분별하게 좇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었다. 연암은 이러한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을 모두 경계했다. 고전의 겉모습만 시대착오적으로 모방할 것이 아니라 당대 중국의 현실을 참되게 그리고자 한 그 내면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며, 이와 같은 고전의 정신을 되살려 오늘의 우리 현실을 참되게 그린 문학을 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P479

1874년 양력 2월(고종 10년 12월) 박규수가 우의정으로 임명되자, 그의 조부인 연암에게도 좌찬성左贊成의 관직이 추증追贈되었다. 그리고 1910년 8월 조선왕조가 망하기 직전에 연암에게 문도 文度라는 시호證號가 내려졌다.
- P502

 우리는 지금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완성되면서 세계가 급속히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국가·민족·문명·계층·지역·성별 등 기존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과인간다운 삶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에 직면하여 어떻게 주체적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 시대의 화두 話頭라고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고루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발상을전환하여 사물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가르친 연암의 작품들은 그에 응답하는 살아 있는 고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만약 연암이 살아 있다면 현대의 당면 과제에 대해 과연 어떤 대안을제시했을까 하는 관점에서, 그의 문학과 사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 P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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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가진 태아였을 때, 나는 내 안의그 작은 어둠이 무서워 자주 울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작았던 시절 —— 조글조글한 주름과, 작고 빨리 뛰는 심장을 가지고있었던 때 말이다. 그때 나의 몸은 말(言)을 몰라서 어제도 내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8

 미안해서 못 오는 사람, 미안해서 자꾸 더 미안해해야 되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 나중에는 정말 미안해진 나머지, 못난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 하지만 나는아버지가 나쁜 사람이고 싶었을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잘못하고도 다른 사람이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진짜 나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 P11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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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란 것은 어쩌면 맞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다. 리더의 결정과 그에 따른 실천만이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그것이쉽지 않다는 것은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모른다. 물론 대장님께서 결정하시는것이지만 그 결정에서 부담이란 요소를 없애야 확신에 찬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확신에 찬 결정이어야 오류 없이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326

11월 초부터 펭귄들은 둥지를 틀자마자 짝짓기에 들어간다. 워낙 몸집이 두껍고 털이 길어서 둔하기는 지만 나름대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교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집터를 닦는 것이다. 항상 주위보다 약간이라도 높은 곳에 둥지를 틀었는데, 그래야 배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곳에 돌멩이를 구해다 놨다. 돌멩이 이곳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다. 아마 이 녀석들이 경제 개념을 가지고 거래를 시작한다면 돌멩이는 인간 세계의 금에 해당할 것이다. 이곳에서 둥지를 틀 재료가 돌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새들이 나뭇가지로 둥지를 만들 듯이 이 녀석들은 작은 조약돌들을 모아다가 땅바닥에 둥지를 틀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만들어서 그곳에 알을 낳고 엎드려서 알을 품었다. 그렇게 해야 물도 잘 빠지고 따뜻한 공기도 더 많이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제 펭귄은 자신의 발등과 배 사이에 알을 품었지만, 작은 펭귄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돌멩이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 P377

눈, 바람, 얼음…. 나에게 지금 남아 있는 남극의 기의 눈, 대금, 얼음뿐이다. 그중에서도 바람에 대한 인상이 가장 강하다. 들어을 대개될 예나는 날도 예외없이 강풍이 불었다. 조디악으로 넘쳐 들어오는 파도가 너무 거겠다.
2주 뒤에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치 며칠 집을 비웠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일 년 만에 내 침대에 누웠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나갔다 온 느낌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눈앞에 펼쳐진 마리안 빙벽과 위버 반도, 멀리 넬슨 섬의 부드러운 빙원, 그리고 세종봉이 눈에 선하다. 머리 위로 모든 것이 거꾸로였던 그곳.. 그곳에 바로 내가 있었다. Adios...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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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선택한 아이, 알폰스 무하
무하는 1860년 7월 24일, 성 제임스 축일 이브에 체코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났다. 법원의 하급 직원이었던 아버지 온드르제이 무하는 이미 한 번의 결혼을 통해 1남 2녀를 두고있었다. 어머니 아말리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귀족 자제들을 가르쳤던 엘리트 여성으로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빈의 향기를 느끼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과 제국의 수도 빈, 전혀 인연이 닿을 것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실로 놀라운 사건으로 연결된다.
어느 날 밤 아말리에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그녀에게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라는 계시를 남겼고, 곧 온드르제이에 관한 중매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운명을 느낀 듯 망설임 없이 모라비아로 향한다. 이러한 결혼으로 태어난 무하를 아말리에는 ‘선택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가 성직자로 자라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 준비된 길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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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런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버릇없이 드러누워 말처럼 뒹굴면서,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게 말을 했더니, 누님이 그만 수줍어서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건드렸다. 나는 성이 나서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기울에 침을 뱉어 댔다. 그러자 누님은 내게 옥압玉鴨과 금봉金蜂을 꺼내 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달래셨다. 그때로부터 지금 스물여덟해가 되었구나!
강가에 말을 멈춰 세우고 멀리 바라보았다. 붉은 명정이 휘날리고 돛그림자가 너울거리다가, 배가 기슭을 돌아가고 나무에 가리게 되자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누님의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렸을 적 일은 역력할 뿐더러 즐거움도 많았고 세월도 더디더니, 중년에 들어서는 노상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구나.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던고!
- P379

아아! 가난한 선비의 아내를 옛사람들은 약소국의 대부大夫에 견주었다. 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지탱하려 하나 언제 망할지 모르는 지경인데도 능히 제 힘만으로 외교사령外交辭令을 잘하고 나라의 체모를 갖추었던 약소국의 대부처럼, 공인은 가난한 선비의 아내로서 보잘것없는 제물이나마 결코 제사를 거르지 않았으며, 넉넉지 못한 부엌살림이나마잔치를 너끈히 치러 내시었다. 그러니 어찌 이른바 ‘몸이 닳도록 힘을다하여 죽어서야 그만 둔 분이 아니겠는가?
- P381

전에 공인을 마주대하고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우리 형님이 이제 늙으셨으니 당연히 이 아우와 함께 은거하셔야 합니다. 담장에는 빙 둘러 뽕나무 천 그루를 심고, 집 뒤에는 밤나무 천 그루를 심고, 문 앞에는 배나무 천 그루를 접붙이고, 시내의 위아래로는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 천 그루를 심을 겁니다. 세 이랑 되는 연못에는 한말의 치어稚魚를 뿌리고, 바위 비탈에는 벌통 백 개를 놓고, 울타리 사이에는 세 마리의 소를 매어 놓을 거구요. 아내는 길쌈을 할 겁니다. 형수님은 그저 여종을 시켜 들기름을 짜도록 재촉해서, 밤에 이 시동생이 등잔불을 켜고 옛사람의 글을 읽도록 도와만 주십시오."
공인은 그때 비록 병이 심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는 머리를 손으로 떠받치고 한 번 웃으면서,
"그건 바로 나의 오랜 뜻이었소!"
하고 감사해 하셨다.
- P382

죽은 사람이 죽음의 슬픔을 모르는 사실이 슬퍼할 만한 것과, 죽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이 슬퍼할 만함을 모른다는 사실을 산 사람이 아는 것이 슬퍼할 만한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슬플까?
••••••
아아, 슬프다! 아무리 그래도 산 사람은 제 슬픔에 스스로 슬퍼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이 슬퍼하는지 슬퍼하지 않는지는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나처럼 그를 아끼던 사람이 어찌 애사를 지어, 한편으로는 산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사람이 자신의 슬픔을 슬퍼하지 못함을 애도하지 않겠는가.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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