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며보냈다. 온라인에서는 뚱뚱하고 친구 없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회 부적응자가 되지 않아도 되었고 그건 당시 내가 나를 보는 모습이었다. 익명성에 점점 매료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그럴싸한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 빠졌다. 7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것같았고 그 기분에 푹 빠져버렸다. 온라인 세상과 접속한다는 건 굉장히 특별하고 당시 절박하게 필요했던 스릴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딱히 연애사라고 할 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 누구와 데이트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웠고, 수줍어했고, 엉망진창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피부색 때문에, 나의 사이즈 때문에, 나의 외모에대한 완벽한 무관심 때문에 남자아이들에게 무의 존재가 되었다. 소설을 너무나 많이 읽었기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지독한 로맨티시스트였지만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은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에 불과했다. 남학생이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나를 데이트 장소에 데리고 가고 키스를 한다는 그 생각은 좋아했지만 실제로 남자와 단둘이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애들은 나를 해칠 수 있었다.
온라인 채팅창에서 만난 남자들은 낭만적 연애, 사랑, 욕망, 섹스에대한 나의 환상을 마음껏 충족해주면서도 내 몸을 지켜줄 수 있었다. 나는 날씬하고 섹시하고 자신감 있는 척할 수도 있었다. - P113

그 숲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어휘들을 더 다양하게 보유하게 되었다. 열두 살의 나에게는 그런 단어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그저 이 남자애들이 나와 강제로 섹스를 했고 당시의 내가 전혀 몰랐던 사용법으로 소녀의 몸을 유린했다는 것밖에 몰랐다. 책과 상담과 온라인 친구들 덕분에 이 세상에 강간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알게 되었다. 여자가 싫다고 말하면 남자는 그 말을 들어야 하고 하던 짓을 멈춰야 한다. 강간을 당한 건 내 잘못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이렇게 새로운 어휘들을 갖게 되는 건 상당히 스릴이 넘쳤지만 그렇다 해도 여러 면에서 그 어휘들이 나에게 적용된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이미 고장이 나버리고 너무 연약해져서 그러한 면죄부를 받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설령 진실이었다고 해도 진실을 아는 것과 진실을 믿는 것은 다른일이며 그 둘을 일치시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 P115

내 예상엔 우리 부모님이 아마도 사설탐정의 도움을 받아 나를 찾아낸 것 같다. 구체적으로 물어보진 않았다. 부모님은 막내 남동생 마이클주니어를 시켜 나에게 전화를 걸게 했는데 어쩌면 우리 집 귀여운 막내목소리를 듣고서는 내가 차마 전화를 끊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가족과 나는 머뭇거리며 띄엄띄엄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나중에알고 보니 우리 아버지는 뉴헤이븐으로 가서 내가 살던 아파트와 짐을정리했고 룸메이트에게는 내가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면서 그 아이가 받게 된 정신적 손해를 보상해주었다. 일단 우리가 연락을 하게 되자 아버지는 내 물건들을 내 주소로 부쳐주었고 나의 막대한 카드빚을 갚아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가 부모님과 연을 끊기 위해 그 모든 무모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전과 똑같이 아버지 노릇을 했다.

••••••

부모님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걱정으로 가슴이 녹아내릴 것 같았으면서도, 집에 돌아온 나를 기쁘게 맞아주었다. 물론 질문들이 있었고 분노도 있었고 상처도 표현했지만 그것들을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내 몸무게가 왜 그렇게 계속 늘어가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보다는 덜 실망스러운 딸이 될 수 있는지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내가 돌아가면 기뻐해주고 사랑해주는집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여전히 엉망인 상태였다. 내 방에 처박혀서 컴퓨터 앞에 앉아 모뎀으로 연결된 전화선으로 하루 종일 인터넷을 했고 그것은 나머지 가족들의 편의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어 나를 잊는 편이, 내 삶을 추스르려 노력하거나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는 것보다 쉬웠다. 여전히 망가진 상태였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틀어져버렸고 다시는 옳게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을 때의 그 자포자기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나 노력 없이 사는 것이 좋았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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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지고 손실된 수만년 전 화석에서 30억 쌍 게놈 전체를 추출해 해독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대단히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2010년 5월, 페보 연구팀은 결국 최초로 네안데르탈인 게놈 초안을 모두 해독하는 데 성공했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문을 통해 결과를 공개했다.
논문 제목은 건조하게 ‘네안데르탈인 게놈 해독 초안‘이었다. 하지만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단에서 내놓은 보도자료 제목은 좀 더 사람들의 관심사를 겨냥했다.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이었다. 논문에서 연구팀은 단순히 게놈 해독 결과만 제시하지 않고, 유전자의 특성을 현생인류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현생인류의 게놈에 있는 유전자의 일부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왔음을 확인했다. 현생인류가 수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뒤 일부가 유라시아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만나 피를 섞었으며, 그 결과 현재에도 최초 발상지에 살았던 아프리카인 일부를 제외한 전 세계인의 유전체에 약 2%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10여 년 전 페보 자신이내놨던 연구 결과를 정반대로 뒤집는 내용이었다.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발견이 이뤄지면 이를 수용하고 더 정확한 정보로 갱신하는 일은 과학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페보 역시 그 경로를 따랐다. 새로운 결과는 대단히 충격적이었지만, 아무도 왜 결과가 다르냐고 되묻지 않았고 과거 연구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기술과 증거로 밝혀낸 새로운 진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수긍했다. 페보는 이후에도 또 다른 친척 인류 데니소바인의 게놈을 최초로 해독하고 이들과 현생인류와의 관계를 밝히는 등 고게놈 분야를게놈 및 진화 연구의 중요한 축으로 올려놨다. 지금은 다른 친척 인류는 물론, 역사시대 현생인류의 인구집단 이동 역사를 파악하는 연구에도 고게놈해독 기술이 널리 쓰이고 있다. 페보는 이런 공로로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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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이 사진 속 사람들을 공부하듯이 바라보기도 했다.
이름과 장소들을 기억하고 중요한 순간들을, 나에게서 빠져나가버린 그 순간들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보았다. 내가 너무나 간편히 삭제해버린그 기억들을 다시 그러모으려고 해보았다. 이 완벽한 사진 속 완벽하게 사랑받는 아이에서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헤아리려고도 해보았다.
나는 안다. 아주 정확히. 하지만 잘 모른다. 아니, 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그때와 지금 사이의 거리가 왜 그렇게 벌어졌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 ‘왜‘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 ‘왜‘를 내 손에 넣어 낱낱이 해부하거나 아니면 찢어발기거나 아니면 태운 다음에 남은 재를 뒤적거리면서라도 해답을 얻고 싶다. 그 안에서 내가 보게 될 것들이 두렵다 해도, 그런 식의 이해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혼자 있을 때 나는 이 앨범을 꺼내서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뭐가 빠졌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천천히 넘겨본다. 아무리 그런다 해도 그 ‘왜‘는 나를 비껴간다. - P51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모든 구박과 놀림에도 불구하고 막내는 형과 누나를 무조건적으로 따랐고 조엘과 나는 막내가 보내는 열렬한 애정으로 따뜻하게 데워졌다.
어린 시절 앨범 속의 사진들은 내가 행복하고 온전했을 때의 유물과도 같다. 이것은 한때 내가 예뻤고 가끔은 귀엽고 상냥했었다는 사실의증거물이다. 지금 당신이 보는 내 모습 밑에는 예쁘고 여성스러운 물건을 사랑하는 예쁜 소녀가 아직 살아 있다.
그 사진들에서 나는 자랄수록 덜 웃게 된다. 여전히 예쁘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부터 치마를 안 입기 시작했고 장신구를 전혀 하지 않았고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시도하지 않았다. 항상 머리를 위로 바짝 올리거나 하나로 묶었다. 아직 예쁘긴 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사진 속의 나는 머리를 커트로 짧게 잘랐고 빅 사이즈의 남자 어른 옷을 입기 시작한다. 나는 덜 예쁘다. 사진의 나는 카메라를 공허하게 응시한다. 텅 비어 보인다. 실제로 텅 비어 있다. - P55

내게 일어난 일을 돌려서 썼던 이유는 우리 가족의 머릿속에 끔찍한이미지가 남길 바라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가족에게 내가 무엇을 견뎌왔는지, 지난 25년 넘게 어떻게 그것을 비밀로 해왔는지도 알리고 싶지않다. 내 연인이 나를 볼 때 내가 폭행당한 순간만을 떠올리길 바라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나를 원래의 나보다 더 연약한 인간으로 생각하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너졌으나 그래도 강하다. 내 연인들이, 아니 어떤사람이라도 나를 고작 나에게 일어났던 그 최악의 일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싫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 나자신을 보호하고 싶다. 내 과거는 내 소유이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과거를 깊은 곳에 묻어두고 그 과거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30년이나 흘렀는데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P58

‘그가 말했다/그녀가 말했다‘ 때문에 이 세상의 너무나 많은 피해자(혹은 생존자, 당신이 이 용어를 선호한다면)가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그가 말했다‘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진실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삼키고, 그렇게 하면서 진실은 변질된다. 변질된 진실은 감염처럼 몸에 퍼져나간다. 우울증이 되고 중독이 되고 집착이 되며, 그 밖에도 그녀가 말할 수도 있었고말해야만 했으나 하지 못했던 그 말은 침묵이라는 독이 되어 다양한 육체적인 증상으로 확대된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는 나 자신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되었다. 내가 역겨웠다. 그를 피해 다닐 수도 없었다. 그 소년들이 한 짓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그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그들의 입을 느끼고 그들의 혀와 손과 거친 몸과 따가운 피부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말한 그 더러운 말들이 귀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늘내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이제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숨쉬기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 소년들은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 대했고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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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5월 2일 월요일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벌써 말름셰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그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사실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날 알란은 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백회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한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시장도 초대되었고, 한 지역 신문도 달려와 이 행사를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노인들은 모두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는 중이었고, 성질머리 고약한 알리스 원장을 위시한 양로원 직원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파티의 주인공만이 불참하게 될 거였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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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개인 훈련용 1:1 슈팅로봇이다. 현대자동차그룹에 따르면 이 로봇은 풍향, 온도, 습도 등 외부 요소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조절해 평균 9.65점 이상의 명중률을 자랑한다. 더불어 자동차 주행감유지에 필수인 첨단 서스펜션 기능이 장착돼 지면 상태와 상관없이 일정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선수들은 이러한 강자와의 대결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추가로 주변 환경과 탄착군 변화량 간 상관관계데이터까지 확보했다.
훈련용 다중카메라는 자세를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슈팅 자세를 다각도에서 촬영하고, 이를 다양한 시간 모드로 제공해 정밀한 분석을 가능케 한 것이다. 선수는 0.125배속까지 제공되는 영상을 바탕으로, 미세한 동작 차이를 감지해 훈련에 참고할 수 있다. 이 역시 주차, 차선 변경 등을 할때 운전자를 도와주는 자동차 서라운딩 기술이 활용됐다. - P141

직접적인 싸움은 아니지만, 혹독한 자연 속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은 벌였고 네안데르탈인이 이 경쟁에서 열세에 몰리면서 몰락했다는 주장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의 악셀 팀머만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2018년, 옛 기후 데이터를 이용해 빙하기 시절 과거 유럽 지역의 환경을 시뮬레이션하고 이 안에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확산하는 과정을 추정했다.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원인으로는 기후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는 가설과 현생인류와의 자원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가설, 현생인류와의 이종교배로 사실상 흡수됐다는 가설 등이 꾸준히 제기돼 있었다. 연구팀이 세밀하게 복원한 빙하기 기후 속에서 인류가 어떻게 퍼졌을지를 살핀 결과,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자원을 둘러싼 현생인류와의 경쟁과 각축전이었음을 확인했다. 기후는 더 급격한 변화에도 견뎠기에 큰 요인이 아니었고 현생인류와의 혼혈도 큰 영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립된 채 외부와 단절된 특성이 멸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5만 년간 고립됐던 네안데르탈인 집단을 연구한 코펜하겐대 연구팀은 "장시간 고립된 생활로 유전자 변이가 제한돼 기후변화와 감염병에 대한 적응 능력이 떨어졌고, 지식 공유도 부족해 (문화적) 진화도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라고 밝혔다. 부족해진 유전적, 문화적 다양성이 멸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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