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증인이 늦게 도착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마을에서 13킬로미터쯤 떨어진 포사라는 곳에서 왔다. 그의 불쌍한 노새는 오는 내내 분명 무수히 발질을 받았을 것이다. 항상 검정 옷을 입고 있던 이 공증인의 턱은 헌 나막신 같았고, 손가락은 온통 잉크투성이였다.
마을에 올 때면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걸 알리려는 듯 늘 우리를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고 술자리를 마다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회가 찾아들면 그는 많이 마셨다. 집에 되돌아갈 때 노새가 길을 아는 게 무척 다행일 정도였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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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의 편지글에 보면 "옛날에는 문을 닫고 앉아 글을 읽어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었지요" 라는 구절이 있다. 정작 이해할 수 없는것은 오늘의 우리들이다. 인터넷 시대에 세계의 정보를 책상 위에서 만나보면서도 천하의 일은커녕 제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 수가없다. 정보의 바다는 오히려 우리를 더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게할 뿐이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나는 없고 정보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소유한 정보의 양이 늘어갈수록 내면의 공허는 커져만 간다. 주체의 확립이 없는 정보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 P82

납작한 돌을 골라 물결을 향해 몸을 뉘어 던졌다. 물껍질을 벗기며 세 번도 뛰고 네 번도 뛴다. 느린 것은 두꺼비가 물에 잠기는 것 같고, 가벼운 것은 마치 물찬 제비 같다. 어쩌다가는 대나무 모양을 만들면서 마디마디 재빠르게 뒤쫓기도 한다. 혹 동전을 쌓으며 쫓아가기도 하는데, 뾰족한 흔적은 뿔 같고, 층층의 무늬는 탑인 듯도 싶다. 이것은 아이들의 장난인데, 물수제비 뜨기라 한다.
고목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다. 껍질을 벗은 것은 마치 늙은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고,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고개를 돌아보는 듯하였다. 속은 구멍이 뚫려 텅 비었고, 곁가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이었다. 돌들끼리 비벼 표백되고 깔리어 그런가 싶었다. 돌빛은 핥은 듯 불그스레 윤기가 나고 매끄러웠다. 한 필 비단 같은 가을 햇살이 멀리 단풍나무 사이로 펼쳐지자, 또 시냇가의 모래는 모두 담황색인 듯하였다.
- 박제가 <<妙香山小記>> 중에서
- P87

발로 물살을 가르자 발톱에서 폭포가 일어나고, 입으로 양치질하니 비는이빨 사이로 쏟아졌다. 두 손으로 허위적거리자 물빛만 있고 내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꼽을 씻으며 얼굴의 술기운을 깨노라니, 때마침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구나.
- 박제가
- P90

 대저 속된 자들은 선방(禪房)에서 기생을 끼고 시냇가에서 풍악을 베푸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는 데 과일을 두는 격이라 하겠다. 어떤 이가 내게 와서 묻는다.
"산속에서 풍악을 들으니 어떻습디까?"
"내 귀는 다만 물 소리와 스님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오."
- 박제가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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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미친다 - 벽(癖)에 들린 사람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그저 하고 대충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하다 혹 운이 좋아 작은 성취를 이룬다 해도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노력이 따르지 않은 한때의 행운은 복권당첨처럼 오히려 그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 미쳐라(),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狂氣)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결코 님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
- P13

김득신이 한 번은 만주(晩洲) 홍석기(洪錫箕)의 집에 머물며공부하고 있었다. 홍공은 출타하고 없었고 그만 혼자 있었다. 한종이 솥을 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종이 말했다. "빚 받을 집에서 뽑아 왔습니다." 김득신은 책을 기두어 그 길로 서둘러 돌아오려 했다. 홍공이 오는 길에 그를 보고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굳이 묻자 솥을 뽑아온 일을 가지고 대답했다. 홍공은 "이것은 내가 모르는일이다. 내 집에 과부가 된 누이가 있는데 혼자 한 일이다. 실로내 잘못이 아니다" 라고 하며 간곡히 사과해 마지않았다. 김득신은 그제서야 그만두었다.
김득신은 구당(久堂) 박상원(朴長遠)과 서로 사흘 걸리는 거리에 살았다. 몇 년 전에 아무 해 몇 월 며칠에 서로 방문하기로 미리 약속을 했었는데, 틀림없이 기일에 맞추어 이르렀다. 한 번은약속을 했는데 마침 비바람이 크게 불고 날이 늦은지라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과연 그가 이르렀다.
그 독실함이 이와 같았다.

빚 대신 가난한 집 솥을 뽑아 오는 각박함을 보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 잊어버리기 잘하는 사람이몇 년 전에 한 벗과의 약속만은 잊지 않고 지켰다. 이런 독실한 품성의 바탕에서 그의 근면한 노력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 P63

글의 앞부분에서 황덕길은 김득신의 피나는 노력을 말하면서,
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부족한 재능은 없다고 했다. 부족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린다. 단순무식한 노력 앞에는 배겨날 장사가 없다.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동안 내용이 골수에 박히고 정신이 자라, 안목과 식견이 툭 터지게 된다. 한 번 터진 식견은 다시 막히는 법이 없다. 한 번 떠진 눈은 다시 감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어려운 책을 몇 번 읽고 줄줄 외웠던 천재들의 글은지금 한 편도 전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그런 천재가 있었다는 풍문뿐이다. 김득신은 그렇지가 않았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사람은 김득신을, 아니 그의 끝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스승으로 모실 일이다.
- P65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 간 뽕나무를 심고, 1년 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 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王)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놓고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 이덕무 <<耳目口心書>> 중에서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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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티가 이 고위층 클럽에 미치는 영향력을 지켜보면서 나는 제이티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이티와 어울려 지낸 지 6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제이티가 어느 정도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기뻤다. 이런 생각에는, 내가 마약 판매 갱 단원의 출세에 같이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항상 따라붙었다. - P343

분명 제이티는 내 인생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관습을 깨고 규칙을 조롱하면서 괴짜 사회학자가 되어가는 동안 일찍이 내가 했던 가장 파격적인 일이라면, 사회학계와는 동떨어진 한 사람의 입장에서 아주 많은 것을 배우고, 아주 많은 교훈들을 받아들이고, 아주 많은경험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파리 교외나 뉴욕의 빈민가와 같이 시카고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거기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여전히 문득, 제이티의 목소리를 듣고는 한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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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택단지에서 누구라도 죽으면 애도를 올렸지만 그 정도는 달랐다. 마약과 거리 갱단의 삶을 택한 젊은 남녀는 당연히 오래지 않아 죽을 운명이었다. 그런 사람이 죽으면 확실히 애도를 하기는 하지만 큰 충격은 없었고 사람은 언제든 죽기 십상이라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런 길을 거부한 캐트리너 같은 사람의 죽음은 충격과 더불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캐트리너는 사회사업가나 경찰 같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많은 젊은이들 중 하나였다. 이 주택단지의 어른들은 캐트리너같이 교육과 일, 자기향상에 진지한 관심을 지닌 젊은 남녀들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 나 또한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캐트리너의 죽음은 결코 가시지 않는 아픔으로 마음 한편에 남았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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