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잠깐만 더 저한테 시간을 내주세요. 도시에서 약속했던 일을 해내지 못했으니 더 부탁드릴 자격이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커피잔 아주머니와 레인코트 아저씨가 만난 날 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기억해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라도 다시 만나는 걸 해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그들이 잘되길바라고 어쩌면 서로 만날 수 있게 돕기도 한다는 걸요. 그러니까 제발 조시와 릭을 생각해 주세요. 이 아이들은 아직 어려요. 조시가 세상을 뜬다면 둘은 영영 헤어지게 돼요. 해가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주었던 것 같은 특별한 자양분을 조시에게 주기만 하면 조시와 릭은 친절한 그림에서처럼 같이 어른이 될 수 있어요. 둘의 사랑이 단단하고 영원하다는 걸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커피잔 아주머니와 레인코트 아저씨처럼요." - P398
"그러니까 물어볼게. 릭, 네가 승자가 됐다고 생각하느냐고. 조시는 도박을 했어. 그래, 내가 주사위를 던졌지. 이기거나 질 사람은 내가 아니라 조시였지만, 조시는 크게 걸었는데 라이언 박사 말이 맞는다면 곧 지게 될 모양이다. 하지만 너는 안전하게 갔지. 그래서 너한테 묻는 거야, 지금 넌 기분이 어떠니? 네가 정말 승자라고 생각해?" 어머니는 이 말을 하는 동안 계속 어두운 하늘을 보고있다가 이제는 고개를 돌려 릭을 마주 보았다. "네가 이겼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이거 한번 생각해 보라고 첫째, 네가 이겨서 얻은 게 정확히 뭐지? 왜냐하면 조시는 내가 처음 그 애를 안은 순간부터, 나는 조시가 온몸으로 삶을 갈구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 조시에게는 온 세상이 경탄의 대상이었지.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조시에게 기회를 안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조시가 자기 정신에 걸맞은 미래를 요구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크게 걸었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넌 어떠니, 릭? 네가 정말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해? 너희 둘 중에서 승자는 너라고 생각해? 만약 그렇다면 너 자신한테 이렇게 물어봐라. 네가 뭘 얻었는지. 한번 봐 네 미래를 보라고." 어머니는 창문 쪽으로 한 손을 흔들었다. "너는 안전하게 갔고, 그래서 네가 얻어 낸 건 작고 보잘것없어. 지금은 꽤 우쭐한 기분이겠지. 하지만 네가 그렇게 느낄 이유는 없다고 내가 말해 주마. 우쭐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 P406
어머니의 눈이 커지고 두려움으로 가득 찼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시의 메시지는 이런 거였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어떻게 되든 간에, 조시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했어요. 엄마가 자기 엄마여서 정말 고맙고 단 한순간도 아니길 바란 적이 없었다고. 이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어요. 향상을 택한 것에 대해서요.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걸 어머니가 아셨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다시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이번에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머니가 했던것하고 똑같이 할 거라고 했고 어머니는 자기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엄마라고 했어요. 그런 말이었어요. 말씀드렸듯이 조시가 알맞은 때가 되기 전에는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말씀드리기로 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으면 좋겠네요." - P407
해가 조시를 침대 전체를, 격렬한 주황색 반원으로 비추어서 침대에 가장 가까이 있던 어머니는 손을 들어 얼굴을가려야 했다. 릭은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린 것같았고, 또 신기하게도 어머니와 가정부 멜라니아도 핵심을파악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우리 모두 꿈쩍하지 않고 그렇게 서 있었고, 해는 조시에게 더욱 눈부신 빛을 집중했다. 우리는 지켜보면서 기다렸다. 한순간 주황색 반원이 마치불이 붙을 것처럼 타올랐는데도 아무도 아무 조치도 하지않았다. 그때 조시가 부스스 깨어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손 하나를 허공에 들어 올렸다. "와. 왜 이렇게 눈부셔?" 조시가 말했다. 해는 계속 빛을 가차 없이 조시에게 쏟아부었다. 조시는뒤척거리더니 몸을 돌려 베개와 침대 머리판에 머리를 기댔다. "무슨 일이야?" "좀 어떠니, 아가?" 어머니가 두려움이 어린 눈빛으로 조시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조시는 베개에 다시 머리를 대고 거의 천장을 바라보며누웠다. 하지만 조시의 몸놀림에서 새로 솟은 기운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 P411
"릭 말이 맞아요. 릭과 조시가 각각의 계획을 세운 걸 보니 불안해져요." 릭은 발끝으로 자기 앞쪽 자갈을 살살 찼다. 그러더니 말했다. "클라라. 네가 조시의 건강을 위험하게 할 말을 할 필요는 없고, 이 말만 할게. 네가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한다고 전했을 때는 그게 진실이었어. 네가 속였다거나 오해를 일으켰다고 할 사람은 없어. 하지만 이제 우리는 어린애가 아니니까. 서로 잘되길 빌어 주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해. 내가 대학에 가서 향상된 애들하고 경쟁한다는 건 애초에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 지금은 나도 나름의 계획이 있고 그게 최선이야. 그래도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어.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지만 지금도 거짓이 아니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조시와 내가 각자 세상에 나가서 서로안 만나고 산다 해도 어떤 부분은,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늘 같이 있을 거라는 거야. 조시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세상에 나가면 항상 꼭 조시 같은 누구를 찾으려고 할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속임수가 아니었어, 거기에서 네가 누구랑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도 내 마음속, 조시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면 네가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겠지." - P421
"내가 다시 왔을 때는 네가 여기 없겠지. 넌 정말 최고였어, 클라라, 정말로." "고마워요." 내가 말했다. "나를 선택해 줘서 고마워요." "당연한 선택이었지." 그러더니 조시는 다시 나를 안았다. 이번에는 짧게 안았다가 다시 몸을 세웠다. "잘 있어, 클라라. 잘 지내." "잘가요, 조시." 조시는 차에 올라타면서 다시 명랑하게 손을 흔들었다. 새 가정부 쪽보다는 나를 향한 손짓이었다. 차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지나쳐 언덕을•넘어갔다. 조시와 내가 전에 수도 없이 같이 지켜보았던 것처럼, 차는 그렇게 사라졌다. - P434
매니저는 한동안 말없이 웃음 띤 얼굴로 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내가 계속 말을 했다. "조시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지금까지그 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어요. 만약 그래야만 했다면 제가 조시를 계속 이어 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렇게 되어서 훨씬 잘되었어요. 릭과 조시가 함께하지는 않지만." "네 말이 틀림없이 맞을 거야. 클라라. 그런데 ‘조시를 계속 이어 간다‘라는 게 무슨 뜻이야? 무슨 소리지?"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되었을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릭, 가정부 멜라니아, 아버지. 그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알아요." "그래, 클라라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 P441
"안녕히 가세요, 매니저님. 고맙습니다." 매니저는 의자로 썼던 철제 상자를 다시 시끄러운 소리를내며 원래 위치로 끌어다 놓았다. 그러더니 쌓인 물건들 사이 긴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나는 매니저가 가게에서와 다른 걸음걸이로 걷는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 걸음을 디딜때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서 긴 코트 자락이 흙바닥에닿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중간쯤 갔을 때 매니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나는 매니저가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매니저는 저 먼 곳, 지평선 근처 건설용 크레인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가던 길을 갔다. - P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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