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안정과 계속성을 보장해준 것은 정치제도였다. 정치제도는 한편으로 독재자가 집권해 시장 환경을 지배하는 규칙 자체를 바꿔버리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한 다음 감옥에 보내버리거나 목숨과 생계를 위협할 위험을 제거해주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 특정 이익집단이 정부를 경제적 재앙으로 몰고 가지 못하도록 막아주었다. 이런 기능이 가능한 것은 정치권력 자체가 제한적이고 워낙 광범위하게 분배되어있어 번영의 밑거름인 인센티브를 창출하는 경제제도가 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76

아프리카에서 열대성 질병이 고통을 야기하고 영아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가 가난한 이유는아니다. 주로 빈곤과 질병을 박멸하는 데 필요한 공중 보건 정책을 취할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정부 때문에 질병이 창궐한다. 19세기 영국도 굉장히 건강에 해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차츰 깨끗한 물 공급과 적절한 하수 및 오물 처리는 물론 더 나아가 효과적인 공중 보건 서비스를 위해 투자를 늘려나갔다. 공중 보건이 증진되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서 영국 경제가 성공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정치·경제적 변화의 결실이었다는 것이다. 

.....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대체로농업 생산성(에이커당 농작물 생산량)이 바닥을 그리는 주된 요인은 토양의 품질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토지 소유구조, 정부 및 제도때문에 농부들이 인센티브를 기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 P88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관찰되는 소득 격차나 유럽과 서아시아 간에 장기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차이 등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패턴을 불변의 지리적 위치로 설명할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메리카 대륙 내의 불평등 패턴이 지리적 요인으로 초래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1492년 전만 해도 멕시코 중심부의 계곡, 중앙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문명이 북아메리카나 아르헨티나 및 칠레 등의나라보다 월등히 탁월한 기술과 생활수준을 자랑했다. 지리적 위치는변함이 없지만, 유럽의 식민통치자들이 강요한 제도가 ‘운명의 반전‘을야기한 것이다.
- P94

한국전쟁으로 38선을 따라 허리가 잘리기 전까지는 언어, 인종, 문화적인 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동질성을 가졌다. 노갈레스처럼 남북한 역시 국경이 문제다. 북쪽에는 다른 제도를 시행하는 다른 정권이 들어서 있다. 당연히 다른 인센티브가 만들어진다. 결국 국경을 사이에 두고 남북 노갈레스나 남북한 간에 목격되는 문화적 차이는 번영의 차이를 초래하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뜻이다.

.....

콩고가 탁월한 기술을 채택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럴 만한 인센티브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높여보았자 가톨릭 개종 여부와 무관하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왕에게 모조리 빼앗길 위험이 컸다. 사실 재산만 불안한 게 아니었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풍전등화의 운명이었다. 그만큼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는 이들이 워낙 많았다. 장기 생산성을 늘리겠다고 투자를 할 만한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왕도 대대적으로 쟁기를 도입하거나 농업 생산성 증진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만한 인센티브가 없었다. 노예를 수출하는 것이 훨씬 수지맞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카로운 충격이 맥박수를 훅 끌어올렸다. 명치 밑에서 이글대던 절망이 위액처럼 식도로 역류했다. 국국 소리가 구토를 하듯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소리는 웃음이 되어 피비린내 자욱한 집 안으로 탄환처럼 뻗어나갔다. 땀인지, 핏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뺨을 타고 턱 끝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살인자라니, 그것도 제 친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라니, 그짐승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니, 허둥대고 조바심치며 온갖 짓을다한 끝에 건져낸 게 이런 개 같은 진실이라니.
- P83

 비로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스스로 부른 재앙, 발작전구증세였다.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 P1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 주렸다.
씹어서 연하게 만든 것이 목구멍을 지나가는 느낌이 어땠는지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침만큼은 아직 나지만 넘어가지 않고 입술 양옆에 고이기만 한다. 목구멍이 거칠어져 일부러 마른침을 삼켜보려 할 때마다 부대끼고 거슬린다. 주룡은 나무를 떠올린다. 손을 넣어 만져볼 수 있다면, 우선 식도를 지나갈 때 죽은 나무의 좁은 옹이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것이고, 내장들은 손이 스치는 대로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이다. 그대로 뒷구멍까지 손을 밀어 넣어 뽑고 어깨를 구겨 넣고, 머리도, 나머지 한 팔도넣으면..... 배가 부르겠지. 나는 뒤집히겠지.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제로 미국 헌법이 시행된 직후인 18세기 후반에는 멕시코와 별반 다름없는 은행체제가 슬슬 시동을 걸었다. 정치인들은 국가가 독점하는 은행체제를 시도했다. 측근 및 후원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고 그 대가로 독점에서 얻는 이윤을 나누어 갖길 바란 것이다. 곧 미국 은행들도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규제하는 정치인들에게 대출을 몰아주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오래가지 못했다. 독점적인 은행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정치인이라도 멕시코와 달리 선출직이어서 재선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독점적인 은행을 만들어 자신이 대출을 받는다면 정치인에게는 이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없었다. 그러고도 무사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민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일일 수밖에 없다. 멕시코와 달리 미국에서는 시민이 정치인을 견제하고, 자신의 직위를 남용해 축재하거나 측근에게 독점권을 챙겨주는 이들을 제거해버릴 수있었다. 결과적으로 독점적 은행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 P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롤로그

태양이 은빛으로 탔다. 5월의 여울 같은 하늘 아래로 띠구름이 졸졸 흘러갔다. 성당 안뜰을 에워싼 설유화 꽃가지들 속에선 휘파람새가 울었다. 나와 형은 자신의 세례명이 적힌 촛불을 들고 장미나무 아치문 안으로 들어섰다. 성가대 축가에 발을 맞추면서 십자고상 밑에 마련된 야외제단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