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 나도. (그는 초조하게 기침을 시작하고 곧 발작적인 기침이 이어진다. 제이미는 근심과 연민이 어린눈길로 동생을 흘낏 본다. 메리, 앞응접실을 통해들어온다. 얼핏 보기엔 아까보다 덜 초조해하고 아침 식사 직후의 상태와 비슷해진 걸 제외하곤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눈이 더반짝거리고,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말하고 행동하는 듯 목소리와 태도가 묘하게 초연해진 걸 알수 있다.)
메리 - (걱정스럽게 에드먼드에게로 가서 어깨를 안으며)이렇게 기침을 하면 안 되는데. 목에 안 좋아.
감기에다 목까지 아프면 안 되지. (에드먼드에게 키스한다. 에드먼드는 기침을 그치고 걱정스런 눈으로 어머니를 흘낏 살핀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정함이 그의 의심을 잠재워 잠시 그는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반면 제이미는 한 번 유심히보고는 자신의 의심이 적중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고 방어적인 냉소가 어린 쓰라린 표정이 된다. 메리는 에드먼드의 의자 팔걸이에 살짝 걸터앉아 아들의 어깨를 안고 말을 잇는다. 그녀의 얼굴은 에드먼드의 뒤쪽 위에 있어서 그는 어머니의 눈을 볼 수가 없다.)  - P69

메리 - (매정하게) 눈만 뜨면 남을 비웃잖니. 다른 사람들 약점이나 찾고. (그러다 돌연 감정 없는 초연한목소리로 변하며)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에드먼드는어머니의 이상한 태도에 겁이 난다. 그는 어머니의눈을 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시선을 피하고 있다. 제이미는 어머니를 돌아봤다가 다시 재빨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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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유대 민족에 대한 범죄는 무엇보다도 인류에 대한 범죄이며 국제 재판소에 대한 타당한 주장이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주장은 아이히만이 재판받고 있는 법과 심각한 모순을 이룬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수를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한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1950년의 나치스 및 나치 부역자 (처벌)법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모순되며,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주장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치 살인자가 처벌되는 이유는 그가 공동체의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지 그가 스미스 집안에서 그 남편이자 아빠이며 생계를 위해 일하는 자를 빼앗았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국가가고용한 근대의 대량 살인자들이 재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류의 질서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수백만 명을 죽였기 때문은 아니다. 살인이라는 범죄와 대량학살이라는 범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따라서 후자가 "적절히 말하면 새로운 범죄가 아니다"는 일반적인착각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범죄에 대한 이해에서 더 위험한 것은, 또는 이러한 새로운 범죄를 다룰 수 있는 국제형사법의 출현에 더욱 방해가 되는 것은 없다. 대량학살이라는 범죄의 핵심은 전적으로 다른 질서가 붕괴되고 또 전적으로 다른 공동체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 P373

 일단 한번 등장하여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행위는 그러한 발생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하나의 가능성으로 인류에게 남는 것은 인간적 사건들의 본질 속에 놓여 있다. 어떠한 처벌도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는 충분한 억지력을 가진적이 없었다. 반대로 일단 어떤 특정한 범죄가 처음으로 발생한다면 처벌이 무엇이든 간에 그 범죄의 재출현은 그의 최초의 출현보다도 훨씬가능성이 높다. 나치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가 재발할 가능성에 대해말하는 특정한 이유들은 훨씬 더 그럴듯하다. 근대의 인구 폭발과 기술적 장치들의 발견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두려운 사실, 게다가 기술적 장치들은 자동화를 통하여 심지어 노동을 보더라도 그 인구의 많은 부분을 ‘잉여‘로 만들어 버릴 것이고 또 핵에너지를 통하여 마치 히틀러의가스 시설을 사악한 아이들의 서투른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드는 도구들을 사용해서 이러한 이중적 위협을 처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점은 우리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바로 그 같은 이유에서 전례 없는 일이 일단 발생했다면 그것은 미래에 선례가 될 것이고,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해 다루는 모든 재판은 오늘날 아직 ‘이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만 한다.  - P375

아이히만의 경우 성가신 점은 바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다는 점.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도착적이지도 가학적이지도 않다는 점, 즉 그들은 아주 그리고 무서울만큼 정상적이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법률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 판결에 대한 우리의 도덕 기준의 관점에서보면 이러한 정상적인 모습은 잔혹한 일들을 모두 모아놓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뉘른베르크에서 피고와 그의 변호사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언급된 것처럼) 사실상 인류의 적인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거나느끼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히만 재판에서 나온 증거는 주요 전법들에 대한재판에서 제시된 증거보다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 자신은 분명한 양심을 갖고 있었다는 항변은 보다 쉽게 기각되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항변은 ‘상관의 명령‘에 대해 복종해야 한다는 논지와, 간헐적인 불복종에 대한 여러 형태의 자부심이 결합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피고의 나쁜 신념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해도, 죄를 느끼는 양심이 실제로 입증되는 유일한 근거는 나치스, 특히 아이히만이 속한 범죄 조직들이 전쟁 끝나기 전 몇 달 동안 그들의 범죄의 증거들을 그토록 아주 열심히 파괴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근거는 다소 위태롭다. 대량학살의 법은 그것이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다른 나라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인정만을 그것은 입증할 뿐이었다. 혹은 나치스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들은 인류를 ‘하류 인간들의 지배‘로부터, 특히 시온의 장로들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싸움에서 패했다는 것이다. 또는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면, 그것은 패배에 대한 인정을 입증할 뿐이었다. 만일 그들이 승리했다면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가 죄책감에 물든 양심으로 고통을 받았겠는가?
아이히만 재판에서 논란이 된 보다 큰 문제들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것은 잘못을 행하려는 의도가 범죄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모든 현대 법체계에서 통용되는 가정이었다. 문명화된 사법권이 이처럼 주관적 요소에 대한 고려를 하는 것보다 더 자부심을 가진 것은 없었다. 이러한 의도가 결여된 곳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심지어 도덕적 불건전성의 이유에서라 하더라도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손상된곳에서는, 우리는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 P379

운 좋게도 우리는 그만큼 멀리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피고 자신은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주된 정치적 목적이 된 국가에서 산 모든 사람의 편에 서서 그 죄가 현실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잠재적으로만 유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내적이고 외적인 어떠한 우연적 상황을 통해 피고가 범죄인이 되는 길로 내몰렸는지 간에, 피고가 행한 일의 현실성과 다른 사람들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잠재성 사이에는 협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직 피고가 한 일에만 관여할 뿐, 피고의 내적 삶과 피고의 동기에서 가능한 비범죄적본성 또는 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 가능성에는 관여하지않습니다. 피고는 피고의 이야기를 불운에 찬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만일 상황이 보다 유리했더라면 피고는 우리 앞이나 또는 다른 형사재판소로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는 점도 당신에게 인정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피고와 피고의 상관들이 누가 이 세상에 거주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한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 P382

나는 재판에 직면한 한 사람이 주연한 현상을 엄격한 사실적 차원에서만 지적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경찰심문을 담당한 독일계 유대인과 마주앉아 자신의 마음을 그 사람 앞에 쏟아 부으며 어떻게 자기가 친위대의 중령의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또 자기가 진급하지 못한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또다시 설명을 하면서 4개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상력이 결여 때문이었다. 원칙적으로 그는 이 모든 일의 의미에 대해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법정에서 있었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나치] 정부가 처방한 가치의 재평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런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더구나 교수대 아래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생전에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것 외에 생각해 낼 수 없었다는것은, 그리고 이러한 ‘고상한 말‘이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분명코 아주 일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이론도 아니다. - P39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집단적 죄나 집단적 무죄 같은 것은 없다는 점에, 그리고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어느 한 개인은 유적이거나 무죄일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집단의 개별 구성원이 한 일과는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정치적 책임과 같은 것이 있어서 도덕적 관점에서 판단될 수도 또 형사재판에 세울 수도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부는 그의 선임 정부의 행위와 과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으며, 모든 민족은 과거의 행위와 과실에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는다. 나폴레옹이 혁명을 통해 프랑스에서 정권을 장악한 뒤에, 자기는 생 루이에서 공공안전위원회에 이르기까지프랑스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진다고 말했을 때, 그는 모든 정치적 생명의 기본적 사실들 가운데 하나를 다소 강조하여 서술했을 뿐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든 세대가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탄생함에 따라 선조들의 행위에 의해 축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조들의 죄에 의해서도 짐을 지게 되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임은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은유적 의미에서만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의 아버지 또는 자기의 민족이 한 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말해 만일 어떤 사람이 실제로 어떤 일에 대해서 죄가 있다면 그가 모든 죄에 대해서 자유롭게 느낀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어떤 일을 하지도 않고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느 날 국가들 사이의 어떤 정치적 책임들이 국제 재판소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아주 상상 가능한 일이다. 상상이 가능하지 않은 일은 그러한 법정이 개인의 유죄와 무죄를 선언하는 형사재판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개인적 유죄와 무죄에 대한 질문, 피고와 희생자 모두에게 정의를 부여하는 행위는 형사재판소에서 문제가 되는 유일한 일이다. 아이히만 재판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이곳의 법정이 법전에서 발견되지않는 범죄, 그와 유사한 것이 적어도 뉘른베르크 재판 이전에는 어느 법정에서도 알려진 적이 없었던 범죄를 직면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보고서는 예루살렘 법정이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정도 성공했는가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다루고 있지 않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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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주장한 ‘음모‘ 죄는 기각되었는데, 이 항목으로 그는 ‘주요 전범‘이 되어 최종 해결책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자동적으로 책임지도록 되어있었다. 그들은 비록 몇몇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면소를 시키기는 했지만 15개의 기소 항목 모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다른 죄목과함께‘ 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범했다. 즉 1)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살상함으로써‘ 2)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신체적인 파멸로 이끄는 상황으로 몰아감으로써, 3) 그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해를 끼침‘으로써, 4)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유대인 여성들의 출산을 금하고 임신을 방해함으로써 이 민족을 파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에 대해범죄를 저질렀다는 4가지 기소 항목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그들은 1941년 8월 이전의 시기에 대해 부과된 어떠한 죄목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는데, 그 시점은 총통의 명령이 전달된 때였다. 그 이전의 시기의 활동들과 베를린 및 빈, 프라하에서 그는 ‘유대인을 파멸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 P339

11항에서는 ‘수천 명의 집시들‘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한 것을 다루었다. 그러나 판결문에서는 "피고가 집시들을 파멸 지역으로 이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가 우리 앞에서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말의 의미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대량학살 죄목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집시들의 처형이 상식이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아이히만은 경찰심문 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힘러의 명령이었다는 것. 유대인에 대해서 있었던 것과 같은 ‘지시사항‘이 집시들에게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집시 문제‘에 대해서는 기원과 관습, 습관, 조직•••••• 민요•••••• 경제‘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없었다는 것을 아이히만은 희미하게나마 기억했다. 그의부서는 제국의 영역으로부터 3만 명의 집시들을 ‘소개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가 세부사항들을 아주 잘 기억할 수 없었던 것은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시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제거되기 위해 이송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는 결코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유죄인 것과 전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집시들의 학살에 대해서도 유죄였다.  - P340

자신이 기소된 범죄들에 대해 ‘교사‘한 부분에서만 유죄일 뿐이며, 공공연한 행위를 자행한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을 아이히만이 줄곧 주장한 점은 기억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판결문은 검찰이 이 점에서 아이히만이 유죄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한편으로 인정했다. 이 점은 중요했다. 그것은 일상적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 이 범죄의 핵심 자체에 닿아 있으며, 일반 범죄자가 아닌 이 범죄자의 본질 자체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함축적으로 판결문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실제로 살상 수단들을 손으로 조작한 사람들은 통상 수감자들과 희생자들이었다는 섬뜩한 사실을 역시 인정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했던 것은 정확성 이상의 것이었으며, 그것은 진실이었다. "우리의 형법 제23조에 따라 그의 행동들을 표현하자면, 그들은 타인에게 [범죄적] 행위를 하도록 돕거나 사주한 사람이거나, 또는 자문이나 충고를 함으로써 유혹한 사람이라고 말해야만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범죄의 경우처럼 엄청나고 복잡한 경우, 즉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그리고 다양한 행동방식(그들의 다양한 지위에 따라 입안자, 기획자, 실행자)으로 참여한경우 범죄를 저지르도록 자문하고 유혹했다는 일상적 개념을 사용하는것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범죄들이 희생자의 수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범죄에 개입한 사람들의 숫자의 측면에서도 집단적으로 이루어졌기때문에, 이 수많은 범죄자들 가운데 희생자들을 실제로 죽인 것에서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있었던가 하는 것은, 그의 책임의 기준과 관련된 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와 반대로, 일반적으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 P342

원래의 판결문과 명백히 대조된 점은 "항소자가 ‘상관의 명령‘을 전혀 받지 않았음"이 이제는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스스로가 자신의 상관이었으며, "유대인 문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그가 모든 명령을 내렸다." 더욱이 그는 "중요성에 있어서는 뮐러를 포함한 그의 모든 상관들을 능가했다." 아이히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유대인의 운명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것이라는 피고 측의 주장에 대해, 판사들은 이제 "최종 해결책이라는 아이디어는 항소자와 그의 공범자들의 억누를 수 없는 피의 갈증과 광신적 열정이 없었다면 수백만의 유대인의 벗겨진 살갗과 고문당한 살이라는 연옥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검찰의 논리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언어 자체도 차용한 것이다.
같은 날인 5월 29일에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벤츠비는 ‘변호사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4장의 친필로 된 아이히만의 사면 청원서를 린츠에 있는 그의 아내와 가족으로부터 온 편지와 함께 받았다. 대통령은 또한 전 세계로부터 온 관대한 조치를 호소하는 수백 통의 편지와 전문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저명한 인사로는 미국랍비중앙회, 미국개혁주의 유대교대표단, 그리고 마르틴 부버가 이끄는 예루살렘 소재 히브리 대학 교수의 한 그룹이 있었다. 부버는 처음부터 이 재판에 반대했으며, 이제는 벤구리온에게 관대한 조치를 내리도록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지 이틀이 지난 5월 31일에 벤츠비씨는 모든 자비의 청원을 물리쳤다. 그리고 같은 날 몇 시간이 지난 뒤(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자정이 되기 직전 아이히만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사체는 화장되었고 재는 지중해의 이스라엘 수역 밖에 뿌려졌다. - P345

마르틴 부버는 이 재판을 "역사적 차원에서의 실수"라고 불렀다. 이 일이 "독일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상하게도 아이히만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부버는 아이히만이 독일 청년들의 어깨에서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을 공개처형해주기를 원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부버처럼 저명할 뿐만 아니라 아주 위대한 지성인이 이 같은 아주 대중화된 죄책감이 필연적으로 얼마나 기만적인가를알지 못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만일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 데도 죄책감을 느낀다면 이는 유쾌한 일이다. 이 얼마나 고귀한일인가! 반면 죄를 인정하고 회개를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며 상당히 우울한 일이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생활의 모든 면과 모든 행로에서 실제로 죄가 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부 당국이나 공공기관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이런 사태에 대한 정상적반응은 분개하는 것이겠지만, 분개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생명과 신체에 위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취업에 결정적으로 장애가 된다. 아주 가끔씩, 「안네의 일기』와 같은 소동이나 아이히만 재판과 같은 경우, 히스테리컬한 죄책감의 분출로 우리들을 대하는 그들 젊은 독일의 남녀들은 과거의 부담, 즉 그들의 아버지의 죄 아래서 혼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바로 현재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주는 부담으로부터 값싼 센티멘털리티로 도망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 P347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그는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을 마셨다. 그는 그에게 성서를 읽어주겠다고 제안한 개신교 목사 윌리엄 헐 목사의 도움을 거절했다. 그는 두 시간밖에 더 살 수 없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감방에서 형장에 이르는 50야드를 조용히 그리고 꼿꼿이 걸어갔다. 간수들이 그의 발목과 무릎을 묶자 그는 간수들에게 헐렁하게 묶어서 자신이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쓰겠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로 남긴 기괴한 어리석음보다도 이 점을 더 분명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을 믿는 자라고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 P349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은 그들의 범죄가 지역으로 구분될 수 없는 전범들을 위해서 수립되었는데, 그 외 모든 다른 전범들은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나라들로 보내졌다. 오직 ‘주요 전범들만이 지역의 한계 없이 활동했고, 아이히만은 분명히 그러한 사람들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다. (이것이 그가 뉘른베르크에서 고발되지 않은 이유였다.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그의 잠적이 이유가 아니었다. 예컨대 마르틴 보르만은 궐석으로 고발되고 재판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았다.)만일 아이히만의 활동이 점령지 유럽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그가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어서 지역적 제한이 그에게는 적용되지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그의 부하들이 전 유럽대륙을 돌아다닌 것이 그의 업무, 즉 모든 유대인을 모아서 이송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범죄가 뉘른베르크 헌장의 제한적인 법적 의미에서 ‘국제적 관심사로 만든 것은 유대인이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유대인이 그들 자신의 영역, 즉 이스라엘 국가를 갖게 되자 마치 폴란드인들이 폴란드에서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심판할권한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의 권한을 유대인은 자기 민족에 대해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분명히 가지게 된 것이다.  - P357

희생자가 유대인인 한에서는 유대인의 법정이 재판하는 것이 옳고도 적절하다. 그러나 그 범죄가 인류에 대한 범죄인 한, 그 범죄를 심판하는데는 국제 재판소가 필요했다! (법정이 이러한 차이점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은 그 차이에 대한 구분이 전 이스라엘 법무장관 로젠 씨에의해 과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놀랄 만한 일이다. 로젠 씨는 1950년에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위한]이 법안과 대량학살 방지 및 처벌법의 차이점"에 대해 주장했는데, 이러한 구분이 이스라엘 의회에 의해 논의되었으나 통과되지는 않았다. 법정은 국내법의 한계를 넘어설 권리가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법에 해당되지 않는 대량학살은 그 논의의 적절한 대상이 될 수 없었음이 분명했다.)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는 데 대해 반대하며 국제 재판소를 선호한 수많은 고도의 자격을 갖춘 목소리들 가운데 오직 하나, 카를 야스퍼스의 목소리만이 (재판이 시작되기전에 가진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이 나중에 『모나트」에 인쇄되어)나왔다. "유대인에 대한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점과 "따라서판결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법정에서만 내려질 수 있다"는 점을 명백하고 분명하게 진술했다. 사실과 관련된 증언을 청취한 뒤 예루살렘법정은 스스로 판결을 ‘내릴 자격이 없음‘을 공표하면서 판결의 권리를 ‘철회할 것을 제안했다. 왜냐하면 문제가 된 범죄의 법적 성격이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어 있고, 그에 이어지는 질문, 즉 누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판결을 내릴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야스퍼스는 한 가지 점만은 분명하게 주장했다. "이 범죄는 일반적 살인 그 이상이면서 동시에 그 이하이다." 그래서 비록 이것이 ‘전쟁범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국가들이 그러한 범죄가 지속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인류는 분명 파멸될 것이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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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72년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

남매는 부엌에서 뒷마당으로 이어진 뒷문을 통해 집을 나섰다. 그들은 기이한 한 쌍이다. 스물일곱 살인 도널드 캘빈의 두 눈은 움푹들어가 있다. 머리카락은 완전히 밀어버렸고, 턱에는 성경에 등장할법한 후줄근한 턱수염이 자라나려 했다. 키가 도널드의 허리쯤 오는 일곱 살 먹은 메리 갤빈은 밝은 금발에 작고 둥근 코를 가졌다.
갤빈 가족은 콜로라도 우드먼밸리에 살고 있다. 경사진 구릉과사암 절벽 사이에 자리한 우드먼밸리는 숲과 들판, 농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지역이다. 갤빈 가족의 집 마당에서는 싱그러운 솔향기와 흙냄새가 났다. 주변의 바위 정원에는 검은방울새와 큰어치가 빠르게 날아다니고, 가족이 키우는 ‘애솔‘이라는 참매가 아버지의 새장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여동생이 앞장선 가운데 남매는 너무나 익숙한 이끼 덮인 돌들을 밟으며 작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 P10

알츠하이머병이나 자폐증과 같은 뇌 질환도 개개인이 가진 특성을 희석하고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병이다. 하지만 조현병이 특히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환자의 감정이 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조현병의 증상은 어떤 감정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증폭시킨다. 환자들은 이미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격렬한 감정에 압도되는데, 그 모습은 그들을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겁먹게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한 가족에게 있어 조현병은 마치 가족의 기반이 아픈 구성원 쪽으로 영원히 기울어지는 것 같은 경험으로 다가온다. 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조현병 환자가 존재한다면 그 가족 속 삶의 논리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은 형제자매들도 아픈 형제들만큼이나 여러 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열두 명의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전체와 개인을 분리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정신질환이 일상이 되면서 다양한 사건이 발생했고 가족의 모습은 서서히 달라졌다. 정신질환은 가족이 하려는 무슨 일에든 영향을 주는 기본 조건이 되었다. 린지, 마거릿, 존, 리처드, 마이클, 마크에게 갤빈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도 미쳐버리거나 다른 형제가 미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 그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은 정신질환을 곁에 두고 성장했다.
망상, 환각이나 편집증에 빠져들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집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CIA가 그들을 찾고 있거나 침대 아래 악마가 있다고 믿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신 안에 불안정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늘 ‘언제쯤 그것이 나를잡아먹을까?"라고 생각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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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스라엘에 와서 재판을 기꺼이 받으려 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드러난 사실이라기보다는 증명된 것이었다. 물론 피고 측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피고가 납치되었고 따라서 "국제법에 저촉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로 데려왔다"는 점을 강조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법정이 그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에 대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사나 재판관들이 그러한 납치가 ‘국가에 의한 행위‘였다는 점을 결코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점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국제법의 훼손이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 두 국가에만 관계될 뿐 피고의 권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훼손은1960년 8월 3일에 있었던 "양국은 아르헨티나 국가의 기본적 권리를침해한 이스라엘 시민들의 행위로 인해 야기된 사건이 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공동선언을 통해 ‘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법정은 이들 이스라엘인들이 기관원인지 민간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피고도 또 법정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 시민이었더라면 아르헨티나는 자신의 권리를 그렇게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거기서 가짜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는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그의 아르헨티나 신분증에는 남 티롤 지방에 있는 볼차노에서 1913년 5월 23일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었다)으로 거기서 살았다. 비록 그는 자신이 ‘독일 시민권자임을 천명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는 결코 망명자에게 해당하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았는데, 만일 그렇게 했더라도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아르헨티나가 많이 알려진 나치스 범죄자들에게 망명을 사실상 허용하기는 했지만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정치범이 될 수 없다‘는 국제협약에 조인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로 인해 아이히만이 무국적상태가 되거나 또는 독일국적을 법적으로 박탈당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서독으로 하여금 해외거주 시민에 대해 제공하는 통상적 보호책에 대해 보류하게 만드는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 P333

 다른 말로 하면 수많은 법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납치가 빈번히 이루어진 체포의 한 양상이라는 인상을 결국 사람들이 갖게 된 수많은 전례들에 근거하여, 예루살렘 법정이 아이히만에대한 재판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아이히만이 사실상 무국적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이 비록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점을 잘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오직무국적 상태로서만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몰살당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국적을 상실해야만 한 것이다. - P334

그가 이스라엘에 와서 제시한 두 번째 이유는 더 극적이었다. "1년 반쯤 전 [즉 1959년 봄]저는 독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인으로부터, 어떤 죄책감과 같은 느낌이 독일 청년 일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책감 콤플렉스와 같은 사실이 제게는 말하자면 마치인간을 태운 우주선이 달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과 같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내면생활의 핵심 속의 한 점이 되었고, 그 주위로 많은 생각들이 결정체처럼 얽혔지요. 이것이 바로•••••• 수색대가 제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고도•••••• 제가 도망가지 않은 이유입니다. 제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독일의 젊은이들 사이에 있는 죄책감에 대한이 대화를 한 후에 저는 잠적할 권리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것도 또한 제가 이 심문이 시작될 때 서면 진술서에서•••••• 제자신을 공개처형하라고 제안한 이유입니다. 저는 독일의 청년들로부터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제가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 젊은이들은 무엇보다도 지난 전쟁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들이 한 일들에 대해 결백하기 때문이죠." ‘지난 전쟁‘을 그는다른 맥락에서는 ‘독일제국에 강요된 전쟁‘이라고 여전히 부르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독일로 자발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 질문을 그가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에 독일 법정이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다룰 때 필요한 ‘객관성‘을 아직도 상실한 채 있다고 대답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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