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퍽퍽 하고 나무가 살갖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구둣발이 뼈에 닿는 소리를, 이에 닿는 소리를, 배를 차였을 때 차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는 신음을, 시멘트에 부딪힌 머리뼈가 으스러지는 숨죽인 소리를 부러진 갈비뼈 그 뾰족한 끝에 찔려 폐가 찢어져서 숨넘어갈 듯 피가 꾸르륵 솟는 소리를,
시퍼레진 입술에 접시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이들은 느끼긴 했으나 이해할 수는 없는 무언가를 넋이 나가 바라보았다. 경찰들의 군더더기 없는 행동, 분노를 깊게 가라앉힌 심연, 냉철한, 흔들림 없는잔인함, 그 모든 것의 간결함.
그들은 병뚜껑을 열고 있었다.
아니면 수도꼭지를 잠그고 있었다.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고 있었다.
- P421

그녀는 그의 감긴 눈에 입맞춤을 하고 일어섰다. 벨루타가 망고스틴나무에 기댄 채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른 장미를 머리에 꽂고 있었다.
그녀가 뒤돌아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나알레이."
내일.
-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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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몰은 선물을 자신의 고고 핸드백에 넣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어려운 흥정을 하러. 우정을 협상하러.
불행하게도, 미완성으로 남을 우정, 불완전하게. 발 디딜 곳 없이 공중에 매달린 채, 빙글빙글 맴돌다 이야기가 되지 못할 우정, 이러한 이유로 예상보다 빨리 소피 몰은 ‘추억‘이 되었고, 한편 소피 몰의 ‘상실‘
은 더욱 굳건해지고 생생해졌다. 제철 과일처럼, 매년 계절이 돌아올때마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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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한민국 국토의 최남단은 어디일까?
흔히 제주도 밑에 있는 마라도(북위 33도 6분)로 알고 있지만 실은 서울에서 1만 2,730km, 부산에서는 1만 2, 439km 떨어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다. 남위 74도 37분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과학기지인 세종과학기지는 서울에서 1만 7,240㎞ 떨어져 장보고과학기지보다 더 멀지만 남위 62도 13분에 있다. 남쪽으로는 장보고과학기지가 세종과학기지보다 훨씬 더 밑에 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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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의 소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영혼을 짓밟고 있다. 우리가 곧 원하지 않아서 내다 버리게 될것들을 추구하느라 말이다. 최악은 이렇게 물건에 의존하는 습성이 힘든 시기에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불안할 때 견고한 뭔가에매달리는 것은 대응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소유물은 우리가 세상을 통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소유물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우리는 벌거벗은 원숭이, 허약한 종이므로 완력이 아니라뇌에 의지하여 세상을 지배했다. 그리고 물건으로 지배했다. 우리는 물건의 주인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 강하고, 빠르고, 힘있고, 더 잘 방어되고, 더 효율적이고, 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 P416

유발 노아 하라리가『사피엔스』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과거에 이중의 현실에서 살았다.
"한편으로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현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 국가, 기업이라는 상상의 현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의 현실이 갈수록 강력해졌고, 그래서 오늘날에는 강, 나무,
사자의 생존 자체가 신, 국가, 기업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선처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자연에 대한 우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이런 가상의 만들어진 실재들을 통해서다. 결국 신, 국가, 기업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그것들이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 전체를 소유한다는 믿음의 근거다.
자신이 공기를 소유하고 물을 소유하고 땅을 소유한다고 믿는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간을 사고파는권리, 시간을 사고파는 권리를 부여했다. 실제로 이것은 전 세계경제의 근본 토대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차원을 우리가 소유할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위태롭게도 인간은 지구를 소유할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을 다 소유한다. 우리 인간만이 자신의 재량에 따라 다른 종들을 사고팔 권리가 있다는 믿음하에 행동한다. 우리에게는 생명 자체가 상품이다. 그리고 상품 교역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 지금, 생명 자체가 사라지고 있느 것은 널랄 일이 아니다. - P428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의 부모보다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전적으로 여러분은 15만 세대 이전에 시작된 혈통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나지르는 이 확률을 대략 10 45,000분의 1이라고 계산했다. 한 페이지에 다 적기에는 지나치게 긴 숫자이며 이 장에 담기에도 벅차다. 실제로 그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의 수보다 더 클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입자가 하나의 우주라고 할 때 그 모든 우주의 입자를다 더한 것보다도 큰 숫자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여러분의 존재하는 확률은 "200만 명이 모여… 각자 면이 1조 개인 주사위를 던져 모두가 똑같은 면이 나올 확률과 똑같다. 즉, "사실상 제로"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자. 현실이라는 거대한 계획 아래, 여러분은 지구에 도착했다. 대재앙이 목전에 닥친 적시, 적소에 말이다.
사실 너무도 완벽하다. 할리우드도 이보다 나은 플롯은 생각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보다 더 장대하고 세심하고 놀라운 이야기는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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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데이터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제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은 석유가 아니라 데이터다. 2017년 일사분기에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총 250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아마존은 미국에서 이루어진 온라인 소비의 절반을 차지했다. 우리의 데이터가 귀중한 이유는 우리가 소비자로서 돈벌이의 표적이 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적을 받는다. 이런 새로운 경제 모델은 하버드 경영 대학원 교수 쇼사나 주보프가 ‘감시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러분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미치고 행동을 바꾸도록 하여 이윤을 얻고자 여러분의 일상(여러분의 현실)의 실시간 흐름에 접속하는 것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다. 여러분의 발길을 끌고 싶은 레스토랑, 여러분의 브레이크 패드를 고치고 싶은 서비스업체, 여러분을 사이렌처럼 유혹하려는 가게에게 이것은 기회의 우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 P354

데이터는 우리가 사회를 나누고 조사하는 밑바탕이다. 『시민 신원 확인 Identifying Citizens」의 저자 데이비드 라이언은 확실하게 말한다. 우리는 왜 사람들을 데이터로 바꿀까? 그것은 "신원 확인이감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신원 확인이 되면 시스템은 사람들을 몇몇 집단으로 나눠서 분석하고 분류하고,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에 따라 보상하거나 차별을 가할 수 있다.
- P365

미셸 푸코는 이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규율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힘을 행사한다. … 아울러 상대에게는 강압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만든다. 그들에게 힘이 행사되고 있음은… 이렇게 그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관찰된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 P374

과학자들은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도 나름의 지능이 있다는 것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전 세계 곳곳에서 비인간 생명체들을 보호하려는 법적인 노력으로 인해 그들에게 점차 권리가부여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목소리를 낼 수는 없겠지만, 자연에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적어도 자연의 이익이 법정에서 방어될 수 있고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
2018년 4월 5일, 콜롬비아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이 바로 그렇게 했다. 콜롬비아는 자국에 속한 아마존 분지의 지위를 독립적인 권리 주체가 되도록 바꾸어 사실상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생태계에 부여했다. 오랜 세월 불법 채굴과 벌목, 마약 작물을 포함한 농경지 확장으로 몸살을 앓아 온 아마존은 자원을 강탈당하고 있었다. 2015년과 2016년에만 삼림 벌채가 44퍼센트 늘어70,074헥타르, 그러니까 뉴욕 시 크기의 땅이 파괴되었다. 아마존에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열대 우림은 이제 법적 보호와 변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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