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살이 되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윌럼은 자기가 유명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덜 혼란스러웠다. 어떤 면에서 그는 늘 자신을 일종의 유명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와 제이비 이야기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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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려고 애쓰면서 그는 왜 자기가 잭슨에게 빠졌는지 생각했다. 이유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기억하기가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자기 인생에 같히지 않았다는 걸, 나쁜 결정들일지언정 스스로 내릴 수 있고, 내릴 거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잭슨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나이쯤 되면 아마 만날 친구들은 이미 다 만났다. 친구들의 친구들도 만났다. 인생은 점점 더 작아졌다. 잭슨은 멍청하고 풋내기에다 잔인했고, 그가 높이 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가치가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계속 그와 어울린 이유였다. 친구들을 당황시키려고, 친구들의 기대에 묶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멍청하고, 멍청하고, 또 멍청한 짓이었다. 오만이었다. 그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도 그 뿐이었다. - P402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많은 세월이지나도, 루크의 미소 짓는 얼굴이 순식간에 마법처럼 떠오르곤했다. 그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있던 시절, 그가 너무 순진하고 너무 외롭고 너무 애정이 그리운 어린아이여서 아무것도 모른 채 유혹당하던 시절의 루크를 생각했다. 그는 온실로달려가고 있었다, 문을 열고 있었다, 꽃들의 온기와 향기가 그를 망토처럼 둘러쌌다. 그건 그가 그토록 소박하게 행복했던,
복잡할 것 전혀 없는 기쁨을 알았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우리꼬마 미남이 왔구나!" 루크는 외쳤다. "아, 주드 - 널 보니 너무 행복하다."
- P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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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모든 일들을 겪고도, 그는 마음 한구석에서 늘 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날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래도 딱히 개의치 않았다. 아무것도 금지되어 있지않고 모든 것이 제공되고 그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공간에 있다는 것은 어딘가 무섭고 불안한 데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줄 수 있는 건 주려고 했다. 물론 보잘것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럴드가 너무도 흔쾌히 주는 것들 대답과 애정 - 에는 보답할 길이 없었다. - P197

 "주드에게." 해럴드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필요 없긴해도) 아름다운 편지 고맙게 받았다. 그 편지에 쓰인 모든 말들다 고맙다. 네 말이 맞아. 그 머그는 내겐 정말 소중한 거야. 하지만 너는 더 소중해. 그러니 더 이상 자기를 고문하지 마라.
내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면, 이 모든 사고가 인생 일반에대한 은유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물건들은 깨지고, 때로는 수리되고, 대부분의 경우엔 어떤 게 망가지더라도 삶이 스스로 변화하면서 그 상실을 보상해주지. 때로는 아주 근사한 방식으로 말이야.
사실, 어쩌면 나도 결국 그런 종류의 사람인지 몰라.
사랑을 담아, 해럴드.
- P199

 아이를 갖기 전에는 두려움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그게 더 굉장한 거라고 착각하게 되는지도몰라. 두려움 자체가 더 굉장한 거니까. 매일매일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얘를 정말 사랑해"가 아니라 "애는 괜찮나?"야.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공포의 장애물 경주로 바뀌지. 아이를 안고길을 건너려고 서 있으면 내 아이가, 어떤 아이든, 살아남기를 기대한다는 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해. 공중에서 팔랑대는 늦은 봄날의 나비 -알지, 그 조그만 하얀 나비들- 가 생존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로 보여. 유리 창문에서겨우 1밀리미터 정도 아슬아슬하게 떨어져서 용케 안 부딪치고날아다니는 그 나비들처럼..
- P243

지금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알게될 거야. 내가 보기에, 우정의 오랜 요령은 너보다 더 나은 사람들 더 똑똑하다거나 멋진 사람들이 아니라 더 친절하고 더 아량 있고 더 관대한 사람들을 찾는 거야. 그리고 그 친구들이네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감사하고, 친구들이 너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아무리 나쁜 혹은 좋은 - 말이라도 경청하려고 하고, 그들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게 제일 힘든 일이야. 하지만 가장 좋은 일이기도 해."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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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 상태에서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환영에 대해 신을 향한 경외심과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가꾸어가는 데 도움을 받았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환영이 하찮고 꺼림칙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리적인 현상일 수도있겠지만,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지고한 황홀감에서 나오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예를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간질 증세가 있던 그는 황홀감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자주경험하곤 했다. 그에게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었다.
- P285

지적장애인인 마틴이 이렇듯 정열적으로 바흐에 몰두하는 것은 신기한 일인 동시에 감동적이기도 했다. 바흐는 대단히 지적인 반면 마틴은 모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번은 ‘칸타타‘ 카세트를, 또 한번은 마그니피카드 카세트를 가지고 그를 방문했다. 그때처음으로 나는 마틴이 비록 지능은 낮지만 바흐의 복잡한 기교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는 음악적 지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능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흐는 그를 위해서 존재했고, 바흐야말로 그의생명이었다.
- P317

 이같은 ‘도상성‘과 관련하여 과학적 정신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유사한 사례가 있다. 멘델레예프라는 사람은 원소의 성질을 주기율순으로 카드에 써서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그 내용에 익숙해지자 원소들의 성질이 낮잋은 얼굴처럼 보였다. 모든 원소의 성질을 도상적으로 관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주기율순으로 늘어놓은 모든 원소표를 앞에 두고 우주의 얼굴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이 같은 과학자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도상적‘이며, 자연의 삼라만상이 인간의 얼굴 또는 하나의 광경으로 보이게 된다. 물론 음악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광경 및 마음속의 환영은 ‘현상적‘인 것으로 충만해 있다. 그런데도 ‘물리‘와 밀접하게 관련이있다. 즉 심령의 세계로부터 물리적인 세계로의 환원이 가능하며, 거기서 이러한 과학의 이차적 외면적인 작용이 성립된다. 이에 대해 니체는
"철학자는 우주에 내재한 교향곡의 메아리를 자기 내부에서 들은 뒤,이를 관념의 모습으로 뒤바꾸어 다시금 외부세계로 투사하려는 사람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 P341

자폐증 환자들은 사물을 일반화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일반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들의 세계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의 우주에 사는 것이 아니라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다중 우주‘ 즉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정확하고, 엄청나게 열정적인 개체들로 이루어진 우주에 살고 있다. 그것은 ‘일반화‘ 혹은 과학적인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 P376

성공의 비밀은 좀더 특별한 곳에 있다. 모츠기는 이 지능 낮은 예술가를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기로 했다. 상대를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헌신,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모츠기는 이렇게 말했다.
"야나무라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한 일은, 그의 영혼을 내 영혼으로 여기는 일이었다. 교사는 아름답고 순수한 뒤처진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정제된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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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왜 주드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않았는지, 왜 주드에게 그럴때 어떤 기분인지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는지, 왜 본능이 시키는대로 감히 행동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그냥 옆에 앉아 다리를 문질러주고, 멋대로 어긋나는 신경말단을 주물러 가라앉히려 해보지 않았을까. 대신 그는 여기 욕실에 숨어 바쁜 체하고 있다. 가장 소중한 친구 하나가 바로 저기 지저분한 소파에 철저히 홀로 앉아 산 자들의 땅으로 돌아오기위한, 의식을 되찾기 위한 느리고 슬프고 고독한 여행을 하고있는데 말이다.
- P37

이런 평일 저녁의 지하철 여행에서 그가 또 좋아하는 것은 빛이었다. 지하철이 덜커덩거리며 다리를 건너가고 있으면, 빛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차량을 가득 채우고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로를 씻어내고 그들이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의 얼굴,
미국을 정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젊은 시절의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그런 빛이 시럽처럼 차량 안으로 퍼져나가면서 깊게 팬 이마의 주름을 지우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번쩍거리는 싸구려 옷감의 광택을 매끄럽고 은은하게어루만지는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열차가 무심하게 덜커덩거리며 멀어져가면, 세상은 다시 평소의 슬픈 모양과 색깔로, 사람들은 평소의 슬픈 얼굴로 돌아왔다. 마치 마법사가 지팡이로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잔인하고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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