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안 영감
Toine

사방 10리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투른방의 술집 주인 앙투안을, ‘뚱보 투안‘이나 ‘내 코냑 투안‘ 혹은 ‘화주火酒‘라고도 불리는 투안 영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작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처박힌 그 작은마을을 유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마을은 구덩이와 나무들로 둘러싸인 노르망디 양식의 집 열 채로 이루어진 초라한 농촌 마을이었다.
집들은 투른방이라 불리는 굽이 뒤, 잡초와 가시양골담초로 덮인 골짜기 속에 웅크려 있었다. 폭풍우 치는 날 새들이 혹독하고 짠 바닷바람에 맞서 밭고랑 속에 몸을 숨기듯, 마치 그 골짜기 속에서 피난처를 찾은 것 같았다. 폭풍우 때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불처럼 주변을 부식시키고, 태우고, 겨울의 서리처럼 주변을 메마르게 하고 파괴한다. - P585

투안 할멈은 격분해서 다시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게 하나 딱 하나 있어...... 그 일은 일어나고 말 거야.
그 배가 곡식자루처럼 터져 버릴 거라니까......"
그러고는 술꾼들이 와 하고 웃는 가운데 화난 채로 나가 버렸다.
사실 투안 영감의 모습은 보기에도 놀라웠다. 몸이 너무나 두텁고, 뚱뚱하고, 빨갛고, 엄청나게 뚱뚱했던 것이다. 그는 유쾌하고 익살스러운외양으로 죽음의 술책에 놀림받는 거대한 남자였다. 그의 몸은 천천히 파괴적으로 변해 갔지만, 겉으로 볼 때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흰머리가 나고, 몸이 야위고, 주름살이 생기고, 점점 쇠약해져서 맙소사, 저 사람 엄청 변했군!"이라는 말을 듣는데 말이다. 그의 아내는 그를 살찌우는 데서, 그를 괴물처럼 만들고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서, 그를 울긋불긋하게 채색하는 데서, 그를 파괴하는 데서, 그에게 초인적인 외양을 부여하는 데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부과한 몸의 왜곡이 그에게는 불길하고 딱한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것, 익살스러운 것, 재미있는 것이 되었다.
투안 할멈이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게 딱 하나 있어. 머지않아 그 일이일어날 거야" - P589

세례
Le Baptême

"박사님. 코냑을 좀 더 드세요"
"그러지요"
늙은 해군 군의관은 작은 술잔을 내밀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예쁜 액체가 잔 가장자리를 따라 차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높이로 잔을 들어 올려 램프 불빛에 비춰 본 뒤, 냄새를 맡고 몇 모금 마셨다. 오랫동안 혀 위에 굴리고 입천장을 적시며 음미했다.
그런 다음 말했다.
오, 매력적인 독이여! 유혹적인 살인자여, 달콤한 파괴자여! - P600

무분별
Imprudence

결혼 전 그들은 별에서 사는 것처럼 서로를 순결하게 사랑했다. 그들은 어느 해변에서 매혹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그는 그녀가 달콤하다고생각했다. 장미처럼 탐스러운 그녀가 엷은 양산을 쓰고 생기 있게 화장한 얼굴로 긴 수평선 위를 지나갔다. 파란 파도와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는 금발의 날씬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싱그럽고 짭짤한 공기와 환하게 쏟아지는 햇빛, 파도가 일렁이는 드넓은 풍경 속에서 갓피어난 듯한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영혼 속에, 혈관 속에 아련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일깨웠다. - P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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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시코! 여기 코냑 두 잔만 주게. 좋은 것으로, 마르탱이 돌아왔거든 우리 집사람의 남편 말이야. 자네도 알지? 실종된 ‘두 자매 호‘에 타고 있던 마르탱 말이야."
그러자 배가 나오고 혈색이 붉고 뚱뚱한 주인이 한 손에 술잔 세 개,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들고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마르탱, 자네가 돌아왔군!"
마르탱이 대답했다.
"그래 돌아왔어!" - P567

포로
Les Prisonniers

숲에서는 나무에 내리는 눈송이가 가볍게 떨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눈은 정오부터 내렸다. 작고 고운 눈송이들이 차가운 거품처럼 나뭇가지를 감싸고, 덤불 숲의 낙엽을 은빛 지붕으로 얇게 덮어 놓았다. 눈송이들은 폭신한 흰 양탄자처럼 길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이 숲의 깊은 침묵을 더욱 두텁게 했다.
삼림 관리인의 집 문 앞에서 젊은 여자 하나가 팔을 걷어붙인 채 돌위에 놓인 장작을 도끼로 패고 있었다. 그녀는 삼림 관리인의 딸이자 또 다른 삼림 관리인의 아내로, 키가 크고 야위었으며 힘이 센 숲의 여자였다 - P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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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있는
제자에게

옛 제자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상하고 초췌해져 있었다.
이유가 있을 텐데 입을 쉬이 열지 못하던 제자는 마침내 오열을 터트렸다.
실컷 울게 가만히 기다려준 뒤 따뜻한 차와 보드라운 수건을 건네주었다. - P17

내 자식을 내 친구 자식과 비교하기 전에
나부터 내 친구와 비교해보자!
사실 비교할 가치가 없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니까.
내 자식이 나를 향해 "내 친구 엄마는..." 하며
다른 친구 엄마를 부러워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양육자의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라면
결국 자신의 피양육자를 타인의 자식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비교하는 순간, 시샘과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
마음은 지옥이 되고 불행의 가시밭길이 펼쳐진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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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라는 말의 가장 오래된 뿌리는 ‘뚫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트라우마에 의해 인간은 꿰뚫린다. 정신분석 사전은 그 꿰뚫림의 순간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충격의 강렬함, 주체의 무능력, 효과의 지속성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실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을 때에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트라우마를‘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트라우마는 나를...‘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걸 잊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한다.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이런 말은 지금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체가 될 것을, 심지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 - P42

중년의 사내는 홀로 카페를 정리하며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그는 노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공포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건 그가 너무도 잘 아는 허무였다. 모든 것이 허무였고 인간 또한 허무였다. 바로 그 때문에 빛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가필요한 것이다." (241쪽) 이 소설의 제목인 ‘깨끗하고 불빛 환한곳(A Clean, Well-Lighted Place)‘이 여기에서 나왔다. 삶의 허무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장소, 노인이 밤마다 떠나지 못하는그 카페 같은 곳.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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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21세기의 새로운 경제적 도전에
맞서기 위한 핵심 아이디어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는 죽기 전 2년 동안 무려 28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그런 처절한자기 성찰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흐처럼 두 귀를 머리에서 떼어내는짓도 하지 않았다. 나는 1989년 초, 그러니까 이 책의 초판 출간을 위해E.P. 듀턴사에 원고를 넘긴 이후로는 이 책을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않았다. 작가들 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간간이 다시 읽으면서 재치 있는문장이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추억에 잠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책을 읽어보며 추억에 잠기는 대신, 책 출간 이후 10년 넘게 지나온 세계 경제의 추이를 살펴보면서 이 책의 아이디어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가 현실 경제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되짚어봤다.  - P19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다음 세 가지 변화다. 첫 번째는세계 평화와 관련된 다소 긍정적인 이야기다. 즉,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수억 명의 동유럽인들이 구소련의 압제와 굴레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의 자유 시장 체제에 뛰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체제에 잘적응해나갔지만, 어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시장경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책이 체코와 불가리아에 번역 소개되었다. 두 번째는1980년 말에 세계를 호령하던 경제 대국 일본이 1990년대 들어 초라한난쟁이로 탈바꿈한 것이다. 1989년에 3만 9,000선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도쿄 주식시장 Nikkei 은 2007년에 1만 7,000선으로 떨어졌다. 그 우수성을 자랑하던 일본의 관리기법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것일까? 세 번째는 중국이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1970년대에 미미한 국내총생산 수준을 보였던 중국이 이제 당당히 세계 경제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 P21

 1998년에 일어난 러시아의 경제 붕괴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법제도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자유시장 freemarket은 말 그대로 자유방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시장 행위자들이 따라야 하는 일정한 규칙을 필요로 한다. 계약의 실행을 강제할 법정, 범죄자와 범죄 집단을 단죄할 경찰, 그리고 세금을 징수할 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정실 자본주의로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로 볼 수 있다.  - P24

첫째, 일본 정부가 자국의 대기업들이 제조업 부문을 지배하는 것을장려하고 있을 때, 미국은 금융과 보건 의료 같은 서비스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비록 일본의 은행들이 규모면에서 세계 금융 시장을 지배하기는 했지만, 수익성이나 정교함에 있어서는 많이 뒤처져 있었다. 주가지수 연동형 펀드에서 복합 파생 금융 상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금융 상품 대다수는 미국에서 개발된 것이었다. 왜 일본은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했을까? 이유는 국내에서 별다른 경쟁 압력을 받지 않았기때문이었다. 일본 재무성은 예금은행으로부터 보험회사를, 그리고 기업금융으로부터 예금은행을 보호해주었다. 즉, 미국에서 이들 산업들이서로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일본 정부는 관료주의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던 것이다. 재무성은 쥐꼬리만 한 이자를 주는 은행에 돈을 맡기라고 가계를 부추기면서 기업들에게 온순한고객을 잡아먹으라고 데려다 바쳤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지금까지살아 있다면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은행들은 자국 내에서 주어진 밥그릇 싸움만 하느라 더 큰 현실세계에서 싸우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둘째, 일본은 정보통신기술에서도 열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 일본인 친구는 처음 인터넷을 접했을 때 거의 모든 웹사이트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망했다." 비록 일본이 전자제품 같은 제조업 상품에서 시장 점유율이 높기는 했지만, 한국과 말레이시아 기업들이 전자 산업에 뛰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 기업들은 아예 싸움을 포기하고 경쟁력 없는 공장들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대신 바다 건너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평생고용 lifetime employment‘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직장 여성과 남성의 사기도 꺾였다. 일본의 비평가들은 이런 현상을 ‘도넛doughnut‘ 경제라 불렀다. 즉, 경제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것이었다. - P26

돌이켜보면 우리는 중상주의자들이 왕족들에게 한 충고 가운데 몇가지 공통적인 견해를 끄집어 낼 수 있다. 첫째, 국가는 왕족에 복종하는 충신들에게 독점권, 특허권, 보조금, 그리고 각종 특권들을 보장해왕족의 권위와 위계를 세우고 유지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국부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귀금속과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해야 하며, 또한 그것들이 있어야 식민지 전쟁도 치를 수 있다. 셋째, 국가는 대외 무역을 엄격히 규제해 수입보다 수출을 늘려야 한다. 무역에서 계속 흑자를 내야 채무국들로부터 황금, 즉 부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중상주의 시대에 국가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할 수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길드 guild(중세 시대 장인 및 상인의 동업 조합). 독점권, 관세 등 경제 권력을 왕실이나 귀족 등 측근들에게 분배함으로써 국내 경제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자국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까지 이런 통제를 가한 나라들도 있었다.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장 바티스트 콜베르 Jean-Baptiste Colbert는 상품 제조에 대해 각종 규제를 단행하고, 길드에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그는 루이 14세의 위세를 등에 업고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디종 지역(원래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해 있었으나 1678년에 프랑스로 귀속)에서 생산되는 직물은 1.408수로 되어야 한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이런 중상주의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비판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에서 근대 경제사상사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다. 그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중상주의자들의 이론을 비판했다. 첫째, 중상주의자들은 화폐와 귀금속에 기초해 부를 측정했다. 반면 스미스는 실제 부는 국민들의 생계 수준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금 자루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그것이 언제나 쌀가마니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둘째, 스미스는 부는 한 나라의 소비자 관점에서 측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통치자나 그에게 아첨하는 상인들에게 돈을 쥐어주는 얄팍한 술책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스미스는 개별적인 동기 부여, 발명, 혁신이 경제 번영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수 특권층에게 독점권이나 보호 정책 같은 혜택을부여하고자 했던 중상주의자들의 정책은 부를 늘리기는 했지만, 정치체제는 마비시켰다. 이렇게 해서 근대 경제학이 태동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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