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 시인 김수영이 꿈꾼 중용의 사회는 단독성이 실현되는 동시에 보편성도 확보되는 사회,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서로 아름답게 때로는 아프게 공명할 수 있는 사회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달나라의 장난>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세상의 누구도 백 년 전에 없었고,
천년 전에도 없었다. 또한 우리는 이백 년 뒤에도 이천년 뒤에도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김수영이 말한 자유를 가능케 하는 존재론적 기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처럼 기질은 특정 사물이나 사건에 정해진 반응을 하도록 훈육된 습관이나 타성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타자를 응시하고 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거리감은 발붙일 곳이 없다. 김수영이 제일 우리한바가 이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태와 자기가 하나로 붙어서 생긴 타성을 ‘벽‘이라고 부르며 경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사학자들이 알고 있듯이, 과거는 위대한 암흑이오, 메아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속에서 목소리들이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들은 그들이 온 세상의 어둠에 흡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우리 시대의 선명한 빛 속에서는 그 목소리를 정확히 해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박수갈채)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