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 신경과학과 행동경제학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을 해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결과 음식부터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어떤 신비로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확률을 계산하는 수십억 개의 뉴런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인간의 직관‘이라고 과시해온 것이 사실은 ‘패턴 인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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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AI가 그동안 ‘직관‘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온 업무에서도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46

AI가 보유한 비인간 능력중에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는 연결성과 업데이트 가능성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동화를 생각할 때, 인간 운전사 한 명을 자율주행 차량 한 대와 비교하거나 인간 의사 한명을 AI 의사 하나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보다 인간 개인의능력들을 합산한 것을 통합 네트워크의 능력과 비교해야 한다.
가령, 인간 운전사는 바뀐 교통 법규에 익숙하지 않아서 위반할때가 많다. 게다가 모든 차량이 제각각 움직이다 보니 두 대가 동시에 같은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 운전사들은 서로 의도를 오해해 충돌할 수 있다. 반면에 자율주행 차량은 모두 연결될 수 있다. 두 대의 차량이 같은 교차로에 다가갔을 때에도 둘은 사실 별개가 아니다. 단일 알고리즘의 부분들이다. 따라서 서로 오해를 일으켜 충돌할 위험이 훨씬 적다. 교통부가 교통 법규를 변경하기로 결정할 때에도 모든 자율주행 차량은 정확히 같은 순간에 손쉽게 업데이트될수 있다. 프로그램의 버그만 차단하면 모든 차량이 새로운 교통 법규를 글자 하나까지 정확히 준수할 것이다.
- P48

점점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 가지 새로운 모델은 보편기본소득제UBI다. UBI는 정부가 알고리즘과 로봇을 지배하는 억만장자들과 기업들에 세금을 물려서 그 돈을 모든 개인에게 기본 필요를 충당할 만큼의 급료를 제공하는 데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이 빈곤층에는 실직과 경제적 혼란에 대비한 완충 역할을 할 테고, 덕분에 부유층은 포퓰리즘에 의한 대중의 격분으로부터 보호받을 거라는 구상이다.
관련된 아이디어는 인간 활동의 범위를 넓혀 ‘일‘로 간주되는 인간 활동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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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정부는 보편 기본 소득 대신 보편 기본 서비스를 보조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돈을 줘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게 하는 대신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무상 교통 같은 서비스를 보조하는방식이다. 이것은 사실상 공산주의가 그리던 유토피아의 청사진이다. 노동계급 혁명을 하려던 공산주의의 계획은 시대착오가 됐을지언정, 다른 수단으로 공산주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 P71

반면에컴퓨터 알고리즘은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며, 감정이며 직감같은 것도 없다. 따라서 위기의 순간에도 윤리적 지침을 인간보다 더 잘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단 우리가 윤리를 정확한 숫자와 통계로 코드화하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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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고리즘이 인간 운전자로부터 역할을 넘겨받기 위해 반드시 완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보다 낫기만 하면 된다. 인간운전자가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당신은 옆에 있는 차를 10대 음주 운전자에게 맡기겠는가, 슈마허 칸트 팀에게 말기겠는가?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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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명료성이 힘이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인류의 미래에 관한 논쟁에 참여할 수 있지만 명료한 전망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심지어 그런 논쟁이 진행되고있는지, 핵심 질문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때가 많다. 우리같은 수십억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일일이 조사해볼 여유가 거의없다. 그보다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출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고 나이 든 부모도 보살펴야 한다. 불행히도, 역사에는 에누리가 없다. 당신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느라 너무 바빠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인류의 미래가 결정된다 해도, 당신과 아이들이 그 결과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이건 아주 부당하다. 하지만 누가 역사는 공정하다고 했던가?
- P8

러시아, 중국,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경제에서는 핵심적이었으나 정치권력은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
2016년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직 정치권력은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 P29

하지만 자유주의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생태학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문제 말이다.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했다. 자유주의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를 화해시키고, 신앙인과 무신론자, 토박이와 이민자, 유럽인과 아시아인까지 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파이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감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 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 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때문이다.
자유주의 이야기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논리는 사람들이 거대한 기대를 하게끔 부추긴다. 20세기 후반부에 각 세대는 - 휴스턴에 살든, 상하이에 살든, 이스탄불에 살든, 상파울루에 살든 - 이전세대보다는 나은 교육, 뛰어난 의료 서비스, 더 큰 소득을 누렸다. 하지만 다가올 수십 년 동안에는 기술적 파괴와 생태학적 붕괴가 합쳐져서 젊은 세대는 현상 유지만 할 수 있어도 다행일지 모른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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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상대방은 잠시 말이 없다. 하지만 곧,
- 저예요.
자동응답기는 자동으로 응답한다.
- 또 왜요!
여자는 고백한다.
- 당신을 껴안고 싶어요.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동응답기가 말을 받는다.
오오, 젠장. 난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도 할말이 있으면 아무 말이나 녹음하세요.
삐이익, 그리고 뚜우뚜우뚜우, 존재하지 않는 자, 제이는 잠이 든다.
무한으로 확대된다. 그의 부재.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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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세 판을 둔다면 첫판은 한 방쯤 져줘야 돼, 두번째 판은 만방으로 이기지. 그리고 세번째 판은 조금만 이기든가 져주든가. 그럼 상대는 자신이 실력은 나은데운이 모자랐다고 생각하게 되지. 이런 협잡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지. 만방으로 이긴다고 반집 이긴 것보다 더 쳐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승부에만 신경을 쓰지. 그래서 프로의 바둑은 고도로 정밀하고 집중적이고 순수한 거야. 이강철 같은 프로가 나한테 진 건 내기 바둑의 세계를 잘 몰랐기 때문이지.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바둑 신동으로 자라와서 그대로 프로에 입단했어. 내기 바둑이니 뭐니 하는 잡스러운데는 눈 한 번 준 적이 없었을 것이고, 사실 그런 상대하고 그냥 두어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 내가 다섯 점 깔아주는 상대를 그 사람은 두점이나 석 점밖에 못 접는다고 해서 그 사람 실력이 나보다 약한가. 천만에. 그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지. 본질적인 면에서 나는 그 사람, 그리고 순수하게 입단을 목표로 공부해 온 사람들을 이길 수가 없어. 처음에는 같은 실력이라고 해. 가는 길이 서로 다른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내 바둑은 불순해지고 그 사람들 바둑은 순수해지지. 그런 식으로 실력 차가 나면 영원히 극복할 수 없어.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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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그럴싸한 자호(字號)가 있을리 없고 이름난 조상도, 남긴 후손도 없다. 동관이라는 이름이 똥간으로 변한 데는 수다한 사연이 있어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똥간이와 한 시대를 산 사람들이 똥깐이를 낳고 똥깐이를 만들고 똥깐이를죽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일부로 평범한 사람 조동관을, 자신들과는다른 비범한 인간 똥까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똥깐이 살다 간 은척읍에서 세 살 먹은 아이부터 여든 먹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동관을 칭할 때 똥깐이라고 하지 않은 사람은없었다. 그러나 똥까이 보고 듣는 데서는 아무도 그를 동관으로도, 똥깐으로도 부를 수 없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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