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January
면도날 같은 미스트랄

새해는 점심으로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는다는 설레임 그리고 한밤중의 축배와 입맞춤이 있지만 밤 열한시의 폭음과 성취하지 못한 결심들로 새해 전야는 언제나 참담한 시간일 뿐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라코스트 마을에 있는 식당 ‘르시미안‘ 의 주인이 단골들에게 핑크빛 샴페인을 곁들인 여섯 코스의 점심을 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그 점심이야말로 다가올 열두 달을 시작하는 더없이 반가운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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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퍽퍽 하고 나무가 살갖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구둣발이 뼈에 닿는 소리를, 이에 닿는 소리를, 배를 차였을 때 차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는 신음을, 시멘트에 부딪힌 머리뼈가 으스러지는 숨죽인 소리를 부러진 갈비뼈 그 뾰족한 끝에 찔려 폐가 찢어져서 숨넘어갈 듯 피가 꾸르륵 솟는 소리를,
시퍼레진 입술에 접시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이들은 느끼긴 했으나 이해할 수는 없는 무언가를 넋이 나가 바라보았다. 경찰들의 군더더기 없는 행동, 분노를 깊게 가라앉힌 심연, 냉철한, 흔들림 없는잔인함, 그 모든 것의 간결함.
그들은 병뚜껑을 열고 있었다.
아니면 수도꼭지를 잠그고 있었다.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고 있었다.
- P421

그녀는 그의 감긴 눈에 입맞춤을 하고 일어섰다. 벨루타가 망고스틴나무에 기댄 채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른 장미를 머리에 꽂고 있었다.
그녀가 뒤돌아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나알레이."
내일.
-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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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몰은 선물을 자신의 고고 핸드백에 넣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어려운 흥정을 하러. 우정을 협상하러.
불행하게도, 미완성으로 남을 우정, 불완전하게. 발 디딜 곳 없이 공중에 매달린 채, 빙글빙글 맴돌다 이야기가 되지 못할 우정, 이러한 이유로 예상보다 빨리 소피 몰은 ‘추억‘이 되었고, 한편 소피 몰의 ‘상실‘
은 더욱 굳건해지고 생생해졌다. 제철 과일처럼, 매년 계절이 돌아올때마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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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한민국 국토의 최남단은 어디일까?
흔히 제주도 밑에 있는 마라도(북위 33도 6분)로 알고 있지만 실은 서울에서 1만 2,730km, 부산에서는 1만 2, 439km 떨어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다. 남위 74도 37분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과학기지인 세종과학기지는 서울에서 1만 7,240㎞ 떨어져 장보고과학기지보다 더 멀지만 남위 62도 13분에 있다. 남쪽으로는 장보고과학기지가 세종과학기지보다 훨씬 더 밑에 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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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의 소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영혼을 짓밟고 있다. 우리가 곧 원하지 않아서 내다 버리게 될것들을 추구하느라 말이다. 최악은 이렇게 물건에 의존하는 습성이 힘든 시기에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불안할 때 견고한 뭔가에매달리는 것은 대응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소유물은 우리가 세상을 통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소유물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우리는 벌거벗은 원숭이, 허약한 종이므로 완력이 아니라뇌에 의지하여 세상을 지배했다. 그리고 물건으로 지배했다. 우리는 물건의 주인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 강하고, 빠르고, 힘있고, 더 잘 방어되고, 더 효율적이고, 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 P416

유발 노아 하라리가『사피엔스』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과거에 이중의 현실에서 살았다.
"한편으로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현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 국가, 기업이라는 상상의 현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의 현실이 갈수록 강력해졌고, 그래서 오늘날에는 강, 나무,
사자의 생존 자체가 신, 국가, 기업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선처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자연에 대한 우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이런 가상의 만들어진 실재들을 통해서다. 결국 신, 국가, 기업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그것들이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 전체를 소유한다는 믿음의 근거다.
자신이 공기를 소유하고 물을 소유하고 땅을 소유한다고 믿는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간을 사고파는권리, 시간을 사고파는 권리를 부여했다. 실제로 이것은 전 세계경제의 근본 토대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차원을 우리가 소유할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위태롭게도 인간은 지구를 소유할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을 다 소유한다. 우리 인간만이 자신의 재량에 따라 다른 종들을 사고팔 권리가 있다는 믿음하에 행동한다. 우리에게는 생명 자체가 상품이다. 그리고 상품 교역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 지금, 생명 자체가 사라지고 있느 것은 널랄 일이 아니다. - P428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의 부모보다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전적으로 여러분은 15만 세대 이전에 시작된 혈통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나지르는 이 확률을 대략 10 45,000분의 1이라고 계산했다. 한 페이지에 다 적기에는 지나치게 긴 숫자이며 이 장에 담기에도 벅차다. 실제로 그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의 수보다 더 클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입자가 하나의 우주라고 할 때 그 모든 우주의 입자를다 더한 것보다도 큰 숫자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여러분의 존재하는 확률은 "200만 명이 모여… 각자 면이 1조 개인 주사위를 던져 모두가 똑같은 면이 나올 확률과 똑같다. 즉, "사실상 제로"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자. 현실이라는 거대한 계획 아래, 여러분은 지구에 도착했다. 대재앙이 목전에 닥친 적시, 적소에 말이다.
사실 너무도 완벽하다. 할리우드도 이보다 나은 플롯은 생각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보다 더 장대하고 세심하고 놀라운 이야기는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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